이연석이 이 일의 진실까지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카드까지 없어진 셈이다. 배하린은 갑자기 몸에 힘이 빠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녀는 이내 등을 곧게 펴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뒤에 있는 경호원들이 그녀를 막아섰다.그녀는 기를 쓰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돼? 내가 널 많이 사랑하는 거 너도 알잖아.”그 말에 그는 눈을 흘겼다. “날 사랑한다고? 네가 사랑하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집안 배경이겠지. 날 이용해서 재벌 집 사모님이 되려고 했던 거잖아.”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욕심을 이룰 수단으로만 생각했었다. 모든 속셈을 그에게 들켰지만 배하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어 정가혜를 가리켰다. “그럼 저 여자는? 널 믿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널 사랑할 수 있겠어?”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정가혜는 그를 쳐다보았다. 억울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그녀는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당연히 날 사랑하지. 사랑하기 때문에 날 믿을 용기가 없었던 거야. 이 여자 하나만 바라보겠다고 다짐해 놓고는 다른 여자들과 거리를 두지 않았었어. 그래서 날 믿지 못했던 거고.”그가 애틋한 눈빛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정가혜를 쳐다보았다.“이제부터는 평생 이 여자 하나만 바라보고 살 거야.”바람둥이인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배하린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이연석, 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하린, 솔직하게 다 털어놔. 그럼 양민혁이랑 결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야. 아무것도 못 건지고 물러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양민혁은 이연석의 친구였고 배하린이 꼬리를 치는 바람에 결국 두 사람은 몸을 섞는 사이가 되었다. 누구도 이 일을 알지 못
이연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창밖을 내다보니 마침 경비원이 문을 열고 경찰들을 별장 안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가 경호원에게 눈빛을 보내자 배하린을 붙잡고 있던 경호원이 바로 그녀를 풀어주었다. 이연석의 계략에 빠진 그녀는 여전히 멍해 있었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경찰들이 다가와 그녀를 붙잡았다. 이런 결과가 있을 줄 몰랐던 배하린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거짓말을 한번 한 것 가지고 왜 날 잡아가는 거예요?”“이연석 씨가 당신을 성추행범으로 신고했습니다. 경찰서로 가서 조사에 협조해 주시죠.”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한 줄 알았는데 성추행이라니. 그 순간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난 널 건드린 적이 없어.”이연석은 피식 웃었다. 그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그의 몸을 이리저리 만졌는데 그게 성추행이 아니면 뭘까?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들고 있던 녹음 펜을 경찰에게 건네주었다.“성추행, 명예훼손 그리고 모함까지 모조리 고소할 겁니다.”경찰은 녹음 펜을 건네받으며 입을 열었다.“일단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소송을 진행하실 생각이라면 변호사 선임하셔야 할 겁니다.”그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배하린을 쳐다보았다.“너도 알지. 내 변호사가 단이수라는 거.”단이수의 이름을 말한 건 그녀한테 발버둥 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확실히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법정에서 단이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안색이 어두워진 배하린은 이연석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경찰들에게 끌려갔다. 배하린을 처리한 뒤 그는 정가혜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핸드폰을 꺼내 고현서에게 전화를 걸어 공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다행히 고현서는 배하린이 아니었고 이연석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더니 그 입맞춤에 대해 설명했다. “미안해요, 정가혜 씨. 이 대표님한테 뽀뽀를 한 건 그저 작별 인사 같은 것이었어요. 다른 뜻은 없었으니 오해하지
이승하는 무심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회사 안으로 들어가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좋은 소식? 관심 없어.”성격이 차가운 형의 모습에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빠르게 형의 뒤를 따라갔다.“형, 나 어제 뭐 하러 갔었는지 알아요?”싸늘한 기운을 뽐내고 있는 남자가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몰라. 근데 너 가혜 씨 때문에 너무 회사 일을 나 몰라라 하는 거 아니야?”그동안 많이 바쁜 탓에 거의 회사에 나오지 않았었다. “이제부터 그런 일 없어요. 회사에 꼬박꼬박 나올게요.”그가 다짐을 하고는 다시 이승하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왜 그런 줄 알아요?”호들갑을 떠는 그를 보며 이승하가 차갑게 물었다.“가혜 씨랑 화해라도 한 거야?”그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화해뿐만이 아니에요. 앞으로 가혜 씨가 날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좋은 소식이 뭔지 이미 짐작한 이승하는 한마디 더 물었다.“결혼도 안 한 사이인데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거 아니야?”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어제 우리 혼인신고 했어요. 어때요? 깜짝 놀랐죠?”이 엄청난 소식에도 이승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 모습에 이연석은 어리둥절해졌다. “형, 이상하지 않아요?”“응. 이상해.”“그렇죠?”형이 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표정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 이승하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그런데 가혜 씨는 무슨 생각으로 너랑 혼인신고까지 한 거야?”...“혹시 네가 강제로 끌고 갔어?”...정곡을 찌르는 이승하의 말에 그가 눈을 흘겼다.“강요한 적 없어요. 우리 와이프가 보는 눈이 있어서 나랑 결혼한 거니까.”발걸음은 멈춘 이승하가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았다. 별다른 표정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형, 눈빛이 왜 그래요? 지금 나 무시하는 거예요?”이승하는 말없이 시선을 거둬들이며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고 무시당한 이연석은 재빨리 그의 뒤를 따라갔다.
마침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이승하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서 있던 이연석은 엘리베이터 밖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개명은 절대 안 돼.”이렇게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고 개명을 하지 말라니?후회가 되었다. 진작 이럴 줄 알았더라면 말조차 꺼내지 않았을 텐데.집에 가서 정가혜한테 매를 맞을까 봐 두려웠던 이연석은 미친 듯이 이승하의 뒤를 쫓아갔다.“형, 이건 너무 하잖아요. 제발 다른 이름으로 바꿔줘요.”이승하는 대답은커녕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갔다.망했다. 아이의 이름을 정말 이철수, 이철희로 지어야 하는 걸까?...한편, 이승하는 형제들을 회사로 불러 중대한 결정을 발표했다. 그는 이미 모든 주식을 회수하였고 그들의 몫에 따라 다시 주식을 분배했다.그중 30%는 이연석에게 넘어갔고 나머지 4명의 형제들에게는 각각 10%씩 그리고 서유에게 30%의 지분이 넘어갔다. 이태석과 곧 퇴직을 앞둔 삼촌들과 고모들에게는 주식 매매 선택권만 주었다. 이렇게 분배한 건 현재 JS 그룹은 더 이상 이승하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형제들이 다 같이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형, 왜 지분을 전부 우리한테 나눠줘요?”아이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이연석은 스크린에 뜬 주식 배분 내용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승하를 쳐다보았다.둘째 형이 회사에서 물러날 생각인 건가?맨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 이승하는 펜을 천천히 돌리며 입을 열었다.“다들 회사에 기여한 게 있으니까 당연히 그 몫을 챙겨줘야지.”“하지만 형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애썼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 많이 나눠줘요?”물론 나머지 형들이 그걸 따지지는 않겠지만 이연석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이제부터 경영 수업 시작할 거야. 네가 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이연석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럼 형은요?”이승하는 그들 앞에서 이
“형, 오늘 너무 이상한 거 알아요? 주식 분배는 뭐고 경영 수업은 또 뭐예요? 형수님 지켜달라는 말은 또 뭐고요?”어렸을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이연석은 다른 형제들과 달리 늘 제멋대로였다. 궁금한 걸 끝까지 알아내지 못하면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승하는 테이블을 지나쳐 의자에 앉더니 고개를 들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연석을 쳐다보았다. “한 달 뒤 갈 데가 있어. 아마 당분간은 연락이 안 될 것 같아. 일단은 이렇게 나눠주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 그리고 너한테 내 자리를 맡기려고 한 건...”그가 하던 말을 멈추고는 짙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원래는 아직 두 달이라는 시간이 남았지만 오늘 아침 갑자기 소식 하나를 듣게 되었다.그 때문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시간을 앞당기게 되었다.그가 고개를 들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너랑 네 형수가 모두 30%씩 지분을 가지고는 있지만 네 형수는 회사 일에 참여하지 않을 거야. 그래서 너한테 권력을 넘겨주는 거고. 두 사람이 손을 잡고 다른 형들이 도와주면 네가 형수를 도와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견제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거다.”그가 떠난 뒤, 이태석과 이씨 가문의 사람들은 분명 주식 분배의 일로 서유를 난처하게 할 것이다. 서유가 평생 먹고살기에 걱정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식 배당금뿐만 아니라 그녀 앞의 모든 장애물을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를 믿고 충성을 다 바치는 동생들만이 서유를 지켜줄 수 있었고 특히 어릴 때부터 그를 많이 따랐던 이연석이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형은 어디 가는 데요?”그의 뜻을 알아차린 이연석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혹시 또 NASA로 가는 거예요?”매번 이승하가 NASA에 갈 때마다 핸드폰을 제출하는 바람에 그들과 연락이 끊기곤 했었다.“아니야.”이연석의 말을 끊어버리고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가기 전에 말해줄게.”그가 당부해야 할 것들은 훨씬 더 많았다. 멍해 있던 이연석이 다시 물으려 하
독특한 발자국 소리에 소파에 누워있던 심이준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저기... 나 머리가 어지러워서 그러는데 이만 돌아갈게요.”자기편을 들어줄 사람이 나타나자 서유는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오늘 설계도 완성 못 하면 우리 집에서 자겠다고 하지 않았어요?”심이준은 연신 손을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멀쩡한 내 집 놔두고 내가 왜 여기서 자요? 내일 다시 올게요. 그럼 이만.”일어나자마자 이승하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더니 이내 가볍게 눌러 그를 제자리로 돌려 놓았다. “누구의 다리를 부러뜨리려고 한 겁니까?”무표정한 얼굴의 이승하를 쳐다보던 그는 이내 얼굴이 굳어지더니 애써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제 다리죠.”이승하의 차가운 눈동자에 장난기가 가득 차 있었다.“아까 내 다리를 부러뜨리겠다고 한 거 아니었어요?”심이준은 빙그레 웃었다.“실수예요. 말실수.”누가 감히 이승하의 다리를 부러뜨리겠는가? 죽고 싶어 환장한 것도 아니고. 이연석과 마찬가지로 처세에 능한 심이준은 이내 물티슈를 가져와 이승하에게 건네주었다.“손 닦으세요. 절 만졌으니 찝찝하실 것 같은데.”심이준의 이런 모습을 처음 본 서유는 턱을 괴고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이승하는 눈앞의 의미심장한 얼굴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물티슈를 건네받아 손을 닦고 나서야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다시 한번 뒤에서 내 흉을 보면 당신 다리를 부러뜨릴 겁니다.”그 말을 듣고 심이준은 어리둥절해하며 이승하에게 물었다.“저 다리가 세 개인데 어느 것을 부러뜨릴 건가요?”이승하가 눈을 내리깔고 그의 하반신을 쓸어내렸다.그의 눈빛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던 심이준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하반신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재빨리 중요 부위를 가렸다.“안 됩니다. 아직 장가도 안 간 총각이에요.”어이가 없었던 이승하는 손에 든 물티슈를 돌려주고 서유에게로 향했다. 그녀를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책상을 지나쳐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렸다.갑자기 몸이 뜬
그는 거칠게 몰아붙이다가도 다정하게 그녀를 배려했다.얼마 후, 그녀는 힘없이 침대에 축 늘어졌다.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가 숨을 쉴 틈도 주지 않고 미친 듯이 그녀를 탐했다. 한번 또 한 번의 절정이 반복되고 결국 그녀가 견딜 수 없을 때까지 몰아치고 나서야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예전에는 이렇게 다정한 남자가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하고 나서부터는 목욕까지 직접 시켜줬다.세심하게 머리를 감겨주는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마음이 따뜻해졌다.“아까 하려던 말이 뭐예요? “순간, 손을 멈칫하던 그가 잠시 고민하더니 한마디 내뱉었다.“연석이가 두 가지 소식을 가져왔는데 뭐부터 들을래?”그에 대한 일은 떠나기 전에 그녀한테 말해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미리 걱정시키는 게 싫었으니까. 그의 따뜻한 손길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아무거나 좋아요.”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하던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가혜 씨랑 화해했대. 그리고 두 사람 혼인신고까지 마쳤대.”그 말에 깜짝 놀란 서유가 눈을 번쩍 떴다.“가혜랑 도련님이 혼인신고를 했다고요? 언제요?”이 중요한 소식을 정가혜는 그녀한테 알리지 않았다. 절친이 맞긴 한 건지?흥분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어제.”어제 방금 혼인신고를 마쳤으니 미처 알리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전화해 봐야겠어요.”그가 손을 뻗어 그녀를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아직 하나 더 남았어.”그제야 그녀는 욕조에 누워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10개월 후면 연석이가 아빠가 된대.”미처 반응하지 못한 서유는 눈을 두 번 깜박였다.“도련님이 아빠가 되는 데 왜 가혜랑 혼인신고를 해요?”말을 하던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가혜 임신한 거예요?”입가에 웃음을 머금고 있던 그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이 든 그녀는 숨을 크게
한편, 정가혜는 이 소식을 문자나 전화로 서유에게 알리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연석이 돌아오면 그에게 허락을 받고 서유를 만나러 갈 생각이다. 그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창밖에서 불빛이 비치더니 차 한 대가 정원 안으로 들어왔다.얼마 지나지 않아 훤칠하고 잘생긴 그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려왔다. 남편을 기다리는 게 처음이라 조금 어색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소파에서 일어나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가 외투를 벗고 넥타이를 풀어 하인에게 건네려는데 그녀가 손을 뻗었다.능숙한 모습이 마치 오래된 부부 사이 같았다. 둘째 형 때문에 우울했던 그는 다정한 그녀의 모습에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이런 일은 당신이 안 해도 돼요.”그는 그녀가 들고 있던 외투와 넥타이를 낚아채 옆에 있던 하인에게 던지고는 다시 그녀의 손을 잡고 다이닝룸으로 향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들을 보고 그녀가 자신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린 것 같아 마음이 따뜻해졌다.“앞으로 내가 늦게 들어오면 기다리지 말고 먼저 먹어요.”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굶고 있으면 안 되지. 사실 일부러 그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입맛이 별로 없어서였다. 그러나 감동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그녀는 솔직하게 얘기하지 못했다. 식탁에 앉은 뒤, 그녀는 갈비찜 하나를 집어 그의 그릇에 놓아주었다.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행동에 그는 무척 감동받았다.“당신이 있어서 참 좋다.”사실은 하인이 갈비찜을 만들다가 실수로 소금을 많이 넣은 것을 보고 맛이 어떤지 그한테 먼저 맛보라고 한 것이었다. 그걸 전혀 알지 못했던 이연석은 바보같이 기뻐하며 짭짤한 갈비를 뜯어 먹으면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짜긴 하지만 당신이 준 거니까 다 먹을게요.” 그 말을 듣고 그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떨구고 죽을 마셨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각자 샤워를 마친 뒤 잠옷을 입고 안방으로 돌아갔다. 불을 끄려는데 그가 막아서더니 서랍을 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