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혜는 마치 무언가를 결심한 듯 몸을 돌려 책상으로 걸어갔다. 서랍을 열어 필요한 서류들을 꺼내 이연석에게 건넸다.“한 번 더 당신을 믿겠어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또 실망하게 된다면 우리가 서명한 계약대로 곧바로 떠날 거예요.”이연석은 고개를 숙여 서류를 보고, 다시 단호한 표정의 정가혜를 바라보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류를 받아들고는 그녀의 손을 잡고 바로 구청으로 향했다.차가 구청 앞에 멈췄을 때, 이연석은 문을 열지 않고 그대로 앉아 앞을 응시했다.“왜요? 후회돼요?”정가혜는 그가 일시적인 충동으로 그랬다가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또 그를 잘못 믿었다고 생각하던 찰나, 그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진지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앞으로 당신의 믿음을 얻도록 하겠어요.”그가 여성들과 적절한 거리를 두지 않았기에 그녀가 오해한 것이었다.만약 그가 형처럼 불순한 의도를 가진 여자들을 단호하게 잘라낼 수 있었다면 정가혜는 이렇게 불안해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는 예전에 너무 자유분방하게 살아와서 이런 것들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지만 오늘부터는 정가혜에게 충분한 안정감을 줄 것이다.그가 안정감을 충분히 준다면 정가혜도 그를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믿었다.이것은 이연석이 약속한 이래 정가혜에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말이었고 불안하게 요동치던 그녀의 마음도 이 말에 서서히 가라앉았다.이연석은 정가혜를 이끌고 구청으로 갔다. 절차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서류 작성, 혼인 검진, 도장 찍기... 얼마 지나지 않아 혼인 증명서를 받아들었다...그걸 손에 쥐자 이연석의 눈이 점점 붉어졌다.과정이 아무리 힘들었어도 그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여자와 결혼했다.증명서를 받아든 채 멍하니 있는 이연석을 바라보며 정가혜도 눈을 내렸다.5년 동안 얽히고설켰던 관계, 정신을 차리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어리둥절한 채로 시집을 갔다.바로 직전까지 다투고 있었는데 다음 순간 증명서를 받았다니, 터무니없
이연석은 집사에게 주 침실 옆 옷방을 정가혜를 위해 비우라고 지시한 후 거실에 서 있는 정가혜의 어색한 모습을 보았다.그녀가 예전에 자신이 여기서 묵지 못하게 했던 일을 떠올리고 있다고 생각한 이연석은 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그녀 앞으로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이제부터 여기가 가혜 씨 집이니까 원하는 대로 해요.”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숙여 정가혜의 배를 바라보았다.“시간이 늦었어요. 쉬어야 해요.”임산부는 늦게까지 깨어 있으면 아이에게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이연석이 자신을 걱정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정가혜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다만, 샤워를 마치고 나면 이연석과 같은 방에서 자야 하는 건지 걱정이 되었다.전에 같이 자본 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어색했고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이런 불안한 마음을 안고 샤워를 마치고 머리를 말린 후 나오니 이연석이 이미 침대에 앉아 있었다.그는 비단 잠옷 차림으로 상체를 침대 머리에 기대고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은 채 긴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었다.그녀가 나오는 걸 보자 이연석은 타자를 치던 손을 멈추고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이리 와요.”정가혜는 말없이 다가가 이불을 들추고 침대 가장자리에 누웠다.아마도 이렇게 갑작스럽게 결혼한 게 어이없고 어색해서였을 것이다...그녀는 누운 후 창가 쪽을 향해 빠르게 옆으로 누워 그를 쳐다볼 용기조차 내지 못했다.이불 속에 웅크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연석은 저도 모르게 입 꼬리를 올렸다.그는 잠시 정가혜를 바라보다가 노트북을 치우고 불을 끄고 누웠다...정가혜는 각자 따로 잘 거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허리에 무게가 느껴지더니 큰 손이 얹혀졌다.이어서 등이 남자의 단단한 가슴에 닿았고 얇은 잠옷 사이로 전해지는 따뜻한 감촉에 정가혜의 피부가 화끈거렸다.더 큰일은 이연석의 턱이 그녀의 뒤통수에 닿았고 익숙한 향기가 귓가에서 천천히 밀려왔다는 것이다.그의 심장이 쿵쾅거렸고 정가혜도 마찬가지였다. 이불을 잡은 손도 어
이연석은 깊이 잠든 정가혜를 한참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뒤에서 그녀를 안았다.그는 자신이 얼마나 의지가 약한지 알고 있었다. 한 말은 지키지도 못했고, 금세 후회하곤 했다.하지만 그녀를 안는 순간 분노와 불안, 초조함으로 가득 찼던 그의 마음이 갑자기 안정되는 기분이 들었다.그는 자신이 정가혜를 더 사랑한다는 것을, 그래서 필연적으로 정가혜보다 더 많은 상처를 받게 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는 남자였다. 약간의 상처쯤은 괜찮았다. 평생 이렇게 그녀를 안고 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이연석은 정가혜를 꼭 안은 채 깊고 편안한 잠에 빠졌다. 꿈속에서도 세 식구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이 펼쳐졌다.정가혜는 느껴지는 압박감에 눈을 떴다. 이연석은 팔다리로 마치 큰 뱀처럼 그녀를 감고 있었는데 잠자는 자세가 좋지 않았다.그녀는 눈을 뜨고 몇 번 몸부림쳤지만 그가 풀어주지 않자, 참을성 있게 팔꿈치로 뒤에 있는 남자를 살짝 찔렀다.“시끄러워, 졸려...”쉰 목소리에 약간의 어린아이 같은 투로 말하는 소리에 정가혜는 천천히 팔을 내렸다. 그녀는 힘들게 몸을 돌려 눈을 감고 있는 이연석을 바라보았다.통유리창 밖의 햇살이 흰 커튼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와 그의 잘생긴 얼굴에 비치니 더욱 멋져 보였다.정가혜는 이런 이연석을 한참 바라보다가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톡톡 쳤다.“이연석 씨, 이러다 배 속의 아이까지 눌러 없어질 거예요.”뺨을 맞고 깬 이연석은 그녀의 손을 붙잡아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그는 턱을 그녀의 정수리에 얹고 목이 쉰 목소리로 말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요. 우리 아이는 반드시 건강하게 태어날 거니까.”이 말은 마치 따뜻한 온천수처럼 정가혜의 마음속으로 살며시 흘러들어 그녀를 따뜻하게 만들었다...이연석도 늦잠을 자는 타입은 아니었다. 정가혜를 잠시 안고 있다가 점차 정신을 차렸다.그는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정가혜를 바라보았다. 전에도 그녀와 함께 눈을 뜬 적이 많았지만 지금처럼 기쁜 적은 없었다.“여보.”애정
정가혜가 휴대폰을 꺼내 서유에게 자신이 귀국했다고 알리려는 순간, 문 밖에서 자동차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고 통유리창 너머로 이연석이 조수석 문을 열고 배하린을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았다.이연석이 배하린을 집으로 데려오는 것을 본 정가혜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침의 달콤했던 순간들이 순식간에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마음이 조금씩 피를 흘리는 것을 느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그 자리에 멍하니 앉아 들어오는 두 사람을 바라볼 뿐이었다.이연석은 배하린의 손을 거칠게 놓아주고는 그녀를 정가혜 앞으로 밀쳤다. 정가혜는 어리둥절한 채로 턱을 들어 냉정한 표정의 이연석을 바라보았다. 그는 정가혜와 눈이 마주치자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시선을 돌려 차갑게 배하린을 노려보았다.“테이블 위에 눌러!”뒤따라 들어온 경호원들이 즉시 앞으로 나섰다. 좌우에서 배하린의 어깨를 잡고 그녀를 유리 테이블 위에 눌렀다. 배하린을 제압한 후 이연석은 그녀 앞에 천천히 몸을 숙였다.“내 아내 앞에서 분명히 말해. 우리가 잔 적 있어?”정가혜는 이 일이 혼인 계약서에 서명하면서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이연석에게는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는 일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안정감을 주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정가혜의 마음속 의혹이 점차 사라졌다. 그의 행동이 이미 그의 결백을 보여주고 있었기에 그녀는 더 이상 개의치 않게 된 것일까?테이블에 얼굴을 강제로 눌린 배하린은 정가혜 쪽을 볼 수 없었고 오직 이연석만 볼 수 있었다. 그의 무정한 모습에 그녀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이연석, 겁쟁이 자식! 해놓고 책임지지 못하겠어?”“내가 겁쟁이라고?” 이연석이 되물은 후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좋아.”그는 휴대폰을 꺼내 배하린 앞에서 바로 112에 전화를 걸어 배하린을 무고와 모함 죄로 신고했다. 신고를 마친 이연석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배하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경찰이 오기 전에 진실을 말하는
이연석이 이 일의 진실까지 알게 될 줄은 몰랐다. 이제는 마지막 남은 카드까지 없어진 셈이다. 배하린은 갑자기 몸에 힘이 빠졌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그녀는 이내 등을 곧게 펴고 그의 바짓가랑이를 잡으려고 발버둥 쳤지만 뒤에 있는 경호원들이 그녀를 막아섰다.그녀는 기를 쓰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면 안 돼? 내가 널 많이 사랑하는 거 너도 알잖아.”그 말에 그는 눈을 흘겼다. “날 사랑한다고? 네가 사랑하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집안 배경이겠지. 날 이용해서 재벌 집 사모님이 되려고 했던 거잖아.”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고 오직 자신의 욕심을 이룰 수단으로만 생각했었다. 모든 속셈을 그에게 들켰지만 배하린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뻗어 정가혜를 가리켰다. “그럼 저 여자는? 널 믿지도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널 사랑할 수 있겠어?”그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정가혜는 그를 쳐다보았다. 억울한 눈빛을 하고 있는 그를 보며 그녀는 왠지 모르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당연히 날 사랑하지. 사랑하기 때문에 날 믿을 용기가 없었던 거야. 이 여자 하나만 바라보겠다고 다짐해 놓고는 다른 여자들과 거리를 두지 않았었어. 그래서 날 믿지 못했던 거고.”그가 애틋한 눈빛으로 안절부절못하는 정가혜를 쳐다보았다.“이제부터는 평생 이 여자 하나만 바라보고 살 거야.”바람둥이인 그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배하린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이연석, 너...”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배하린, 솔직하게 다 털어놔. 그럼 양민혁이랑 결혼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 않으면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야. 아무것도 못 건지고 물러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양민혁은 이연석의 친구였고 배하린이 꼬리를 치는 바람에 결국 두 사람은 몸을 섞는 사이가 되었다. 누구도 이 일을 알지 못
이연석의 말이 끝나자마자 밖에서 사이렌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창밖을 내다보니 마침 경비원이 문을 열고 경찰들을 별장 안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그가 경호원에게 눈빛을 보내자 배하린을 붙잡고 있던 경호원이 바로 그녀를 풀어주었다. 이연석의 계략에 빠진 그녀는 여전히 멍해 있었고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경찰들이 다가와 그녀를 붙잡았다. 이런 결과가 있을 줄 몰랐던 배하린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거짓말을 한번 한 것 가지고 왜 날 잡아가는 거예요?”“이연석 씨가 당신을 성추행범으로 신고했습니다. 경찰서로 가서 조사에 협조해 주시죠.”명예훼손죄로 고소를 한 줄 알았는데 성추행이라니. 그 순간 그녀는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난 널 건드린 적이 없어.”이연석은 피식 웃었다. 그가 술에 취한 틈을 타서 그의 몸을 이리저리 만졌는데 그게 성추행이 아니면 뭘까?그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들고 있던 녹음 펜을 경찰에게 건네주었다.“성추행, 명예훼손 그리고 모함까지 모조리 고소할 겁니다.”경찰은 녹음 펜을 건네받으며 입을 열었다.“일단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해 보겠습니다. 소송을 진행하실 생각이라면 변호사 선임하셔야 할 겁니다.”그는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는 배하린을 쳐다보았다.“너도 알지. 내 변호사가 단이수라는 거.”단이수의 이름을 말한 건 그녀한테 발버둥 치는 건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걸 확실히 알려주고 싶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법정에서 단이수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안색이 어두워진 배하린은 이연석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경찰들에게 끌려갔다. 배하린을 처리한 뒤 그는 정가혜가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핸드폰을 꺼내 고현서에게 전화를 걸어 공항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다행히 고현서는 배하린이 아니었고 이연석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더니 그 입맞춤에 대해 설명했다. “미안해요, 정가혜 씨. 이 대표님한테 뽀뽀를 한 건 그저 작별 인사 같은 것이었어요. 다른 뜻은 없었으니 오해하지
이승하는 무심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고는 회사 안으로 들어가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좋은 소식? 관심 없어.”성격이 차가운 형의 모습에 이미 습관이 되어버린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빠르게 형의 뒤를 따라갔다.“형, 나 어제 뭐 하러 갔었는지 알아요?”싸늘한 기운을 뽐내고 있는 남자가 계단을 오르며 말했다.“몰라. 근데 너 가혜 씨 때문에 너무 회사 일을 나 몰라라 하는 거 아니야?”그동안 많이 바쁜 탓에 거의 회사에 나오지 않았었다. “이제부터 그런 일 없어요. 회사에 꼬박꼬박 나올게요.”그가 다짐을 하고는 다시 이승하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왜 그런 줄 알아요?”호들갑을 떠는 그를 보며 이승하가 차갑게 물었다.“가혜 씨랑 화해라도 한 거야?”그가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화해뿐만이 아니에요. 앞으로 가혜 씨가 날 떠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좋은 소식이 뭔지 이미 짐작한 이승하는 한마디 더 물었다.“결혼도 안 한 사이인데 충분히 도망갈 수 있는 거 아니야?”그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올랐다.“어제 우리 혼인신고 했어요. 어때요? 깜짝 놀랐죠?”이 엄청난 소식에도 이승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 모습에 이연석은 어리둥절해졌다. “형, 이상하지 않아요?”“응. 이상해.”“그렇죠?”형이 늘 차가운 얼굴을 하고 있어서 표정 변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때, 이승하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그런데 가혜 씨는 무슨 생각으로 너랑 혼인신고까지 한 거야?”...“혹시 네가 강제로 끌고 갔어?”...정곡을 찌르는 이승하의 말에 그가 눈을 흘겼다.“강요한 적 없어요. 우리 와이프가 보는 눈이 있어서 나랑 결혼한 거니까.”발걸음은 멈춘 이승하가 위아래로 그를 훑어보았다. 별다른 표정이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자존심이 상했다. “형, 눈빛이 왜 그래요? 지금 나 무시하는 거예요?”이승하는 말없이 시선을 거둬들이며 엘리베이터로 발걸음을 옮겼고 무시당한 이연석은 재빨리 그의 뒤를 따라갔다.
마침 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이승하는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멍하니 서 있던 이연석은 엘리베이터 밖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개명은 절대 안 돼.”이렇게 촌스러운 이름을 지어주고 개명을 하지 말라니?후회가 되었다. 진작 이럴 줄 알았더라면 말조차 꺼내지 않았을 텐데.집에 가서 정가혜한테 매를 맞을까 봐 두려웠던 이연석은 미친 듯이 이승하의 뒤를 쫓아갔다.“형, 이건 너무 하잖아요. 제발 다른 이름으로 바꿔줘요.”이승하는 대답은커녕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사무실로 들어갔다.망했다. 아이의 이름을 정말 이철수, 이철희로 지어야 하는 걸까?...한편, 이승하는 형제들을 회사로 불러 중대한 결정을 발표했다. 그는 이미 모든 주식을 회수하였고 그들의 몫에 따라 다시 주식을 분배했다.그중 30%는 이연석에게 넘어갔고 나머지 4명의 형제들에게는 각각 10%씩 그리고 서유에게 30%의 지분이 넘어갔다. 이태석과 곧 퇴직을 앞둔 삼촌들과 고모들에게는 주식 매매 선택권만 주었다. 이렇게 분배한 건 현재 JS 그룹은 더 이상 이승하 한 사람의 소유가 아니라 형제들이 다 같이 소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형, 왜 지분을 전부 우리한테 나눠줘요?”아이의 이름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이연석은 스크린에 뜬 주식 배분 내용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다른 형제들도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승하를 쳐다보았다.둘째 형이 회사에서 물러날 생각인 건가?맨 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는 이승하는 펜을 천천히 돌리며 입을 열었다.“다들 회사에 기여한 게 있으니까 당연히 그 몫을 챙겨줘야지.”“하지만 형들이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애썼는데 왜 나한테 이렇게 많이 나눠줘요?”물론 나머지 형들이 그걸 따지지는 않겠지만 이연석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이제부터 경영 수업 시작할 거야. 네가 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도록.”이연석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럼 형은요?”이승하는 그들 앞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