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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1화

작가: 알라리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4-09-30 17:30:45
이승하는 서유의 말을 듣고 서유는 정가혜의 말을 듣는다. 그가 정가혜를 설득하면 모든 발언권을 얻는 셈이니 두려울 게 없었다.

이런 논리로 생각을 정리한 이연석은 용기를 내어 전화를 끊고 몸을 돌렸다.

이연석이 돌아서는 순간 민첩한 이승하가 재빨리 차 문을 열었다.

침실 문이 열리는 찰나, 서유가 고개를 돌렸다. 누가 나오는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커다란 손이 그녀의 눈을 가렸고 이어서 귓가에 차갑고 멋진 목소리가 들렸다.

“보지 마. 눈이 멀 수도 있거든.”

“...”

눈이 가려진 서유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옷을 제대로 입지 않은 이연석을 보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한 번 보고 눈이 멀 정도라면 가혜는...’

갑자기 뛰쳐나온 이연석을 본 정가혜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물들었다.

그녀는 이연석을 방으로 밀어넣으며 투덜거렸다.

“안에 있으라고 했잖아요, 왜 나왔어요?”

이연석은 미간을 찌푸렸다.

“내가 뭐 눈을 오염시키는 물건도 아니고, 왜 나오면 안 돼요? 게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힘을 꽉 준 정가혜에게 세게 밀려 방으로 들어갔다.

그를 가두고 문고리를 잡은 정가혜는 돌아서서 서유와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정말이에요!”

이승하는 무표정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온몸이 오싹해진 정가혜는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서유야, 응접실에서 좀 앉아 있을래?”

서유는 이 말을 듣자마자 이승하의 손바닥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래.”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한 말이었는데, 서유가 대답할 줄은 몰랐다.

어쩔 수 없이 정가혜는 얼굴을 가리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따라와...”

도망치듯 내려가는 정가혜의 뒷모습을 보며 서유는 ‘푸핫’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여보, 난 가혜랑 잠깐 얘기하고 갈게요. 당신은 차에서 기다려요...”

이승하의 차갑고 담담한 눈동자가 침실 문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당신은 가봐. 난 여기서 연석이가 나오길 기다릴 거야.”

문 안에서 몰래 엿듣고 있던 이연석은 이 섬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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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가혜는 코니세그가 떠나는 모습을 지켜본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안에 있던 이연석은 마치 모델처럼 통유리창 앞에 서서 꼼짝도 않고 아래층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떠나는 차를 바라보고 있었다...정가혜는 그 모습을 보고 가볍게 기침을 했다. “이미 갔어요. 연석 씨는 언제 갈 거예요?”승리를 거둔 것처럼 눈부시게 웃고 있던 이연석은 목소리를 듣자마자 황급히 웃음을 거두고 정가혜를 향해 돌아섰다.그녀가 옷을 단정히 차려입은 것을 보고 살짝 눈을 찡그렸다. “입을 옷이 없는데, 하룻밤 더 묵게 해주면 안 돼요?”눈빛에 어떤 감정이 서려 있는지 명확하진 않았지만 정가혜는 그의 말 속 의도를 알아차렸다.그녀는 못 본 척하고 돌아서서 침실 옷장을 열고 남성용 옷 한 벌을 꺼내 이연석에게 건넸다.그녀 방에 다른 남자의 옷이 있는 것을 본 이연석은 얼굴색이 어두워졌지만 지금 자신에게 따질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어 이를 악물고 거절했다.“조금 있다 비서에게 옷을 가져오라고 할게요.”다른 말로 하면, 다른 남자의 옷은 입지 않겠다는 뜻이었다.정가혜는 그를 흘깃 보고는 셔츠를 펼쳐 칼라를 들추고는 이연석의 눈앞에 들이밀었다.브랜드를 보자 이연석은 속으로 기뻐하며 재빨리 손을 뻗어 받았다. “내 옷을 아직도 갖고 있었어요?”정가혜가 이연석에게 모든 걸 돌려준 날 뭐에 홀렸는지 옷 한 벌을 남겼다. 아마도 기념품으로 남기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다. 그녀는 이연석의 옷을 몰래 간직했다는 사실은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아주머니가 포장하는 걸 깜빡하셔서 한 벌만 남았어요.”이연석은 정가혜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녀가 피하지 않자 그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그는 그저 손을 뻗어 옷과 함께 그녀를 품에 안았다.두어 번 몸부림쳤지만 이연석의 힘이 너무 세서 빠져나올 수 없었던 정가혜는 그가 몸을 숙이고 자신의 귓가에 다가오는 것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가혜 씨가 날 잊지 못해서 남긴 옷이라고 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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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나희와 이진철은 이미 이연석의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봤기에,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도 특별히 놀라지 않았다. 이지민과의 사이가 틀어졌을지 모르지만 이연석은 그렇지 않았다. 설령 그랬다 해도 결혼 문제는 부모님께 말씀드려야 할 일이었다.이연석이 돌아왔지만 먼저 입을 열지 않자 이진철 부부도 모르는 척하며 하인들에게 저녁 식사와 차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거실에서 잠시 안부를 나누다 식탁으로 자리를 옮기자 이연석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버지, 어머니, 저 결혼하려고 해요. 준비를 도와주시겠어요?”이연석은 이승하와 달리 부모님이 계셨기에 이런 일은 반드시 부모님이 주관하셔야 했다. 최소한 신부 집에 청혼하러 갈 때는 부부가 직접 가야 했다. 이는 정가혜에 대한 존중의 표시였다. 그는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렇게 말하러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이진철 부부는 서로 눈빛을 교환하더니 결국 유나희가 입을 열었다. “누구와 결혼한다는 거니?”사실 그들은 속으로 잘 알고 있었다. 이연석은 몇 년 전 자기보다 세 살 연상인 여자 친구와 꽤 오래, 약 3년 정도 사귀었다가 헤어진 후에도 계속 얽혀 있었다. 저번에 한밤중에 술에 취해 육성재의 차를 들이받은 것도 그 여자 때문이었고, 나중에는 그 여자의 남자친구 때문에 화가 나서 응급실에 실려 가기까지 했다...이런 일들에 대해 이진철 부부가 묻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모든 걸 알고 있었기에 아들의 이번 결혼이 마음이 들지 않았다.하지만 이지민의 일을 교훈 삼아,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한때 연인 사이를 갈라놓았던 유나희는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미소를 지었다. 이연석은 유나희를 힐끗 보고는 어머니의 거짓 웃음을 단번에 알아챘다. “이름은 정가혜라고 해요. 제가 이번 생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반드시 결혼해야 할 사람입니다.”그는 말을 마치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부모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가혜 씨에 대해서는 이미 조사해 보셨겠죠? 그러니 이것저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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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석은 눈썹을 찌푸리며 뒤돌아보았다. “만약 두 분이 지민이에게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전 평온한 마음으로 앉아서 두 분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 그때 지민이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 말이에요!”그는 여전히 이지민을 위해 분개하고 있었다. 단이수가 이지민을 그토록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부모 때문에 그들은 강제로 헤어져야 했다. 만약 정가혜에게 가장 완벽한 결혼식을 해주고 싶지 않았다면 이 집에는 아마 영원히 돌아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이진철은 그의 말에 화가 나서 탁자를 내리쳤다. “지민이 일은 이미 지나갔는데 왜 아직도 붙잡고 있어. 이제 와서 우리를 훈계하다니, 다 컸다고 부모를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이연석은 이진철과 다투기 싫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어쨌든 할 말은 다 했으니 두 분이 알아서 하세요...”그들이 정말로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냥 둘째 형에게 증인이 되어달라고 할 것이다. 어차피 이씨 가문은 그의 부모가 좌지우지하는 곳이 아니니까...“그리고 전처럼 몰래 가혜 씨를 찾아가지 마세요. 만약 두 분이 가혜 씨를 찾아갔다는 걸 알게 되면 제가 이 집을 박살 내버릴지도 몰라요!”이연석은 이 말을 던지고는 이진철 부부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외투를 집어 들고 어깨에 걸친 뒤 돌아서서 나갔다...그 건방진 뒷모습을 보며 이진철은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졌다. “봐, 당신이 키운 좋은 아들을! 자기 아버지조차 안중에 없어...”유나희는 화가 나서 손에든 젓가락을 던져버렸다. “집사, 가서 정가혜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정말 하늘이 무서운 줄 모르고 있었다. 감히 부모를 협박하다니, 유나희는 몰래 정가혜를 찾아간 후 이연석이 어떻게 이 집을 박살 낼 수 있을지 보고 싶었다!집사는 ‘네’라고 대답하고 일을 하러 내려갔다. 곧 정가혜의 전화번호를 알아내어 두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유나희 앞으로 가져왔다.그녀가 휴대폰을 받아 전화를 걸려고 할 때, 이진철이 손을 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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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산에서 쓰러진 나무들은 이 세상과 저세상을 가로지른 썩은 나무와 같았다. 넘어가려고 하다가 발길을 멈추고 나무 위에 천천히 주저앉았다. 뒤따라오던 하준이는 이승하의 모습을 보고 우산을 쓰고 걸음을 옮겼다.우산의 가장자리로 내려앉은 흰 눈, 긴 속눈썹을 살짝 떨던 그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손을 내밀어 옆에 있는 나무를 툭툭 두드렸다.“앉거라.”하준이는 그가 눈 맞을까 봐 우산을 거두지 않은 채로 자리에 앉았다. 팔꿈치를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우산을 이승하의 옆으로 기울였다. 오늘의 아버지는 예전과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검은 코트에 흰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그는 옷차림은 예전 모습 그대로였지만 애써 가꾼 얼굴에는 어느덧 이별이 은은히 배어 있었다. “아버지.” 하준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두 부자간에 할 말은 이미 다 한 것 같아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얇은 정장 차림의 이하준을 쳐다보았다. 코트를 벗어 자연스럽게 아이의 몸을 감쌌다. 아이가 다시 코트를 벗어 다시 돌려주려 하자 그가 아이의 손을 꽉 잡았다. “이제 내가 널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다.”점점 멀어져 가는 아버지의 존재. 하준이는 지금의 마음을 무슨 말로 형용할지 몰랐다. 아버지의 여온이 깃든 옷을 꽉 쥔 채 아이처럼 그의 따뜻한 품을 말없이 느꼈다. 우산 가장자리를 따라 끝없이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얼마 후, 무거운 이하준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아버지, 절 위해 할 수 있는 아직 많아요. 그러니까 절 믿으세요. 제가 반드시 그 칩을 꺼낼 겁니다.”검은 정장 차림에 우아한 자태를 뽐내던 그가 한 손으로 무릎을 짚고는 우산을 따라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3년을 연구했으니... 네가 이 칩을 꺼낼 수 있을 거라고 난 믿는다.”하준이가 깜짝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제가 의학 공부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9화

    이하준의 성인식 당일, 눈이 펑펑 내렸다. 예전에 오랫동안 혼수상태에 빠져있던 그녀가 깨어나던 날처럼 눈이 펑펑 내렸었다. 창밖의 광경을 바라보며 그녀는 계단을 내려가는 것을 깜빡하고 멍하니 창가에 서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드레스룸에서 나온 이승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창가 앞에 서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옆으로 다가갔다. 뼛속 깊이 새겨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마치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햇살 아래, 아름다운 그녀가 긴 머리카락이 휘날리며 그를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낙인처럼 그의 마음속에 새겨졌다. 이번 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고 잊을까 봐 두려운 것이 바로 그녀의 뒷모습이었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의 인생은 고작 50년도 채 되지 않았고 하늘은 이 모든 것을 빼앗아 가려고 한다. 자신에게 불공평하다고 원망하지 않는다. 다만 서유를 떠나는 게 가슴이 찢어질 뿐이다. 이 몸은 결국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고 그녀에 대한 깊은 사랑과 미련은 그가 떠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다. 씁쓸한 미소를 짓던 그가 다시 힘겹게 몸을 이끌고 드레스룸으로 향하더니 퍼 코트를 챙겨와 서유의 몸을 감싸주었다. 자신을 감싸안은 손길에 흠칫하던 그녀는 이내 눈을 내리깔고 허리를 감싸고 있는 손을 바라보며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그 위에 덮었다. “손이 많이 차가워요.”“날씨가 추워지니까 그런 거야.”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 채 고개를 돌려 자신을 안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까만 눈동자 속에 여전히 잘생긴 그의 얼굴이 비춰지자 그녀는 순간 울컥했다.“당신한테 아직 하지 못한 얘기가 너무 많은데. 조금만... 더 조금만 늦게 떠나면 안 돼요?”그 말에 흠칫하던 그가 천천히 그녀의 허리에서 손을 떼고는 그녀의 콧등을 살짝 어루만졌다. “바보. 내가 가긴 어딜 가겠어? 당신 옆에 꼭 붙어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그의 손을 잡은 채 발끝을 세우고 고개를 들어 남자의 차가운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승하 씨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8화

    그가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연석도 알고 있었다. 그가 오기 전, 이연석은 로봇 앞에 서서 끊임없이 로봇 기능을 체크하고 있었다. 유리창 안, 이연석이 코드를 빠르게 두드리자 그 옆에 있던 로봇이 실제 사람처럼 말을 하였고 그 모습에 이승하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연석아...”그의 목소리에 이연석은 행동을 멈추고 옆으로 몸을 돌려 둘째 형을 쳐다보았다.최근 몇 년 동안, 로봇을 개발하기 위해 이승하는 고통을 무릅쓰고 밤낮으로 바삐 돌아쳤다. 둘째 형이 안쓰러웠던 이연석은 그를 돕기로 결심했다. 둘째 형보다 능력은 훨씬 떨어지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결국 마지막 단계를 완성하게 되었다. “형, 언제쯤 형수한테 보여줄 거예요?”그가 자신을 부축하려는 이연석의 손을 밀치고는 허리를 곧게 펴고 로봇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손을 뻗어 머리 뒤의 스위치를 누르자 로봇이 그와 똑같은 말투로 입을 열었고 그 모습에 그가 또다시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게 있으면 내가 떠난 후에도 서유가 외롭지는 않겠지...”이승하가 연구 개발한 칩은 미리 앞으로의 10년, 20년 동안의 말을 모두 녹음해 둔 칩이었다. 서유가 그의 말을 끝까지 다 듣고 싶다면 계속 살아가야 했다. 그가 이렇게까지 한 건 바보 같은 여자가 자신을 따라 죽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라도 그녀가 계속 살기를 바랐고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죽기 전에 로봇이 완벽하게 제작된 걸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그녀와 함께할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었다. 서유를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는 안색이 점차 굳어졌다. “내가 떠나면 그때 이 로봇을 서유한테 보여줘. 그리고 하준이를 도와 회사를 꼭 지키거라.”둘째 형의 마지막 당부에 이연석은 눈시울이 붉어졌다.“형, 정말 방법이 없는 거예요?”그동안 유명한 의사를 수없이 많이 찾아다녔고 머리를 바꾸는 수술까지도 생각해 봤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7화

    어두컴컴한 방안, 이하준은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어떻게 그 엄청난 고통을 무릅쓰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며 지금껏 그의 곁에 있었던 것인지 그는 알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 철이 없었던 그는 아빠를 무시한 적도 많았다. 어린 시절 자신이 한 못된 짓을 생각하며 그는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한 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던 소년은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쏟았고 마치 버림받은 아이처럼 온몸이 떨릴 정도로 이불 속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예전에는 죽음의 의미에 대해 잘 몰랐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죽음이 닥쳐오니 자신이 얼마나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는 밤새 의학 서적을 뒤적거리며 칩을 꺼내는 방법을 찾아보았다. 하룻밤 사이에 그는 머리 수술에 관한 모든 서책을 다 뒤져보았다. 윤주원과 조지 그리고 알고 있는 유명한 의사들에게 다 전화를 해보았지만 결론은 모두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칩을 꺼내는 동시에 그 안의 바이러스가 폭발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는 말에 이하준은 밤새 넋을 잃은 채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달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어두컴컴한 방 안, 앞길을 밝혀 주는 등불조차 없이 깜깜하기만 했다. 밤새 한숨도 못 잔 이하준은 다음날 한결같이 다정한 부모님의 모습에 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두 분이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던 건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인 건가요? 그래서 더 서로를 소중히 여긴 거 아닌가요?”서유도 이하준처럼 마음이 아팠지만 세월이 많이 흐르고 나니 예전보다는 침착할 수 있었다.“시간이 많든 적든 부부는 서로를 아껴야 더 오래갈 수 있는 거야.”식탁에 앉은 이하준은 굳어진 입꼬리를 살짝 올릴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였다. 고개를 돌려 겉으로는 죽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맞은편의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아빠, 저 의학 공부하고 싶습니다.”의학을 배우고 싶었다. 그의 능력이라면 분명 칩을 꺼낼 때 필요한 강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6화

    이제 막 열여덟 살이 된 제시카는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러나 그가 걸음을 옮길 때까지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이를 악물고 애써 참았다. 이하준, 이번 생에 절대 내 손안에 떨어지지 마. 평생 후회하게 만들어줄 거니까. 그러나 아직까지 감정이라는 게 뭔지 몰랐던 이하준은 그녀의 복수심을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잠시 후, 연이를 업고 계단을 내려오면서 하준이는 연이가 뚱뚱하다고 투덜댔고 화가 난 연이는 그의 머리카락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렇게 두 남매는 웨딩카에 올라타는 그 순간까지도 옥신각신 다투었다. 두 사람을 지켜보며 고개를 가볍게 흔들던 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잡고 웨딩카의 뒤를 따라 결혼식장으로 향했다. 아빠가 없는 연이에게 오늘 이승하는 아빠 노릇을 해주기로 했다. 연이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가 그녀의 손을 신랑에게 맡겼다.입장하기 전, 문밖에 서 있던 연이가 곱게 화장한 얼굴을 치켜들고는 그를 쳐다보았다.“이모부, 제가 어렸을 때부터 이모부한테 손도 못 대게 하시더니. 오늘은 어쩔 수 없죠?”검은 정장 차림의 그가 담담한 얼굴로 하이힐을 신고 있는 연이를 내려다보았다.“오늘만이야. 다음은 없어.”연이가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다.“어쩜 이리 하준이랑 똑같아요? 이렇게 좋은 날 꼭 그런 말을 해야겠어요?”한참을 고민하던 그가 덕담 한마디 내뱉었다.“우주랑 평생 행복하길 바란다. 이번 생에 이리 네 손 잡고 입장하는 건 한 번으로 족해...”연이는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연이의 손을 잡고 입장하여 그녀의 손을 심우주에게 건네주었다. 그러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조카한테 경고했다.“내 딸한테 잘해. 안 그러면 내가 너 가만 안 둬.”그 말 한마디에 연이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흐릿한 시선 속에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이승하의 얼굴이 들어왔다.이모부한테 그녀는 처음부터 딸이었다...감동을 받은 연이는 발길을 돌리려는 이승하를 덥석 끌어안고 낮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5화

    그가 떨리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힘겹게 말을 뱉었다.“연이야, 뒤돌아서 나 좀 봐봐.”화를 참으며 고개를 돌리니 얇은 셔츠 차림에 눈밭에 서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잠깐 멈칫하던 그녀는 차갑게 시선을 돌렸다. “심우주, 나 이제 너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까 더 이상 귀찮게 찾아오지 마.”말을 마친 연이는 전화를 끊고 남자 친구의 손을 잡은 채 숙소로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이때, 남자 친구가 허를 찌르는 물음을 내던졌다.“그렇게 귀찮아할 거면서 왜 연락처를 아예 차단하지 않았어?”차단하면 다시는 연락할 수 없을 것이다. 눈을 내리깔며 한동안 망설이던 연이는 남자 친구 앞에서 심우주의 연락처를 차단해 버렸다.연이를 찾을 수 없었던 심우주는 2년 동안 혼이 빠진 사람처럼 살았다. 문자를 받지도 못하는 그녀의 핸드폰으로 2년 동안 수없이 많은 문자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졸업을 앞두고 연이의 남자 친구는 바람을 피우고 연이를 차버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화가 나야 할 상황인데 연이는 오히려 침착하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그를 찾아가 따지지도 않았다. 그후, 심우주 학교의 퀸카가 그를 미친 듯이 따라다닌다는 소식을 듣고 연이는 그제야 남자 친구의 바람에 자신이 왜 전혀 개의치 않았던 것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있는 남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심우주였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누구한테 먼저 고개를 숙일 사람이 아니었다. 졸업식 당일 밤, 우연히 심우주를 다시 만난 그녀는 지난 4년 동안 그가 수없이 몰래 찾아와서 자신을 보고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마음이 변치 않은 그를 보며 그녀는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렸을 때부터 날 좋아하지 않았던 애가 언제부터 날 좋아하게 된 걸까?그녀의 의혹에 그는 대답을 하지 않고 진한 키스로 뒤늦게 알아버린 자신의 진심을 쏟아냈다. 그의 고백을 받아들일 때, 연이는 뼛속까지 보수적이었던 자신을 다행으로 여겼다. 첫 번째 남자 친구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지 않았기 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4화

    이승하를 따라 차에 올라탄 하준이는 서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안이 벙벙해졌다.“엄마, 엄마가 여긴 어떻게...”오랜만에 만난 아들이 이젠 어엿한 어른이 된 모습에 그녀는 눈시울이 붉어졌다.“몰래 네 얼굴만 보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런 일이 있을 줄이야...”얼굴에 찍힌 신발 자국을 보니 서유는 더 마음이 아팠다. 손을 뻗어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려다가 아이가 어색해할까 봐 허공에서 손이 굳어버렸다. 조심스러워하는 엄마를 보고 하준이는 예전처럼 무뚝뚝하게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얼굴에 가져다 댔다. 수척해진 아이의 얼굴에 손끝이 닿는 순간, 그녀는 비에 흠뻑 젖은 아들을 품에 꽉 끌어안았다.“네가 외국에서 이렇게 괴롭힘을 당하는 걸 알았더라면 5년 전에 엄마는 절대 널 외국으로 보내지 않았을 거야.”아이가 그녀보다 더 큰 손을 뻗어 그녀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평소에는 제가 애들을 괴롭히는 편이에요.”아이가 당하는 꼴을 직접 눈으로 본 서유는 자신을 위로하는 아이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그녀는 아이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디 다친 데는 없어?”그 물음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저 나름 솜씨가 좋아요. 그러니까 아빠가 올 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고요.”말을 마치고 그가 고개를 들어 앞줄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닦고 있는 남자를 우러러보았다.“아빠, 방금 절 구해주던 아빠의 모습은 진짜 영웅 같았어요.”옅은 미소를 짓던 이승하는 소수빈이 건네준 수건을 받아 아이에게 건네줬다.“너도 이제 다 큰 어른인데. 언제까지 내가 와서 구해주기만을 기다릴 거야? 나중에 아빠가 없으면 어떡하려고 그래?”수건을 받아 대충 머리를 닦던 아이는 모처럼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얼마나 대단하고 위풍당당한 사람인데 어떻게 없을 수가 있겠어요?”아이의 말에 차가운 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서유도 소수빈도 아무 말이 없었고 차 안의 분위기가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3화

    비가 쏟아진 그날 밤, 이하준은 우산을 쓰고 학교를 나와 골목으로 들어갔다. 마침 쇠몽둥이를 든 외국인 무리와 마주쳤고 그들은 하나 같이 근육질 몸매에 흉악한 얼굴이었다. 가끔 멍청이 같은 사람들이 그를 귀찮게 할 때가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이승하의 말을 명심하고 애써 참았지만 상대의 모함을 받게 되었다. 한 번은 누군가 그가 개발한 약을 교수의 물컵에 넣었다. 다른 친구가 발견하지 않았다면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른다. 더는 참을 수가 없었던 이하준은 그들을 응징하기로 결심했다. 하루 만에 수십 명의 사람들을 응징했고 학교 측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교수가 그를 믿고 지켜주지 않았더라면 학교에서 쫓겨났을지도 모른다. 그를 무너뜨리지 못한 악당들은 교수의 신임을 받고 있는 그를 질투하고 증오했다. 지금 눈앞의 놈들은 분명 그들이 그를 혼내주려고 부른 사람들일 것이다.학교에 다니면서도 소지섭에게 격투 기술을 배우는 걸 멈추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두렵지가 않았다. 우산을 살짝 받쳐 드는 순간, 얼음처럼 차가운 눈이 드러났고 그 눈 밑에 살의가 가득했다.근육질 남자들은 순식간에 그를 에워쌌고 이하준은 손에 든 우산을 접어 날카로운 한끝으로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을 세게 찔렀다. 싸움 실력이 뛰어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아무리 실력이 대단하더라도 점점 더 많이 달려오는 근육질의 남자들을 혼자 당해낼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에게 손을 대지 않겠다고 교수님과 약속했었지만 수세에 몰리자 그는 어쩔수 없이 허리춤에 있던 금빛 칼을 빼 들고 근육질 남자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어린 나이에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보고 몇몇 근육질의 남자는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쇠몽둥이를 들어 온 힘을 다해 이하준의 머리를 내리쳤다.이하준의 목숨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그를 바보로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들려면 머리를 쳐야 한다. 바보가 안 된다면 적어도 식물인간으로 만들어야 하니까. 근육질의 남자들은 이하준을 제압하기 위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32화

    그가 그녀의 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입을 열었다.“난 죽는 게 두려운 사람이 아니었어. 그런데 당신을 만난 후부터 죽는 게 그렇게 겁이 나더라.”죽는 게 두려웠기 때문에 전 서계를 돌아다니며 의사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원하는 결과는 끝내 얻지 못하였고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기만 했다. 겁이 난 서유는 그를 꼭 껴안았다.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그녀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당신한테는 내가 있고 우리 하준이가 있어요. 그러니까 절대 죽으면 안 돼요. 당신이 죽으면 우리는 어떡하라고요?”그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미 5년을 버텨온 그는 점점 더 통증이 심해졌고 하느님이 조금씩 조금씩 그의 목숨을 빼앗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통이 전해지는 횟수가 갈수록 늘어나고 통증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심해졌다. 칩을 꺼낼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다만 떠나기 전에 모든 일을 다 마치고 가야 하는데...마음이 무겁기만 했다. 품 안에 있는 여인이 가장 걱정되었다. 소리 없이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에 그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깊이 파고들었다.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릴 만큼 뜨겁고 짜릿한 느낌, 슬픈 마음을 녹일 수 있을 것 같아 두 사람은 뜨겁게 몸을 섞으며 하나가 되었다. 그녀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할 때쯤, 두 사람의 아찔한 행위가 끝이 났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그녀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고 소중한 물건을 끌어안듯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유람선 안으로 들어온 희미한 달빛을 빌려 그가 세월의 흔적도 없는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다음 생에도 당신이 내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당신의 다음 생은 송사월한테 주기로 약속했었나?”아직 잠들지 않은 서유가 그의 가슴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번 생에 당신이 나보다 먼저 가면 나 절대 당신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다음 생에 당신 안 만날 거라고요.”그가 슬픈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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