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가혜가 조금 걱정됬다. 강은우가 자신의 약혼녀가 집에 오는 걸 그렇게까지 막아 나서고 부모님들조차 며느리 될 사람이 집에 오는 걸 마다하는게 그리 흔한 풍경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가 집이 너무 누추해서라니, 아무리 봐도 뭔가 숨기는 게 있어 보였다. 하지만 가혜는 그냥 강은우와 그 집안 사람들이 자신을 배려해서 그런 거라고 혹시나 그런 집을 보게 되면 강은우와의 사이가 나빠질까 봐 우려해서 그런다는 말을 믿으며 별다른 생각은 안 하는데 거기서 제3자인 서유가 말을 꺼낼 수 없었다.그냥 이미 결혼도 한 사인데 아직도 집에 들이지 않는다는 게 의문이었다.다행인지 가혜는 오히려 좋아하고 있었다."알 게 뭐야, 나도 그런 시골엔 별로 가고 싶지도 않았어. 나랑 은우는 그냥 서울에 계속 있을거고 부모님은 시골에 계신다니까 고부갈등도 없고 좋잖아."가혜의 말을 들은 서유는 하고 싶던 말을 그냥 묻어두었다. 잘 지내고 있는 애한테 괜한 얘기를 해 긁어 부스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그냥 괜한 기우일 수도 있으니까. 어쨌든 시댁 사람들이 가혜한테 잘해주신다고 하고 또 결혼 한다니까 몇 년 동안 모든 적금까지 깨서 절반이나 되는 신혼집 선금도 내주시고, 그런걸로 보아 환대받으며 하는 결혼인 건 맞는 듯싶었다.항상 시골에만 계셨던 분들이 그만한 돈을 내주시고 혼수까지 두둑이 챙겨주신 걸로 보아 할 도리는 다하신 것 같다. 정말 순수하게 누추한 집을 보고 가혜가 혹시라도 다른 생각을 하게 될까 우려했던 것일 수도 있는거니까. 서유는 깊어져가던 의심을 거두고 가혜와 팔짱을 끼고서는 마트로 향했다.차에 앉은 서유의 핸드폰이 또 울렸다. 또 그 가면남이었다.[너 진짜 더러워.][나랑 잔지 얼마나 됐다고 또 딴 남자랑 자냐. 남자가 그렇게 좋아?][걸레 같은 년, 죽여버리고 싶어]계속 이어지는 험한 말들에 서유는 너무 화가 나서 몸까지 떨려왔다. '허 진짜 제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강간범 주제에 어디서 훈계질이야'서유는 핸드폰을 들어 분노 어린
그 말을 들은 서유는 귀까지 붉어지며 말을 잇지 못했다."가혜야, 사실은... 그게..."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자신이 성폭행당했다는 사실을 가혜가 알게 된다면 그 성격에 가면남을 찾아가서 따지고 들게 뻔했다. 가혜는 옛날에 제가 송사월에게 맞은 것을 알고 나서 그 밤에 송사월을 죽여놓겠다고 표를 사 부산까지 간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때 송사월에게 맞은 뒤로 심장이 계속 안좋았다는 말도 아직까지 못했다.서유가 말하길 망설이자 가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어왔다."설마 이승하처럼 너랑 결혼은 하기 싫고 연애만 하겠다는 건 아니지?""아니야 그런 거.""그럼 뭔데?"서유는 한숨을 내쉬고서는 더는 숨기기 힘들 것 같아 사실대로 털어놓았다.서유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가혜는 성폭행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며 차를 세웠다."뭐라고?!""지금 성폭행이라고 했어?"가혜는 혹시 자신이 잘못 들은 걸까 봐 다시 한번 되물었지만 서유는 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경찰서 가자, 지금."가혜는 팔까지 걷어붙이고 당장 경찰서로 가자며 운전대를 잡았다. 서유는 그런 가혜를 애써 말리며 말했다."나도 신고해 봤어. 근데 그걸론 증거가 부족하대. 그리고 나 약점까지 잡혀서 뭐 어떻게 할 수도 없어...""무슨 약점?"서유는 임태진이 자신을 협박했던 일도 하나하나 말해주었다."어쩐지 임태진이 사람을 많이 데려왔다 했어. 너 협박하러 온 거였어?"모든 사실을 알게 된 가혜는 그저 서유에게 많이 미안했다."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겪지도 않아도 될 일을..."가혜는 조심스런 손길로 많이 지쳐 보이는 서유의 볼을 쓰다듬었다.서유는 예쁘장한 얼굴 때문에 예전부터 변태가 참 많이도 꼬였었다. 학교 다닐 때는 누가 작업 걸거나 스토커가 붙은 것 같은면 항상 저나 송사월에게 말했었는데 이젠 그냥 묵묵히 혼자 감당했다. 그게 자신에게 걱정 끼치기 싫어서임을 알기에, 너무 잘 알기에 더 마음이 아팠다."서유야, 다음부터 이런 일 있으면 꼭
가혜는 아직도 서유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마트로 가는 내내 가면남을 만날 때 연장부터 챙겨야겠다는 말을 반복했다. 가혜는 이를 악문 채로 말을 뱉었고 운전대를 잡은 손도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하얗게 질려있었다. 서유는 가혜가 운전대부터 뜯어낼까 조마조마하며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며 운전 조심하라고 몇 번이고 말했다. 그렇게 쉴 새없이 대화를 하다보니 금세 마트에 도착했다.둘은 식재료들을 한 아름 사고서는 다시 집으로 차를 돌렸다. 집에 돌아와서 막 저녁을 하려고 주방으로 향할 때 강은우가 문을 두드렸다.강은우는 서유와 짧게 인사를 하고 나서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가혜가 들고 있던 칼을 받아들었다."나가서 티비라도 좀 봐. 저녁은 내가 준비할게."강은우의 다정함에 가혜의 입꼬리도 호선을 그리며 예쁘게 올라갔다. "네가 요리를 잘하긴 해. 그럼 오늘은 너가 해."가혜는 은우의 어깨를 가볍게 두 어번 두드리고는 서유를 데리고 거실로 갔다. 티비를 켜자 지치지도 않는지 재방송 중인 JS그룹과 동아그룹의 정략결혼 기사가 보였다.티비를 보고 있던 가혜는 이승하의 팔짱을 낀 여자가 서유와 어딘가 닮아 보였다. 아니, 닮아도 너무 닮은 그 모습에 가혜는 두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서유야, 저 여자..."순간, 가혜는 무언가를 알기라도 한 듯이 입을 다물었다.어쩐지 이승하가 서유한테 강제로 싸인을 시키더니... 그게 서유를 대타로 내세우기 위해서였구나.아마도 서유가 이승하에게 버림받은 것뿐만 아니라 이용까지 당한 듯싶었다.5년, 5년이라는 시간 동안 사랑한 결과가 이런 거라니.가혜는 고개를 돌려 서유를 바라봤다. 어쩐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은 얼마나 문드러졌을까."서유야, 괜찮아, 다 괜찮을 거야."가혜는 손을 들어 서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떻게 위로를 전해야 할지 생각했다.이미 자신이 대타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서유는 그냥 웃으며
주방 문의 방음 효과는 꽤 괜찮았다. 그 한마디만 어렴풋이 들리고 뒷말은 잘 들리지 않았다.강은우는 안영 그룹 영업팀 팀장으로 고객들과의 관계 유지를 위해 상대를 자주 “자기”라고 부르는 것도 정상이었다.그러나 “너무 잦아서 들키기 쉽다”는 말은 뉘앙스가 이상했다.서유는 문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문을 열자 보이는 서유의 청초한 얼굴에 강은우는 잠깐 얼어붙었다.“서, 서유 씨...”강은우는 잠깐 흠칫하더니 빠르게 반응했다. 그는 휴대전화를 가리키며 말했다.“고객님이 제품에 문제가 생겼다고 대량 반품하겠다네요. 전화 와서 저한테 처리하라고 하는데 저도 회사 쪽에 반품 신청을 해야 하거든요? 이걸 다 해결해야 갈 수 있어서 지금 제발 시간을 좀 달라고 사정하는 중이었어요...”그럴듯한 변명이었지만 “너무 잦아서 들키기 쉽다”는 말은 설명이 되지 않았다.직접 따져 물을 생각이 없었던 서유는 안색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저한테 뭘 그렇게 많이 설명해요? 전 은우 씨가 무슨 말을 했는지 듣지도 못했는걸요?”강은우는 그 말을 듣자 긴장이 풀렸다.“전 혹시라도 서유 씨가 오해할까 봐 걱정돼서 잘 설명할 생각이었을 뿐이에요.”서유는 식판을 들고 주방 쪽으로 걸어갔다.“제가 문을 열려고 할 때 은우 씨가 마침 문을 열었거든요. 엄청난 우연이죠?”서유는 식판을 냉장고 안에 넣었고 강은우는 그제야 모든 의심이 풀렸다.서유는 주방에 물건을 가져다 놓으려고 한 것뿐이지, 일부러 그의 통화 내용을 들으려고 한 건 아닌 듯했다.강은우는 “그러게요”라고 짧게 대답한 뒤 밖으로 나갔다.고개를 돌려 강은우의 뒷모습을 눈에 담은 서유는 어쩐지 불안했다.그녀는 이 사실을 정가혜에게 알려야 할지 주저했다. 정가혜는 강은우를 많이 사랑했고 그만큼 그를 많이 믿었다.만약 그녀에게 이 일을 알린다면 어쩌면 그들의 감정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얘기하지 않는다면 또 친구인 그녀에게 미안했다.서유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정가혜에게
정가혜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서유야, 기억해. 넌 내가 커가는 모습을 지켜본 내 동생이야. 내 가족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점을 발견했다면 바로 나한테 얘기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지금까지 네게 보여줬던 진심이 헛된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서유는 그 말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정가혜는 서유를 굳게 믿었기에 서유가 경솔했다고 탓하지 않았다.서유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잘 자라는 이모티콘을 보내고서야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마음 편히 잠들었다.다음 날 아침, 십여 통의 부재중 전화 때문에 잠에서 깬 서유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베개 아래서 휴대전화를 꺼냈다.“서유야, 깨어났어?”김시후의 듣기 좋은 목소리에 서유는 다소 힘겹게 눈을 떴다.“무슨 일 있어?”“몸은 좀 나았어?”서유는 짧게 “응”이라고 대답했다.김시후는 그녀의 냉담한 태도에 조금 낙담했지만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서유야, 오늘 저녁 화진 그룹에서 축하 파티를 주최하는데 내 파트너로 참석해 줄 수 있어?”서유는 당황하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했다.“난 가고 싶지 않아.”그녀의 거절에도 김시후는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부드럽게 말했다.“날 챙겨주는 거라고 생각하고 와주면 안 돼?”서유는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김 비서님이 챙겨주면 되지 왜 날 꼭 부르려는 거야?”김시후는 온화한 목소리로 설명했다.“김 비서가 작은 실수를 해서 내가 부산으로 내려보냈거든.”서유는 김시후가 입찰이 끝나면 부산으로 돌아갈 줄 알았다. 그러나 김시후는 돌아가기는커녕 본인의 비서만 돌려보냈다.서유의 예쁜 미간이 서서히 구겨졌다.“부산으로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거야?”그녀의 질문에 김시후의 실망이 깊어졌다.“내가 부산으로 돌아가길 바라는 거야?”서유는 당연히 그가 빨리 돌아가길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그에게 신경을 써야 하니 말이다.서유는 죽음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김시후에게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그 얘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김시후와는 그
서유는 자신을 비웃더니 시선을 거두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김시후를 바라봤다.“축하 파티는 어디서 하는데?”“로얄 호텔.”그곳은 서울에서 가장 호화로운 호텔이었다.화진 그룹에서 축하 파티를 주최하는 이유는 서부 개발 프로젝트를 따냈기 때문이다.비록 서부 개발 프로젝트일 뿐이지만 화진 그룹에 있어서는 이로써 서울에서 발전할 기반을 다진 셈이니 당연히 축하해야 했다.서유는 김시후가 자신을 데리고 곧장 호텔로 향할 줄 알았으나 그는 그녀를 데리고 블루 백화점으로 향했다.그리고 예상대로 맞춤 제작 드레스샵으로 향했다. 다른 점이라면 김시후가 그녀에게 10벌의 맞춤 드레스와 가방과 액세서리 따위를 선물했다는 것이다.서유는 직원이 비싸고 럭셔리한 종이백을 트렁크 안에 넣는 걸 보고 머리가 아픈 듯 이마를 짚었다.“택배비 엄청 비쌀 텐데.”김시후는 차 문에 기대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다음번에는 환불하지 마. 그렇지 않으면 또 한 번 날 응대하라고 할 테니까.”거절하지 말라는 듯 단호한 태도에 서유는 당황했다.예전에 송사월도 그랬다. 그녀에게 선물을 주면서 거절하지도, 환불하지도 못하게 했다.송사월은 겉보기에는 온화하고 다정했지만 사실은 아주 집요하고 고집이 센 사람이다. 자기가 한 말은 꼭 지켰고 집착도 강했다.서유는 정말로 김시후를 계속 응대하게 할까 봐 말을 아꼈다.이것들은 그녀가 죽은 뒤에 정가혜에게 다시 돌려주라고 할 생각이었다.김시후는 그녀와 함께 호텔로 향했다.파티장으로 들어가기 전, 김시후는 그녀에게 팔짱을 끼라고 했다.서유는 그를 힐끔 보았다가 마지못해 그의 팔짱을 꼈다.김시후는 고개 숙여 그녀의 손을 바라보더니 참지 못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안으로 들어갔다. 파티장 안의 사람들은 김시후가 파트너를 데려온 걸 보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람들의 축하해주는 분위기에 김시후의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심지어 눈빛마저 한결 부드러웠다.파티장은 아주 컸고 인테리어는 호화로웠다. 따뜻
서유는 떠오르는 생각들에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그녀는 혹시라도 김시후가 볼까 봐 서둘러 고개를 숙이고 김시후가 건네준 우유를 조금씩 마셨다.우유를 마시는 서유의 모습에 김시후의 깨끗하고 청초한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웃음기가 드러났다.서유는 이번에 거절하지 않고 순순히 그가 건네준 우유를 마셨다. 그래서 어쩌면 그녀가 사실은 자신을 그렇게 싫어하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김시후는 눈길 한 번 떼지 않고 조용히 서유를 바라보았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그렇게 넋이 나간 듯 서유를 쳐다봤다.서유가 우유를 다 마시고 나서야 김시후는 미련 가득한 얼굴로 시선을 떼며 티슈로 서유의 입가를 닦아줬다.조명이 어둡긴 했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은 김시후의 애정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었다.처음에는 서유가 그저 파트너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김시후가 좋아하는 사람일 줄은 몰랐다.일부 임원들은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몰래 사진을 찍었다.김시후가 입가를 닦아주자 서유는 조금 불편했다.그를 밀어내고 싶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었기에 그를 난처하게 만들 수는 없어 결국엔 참았다.김시후는 서유가 여전히 자신을 거절하지 않자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그는 서유 대신 입가를 닦아준 뒤 고개를 숙이며 부드럽게 물었다.“우리 형 만난 적 있어?”그는 서유가 자신을 이렇게 밀어내는 이유가 형 때문일 거라고 짐작했다. 그는 자신을 향한 서유의 선입견을 없애기 위해 똑똑히 물어볼 생각이었다.서유는 미간을 구겼다.“형이 있다고?”김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응. 김준혁이라고 예전에 화진 그룹 대표였어. 몰라?”서유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화진 그룹과 관련된 기사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기에 김준혁을 알 리가 없었다.김시후의 미간이 점점 좁혀졌다.서유는 그의 형이 누군지 몰랐다. 그렇다는 건 김준혁이 그녀를 찾아간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하지만 한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김준혁이 김시후의 이름으로 서유를 괴롭힌 적이 있어
임태진을 본 순간 서유는 심장이 멈추는 것만 같았다. 두려움과 긴장이 순식간에 그녀를 덮쳐왔다.“임, 임 대표님...”겁을 먹은 서유는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고 목소리도 떨렸다.임태진은 그녀의 겁먹은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렸다.“서유 씨, 오랜만이네.”서유는 온몸을 떨고 있었지만 억지로 침착한 척했다.“임 대표님, 무슨 일로 절 찾으러 여자 화장실까지 오셨죠?”임태진은 살짝 웃은 듯했다. 그리고 그의 눈꼬리가 살짝 올라갔다.“별거 아니야. 그냥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그는 말을 마친 뒤 마스크를 벗어 십여 바늘로 꿰맨 자신의 입을 보여줬다.촘촘한 바느질 자국을 보고 있으면 소름이 돋았다. 서유는 겁을 먹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그러나 임태진은 전혀 개의치 않는 건지 서유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이리 와.”서유는 고개를 저었다. 다가가기는커녕 오히려 몸을 돌려 옆 화장실로 달려갔다.그러나 임태진의 뒤에 있던, 손에 야구 배트를 든 경호원 두 명이 곧바로 그녀를 뒤따랐다.그들은 서유의 앞길을 막더니 양쪽으로 그녀의 팔을 고정해서 그녀를 임태진의 앞으로 데려갔다.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한 서유는 아주 굴욕적인 자세로 임태진의 발치에 무릎을 꿇게 되었다.“서유 씨, 여전히 도망을 잘 치네.”임태진은 음험한 얼굴로 웃더니 고개를 숙여 서유를 바라보았다.“그런데 어디로 도망칠 수 있겠어?”임태진은 소름 끼치게 웃더니 험악한 눈빛으로 서유를 물끄러미 바라봤다.“서유 씨 덕분에 난 이제 팔도 다리도 못 써. 심지어 입까지 이 꼴이 됐지. 내가 서유 씨한테 어떻게 감사해야 할까?”임태진은 마지막 한 마디를 씹듯이 내뱉었다. 마치 서유를 갈가리 찢어놓고 싶다는 듯이 말이다.서유는 그의 모습에 겁을 먹고 덜덜 떨었다.“임, 임 대표님.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모르겠다고?”임태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 그의 미소가 더욱 오싹해졌다.“서유 씨가 나한테 계약서를 넘긴 날, 난 모르는 사람들을 만났어. 그들 중에서 리더는 금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