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현서는 창백한 피부를 가진 미인이었으며, 그녀가 내민 손은 하얗게 빛날 정도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연석은 이런 미인을 보면 분명 흥미를 느꼈겠지만, 지금은 그냥 한 번 흘낏 쳐다본 뒤,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앉으시죠.”고현서는 이연석이 소문처럼 방탕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오히려 그의 냉정한 태도에 당황했다. “대표님, 프로젝트와 계약을 의논하려면 좀 더 고급스러운 장소가 적합하지 않나요? 이런 조용한 레스토랑은 분위기가 안 맞는 것 같은데요...”이연석은 옆에 있는 휠체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다쳤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유흥 장소에 가는 건 적절치 않죠. 사람들이 웃을 테니까요. 그리고 사인 한 번 하는 일이니 굳이 그런 곳에 갈 필요는 없죠.”이연석의 말 속에는 거리감이 묻어 있었고, 고현서는 순간 멍해졌다. 회사에서 자신을 파견한 이유는 그녀의 미모로 이연석을 유혹해, 본사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어내기 위함이었는데, 소문 속의 꽃미남이 자신에게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그녀의 암시도 거절하니, 고현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고현서는 이연석을 몇 번 더 유심히 살펴보다가 천천히 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대표님...”“계약서 가져오셨나요?”이연석은 그녀의 말을 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꺼내서 제 변호사에게 보여주세요. 문제가 없으면 바로 사인하겠습니다.”고현서는 굳어진 입꼬리를 억지로 올리며 물었다. “급한 일이 있으신가요?”이연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역 업무를 막 맡았는데, 정리할 일이 너무 많아서 여기서 시간을 낭비할 여유가 없습니다.”이 말은 고현서에게 아무리 미인이라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고현서는 H국에서 일류 미인으로 꼽히는데, 이렇게까지 무시당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억울한 마음에 와인 잔을 들어 이연석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대표님, 계약서 사인은 급하지 않으니, 우선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눠보죠...”이연석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
단이수가 떠난 뒤, 이연석은 바로 비서에게 명령을 내렸다.“지금 당장 F국으로 가서 스칼렛이라는 사람에 대해 조사해봐.”정선월이 무슨 말을 하려는데 옆에 있던 심범태가 헛기침을 하며 그녀의 말을 끊어버렸다. 두 사람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분명했고 심형진조차도 모르는 비밀인 것 같았다.다시 생각해 보니 정선월이 아이에 대해 말을 한 것 같았다. 만약 그런 거라면 정가혜한테는 정말 재수 없는 일인데...고민 끝에 한 번 알아보기로 했다. 그녀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녀가 위험한 처지에 빠지는 것을 지켜볼 수는 없는 일이니까. 충동적인 성격이 자신에게는 해만 되고 사람들에게 이용만 당하게 된다는 걸 깨달은 그는 둘째 형처럼 모든 일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증거를 얻은 다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모든 것을 폭로할 생각이었다. 한편, 차에 앉아 집을 쳐다보던 정가혜는 갑자기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집에 가면 노현정은 분명 얘기는 잘 되었는지 언제 결혼할 건지에 대해 물을 것이다. 결혼은 그녀한테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왠지 모르겠다. 분명 재혼할 준비가 다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긴 한숨을 쉬던 그녀는 시동을 걸고 블루리도로 향했다.신호등을 기다리다가 창문을 내리는데 뜻밖에 이연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마침 조수석에 앉아 있는 그도 막 창문을 내렸고 서로 마주 보게 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흘렀다. 그녀를 쳐다보던 그가 재빨리 시선을 돌리고는 이내 창문을 닫아버렸다. 짙은 속눈썹을 깜박거리던 그녀도 고개를 돌리고는 앞쪽의 신호등을 쳐다보았다.그녀가 원했던 일이었다. 근데 낯선 사람을 대하듯 자신을 대하는 모습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이렇게 억지를 부릴 줄은 몰랐던 건지 피식 웃음이 났다.한편, 이연석은 원래 블루리도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정가혜의 차가 그곳을 향하는 것을 보고 그는 차를 돌렸다. 백미러 속, 뒤돌아가는 고급 차를 보며 그녀는 안색이 변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그래, 이러
그녀는 못 믿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연이를 붙잡고 얘기를 더 했고 툭툭 튀어나오는 연이의 말에 그녀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요즘 애들은 정말 대단하다니까. 아는 것도 많고 어찌나 총명한지.”이때, 안으로 들어오던 주서희가 그 말을 듣고 입을 열었다.“연이의 아이큐를 측정해 본 적 있었는데 가혜 씨보다 더 높았어요. 그러니까 어린애 취급하지 말아요.”정말이냐고 물어보려는데 주서희가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엄마 아빠가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이었으니 아이도 분명 빠지지 않을 거예요.”주서희와 정가혜는 연이와 함께 레고 놀이를 한참 하다가 서유를 따라 소파로 향했다. 서유는 하인들에게 커피와 디저트를 내오라고 명한 뒤, 그제야 정가혜를 향해 물었다.“오늘 심형진 씨 부모님 뵈러 간 거지? 어땠어?”정가혜가 블루리도로 서유를 찾아온 것도 그녀와 이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였다.“선배 아버지는 별말씀 없으셨는데 선배 어머니는 내 출신과 직업을 얕잡아보셨어. 대놓고 뭐라 하신 건 아니지만 말 속에 숨은 뜻을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두 사람 모두 고아로 자라왔으니 남들에게 홀대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자연히 알 수 있었다.“심형진 씨는 뭐래?”정가혜는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근데 화장실 다녀오고 나니까 선배 어머니의 태도가 확 바뀌었어. 아마도 선배가 말한 거겠지.”결과를 알고 싶었던 주서희는 확신하지 않는 정가혜를 보며 한마디 물었다.“그럼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에요? 결혼할 거예요? 아니면...” 그녀는 손을 저었다.“선배 어머니가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시고 나도 그렇게 빨리 결혼하고 싶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결혼을 미루자고 했어요.”“심형진 씨도 동의했어?”“동의했어. 내 뜻에 따르겠다고 했어.”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고 결국 주서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미루는 것도 어쩌면 잘된 일이에요. 두 사람이 사귄 지도 얼마 안 됐고 서로가
“서유 씨, 오랜만이에요.”차에 앉아 있는 강세은을 보고 서유는 저도 모르게 긴장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다른 수상한 차량이 따라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강세은 씨, 지난번에 오빠와 함께 날 찾아왔을 때 육성재 씨와 마주치지 않았나요? 어떻게 또 이리 대놓고 찾아와요?”그녀가 선글라스를 벗자 매혹적인 눈이 드러났다.“차에서 내리지 않으면 육성재 씨가 볼 수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안심해요.”말을 마친 그녀는 조수석에서 포장된 선물 상자를 꺼내 서유에게 건네주었다.“지난번에 서유 씨를 납치한 일 때문에 늘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내 마음이니 받아줬으면 해요.”오래된 일이라 서유는 마음에 두지 않았었다. 그러나 강세은의 입장은 달랐다. 자신의 강요에 서유가 바다에 뛰어들었고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인데 어떻게 쉽게 넘어갈 수가 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서유가 그녀의 손에 죽었더라면 이승하는 이미 그녀를 산산조각 냈을 것이다. 그러니 서유가 살아있는 건 그녀의 목숨을 구한 것과 다름없었다.그 미안함과 고마움을 꼭 직접 전하고 싶었다. 서유는 손을 뻗어 선물 상자를 건네받았다.“세은 씨도 어르신의 핍박 때문에 그런 거잖아요. 세은 씨 탓만 할 수 없죠.”강세은은 고개를 흔들며 모든 책임을 떠안았다.“아버지는 서유 씨를 붙잡고 있으라고만 하셨지 바다에 뛰어들도록 강요하라고 하신 적은 없어요. 그러니 책임은 저한테 있는 거예요.”자책하는 그녀의 모습에 서유도 더는 뭐라 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서 선물 상자를 뜯었다. 그 안에는 순금으로 만든 두 개의 동심결이 들어 있었고 햇빛을 받은 동심결은 금빛을 반짝였다. 서유는 동심결을 어루만지며 강세은을 향해 웃었다.“선물 마음에 들어요. 하지만 다시는 그 일 때문에 찾아와서 사과하지 말아요.”그녀의 해맑고 달콤한 미소에 강세은도 환한 미소를 지었다.“마음에 든다니 다행이에요
강세은은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차창 밖으로 내밀었다.“맹세해요. 또다시 서유 씨를 납치하면 그땐 내가 천벌을 받을 거예요. 죽어도 좋아요.”서유는 그녀에게 얼른 손을 내려놓으라고 했다.“맹세해도 세은 씨랑 같이 갈 수 없어요. 클럽에 가서 남자들 만난 걸 승하 씨가 알게 되면 나 진짜 죽을지도 몰라요.”이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 중요하니까. “남들은 와이프를 무서워하던데 왜 서유 씨는 이렇게 남편을 무서워하는 거예요?”서유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그 사람 무섭지 않아요?”“무섭죠.”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가혜 연락처 줄게요. 정말 가고 싶다면 가혜한테 연락해서 제일 좋은 룸으로 남겨달라고 해요.”서유는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를 보낸 뒤 고개를 들어 강세은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근데 거기 선수들은 같이 노래나 부르고 음식이나 먹여주는 것밖에 안 해요. 세은 씨가 원하는 건...”“나도 노래나 부르고 음식이나 먹으려고 했어요. 내가 뭘 하고 싶은 줄 알았는데요?”아무 말도 없이 그저 웃기만 하는 서유를 향해 강세은은 눈을 흘겼다. “결혼하더니 머릿속에 온통 이상한 생각뿐이네요.”“네?”서유가 변명을 하려던 그때 한정판 고급 차 한대가 다가왔다.조수석의 사람이 누구인지를 똑똑히 보았을 때, 강세은은 이미 액셀을 밟고 앞쪽의 산길로 재빠르게 빠져나갔다. 순식간에 한정판 고급 차와 차이를 벌렸고 산길에서 폭주하는 건 안전하지 않은 것 같아 반쯤 쫓아가던 차가 후진해서 서유의 앞에 멈춰 섰다. 차창이 내려오고 잘생긴 얼굴이 드러났다.“서유 씨, 방금 차 안에 있던 사람 말이에요. 지난번에 강도윤을 따라왔던 그 여자 맞죠?”그 질문에 당황하면서도 그녀는 겉으로 침착한 척했다.“강도윤이 누구인데요? 여기 왔었어요?”문을 밀고 차에서 내린 육성재가 빠른 걸음으로 그녀에게로 걸어왔다.“시치미 떼지 말아요. 이곳에 온 게 한두
서유는 어안이 벙벙해졌다.육성재는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사람 아닌가? 어떻게 강세은을 한 번만 보고 얼굴을 기억할 수 있는 거지?어떻게 그의 의심을 풀어야 할지 깊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가 갑자기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왔다. 너무 가까이 다가오는 바람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다가 실수로 돌멩이를 밟아 무게중심이 옆으로 쏠렸다.바닥에 쓰러질 때쯤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받쳐주며 그녀를 잡아주었다.그의 힘을 빌려 겨우 자리를 잡은 그녀가 그를 향해 입을 열었다.“고마워요.”한편, 그가 그녀의 허리를 잡았던 손을 살며시 뒤로 숨겼다. 날씨가 너무 더워서인지 아니면 너무 긴장해서인지 손에 땀이 가득 찼다.이때, 서유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방금 온 여자는 정말 이지민 씨였어요. 못 믿겠으면 지금 바로 전화할게요.”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그녀의 잘록한 허리에 있었고 머릿속에는 온통 방금 그녀를 껴안던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손가락이 스친 곳은 부드럽고 부서질 듯 가는 그녀의 허리뿐만이 아니었고 향긋한 그녀의 긴 곱슬머리도 그의 손끝에 닿았었다. 부드러운 머릿결이 손끝을 스쳐 지나가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설렜고 잠깐이었지만 푹 빠져들게 되었고 손을 놓기가 싫었다. 머릿속에 이런 장면들이 반복되어 서유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향해 손을 흔들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왔다. “네? 방금 뭐라고 했어요?”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내 얘기 하나도 안 듣고 있었어요? 그런 것도 모르고 난 또 열심히 설명했네요.”“무슨 설명이요?”그녀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육성재 도련님, 지금 괜히 트집 잡는 거죠?”그제야 그는 자신이 S 조직의 행적을 조사하러 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서유 때문에 마음이 복잡해진 그는 순간적으로 그녀가 못마땅하였다.“나한테서 멀리 떨어지라고 했죠?”“그쪽이 먼저 다가온 거거든요. 내가 일부러 다가온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뭐라 그래요? 육성재 씨가
한편, 강세은의 방문 소식을 듣고 CCTV를 켠 이승하는 육성재와 서유의 모습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내를 바라보는 육성재의 눈빛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설마 정말 그의 아내를 좋아하게 된 걸까?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잠시 생각에 빠져있던 그가 강세은에게 전화를 건 뒤 또 이지민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내 육성재의 망원경에 강세은의 차가 나타났고 이번에는 눈꼬리가 올라간 여우 눈을 선명하게 드러냈다. 그가 흥분된 표정을 지으며 망원경을 내려놓고 그녀를 잡으려 가려는 찰나 여우 눈을 가진 여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 속 그 얼굴은 여우 눈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전에 본 모습은 아니었다. 네이버 창에 이지민을 검색해 사진을 확대하여 망원경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 보았다. 사진 속의 사람은 옅은 화장을 하고 있었고 망원경 속의 사람은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지만 같은 사람이었다.설마 내가 정말 잘못 알아본 걸까?망원경을 들고 차 번호판과 옷을 자세히 확인해 보니 아까와 똑같았다.같은 사람이라면 왜 그를 보자마자 도망간 것인지?도둑이 제 발 저린 게 분명하다. 그가 의심하고 있을 때, 차의 주인은 경비원에게 물건을 건네주고 방금 전과 똑같이 빠른 속도로 산길로 달려갔다. 설마 그저 운전 습관인 걸까?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도망친 게 아니란 말인가?이승하의 속임수에 육성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시 망원경을 들고 보는데 마침 이승하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정원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깐 발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옆으로 돌리고 싸늘한 눈빛으로 맞은편은 훑어보았다. 차가운 눈이 카메라에 잡히자 육성재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한테 미안한 일이라도 한 듯 재빨리 망원경을 내려놓고는 더 이상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 말아야 할 생각을 한 건 사실이니까. 이승하는 시선을 거두고 차가운 표정을 지은 채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한편, 거실에서 설계도를 구상하던 서유는 그가 들어오
그녀는 대꾸도 안 하고 그를 밀어내지도 않고 이유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그저 반응조차 없이 그릇에 국을 담았다. 완전히 무시당한 이승하는 그제야 자신의 냉담한 태도에 그녀가 화가 났다는 걸 알게 되었고 연신 사과했다.“미안해. 잘못했어. 그러니까 제발 나 못 본 척하지 마.”그녀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었고 당황한 그는 그녀의 손에 있던 국자를 낚아채고는 그녀를 벽에 밀치고 키스를 퍼부었다.“육성재가 당신 허리를 안고 있는 모습 보고 질투가 나서 그랬어.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그가 그녀의 빨간 입술을 베어 물며 중얼거렸다.“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 당신 무시하지 않을게. 그러니까 이제 그만 화 풀어.”돌아오자마자 그녀에게 쌀쌀맞게 대한 건 육성재 때문에 질투가 나서 그런 것이었다.그러나 참 어이없는 질투였다. 그녀가 일부러 육성재의 앞으로 다가간 것도 아닌데.그의 성격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화가 나면 늘 곁에 있는 사람을 무시했다. 이 고질병은 제대로 고쳐줘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질투할 때마다 그녀에게 분풀이를 하게 될 테니까. 그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 생각에 그녀는 그를 밀어내며 담담하게 말했다.“화 안 났으니까 얼른 가서 씻고 와요. 저녁 먹게.”여자들이란.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도 얼굴에는 아직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걸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그는 있는 힘껏 그녀를 끌어안았다.“아직도 화 안 풀린 것 같은데.”그녀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내가 어떻게 감히 대표님한테 화를 내겠어요? 다 대표님 뜻에 따르는 거죠. 나한테 무슨 자격이 있어서.”가시가 박힌 그녀의 말을 그는 단번에 알아차렸다.“당신 무시한 건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제발 이러지 마.”그녀의 모습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서유가 그를 밀어내며 입을 열었다.“그래요. 대표님이 하자는 대로 해야죠.”여전히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에 그는 마음이 조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