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라는 구승훈의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그저 전화만 남기고 곧 떠났다.회사에서 나온 후 또 다른 데로 전화를 걸었다.“아빠, 저 약사 한 분만 소개해 주세요.”...강하리는 다시 한번 송유라의 매니저에게 연락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미간을 만졌다.일부러 난처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부장님, 이제 어떡하죠? 대표님께 한 번 더 말씀드릴까요?”강하리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구승훈에게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에게 뭐라고 할 리가 있을까?강하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되었다.“김 대표님, 실례지만 저희 회사에서 광고 촬영 문제로 장 매니저님과 상의드릴 게 있는데 무슨 영문인지 연락처를 잃어버렸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장 매니저님께 저한테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해줄 수 있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대표님. 이제 제가 한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남자는 웃으며 말했다.“이제 언제요? 오늘로 하죠. 오늘 마침 내가 시간이 나서요.”그 말에 강하리의 미소가 굳어져 버렸다. 그녀는 잠시 뒤에야 대답했다.“네, 그럼 오늘 봬요. 제가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장 매니저님께 연락해 주시라고 꼭 좀 전해 주세요.”통화가 끝나고 휴대폰을 쥐고 있던 강하리의 손가락은 하얗게 변했다.본명이 김주한인 김 대표는 앤큐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데 이 업계에서 이름난 변태였고 그의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 중 몇 명이 그에게 당했는지 모른다.예전에 강하리는 구승훈을 따라다니며 몇 번 김주한과 식사 자리를 가졌었다. 그때도 매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언가 해보려 했으나 구승훈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강하리를 건드리지 못했다.하지만 오늘 구승훈은 절대 그녀와 함께 식사 자리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 도움을 줄 수 없다.만약 구승훈이 도왔으면 송유라와 그녀의 매니저는 절대 강하리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을
강하리는 자신이 룸으로 안내된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웨이터를 바라보았다.“실례지만 혹시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저는 야외 자리로 예약했는데요.”웨이터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손님, 저희가 맞게 안내해 드렸습니다. 손님과 같이 오신 일행분이 자리를 룸으로 바꾸셨습니다.”강하리는 당황해서 머리가 어질해 났지만 억지로 어색한 미소를 쥐어짜 냈다.“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제가 알아서 들어갈게요.”웨이터가 떠나자 강하리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갔다.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어 손연지에게 전화했다.“연지야, 지금 어디야?”“나야 병원에 있지. 오늘밤 당직이거든. 왜? 혹시 어디 아파?”강하리는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아니야. 너랑 같이 밥 먹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다음에 먹자.”“그래.”전화를 끊고 강하리는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끝내 입술을 깨물고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에게 비웃음을 받더라도 혼자 김주한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았다.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구승훈은 받지 않았다.강하리는 연결되지 않아 끊겨 버린 휴대폰 스크린을 보고 마음이 씁쓸해졌다.그녀는 아직도 구승훈이 자신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나가서 송유라의 전화를 받던 장면을 기억한다.만약 송유라가 전화했으면 구승훈은 언제 어디서든 바로 받았겠지?강하리는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바로 카톡으로 구승훈에게 자신의 위치를 보내고 지금 김주한과 같이 식사 중이라는 메시지까지 보탠 뒤 휴대폰을 넣고 룸으로 걸어갔다.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카톡은 볼 것이다.소유욕이 강한 구승훈이 그 메시지를 보면 바로 달려오지 않을까?강하리는 지금 이 상황에 다소 지나친 구승훈의 소유욕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룸으로 들어가자 김주한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강 부장, 많이 늦었네요. 있다가 벌주 석 잔 마셔야 해요.”강하리는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그의 말에 반응하지는 않았다.“죄송합니다. 방금 차가 많이 막혀서요. 김 대표님 왜 자리를
“뭘 그만해! 강 부장, 여기까지 와놓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어? 왜 순진한 척이야? 구 대표도 강 부장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다는 거 알아!”김주한은 강하리를 안고 그녀의 목에 키스했다.더러운 술 냄새가 덮쳐 오자 강하리는 역겨워서 몸부림을 쳤다.“강 부장, 술을 마시겠으면 제대로 마셔. 강 부장이 술을 물로 바꿔치기 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누구 앞에서 장난이야? 응?”김주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진짜 술이 들어있는 술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술을 부었다.강하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술을 뱉어내고 싶었지만 저도 모르게 삼켜 버렸다.“이런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려고 했어? 강 부장, 도와달라고 하면서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안 되지.”강하리를 격렬하게 기침했다.김주한은 그녀의 셔츠를 잡고 옷깃을 풀어헤쳤다.강하리의 섹시하고 아름다운 쇄골이 드러나자 김주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그가 고개를 숙여 키스를 하려고 하자 강하리는 다리를 들어 김주한의 발을 힘껏 밟았다.뾰족한 하이힐 굽 때문에 김주한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다.이 틈을 타 강하리는 바로 문 앞으로 달려갔다.하지만 그녀가 문을 열려고 할 때 김주한이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도망가려고? 그렇게 할 수 있나 보자고!”절망이 덮치자 강하리는 좌절했다.하지만 그녀가 몸부림칠 때 익숙한 두 눈이 보였다.구승훈은 입에 담배를 문 채 문 앞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벽에 기댄 채 그저 구경하고 있었다.“계속해요. 나 때문에 흥을 깨지 말고.”남자의 목소리는 엄동설한의 눈처럼 차가웠다.김주한은 ‘쯧’하고 강하리의 머리카락을 놓았다.강하리는 몸에 힘이 풀려 바로 문을 잡고 섰다.구승훈은 그녀를 쳐다보다가 셔츠의 옷깃이 풀린 것을 발견하고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그녀를 비꼬았다.“강 부장,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 거야?”강하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요.”강하리는 눈이 빨개진 채로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난 다른 사람과 자는 걸 원한 적이 없어요.”“그럼 여긴 왜 왔어!”강하리는 심호흡하고 덜 비참해 보이려고 애썼다.“대표님, 송유라 씨가 끝까지 저에게 협조하지 않았고 매니저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서 김 대표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어요.”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정말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면 저 사람이 네가 선택한 새로운 스폰서인가?”강하리는 턱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구승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제가 생각하고 있는 스폰서 후보가 많아요. 눈이 멀지 않은 이상 절대 저런 사람을 선택하진 않죠.”구승훈의 눈에서 분노의 불이 순식간에 타올랐다.그는 그녀의 손목을 부러뜨리려는 듯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레스토랑 밖으로 끌어낸 다음 차에 밀어 넣었다.차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고 구승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강하리도 당연히 조용히 있었다. 구승훈에게 김주한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지도 않았다.이 상황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김주한은 송유라 소속사의 대표인데 어떻게 강하리 때문에 김주한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겠나?차는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멈춰 섰다.구승훈은 차에서 내려 넥타이를 풀고 건물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집에 가.”강하리는 떨리는 손으로 옷깃 단추를 채우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집으로 돌아온 구승훈은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욕실에서 나와 강하리에게 다가갔다.강하리는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구승훈은 그녀에게 숨을 틈도 주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방금 잠겼던 단추가 다시 한번 그의 손에 의해 찢어졌고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그에게서 온화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녀의 몸에 걸친 옷을 모두 찢어버릴 정도로 거칠기까지 했다.강하리는 갑자기 구승훈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깨달았다.그가 아이를 해칠까 봐 두려워
하지만 강하리는 눈물을 통제할 수 없었다.구승훈은 베란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후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형, 무슨 일이야?”구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김주한이 여배우들과 같이 있는 사진 사본을 그 사람 처남한테 보내줘.”구승재는 잠시 당황했다.김주한은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여 성공한 남자였다.그가 큰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의 처가 때문이었다.김주한 아내의 성은 최 씨였는데, 최씨 가문은 창업 초기부터 항상 회색지대에서 활동했다.지금 최씨 가문의 사업은 김주한의 처남이 책임지고 있다.김주한의 아내는 오빠들의 예쁨을 받으며 응석받이로 자랐다.그런 그녀가 김주한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최씨 가문에서는 내키지 않았지만 딸이 원하니 최씨 가문은 김주한을 지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초기에 김주한은 사고도 치지 않고 조용히 있었지만, 사업이 점점 더 커지면서 점차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놀면서도 감히 큰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대부분의 경우 소속사의 연예인에게 찝쩍댔다. 그와 만난 연예인들은 약간의 혜택을 받고 나서는 감히 큰소리를 치지 못해서 사람들은 알고도 모른 척했다.하지만 이 사진들이 김주한의 처남에게 보내지면 김주한은 매우 곤란해질 것이다.구승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 사람이 형을 건드렸어? 아니면... 설마 그 사람이 송유라한테 뭐 한 거야?”그렇게 물은 후 구승재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송유라는 김주한 소속사의 연예인이었다.그리고 송유라 외에 구승훈을 그렇게 간섭하게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강하리는...이제 그조차도 강하리에 대한 형 구승훈의 태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분명히 신경 쓰는 것 같지만 그녀에게 매우 잔인했다. 그렇다고 관심이 없다고 하기에는 그녀를 잘 챙겨주었다.구승훈은 더 이상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대충 말했다.“그건 아니지만 혼 좀 내주려고.”그렇게 말한 후 그는 전화를 끊고 담배를 한 모금 깊게
강하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대답도 없었다.당연히 그녀는 억울했지만 그걸로 이 남자의 동정이나 부드러움을 얻을 수는 없었다.“김주한이 집적거릴 때 못 봤던 거야, 아니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거야?” 구승훈은 강하리의 목덜미를 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도록 했다.하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김 대표님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거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송유라는 협조하지 않고, 매니저는 전화도 받지 않는 상황에 구 대표님은 송유라를 모델로 고집하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구승훈은 바로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일을 제대로 못 하겠으면 사람을 바꿀 거야!”“대표님, 업무에 협조하지 않은 건 송유라라는 걸 분명히 해 주세요!”구승훈은 코웃음을 쳤다. “유라가 왜 협조를 안 하겠어? 강하리, 내가 유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어? 네가 어떤 태도로 유라를 대했는지 생각해 봐!”강하리는 숨 막힐 듯 가슴이 아파 눈을 내리깔았다.송유라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자신을 괴롭힌 건 송유라가 아닌가?강하리는 지금껏 참아온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눈엔 그녀의 잘못만 보이고 송유라가 그녀를 괴롭히는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잠시 뒤 강하리는 웃으며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그럼 대표님은 모든 게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구승훈은 소파에 몸을 기대었고, 무표정한 얼굴엔 조금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내가 말했듯이 누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강하리, 네가 송유라와 맞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강하리는 심장이 바늘에 찔리듯 아팠고 안색도 약간 하얗게 변했다.확실히 그녀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송유라의 뒤에는 송씨 가문이 있었고 곁에는 구승훈이 있었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떠오르는 스타인데 뭘 갖고 그녀와 맞선단 말인가?강하리는 구승훈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그는 처음부터 송유라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냉정하게 그녀에
“오늘 안 하면 안 돼요?”구승훈은 잠시 멈칫했다. “강 부장, 내가 너한테 그 많은 돈을 들인 이유가 나한테 반항하라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심장이 쿵 했다.그렇다, 그녀는 구승훈이 욕망을 분출하기 위해 찾은 존재였다. 어떻게 그걸 잊고 있었을까?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의 요구에 협조했다.구승훈은 그녀를 처벌하듯 아주 잔인하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마치 그녀를 산 채로 잡아먹고 싶은 것 같았다.강하리는 그에게 협조하면서도 너무 세게 하지 않도록 부탁했다.새벽 두 시까지 뒤척이고 나서야 구승훈은 마침내 멈췄고, 강하리는 지쳐서 얼굴에 흐르는 땀이 쇄골에 떨어졌는데 약간 아파서 보니 거기에는 구승훈이 남긴 이빨 자국이 있었다.김주한이 남긴 붉은 자국은 모두 이빨 자국으로 덮여 있었다.뜨거운 샤워 물을 틀어놓은 구승훈에게서 조금의 온화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는 그 이빨 자국을 내려다보며 강하리에게 물었다.“안 아파?”강하리가 고개를 젓자 구승훈은 큰 손으로 그 부위를 꽉 눌렀다.“이제 아파?”강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지만 구승훈은 조금도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그래, 그렇게 아파야지. 강 부장, 네 주제를 파악하고 오늘처럼 다시는 자신을 더럽히지 마.”강하리는 자신을 위해 해명하고 싶었다.“난 더럽지 않아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더럽혀지지 않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그 말에 강하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그의 말대로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런 상황에서 구승훈이 오지 않았더라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김주한은 손에 다 넣은 고기를 놓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원래는 야외 자리로 예약했는데 그 사람이 장소를 안으로 바꿀 줄은 몰랐어요.”“그래서?”구승훈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해명이 아니었다.“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강하리는 겨우 말을 꺼냈다.그제야 구승훈은 만족한 표정으로
강하리는 자기가 이른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어젯밤에 자신의 입으로 구승훈에게 송유라가 잘 협조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김주한을 찾아간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구승훈이 진짜로 송유라에게 경고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송유라는 그의 첫사랑이고, 구승훈은 한 번도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아마도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강하리의 마음은 살짝 흔들렸다.심장이 벌렁벌렁해서 침착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 너무 불쌍해 보였다. 구승훈이 조금만 잘해줘도 그녀는 남몰래 한참 동안 기뻐했기 때문이다.강하리는 장 매니저와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촬영 준비를 했다.사진작가와 얘기를 마친 뒤 또 현장 스태프와도 의논했다.모든 준비를 마치자 송유라도 메이크업을 끝냈다.송유라는 강하리의 앞으로 와서 웃으며 말했다.“승훈 오빠가 나를 위해 환영회를 열어준다고 했으니 너도 와서 같이 놀아.”강하리는 단칼에 거절했다.“싫어. 내가 가면 다들 불편할 텐데.”말을 마친 뒤 그녀는 돌아서서 옆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송유라는 기뻐서 활짝 웃었다.“겁나? 아니면 승훈 오빠가 나한테 너무 잘해줄까 봐 질투 나?”강하리는 가슴이 저릿저릿했다.확실히 구승훈과 송유라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강하리는 아주 오랫동안 노력해야 어쩌다 한번 구승훈이 그녀에게 잘해주는데, 송유라는 언제든지 그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구승훈은 마음을 아끼지도 않고 숨기지 않으며 송유라에게 잘해주었다.그것에 비하면 강하리는 자신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강하리는 송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유라 씨, 곧 촬영 들어가요.”송유라는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촬영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기획안 자체는 육가현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송유라는 육가현과 스타일이 매우 달랐다.사진작가가 불만족스러워하자 강하리는 그 자리에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그런데 갑자기 진태형에게 친딸이 하나 더 생기고 그게 심씨 가문의 손녀일 줄 누가 알았겠나.이제 진시연의 처지가 어색해진 건 당연했고 사람들은 진시연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흩어졌다.진시연은 짙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그녀는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못 본 척 걸음을 옮겨 구승훈에게 다가갔다.“구승훈 씨, 오랜만이네요.”구승훈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와인 잔을 들고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대답하지도 않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없어 보이자 진시연은 그의 옆에 서서 우울한 표정으로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구승훈 씨, 내가 F 대륙에서 야생동물에게 공격당했을 때 날 구해주고 밤새 업고 병원으로 가 치료받게 해준 거 기억나요?”구승훈이 피식 웃었다.“그땐 개나 소나 다 구해줬을 겁니다.”진시연의 얼굴이 다소 일그러졌다.그녀는 오랜 세월 기억하고 있던 것이 구승훈의 입에서 개나 소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우울한 눈빛을 감춘 채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저한텐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에요. 구승훈 씨, 우리 앞으로 잘 지내봐요, 네? 전 정말 그쪽이랑 잘 지내고 싶어요.”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진시연 씨, 진심으로 살려줘서 고마우면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요. 내 아내가 날 오해하는 건 싫으니까.”진시연은 당황했다.“아내요? 두 사람 결혼해요?”구승훈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진시연 씨, 멀리하라고요. 못 알아들어요?”구승훈이 그렇게 말한 뒤 걸음을 옮겨 강하리에게 다가가는데 진시연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의 뒤에서 소리쳤다.“구승훈 씨, 강하리가 정말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쪽 잡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주해찬이랑 알콩달콩 지내는데 정말 하나도 신경 안 쓰여요?”구승훈은 걸음을 멈추고 얼음같이 싸늘한 얼굴로 돌아보았다.“진시연 씨, 멀쩡히 진씨 가문에 남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요. 아니면 심씨 가문도, 나도 그쪽 무사히 B시에 남겨두지 않을 테니까.”진시연의 얼
강하리는 결국 구승훈이 보내준 드레스를 입었다.파란 드레스에 네크라인과 치맛단에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있어 여성스러우면서도 고상하고 품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오픈 숄더는 쇄골을 모두 드러냈고 새하얀 쇄골에는 투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강하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진태형의 딸, 심씨 가문의 손녀라는 대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B시에 몇이나 되겠나.게다가...허리를 굽혀 강하리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는 구승훈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구씨 가문이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모두가 안다.비록 구승훈이 구씨 가문을 처참히 무너뜨렸지만 그의 손에는 구씨 가문의 재산 90%와 B시 문씨 가문의 모든 재산이 있으니 기존 구씨 가문보다 그 세력이 더 대단했다.모두의 시선이 여기로 쏠렸지만 구승훈의 눈에는 눈앞에 있는 여자만 보였다.몸을 살짝 굽혀 강하리에게 손을 내밀자 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심준호가 선물한 드레스를 아무 말 없이 찢어버린 구승훈에게 조금 화가 났지만 개자식의 소유욕이 발동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오히려 그런 그의 반응에 다시 예전 구승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동안 그녀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옅어지는 느낌이었다.구승훈의 눈가에 미소가 번지며 강하리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팔을 뻗었다.강하리는 그의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의 시선 아래 진씨 가문 저택으로 따라 들어갔다.“이게 우리 결혼식이면 얼마나 좋을까. 왠지 정말 결혼식 같지 않아?”구승훈이 강하리의 귀에 속삭이자 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나도 이게 우리 결혼식이었으면 좋겠어.”구승훈이 걸음을 멈칫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서두르지 마, 결혼식 할 거니까.”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태형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강하리를 보자 눈을 반짝이며 이쪽으로 걸어왔다.“아빠.”강하리가 낮은 소리로 부르고 곧이어 구승훈도 그를
“언제 왔어?” 강하리가 구승훈을 바라보며 그의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에 시선이 향했다.지난 며칠 동안 구승훈은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회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요 며칠 구승훈은 많이 바빴고 모임이 끊이질 않아 근처에 미리 준비해 둔 별장으로 갔다.강하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지난 며칠 동안 잠은 잤어?”구승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품에 안았다.“잠을 못 자. 강 대표님이 와서 재워주면 안 돼?”강하리가 웃었다.“그래, 오늘 짐 챙겨서 그쪽으로 갈게.”구승훈은 멈칫하다가 이내 입꼬리를 피식 올렸다.쉽게 승낙하니 다소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원래 상처들은 거의 다 나았지만 그가 요즘 매일 복싱장으로 가서 속에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풀었기에 몸에 새로운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강하리가 정말 오면 그는 괴롭기만 할 거다.아내가 옆에 있는 데도 안지 못하는 그 기분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정말 올 거야?”강하리가 웃었다.“왜, 내가 가는 게 싫어? 아니면 다른 여자가 있는 거야?”구승훈은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그럴 배짱이 있는 것 같아?”강하리는 그의 넥타이를 잡고 끌어당겨 허리를 굽히게 한 뒤 시선을 마주 보았다.“그러면 방 청소나 하고 나랑 연정이가 갈 테니까 기다려.”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의 넥타이를 놓아주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구승훈은 문에 기댄 채 웃음을 터뜨리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강하리를 거절할 수가 없다는 걸 인정했다.잠시 후 드레스룸에서 나온 강하리는 심플한 드레스를 입었는데도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하지만 구승훈은 그녀가 나오는 순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보낸 드레스는 어딨어?”강하리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무심하게 대꾸했다.“너무 더워서 시원한 걸로 바꿨어.”구승훈은 강하리의 등 뒤로 훤히 뚫린 구멍을 바라봤다.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위로 끌어올리자 뒤쪽의 아름다운 나비 모양의 뼈가 드러났다.허리까지 훤히 뚫린 디자인의 옷을 바라보는 구승훈의 눈빛이 어두
강하리의 입꼬리가 움찔했다.건너편 사옥에 새로 회사가 들어왔다는 건 아는데 에비뉴와 정안 그룹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다.그렇지 않고서야 구승훈이 왜 회사 근처 식당에 나타났겠는가.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연성으로 안 돌아가?”구승훈의 눈동자는 온통 그녀로 가득 찼다.“너랑 아이가 어디 있으면 나도 함께 할 거야.”강하리가 구승훈의 시선을 마주했다.“나도 꼭 B시에 있을 필요는 없어. JM의 업무는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어쨌든 연성은 구씨 가문의 영역이었고 연성에 깊게 뿌리 박은 구씨 가문은 B시에서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구승훈이 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네가 다시는 가족과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네가 연인이든 가족이든 둘 다 가졌으면 좋겠어, 자기야.”두 사람 중에 적어도 한쪽은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니까.강하리의 코끝이 갑자기 시큰해지며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예물도 도착했는데 그러면 결혼할래, 구승훈?”멈칫한 구승훈은 씁쓸함이 가슴에 밀려왔지만 그래도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강 대표님, 그렇게 급한가?”강하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나랑 결혼할 거야?”구승훈의 눈에 머금었던 미소가 점점 사라지더니 손가락이 강하리의 눈가에 닿았다.“자기야, 준비할 시간 좀 줘.” 강하리는 쓴웃음을 내뱉었다.“알았어, 기다릴게.”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곧장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구승훈은 복잡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회사 앞에 서서 얼굴을 찡그렸다.그가 돌아서서 길 건너편으로 걸어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구승재는 진작 위에서 구승훈과 강하리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두 사람이 화해했는지 확인하려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왔다.하지만 아래에 내려오자 형이 찌푸린 얼굴로 걸어올 줄이야.‘쯧... 아직 화해 못 했네.’“형, 하리 씨가 아직 용서 안 해준대?”구승훈은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눈가에 억눌린 짜증을 내비
하지만 구승훈의 숨김과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강하리의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구승훈은 강하리가 화가 났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뒤 강하리를 품에 안고 입을 열었다.“제 아내, 강하리에요.”강하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자 구승훈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내 체면 좀 살려주면 안 돼, 여보?”강하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여자의 시선이 반짝이더니 강하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안녕하세요, 사모님. 전 구승훈 씨 담당 정신과 의사, 여나경이라고 해요.”강하리는 멈칫하다가 구승훈의 불면증이 떠올라 그를 슬쩍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이 사람 상태 어때요?”구승훈의 눈동자가 살짝 어두워지고 여자는 눈치껏 웃으며 말했다.“복잡한 경우라 치료 과정도 번거로울 수 있지만 제가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강하리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여자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러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여자가 가고 구승훈은 힘껏 강하리의 허리를 꼬집었다.“정주현이랑 밥 맛있게 먹었어?”강하리는 곧장 그의 손을 떼어냈다.“다른 여자랑 밥 맛있게 먹었어?”구승훈이 웃었다.“그래도 강 대표님이랑 먹는 게 맛있지.”강하리는 능글맞게 웃는 남자를 보며 문득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젯밤 혼자 발코니에 서 있을 때처럼 왠지 이 남자가 홀로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구승훈, 당신 몸...”구승훈은 속으로 흠칫하며 조용히 강하리를 품에 안고 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강 대표님 걱정하는 눈빛을 보니 다 나은 것 같네.”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구승훈의 품에 기대어 안겼고 구승훈의 눈동자는 한층 어두워졌다.강하리가 걱정한다는 걸 잘 안다.예전 같았으면 걱정해 주는 그녀의 모습에 날 듯이 기뻐했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강하리가 알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지금은 감히 프러포즈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 약은 그에게 시한폭탄과
강하리는 구승훈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더군다나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앉아 있자 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구승훈의 정상적인 사교 활동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다가가 묻지도, 방해하지도 않았다.그런데 정주현이 그녀의 표정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 강하리를 돌아보았다.“바람피우는 현장 목격한 건가요?”강하리는 다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아니요.”이런 면에서 강하리는 구승훈을 믿었다.다만 구승훈이 저 여성과 밥을 먹는 것이 그녀에게 숨기는 일과 관련이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을 뿐이었다.강하리는 사실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다른 사람들은 알아도 자신은 알면 안 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연정이 사건 때도 구승훈은 노진우를 믿을지언정 그녀를 믿지는 않았다.강하리는 눈가의 상실감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고 정주현은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여전히 저 사람에게 잘해주네요.”정주현의 말투에는 무의식적으로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났지만 그 역시 자신과 강하리 사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가지 않고 되물었다.“어떻게 지냈어요?”정주현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가 갑자기 사라졌다.요즘 어떻게 지냈냐고? 굳이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엉망이다.사실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그조차 모르겠다.정양철과 줄곧 사이가 돈독했던 그였고 정양철이 업무상 아무리 엄격하게 요구해도 그에겐 좋은 아버지였다.그래서 정양철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지만 증거까지 나온 이상 믿을 수밖에 없었다.정주현은 애써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냥 그렇죠.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냥... 하리 씨 볼 면목이 없네요.”강하리는 잠시 정주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그쪽이랑 상관없어요.”정주현이 웃었다.“그럼 뻔뻔하게 친구 해도 돼요?”강하리도 웃었다.“당연하죠.”정주현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렸고 두 사람은 이
“당신 원하면 해.”구승훈은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자기야, 내일 침대에서 못 일어날까 봐 걱정되지 않아?”강하리가 웃었다.“할 거야?”숨이 멎은 구승훈이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았다.“아니, 우선은 강 대표님이 재워주는 걸 누리고 싶어.”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를 안아 침대에 눕혔고 강하리는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잘 자, 구승훈.”구승훈은 웃었다.“잘 자, 자기야.”강하리는 구승훈의 품에 몸을 밀착했고 구승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꽉 안았다.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침실에서 강하리의 귀에는 구승훈의 심장 박동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고요한 방 안에서 구승훈이 고개를 숙여 강하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사랑해.”강하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눈을 떠 구승훈의 시선을 마주했다.“나도 사랑해.”언제 잠이 들었는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구승훈은 곁에 없었고 연정이도 누군가 안고 간 뒤였다.강하리는 침대에 앉아 구승훈이 누웠던 곳을 바라봤다.다소 구겨진 이불을 만지던 그녀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릴게.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 구승훈.”구승훈은 바쁜지 강하리가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강하리도 굳이 묻지 않고 평소처럼 연정이에게 밥을 먹인 뒤 사무실로 갔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리시안셔스 꽃다발이 있었고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데 안예서가 뒤에서 은근하게 웃으며 말을 붙여왔다.“대표님, 곧 좋은 일 생길 것 같은데요?”강하리의 입꼬리가 살짝 굳어졌다. 구승훈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래도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오늘 일정은 뭐야?”안예서는 서둘러 강하리에게 하루 일정을 알렸고 고개를 끄덕인 강하리는 꽃을 옆으로 치웠다.안예서가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대표님,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임명우 씨 기억하시죠?”강하리는
구승훈은 강하리의 입술을 깨물며 샤워기 아래로 그녀를 안고 갔다.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물은 달아오른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원해? 자기야, 말해봐.”구승훈이 턱을 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머릿속이 윙윙거리던 강하리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그녀가 깨물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구승훈이 강하리를 들어 올려 벽에 밀쳤다.구승훈이 얼마나 그녀를 탐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모든 게 끝났을 때 강하리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안아 침대에 눕혔고 강하리는 몸을 뒤척이며 잠이 들었다.잠든 강하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구승훈은 입술에 뽀뽀한 뒤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구승훈은 이미 흠뻑 젖어 있는 자기 셔츠 단추를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풀었다.단추가 풀리면서 그의 몸에 난 상처가 드러났다.최면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고 그는 점점 더 마음속의 난폭함을 참기 힘들어졌다.마치 잠깐의 고통만이 마음속 짜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구승훈은 무표정하게 웃옷을 벗고 샤워했다.차가운 물이 몸을 적시자 구승훈은 쓴웃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욕망을 내려다보았다.그는 강하리를 원했다.하지만 지금 당장은 강하리가 기꺼이 응한다고 해도 그녀 앞에서 감히 옷을 벗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욕실에서 나온 구승훈은 침대에서 단잠을 자는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들고 뒤돌아 발코니로 갔다.휴대폰에는 노민준과 구승재에게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있었고 구승훈은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노민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왜 또 갔어?”구승훈은 개의치 않는 어투로 대꾸했다.“효과 없잖아.”노민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났다.“효과가 없으면 치료 안 할 거야? 승훈아, 포기하지 마. 나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구승훈은 담배를 한 모금 머금더니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물었다.“형, 확실하게 대답해 줘. 이 약으로 고칠 수 있어?”희망이 없다면 그도 더 발
“그래, 우리 연정이에게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주자.”강하리는 구승훈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눈시울이 시큰거렸다.더 이상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평생 이 남자와 얽혀야 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빨리 서로를 곁에 붙잡아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삼촌이 말한 것처럼 서로 좋아하는 관계는 소중한 거니까.구승훈이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별장으로 갈까? 콘돔 한 박스 샀는데 써보지 않을래, 강 대표님?”강하리는 깜짝 놀라서 재빨리 뻔뻔한 남자를 밀어내려는데 구승훈이 순순히 물러날 리 없었다.“한 번만 하고 돌아가는 건 어때?”강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구승훈은 직접 그녀의 손을 잡아 그곳에 갖다 댔다.“느껴져? 널 본 순간부터 원했어.”강하리는 단번에 손에 닿은 물건을 알아차리고 화가 나서 물건을 콱 잡았다.“참아!”며칠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그런 생각만 하다니, 어림도 없지!구승훈은 그녀의 귓불을 살며시 깨물며 옷 속으로 손이 파고들었다.“그러면 오늘은 내가 강 대표님을 모실게, 어때?”말을 마친 뒤 강하리에게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입술을 막았다.남자의 민첩한 손놀림이 그녀의 몸 곳곳에 불을 지폈고 그가 그녀의 허리를 쓸어내릴 때쯤 강하리가 갑자기 그를 밀어냈다.“일단 먼저 돌아가.”구승훈은 웃었다.“알았어, 그러면 오늘 밤에 강 대표님 제대로 모실게.”그녀가 원한다는 듯이 말하는 상대에 강하리는 얼굴이 타는 듯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강하리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았다.“젖었어? 어디 봐.”강하리의 얼굴에 또 한 번 홍조가 올라왔다.“닥쳐!”개자식!구승훈은 더 이상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시동을 걸어 차를 몰고 나갔다.별장으로 돌아오자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연정이가 보행기를 탄 채 달려왔고 구승훈의 곁에 도착하자 연정이는 작고 뚱뚱한 두 손을 쭉 뻗으며 구승훈을 향해 웅얼거렸다.누가 봐도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는 모습이라 구승훈은 연정이를 안아 볼에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