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라는 구승훈의 사무실로 돌아가지 않고 그저 전화만 남기고 곧 떠났다.회사에서 나온 후 또 다른 데로 전화를 걸었다.“아빠, 저 약사 한 분만 소개해 주세요.”...강하리는 다시 한번 송유라의 매니저에게 연락했지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아서 휴대폰을 내려놓고 미간을 만졌다.일부러 난처하게 만들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부장님, 이제 어떡하죠? 대표님께 한 번 더 말씀드릴까요?”강하리는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구승훈에게 말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남자가 자신의 첫사랑에게 뭐라고 할 리가 있을까?강하리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통화가 연결되었다.“김 대표님, 실례지만 저희 회사에서 광고 촬영 문제로 장 매니저님과 상의드릴 게 있는데 무슨 영문인지 연락처를 잃어버렸더라고요.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장 매니저님께 저한테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전해줄 수 있으세요?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 대표님. 이제 제가 한번 식사 대접하겠습니다!”남자는 웃으며 말했다.“이제 언제요? 오늘로 하죠. 오늘 마침 내가 시간이 나서요.”그 말에 강하리의 미소가 굳어져 버렸다. 그녀는 잠시 뒤에야 대답했다.“네, 그럼 오늘 봬요. 제가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장 매니저님께 연락해 주시라고 꼭 좀 전해 주세요.”통화가 끝나고 휴대폰을 쥐고 있던 강하리의 손가락은 하얗게 변했다.본명이 김주한인 김 대표는 앤큐 엔터테인먼트의 사장인데 이 업계에서 이름난 변태였고 그의 회사에 소속된 연예인 중 몇 명이 그에게 당했는지 모른다.예전에 강하리는 구승훈을 따라다니며 몇 번 김주한과 식사 자리를 가졌었다. 그때도 매번 가만히 있지 못하고 무언가 해보려 했으나 구승훈이 있었기 때문에 감히 강하리를 건드리지 못했다.하지만 오늘 구승훈은 절대 그녀와 함께 식사 자리에 나가지 않을 것이라 도움을 줄 수 없다.만약 구승훈이 도왔으면 송유라와 그녀의 매니저는 절대 강하리를 곤란하게 만들지 않았을
강하리는 자신이 룸으로 안내된 것을 보고 고개를 돌려 웨이터를 바라보았다.“실례지만 혹시 잘못된 거 아니에요? 저는 야외 자리로 예약했는데요.”웨이터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말했다.“손님, 저희가 맞게 안내해 드렸습니다. 손님과 같이 오신 일행분이 자리를 룸으로 바꾸셨습니다.”강하리는 당황해서 머리가 어질해 났지만 억지로 어색한 미소를 쥐어짜 냈다.“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제가 알아서 들어갈게요.”웨이터가 떠나자 강하리는 돌아서서 화장실로 갔다.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꺼내어 손연지에게 전화했다.“연지야, 지금 어디야?”“나야 병원에 있지. 오늘밤 당직이거든. 왜? 혹시 어디 아파?”강하리는 몇 초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아니야. 너랑 같이 밥 먹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다음에 먹자.”“그래.”전화를 끊고 강하리는 그 자리에 한참 동안 서 있었다. 끝내 입술을 깨물고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그에게 비웃음을 받더라도 혼자 김주한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았다.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도 구승훈은 받지 않았다.강하리는 연결되지 않아 끊겨 버린 휴대폰 스크린을 보고 마음이 씁쓸해졌다.그녀는 아직도 구승훈이 자신과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갑자기 나가서 송유라의 전화를 받던 장면을 기억한다.만약 송유라가 전화했으면 구승훈은 언제 어디서든 바로 받았겠지?강하리는 복잡한 생각을 멈추고 바로 카톡으로 구승훈에게 자신의 위치를 보내고 지금 김주한과 같이 식사 중이라는 메시지까지 보탠 뒤 휴대폰을 넣고 룸으로 걸어갔다.전화를 받지 않더라도 카톡은 볼 것이다.소유욕이 강한 구승훈이 그 메시지를 보면 바로 달려오지 않을까?강하리는 지금 이 상황에 다소 지나친 구승훈의 소유욕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었다.룸으로 들어가자 김주한이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맞이했다.“강 부장, 많이 늦었네요. 있다가 벌주 석 잔 마셔야 해요.”강하리는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그의 말에 반응하지는 않았다.“죄송합니다. 방금 차가 많이 막혀서요. 김 대표님 왜 자리를
“뭘 그만해! 강 부장, 여기까지 와놓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어? 왜 순진한 척이야? 구 대표도 강 부장을 가만히 뒀을 리가 없다는 거 알아!”김주한은 강하리를 안고 그녀의 목에 키스했다.더러운 술 냄새가 덮쳐 오자 강하리는 역겨워서 몸부림을 쳤다.“강 부장, 술을 마시겠으면 제대로 마셔. 강 부장이 술을 물로 바꿔치기 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누구 앞에서 장난이야? 응?”김주한은 그렇게 말하면서 진짜 술이 들어있는 술잔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강하리의 턱을 잡고 술을 부었다.강하리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술을 뱉어내고 싶었지만 저도 모르게 삼켜 버렸다.“이런 자리에서 술을 안 마시려고 했어? 강 부장, 도와달라고 하면서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안 되지.”강하리를 격렬하게 기침했다.김주한은 그녀의 셔츠를 잡고 옷깃을 풀어헤쳤다.강하리의 섹시하고 아름다운 쇄골이 드러나자 김주한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그가 고개를 숙여 키스를 하려고 하자 강하리는 다리를 들어 김주한의 발을 힘껏 밟았다.뾰족한 하이힐 굽 때문에 김주한은 고통스러워 소리를 질렀다.이 틈을 타 강하리는 바로 문 앞으로 달려갔다.하지만 그녀가 문을 열려고 할 때 김주한이 뒤에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도망가려고? 그렇게 할 수 있나 보자고!”절망이 덮치자 강하리는 좌절했다.하지만 그녀가 몸부림칠 때 익숙한 두 눈이 보였다.구승훈은 입에 담배를 문 채 문 앞에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그는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벽에 기댄 채 그저 구경하고 있었다.“계속해요. 나 때문에 흥을 깨지 말고.”남자의 목소리는 엄동설한의 눈처럼 차가웠다.김주한은 ‘쯧’하고 강하리의 머리카락을 놓았다.강하리는 몸에 힘이 풀려 바로 문을 잡고 섰다.구승훈은 그녀를 쳐다보다가 셔츠의 옷깃이 풀린 것을 발견하고 안색이 어두워지면서 그녀를 비꼬았다.“강 부장,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하는 거야?”강하리는 감정을 억누르고 호흡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아니요.”강하리는 눈이 빨개진 채로 그의 시선을 똑바로 마주했다.“난 다른 사람과 자는 걸 원한 적이 없어요.”“그럼 여긴 왜 왔어!”강하리는 심호흡하고 덜 비참해 보이려고 애썼다.“대표님, 송유라 씨가 끝까지 저에게 협조하지 않았고 매니저와도 연락이 닿지 않아서 김 대표님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어요.”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잡고 물었다.“정말 일 때문에 그런 거야? 아니면 저 사람이 네가 선택한 새로운 스폰서인가?”강하리는 턱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였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구승훈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제가 생각하고 있는 스폰서 후보가 많아요. 눈이 멀지 않은 이상 절대 저런 사람을 선택하진 않죠.”구승훈의 눈에서 분노의 불이 순식간에 타올랐다.그는 그녀의 손목을 부러뜨리려는 듯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레스토랑 밖으로 끌어낸 다음 차에 밀어 넣었다.차는 쏜살같이 달려 나갔고 구승훈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강하리도 당연히 조용히 있었다. 구승훈에게 김주한을 어떻게 처리했는지 묻지도 않았다.이 상황에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어쨌든 김주한은 송유라 소속사의 대표인데 어떻게 강하리 때문에 김주한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겠나?차는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멈춰 섰다.구승훈은 차에서 내려 넥타이를 풀고 건물 쪽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집에 가.”강하리는 떨리는 손으로 옷깃 단추를 채우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집으로 돌아온 구승훈은 바로 욕실로 들어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욕실에서 나와 강하리에게 다가갔다.강하리는 저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구승훈은 그녀에게 숨을 틈도 주지 않고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옷깃을 잡아당겼다.방금 잠겼던 단추가 다시 한번 그의 손에 의해 찢어졌고 사방으로 튀어 나갔다.그에게서 온화함을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녀의 몸에 걸친 옷을 모두 찢어버릴 정도로 거칠기까지 했다.강하리는 갑자기 구승훈이 얼마나 화가 났는지 깨달았다.그가 아이를 해칠까 봐 두려워
하지만 강하리는 눈물을 통제할 수 없었다.구승훈은 베란다로 나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들이마신 후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형, 무슨 일이야?”구승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김주한이 여배우들과 같이 있는 사진 사본을 그 사람 처남한테 보내줘.”구승재는 잠시 당황했다.김주한은 돈 많은 여자와 결혼하여 성공한 남자였다.그가 큰돈을 벌 수 있었던 이유는 아내의 처가 때문이었다.김주한 아내의 성은 최 씨였는데, 최씨 가문은 창업 초기부터 항상 회색지대에서 활동했다.지금 최씨 가문의 사업은 김주한의 처남이 책임지고 있다.김주한의 아내는 오빠들의 예쁨을 받으며 응석받이로 자랐다.그런 그녀가 김주한과 결혼한다고 했을 때 최씨 가문에서는 내키지 않았지만 딸이 원하니 최씨 가문은 김주한을 지원해 줄 수밖에 없었다.초기에 김주한은 사고도 치지 않고 조용히 있었지만, 사업이 점점 더 커지면서 점차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놀면서도 감히 큰 사고를 치지는 않았다.대부분의 경우 소속사의 연예인에게 찝쩍댔다. 그와 만난 연예인들은 약간의 혜택을 받고 나서는 감히 큰소리를 치지 못해서 사람들은 알고도 모른 척했다.하지만 이 사진들이 김주한의 처남에게 보내지면 김주한은 매우 곤란해질 것이다.구승재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그 사람이 형을 건드렸어? 아니면... 설마 그 사람이 송유라한테 뭐 한 거야?”그렇게 물은 후 구승재는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어쨌든 송유라는 김주한 소속사의 연예인이었다.그리고 송유라 외에 구승훈을 그렇게 간섭하게 할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았다.강하리는...이제 그조차도 강하리에 대한 형 구승훈의 태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분명히 신경 쓰는 것 같지만 그녀에게 매우 잔인했다. 그렇다고 관심이 없다고 하기에는 그녀를 잘 챙겨주었다.구승훈은 더 이상 이유를 설명하지 않고 대충 말했다.“그건 아니지만 혼 좀 내주려고.”그렇게 말한 후 그는 전화를 끊고 담배를 한 모금 깊게
강하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대답도 없었다.당연히 그녀는 억울했지만 그걸로 이 남자의 동정이나 부드러움을 얻을 수는 없었다.“김주한이 집적거릴 때 못 봤던 거야, 아니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거야?” 구승훈은 강하리의 목덜미를 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도록 했다.하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김 대표님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거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송유라는 협조하지 않고, 매니저는 전화도 받지 않는 상황에 구 대표님은 송유라를 모델로 고집하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구승훈은 바로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일을 제대로 못 하겠으면 사람을 바꿀 거야!”“대표님, 업무에 협조하지 않은 건 송유라라는 걸 분명히 해 주세요!”구승훈은 코웃음을 쳤다. “유라가 왜 협조를 안 하겠어? 강하리, 내가 유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어? 네가 어떤 태도로 유라를 대했는지 생각해 봐!”강하리는 숨 막힐 듯 가슴이 아파 눈을 내리깔았다.송유라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자신을 괴롭힌 건 송유라가 아닌가?강하리는 지금껏 참아온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눈엔 그녀의 잘못만 보이고 송유라가 그녀를 괴롭히는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잠시 뒤 강하리는 웃으며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그럼 대표님은 모든 게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구승훈은 소파에 몸을 기대었고, 무표정한 얼굴엔 조금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내가 말했듯이 누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강하리, 네가 송유라와 맞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강하리는 심장이 바늘에 찔리듯 아팠고 안색도 약간 하얗게 변했다.확실히 그녀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송유라의 뒤에는 송씨 가문이 있었고 곁에는 구승훈이 있었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떠오르는 스타인데 뭘 갖고 그녀와 맞선단 말인가?강하리는 구승훈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그는 처음부터 송유라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냉정하게 그녀에
“오늘 안 하면 안 돼요?”구승훈은 잠시 멈칫했다. “강 부장, 내가 너한테 그 많은 돈을 들인 이유가 나한테 반항하라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심장이 쿵 했다.그렇다, 그녀는 구승훈이 욕망을 분출하기 위해 찾은 존재였다. 어떻게 그걸 잊고 있었을까?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의 요구에 협조했다.구승훈은 그녀를 처벌하듯 아주 잔인하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마치 그녀를 산 채로 잡아먹고 싶은 것 같았다.강하리는 그에게 협조하면서도 너무 세게 하지 않도록 부탁했다.새벽 두 시까지 뒤척이고 나서야 구승훈은 마침내 멈췄고, 강하리는 지쳐서 얼굴에 흐르는 땀이 쇄골에 떨어졌는데 약간 아파서 보니 거기에는 구승훈이 남긴 이빨 자국이 있었다.김주한이 남긴 붉은 자국은 모두 이빨 자국으로 덮여 있었다.뜨거운 샤워 물을 틀어놓은 구승훈에게서 조금의 온화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는 그 이빨 자국을 내려다보며 강하리에게 물었다.“안 아파?”강하리가 고개를 젓자 구승훈은 큰 손으로 그 부위를 꽉 눌렀다.“이제 아파?”강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지만 구승훈은 조금도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그래, 그렇게 아파야지. 강 부장, 네 주제를 파악하고 오늘처럼 다시는 자신을 더럽히지 마.”강하리는 자신을 위해 해명하고 싶었다.“난 더럽지 않아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더럽혀지지 않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그 말에 강하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그의 말대로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런 상황에서 구승훈이 오지 않았더라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김주한은 손에 다 넣은 고기를 놓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원래는 야외 자리로 예약했는데 그 사람이 장소를 안으로 바꿀 줄은 몰랐어요.”“그래서?”구승훈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해명이 아니었다.“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강하리는 겨우 말을 꺼냈다.그제야 구승훈은 만족한 표정으로
강하리는 자기가 이른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어젯밤에 자신의 입으로 구승훈에게 송유라가 잘 협조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김주한을 찾아간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구승훈이 진짜로 송유라에게 경고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송유라는 그의 첫사랑이고, 구승훈은 한 번도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아마도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강하리의 마음은 살짝 흔들렸다.심장이 벌렁벌렁해서 침착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 너무 불쌍해 보였다. 구승훈이 조금만 잘해줘도 그녀는 남몰래 한참 동안 기뻐했기 때문이다.강하리는 장 매니저와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촬영 준비를 했다.사진작가와 얘기를 마친 뒤 또 현장 스태프와도 의논했다.모든 준비를 마치자 송유라도 메이크업을 끝냈다.송유라는 강하리의 앞으로 와서 웃으며 말했다.“승훈 오빠가 나를 위해 환영회를 열어준다고 했으니 너도 와서 같이 놀아.”강하리는 단칼에 거절했다.“싫어. 내가 가면 다들 불편할 텐데.”말을 마친 뒤 그녀는 돌아서서 옆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송유라는 기뻐서 활짝 웃었다.“겁나? 아니면 승훈 오빠가 나한테 너무 잘해줄까 봐 질투 나?”강하리는 가슴이 저릿저릿했다.확실히 구승훈과 송유라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강하리는 아주 오랫동안 노력해야 어쩌다 한번 구승훈이 그녀에게 잘해주는데, 송유라는 언제든지 그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구승훈은 마음을 아끼지도 않고 숨기지 않으며 송유라에게 잘해주었다.그것에 비하면 강하리는 자신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강하리는 송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유라 씨, 곧 촬영 들어가요.”송유라는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촬영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기획안 자체는 육가현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송유라는 육가현과 스타일이 매우 달랐다.사진작가가 불만족스러워하자 강하리는 그 자리에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