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시선을 내리며 눈동자에 비친 복잡한 감정을 숨겼다.“아니요, 잔 적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전화를 끊었고 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전화기를 옆에 내려놓았다.옆에 있던 구승재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형, 강하리 씨 괜찮대?”구승훈은 대답 대신 이렇게 물었다.“알아보라고 한 건 어떻게 됐어?”구승재는 순간 속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정주현 잘못은 아니야. 그때 노진우도 함께 살펴봤는데 안현우가 가지고 간 장난감에 카메라가 숨겨져 있었어. 두 사람은 물건들을 보지도 않고 그냥 쓰레기통에 버렸고 카메라를 보니 청소하는 아주머니가 쓰레기를 치운 건 맞아. 영상 올린 사람도 그냥 우연히 주웠다고 했어.”구승훈은 콧방귀를 뀌며 웃는 얼굴로 구승재를 바라봤지만 눈빛은 서늘하기 그지없었다.“그런 걸 주울 사람이 있을까?”구승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그였다면 절대 주울 리 없는 물건이었다.쓰고 싶으면 새 걸 사서 쓰면 되지, 병이 있을지도 모르는 데 남이 쓰던 걸 왜 주워가겠나.구승훈의 눈빛이 점점 더 서늘해졌다.“송씨, 안씨 가문 사이에 오간 게 없는지 확인해 봐, 특히 송씨 가문 쪽!”송유라와 안현우는 평소에도 사이가 좋았는데, 이번 일에 정말 송유라가 관여하지 않았을까?휴대전화를 움켜쥔 구승훈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였고 빠르게 대답한 구승재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형, 강하리 씨한테 왜 다치고 열 나는 건 얘기하지 않았어? 그리고 며칠 전부터 안씨 가문이 여러 가문과 손잡고 에비뉴를 공격한다는 얘기는 왜 또 안 했어?”구승훈은 그를 힐끗 돌아보았다.“아직 그 얘기를 할 때가 아니야, 가서 이 일부터 처리해.”강하리는 전화를 끊고 손연지에게 휴대폰을 돌려주었다.손연지는 줄곧 웹사이트를 훑어보다가 잠시 후 소리를 질렀다.“하리야, 그 영상들 진짜 사라졌어. 얼른 봐, 호텔 측에서 너한테 사과하고 풀영상까지 전부 다 내보냈어. 네가 화장실에서 끌려 나와 엘리베이터에 탄 것부터 안현
강하리는 그 약이 뭐가 그렇게 특별한지 잘 몰랐다.다만 그날 밤 김주한이 준 약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약이라는 것만 알았다.김주한이 준 약은 최소한 정신은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날 밤, 그녀는 정말 자신을 전혀 통제할 수 없었다.혼란스러워하는 강하리의 표정을 보며 손연지는 갑자기 불안해졌다.“하리야, 이게 어떤 약인지 알아?”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렸다.“뭐 이상한 것 있어?”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은 손연지의 마음은 순간 형언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그 약은 해독약이 없어.”손연지의 말이 끝나자 강하리가 당황했다.“해독약이 없다니 무슨 말이야?”약에 대해 설명하는 손연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대체 이런 약은 왜 개발하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었다.그녀가 생각했을 때 의약품은 환자를 치료하고 사람들의 생명을 구해 고통을 덜어주는 데 사용되어야 하지만 누군가는 이런 약을 돈과 욕망을 위해 사용하고 있었다.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마침내 말을 이어갔다.“얼마 전 우리 병원에 막 열여섯 살이 된 여학생이 설날에 친구들을 따라 놀러 갔다가 누군가 이런 약을 탄 걸 먹게 됐어. 병원에 와서 여러 의사들을 불렀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가족은 죽어도 남자로 해결하지는 못하겠대. 결국 그 여학생은...”손연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여학생은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지금까지 깨어나지 못하고 있어.”강하리의 심장이 철렁했다.“게다가 다시 깨어날 확률이 매우 낮고 신체의 여러 장기가 매우 심각하게 손상되어 있어.”손연지는 말을 하며 저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어떻게 사람이 이런 약을 써?”멍하니 듣고 있던 강하리의 마음이 어느새 뒤죽박죽되었고 손연지는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다.“하리야, 구승훈이 이런 약이라는 걸 알았어?”강하리는 고개를 저었다. “잘 모르겠어.”손연지는 순간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그 사람도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거면? 하리야, 우리가 괜한 사람 원망한 건 아닐까?”강하리는 한참이 지나서야
멍하니 그 말을 듣고 있던 강하리가 결국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정주현 씨, 그날 밤 구승훈 씨는 내가 어떤 약을 먹었는지 알아요?”정주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속으로는 모른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사실대로 실토했다.“알아요, 하지만 기회를 틈타 몹쓸 짓을 한 건 사실이잖아요 하리 씨.”강하리는 순간 침묵했고 정주현이 뭐라고 말을 덧붙였지만 들리지 않았다.정주현이 다시 그녀를 불러서야 문득 정신을 차렸다.“하리 씨, 내 말 듣고 있어요?”“네?”정주현은 혀를 찼다.“우리 영감탱이가 하리 씨 몸 어떠냐고 물어요. 또 어디서 들었는지 하리 씨 어머님이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언제 한번 뵈러 간대요.”강하리는 웃음을 터뜨렸다.“정 회장님께 전 괜찮으니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 엄마는 굳이 보러 오실 필요 없어요.”정주현이 다시 혀를 찼다.“알아서 하라고 해요. 이런 식으로 직원들 챙겨준다고 생각하나 보죠, 내버려둬요.”강하리는 짧게 대답을 한 뒤 전화를 끊었고 이윽고 손연지가 다가와 물었다.“구승훈이 안대?”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손연지는 강하리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우리가 괜한 사람 탓한 거야?”강하리는 한참을 제자리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휴대전화를 꺼내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벨이 몇 번 울리더니 구승훈이 전화를 받았다.“하리야.”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고 강하리는 입술을 꾹 다물다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구승훈 씨, 그 약 해독제가 없는 거 알고 있었죠?”구승훈 쪽에서 갑자기 조용해지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답했다.“그래, 알아.”이미 알고 있었지만 구승훈 본인이 인정하는 말을 들으니 강하리는 가슴이 저릿했다.“그럼 왜 나한테 말 안 했어요!”구승훈이 웃었다.“하리야, 솔직하게 말해도 네가 믿었겠어?”강하리는 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만약 구승훈이 그 자리에서 바로 말했다면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이 개 같은 남자가 선을 넘은 게 이번만이 아니었고 그는
강하리는 전화기를 꽉 쥐었고 그녀가 말을 하기도 전에 구승재의 목소리가 들렸다.“우리 형 상처가 심각해요. 안현우 때문에 며칠째 할아버지와 맞서고 있는데 할아버지가 가볍게 때리는 것도 아니고, 예전 상처가 낫지도 않는데 새 상처가 생기니까 어젯밤부터 열도 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본인은 괜찮다고 우기면서 약도 안 먹고 그냥 이렇게 버티고 있어요.”그 말에 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구승훈의 동정심 유발 작전은 아닌지 의심했다.하지만 그녀를 돕느라 다친 건 사실이었기에 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물었다.“그 사람 아파트에 있어요?”“네, 아파트에 있어요. 며칠 전 할아버지 집에 갇혀 있다가 어제 막 나왔어요.”강하리가 답했다.“제가 이따가 갈게요.”“네.”전화를 끊은 강하리는 몇 초 동안 멍하니 있다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짐을 챙겨 곧장 아파트로 갔다.아파트 문 앞에 도착한 그녀는 먼저 문을 두드렸지만 문을 열어줄 사람은커녕 안쪽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결국 그녀는 지문을 이용해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현관 신발장 위에는 지난번에 신었던 새 슬리퍼가 놓여 있었고 강하리는 안을 흘끗 들여다보고는 슬리퍼를 신었다.집은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구승훈 씨.”강하리가 불렀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었고 그녀는 닫혀 있는 침실 문을 바라보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문에 짓눌렸다.곧바로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고, 구승훈은 그녀를 품에 안고 고개를 숙여 쳐다보고 있었는데 짙은 눈동자에 온통 그녀의 모습뿐이었다.당황한 강하리는 그를 밀어내려다가 문득 그의 얼굴이 너무 창백하고 이마가 거즈로 싸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순간 동공이 살짝 움츠러들더니 한참 후에야 물었다.“할아버지가 때렸어요?”라고 물었다.구승훈이 짧게 대답하자 강하리는 마음속으로 약간의 죄책감을 느꼈다“이런 일에 엮이게 해서 미안해요.”구승훈은 웃으며 고개를 숙여 이마를 그녀의 이마에 갖다 댔다.“엮인
구승훈의 눈빛이 순식간에 어두워지자 옆에서 선명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강하리가 급히 전화기를 낚아챘다.“무슨 일이야?”손연지의 목소리엔 온통 초조함뿐이었다.“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어. 간병인 말로는 아주머니를 재활실에 모시고 가서 문 앞에서 기다리는데 다른 사람들 다 나와도 아주머니가 보이지 않아서 불안한 마음에 들어가 살펴봤더니 재활실 어디에도 아주머니는 없었대. 의사 선생님들한테도 다 물어봤는데 다들 보지 못했대.”강하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리더니 전화를 끊고 곧장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구승훈은 잡고 싶어도 잡을 수 없었고 그도 서둘러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그녀를 쫓아 나갔다.아래층에 내려와 보니 강하리는 이미 차에 타고 있었고 구승훈은 달려가서 그녀를 끌어내렸다.하얗게 질린 강하리의 얼굴을 보고 구승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자신의 차에 태운 뒤 조심스럽게 안전벨트까지 매주었다.“지금 상태로 운전하면 위험해. 내가 데려다줄게.”강하리는 이미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다.구승훈의 차는 빠르게 달려갔고 가는 길에 노민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통화가 끝나고 나서야 그는 가슴 아픈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봤다.강하리는 새하얀 얼굴로 좌석에 기대어 유난히 초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걱정하지 마, 이미 사람 보내 알아보고 있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요.”구승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하려던 찰나 강하리가 시선을 내리며 덧붙였다.“지금 내 곁에 있어 줘서 고마워요.”구승훈은 잠시 멈칫하다가 순간 지난번에 그녀 혼자 정서원의 생사를 마주하게 했던 기억이 떠올라 죄책감이 밀려왔다.“미안해, 하리야.”강하리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손연지는 막 차를 주차한 상태였다.세 사람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고 병동 입구에 도착했을 때 정양철도 그곳에 있었다.강하리는 순간 당황했다.“정 회장님, 여긴 어떻게 오셨어
강하리가 참았던 눈물을 한꺼번에 쏟아내자 구승훈이 그녀를 진정시키며 다독였다.“이미 사람 보내서 그 재활사 찾고 있어.”강하리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의사한테 가 봐요, 난 괜찮으니까.”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자 눈은 붉게 물들어 있었지만 아까의 당황한 기색은 사라진 듯했다.대체 이 여자는 언제부터 그에게 기대지 않고 홀로 버티는 게 습관이 된 걸까, 이런 그녀의 모습이 조금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생각해 보면 이 모든 게 다 자기 때문인 것 같아 구승훈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난 괜찮아. 아주머니 일은 내 쪽에서 알아보고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강하리는 심호흡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구승훈은 철저하게 알아보면서 재활사뿐만 아니라 병원 내 청소부들까지 모조리 훑었다.심지어 사람을 보내 지역 전체의 카메라를 돌려보도록 했다.“돌아갈 거야, 아니면 여기서 기다릴 거야?”강하리는 여기서 기다리려다 구승훈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고는 결국 이렇게 말했다.“돌아가서 기다려요.”결국 구승훈은 강하리를 데리고 다시 아파트로 돌아갔다.손연지는 강하리와 함께 돌아가려고 했지만 강하리의 안색을 보고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금 자신과 돌아가면 그저 불안하게 기다리겠지만, 구승훈과 함께 있으면 좀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어느새 달려온 노민우는 함께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강하리 씨는 대체 누구에게 밉보여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거야.”이틀 전 안현우의 일도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젠 어머니에게도 사고가 생겼다.손연지는 그를 흘겨보았다.“누가 알겠어요, 우리 하리가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싫은 사람이겠죠.”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역겨운 표정을 지었고 노민우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쪽은 왜 그렇게 나한테 불만이 많아요?”손연지는 콧방귀를 뀌었다.“당신이 아니라 비열한 사람들한테는 다 그래요.”노민우는 순간 욱해서 맞받아쳤다.“내가 왜 비열하죠? 말 가려서 해요. 내가
“네 조상님이다 이 자식아!”말을 마친 손연지는 옆에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집어 들어 노민우에게 뿌렸다.그녀가 이런 식으로 나올 줄 몰랐던 노민우는 스프레이를 정면으로 맞자 눈이 너무 매워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이윽고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하반신에 무언가 닿았다.“꺼져! 안 그러면 당장 여기서 꿰매줄 테니까!”노민우가 힘겹게 눈을 뜨자 번뜩이는 날카로운 메스가 자신을 겨냥하고 있었다.그는 손연지를 노려보았다.“당신 의사야?”손연지는 웃었다.“당연하지, 그것도 정관 수술 전문으로 하는 남성 전문의야. 앞으로 필요한 게 있으면 말 바꾸지 말고 바로 이 조상님께 와 알았지?”그렇게 말한 뒤 손연지는 곧바로 차 문을 열고 노민우를 밀쳤다.노민우는 손연지의 차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기가 막혀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천하의 노민우가 생애 처음 여자에게 호신용 스프레이를 맞고 아랫도리가 메스로 위협을 당했다!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라 결국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운전을 하던 구승훈은 휴대폰을 힐끗 보고 스피커로 돌렸다.“무슨 일이야?”저쪽에서 노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승훈아, 그 여자 변태 이름이 뭐야?” 구승훈은 순간 당황해서 고개를 돌려 조수석에 앉아 있던 강하리를 바라보았지만 강하리는 다른 생각을 하는 듯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이었다.하지만 구승훈은 노민우가 손연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목을 가다듬었다.“어느 여자 변태를 얘기하는 거야?”“강하리 씨 친구 있잖아.”강하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노민우 씨? 손연지 말하는 거예요?”노민우는 강하리의 목소리에 순간 당황했다.“이름이 손연지예요? 알았어요, 고마워요, 강하리 씨.”노민우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자 강하리가 다급하게 불렀다.“노민우 씨, 연지는 왜요? 연지 괴롭히지 마세요!”“괴롭히는 게 아니라 우리 병원에 스카우트하려고요!”그렇게 말한 뒤 그는 전화를 끊었고 강하리가 다소 걱정스러운
강하리는 즉시 그를 밀어냈다.“나가요!”하지만 구승훈은 다시 그녀를 껴안았다.“걱정하지 마, 다 잘될 거야.”남자는 그녀의 귀에 속삭이고는 그냥 돌아섰다.강하리는 멍한 표정으로 닫힌 욕실 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일부러 놀리는 건가.문득 강하리는 마음이 시큰해지더니 한참 후에 애써 미소를 지었다.‘그래, 괜찮을 거야. 엄마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그렇게 믿어야지.’샤워를 하고 나오니 구승훈은 옆에서 낮은 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었고, 그녀가 나오는 것을 본 그가 황급히 둘러대며 전화를 끊었다.“왜 젖은 머리로 나왔어?”말을 마친 그가 침실로 들어가 드라이기를 꺼내더니 소파에 앉았다.“이리 와.”그의 옆으로 다가간 강하리가 소파에 앉으려는데 구승훈이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에 앉혔다.강하리 몸이 순간 경직되자 구승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걱정 마, 아무것도 안 해. 아주머니도 계시잖아.”강하리는 고개를 홱 돌려 그를 노려보았다.저쪽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고 있던 아주머니는 그 말에 몰래 웃으며 뒤돌아 부엌으로 들어갔고 강하리의 얼굴은 점점 더 일그러지더니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드라이기를 집어 들었다. “내가 직접 할게요.”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옆으로 걸어갔고 구승훈도 더 강요하지 않았다.휴대폰이 계속 울리자 강하리를 보낸 뒤 결국 집어 들었고 발신자를 확인한 구승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무슨 일이세요?”저쪽에서 들려오는 구동근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분노가 섞여 있었다.“너, 오늘 내가 주선한 맞선 자리 왜 안 갔어! 이놈이 점점 기어오르려고!”구승훈은 강하리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차갑게 웃었다.“날 위한 맞선 자리에요 아님 할아버지가 원하는 여자예요? 마음에 드시면 본인이 결혼하시지 왜 저한테 강요하세요.”“개자식, 무슨 헛소리야! 또 그 망할 것이랑 같이 있는 게지! 구승훈, 내가 직접 그 물건 처리하게 하지 말아.”구승훈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며 잘생긴 눈가에 차가운 서리가 내려앉았다.“그 여자
구승훈은 강하리를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결국 순순히 입을 다물었고 손연지는 구승훈을 보고 웃었다.구승훈은 굳어진 표정으로 두 사람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가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강하리를 한 손으로 잡아당긴 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오늘 밤에 보상해 줄 거야?”강하리는 순간 조금 전 당황스러운 장면이 떠올랐고 손연지가 지금 슬픈 상황에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싶지 않았다.“가만히 있어.”구승훈의 입술이 그녀의 귀에 닿았다.“그러면 손으로만 하는 건?”남자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가로질러 그녀가 승낙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꽉 감싸자 강하리는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이따가 내려가선 얌전히 있어.”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내 말은 들어야지.”손연지는 식사 내내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식사가 끝날 무렵 강하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노민우였다.강하리는 손연지를 바라보며 바로 전화를 끊었고 손연지는 못 본 척했지만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하지만 잠시 후 구승훈의 휴대폰도 울렸고 그는 눈썹을 치켜들며 전화를 집어 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바깥에 도착하고 나서야 구승훈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노민우가 아닌 노민준의 전화였고 그는 뒤를 돌아보고는 전화를 받았다.“그 주사 효과가 어때?”구승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괜찮아. 지난 이틀 동안 상태가 전보다 훨씬 안정됐어.”거짓말이 아니었다. 구승훈은 노민준이 건넨 주사를 맞고 나서부터 지난 이틀 동안 단 한 번의 이상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그가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이유였다.노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포기하지 말라고 했잖아.”짧게 대꾸한 구승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말을 마친 노민준이 잠시 멈칫했다.“참, 내 동생이 할 말이 있대.”곧이어 저쪽에서 노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훈아, 손연지는 지금 어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네 여자를 왜 나한테 물어봐?”“승훈아, 나도 네가 강하리 씨
강하리는 사실 자신이 꽤 한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거듭되는 상처에도 수없이 용서했다.마치 구승훈이 없으면 모든 게 그대로 멈춰버릴 듯이.구승훈이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지만 구승훈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그건 그녀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또 무슨 일이 생기면 난 당해도 싸.”강하리는 손연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손연지는 다가와 강하리를 껴안았다.“구승훈 이 개자식이 전생에 우주라도 구한 거야?”강하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연지의 어깨에 기대었다. 의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위로에 가까웠다.“그러는 넌, 대체 무슨 일인데?”자기 일을 언급하자 손연지는 순식간에 흥미가 사라진 표정이었다.“별건 아니야. 사실... 하리야, 나 임신했었어.”강하리는 깜짝 놀랐다.“뭐?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아기는?”손연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노민우는 다른 여자와 약혼하고 있었어. 노민우에게 말할 생각도 없었고 사실 아이도 남길 생각 없었어. 노씨 가문이나 노민우에겐 관심 없어. 40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하려고 했는데 그날 밤 내가 당직일 때 노민우 약혼녀가 병원에 찾아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난동을 부렸어. 병원에서도 노씨 가문에 밉보일 수 없어서 날 해고했어.”강하리의 표정이 차가워졌다.“그러고 나서?”손연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날 아이를 지웠는데 노민우가 어떻게 알았는지 낙태한 걸 알고는 나한테 화를 냈어.”강하리의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다.노민우가 약혼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 손연지에게 연락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멀쩡했었다.고작 얼마나 됐다고 노민우 그 개자식이 손연지를 이렇게 힘들게 한 건지!“왜 나한테 말 안 했어?”손연지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말해도 달라질 게 뭐가 있어. 그래도 노민우를 그냥 두지는 않았어. 자기가 뭐라고 나한테 화를 내? 약혼까지 했는데 내가 아이를 낳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노씨 가문에 찾아가서 업무에
강하리의 눈빛이 번쩍이며 구승훈의 말에 담긴 의미를 순식간에 알아차렸다.그가 오늘 인터넷 속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매달리는 역할을 자처했으니 이젠 그녀가 자신을 데려가야 한다는 말이었다.강하리는 구승훈의 목에 팔을 걸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속삭였다.“보답이라, 문제없지. 구 대표님이 우선 그 쓸데없는 여자들 먼저 해결하면!”이번 일에 진시연이 연루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석미란이 심준호에게 고소당한 이후 석연란조차 한동안 잠잠했고 그녀가 대외적으로 자신에 대한 악담을 퍼뜨릴지 몰라도 온라인에 증거를 남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니 누가 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개자식, 하여간 여자가 너무 많이 꼬인다.강하리는 계속해서 구승훈과 사무실에서 꽁냥거리진 않았다.집에 손연지가 있었기에 가는 길에 백아영에게 전화를 건 강하리는 구승훈을 따라 별장으로 돌아왔다.어두운 별장을 보며 강하리는 손연지가 아직 자는 줄 알았다.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인공지능이 불을 켜자 갑자기 별장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강하리가 가방을 내려놓고 손연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갑자기 구승훈이 뒤에서 안았고 곧이어 그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소파에 쓰러뜨렸다.강하리가 말하기도 전에 구승훈은 그녀의 입술을 막았고 남자의 손이 불순하게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졌다.“자기야, 다리 예쁘다.”강하리는 남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이 개자식!머릿속엔 그 짓밖에 없는 건지.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손연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다.“당신... 읍...구승훈은 거침없이 그녀의 스타킹을 찢어버리고는 그녀의 손을 끌어 벨트로 가져갔다.“도와줘, 자기야.”강하리의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기다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종아리를 잡고 부드럽게 주물렀다.“못 기다려.”강하리는 그를 세게 밀었다.“아니, 내 말은...”“어머!”강하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단 너머에서 손연지
주해찬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래?”주해찬은 정말 강하리에게 계속 사실을 숨길 생각도, 진시연을 도울 생각도 없었다.그냥... 강하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때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러면 강하리의 마음속 망가진 그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그런데 구승훈이 이토록 매몰차게 굴 줄은 몰랐다.아버지가 얼마나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부패한 관리들처럼 부정부패와 뇌물 수수를 일삼지는 않을 것이고 할아버지도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둘 리 없었다.하지만 부패를 철저히 타도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 작은 선물을 몇 개 받은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게다가 구승훈은 그 증거를 노골적으로 인터넷에 올렸고 관련 부서에 실명으로 가차 없이 신고했다.구승훈은 결코 자신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었다.그가 원하는 건 주해찬의 타협과 강하리 앞에서 완전히 신뢰를 잃는 것이었다.사실 구승훈이 처음 병원에서 그를 떠봤을 때부터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다만 줄곧 비현실적인 희망을 붙잡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주해찬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의 완전한 패배라는 걸.“미안해, 하리야.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할게. 그리고... 인터넷에 너에 대한 루머를 유포한 것도 이모가 한 짓이야. 이모한테도 사과하라고 할게. 그리고 하리야, 내 다리...”주해찬은 말하며 심호흡하듯 잠시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사실 거의 다 나았어.”강하리는 당황했고 주해찬은 다시 입을 열었다.“미안해. 조금만 더 나랑 같이 있어 주길 바라서, 구승훈이랑 다시 만나서 네가 또 상처받을까 봐 내가...”“선배.” 강하리가 갑자기 주해찬의 말을 가로챘다.“고마워요.”그녀가 고맙다고 말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강하리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예전에 여러 번 날 도와주고 날 이렇게 생각해 주고 지금도 날 위해 나서서 진실을
두 사람 관계에 있어서 누가 봐도 을인 모습이었다.사무실에 있던 몇몇 기자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에비뉴와 정안그룹이 강하리 명의로 되어 있다고?그렇다면 강하리 혼자서도 B시 재벌과 맞먹는 것 아닌가.여러 기자가 모두 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봤다.구씨 가문의 권력자 구승훈이 자신은 아내 덕분에 먹고 사는 놈이라고 말하다니, 그것도 제법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그러면 강 대표님이 구 대표님과 송유라 씨 사이에 개입했다는 건...”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제가 우리 강 대표님과 언제 만났는지 아세요?”기자는 고개를 저었고 구승훈은 오른손 손가락으로 왼쪽 약지에 낀 반지를 살며시 돌리면서 시선을 내리깔고 웃었다.“아홉살 때 만났어요. 그 여자가... 제 삶의 유일한 구원이었죠.”구승훈은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자기야, 미안해. 오랜 세월 많이 힘들었지? 오늘 여기서 맹세할게. 나 구승훈은 평생 강하리의 것이란 걸.”강하리는 화면 속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코끝이 시큰거렸다.개자식, 인터뷰만 할 것이지 왜 저런 말을 해서는.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구승훈의 말에 그녀의 마음속에 작게나마 남아있던 불편함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걸.인터넷에 그 많은 루머들이 떠돌아다녀도 언제나 그녀를 감싸줄 사람이 있었다.구승훈의 인터뷰는 곧 화제성을 끌어모았고 강하리를 욕하던 사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댓글 창에는 축복의 글이 가득했다.강하리는 휴대폰에 달린 축복의 댓글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승훈의 목소리에는 미소가 묻어났다.“강 대표님, 나 보고 싶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오늘 밤 일찍 돌아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맛있는 음식만 있어?” 강하리는 멈칫했다.“또 뭘 원해?”“다리. 자기야, 한번 해보자.”강하리는 이를 갈며 그냥 전화를 끊었고 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양철은 죽었지만 애초에 그가 강하리 어머니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이대로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시점에 정양철과 관련된 또 다른 단서가 나올 줄이야.“확실해요?”“물론이죠.”구승훈은 전화를 끊고 심준호에게 연락했고 그와 대화를 마친 뒤 밖을 향해 말했다.“시작하지.”잠시 후 비서가 기자 10여 명을 데리고 구승훈의 사무실로 들어왔다.나문빈이 홈페이지를 정상으로 되돌리자 강하리를 욕하던 사람들은 모두 SNS로 옮겨갔고 과거 여러 번 검색어에 오르며 욕을 먹었던 흑역사도 전부 밝혀졌다.SNS에서 누군가가 돈으로 사주했는지 갈수록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안예서는 점점 더 고조되는 SNS의 화제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서를 하나하나 처리하는 강하리를 보며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대표님, 이걸 제대로 밝힐 방법을 찾아야겠어요.”강하리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럴 필요 없어. 욕하다 지치면 자연스레 그만두겠지.”안예서가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설득하려는 그녀는 이미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안진 그룹 총괄팀장과 약속 잡아줘.”안예서는 다소 무력한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사무실을 나섰다.그녀가 사무실을 나간 뒤에야 강하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손가락이 SNS 아이콘 위에서 잠시 멈칫하다 클릭했다.하지만 들어가서 보니 그녀를 욕하는 내용은 사라지고 안예서가 말했던 것들도 전부 보이지 않았다.대신 라이브 방송 하나가 떠서 클릭해 본 강하리는 깜짝 놀랐다.구승훈이었다.뒤에 비치는 장소는 그의 사무실 같았다.남자는 검은 셔츠를 입은 채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손가락엔 어느새 반지를 끼고 있었다.자세히 보면 그녀가 끼고 있는 반지와 같은 모델이지만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크지 않을 뿐이었다.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에 낀 반지로 시선을 옮겼고 그 시각 왠지 모르게 인터넷에서 자신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다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무슨
구승훈은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밤에 보상해 줄래?]손연지가 왔다며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 답장하려던 찰나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고 안예서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큰일 났어요.”강하리는 잠시 멈칫했다.“뭔데, 천천히 얘기해 봐.”“오늘 아침 일찍 우리 회사 홍보 사이트가 해킹됐는데 사이트에 온통 대표님이 스폰 받았다는 이상한 댓글이 가득해요.”안예서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고 강하리는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알겠어.”전화를 끊고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니 그녀의 눈에 온통 적나라한 욕설들이 가득 들어왔다.스폰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몸을 대주고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는 말도 있었다.심지어 구승훈과 송유라 관계를 그녀가 망쳤다는 사람도 있었다.송유라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녀의 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지금 JM의 사이트에도 그들이 가득했다.[내연녀는 내연녀지. 뭐라 해도 해명하지 못해.][그냥 내연녀도 아니고 몸 팔아서 JM 파트너 자리를 꿰찼는데 역겹지도 않아?][JM은 유엔 산하의 번역 회사인데 저런 사람이 대표야?][허, 어떻게 그 자리로 올라갔는지 누가 알겠어. 또 유엔에 어느 높으신 분을 모셨겠지.]강하리는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버렸다.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가 손연지에게 설명한 뒤 회사로 차를 몰고 가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강하리는 문득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이번에도 누가 자신을 노린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어제의 사건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나머지는 진태형의 해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상대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강하리는 회사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곧장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안예서가 반갑게 맞이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리는 차 안에서 잠든 손연지를 바라보다가 노민우의 전화를 받았고 노민우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안함이 묻어났다.“강하리 씨, 손연지한테 연락이 왔어요?”“나랑 같이 있는데 무슨 일 있어요?”노민우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나랑 얘기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같이 있어 줘요.”강하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다.“노민우 씨, 연지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공항에 데리러 갔을 때 밤새 운 것 같았어요. 그쪽이 무슨 사정이 있든 연지를 이렇게 울렸으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거예요.”노민우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연성으로 찾아갈 기세로 강하리는 유난히 단호하게 말했다.노민우는 다소 억울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답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손연지한테 다 설명할게요.”강하리는 손연지를 데리고 그녀와 구승훈의 저택으로 향했고 비몽사몽 눈을 뜬 손연지는 눈앞에 가득 찬 리시안셔스와 정원 뒤편에 있는 성처럼 생긴 저택 건물을 보았다.“세상에, 하리야. 여기가 너 사는 곳이야?”강하리는 그녀의 모습에 비로소 살짝 안도했다.“그런 셈이지.”손연지는 차 문을 열고 곧장 저택으로 향했다.위층과 아래층을 몇 번이나 돌아보더니 갑자기 나와서 강하리를 껴안았다.“자기, 날 먹여 살려줘. 마침 나도 일자리 잃었는데.”강하리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옅어졌다.“일자리를 잃었다니 무슨 말이야?”손연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우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직업도 없고 일자리도 잃었어. 부모님도 나 때문에 창피당했고.”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렸고 손연지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에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괜찮아, 내가 복수해 줄게.”손연지는 코끝이 시큰거렸다.“하리야, 역시 너밖에 없어. 개자식들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이야!”강하리는 손연지를 껴안고 위로하듯 속삭였다.더 이상 구체적인 질문은 하지 않은 채 객실로 데려가 샤워할 수 있도록 욕조
구승훈은 잠든 강하리의 얼굴을 보며 참지 못하고 다가가 입술에 뽀뽀했다.“자기야, 미안해.”강하리의 속눈썹이 두 번 파르르 떨리더니 굳게 감고 있던 그녀의 눈가가 시큰거렸다.구승훈은 오늘도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하리를 껴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 줄이야.겨우 반쯤 잠이 들었을 때 문득 강하리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구승훈, 나도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구승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대로 꿈속으로 빠져들어 갔다.다음 날 아침, 강하리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손연지였다.슬쩍 확인한 강하리가 서둘러 전화기를 집어 들자 저쪽에서 손연지의 코 막힌 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이틀만 거기로 놀러 가도 돼?”강하리는 당황했다.“당연하지. 언제 오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나 지금 B시에 있어.”강하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구승훈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자기야, 방금 남은 인생의 행복을 자기 손으로 망칠 뻔한 거 알아?”강하리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구승훈, 괜찮아?”구승훈이 그녀의 턱을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안 괜찮아. 강 대표님이 호 불어줘.”농담하는 걸 보니 괜찮나 보다.“그러게 누가 함부로 뻗으래.”구승훈은 웃으며 그녀의 귀로 다가갔다.“오늘 밤 다리로 해볼까?”강하리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좀 진지하게 굴 수는 없어?”구승훈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망가졌는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강하리는 손연지 때문에 그와 더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침대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향했다.“손연지, 너 지금 어디 있어?”“아침부터 내 앞에서 애정행각 벌이는 건 좀 아니지 않니?”농담이었지만 손연지의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기에 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렸다.“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손연지가 강하리에게 위치를 보냈고 강하리는 서둘러 샤워를 마친 뒤 문을 나섰다.구승훈이 그녀와 동행하려는데 구승재가 갑자기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