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받을 거예요?”강하리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느라 한참이 지나서야 대답했다.“받든 안 받든 제 일이에요.”정주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너무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오프닝 음악이 울리고 구승훈이 이쪽으로 다가오는데 정주현이 강하리를 끌고 홀로 나서자 구승훈의 발걸음이 멈추며 표정이 서늘하게 변했다.“구 대표님 라이벌이 많네요.”최하영이 불쑥 옆에서 말을 걸었다.“왜요, 선물 못 줬어요?”구승훈은 그를 힐끗 보고는 피식 웃을 뿐 말없이 손에 든 와인 잔을 웨이터의 트레이에 올려놓더니 댄스 홀로 걸어갔다.강하리와 정주현은 오늘 밤 주인공으로서 오프닝을 장식하는 건 당연했다.게다가 두 사람 모두 미모가 뛰어나기 때문에 자연스레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그보다 더 빛나는 남자가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강하리가 빙글빙글 도는 사이 구승훈은 긴 팔을 뻗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강하리는 눈 깜박하는 사이 상대가 정주현에서 구승훈으로 바뀌었다.그녀가 당황하고 있는데 구승훈의 웃음소리가 들렸다.“애송이랑 춤추는 게 뭐가 재밌어?”강하리는 힘껏 그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구승훈 씨, 이럴 땐 제발 좀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구승훈의 눈빛이 강하리에게 고정된 채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하리야, 난 그저 널 행복하게 해주고 싶을 뿐이야.”그녀는 잠시 침묵하다가 대꾸했다.“그럴 필요 없어요.”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어떻게 할 지는 내 마음이지.”강하리는 눈앞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다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구승훈 씨,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 아니라 대양그룹 일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요.”구승훈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난 너한테 주는 거야. 누가 대양그룹에 준다고 했어?”멈칫한 강하리에게 구승훈이 다가와 귓가에 속삭였다.“강하리, 너한테 주는 선물이야. 대양그룹에 팔든 네가 가지든 너만 좋다면 난 상관없어.”남자의 입술이 귓가에 닿을락 말락 했고 은근한 우디향이 그녀의 입과 코로 스며들었다.강하리가
화장실에 도착한 강하리는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예상치 못한 구승훈의 행동이 그녀를 깜짝 놀라게 했다.그 땅은 이제 받아도 문제, 안 받아도 문제였다.개자식, 대체 도와주려는 건지, 난처하게 하려는 건지!손가락을 꽉 움켜쥐고 혼란스러운 생각을 억눌렀다.그녀는 와인 때문인지 얼굴이 온통 빨개진 자신의 모습을 조용히 거울로 바라보았다.몸에서도 열기가 치솟고 있었다.그녀는 얼굴을 부드럽게 두드리며 마음을 진정시킨 후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막 밖으로 나서기 바쁘게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입과 코를 막았고 강하리는 두어 번 심하게 몸부림치다가 의식을 잃었다.그녀가 기절하자 상대는 모자와 큰 치마를 그녀의 몸에 씌우더니 화장실 문을 열고 그녀를 부축하며 걸어 나왔다.“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니까, 왜 말을 안 들어.”이 모습을 본 웨이터가 달려와 도와주려고 했다.“위층에 쉴 수 있는 라운지가 있는데 안내해 드릴까요?”상대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요, 이미 방 준비했어요.”웨이터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여기 위층으로 바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제가 눌러드릴게요.”웨이터가 모퉁이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눌러주자 상대는 강하리를 부축하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서 마침 이쪽으로 향하는 구승훈의 시선을 차단했다.“대표님?”넋이 나간 그의 모습에 옆에 있던 사람이 부르자 구승훈은 뒤를 돌아보며 미소를 지었다.“제가 좀 바빠서요, 다음에 얘기하시죠.”구승훈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는 정말 드물었고, 평소 말을 섞을 만큼 자신의 지위도 높지 않았기 때문에 그 사람은 꽤 아쉬워했다.하지만 구승훈이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렸다는 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그럼 대표님 먼저 일 보세요.”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돌아 화장실로 향했다.강하리가 들어간 지 이미 한참이 지났다.그는 옆에 있는 직원을 바라보며 말했다.“가서 강 대표한테 무슨 일 있는 건 아닌지 봐줄 수 있어요?”웨이터는 서둘러 대답했다.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한 건지, 약 효과 때문에 괴로운 건지 알 수 없었다.자꾸만 옆에 있는 사람의 몸에 밀착하고 싶었다.“더... 더워... 나 너무 힘들어요... 구승훈 씨...”구승훈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마자 안현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지더니 잠시 후 그가 코웃음을 쳤다.“강하리, 여기 구승훈 같은 건 없어. 난 현우 오빠지.”그렇게 말하며 그가 강하리의 얼굴을 향해 손을 뻗는데 강하리가 갑자기 몸부림을 쳤다.약효가 지나갔는지 그녀가 힘겹게 눈을 뜨자 안현우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강하리의 동공이 확 움츠러들었다.“안현우, 꺼져!”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몸에 힘이 조금도 들어가지 않았고 안현우는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꺼지라고? 내가 가면 누가 널 기분 좋게 해주겠어? 강하리, 얌전히 있어. 나 구승훈만큼 잘해!”안현우는 말을 마친 후 강하리를 껴안고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강하리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며 도망가려 했지만 다시 한번 발목이 잡혀 뒤로 끌어당겨졌다.이윽고 그가 벨트로 강하리의 몸을 내리쳤다.“망할 년이 아직도 도망가려고 하네!”강하리는 눈물을 흘렸다.“안현우, 구승훈이 알면 당신 가만두지 않을 거야!”안현우는 웃었다.“안다고 해도 침대 위에서 네 방탕한 모습만 볼 텐데? 생각해 봐, 나랑 자고도 걔가 널 원할까?”안현우가 앞으로 다가가 침대에서 그녀를 끌어 올리며 말했다.“강하리, 보여? 저기에 네가 망가지는 모습이 다 담길 거야.”그가 옆에 설치된 카메라를 가리키며 말하자 강하리의 몸이 덜덜 떨렸다.“안현우, 원하는 게 뭐야? 뭐든 다 들어줄게, 제발 날 보내줘, 응?”안현우는 콧방귀를 뀌었다.“강하리, 내가 원하는 건 너야.”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강하리의 옷깃을 잡아 뜯었고 강하리는 거의 절망에 가까운 몸부림을 쳤다.그러다 안현우가 침대 머리맡에 놓아둔 소품을 집어 안현우의 머리에 온 힘을 다해 내리쳤다.하지만 약에 취해 힘은 턱없이 약했고 안현우는 조금의 상처
구승훈은 강하리를 안은 채 그대로 방 밖으로 나갔고 노진우가 바짝 뒤따랐다.“대표님, 안 대표는...”안현우는 구승훈의 발길질에 숨이 넘어갈 뻔하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통을 꾹꾹 참으며 웃었다.“구승훈, 너 그깟 여자 하나 때문에 날 때렸어? 우리 두 가문이 어떤 사이인지 잊지 마!”구승훈의 얼굴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앞으로 나아가 안현우를 한 번 더 걷어차더니 발로 안현우의 목을 짓밟았다.“무슨 약을 먹인 거야?”안현우의 동공이 움츠러들며 구승훈이 전혀 장난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구승훈, 정말 여자 때문에 나한테 이러는 거야?”구승훈이 힘껏 발로 밟자 안현우는 순식간에 숨 막히는 공포를 느꼈다.“무슨 약을 먹인 거야!” 구승훈은 굳은 얼굴로 다시 물었고 안현우는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랐다.“약 이름은 A, 암시장에서 샀고 해독약이 없어. 이대로 있으면 저 여자는 바보가 되겠지.”구승훈의 눈동자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스쳐 지나가며 고개를 숙여 품 안의 여자를 바라보던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그러고는 분풀이하듯 다리를 뻗어 바닥에 쓰러져 있는 안현우를 발로 찼다.“잘 지키고 있어. 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까.”그렇게 말한 뒤 남자는 다시 충혈된 눈으로 정주현을 바라보았다.“정주현 씨, 방에 다른 카메라나 녹음기가 있는지 확인하세요. 안현우 평소에 더럽게 노는 놈인데 영상 유출되지 않게요.”정주현은 이를 악물고 구승훈 품에 있는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구승훈, 그 여자 건드리지 마, 알았어?”걸음을 멈칫한 구승훈은 대꾸하지 않고 강하리를 안은 채 방을 나섰다.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 그는 직접 전화를 걸었다.노민준, 노민우의 사촌 형이자 현재 명인병원의 원장으로서 약물에 대해선 천재인 사람이었다.“A라는 약이 있다는데 혹시 들어봤어?”노민준은 다소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너 그 약 먹었어?”구승훈은 설명 대신 이렇게 되물었다.“해독할 수 있어?”“다른 건 시도라도 해볼 수 있겠지만 A는 답이 없어. A가
안현우! 강하리는 성에 차지 않는 듯 그의 셔츠를 잡아당기며 놓아주지 않았다. 구승훈은 이미 흠뻑 젖은 셔츠를 아예 벗어 버리고 넓고 단단한 가슴으로 강하리를 벽에 단단히 밀착시켰다. “날 원해, 하리야?” 강하리의 의식은 이미 한참 흐려져 있었고, 안현우는 지난번 김주한보다 몇 배는 더 강한 약물을 썼다.몸속에서 솟구쳐 오르던 욕망이 온몸을 태워버릴 것만 같았다. “대답해 줘.” 남자는 대답을 듣기 전까지는 내키지 않는다는 듯 강하리의 허리선을 따라 부드럽게 아래로 쓰다듬었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유혹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기분 좋게 해줄까?”강하리가 대답하기도 전에 구승훈은 그녀를 세면대로 데려가 앉힌 후 쭈그려 앉았다.참을 수 없는 욕망이 마침내 분출구를 찾았다.남자는 강하리의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최대한의 쾌락을 선사해 주려고 애썼다.언젠가 자신이 여자를 위해 이런 짓을 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기꺼이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강하리의 속눈썹이 파들 떨리며 눈가에 눈물이 맺혔고, 절정에 다다른 순간 발끝이 움츠러들었다.고개를 든 구승훈의 입가에 아직 물기가 남아 있었다. 그는 입을 헹구고 다시 강하리에게 다가와 키스를 했다. “좀 나아졌어?” 그녀의 귓가에 비비적거리며 나지막이 말했다.강하리는 여전히 정신이 없었고 구승훈은 그녀를 안아 침대로 옮겼다. 그녀는 침대에 눕히기 바쁘게 다시 감겨왔다. 남자의 몸은 욕망으로 부풀어 올랐지만 마음은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안현우, 절대 멀쩡하게 살려두지 않을 거야! 밤새 뒤엉키며 구승훈은 그녀를 으스러질 듯 품에 꽉 안았다.오랜만에 느끼는 쾌락에 그는 광기에 물들어 갔다. 새벽이 다가오고 나서야 구승훈은 겨우 진정된 여자를 품에서 놓아주고 가운을 걸친 다음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안현우 어딨어?”남자는 담배를 손에 끼운 채 전화를 걸었고 통화가 연결되자 정주현이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구승훈! 강하리 어디로 데려갔어? 이
저택 지하 창고.창고라고 했지만 실은 철창이었다.철창 한쪽 벽에는 온갖 종류의 고문 도구가 걸려 있었다.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구승훈은 불쾌감이 얼굴에 스쳐 지나갔고, 밀려오는 역겨움을 참으며 긴 다리를 뻗어 그중 한 케이지로 다가갔다.그곳에는 안현우가 가운데에 묶여 있었는데 상반신에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았고 몸에는 핏자국이 가득했다.구승훈이 들어오자 안현우가 피식 웃었다.“구승훈, 네가 이렇게까지 그 여자를 소중히 여길 줄은 정말 몰랐네!”구승훈의 얼음장 같은 얼굴에는 표정이 하나도 없었다.그는 안현우를 힐끗 보고는 옆에 있는 벽으로 걸어가 채찍을 잡고 근처 양동이에 담그더니 안현우가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바로 채찍을 휘둘렀다.채찍이 닿자 살갗이 벗겨지며 안현우는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구승훈, 너 이 새끼...”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채찍이 날아왔고 안현우의 비명소리가 지하 창고에 계속 울려 퍼졌다.정주현과 노진우가 달려갔을 때 안현우의 몸은 이미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정주현은 순간 멈칫하다가 옆으로 가서 헛구역질을 해댔다.구승훈은 그를 힐끗 보고는 채찍을 옆으로 던지며 노진우에게 눈치를 주었다.“깨워.”노진우는 짧게 대답하고 양동이에 담긴 얼음물을 들이부었다.안현우는 멍한 상태로 눈을 떴고 그의 눈은 진작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승훈아, 승훈아, 오랜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살려줘, 응? 다신 안 건드릴게, 다신!”구승훈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가만히 서서 그를 지켜보았다.안현우는 독하고 무정한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경험했다.그리고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에 대해 사실은 하나도 몰랐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구승훈, 안씨 가문에게 밉보일까 두렵지도 않아?”구승훈은 피식 웃었다.“오랜 세월이 지났는데 날 처음 보는 것처럼 말하네?”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다시 채찍을 들어 이번에는 안현우의 하반신을 내리쳤다.비명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고 안현우가 또다시 기절한 후에야 구승훈은 채찍을 던지고 어두
강하리는 손가락을 꽉 움켜쥐었다.어젯밤 그 사람 누구지?구승훈이었나?갑자기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왔고 흠칫한 강하리는 그대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손연지가 안타까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좀 어때, 괜찮아?”강하리는 입술마저 하얗게 질려 있었다.“연지야, 나...”손연지가 얼른 달려와 안아주었다.“괜찮아, 이제 다 지나갔어.”강하리의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다.어젯밤의 기억은 어렴풋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안현우와 있었던 일만 해도 악몽이 되기에 충분했다.강하리는 여전히 손연지의 품에 기대어 몸을 떨고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겨우 진정한 그녀가 이렇게 물었다.“여긴 어떻게 왔어?”손연지는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구승훈이 연락했어.”강하리의 몸이 흠칫하면서 이불 위에 놓여있던 손을 말아쥐었다.어젯밤 그 사람이 구승훈인가?자신도 모르게 다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지금 이 순간 그녀조차 다행인지 괴로운 건지 알 수 없었다.그동안 구승훈에 대해 마음이 흔들린 건 사실이었지만 그렇다고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그와 밤을 보내고 싶은 건 아니었다.“어젯밤에 너랑 구승훈...”손연지가 낮은 목소리로 묻자 강하리는 가슴에 맺힌 서러움을 억지로 삼키며 눈물을 닦았다.“연지야, 나 가서 쉬고 싶어.”손연지는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얼른 가자.”그녀는 강하리에게 옷을 건네며 말했다.두 사람이 호텔 입구에 다다르자 밖에서 들어오는 구승훈이 보였다.“왜 좀 더 자지 않고.”구승훈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강하리는 복잡하고 여러 감정이 뒤엉킨 눈빛으로 고개를 들었다.“어젯밤 당신이었죠?”구승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나 맞아, 하리야. 때리고 싶으면 때리고 욕하고 싶으면 해도 돼.”그 말을 하자마자 강하리는 그의 뺨을 때렸고 때린 후에도 그녀의 손끝은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구승훈은 뺨을 맞고도 그저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때려도 화가 안 풀려?”강하리가 눈을 질끈 감고 손연지를 밖으로 끌어당기는데 구승훈이 그
“바로 갈게.” 구승훈은 대답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구씨 가문 저택, 구동근은 어두운 얼굴로 거실에 앉아 있었고 그 옆에는 안현우의 부모님이 앉아 계셨다.구승훈이 안씨 가문 외동아들인 안현우를 망쳐놨으니 안씨 가문 사람들은 구씨 가문과 등지는 한이 있더라도 제대로 따지고 들 생각이었다.구승훈이 문에 들어서자마자 구동근이 지팡이를 내리쳤다.“망할 자식! 너 정말 나 열받아 죽으라고 이러는 거냐?”구승훈은 휙 몸을 피하며 덤덤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집어 들고 구동근에게 걸어갔다.“진짜로 열받아 돌아가시진 마세요.”남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지팡이를 구동근에게 건넸고 구동근은 화가 치밀어 피를 토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는 지팡이를 집어 들어 구승훈을 향해 마구 휘둘렀고 구승훈은 아예 피할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지팡이가 무겁게 그의 몸을 때리자 옆에서 지켜보는 구승재의 마음도 아팠다.하지만 구승훈은 그저 차갑게 웃었다.“다 때리셨어요? 부족하면 더 때리세요.”구동근은 분노가 들끓었다.“이 망할 놈! 고작 그깟 여자애 때문에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기나 해! 네 동생 앞길 망쳐놓고 오랜 친구를 피투성이로 만들어? 구승훈, 아주 잘하는 짓이다!”구승훈은 그저 웃기만 했다.“모두를 위해 쓰레기 처리한 겁니다. 괜히 돌아다니면서 남한테 피해나 줄 테니까!”“구승훈, 그게 무슨 말이야?”구승훈은 태연한 얼굴로 여전히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무슨 뜻인지 모르시겠어요? 그쪽 아들을 본인이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세요? 쓰레기 같은 놈 그 정도로 만든 것도 봐준 겁니다.”구승훈의 말이 끝나자 안씨 가문 사람들은 순식간에 모두 분노로 얼굴이 빨개졌다.“어르신, 우리 두 집안 자식들이 오랜 세월 친구로 지냈는데 손자분이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세요!”구동근이 손을 들어 구승훈의 뺨을 때렸고 구승훈은 조금도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따귀를 맞은 그는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참, 안현우 망가뜨리면서 다리도 부러뜨렸는데, 며칠 동안
강하리는 침실 문을 흘끗 보고는 구승훈을 무시했다.하지만 곧 밖에서 다시 노크 소리가 들렸다.강하리가 ‘꺼져!’라고 말하려던 순간, 가정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대표님께서 사모님이 술 드셨으니, 숙취 해소에 좋은 차를 끓여 드리라고 하셨습니다.”“구승훈은 지금 옆에 있어요?”가정부는 옆에 서 있는 구승훈을 힐끗 보며 대답했다.“아니요, 대표님은 방금 준봉 씨와 함께 서재로 가셨습니다.”가정부가 말을 마치자 강하리는 바로 문을 열었다.그러자 문 앞에는 숙취 해소차를 들고 있는 구승훈과 그의 뒤에 서서 순진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가정부가 있었다.“이제 가서 쉬세요.”구승훈은 가정부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그러고는 숙취 해소차를 들고 침실로 들어왔다.강하리가 말할 틈도 없이 그는 숙취 해소차를 한 모금 마시고 바로 강하리에게 입을 맞췄다.강하리는 구승훈에게 숙취 해소차를 넘겨받았지만 삼키기도 전에 구승훈은 다시 키스를 퍼부었다.강하리가 숨이 가쁠 때까지 구승훈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숙취 해소차는 누가 더 많이 마셨는지 알 수 없었다.“맛있어?”구승훈은 강하리의 입술을 핥으며 아쉬운 듯 물었다.강하리는 그를 밀어내며 침실 안쪽으로 걸어갔다.“나가서 자.”구승훈은 숙취 해소차를 옆에 내려놓고 강하리의 손을 잡았다.“아직 화났어? 내가 잘못했어. 임희주 씨 문제는 내가 잘 처리할게. 응?”강하리는 그를 무시하고 손을 뿌리치려고 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무릎에 앉히고 따뜻한 숨결을 그녀의 목덜미에 뿌리며 부드럽게 입술을 핥았다.“그럼 내가 잘못을 만회할게.”강하리는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데?”“오늘 밤, 강 대표님을 편안하게 모실게. 어때?”강하리는 임희주의 끈질긴 집착 때문에 짜증이 났을 뿐이지 진짜 화가 난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이 남자의 뻔뻔한 모습을 보니 화가 가라앉는 기분이었다.“좀 염치가 있어야지.”“염치가 중요한 게 아니야.”구승훈은 콧방귀를 뀌며 손을 강하리의 잠옷
구승훈은 휴대전화 화면에 뜬 메시지를 보자마자 주저 없이 준봉에게 전화를 걸었다.“서재로 와.”준봉은 곧 자료를 들고 서재로 왔다.“말해 봐.”준봉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보고했다.“임희주 씨의 과거는 조작된 것 같습니다. 이전에 조사했던 정보에 따르면 임희주 씨는 남쪽 작은 도시의 보육원 출신이고 여 사모님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걸로 보입니다. 며칠 전에 대표님께서 여 사모님 쪽을 조사해 보라고 하셔서 관련된 사람들을 추적해 봤는데 여씨 가문의 오래된 집사가 몇 년 동안 연성시 외곽의 보육원을 후원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보육원을 조사해 보니 실제로 임희주 씨는 그곳에 오래 머물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입양되었는데 입양한 사람이 그 집사의 고향 친구였답니다.”준봉은 말을 멈추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구승훈의 표정을 살폈다.임희주의 출신을 보면 여초연이 얼마나 치밀하게 사람을 키워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만약 자신의 어머니가 자신을 해치기 위해 이렇게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마음이 어떨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준봉은 구승훈의 표정을 긴장하며 지켜보았지만 구승훈의 표정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었다.다만, 그 깊고 짙은 눈동자에는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대표님, 괜찮으세요?”구승훈은 눈썹을 살짝 올리며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별일 아니야.”준봉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했다.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대표님은 사모님과 아가씨가 계시잖아요. 두 분 다 잘 지내고 계시니까요.”구승훈은 대답하지 않고 잠시 후 다시 물었다.“아내가 화난 데다가 꼬맹이까지 울려버렸어. 어떻게 달래야 할까?”“네?”준봉은 잠시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한참 만에 대답했다.“대표님, 저는 아직 솔로예요.”구승훈은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나가 봐.”“그럼 임 선생은 어떻게 할까요?”구승훈의 눈빛이 순간 차가워졌다.“계속 감시해. 조만간 여씨 가문 사모님과 연락할 거야.”준봉은
노민우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얼굴에 가득했던 득의만만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강하리의 화난 모습을 보니 솔직히 겁이 났다.“저기, 승훈이랑 싸웠어요?”“민우 씨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말해봐요, 무슨 일이에요? 손연지는 어디 있어요?”“손연지는 호텔에 있어요.”노민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강하리는 서두르지 않고 노민우를 가만히 지켜보았다.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 노민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회사, 강하리 씨가 인수해 줬으면 좋겠어요.”강하리는 놀라서 노민우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노씨 가문은 의학계의 명문가였고 대대로 의사 집안이었다.이번 세대에는 병원을 노민준에게 물려주었지만 노민우 또한 의료계를 완전히 떠나지는 않았다.그는 명인병원 지분 외에도 의약품과 의료기기 사업을 하는 회사를 직접 설립했고 꾸준히 잘 운영해 왔다.그런데 갑자기 이런 제안을 하는 이유가 뭘까?“무슨 뜻이에요?”노민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솔직히 말해서, 전 어릴 때부터 엄마를 무서워했어요. 엄마는 항상 강압적이었고 제 결혼을 강요하면서 제가 거부하면 손연지에게 달려갈 거라고 협박했어요.”그는 자조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말에 따라 결혼했는데도 엄마는 손연지를 찾아가는 바람에 손연지가 많이 억울하게 됐어요. 다 제가 잘못한 탓이죠.”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아무 말 없이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노민우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말했다.“손연지에게 보상을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저도 노력해서 손연지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사실 전 승훈이처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손연지에게 달려갈 수 없어요. 그렇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손연지에게 가면, 오히려 우리 둘 다 더 힘들어질 거예요. 그래서 우리 회사를 먼저 정리하고 싶어요.”강하리는 이제야 그의 의도를 이해했다.“하지만 굳이 저한테 부탁할 필요가 있을까요? 노민우 씨도 회사를 독립시킬 수 있잖아요. 아니면, 구승훈이 도와줄 수도 있고요.”노민우는 웃으며 말
강하리는 스스로 최근 구승훈에게 꽤 너그러웠다고 생각했다.그를 최대한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속으로는 답답함이 끓어올랐다.강하리의 마음속에서 구승훈은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구승훈이 겪었던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여자의 끊임없는 도발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구승훈의 입가가 씰룩였다. 아마도 오랜만에 강하리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아서인지 그는 오히려 흥미롭게 느껴졌다.그는 강하리를 번쩍 들어 자기 무릎에 앉히며 말했다.“내가 처리할게. 네가 직접 나서는 일은 없을 거야, 됐지?”강하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닥쳐.”구승훈은 강하리를 달래려고 몇 마디 더 하려다가 강하리의 냉정한 말에 곧 입꼬리가 떨어지며 입을 다물었다.차가 저택 앞에 멈출 때까지 강하리의 표정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고 차가 멈추자, 강하리는 화가 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문 앞에 도착하자 그녀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는 노민우를 보았다.“담배 꺼요.”노민우는 떨리는 손으로 재빨리 담배를 껐다.그는 일어서서 강하리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보려고 다가갔지만 강하리는 그대로 집 안으로 들어가며 문을 쾅 닫아 버렸다.노민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왜, 왜 이래?”구승훈은 노민우를 흘겨보며 쏘아붙였다.“너는 손연지랑 있지 않고 우리 집엔 왜 왔어?”노민우는 코를 긁적이며 답했다.“강하리 씨 만나러 왔어.”구승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다시 물었다.“누구 만나려고?”“노민우 씨, 들어오세요.”그때, 강하리의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오자 구승훈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나 먼저 들어갈게.”노민우는 웃음을 머금고 구승훈에게 손을 흔들었고 구승훈의 어이없는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서재로 와요.”그는 강하리가 일어서서 2층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쏜살같이 따라 올라갔다.구승훈은 한숨을 쉬며 가정부에게 연정이를 데려오라고 부탁했다.“쉬세요.
방에서 나온 강하리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다.하지만 화장실에 도착하기 전, 그녀는 멀리서 구승훈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그는 한 손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고 복도에 서 있었는데 거리가 멀어 그의 표정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와 마주 보고 서 있는 사람이 바로 임희주라는 것은 분명했다.강하리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옆으로 비켜섰다. 그때, 그녀 옆에서 누군가가 말했다.“강 대표님, 안 가보세요?”강하리가 고개를 돌리자 미소 띤 얼굴의 임명우가 보였다.“임 대표와 무슨 상관이죠?”임명우는 손에 술잔을 든 채, 그녀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강 대표님은 눈에 든 모래 한 톨도 못 참는다고 들었는데, 생각보다 너그러운 것 같네요.”강하리는 비웃으며 말했다.“임 대표님, 협상하려면 협상만 하세요. 이러시면 제가 방법을 써서 계약을 강제로 해지하는 수가 있어요.”임명우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가 이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너무 섣불렀네요. 하지만 강 대표님에게 남자를 너무 믿지 말라고 조언해 드리고 싶었어요.”그러고는 잠시 멈추다가 말을 이어갔다.“아, 내일 사업 협상이 있는데, 제가 자료를 이메일로 보내드릴게요. 강 대표님, 내일 뵙겠습니다.”임명우는 그녀에게 술잔을 들어 보이며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강하리는 임명우의 뒷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이상한 짜증이 솟아올랐다.더 이상 망설일 것도 없이 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구승훈 쪽으로 걸어갔다.클럽은 그렇게 조용한 곳이 아니었지만 하이힐이 바닥을 찍는 소리는 여전히 또렷하게 들렸고 구승훈과 임희주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를 보는 순간, 구승훈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임희주는 잠시 멍한 표정을 보이다가 이내 따라 웃었다.“강하리 씨.”강하리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고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아직 일이 끝나지 않았어요?”그녀는 구승훈 옆에 서서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조명에 비친 그녀의 눈은 유난히 빛났다.구승훈은 손을 들어 그녀를 끌어안으며
“좋아해, 됐지?”손연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한 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하며 곧 잠들 준비를 했다.노민우는 순간적으로 숨이 막힐 듯한 느낌에 휩싸였다. 비록 손연지의 말투는 퉁명스러웠지만 그의 마음 한편에는 미묘한 설렘이 피어오르고 있었다.그 말 한마디 속에 어쩌면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아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싹텄다.“그럼 소영준은 아직도 좋아해?”노민우가 조심스레 물었다.“귀찮게 굴지 마.”손연지는 짜증 섞인 어조로 대답했고 노민우는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물었다.“그럼 누가 제일 좋아?”“하리.”손연지는 눈을 흐리게 뜬 채로 답했다.더 물어보려 했지만 그 순간 노민우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여사님’이라는 세 글자가 보이자 노민우는 머리가 지끈거렸고 화면을 보기만 할 뿐 전화를 받지 않았다.전화가 더 이상 울리지 않게 되자 노민우는 곧바로 노민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형, 엄마 좀 말려줘. 그리고 나 결혼 취소한 거, 형이 할아버지께 말씀드려.”“너 확실한 거야?”노민준은 대답 대신 노민우의 마음을 물었다.노민우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묻기 전에 노민준이 덧붙였다.“결혼 취소한 건 내가 할아버지께 말씀드릴 수 있어. 할아버지께서도 여씨 가문 사람들을 별로 좋아하시지 않으니까. 하지만 어머니의 반대를 꿋꿋이 이겨내고 손 선생이랑 잘 지낼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어? 동생아, 이렇게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야. 결심이 확실하지 않다면 함부로 약속하지 마. 너도 승훈이처럼 가족을 등 돌리게 될 수도 있어. 그럴 수 있겠어?”그럴 수 있다고 답하려던 찰나, 노민우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노민준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삼촌 쪽은 내가 막아볼게. 하지만 잘 생각해 봐. 그리고 정말 결혼을 취소할 거라면 여씨 가문에 직접 가서 이유를 설명해.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모든 일을 손 선생이 떠안게 될 거야. 알았지? 난 삼촌 보러 가야겠다.”전화를 끊은 후, 노민우는 한숨과 함께 손연지를 바
여명주는 얼굴이 붉어지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노민우 오빠, 저 할 수 있어요.”노민우의 관자놀이가 뛰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조수석 문이 다시 열렸다.손연지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노민우는 그녀를 돕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여명주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노민우 오빠, 이게 무슨 일이에요?”노민우는 갑자기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손연지가 술을 마셔서 내가 데려다 주려고요. 여명주 씨는 먼저 들어가세요.”말을 끝내고 그는 여명주를 밀어내며 손연지에게 다가갔다.손연지는 여전히 정신이 흐릿했지만 노민우가 다가오자 갑자기 그에게 한 대 때렸다.때리고 나서 잠시 얼떨떨해하던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비비며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노민우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어디 가는 거야?”손연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때 여명주가 갑자기 다가와 손연지의 얼굴에 가방을 던졌다.“이 여우 같은 여자. 노민우 오빠를 유혹하는 것도 모자라서 오빠를 때리기까지 하다니.”손연지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노민우는 급하게 말했다.“여명주 씨, 이제 그만해요!”여명주는 잠시 멈칫했다.“오빠, 정말 이런 여자 때문에 화내는 거에요?”노민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돌아서 손연지를 안고 차로 향했다.여명주는 뒤에서 소리 지르며 따라갔지만 노민우는 손연지를 차에 태우고 바로 차를 몰았다.노민우는 손연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그녀의 이마 상처는 계속 피가 나고 있었고 손연지는 의자에 기대어 말없이 앉아 있었다.노민우는 손연지를 한 번 쳐다봤지만 그녀는 이미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들었다.노민우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었다.예전에 손연지가 여명주 때문에 직장을 잃었을 때나 그의 어머니가 손연지를 집으로 데려와 모욕했을 때도 그는 그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그런 상황은 그에게 그저 가볍게 알고 있는 일일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사실 손연지가 왜 그렇게 과격하게 반응했는지
노민우는 갑작스러운 키스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손연지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깊이 응답했다.차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애틋하고 끈적한 느낌으로 변했다.노민우는 손을 뻗어 손연지의 의자 등을 부드럽게 눕혔고 그 후 자신도 몸을 살짝 기울였다.“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노민우는 손연지의 턱을 부드럽게 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는 손연지의 술버릇을 익히 알고 있었다.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손연지는 술에 취해 그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에게 장난을 쳤다.그는 오늘만큼은 꼭 물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게다가 최근 소영준이 손연지에 대해 다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는 손연지가 그 사람과 다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손연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민우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고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잡고 힘껏 꼬집었다.“노민우, 너 진짜 이상해.”노민우는 혀를 차며 웃었다.“나한테 말할 때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없냐?”손연지는 짜증이 나서 그를 밀어냈고 노민우는 다시 한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비록 술을 마셨지만 손연지는 여전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가 계속 움직이자 노민우는 조금 흥분을 느꼈다.노민우는 목을 몇 번 굴린 뒤 힘으로 그녀를 눌렀다.“움직이지 마!”“너 나한테 화내는 거야?”손연지는 갑자기 속상해 보였다.노민우는 당황했다.“...““아이고. 미안해. 제발 움직이지 마. 그럼 진짜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그 순간 손연지는 갑자기 그의 입술을 물었다.노민우는 이미 반응을 보였고 손연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는 손을 들어 손연지의 옷을 벗기고 입을 맞췄다.“해도 될까?”목소리를 낮추며 노민우는 손연지의 턱을 잡았다.“말하지 않으면 네가 동의한 걸로 간주할게.”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차 안은 어느새 숨소리와 낮은 신음 소리만 가득했다.노민우는 재빨리 벨트를 풀었지만 그가 다음
“우리 연애 하자고. 어떻게 생각해?”연애라는 두 글자가 노민우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손연지는 심장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사실 그녀는 노민우와 무언가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예전에 말했던 1년은 단지 자신과 노민우에게 시간을 주는 방식에 불과했다.결국 신분 차이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만약 노민우가 결혼을 취소한다고 해도 노씨 가문은 아마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노민우이 이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흔들렸고 마음이 흔들리긴 해도 옳고 그름은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너 약혼녀가 있는데 밖에서 여자친구를 사귀는 거 본 적 있어? 그럼 결국 너와 약혼녀가 결혼하고 나면 나는 네 두 번째 부인이 되는 거야? 너 나를 바보로 아냐?”손연지는 말하면서 그의 머리를 가볍게 쳤고 노민우는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말했다.“그럼 결국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어쩔 거야?”“만약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어떡할 건데?”“그만둬. 사실 나랑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잖아 맞지?”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계단을 내려갔고 아래층 거실에서는 모두 준비가 끝나 있었다.손연지는 노연정을 안고 밖으로 나가려 했고 그 뒤를 노민우가 따랐다.천아름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강하리에게 말했다.“여씨 가문 사람들이 또 와서 문제를 일으킬 거예요. 강하리 씨가 바쁠 때는 말해주세요. 제가 손연지 씨와 함께 있을게요.”강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웨딩사진 촬영은 사실 강하리가 특별히 복잡하게 찍을 생각은 없었다.할아버지가 꼭 이 절차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생략했을 것이다.하지만 사진을 찍고 나서 컴퓨터 화면에 찍힌 한 장 한 장을 보면서 강하리는 이것이 사실 구승훈과 함께 찍은 첫 번째 사진임을 깨달았다.그녀는 옆에서 노민우와 얘기하는 구승훈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손연지는 옆에서 혀를 찼다.“사실 나는 너희 둘이 결혼까지 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