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을 들은 강하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그녀만을 원한다면서 송유라를 놓칠 수가 없었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물었다.“구승훈 씨, 한 사람만 원한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구승훈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만 원하는 것이고 유일하다는 의미였다.강하리는 그가 지금까지 원했던 유일한 여자였다. 이건 무슨 일이 생겨도 바꿀 수 없었다. 그는 송유라를 원한 적도, 그녀를 곁에 두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가 그녀를 소중하게 대하는 건 단지 그 어린 시절의 작은 우정 때문이었다.그녀가 없었더라면 그가 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좀 챙겨주는 것뿐이었다.“하리야, 나는 유라에게서 남녀 사이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어.”강하리는 얼떨떨해졌다.남녀 사이의 정이 없었다고?“예전엔 연인이었잖아요.”구승훈의 눈빛에 냉기가 돌았다.“그때도 그저 은혜를 갚기 위해서였어. 나는 유라에게 마음을 가진 적이 없어.”강하리는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꽉 쥐었다.그녀는 구승훈의 말이 어디까지 진심이고 어디까지 거짓인지 몰랐다.하지만 그녀 눈에 보이는 건 바로 그가 송유라를 놓지 못한다는 것이었다.그녀는 더 이상 구승훈과 이런 얘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다.“대표님, 연지가 오늘 송유라에게 물을 뿌리는 건 단지 너무 화가 난 것 때문이지만 송유라가 저지른 일을 보면 물을 맞아도 싸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발 송유라를 잘 챙기세요. 그리고 연지에게 불리한 일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네요.”구승훈이 피식 웃더니 말했다."친구 성격이 보통이 아니네.”강하리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그녀는 손연지대신에 변명을 몇 마디 해주었다.“연지는 성격이 불같지만 무리하게 소란을 피운 적은 없어요. 연지가 오늘 이렇게 한 이유는 대표님께서 누구보다 잘 알 거라고 믿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화를 내는 건 단지 다른 사람이 그녀를 이용해서 저를 모함하기 때문이에요.”구승훈은 잠시 차가운 눈빛을 번뜩였다.누군가가 손연지를 이용해 강하리를
연락처를 삭제한 그는 계속 강하리를 보고 있었다.강하리는 자신의 손을 빼며 다소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전 신경 안 쓴다고 했어요.”구승훈이 웃으며 대답했다.“응, 내가 하고 싶어서 그래. 그냥 네 손을 빌렸을 뿐이야.”강하리는 입꼬리를 오므리며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정주현과 정양철을 만났다.정주현은 구승훈을 보고 말했다.“아이고, 구 대표님이 왜 여기 계세요? 구 대표님 첫사랑인 송유라 씨가 다쳤다고 들었는데 왜 보러 가시지 않고...”구승훈의 눈빛이 살짝 번뜩였다. 그는 강하리를 본 후 굳은 표정으로 정주현을 바라보았다.“소식이 빠르시네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당신이 유라를 짝사랑하는 줄 알겠어요.”정주현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강하리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나갔다.“제가 누구를 짝사랑하는지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구승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 대표님을 좋아하시는구나, 저도 마찬가지입니다.”정주현은 순간 이 남자의 뻔뻔함에 탄복했다.구승훈, 구 대표, 구 씨 집안의 권력자, 이 대단한 남자가 여기서 몇 마디로 질투까지 하다니.강하리는 두 사람의 말다툼은 아랑곳하지 않고 정양철만 쳐다보았다.“정 이사님은 어디 아프세요?”정양철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웃었다.“나이가 들면 여기저기 불편할 수밖에 없죠.”“방금 검사를 받았는데 큰 문제는 없고 모두 작은 병이래요.”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정주현이 바로 옆에서 입을 열었다.“괜찮아요. 나이가 들수록 더 엄살이 심해서 그래요. 오늘 아침부터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검사해 봤는데 아무 일도 없었어요.”정양철은 발을 들어 그의 다리를 걷어찼다.정주현은 웃으며 그를 피해 강하리에게 다가와 말했다.“저녁에 같이 밥이나 먹을까요? 상의할 일이 있어요.”강하리는 생각 하지도 않고 승낙했다.구승훈의 안색이 변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들은 간단히 이야기하고 헤어졌다.강하리와 구승훈은 병원 보안실로 향했
하지만 그는 이 말을 강하리에게 하지 않았다.그렇지 않으면 강하리는 또 자신이 송유라를 보호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누가 CCTV에 손을 댔나요?”강하리가 옆에서 물었다.구승훈이 대답했다.“걱정하지 마, 최대한 회복할 수 있도록 할게. 회복이 안 되더라도 은행 쪽에 물어보면 돼. 두 사람이 병원에서 은행으로 가는 길에 CCTV가 많이 있을 거야. 다 망가뜨렸을 리 없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의 말에 위로 됐다.“고마워요.”구승훈은 웃더니 갑자기 그녀의 허리를 잡고 그녀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두 사람의 자세는 순식간에 애매해졌다.그의 호흡이 그녀의 피부에 닿았다.“어떻게 감사해야 하지?”그가 나지막하게 물었다.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다리를 들어 그의 발을 밟았다.“이렇게요.”구승훈은 아파서 그녀를 놓아주었다.“강하리, 목표를 달성했으니 이젠 됐다, 이거야?”“대표님께서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잖아요.”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그는 그녀를 차로 끌고 가며 말했다.“내가 데려다줄게.”말하다가 가는 잠깐 멈칫했다.“걱정 마, 병원에 데려다주고 갈게. 유라를 보러 가지 않을 거야. 하리야, 나랑 유라는 정말...”송유라 얘기를 꺼내자 강하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설명할 필요 없어요.”어쩌면 구승훈이 말했듯이, 그는 송하리와 사랑에 빠진 적이 없을지도 모른다.그녀도 구승훈이 이제 송유라를 귀찮아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하지만 그는 송유라가 죽는 걸 지켜볼 수 없었다.그리고 송유라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그러니 언제든 송유라가 죽기 살기로 밀어붙이기만 하면 그는 항상 나타날 것이었다.어쩌면 구승훈은 진심으로 강하리와 화해하고 싶어 할지도 모른다.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늘 송유라의 자리가 남아 있었다. 그 자리는 아무도 흔들 수 없었다.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구승훈도 그녀의 표정을 보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설명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강하리가 고개를 들자 속이 메스꺼워 났다.안현우가 그녀 앞에 서 있었던 것이었다.“하리 씨, 오랜만이네요.”강하리는 바로 그를 피해서 안으로 들어갔다.안현우는 다시 한번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강하리 씨, 제가 정말 그렇게 별로예요? 쳐다보기도 싫을 정도로?”강하리는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안 대표님, 잘 아시네요.”안현우의 얼굴엔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했다.그는 피식 웃더니 말했다.“하지만 저는 오히려 하리 씨에게 관심이 있어요, 어떡하죠?”강하리는 구역질을 참으며 비켜섰다.“안 대표님은 정말 변함없이 재수 없으시네요.”안현우는 그녀가 얼마나 듣기 싫어하든지 개의치 않았다.여자는 성질이 강할수록 사람을 흥분시키기 때문이었다.강하리는 그의 모든 욕구를 일으키는 그런 여자였다.“하리 씨, 아직도 구승훈이 하리 씨랑 화해하기를 바라는 건 아니겠죠?”강하리는 그를 아랑곳하지 않고 곧장 엘리베이터로 갔다.안현우는 뒤에서 웃었다.“하리 씨도 봤겠지만, 비록 승훈이가 앞에서는 유라에게 심하게 대해도 결국 유라를 놓지 못해요. 유라가 그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하리 씨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거예요. 그래서 당신은 제3자가 될 수밖에 없어요.”강하리가 멈칫하면서 물었다.“안현우 씨, 재밌어요? 이렇게 도발하는 거.”“설마 송유라 씨가 다친 게 안현우 씨가 꾸민 건 아니겠죠? 송유라 씨랑 그렇게 친하신데 그녀를 위해서 이 정도는 하실 수 있잖아요?”안현우의 안색이 갑자기 변했다.“입은 함부로 말하라고 있는 게 아니에요. 강하리 씨, 말조심하세요.”강하리는 그를 빤히 쳐다보면서 그의 표정에서 실마리를 찾으려 했다.하지만 아쉽게도 안현우의 얼굴에는 옹졸함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안현우는 그녀의 시선 때문에 마음이 점점 조여왔다.안현수는 구승훈이 강하리를 위해 송유라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는 원래 계획은 강하리가 구승훈을 떠난 후 틈을 타서 강하리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하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안예서 이 입방정!'그녀는 바로 구승훈을 피하며 말했다.“구 대표님 같은 운전기사를 제가 어떻게 감히...”구승훈은 얼른 차에서 내려 그녀를 붙잡았다.“공짜야.”강하리는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구승훈 씨, 한가하세요?”“응.”구승훈이 대답했다.그가 원하기만 하면 그 정도의 시간은 어떻게든 짜낼 수 있었다.기껏해야 밤에 잠을 좀 덜 잘 뿐이었다.강하리는 그를 노려보았다. 에비뉴의 업무가 얼마나 바쁜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당신이 운전기사를 해줄 필요도 없고 당신에게 어울리지도 않아요.”당당한 구씨 집안의 권력자가 그녀의 운전기사를 해준다니. 그녀는 여기저기서 손가락질을 받고 싶지 않았다.구승훈도 그녀가 거절할 것을 예상했다.“오늘 저녁은 내가 운전기사야. 그리고 나중에 내가 한 명 알아봐 줄게, 어때? 밖에서 찾지 말고. 믿을 만한지도 모르는데.”강하리는 아랫입술을 오므렸다.구승훈은 잠시 침묵을 지키며 그녀를 쳐다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오늘 밤은 내가 운전기사를 해주는 걸로.”그는 강하리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그녀를 끌고 차 쪽으로 갔다.식당에 도착하자 강하리가 내리려고 했다. 구승훈이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나도 밥 안 먹었어.”“...”“같이 먹자.”그의 말은 완전히 통보였다. 그녀에게 의견을 구하려는 뜻은 추호도 없었다.말을 마치고 그는 바로 차에서 내려 식당으로 걸어갔다.정주현이 예약한 식당은 레스토랑이었다.입구에 도착한 강하리의 발걸음이 잠깐 멈추었다.“만약 마음에 안 드시면 먼저 가보셔도 돼요. 저는 택시를 타고 가면 되니까요.”구승훈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는 곧장 식당으로 들어갔다.강하리는 밖에서 몇 초 서 있다가 따라 들어갔다.구승훈을 보자마자 정주현은 얼굴에 싫다는 기색이 가득했다.“구 대표님은 지금 정말 한가하시네요. 다른 사람이 밥을 먹는데 얻어먹으러 오시다니, 구씨 집안이 파산한 줄 알겠어요.”구승훈은 냉소를 흘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강하리의
정주현은 대사님을 찾아 개업식 날짜를 잡았고 다음 달 초로 정했다.강하리는 회사의 책임자로서 많은 일을 결정해야 했다.그녀는 정주현과 계속 낮은 소리로 이야기하고 있었고 구승훈은 두 손으로 팔짱을 끼고 옆에 앉아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막바지에 이르러서야 구승훈이 입을 열었다.“대양 그룹은 북쪽 교외의 땅을 원하나요?”강하리가 멈칫했다.대양 그룹은 확실히 북쪽 교외의 그 땅을 원하지만 그 땅은 줄곧 최씨 가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최씨 가문은 김주한의 일 때문에 강하리와 불화가 있어서 지금 최씨 가문을 불러내려고 해도 만날 수 없었다.구승훈이 눈썹을 치켜올리고 강하리를 쳐다보았다.“하리야, 최씨 가문은 내가 약속 잡아줄 수 있어.”강하리는 구승훈을 쳐다보더니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구 대표님, 이번에는 어떤 조건을 원하십니까?”구승훈의 눈빛이 반짝였다.“앞으로 매일 드레싱을 도와주면 돼.”정주현은 속으로 구승훈을 진짜 짐승이라고 욕했다.그는 이미 대양 그룹의 현재 상황을 완전히 파악했을 것이었다. 강하리에게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면 그녀를 도와서 문제를 해결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그리고 도와주는 대신에 강하리에게 접근할 수 있는 조건을 하나 더 제시하는 것이었다.‘정말 뻔뻔하군.'이건 남이 급한 틈을 타서 자기 이익을 챙기는 것과 차이가 없었다.“필요 없어요!”정주현이 생각도 하지 않고 바로 거절했다.하지만 강하리가 잠시 후 대답했다.“네, 알겠어요.”정주현은 어리둥절해서 강하리를 노려보았다.“하리 씨, 우리도 굳이 그 땅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요?”강하리가 웃으며 대꾸했다.“정주현 씨, 회사 업무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정주현은 그녀가 정양철과 서명한 그 도박 계약서의 존재를 몰랐다. 그 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몰랐다.정주현이 울분을 토했다.구승훈은 오히려 그를 향해 눈웃음을 쳤다.강하리는 식사를 마치고 병원으로 돌아갔다.그녀는 가능한 한 정서원과 같이 있으려고 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병원
강하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말할 수 없어요. 구승훈 씨, 우리 관계는 우리 엄마 앞에서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아니잖아요.”구승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입을 열었다.“그래서 나를 완전히 지워버린 거야?”“말하시지 않는 게 안전하니까요. 조심히 돌아가세요.”그녀는 말을 마치고 휴대전화를 들고 방으로 돌아갔다.다만 그녀는 구승훈이 따라 들어올 줄은 몰랐다.강하리는 구승훈을 노려보았다.그녀는 목소리를 죽여서 말했다.“구승훈 씨, 뭐 하시는 거예요?”구승훈은 그녀를 무시한 채 정서원의 침대로 향했다.“안녕하세요, 저는 하리 친구입니다.”간병인이 옆에서 말했다.“하리 어머님, 승훈 씨는 우리 하리를 좋아하는 분이세요. 엄청 쫓아다녔어요.”정서원이 강하리를 바라보았다.강하리는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엄마, 저는 이 사람 마음에 안 들어요.”구승훈이 옆에서 웃었다.“지금 싫다고 나중에도 싫은 게 아니잖아요, 아주머니. 안 그래요?”정서원은 넋을 잃고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강하리는 이미 구승훈을 밖으로 밀어냈다구승훈도 억지로 붙잡지 않고 강하리를 쳐다볼 뿐이었다.“하리야, 나중에는 아주머니 앞에 당당하게 나타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강하리는 얼떨떨해져서 도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구승훈을 떠나보내고 강하리는 그제서야 병실로 돌아왔다.그 이후로 그녀는 다시는 구승훈에 대해 얘기 하지 않았다.하지만 정서원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구, 구,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강하리의 코끝이 갑자기 찡해졌다. 그녀는 정서원이 구승훈을 기억할 줄은 몰랐다.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그 사람이에요.”정서원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강하리는 말을 잇지 못했지만 왠지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강하리는 병원에서 정서원과 하룻밤을 같이 보냈다.다음 날 아침 그녀는 안예서의 전화를 받았다.“운전기사님 찾았어요. 오늘 직접 데리러 가실 거예요.”그녀는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구승훈 씨는 아니죠?”안예
“설마 구 대표님과 화해하려고 하는 건 아니죠?”강하리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무슨 헛소리예요?”“제가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요는 거예요, 아니면 당신이 멍청한 척하는 거예요?”강하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주현 씨, 제가 말했잖아요. 그냥 친구 사이라고요.”정주현은 웃으며 말했다.“뭐 어때요? 구승훈이 쓰레기라는 사실에도 하리 씨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에 아무 영향도 없잖아요? 하리 씨, 예전에 그 사람이가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금 좀 잘해 준다고 해서 다시 넘어가면 안 돼요.”강하리는 그를 피했다.“저 정신 말짱합니다.”“그래요, 그럼 됐어요.”정주현은 별다른 말 없이 커피 한 잔 건넸다.강하리는 그를 쳐다보더니 대답했다.“고마워요.”정주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강하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정주현이 소란을 피우자 그녀는 갑자기 구승훈의 드레싱을 도와줘야 한다는 일이 생각났다.그녀는 구승훈이 먼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감감무소식이었다.퇴근이 가까워질 때까지 구승훈은 연락이 없었고 되려 구승재에게서 전화가 왔다.“강 부장님, 그 할머니를 찾았는데 시간 있으세요?”강하리는 얼른 승낙했다.구승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양 그룹 아래층에 도착했다.강하리가 내려갈 때 그는 차 옆에 서서 전화를 하고걸고 있는 것이 보였다.강하리를 보자마자 그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어떻게 됐어요, 구승재 씨?”구승재가 대답했다.“할머니를 찾았고 본인이 손연지 씨를 찾은 것도 맞다고 인정했지만 누가 시켰는지는 말하지 않았어요.”“병원에 가서 손연지 씨를 찾으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손연지 씨더러 돈을 송금하라고 하는 전화 말이에요."“돈을 보내지 않거나 송금한 사람이 손연지 씨가 아니면 딸이 위험하다고 했대요.”강하리는 그의 말을 들으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속으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전화한 사람은 못 찾
여명주는 얼굴이 붉어지며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노민우 오빠, 저 할 수 있어요.”노민우의 관자놀이가 뛰기 시작했고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조수석 문이 다시 열렸다.손연지가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노민우는 그녀를 돕기 위해 다가가려 했지만 여명주가 그의 팔을 잡아끌었다.“노민우 오빠, 이게 무슨 일이에요?”노민우는 갑자기 인내심을 잃기 시작했다.“손연지가 술을 마셔서 내가 데려다 주려고요. 여명주 씨는 먼저 들어가세요.”말을 끝내고 그는 여명주를 밀어내며 손연지에게 다가갔다.손연지는 여전히 정신이 흐릿했지만 노민우가 다가오자 갑자기 그에게 한 대 때렸다.때리고 나서 잠시 얼떨떨해하던 그녀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손을 비비며 비틀거리며 앞으로 걸어갔다.노민우는 그녀의 손목을 꽉 잡았다.“어디 가는 거야?”손연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그때 여명주가 갑자기 다가와 손연지의 얼굴에 가방을 던졌다.“이 여우 같은 여자. 노민우 오빠를 유혹하는 것도 모자라서 오빠를 때리기까지 하다니.”손연지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하자 노민우는 급하게 말했다.“여명주 씨, 이제 그만해요!”여명주는 잠시 멈칫했다.“오빠, 정말 이런 여자 때문에 화내는 거에요?”노민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돌아서 손연지를 안고 차로 향했다.여명주는 뒤에서 소리 지르며 따라갔지만 노민우는 손연지를 차에 태우고 바로 차를 몰았다.노민우는 손연지를 병원으로 데려갔다.그녀의 이마 상처는 계속 피가 나고 있었고 손연지는 의자에 기대어 말없이 앉아 있었다.노민우는 손연지를 한 번 쳐다봤지만 그녀는 이미 눈을 감고 다시 잠이 들었다.노민우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말할 수 없었다.예전에 손연지가 여명주 때문에 직장을 잃었을 때나 그의 어머니가 손연지를 집으로 데려와 모욕했을 때도 그는 그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다른 사람들이 이야기할 때 그런 상황은 그에게 그저 가볍게 알고 있는 일일 뿐이었다.그래서 그는 사실 손연지가 왜 그렇게 과격하게 반응했는지
노민우는 갑작스러운 키스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손연지의 뒤통수를 부드럽게 감싸며 깊이 응답했다.차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애틋하고 끈적한 느낌으로 변했다.노민우는 손을 뻗어 손연지의 의자 등을 부드럽게 눕혔고 그 후 자신도 몸을 살짝 기울였다.“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어?”노민우는 손연지의 턱을 부드럽게 잡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그는 손연지의 술버릇을 익히 알고 있었다.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손연지는 술에 취해 그가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에게 장난을 쳤다.그는 오늘만큼은 꼭 물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게다가 최근 소영준이 손연지에 대해 다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는 손연지가 그 사람과 다시 연결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손연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노민우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보았고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을 잡고 힘껏 꼬집었다.“노민우, 너 진짜 이상해.”노민우는 혀를 차며 웃었다.“나한테 말할 때 좀 더 부드럽게 말할 수 없냐?”손연지는 짜증이 나서 그를 밀어냈고 노민우는 다시 한번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비록 술을 마셨지만 손연지는 여전히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녀가 계속 움직이자 노민우는 조금 흥분을 느꼈다.노민우는 목을 몇 번 굴린 뒤 힘으로 그녀를 눌렀다.“움직이지 마!”“너 나한테 화내는 거야?”손연지는 갑자기 속상해 보였다.노민우는 당황했다.“...““아이고. 미안해. 제발 움직이지 마. 그럼 진짜로 참을 수 없을 것 같아.”그 순간 손연지는 갑자기 그의 입술을 물었다.노민우는 이미 반응을 보였고 손연지가 적극적으로 다가오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는 손을 들어 손연지의 옷을 벗기고 입을 맞췄다.“해도 될까?”목소리를 낮추며 노민우는 손연지의 턱을 잡았다.“말하지 않으면 네가 동의한 걸로 간주할게.”그가 말을 마치자마자 반응을 기다리지 않고 다시 그녀의 입술을 덮었다.차 안은 어느새 숨소리와 낮은 신음 소리만 가득했다.노민우는 재빨리 벨트를 풀었지만 그가 다음
“우리 연애 하자고. 어떻게 생각해?”연애라는 두 글자가 노민우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손연지는 심장이 멈춘 듯한 느낌이 들었다.사실 그녀는 노민우와 무언가가 생길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고 예전에 말했던 1년은 단지 자신과 노민우에게 시간을 주는 방식에 불과했다.결국 신분 차이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에 만약 노민우가 결혼을 취소한다고 해도 노씨 가문은 아마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노민우이 이 말을 꺼내는 순간 그녀는 여전히 마음이 흔들렸고 마음이 흔들리긴 해도 옳고 그름은 확실히 구별할 수 있었다.“너 약혼녀가 있는데 밖에서 여자친구를 사귀는 거 본 적 있어? 그럼 결국 너와 약혼녀가 결혼하고 나면 나는 네 두 번째 부인이 되는 거야? 너 나를 바보로 아냐?”손연지는 말하면서 그의 머리를 가볍게 쳤고 노민우는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가며 말했다.“그럼 결국 우리가 결혼하게 되면 어쩔 거야?”“만약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어떡할 건데?”“그만둬. 사실 나랑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사이잖아 맞지?”두 사람은 대화를 나누며 계단을 내려갔고 아래층 거실에서는 모두 준비가 끝나 있었다.손연지는 노연정을 안고 밖으로 나가려 했고 그 뒤를 노민우가 따랐다.천아름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리며 강하리에게 말했다.“여씨 가문 사람들이 또 와서 문제를 일으킬 거예요. 강하리 씨가 바쁠 때는 말해주세요. 제가 손연지 씨와 함께 있을게요.”강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웨딩사진 촬영은 사실 강하리가 특별히 복잡하게 찍을 생각은 없었다.할아버지가 꼭 이 절차를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면 아마 생략했을 것이다.하지만 사진을 찍고 나서 컴퓨터 화면에 찍힌 한 장 한 장을 보면서 강하리는 이것이 사실 구승훈과 함께 찍은 첫 번째 사진임을 깨달았다.그녀는 옆에서 노민우와 얘기하는 구승훈을 보며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손연지는 옆에서 혀를 찼다.“사실 나는 너희 둘이 결혼까지 갈
손연지는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노민우를 밀어냈다.“너 진짜 병 있는 거 아니야?”노민우는 한 손으로 그녀를 문에 다시 밀어붙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넌 내가 병이 있다는 걸 항상 알고 있었잖아?”손연지는 이를 악물며 갑자기 예전에 노민우가 뻔뻔하게 산부인과를 예약하고 다녔던 일이 떠올랐다.“아쉽네. 그럼 난 상종 안 하는데.”노민우는 혀를 차며 웃었다.“그럼 내가 안 하는 거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나?”손연지는 잠시 생각하더니 웃으면서 말했다.“너 두세 달 동안 안 했던 거 아니야?”노민우는 이 말을 듣자마자 갑자기 이빨이 아픈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손연지의 두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을 재빨리 손연지의 코트 주머니 속으로 집어넣어 작은 전기충격기를 꺼냈다.그 물건을 보고 노민우는 갑자기 머리가 띵 했다.예전에 그가 그녀의 스폰서가 되어주겠다고 했을 때 손연지는 노민우를 오랫동안 무시했다.후에 노민우가 손연지를 찾으러 갔을 때 전기충격기에 다쳤다.그때 아주 중요한 부분을 맞고 두세 달 동안 문제가 생겼었는데 결국은 그의 형이 약을 처방해 주고 나서야 회복할 수 있었다.그 일 때문에 형은 그에게 계속 영양제를 먹으라고 했었다.“너 아직도 이거 갖고 있었어?”손연지는 그를 발로 차며 말했다.“다시 넣어둬.”노민우는 그걸 주머니에 넣으며 말끝을 흐렸다.“잠깐만 얘기 끝내고 돌려줄게.”“얘기할 것도 없어.”노민우는 혀를 차며 말했다.“조금만 얘기해 얘기 끝내고 손 좀 놔줄게. 그때 넌 날 때리지는 마.”손연지는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해봐.”노민우는 그녀를 조심스럽게 놓아주었지만 그가 손을 내리자마자 손연지는 그의 다리를 차버렸고 노민우는 반사적으로 몇 걸음 물러섰다.“손연지, 약속을 어기는 거야?”“누가 먼저 안 지켰는데?”손연지는 발그레해진 손목을 문지르며 말했고 노민우는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 손목을 살펴보며 물었다.“아파?”“당연하지. 네가 바바 안
“강하리, 오늘 웨딩 촬영하는 거 알고 있어?”강하리는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입고 있던 잠옷을 끌어 올렸다.“잠시 후에 파운데이션으로 가릴 거야.”손연지는 눈을 굴리며 한숨을 쉬었다.“그래.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네.”강하리는 간단히 아침을 먹은 후 곧 심예진이 도착했다.그녀와 함께 온 사람들은 천아름 메이크업 아티스트 스타일리스트 그리고 웨딩드레스를 들고 온 일행이었다.강하리는 심예진을 보자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숙모 왔어요?”심예진은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으며 눈을 깜빡였다.“나 부르는 거야?”강하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심예진은 맑은 눈으로 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냥 이모라고 불러. 심준호 오빠랑 나는 그런 사이 아니야. 난 심호준 씨를 그냥 오빠라고 생각해.”강하리는 가볍게 웃었을 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메이크업은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다.강하리는 피부가 좋아서 가볍게 파우더만 발라도 충분했지만 목에 남은 흔적을 가리는 데에는 꽤 시간이 걸렸다.천아름은 강하리의 앞에 다가와서 혀를 차며 말했다.“진지하게 남편 바꿀 생각 없어요? 며칠 전엔 손목이더니 오늘은 목이네요. 너 남편 인성이 있긴 있어요?”강하리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다.옆에서 노연정과 놀고 있던 손연지도 피식 웃으며 거들었다.“가끔은 하리가 구승훈 씨에게 잡아먹히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예요.”강하리는 웃으며 말했다.“설마요. 그 정도는 아니에요.”손연지는 한숨을 쉬었다.“사람이 너무 외모에 홀리면 안 돼요. 그 나쁜 남자가 잘생기긴 했지만…”그녀가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문 쪽에서 느긋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지만 나보다 잘생기진 않았겠죠?”손연지는 몸을 굳히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고 그곳에는 이미 문 앞에 서 있는 노민우가 있었다.그녀는 멍하니 노민우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동자가 흔들렸다.노민우는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왜? 보고 넋이라도 나간 거야?”그제야 정신이 든 듯 손연지는 시선을 피
구승훈은 휴대폰을 들고 침실을 나섰다.강하리는 침대에 누워 있었지만 좀처럼 잠이 들지 않았다.그녀는 단순히 시간을 확인하려고 휴대폰을 들었지만 한 시간 전에 걸려 온 낯선 번호의 부재중 전화가 눈에 들어왔다.강하리는 찌푸린 채 그 번호를 바라보다가 막 화면을 닫으려는 순간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하리 씨, 늦은 시간에 실례합니다. 하지만 구 대표님의 상태에 대해 꼭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 연락드립니다. 대표님께서는 며칠 전 결혼 준비로 바쁘다며 모든 치료를 중단하셨습니다. 지금이 가장 중요한 단계인데 이대로 멈추면 그동안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발 구 대표님을 설득해 치료를 계속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강하리는 휴대폰을 손에 쥔 채 손가락을 힘주어 움켜쥐었다.메시지에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지만 강하리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임희주 외에는 이런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그녀는 잠시 시선을 떨구고 메시지를 바라보았다.‘구승훈이 정말로 모든 치료를 중단한 건가?’강하리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임희주에게 문자를 보냈다.[구승훈 씨가 치료를 중단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거예요. 임 선생님도 치료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결혼식이 끝난 후 다시 시작해도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해요.]임희주의 답장이 곧바로 도착했다.[강하리 씨, 아직 저한테 화가 나신 건가요? 아니면 구 대표님이 치료를 거부하는 게 혹시 당신 때문인가요?]강하리는 메시지를 보자마자 휴대폰을 옆으로 던져 버렸고 더 이상 임희주와 얽히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방금 말한 대로 구승훈을 믿었다.구승훈은 그녀와 노연정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몸을 함부로 다루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서산 퍼스트 빌리지 전체가 유난히 조용했고 창밖에는 정원의 희미한 가로등 몇 개만이 어둠을 비추고 있었다.구승훈은 창가에 서 있었고 그의 눈빛은 깊은 밤보다 더 어두웠다.그때 전화기 너머에서 구승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형...큰어머님의 집사
“그동안 누가 임희주를 지원했는지 조사해 봐.”준봉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고 그러나 사무실 문을 나서기도 전에 구승훈이 다시 한마디 했다.“임희주와 여초연 씨의 관계를 확인해 줘.”...결혼식 준비는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심문석은 병원에 며칠 입원했다가 퇴원했고 결혼식의 모든 과정과 세부 사항을 직접 확인하고 싶어 했다.강하리는 처음에는 노인의 건강이 걱정되었지만 심문석이 바빠지자 오히려 더 건강해 보였고 그녀는 그가 바쁘게 지내는 것을 그대로 두었다.이 시기 구승훈은 유난히 바빠 보였다.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밤늦게 돌아왔고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피곤함을 숨기지 못했지만 강하리는 그가 돌아올 때마다 얼굴에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시곗바늘은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강하리는 옆에 빈 침대에 잠시 눈을 두고 문을 열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주방에서 우유 한 잔을 데웠다.서재의 불빛은 여전히 켜져 있었다.강하리는 서재 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문을 두드렸다.“들어와.”문을 열고 들어간 강하리는 우유를 책상 위에 놓았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휴대폰 화면을 끄고 강하리를 바라보았다.“나에게 주는 거야?”구승훈이 그렇게 물었을 때 강하리는 그를 꾸짖을 줄 알았지만 의외로 그냥 ‘응’하고 대답한 후 그의 옆에 앉았다.“내가 도와줄 일이 있어?”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정말 도와줄 거야?”강하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대답했다.“그냥 내 부하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살펴보러 온 거야.”구승훈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맞아. 이제는 에비뉴와 정안 모두 강 부장이 최대 주주라서 그런 것들이 다 중요하겠지.”강하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옆에 있는 의자 하나를 가져다 앉아 책상 위의 서류를 하나씩 넘기기 시작했다.그녀는 금세 서류에 몰입했고 구승훈은 그녀 옆에 앉아 있는데도 자꾸만 그녀에게 시선이 갔다.서재의 불빛은 따뜻하지 않았지만 강하리가 앉자 공간 곳곳이
차 안은 숨 막힐 듯한 정적에 휩싸였다.구승훈은 팔꿈치를 팔걸이에 올린 채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준봉은 그가 곧 움직일 거라 예상했다.심지어 M국으로 떠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지만 30분이 흘러도 구승훈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준봉이 막 입을 떼려던 순간 구승훈이 먼저 입을 열었다.“노진우에게 사람을 데리고 곧장 그 장소로 가라고 해. 그가 출발하면 구승재에게 연락해 조용히 그쪽으로 가게 해. 노진우가 움직이는 순간 구승재는 바깥을 봉쇄하도록 해.”준봉은 잠시 말을 잃었다.“대표님, 혹시 함정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자리에서 몸을 기댄 구승훈은 표정을 읽기 어려웠다.그는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확신하고 있었다.여초연은 복수를 위해서라면 망설임이 없는 사람이었다.그가 아는 여초연이라면 일부러 그를 또 다른 함정으로 유인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이렇게 쉽게 자신의 흔적을 드러낼 리 없었다.그때 노연정을 납치했던 일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이 몇 년 간 여초연은 분명 자신의 세력을 키워왔을 것이다.그는 여초연을 항상 감시할 사람을 배치해 두었지만 그녀가 이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그런데도 여초연은 별다른 은폐 없이 M국으로 갔고 유일하게 예상하지 못한 점은 나문빈이 너무 빨리 그녀의 위치를 파악했다는 사실이었다.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녀에게 가장 큰 손실은 단지 노연정을 곁에 두는 시간이 짧았고 그 사이 구승훈과 강하리는 오랜 시간 고통을 겪어야 했으며 결국 그녀가 계획한 대로 그 약물이 그의 몸에 투여되었다.여초연의 계획은 모든 것이 치밀하게 짜여 있었고 그랬다면 지금 이 순간 구승훈과 강하리가 점차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여초연이 이렇게 허술한 실수를 저지를 리가 없다.게다가...구동근이 했던 말도 마음에 걸렸다.구승훈은 구동근과는 좋은 관계를 맺고 있지 않았지만 여초연보다는 그를 조금 더 신뢰하는 편이었다.한편 M국에서 여초연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며 집사에게서 휴대폰을 건네
손연지는 강하리와 천아름의 손을 잡고 곧장 밖으로 나갔다.“이런 사람들한테 시간 낭비하지 말아요. 진짜 역겹다니까요.”천아름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손연지를 따라가며 뒤를 돌아보며 날카롭게 던졌다.“여씨 가문의 두 분 내 가게에서 당장 꺼져요.”여명희는 순간 얼어붙었다.“천아름 씨, 미쳤어요? 이런 천한 년 하나 때문에 우리를 쫓아내겠다고요?”천아름은 걸음을 멈추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쫓아내는 게 아니라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거죠.”그러고는 매장 직원을 향해 손짓하며 덧붙였다.“앞으로 이 두 사람 내 모든 매장 출입 금지야. 알아들었지?”그러자 강하리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말을 이었다.“두 분은 심 씨 가문 명의로 된 모든 장소에 출입할 수 없어요.”그렇게 단호하게 선언한 후 더 이상 그녀들에게 신경 쓰지 않고 손연지와 함께 매장을 빠져나왔다.밖으로 나온 뒤 손연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통유리 창에 몸을 기댄 채 안쪽을 몰래 들여다봤다.“하하. 저렇게 분노에 차서 발악하는 꼴을 보니까 속이 다 시원하네요.”그러더니 갑자기 강하리를 와락 껴안으며 말했다.“하리야, 정말 고마워! 네가 아니었으면 이 울분을 풀지도 못했을 거야. 너 모를 거야 그때 직장에서 쫓겨났을 때 내가 얼마나 억울했는지. 이쁜이 정말 고마워...”그러자 천아름이 가볍게 헛기침하며 말을 끊었다.“저기...나한테는 고맙다는 말 없어요?”손연지는 얼른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고마워요!”천아름은 손연지에게 장난스럽게 윙크하며 웃었다.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래요? 결혼할래요? 내가 말인데 나랑 같이 지내면 앞으로 주얼리랑 옷은 내가 다 사줄게요.”“콜!”옆에서 듣고 있던 강하리는 입을 삐죽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손연지의 해맑은 웃음을 보자 결국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천아름 씨, 고마워요.”강하리가 진심을 담아 말했다.천아름은 손을 휘휘 저으며 시큰둥하게 답했다.“우리 사이에 무슨 고맙다는 말을 해요? 진짜로 고맙다면 당신 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