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구 대표님과 화해하려고 하는 건 아니죠?”강하리는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무슨 헛소리예요?”“제가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요는 거예요, 아니면 당신이 멍청한 척하는 거예요?”강하리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정주현 씨, 제가 말했잖아요. 그냥 친구 사이라고요.”정주현은 웃으며 말했다.“뭐 어때요? 구승훈이 쓰레기라는 사실에도 하리 씨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잖아요에 아무 영향도 없잖아요? 하리 씨, 예전에 그 사람이가 당신에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보세요. 지금 좀 잘해 준다고 해서 다시 넘어가면 안 돼요.”강하리는 그를 피했다.“저 정신 말짱합니다.”“그래요, 그럼 됐어요.”정주현은 별다른 말 없이 커피 한 잔 건넸다.강하리는 그를 쳐다보더니 대답했다.“고마워요.”정주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강하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정주현이 소란을 피우자 그녀는 갑자기 구승훈의 드레싱을 도와줘야 한다는 일이 생각났다.그녀는 구승훈이 먼저 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예상외로 감감무소식이었다.퇴근이 가까워질 때까지 구승훈은 연락이 없었고 되려 구승재에게서 전화가 왔다.“강 부장님, 그 할머니를 찾았는데 시간 있으세요?”강하리는 얼른 승낙했다.구승재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양 그룹 아래층에 도착했다.강하리가 내려갈 때 그는 차 옆에 서서 전화를 하고걸고 있는 것이 보였다.강하리를 보자마자 그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어떻게 됐어요, 구승재 씨?”구승재가 대답했다.“할머니를 찾았고 본인이 손연지 씨를 찾은 것도 맞다고 인정했지만 누가 시켰는지는 말하지 않았어요.”“병원에 가서 손연지 씨를 찾으라는 전화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손연지 씨더러 돈을 송금하라고 하는 전화 말이에요."“돈을 보내지 않거나 송금한 사람이 손연지 씨가 아니면 딸이 위험하다고 했대요.”강하리는 그의 말을 들으며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또 속으로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전화한 사람은 못 찾
구승훈은 사무실에 앉아 신임 마케팅팀장이 여름 기획 프로젝트에 대해 보고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한참 동안 듣던 중 갑자기 손을 들어 멈추라는 제스처를 보내고 휴대폰을 확인했다.이윽고 남자의 눈가에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저녁 같이 먹을래? 거즈도 바꾸고.]강하리는 조용히 구승훈이 보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기에 한숨을 내쉬며 답장했다.[그래요.]구승훈의 입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갔다.신입 마케팅팀장은 경악에 찬 얼굴로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구 대표님이 이렇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던가?차가운 염라대왕도 이럴 때가 있다니.구승훈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앞에 서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았다.“가져가서 다시 하세요. 올해 여름 시장 테마에 대해 알아봤어요? 시장 조사는 해보셨나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 전에 있던 팀장에게 물어봐요.”마케팅팀장은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대답하며 기획안을 들고 사장실을 나섰다.강하리는 구승훈의 전화가 왔을 때 아직 퇴근 준비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아래층에서 기다릴게.”강하리는 짧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휴대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가고 안예서가 불러서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부장님, 누구 생각하시는 데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강하리는 그녀를 힐끗 보고 대답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퇴근이나 해.”안예서는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제가 쓸데없는 소리를 한 건가요?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요. 부장님 혹시 연애하세요?”강하리는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아니.”안예서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안예서는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부장님 내일 경기장 가는 거 잊지 마세요.”강하리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녀가 내려왔을 때 구승훈은 팔짱을 낀 채 차 옆에 기대어 있었다.남자는 짙은 회색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는데 유난히 잘생기고 반듯해 보였다.“뭐 먹고 싶어?”강하리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아무거나요.”구승훈은 피식 웃었다.“그럼 프랑스 음식 먹으러
그러고는 곧장 차를 몰고 떠났다.강하리는 한참 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꽃을 든 채 집으로 돌아갔다.손연지는 그녀의 품에 들린 꽃을 보자 순간 당황했다.“그거... 구승훈이 준 거야?”강하리는 눈가가 파들파르르 떨리며 대답하지 않고 곧장 침실로 들어갔다.그날 밤, 그녀는 내내 잠들지 못했다. 방 안 가득 리시안셔스 향기가 퍼지는 것 같았다.다음 날, 강하리는 아침 일찍 최하영과 약속한 골프장에 도착했다.최씨 가문의 사업은 줄곧 회색 지대를 배회하고 있었지만 최하영 본인은 의외로 반듯한 모습이었다. 40대 남자가 가져야 할 배짱과 침착함도 부족함이 없는 모습이었다.강하리는 최하영을 보고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고 최하영 역시 강하리를 보자마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강 대표님 실제로 뵈니 사진보다 훨씬 예쁘시네요.”전에 강하리를 만난 적은 없지만 김주한의 일 때문에 최하영은 강하리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었다.최씨 가문의 권력자로서 수없이 많은 여자를 만나봤던 그는 강하리의 사진을 봤을 때만 해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하지만 그녀를 직접 보고 나니 확실히 구승훈의 눈이 높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편한 스포츠 룩을 입었음에도 강하리는의 미모를는 감출 수 없었다.“한 번 쳐볼까요? 치면서 얘기하죠.”최하영이 손에 든 골프채를클럽을 흔들면서 들자 강하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최 대표님 먼저 하시죠.”“레이디 퍼스트가 먼저죠.”강하리도 더 망설이지 않고 공 쪽으로 걸어가 골프채를 예쁘게 휘둘렀다.최하영의 눈빛이 잠깐 번뜩였다. “강 대표님은 아실지 모르겠지만 공치는 습관이 구 대표님과 무척 닮으셨네요.”강하리는 싱긋 웃었다.“눈썰미가 좋으시네요. 구 대표님께서 배웠거든요.”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구승훈을 언급하자 그녀는 잠시 멈칫하며 마음속 어딘가 툭 건드려진 것 같았다.최하영은 웃음을 터뜨렸다.“어쩐지, 보아하니 두 분이 보통 사이는 아닌가 봅니다. 하긴, 그렇지 않았다면 그토록 희귀한 정보로
골프를 다 치고 나니 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최하영은 강하리에게 식사를 같이 하자고 제안했고 식사 자리에서 그가 신사답게 술도 권하지 않고 에티켓을 지킨 덕분에 즐거운 식사 자리가 되었다.식사가 끝날 무렵에야 최하영이 말을 꺼냈다.“그 땅, 강 대표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세요?”강하리는 다소 마음이 혼란스러워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최 대표님, 이 문제는 제가 혼자서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나중에 다시 얘기할까요?”최하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네, 그럼 강 대표님께서 약속 잡으실 때까지 기다리죠.”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와 함께 식당에서 나온 뒤 곧장 차로 향했다.차 안에서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사실 그녀는 김주한에 대해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당시 구승훈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고 구승훈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는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김주한을 반쯤 죽여놓았다는 사실조차도 나중에 구승재에게 들은 이야기였다.강하리는 지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 들었고 다시는 풀리지 않을 것 같았던 마음 어딘가에 균열이 생긴 것 같았다.그 틈새에 무시할 수 없는 당혹스러움이 밀려와 강하리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구승훈은 매번 그녀가 거절하지 못하는 것만 주는 것 같았다.그녀에게는 이 땅이 필요했다.이 땅이 없으면 정양철과의 내기 계약은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았다.하지만 지금...어떤 기분으로 구승훈을 마주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노진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고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강하리 씨, 사업 얘기가 잘 안됐습니까?”정신을 차린 강하리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잘 됐어요.”그녀만 대답하면 최하영은 분명 망설임 없이 그 땅을 대양 그룹에 넘길 것이다.다만... 이 호의를 어떻게 갚아야 할까?강하리를 보낸 후 최하영은 옆에 있는 룸으로 들어갔다.룸안에서 구승훈은 창가에 서서 강하리가 차에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 뒤에야 구승훈은 뒤를 돌아보았다.최하영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퇴근하고 갈게요.”구승훈의 낮은 웃음소리가 들렸다.“그래, 데리러 갈게.”“아니요, 제가 알아서 갈게요.” 강하리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다.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다가 다소 무력한 웃음을 지었다.잠시 침묵하던 그는 주방에서 국을 끓이고 있는 가정부를 바라보았다.“해장국은 됐으니까 가서 장 좀 봐오세요.” 가정부는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대표님, 집에 식재료 아직 있는데요.”구승훈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하며 느긋하게 한 마디를 던졌다.“장 다 보고 나면 오늘은 그만 퇴근하세요.”당황한 가정부는 이윽고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갔다.그런데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하리가 뭘 좋아하는지 알아요? 달콤한 것 빼고, 물고기나 새우 이런 거 좋아해요?”가정부는 조금 당황했다. 이곳에 온 지 몇 달이 지났지만 강하리를 위해 요리를 해준 적은 몇 번 되지 않았다.강하리가 디저트를 좋아한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 대단한 것이다.“대표님께서 오랫동안 같이 살았으니 저보다 더 잘 아시겠죠.”이 말을 들은 구승훈은 눈빛이 어두워졌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불쾌했다.가정부는 다른 뜻은 없었고, 그저 구승훈이 자신보다 더 잘 알거라 생각한 것이었다.하지만 그 말이 조롱처럼 들렸다.아직 술기운이 남아 있었던 구승훈이 잔뜩 굳은 표정을 하고 있자 더 무서워 보였다.구승훈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느낀 가정부는 서둘러 말했다.“일단 장부터 보고 올게요. 언제 한번 아가씨에게 새우만두를 해준 적이 있는데 몇 개나 드신 걸 봐서 꽤 좋아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돌아와서 만두 찔게요.”가정부는 말을 마친 후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구승훈은 온몸에 냉기가 감도는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강하리는 오후 회의를 마치고 나오자 퇴근할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정주현은 서류 챙겨 들고 그녀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왔다.“만나야 할 사람이 두 명 있는데 오늘 저녁은 클라이언트와 먹을까요?”
하지만 그가 차에 타기 전에 노진우가 다가와서 차 문을 막았다.“도련님, 이대로 강하리 씨 차에 타면 강하리 씨 평판에도 좋지 않을 것 같은데요.”정주현은 코웃음 치며 다른 쪽으로 돌아갔고 노진우도 재빨리 뛰어넘어 반대편 차 문을 막았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강하리는 두통이 밀려오는 느낌에 곧장 밖으로 나가 택시를 불렀다.강하리가 떠나려는 모습을 본 정주현은 화가 나서 노진우를 발로 차버리고 싶었다.“노진우, 넌 진짜 구승훈 개야!”노진우는 정주현을 바라보며 말했다.“도련님은 잘 보이려고 꼬리 흔드는 개 같네요.”말을 마친 그는 정주현이 화를 내기도 전에 차를 몰고 떠나버렸고 정주현은 휴대폰을 들고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다.“구승훈 씨, 우리 페어플레이 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대체 강하리 옆에 노진우는 왜 붙이는 거예요?”구승훈은 느긋한 목소리로 대꾸했다.“정주현 씨, 그쪽은 매일 곁에 있으면서 난 사람 좀 붙이면 안 됩니까?”정주현이 피식거렸다.“참 간사하시네요.”“당신은 순수한가?”“난 적어도 그 여자한테 장난은 안 쳐요. 구승훈 씨, 정말 강하리를 돕고 싶었으면 그냥 조용히 돕기나 할 것이지 왜 그 기회를 틈타 동정을 바라는 건데요.”구승훈은 나른하게 웃었다.“내가 왜 조용히 도와야 하죠? 이왕 도와줬으면 알게 해야죠.”그렇게 말한 뒤 그는 전화를 끊었다.강하리는 아파트 문 앞에 서서 망설이다가 노크를 했다.구승훈은 문을 열고 현관에 서 있는 여자를 발견하고 짙은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지문 인식하면 되잖아, 왜 노크를 해?”강하리가 웃으며 말했다.“남의 집에 왔을 때는 예의를 지켜야죠.”구승훈도 웃었다.“하리야, 여기가 남의 집이야?”강하리는 대답 대신 그의 시선을 피해 안으로 들어가 신발장을 열었고, 슬리퍼에 손이 닿자 잠시 멈칫했다.그녀가 신던 슬리퍼는 이미 사라지고 옆에는 새로운 신발이 놓여 있었다.그녀는 잠시 망설이다가 손님용 슬리퍼 한 켤레를 꺼냈다.구승훈은 그녀의 움직임을 지켜보면서 아무 말도
강하리의 몸이 심하게 경직되며 순간 심장 박동이 멈춘 것 같았다.“구승훈 씨, 이거 놔요.”구승훈은 대꾸하면서도 더 꽉 안았다.“하리야, 가만히 있어. 잠깐만 안고 있을게, 잠깐만.”여전히 희미한 술 냄새가 남아 있는 남자의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으며 옅은 담배 냄새도 묻어났다.강하리의 몸이 더욱 굳어졌다.싱크대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그녀의 귓가로 온통 남자의 숨소리가 맴돌았다.심장이 점점 더 세차게 뛰었고 강하리는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이거 놔요.”하지만 구승훈은 여전히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놓아주는 대신 그녀의 몸이 으스러질 듯 더 세게 안았다.“하리야, 너무 보고 싶었어.”강하리는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고 본능적으로 남자를 밀어내려고 애썼지만 오히려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꽉 움켜쥐며 붙잡았다.“가만있어 하리야, 더 움직이면 내가 너무 힘들어.”당황한 강하리는 홧김에 구승훈의 발을 밟았고, 밟고 나서야 구승훈의 단단한 아래가 그대로 느껴졌다.두 사람은 조금의 틈도 없이 바싹 밀착해 있어 구승훈의 물건이 자신의 허리춤에 닿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구승훈, 이... 이 변태!”구승훈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었다.“너무 보고 싶었어. 가만히 있어, 나 진정 좀 하게.”누구라도 이 상태로는 전혀 진정할 수 없다는 걸 알았지만 그는 단지 조금만 더 그녀를 안고 싶을 뿐이었다.주방에서 아내처럼 따뜻하고 다정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고 싶었다.강하리의 이런 모습은 본 적이 없었으니까.구승훈은 지난 며칠 동안 자신이 보고 싶은 적은 없었는지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하지만 제 발로 무덤을 파는 꼴이 될 것 같아 차마 입 밖에 꺼내지 못했다.구승훈이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것을 보아 정말 진정하는 중인듯했다.하지만 그곳의 단단함은 여전했고 강하리는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그때 구승훈의 입술이 갑자기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하리야,
강하리는 그를 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구승훈은 잠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돌아서서 부엌으로 들어가 보온병을 꺼냈다.강하리가 위층에서 내려오자 구승훈도 그녀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이거 가져가.”그는 보온병을 강하리에게 건네며 말했고 강하리가 거절하기도 전에 다시 입을 열었다.“아줌마한테 국 좀 끓여달라고 했어, 아주 담백한 거. 병원에 가져가서 아주머니한테 드리고 너도 좀 먹어.”그렇게 말한 뒤 남자는 보온병을 강하리의 품에 밀어 넣었다.강하리는 차에 돌아와 멍한 표정으로 옆에 놓인 보온병을 바라보았다.노진우는 강하리의 표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강하리 씨, 구 대표님과 무슨 오해라도 있는 겁니까?”정신을 차린 강하리가 꿰뚫어 볼 듯한 그의 시선을 피했다.“아니요.”“없다면 왜 서로 좋아하는 게 화해하지 않는 겁니까?”강하리는 웃기만 했다.“병원으로 가요.”노진우는 그녀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정서원의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강하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녀의 눈빛이 더욱 밝아졌다.“오늘은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조금 전 어머님께 식사 준비해 드리는데 굳이 아가씨 오시는 거 기다리겠다지 뭐예요.”간병인이 옆에서 말을 건네자 강하리는 웃으며 보온병을 들고 다가왔다.“엄마, 이제부터는 제가 안 와도 제때 식사 하셔야 해요.”정서원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고 간병인이 다가와 보온병을 열자마자 감탄했다.“참 정교하게 빚은 새우만두네요. 국물도 최소 몇 시간을 끓였죠? 아가씨도 참 세심해요. 일하면서 이렇게 어려운 음식도 만들고.”강하리는 보온병에 담긴 새우만두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간병인은 작은 국그릇에 담아 강하리에게 건넸다.“얼른 어머님께 드리세요.”강하리는 새우만두를 받아 들고 잠시 망설이다가 정서원에게 먹였지만 그녀는 국물을 두 번 정도 마시고는 더 먹지 못했다.강하리가 그녀의 팔다리를 움직이며 씻겨주려는데 정서원이
구승훈은 강하리를 다소 시무룩한 표정으로 바라보면서도 결국 순순히 입을 다물었고 손연지는 구승훈을 보고 웃었다.구승훈은 굳어진 표정으로 두 사람을 따라 계단을 내려가다가 모퉁이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강하리를 한 손으로 잡아당긴 뒤 입술을 세게 깨물었다.“오늘 밤에 보상해 줄 거야?”강하리는 순간 조금 전 당황스러운 장면이 떠올랐고 손연지가 지금 슬픈 상황에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싶지 않았다.“가만히 있어.”구승훈의 입술이 그녀의 귀에 닿았다.“그러면 손으로만 하는 건?”남자의 손이 그녀의 허리를 가로질러 그녀가 승낙할 때까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이 꽉 감싸자 강하리는 결국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이따가 내려가선 얌전히 있어.”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아내 말은 들어야지.”손연지는 식사 내내 먹는 둥 마는 둥 했고 식사가 끝날 무렵 강하리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노민우였다.강하리는 손연지를 바라보며 바로 전화를 끊었고 손연지는 못 본 척했지만 표정이 한층 어두워졌다.하지만 잠시 후 구승훈의 휴대폰도 울렸고 그는 눈썹을 치켜들며 전화를 집어 든 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바깥에 도착하고 나서야 구승훈은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노민우가 아닌 노민준의 전화였고 그는 뒤를 돌아보고는 전화를 받았다.“그 주사 효과가 어때?”구승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괜찮아. 지난 이틀 동안 상태가 전보다 훨씬 안정됐어.”거짓말이 아니었다. 구승훈은 노민준이 건넨 주사를 맞고 나서부터 지난 이틀 동안 단 한 번의 이상도 느끼지 못했고 그것이 그가 오늘 유난히 기분이 좋았던 이유였다.노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포기하지 말라고 했잖아.”짧게 대꾸한 구승훈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말을 마친 노민준이 잠시 멈칫했다.“참, 내 동생이 할 말이 있대.”곧이어 저쪽에서 노민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승훈아, 손연지는 지금 어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네 여자를 왜 나한테 물어봐?”“승훈아, 나도 네가 강하리 씨
강하리는 사실 자신이 꽤 한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거듭되는 상처에도 수없이 용서했다.마치 구승훈이 없으면 모든 게 그대로 멈춰버릴 듯이.구승훈이 사라져도 세상은 여전히 잘 돌아가지만 구승훈이 없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그건 그녀가 원하는 게 아니었다.“또 무슨 일이 생기면 난 당해도 싸.”강하리는 손연지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손연지는 다가와 강하리를 껴안았다.“구승훈 이 개자식이 전생에 우주라도 구한 거야?”강하리는 미소를 지으며 손연지의 어깨에 기대었다. 의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위로에 가까웠다.“그러는 넌, 대체 무슨 일인데?”자기 일을 언급하자 손연지는 순식간에 흥미가 사라진 표정이었다.“별건 아니야. 사실... 하리야, 나 임신했었어.”강하리는 깜짝 놀랐다.“뭐? 그래서? 지금은 어떤데? 아기는?”손연지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노민우는 다른 여자와 약혼하고 있었어. 노민우에게 말할 생각도 없었고 사실 아이도 남길 생각 없었어. 노씨 가문이나 노민우에겐 관심 없어. 40일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수술하려고 했는데 그날 밤 내가 당직일 때 노민우 약혼녀가 병원에 찾아와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난동을 부렸어. 병원에서도 노씨 가문에 밉보일 수 없어서 날 해고했어.”강하리의 표정이 차가워졌다.“그러고 나서?”손연지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그리고 다음 날 아이를 지웠는데 노민우가 어떻게 알았는지 낙태한 걸 알고는 나한테 화를 냈어.”강하리의 가슴에 고통이 밀려왔다.노민우가 약혼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때 손연지에게 연락했을 때만 해도 그녀는 멀쩡했었다.고작 얼마나 됐다고 노민우 그 개자식이 손연지를 이렇게 힘들게 한 건지!“왜 나한테 말 안 했어?”손연지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웃었다.“말해도 달라질 게 뭐가 있어. 그래도 노민우를 그냥 두지는 않았어. 자기가 뭐라고 나한테 화를 내? 약혼까지 했는데 내가 아이를 낳길 바라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노씨 가문에 찾아가서 업무에
강하리의 눈빛이 번쩍이며 구승훈의 말에 담긴 의미를 순식간에 알아차렸다.그가 오늘 인터넷 속 모두가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매달리는 역할을 자처했으니 이젠 그녀가 자신을 데려가야 한다는 말이었다.강하리는 구승훈의 목에 팔을 걸고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며 속삭였다.“보답이라, 문제없지. 구 대표님이 우선 그 쓸데없는 여자들 먼저 해결하면!”이번 일에 진시연이 연루되지 않았을 리가 없다.석미란이 심준호에게 고소당한 이후 석연란조차 한동안 잠잠했고 그녀가 대외적으로 자신에 대한 악담을 퍼뜨릴지 몰라도 온라인에 증거를 남기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그러니 누가 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개자식, 하여간 여자가 너무 많이 꼬인다.강하리는 계속해서 구승훈과 사무실에서 꽁냥거리진 않았다.집에 손연지가 있었기에 가는 길에 백아영에게 전화를 건 강하리는 구승훈을 따라 별장으로 돌아왔다.어두운 별장을 보며 강하리는 손연지가 아직 자는 줄 알았다.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인공지능이 불을 켜자 갑자기 별장 전체가 환하게 밝아졌다.강하리가 가방을 내려놓고 손연지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려는 순간 갑자기 구승훈이 뒤에서 안았고 곧이어 그녀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소파에 쓰러뜨렸다.강하리가 말하기도 전에 구승훈은 그녀의 입술을 막았고 남자의 손이 불순하게 그녀의 다리를 어루만졌다.“자기야, 다리 예쁘다.”강하리는 남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챘다.이 개자식!머릿속엔 그 짓밖에 없는 건지.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그녀는 손연지에 대해 말하는 것도 잊어버렸다.“당신... 읍...구승훈은 거침없이 그녀의 스타킹을 찢어버리고는 그녀의 손을 끌어 벨트로 가져갔다.“도와줘, 자기야.”강하리의 얼굴이 화끈거렸다.“일단 기다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종아리를 잡고 부드럽게 주물렀다.“못 기다려.”강하리는 그를 세게 밀었다.“아니, 내 말은...”“어머!”강하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계단 너머에서 손연지
주해찬은 다소 침울한 표정으로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아니라고 하면 믿어줄래?”주해찬은 정말 강하리에게 계속 사실을 숨길 생각도, 진시연을 도울 생각도 없었다.그냥... 강하리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때 나서서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그러면 강하리의 마음속 망가진 그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있을 것 같아서.그런데 구승훈이 이토록 매몰차게 굴 줄은 몰랐다.아버지가 얼마나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인지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부패한 관리들처럼 부정부패와 뇌물 수수를 일삼지는 않을 것이고 할아버지도 절대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가만둘 리 없었다.하지만 부패를 철저히 타도하는 지금 같은 시기에 작은 선물을 몇 개 받은 것만으로도 큰 문제가 된다.게다가 구승훈은 그 증거를 노골적으로 인터넷에 올렸고 관련 부서에 실명으로 가차 없이 신고했다.구승훈은 결코 자신을 감추는 사람이 아니었다.그가 원하는 건 주해찬의 타협과 강하리 앞에서 완전히 신뢰를 잃는 것이었다.사실 구승훈이 처음 병원에서 그를 떠봤을 때부터 쉽게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다만 줄곧 비현실적인 희망을 붙잡고 있었는데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주해찬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의 완전한 패배라는 걸.“미안해, 하리야. 엄마한테 사과하라고 할게. 그리고... 인터넷에 너에 대한 루머를 유포한 것도 이모가 한 짓이야. 이모한테도 사과하라고 할게. 그리고 하리야, 내 다리...”주해찬은 말하며 심호흡하듯 잠시 멈춘 뒤 다시 말을 이어갔다.“사실 거의 다 나았어.”강하리는 당황했고 주해찬은 다시 입을 열었다.“미안해. 조금만 더 나랑 같이 있어 주길 바라서, 구승훈이랑 다시 만나서 네가 또 상처받을까 봐 내가...”“선배.” 강하리가 갑자기 주해찬의 말을 가로챘다.“고마워요.”그녀가 고맙다고 말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강하리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예전에 여러 번 날 도와주고 날 이렇게 생각해 주고 지금도 날 위해 나서서 진실을
두 사람 관계에 있어서 누가 봐도 을인 모습이었다.사무실에 있던 몇몇 기자들은 서로 눈치만 봤다.에비뉴와 정안그룹이 강하리 명의로 되어 있다고?그렇다면 강하리 혼자서도 B시 재벌과 맞먹는 것 아닌가.여러 기자가 모두 멍한 표정으로 구승훈을 바라봤다.구씨 가문의 권력자 구승훈이 자신은 아내 덕분에 먹고 사는 놈이라고 말하다니, 그것도 제법 자랑스러워하는 듯했다.“그러면 강 대표님이 구 대표님과 송유라 씨 사이에 개입했다는 건...”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제가 우리 강 대표님과 언제 만났는지 아세요?”기자는 고개를 저었고 구승훈은 오른손 손가락으로 왼쪽 약지에 낀 반지를 살며시 돌리면서 시선을 내리깔고 웃었다.“아홉살 때 만났어요. 그 여자가... 제 삶의 유일한 구원이었죠.”구승훈은 복잡한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자기야, 미안해. 오랜 세월 많이 힘들었지? 오늘 여기서 맹세할게. 나 구승훈은 평생 강하리의 것이란 걸.”강하리는 화면 속 구승훈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코끝이 시큰거렸다.개자식, 인터뷰만 할 것이지 왜 저런 말을 해서는.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구승훈의 말에 그녀의 마음속에 작게나마 남아있던 불편함이 말끔히 사라졌다는 걸.인터넷에 그 많은 루머들이 떠돌아다녀도 언제나 그녀를 감싸줄 사람이 있었다.구승훈의 인터뷰는 곧 화제성을 끌어모았고 강하리를 욕하던 사람들은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채 댓글 창에는 축복의 글이 가득했다.강하리는 휴대폰에 달린 축복의 댓글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구승훈에게 전화를 걸었고 구승훈의 목소리에는 미소가 묻어났다.“강 대표님, 나 보고 싶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오늘 밤 일찍 돌아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구승훈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맛있는 음식만 있어?” 강하리는 멈칫했다.“또 뭘 원해?”“다리. 자기야, 한번 해보자.”강하리는 이를 갈며 그냥 전화를 끊었고 구승훈은 끊어진 전화를 바라보며
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정양철은 죽었지만 애초에 그가 강하리 어머니에게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이대로 알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 시점에 정양철과 관련된 또 다른 단서가 나올 줄이야.“확실해요?”“물론이죠.”구승훈은 전화를 끊고 심준호에게 연락했고 그와 대화를 마친 뒤 밖을 향해 말했다.“시작하지.”잠시 후 비서가 기자 10여 명을 데리고 구승훈의 사무실로 들어왔다.나문빈이 홈페이지를 정상으로 되돌리자 강하리를 욕하던 사람들은 모두 SNS로 옮겨갔고 과거 여러 번 검색어에 오르며 욕을 먹었던 흑역사도 전부 밝혀졌다.SNS에서 누군가가 돈으로 사주했는지 갈수록 심한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안예서는 점점 더 고조되는 SNS의 화제성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약서를 하나하나 처리하는 강하리를 보며 조금은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대표님, 이걸 제대로 밝힐 방법을 찾아야겠어요.”강하리는 고개도 들지 않았다.“그럴 필요 없어. 욕하다 지치면 자연스레 그만두겠지.”안예서가 다소 우울한 표정으로 강하리를 설득하려는 그녀는 이미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안진 그룹 총괄팀장과 약속 잡아줘.”안예서는 다소 무력한 한숨을 내쉬며 뒤돌아 사무실을 나섰다.그녀가 사무실을 나간 뒤에야 강하리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손가락이 SNS 아이콘 위에서 잠시 멈칫하다 클릭했다.하지만 들어가서 보니 그녀를 욕하는 내용은 사라지고 안예서가 말했던 것들도 전부 보이지 않았다.대신 라이브 방송 하나가 떠서 클릭해 본 강하리는 깜짝 놀랐다.구승훈이었다.뒤에 비치는 장소는 그의 사무실 같았다.남자는 검은 셔츠를 입은 채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어 손가락엔 어느새 반지를 끼고 있었다.자세히 보면 그녀가 끼고 있는 반지와 같은 모델이지만 다이아몬드가 그렇게 크지 않을 뿐이었다.강하리는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에 낀 반지로 시선을 옮겼고 그 시각 왠지 모르게 인터넷에서 자신에 대해 뭐라고 말하든 다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졌다.무슨
구승훈은 휴대폰 메시지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밤에 보상해 줄래?]손연지가 왔다며 허튼수작 부리지 말라고 답장하려던 찰나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고 안예서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큰일 났어요.”강하리는 잠시 멈칫했다.“뭔데, 천천히 얘기해 봐.”“오늘 아침 일찍 우리 회사 홍보 사이트가 해킹됐는데 사이트에 온통 대표님이 스폰 받았다는 이상한 댓글이 가득해요.”안예서는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고 강하리는 표정이 점점 굳어갔다.“알겠어.”전화를 끊고 회사 사이트에 들어가니 그녀의 눈에 온통 적나라한 욕설들이 가득 들어왔다.스폰을 받았다는 사람도 있고 몸을 대주고 높은 자리로 올라갔다는 말도 있었다.심지어 구승훈과 송유라 관계를 그녀가 망쳤다는 사람도 있었다.송유라가 세상을 떠난 지 거의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녀의 팬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왔고 지금 JM의 사이트에도 그들이 가득했다.[내연녀는 내연녀지. 뭐라 해도 해명하지 못해.][그냥 내연녀도 아니고 몸 팔아서 JM 파트너 자리를 꿰찼는데 역겹지도 않아?][JM은 유엔 산하의 번역 회사인데 저런 사람이 대표야?][허, 어떻게 그 자리로 올라갔는지 누가 알겠어. 또 유엔에 어느 높으신 분을 모셨겠지.]강하리는 댓글을 하나하나 확인하며 휴대폰을 쥐고 있는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변해버렸다.심호흡하고 안으로 들어가 손연지에게 설명한 뒤 회사로 차를 몰고 가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모르겠다.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강하리는 문득 비웃음이 터져 나왔다.이번에도 누가 자신을 노린 건지 짐작할 수 있었다.어제의 사건은 이미 지나간 일이고 나머지는 진태형의 해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보아하니 상대는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강하리는 회사에 도착하자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듯 곧장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꼭대기 층에 도착하자 안예서가 반갑게 맞이했다.“대표님, 괜찮으세요?”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하리는 차 안에서 잠든 손연지를 바라보다가 노민우의 전화를 받았고 노민우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불안함이 묻어났다.“강하리 씨, 손연지한테 연락이 왔어요?”“나랑 같이 있는데 무슨 일 있어요?”노민우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지금은 나랑 얘기하고 싶지 않을 테니까 같이 있어 줘요.”강하리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결국 어쩔 수 없이 말을 꺼냈다.“노민우 씨, 연지는 잘 우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공항에 데리러 갔을 때 밤새 운 것 같았어요. 그쪽이 무슨 사정이 있든 연지를 이렇게 울렸으면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거예요.”노민우가 제대로 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연성으로 찾아갈 기세로 강하리는 유난히 단호하게 말했다.노민우는 다소 억울했지만 그래도 순순히 답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제가 손연지한테 다 설명할게요.”강하리는 손연지를 데리고 그녀와 구승훈의 저택으로 향했고 비몽사몽 눈을 뜬 손연지는 눈앞에 가득 찬 리시안셔스와 정원 뒤편에 있는 성처럼 생긴 저택 건물을 보았다.“세상에, 하리야. 여기가 너 사는 곳이야?”강하리는 그녀의 모습에 비로소 살짝 안도했다.“그런 셈이지.”손연지는 차 문을 열고 곧장 저택으로 향했다.위층과 아래층을 몇 번이나 돌아보더니 갑자기 나와서 강하리를 껴안았다.“자기, 날 먹여 살려줘. 마침 나도 일자리 잃었는데.”강하리의 얼굴에 머금었던 미소가 옅어졌다.“일자리를 잃었다니 무슨 말이야?”손연지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우울한 한숨을 내쉬었다. “직업도 없고 일자리도 잃었어. 부모님도 나 때문에 창피당했고.”강하리는 미간을 찌푸렸고 손연지가 자세히 말하지 않았지만 대충 짐작할 수 있었기에 다가가 그녀를 안아주었다.“괜찮아, 내가 복수해 줄게.”손연지는 코끝이 시큰거렸다.“하리야, 역시 너밖에 없어. 개자식들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이야!”강하리는 손연지를 껴안고 위로하듯 속삭였다.더 이상 구체적인 질문은 하지 않은 채 객실로 데려가 샤워할 수 있도록 욕조
구승훈은 잠든 강하리의 얼굴을 보며 참지 못하고 다가가 입술에 뽀뽀했다.“자기야, 미안해.”강하리의 속눈썹이 두 번 파르르 떨리더니 굳게 감고 있던 그녀의 눈가가 시큰거렸다.구승훈은 오늘도 잠 못 이루는 밤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강하리를 껴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잠이 들 줄이야.겨우 반쯤 잠이 들었을 때 문득 강하리의 말이 들리는 것 같았다.“구승훈, 나도 당신을 지켜주고 싶어.”구승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그대로 꿈속으로 빠져들어 갔다.다음 날 아침, 강하리가 잠에서 깨어나기도 전에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손연지였다.슬쩍 확인한 강하리가 서둘러 전화기를 집어 들자 저쪽에서 손연지의 코 막힌 소리가 들려왔다.“하리야, 이틀만 거기로 놀러 가도 돼?”강하리는 당황했다.“당연하지. 언제 오는데? 내가 데리러 갈게.”“나 지금 B시에 있어.”강하리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고 구승훈은 끙 앓는 소리를 내며 고통스러운 얼굴로 몸을 움츠렸다.“자기야, 방금 남은 인생의 행복을 자기 손으로 망칠 뻔한 거 알아?”강하리의 얼굴이 순간 빨개졌다.“구승훈, 괜찮아?”구승훈이 그녀의 턱을 잡고 입술을 깨물었다.“안 괜찮아. 강 대표님이 호 불어줘.”농담하는 걸 보니 괜찮나 보다.“그러게 누가 함부로 뻗으래.”구승훈은 웃으며 그녀의 귀로 다가갔다.“오늘 밤 다리로 해볼까?”강하리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좀 진지하게 굴 수는 없어?”구승훈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했다.“망가졌는지 확인해 봐야 하지 않겠어?”강하리는 손연지 때문에 그와 더 실랑이를 벌이기 싫어 침대에서 일어나 발코니로 향했다.“손연지, 너 지금 어디 있어?”“아침부터 내 앞에서 애정행각 벌이는 건 좀 아니지 않니?”농담이었지만 손연지의 기분은 여전히 좋지 않았기에 강하리는 얼굴을 찡그렸다.“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게.” 손연지가 강하리에게 위치를 보냈고 강하리는 서둘러 샤워를 마친 뒤 문을 나섰다.구승훈이 그녀와 동행하려는데 구승재가 갑자기 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