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하네요.”송유라의 어머니, 장진영이 우아하게 웃으며 일어섰다.“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입금이 제때에 안 된다면 어려워질 지도 모르지요. 제가 받을 돈을 못 받으면 입을 주체 못 하는 편이라서요.”장진영의 얼굴에서 빛의 속도로 웃음기가 사라졌다.“처음 합 맞춰보는 것도 아닌데 쓸데없는 수작질은 집어치우시죠. 나한테 위협이 통할 것 같습니까?”냉랭하게 한 마디 뱉고는 오만하게 턱을 쳐들고 밖으로 나갔다.“엄마, 어떻게 됐어?”장진영이 차에 오르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송유라가 물었다.“강찬수라는 사람, 멍청하고 탐욕스럽지만 강하리를 견졔하기에는 딱이야. 이 자만 우리 편이면 강하리는 반드시 고소 취하할 거야.”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송유라는 손에 들고있던 소환장을 구겨 바닥에 던졌다.그 종이 뭉치를 바라보는 장진영의 눈빛도 어두워졌다.이틀 전, 송씨 가문에 도착한 소환장이었다.강하리가 간 크게도 송유라에게 법적 소송을 건다는.그것도 무려 심준호한테 위탁해서.심준호란 이름을 본 순간 장진영의 눈가가 파들파들 떨렸었다.이 지X 맞은 년이 무슨 수로 심준호를?“가장 좋은 해결책은 구승훈이 나서주는 건데.”장원영의 침음에 송유라가 낯빛을 흐렸다.구승훈에게 부탁을 안 한 게 아니었다. 밖에서 만나 식사할 때 진작 얘기를 꺼냈다.하지만 구승훈은 시종일관 대답이 없었고.처음부터 끝까지 성형 얘기 뿐이었다.“이런 일까지 오빠한테 부탁하고 싶지 않아.”짐짓 당차게 대답했었지만 송유라는 너무나도 잘 알고있었다.구승훈이 자신을 도와줄 가능성이 0에 수렴한단 것을 말이다.……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며 강하리는 깊은 숨을 들이쉬었다.다시 뱉은 뒤, 승재에게 전화했다.같은 시각, 연성시 외곽의 한 폐기창고 안.간간이 비명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두터운 붕대를 겹겹이 감은 구승훈의 두 손은 검붉은 피로 얼룩이 진 지 오랬다.얼굴이며 셔츠에 핏자국이 튀어있었다.셔츠 맨 윗쪽 단추를 거칠게 풀어제낀 구승훈
”승재 씨, 믿을 만한 경호원 두 사람만 구해줄래요?”구승훈이 냉소를 지었다.‘하다하다 승재한테까지 부탁하면서.’구승현의 정강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나한테는 철벽이란 거지?’우드득!둔탁한 소리와 함께, 구승현이 단 방에 또 까무러쳤다.“승재 씨? 방금 그건 무슨 소리죠?”뭔가 섬찟한 소리에 강하리가 흠칫 놀랐다.급급히 스피커폰을 끈 승재가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는 구승훈을 째릿 노려보고는 한 켠으로 걸어가 통화를 이어갔다.승재가 돌아왔을 때 구승현은 개처럼 바닥이 퍼져있었고, 구승훈은 느긋하게 붕대를 풀고있었다.“형, 형! 잘못했어! 제발 살려줘! 제발!”눈물 콧물 짜내며 싹싹 비는 구승현.“하나만 묻겠다. 납치 사건에 송유라도 참여했냐?”그러자 구승현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다.“송유라가 먼저 날 찾아와서 협력하자고 했어! 난 강하리를 죽일 생각까진 아니었는데, 그 여자가 협력 조건이 강하리를 죽이는 거라고…….”구구절절 털어놓은 구승현의 말에, 구승훈의 눈 속에 오싹한 빛이 감돌았다.얼마나 지났을까, 구승훈이 픽 웃고는 밖으로 걸어나갔다.“경찰에 넘겨.”승재가 재빨리 수하들에게 구승현을 데려가라고 손짓했다.‘휴, 난 또 정말 이 자리에서 죽여버리려는 줄.’안도의 한숨을 내 쉬며 나가 보니 구승훈이 차에 기대 담배를 태우고 있었다.“이제 어떡할 거야, 형?”구승훈이 담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천천히 뱉었다. 아주 오랜 한참이 지난 뒤 입을 열었다.“네가 강하리라면, 날 용서할 거냐?”뜬금없는 질문에 승재가 잠시 멘탈이 나갔다.구승훈 자신도 이런 의문이 들 줄은 몰랐다. 이유 모를 초조하고 당황한 기분에 가슴이 막 떨렸다.승재는 어떻게 대답해야 될 지 몰랐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그 상실감과 실망과 고통을 누가 헤아릴 수 있을까.“형, 이젠 확실한 증거도 있겠다, 송유라부터 처리하는 게 우선이야. 강 부장이 용서하고 말고는 그 다음 스텝이고.”“처리? 어떻게?”“최소한 선은 그어야지.”“…….”‘왜
사실 납치 건은 형사 쪽이라 심준호가 관여할 분야는 아니었다.하지만 강하리가 아무것도 모르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역시나 심준호의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강하리가 경악한 표정이 되었다.“……네?”잘못 들은 건가? 아님 내가 이해를 잘 못 한 걸까?심준호가 천천히, 또박또박 한 번 더 말해주었다.“송유라가 하리 씨 납치 사건에 참여했다고요. 구승현이랑 공범이에요.”강하리는 한참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변호사님은 어떻게 아셨어요?”핸드폰을 꺼낸 심준호가 동영상 하나를 보여주었다.온 몸이 상처투성이인 구승현이 떠듬떠듬 사건 경유를 말하는 영상이었다.강하리를 납치한 이유, 송유라의 협력 제안, 궁지에 몰려 강하리를 절벽 아래로 던져 버린 것까지.소름이 돋도록 상세한 자술이었다.핸드폰을 든 강하리의 손 뼈마디가 하얗게 변했다.그런 거였구나.처음부터 끝까지 치밀하게 계획된 거였구나.그녀가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벌겋게 되어있었다.“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것까지 합치면 송유라를 감형 또는 보석이 불가능하게 할 수도 있을까요?”사실 구승현의 자술서가 있으면 납치는 빼박 못 하고 성립될 죄명이었지만.송유라나 송씨 가문이나 그렇게 순순히 인정할 리가 없었다.더군다나 어쩌면…… 그 인간이 송유라를 도와줄지도.강하리가 울컥울컥 치미는 씁쓸함을 삼키며 물었다.그러자 씩 웃어보이는 심준호.“방법이 없을 거면 얘기하지도 않았겠죠. 나한테 맡겨요.”“감사합니다. 이거 왠지 자꾸 감사하단 말뿐이네요. 어떻게 감사드려야 할 지도 잘 모르는데.”“내가 알려줄까요?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심준호의 입가가 부드럽게 올라갔다.“우리 집 노부인께서 요즘 좀 편찮으신데, 다음에 보경시에 갈 때 한번 들러 줘요.”“아, 네!”고개를 끄덕인 강하리가 갸웃하더니 물었다.“감사는 어떻게 드리죠?”“노부인 만나뵈는 건데요.”“네에?”“만나면 무척이나 좋아하실 거라서요.”강하리가 웃었다. 농담도.“네, 꼭 가 보겠습니다!”심준호와 소송 건에
강하리는 그 길로 아파트로 달려왔다.아줌마가 환하게 반겼다.“아가씨, 드디어 돌아오셨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그리고 그 뒤 편으로 보이는, 느긋한 자세로 소파에 앉아있는 구승훈.‘X폼은. 나 기다리고 있었으면서.’강하리는 구승훈을 보는 척도 않고 곧장 침실로 걸어갔다.침실 문을 여는 순간.침대에 가득 쌓인 새빨간 장미 꽃잎.싱그러운 장미 향이 덮쳐왔다. 옆 테이블에는 커다란 케이크가 있었다.“마음에 들어?”뒷쪽에서 구승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언제 온 건지 강하리의 바로 뒷쪽에 구승훈이 서 있었다.강하리는 가슴 한 켠이 아려왔다.예전에 구승훈이 이랬다면 좋아 죽었으련만.지금은…….모든 게 의미가 없어진 이 시점에 마구마구 퍼 준다 한들 무슨 쓸모가 있을까.“이럴 시간 있으면 나한테 낭비하지 말고, 새 여자한테 해 주란 말이에요.”구승훈이 인상을 구겼다.“강하리, 날 뭘로 보고!”“개요. 개.”구승훈의 눈가가 꿈틀했다. 강하리의 허리를 끌어안아 침대에 넘어뜨렸다.장미 향기로 꽉 찬 침대.“개라고 했으니까 개 같은 짓 좀 할게.”으르렁거린 구승훈이 강하리의 목덜미를 덮쳤다.손이 그녀의 몸을 누비며 그녀를 자극시키려고 했다.하지만 강하리는 반응이 꼬물만치도 없었다.오히려 담담히 입을 열었다.“안 좋아졌다고 했잖아요.”거짓말.구승훈은 믿을 수가 없었다.3년간 둘의 속궁합은 기가 막혔다.그는 그녀의 모든 민감대를 꿰고있었고, 그가 즐기는 모든 자세를 그녀도 즐겼다.이런 본능에 가까운 것들마저 안 좋아졌다고?믿기지가 않았다.재시도하려는 구승훈을 밀쳐버린 강하리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장미꽃도 싫고 다 싫으니까,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말고 첫사랑한테 하라고요!”꽃잎 한 줌을 집어 구승훈에게 던지고 벌떡 일어나 드레스룸에 들어갔다.캐리어 속 모든 게 원위치로 돌아가 있었다.강하리는 그것들을 차곡차곡 정리해 되넣기 시작했다.구승훈은 얼굴빛이 몇 번이고 바뀌었다.짐 옮기랴 침실 꾸미랴 반나절을 바삐 돌아쳤는데
강하리는 눈 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한참 뒤, 입을 열었다.“송유라가 내 납치에 참여한 거, 알고 있었어요?”구승훈이 움찔했다. 천천히 입이 열렸다.“……네가 그걸 어떻게?”짜악!강하리의 모든 힘을 실은 손이 구승훈의 뺨을 갈겼다.“구승훈, 송유라보다 당신이 더 역겨워.”강하리는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남기고,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걸어나갔다.가슴부터 목구멍까지 꽉 막혀 숨이 안 쉬어지는 기분이었다.걸어나갈 힘마저도 겨우 짜낸 거였다.‘알면서, 내버려 둔 거였다고?’송유라가 날 죽일 거란 걸 뻔히 알면서?그런 송유라를 감싸준 거라고?심장 끝을 칼로 도려내는 듯 아파났다.강하리가 출입문 앞에 거의 다다를 때에야 구승훈은 정신을 차렸다.“화 풀릴 때까지 더 때려도 돼.”나가려는 강하리의 앞을 막았다.“비켜!”눈이 벌개진 강하리가 그의 다리를 냅다 걷어찼다. 구승훈의 눈썹이 움찔했다. 이를 악물었다.하지만 꿈쩍하지도 않았다.“네가 그랬잖아. 송유라 일에 간섭 안 하면 기회를 주겠다고.”“그때나 지금이나 같냐? 당신이 감싸준 첫사랑 때문에 내가 죽을 뻔했다고! 이 간접 살인자야!”분노가 힘으로 바뀌었다. 힘껏 구승훈을 밀어낸 강하리가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어갔다.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아 다시 붙잡는 구승훈.“그 첫사랑인지 뭔지 맘껏 고소해! 기회 한 번 주는 게 그렇게 어려워? 강하리, 너무 비싸게 구는 거 아니야?”몇 번 몸부림쳐도 벗어날 수 없자 강하리는 바로 구승훈의 팔목을 물어버렸다.입 속에 비릿한 냄새가 퍼질 때에야 입을 떼었다.“꿈도 꾸지 마.”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구승훈의 가라앉은 눈길 속에서 강하리가 사라졌다.그의 눈에 위험한 빛이 감돌았다. 핸드폰을 꺼내 심준호에게 전화했다.회의 중이던 심준호가 회의를 중단하고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어, 무슨 일이야?”“할 일 없으면 발 닦고 잠이나 자든가.”“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오리발 내미시겠다? 강하리한테 일러바칠 명분이 있는
심준호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쳐지났다.“구승훈, 나 변호사야. 내가 알고있는, 안건과 관련된 정보들을 의뢰인에게 여상히 알려줄 의무가 있어. 나는 의뢰인이 불이익을 당하게 하지 않아. 누구와는 다르게.”구승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눈 속에는 온통 잘 보이지 않는 감정들이었다.강하리가 불이익을 당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다만 이 일을 강하리가 알게 되면 둘 사이에 갭만 더 커진단 걸 잘 알고있었다.해서 일단 강하리와 화해한 뒤 알려주기로 했다.물론 그냥 넘어가겠다는 건 아니었다. 강하리가 모든 대가를 송유라에게서 정당하게 받아내도록 도와줄 예정이었다.그런데 심준호 이 새끼 때문에 모든 계획이 틀어졌다.“다시 한 번 경고하는데, 나랑 강하리 사이에 작작 좀 끼어들어. 백 이모한테 전화하기 전에!”뚜- 뚜-.통화가 끊긴 핸드폰을 바라보던 심준호가 쯧, 혀를 찼다.남한테만 자꾸 책임 전가를 시키지 말고 자신을 좀 돌아봤으면.침실로 돌아온 구승훈의 눈에 너무나도 거슬리는 빨간 장미 꽃잎들이 보였다.-장미꽃도 싫고 다 싫으니까, 제발 나한테 이러지 말고 첫사랑한테 하라고요!강하리의 외침소리가 뇌리를 때렸다.휘적, 휘리릭!거칠게 침대 위를 쓸어내자 꽃잎들이 허공에 솟구쳤다가 맥없이 바닥에 떨어졌다.침대 위 꽃잎들을 깨끗이 쓸어버린 후, 구승훈은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에 전화했다.“수술 취소해.”……송유라는 아침 일찍부터 주구장창 구승훈의 전화번호를 눌러댔다.수술 준비는 언녕 끝났지만, 구승훈을 두 눈으로 봐야 수술실에 들어가겠다고 송유라가 떼를 쓰는 통에 수술은 여태껏 미뤄지고 있었다.아침 일찍부터 구승훈은 송유라의 전화를 씹고있었고.송유라의 병실 안, 깨부술 수 있는 모든 게 바닥에 박살나 있었다.장원영과 송동혁이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둘이 뻘뻘 진땀 빼고있을 무렵, 의사의 핸드폰이 울렸다.“네, 구 대표님……. 네에?”의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하지만 긴 말 않고 대답하더니 통화를 마쳤다.“승혁 오빠예요?”송유라가 급급히
이번에는 구승훈이 단번에 받았다.송유라가 막 뭐라고 하려는 순간, 저편에서 가사도우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일단 빨간약이라도 좀 바르시죠.”구승훈의 팔뚝에 남겨진 깊은 이빨 자국에서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괜찮아요.”남겨 두지 뭐. 강하리가 남긴 상처.언젠가는 받아낼 각오로.송유라가 멈칫했다.구승훈이 다쳤나?아, 그레서 못 온 건가? “오빠, 어디 다쳤어요? 그래서 못 온 거예요? 괜찮아요. 저 오빠가 다 나을 때까지 기다렸다 수술해도 되니까요.”“내가 수술 취소했을 텐데?”와장창, 일말의 희망이 부서졌다.“아니……. 오빠, 도대체 왜 그래요? 나 책임진다고 했잖아요. 흉터 안 남게 해준다고 했잖아요! 이제 와서 이렇게 말이 바뀌면-.”“상처가 네 스스로 낸 게 아닐 때 얘기지.”송유라가 목이 꺽 막혔다. 불안감이 엄습했다.“아… 아니, 오빠.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내가 미쳤다고 스스로 상처를 내요?”“…….”구승훈은 한동안 말이 없어졌다.그만큼 송유라의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다.“오빠, 나는-.”“너는 내 말을 모두 귓등으로 들었어.”“네, 네에?”“내 경고는 싸그리 다 무시했고.”“오빠, 절대 그런 게 아니-.”“내 책임감과 인내심을 남용했지.”“…….”“스스로 상처 낼 정도로 흉터가 좋으면 그대로 달고 살아.”뚜- 뚜-.꺼져버린 핸드폰 액정에 시퍼런 독기가 서린 송유라의 얼굴이 비쳤다.역시나, 또 강하리.구승훈이 스스로 낸 상처란 것까지 안 이상, 납치 건에 대해 모를 리가 없다.그래서, 강하리를 납치했다고 내 흉터는 나몰라라 하는 거지 지금?평생 달고 살라는 악독한 말까지 하고?새로 산 지 얼마 안 된 송유라의 핸드폰이 또 날아가 박살났다.“강하리가 수작질을 한 게 틀림없어! 아니면 구승훈이 무슨 수로 알아!”통화 내역을 다 엿들은 장원영이 송동혁을 찌릿 노려보았다.“그 때 죽여버렸으면 될 것을! 당신이 이름만 바꾸자고 기어이 고집을 피워서 남겨뒀다가 지금 이렇게 화근이
”아가씨, 남친이랑 헤어졌어요?”눈가가 벌개진 강하리에게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님이 물었다.대답이 없는 강하리.“어유, 헤어지면 어때! 세상에 아가씨를 기다리는 좋은 남자가 얼마나 많을 건데. 울어도 이렇게 예쁜 여자친구를 놓친 전 남친이 울어야지 아가씨가 왜 울어요.”짐짓 근엄하게 말씀하시는 기사님 덕에 강하리는 웃음이 터졌다.그래, 그깟 쓰레기 때문에 내가 왜 울어.손연지네 집에 짐을 옮겨놓은 후 병원으로 가던 강하리는 정양철의 전화를 받았다.“아들놈한테서 하리 양이 연성 지사 입사를 취소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요?”“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합니다.”“하리 양, 괜찮다면 만나서 얘기 한 번 해요.”강하리는 잠시 망설이다가 응낙했다.정양철 앞에서 대차게 약속했던 총괄 자리라, 못 가게 된 사유도 만나서 상세하게 설명해 드리는 게 당연했다.연성지사 1층 커피숍에 정양철이 기다리고 있었다.“하리 양. 나는 그래도 하리 양이 여기 지사에 와 줬으면 좋겠어요.”강하리가 앉자마자 정양철이 본론부터 꺼냈다.“정말 소중한 기회고 저도 정말 고민 많이 해 봤는데, 대양은 제게는 아직 과분한 것 같네요.”정양철이 깊은 눈으로 아들 또래의, 하지만 정주현보다 많이 어른스러워 보이는 강하리를 주시했다.“외교부에 들어간다고 들었습니다만.”저도 모르게 정양철이 고개를 끄덕였다.“젊은 나이에 참 대단하네요.”“감사합니다.”강하리가 적당히 겸손한 자세로 꾸벅 고개를 숙였다.“하지만.”정양철이 갑자기 말투가 바뀌었다.“외교부에 들어갔다고 대양에 못 오는 건 아니지 않아요?”“네에?”강하리가 적잖게 놀랐다.“대양 쪽은 총괄 직급만 걸어 두고 큰 건들 해결책이나 내 오면 되는 거고, 나머지 사소한 것들은 주현이한테 모두 맡기면 되잖아요. 외교부 업무에 영향 안 주도록.”어, 음…….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이건 뭐, 바지사장이 따로 없다.“저한테 이렇게 과분한 애정을 주시는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연성 지사, 주현이가 일떠세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