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훈의 미간이 순간 구겨졌다.“확실해?”강하리의 안색은 아직도 조금 창백했다.“네, 확실해요.”앞서 두 번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오늘은 진짜 착각이 아니었다.“언제부터야?”“요 며칠요.”구승훈이 실눈을 뜨고는 긴 손가락으로 강하리의 턱을 들어 올렸다.“전에 어머니와 원수 진 사람 아니야?”강하리가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그런가 봐요.”사실 그녀도 확정할 수는 없었다.하지만 송동혁과 장진영을 빼고 딱히 생각나는 사람이 없었다.“노진우 붙여줄게.”노진우는 구승훈의 곁을 지키는 수행 보디가드였다.강하리는 입을 오므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구승훈의 강하리의 볼을 꼬집더니 말했다.“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강하리는 아직도 마음이 불안하긴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승훈과 강하리가 가고 까만 세단 한 대가 길가에 멈춰 섰다.운전자는 진용철, 얼굴에 칼을 맞은 흉터가 나 있는 자였다. 구승현은 누구에게 맞은 듯 얼굴이 찢어져 있었다. 뒷좌석에 앉은 사람은 송유라였다.송유라는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내가 빨리 움직이라고 했죠. 뭉그적거리더니 이제 어떡할 거예요? 병신같이 납치하기도 전에 들켜요?”진용철이 험악하게 말했다.“말은 쉽게 하시는데, 벌건 대낮에 사람 납치하는 게 어디 쉬운 줄 알아요? 그렇게 쉬우면 직접 하시든지요.”송유라가 오만하게 말했다.“어디서 언성을 높여요?”송유라는 망나니 주제에 자기 앞에 나타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구승현이 혀를 끌끌 차더니 말했다.“유라 씨, 그만해요. 이 일은 유라 씨가 먼저 우리를 찾아와 도모한 거잖아요. 직접 나섰다가 승훈이 형한테는 들킬까 봐 무서우면서 우리는 말 잘 듣는 개가 되어줬으면 하고, 그게 어떻게 가능해요? 우리를 찾아왔으면 어떻게 하는지는 우리가 결정해요. 저 여자가 죽기를 바란다면서요. 제가 어떻게든 성공하면 되죠.”송유라는 구승현을 노려보며 말했다.“약속 꼭 지켜야 할 거예요.”이렇게 말하더니 선글라스를 끼고 차에서 내렸다.송유라가
그때 구승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무슨 일이야?”“엄마가 위급하대요.”강하리는 말투는 차분했지만 목소리가 떨렸다.구승훈의 안색도 따라서 굳어졌다.“데려다줄게.”강하리가 고개를 끄덕였다.병원에서 도착해보니 정서원은 아직도 응급 처치 중이었다. 의사는 그녀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하며 서류를 건네주었다.강하리는 서류에 사인하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구승훈이 옆에서 손을 잡아줘서야 그녀는 간신히 이름 석 자를 적었다.서류를 다시 의사에게 건네주고 강하리는 붉어진 눈시울로 옆에 앉아 있었다.구승훈이 그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걱정하지 마. 아무 일 없을 거야.”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머릿속이 하얬다.그때 구승훈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익숙한 벨소리에 강하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구승훈은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더니 한쪽으로 걸어가 전화를 받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구승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걸어왔다.“유라가 사생팬 때문에 다쳤대. 가봐야 할 것 같아.”강하리는 주먹을 꼭 쥐었지만 눈물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애써 흐르지 않게 참으며 물었다.“꼭 가야 해요?”구승훈의 미간이 순간 구겨졌다.“진우한테 지금 바로 오라고 할게. 얌전히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그는 이렇게 말하더니 아무 미련 없이 밖으로 걸어갔다.강하리는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목구멍에 뭐가 걸린 듯 숨을 쉴 수가 없었다.얼마나 지났을까, 그녀는 가슴을 가득 메운 씁쓸함을 겨우 삼키며 눈길을 돌려 그가 사라진 쪽을 외면했다.그 뒤로 한 시간, 그녀는 이 시간을 어떻게 보냈는지 모른다.많은 생각을 한 것 같지만 또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것 같았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러서야 그녀는 정서원이 생명에는 지장이 없고 중환자실로 옮겨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강하리는 힘이 쏙 빠진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몸을 가누지 못해 살짝 비틀거리는데 누군가 옆에서 잡아줬다.그녀는 그제야 노진우가 어느새 도착했음을 알았다.“
강하리는 망설임 없이 차 문을 열고 내달리기 시작했다.하지만 그녀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한 무리 사람들이 그쪽으로 쫓아갔다.앞장선 사람은 진용철이었는데 얼굴에 난 칼자국 흉터가 너무 흉측했다.강하리는 허둥지둥 112에 신고했다.하지만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서 그런지 잠시 기다려달라는 안내음만 들렸다.강하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녀는 얼른 전화를 끊고 구승훈에게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전화기가 꺼져 있다는 차가운 안내음뿐이었다.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무 절망적이었다.그녀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구승재에게 전화를 걸었다.다행인 건 구승재가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는 것이었다.“강 부장님,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이시죠?”“승재 씨, 살려주세요. 명인 병원 밖인데 누가... 아악!”하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뒤따라온 사람에게 머리채를 잡혔다.“미친년이 달리기는 잘하네.”그러더니 바로 손을 들어 강하리의 뺨을 후려쳤다.“왜 더 달려보지? 어? 더 달려보라고!”강하리는 갑자기 들어온 싸대기에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래도 태연한 척 한마디 했다.“이미 신고했어. 곧 경찰들이 몰려올 거야. 지금 나를 놓아준다면 책임을 묻지는 않을게.”그러나 그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질질 끌더니 길가에 세워진 밴으로 향했다.강하리는 온 힘을 다해 차 문을 잡고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차에 앉은 누군가가 호통쳤다.“뭐 해? 뜯어내지 않고.”강하리는 그제야 차에 앉은 사람이 구승현임을 발견했다.“뭐 하자는 거예요?”그녀는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목소리가 평소보다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저는 구승현 씨와 원수진 거 없는 거 같은데.”구승현이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저랑은 원수진 거 없지만 당신이 따르는 남자가 나한테 원수졌거든. 일단 손발 묶고 입에 테이프 붙여. 그리고 사진 찍어서 구승훈에게 보내줘.”강하리는 씁쓸하게 웃었다. 목소리가 여전히 파르르 떨렸다.“구승훈을 협박할 방법이 저예요? 쓸모
“미쳤어? 뒤에 따라오는 차 정계 고위직 전용 차량인 거 안 보여? 산 아래로 떨어트려? 이제 다 살았다 이거지?”진용철은 그런 건 아예 몰랐다. 그저 기분이 더러울 뿐이었다.하지만 구승현은 너무 잘 알았다.어릴 때부터 날라리로 소문났지만 정계에 일어나는 일은 꿰고 있었다.저 정도 차량이면 발만 굴러도 전국이 흔들릴만한 사람이 타고 있을 것이다.그저 구승훈에게 본때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 죽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그는 고개를 돌려 손발이 단단히 묶인 여자를 힐끔 쳐다봤다.‘이 여자가 저런 인물을 어떻게 아는 거지?“그럼 어떡할까요?”진용철은 점점 인내심을 잃어갔다.뒤에 차를 따돌리는 건 영 현실성이 떨어졌다.구승현이 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벼랑 끝에 도착하면 저 여자 바로 던져버려.”강하리는 충혈된 눈으로 구승현을 바라봤다. 눈빛으로 구걸하고 있었다.죽고 싶지 않았다.정말 살고 싶었다.그녀의 인생은 이제 막 시작이었다.인생을 마음껏 즐겨보지도, 정서원이 깨어나는 것도 보지 못했다.그래서 너무 살고 싶었다.하지만 구승현은 그런 것 따위 상관하지 않았다.벼랑 끝에 도착해 차를 세우더니 강하리를 그대로 던져버렸다.강하리는 지금 이 순간 어떤 기분인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절망, 또는 해탈이었을 것이다.이런 생각까지 들었다.아, 이제 더는 구승훈과 엮일 일은 없어서 좋네.실망할 필요도, 마음 아파할 필요도 없었다.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구승훈과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강하리는 눈을 감고 그대로 차가운 바닷속으로 빠졌다....구승현과 진용철은 강하리를 던져버리고는 얼른 차를 타고 도망갔다.주해찬과 진태영은 벼랑 끝에 차를 세웠다.뒤따라온 차가 한 대 더 있었다.구승재가 창백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강 부장님은요?”주해찬의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그는 입을 뻐끔거리더니 겨우 한마디 내뱉었다.“아래로 던져졌어요.”구승재가 멈칫하더니 바로 정신을 차리고는 말했다.“아래는 바다에요. 내려가서 찾으면, 찾으면 분
어두운 아우라가 구승훈의 몸 전체를 감싸고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그는 심지어 서두르지도 않고 천천히 부재중 전화 기록까지 확인했다. 그러다 강하리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를 보고 스크롤을 내리던 손가락을 멈췄다.강하리의 전화는 구승현이 보낸 사진보다 몇 분 정도 일찍 와 있었다. 즉 강하리는 납치를 당하기 전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그는 핸드폰을 쥔 손에 무의식적으로 힘을 꽉 주었다.바로 이때 다시 한번 핸드폰이 울렸고 그는 무거운 얼굴로 전화를 받았다.“형, 강 부장님한테 문제가 생겼어.”구승재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구승훈은 눈을 내리깔면서 두 눈에서 쏟아지는 싸늘한 기운을 숨겼다.“지금 상황은 어때?”구승재는 몇 번이나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겨우 말을 이었다.“지금으로서는 생사가 불분명해.”“뭐라고?”순간적으로 구승훈은 눈살을 찌푸렸고 심지어 자기 귀를 의심했다.“생사가 불분명하다는 게 무슨 말이야? 누구의 생사가 불분명하다는 거야? 구승재 너 똑바로 말해.”“형, 그놈들이 강 부장님을 절벽에서 떨어트렸어. 우리가 지금 찾고는 있는데 강 부장님이 살아있을지 모르겠어...”아직 찾고는 있었지만 구승재는 더 이상 큰 희망을 품을 수가 없었다.강하리의 양손은 묶여 있었고 입에는 테이프가 붙어 있는 채로 떨어졌다. 이렇게 높은 절벽에서 떨어졌다면 즉사하지 않았더라도 익사했을 가능성이 컸다.구승훈은 머리가 윙윙 울렸다.구승훈은 구승현이 기껏해야 그를 협박하기 위해 강하리를 납치했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구승훈은 자기가 나타나기 전까지 강하리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었다.그러나 지금...구승훈은 핸드폰이 부서질 정도로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는 머릿속에 있던 마지막 한줄기 선이 갑자기 끊어지는 것처럼 온몸이 극도로 경직되었다.그 뒤로 구승재가 뭐라고 말했지만 그는 거의 듣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구승훈은 갑자기 정신을 차리더니 밖으
수십 미터 떨어진 바위 위에 하얀 형체가 보였고 구승훈은 그쪽을 향해 헤엄쳐갔다. 가까이 도착한 그는 갑자기 속도를 줄였다. 바위 끝에 누워있는 여자를 발견한 구승훈은 감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어젯밤 그가 떠날 때까지만 해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그런데 지금 호흡을 멈춘 듯 바다 한가운데 놓인 바위 끝에 누워있었다.구승훈은 줄곧 자기 자신을 칼날과 총알이 날아와도 꿈쩍도 하지 않을 만큼 겁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그는 덜컥 겁이 났다.떨리는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끌어당겨 품에 꽉 안았다. 그녀의 입에 붙어 있던 테이프는 바닷물에 젖어 떨어진 것 같았고 손을 묶고 있던 밧줄도 풀려 있었지만 그녀의 손은 전부 마찰로 인한 상처로 덮여 있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품에 안은 순간 갑자기 싸늘한 느낌을 받았다. 품에 안겨 있는 그녀에게서 아무런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강하리를 내려다보는 구승훈의 창백한 얼굴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무력감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그는 떨리는 손가락을 겨우 들어 올려 그녀의 호흡을 확인했다.싸늘했다.모든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구승훈의 두 눈은 순식간에 붉어졌다. 그는 강하리를 바위 위에 올려놓은 뒤 필사적으로 구조를 시작했다.잠시 뒤 도착한 사람들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모두 표정이 일그러졌다.구승재는 바닷물 속에서 지켜보며 온몸이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다. 시간은 일분일초가 흘러갔고 사람들이 이제는 희망을 포기하려는 순간 강하리가 갑자기 쿨럭하고 기침을 뱉어냈다.구승훈은 깜짝 놀라며 손을 들어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는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하리야...”강하리의 의식은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의 귓가에는 아직도 출렁이는 바닷물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또다시 무력감이 그녀를 덮쳤다. 어쩌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분명 그녀에게는 아직 아름다운 인생이 남아 있는데 이
“구승훈 씨 방금 못 봤어요? 하리는 당신이 만지는 걸 원하지 않아요.”구승훈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주해찬 씨, 다시 한번 말하는데 강하리 이리 줘요.”주해찬은 여전히 강하리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곧 싸울 것 같은 두 사람 때문에 진태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내가 안을게.”말을 마친 뒤 진태형은 강하리를 안아 들고 성큼성큼 차에 올라탔다.잠시 멍하니 있던 구승훈은 정신을 차린 뒤 재빨리 차에 올랐고 주해찬도 망설임 없이 뒤를 따랐다. 차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향했다.강하리는 주해찬에게 안긴 순간부터 다시 혼수 상태에 빠졌다. 병원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그녀는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계속 눈물을 흘렸지만 그녀는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했다. 구승훈은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거기 담요 좀 줘요.”구승훈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주해찬은 다급하게 담요를 집어 그에게 건넸고 구승훈은 담요를 받아 그녀에게 덮어주었다. 힘없이 축 늘어진 그녀의 손목을 보고 그는 흠칫했다. 갑자기 마음속에서 숨 막히는 고통이 몰려왔다.그녀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구승현 가만두지 않을 거야.’고통이 몰려오는 동시에 분노도 함께 치밀어 올랐다.“자기 여자를 보호하는 건 모든 남자의 책임이죠. 소중한 사람을 잃은 뒤에 하는 후회는 아무런 소용도 없어요.”진태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구승훈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침묵을 지키며 진태형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구승훈의 시선은 창백한 강하리의 얼굴에 머물렀고 단 일 초도 떨어지지 않았다.차는 병원 앞에 도착했다.구승훈은 진태형의 품에 있던 강하리를 안아 들고서는 곧바로 응급실로 달려갔다.그녀를 의사에게 맡긴 뒤에야 그는 이 장면이 뭔가 익숙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는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구승훈 씨는 어디 있었죠? 왜 그때 하리의 옆에 없었어요?”갑자기 주해찬이 구승훈의 뒤에서 물었다.구승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그저 응급실 문만
사실 구승훈은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었다.그가 당시 작은 어촌 마을에 보내졌을 때 이미 여러 차례 생과 사를 경험했다는 것은 아무도 몰랐다.처음 몇 번은 그의 어머니에게 목이 졸려 죽을 뻔했고 그 뒤로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다.어촌 마을에 오고 나서야 그는 조금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졌다. 그 후로 이어지는 치료 때문에 그는 당시 있었던 일들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하양이’라는 이름은 그의 뇌리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녀는 그의 구원자였다.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송유라를 내버려둘 수가 없었지만 강하리가 이런 위험에 빠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구승훈은 강하리의 손을 꽉 잡으며 창백하고 연약한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음속이 너무 답답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는 아직도 바위 끝에 숨을 쉬지 않고 누워있던 강하리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구승훈은 긴 손가락으로 촉촉한 그녀의 눈가를 쓰다듬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리야, 무서워 하지 마. 나 여기 있어.”잠시 후 강하리는 마침내 안정을 되찾았다.구승훈은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그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손을 닦아주려던 그는 잠시 멈칫했다. 탈골된 손목은 다시 붙였지만 상처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구승훈은 그 상처들을 조심스럽게 피하며 손을 마저 닦아준 뒤 이불 속에 넣어주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병실 밖으로 나갔다.문을 열고 나오니 마침 구승재가 문 앞에 서 있었다.구승훈은 눈을 감으며 물었다.“둘째는 찾았어?”구승재는 고개를 저었다.“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야. 이 정도로 간이 클 줄은 몰랐어. 대낮에 사람을 납치하다니. 만약 주해찬 씨와 진태형 장관님이 뒤를 따르지 않았다면 하리 씨는 정말 큰일 났을 거야.’구승훈은 차가운 비웃음을 날렸다.“두 사람이 쫓아가지 않았다면 하리는 이런 위험에 처하지 않았을 거야.”구승재는 깜짝 놀라며 잠시 구승훈의 뜻을 되짚어보았다.만약 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