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한동안 계속 다툼이 있었다고 해도 대부분 침묵의 투쟁에 가까웠다.“강하리 너도 알고 있잖아. 그 아이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걸. 누군가 그 아이를 유산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해도 내가 그 아이를 태어나게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야.”강하리는 앞에 있는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구승훈은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었다. 그 아이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의 결말이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그녀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토록 아름다웠던 미소가 눈물 속에서 유난히 눈부셨다.“당신이 아이를 낳는 걸 허락하진 않았겠죠. 하지만 아이를 낳을지 말지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과 나 두 사람뿐이에요. 당신의 그 개 같은 첫사랑이 아니라.”“구승훈 씨. 내가 돈 때문에 당신을 만난 건 사실이지만 난 누구에게도 빚진 적 없어요. 그런데 왜 당신의 첫사랑 앞에서 내가 계속 양보해야 하는 거예요? 내가 그 여자한테 빚진 거라도 있어요? 그 여자는 당신의 첫사랑이지 내 첫사랑은 아니에요. 그 여자한테 돌려주고 싶은 게 있다면 당신이 직접 돌려줘요.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받아야 해요.”말을 마친 뒤 그녀는 구승훈의 손을 쳐냈지만 구승훈은 그녀의 손을 꽉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비웃음을 날리더니 눈빛은 이미 무심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심지어 방금까지의 분노가 다 사라진 것 같았다.“그래, 그럼 말해 봐. 네가 송유라와 끝내지 않겠다면 네가 무슨 돈으로 유라를 상대할 건지? 네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유라와 싸우겠다는 거야? 강하리 내가 너한테 한 경고는 개나 줘버렸나 보지?”강하리는 눈물을 참으려고 애썼다. 사실 이 말을 내뱉은 구승훈의 태도는 이미 확고했다. 그는 그녀를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난 돈도 없고 능력도 없어요. 하지만 구승훈 씨 만약 내 아이를 정말 송유라가 유산하게 만든 거라면 난 내 목숨을 걸고서라도 송유라가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구 대표님 또 첫사
강하리는 그의 한마디에 눈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 흰 이마에 푸른 핏줄이 튀어 나왔다.그녀는 구승훈의 말이 무슨 뜻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그녀의 신분을 똑바로 기억하라는 경고였고 그녀의 번복에 대한 분노였다.강하리는 눈가가 너무 아팠지만 참으며 눈을 치켜떴다.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붉은 입술을 열었다.“그래요? 대표님의 아이가 고작 별장 두 채의 가치인가 보죠? 그건 정말... 가치가 없네요.”“강하리!”구승훈의 눈빛이 붉게 달아올랐다.“내가 계속 널 참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마.”강하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구승훈의 반응을 기다리지도 않고 갑자기 그의 목에 팔을 걸고 키스했다. 심지어 그녀가 먼저 그의 입술을 벌리고 들어갔다.구승훈은 깜짝 놀라더니 큰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잡으며 더 깊게 키스했다.그러나 이때 강하리가 갑자기 그를 다시 놓아주었다.“이게 대표님이 원하는 거예요?”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줄게요.”“어차피 당신이 날 돈 주고 산 건데. 나도 내 신분을 아주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나는 결국 내어줘야겠죠.”이어서 그녀는 또 미소를 지었다.“대표님, 미안해요. 내가 너무 제멋대로였어요. 앞으로는 돈 외에 다른 것에 관해서는 얘기를 꺼내지 않을게요. 어차피 우리 사이는 거래일 뿐이잖아요.”구승훈은 눈앞에 여자를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보았다. 강하리의 말이 사실이었다. 그와 그녀의 사이는 한차례의 거래일 뿐이다. 하지만 구승훈은 이 말을 강하리의 입으로 직접 들을 줄은 몰랐다. 그는 손가락으로 붉어진 그녀의 눈가를 쓸어내리며 차가운 비웃음을 날린 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사납게 베어 물었다.한 치의 자비도 없이 세게 물었고 강하리는 참았던 눈물을 전부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강하리는 몸부림도 치지 않고 오히려 그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얌전하게 그의 키스를 받아들이는 그녀의 행동에도 구승훈은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구승훈은 강하리가 이렇게 대충 넘어가려는 행동을 좋아하지 않
“더 세게 물어.”픽 웃으며 내뱉은 구승훈의 한마디에 강하리는 점점 더 세게 깨물었다. 두 사람은 기 싸움이라도 하는 것처럼 보였다. 갑자기 불어닥친 사나운 비바람이 멎듯, 강하리가 겨우 진정되고 나서야 구승훈은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남자의 옷차림은 여전히 깔끔하고 옷깃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창가에 기대 담배에 불을 붙여 물고 깊숙하게 연기를 들이마셨다가 천천히 내뿜었다.“아이 일은 내가 제대로 조사해 볼 거야. 네가 진실이 알고 싶다면 진실을 밝혀 줄게. 하지만 송유라와 관계된 일이라면 여전히 널 도와줄 수 없어.”침대에 누워있던 강하리는 자신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은 구승훈의 말에 쓴웃음을 삼켰다. 그녀는 이불을 그러쥐고 이 남자로 인해 출렁거리는 감정을 추스르려고 애썼지만 마음이 꽁꽁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 입술을 꽉 깨문 그녀는 결국 참지 못하고 이불을 끌어 올려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연말이 다가오자, 갑자기 크고 작은 일들이 연달아 발생하며 구승훈은 바삐 돌아치기 시작했다. 아이 일에 대해 강하리는 다시 묻지 않았고 더 이상 그와 실랑이를 벌이지도 않았다. 그가 진실을 밝혀주겠다고 했으니 그녀는 그가 말하는 진실을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 막연하게 구승훈의 대답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어떤 일은 여전히 직접 알아보고 싶었던 강하리는 그 팬의 가족에게 연락도 시도해 보고 팬카페에서 실마리라도 찾아보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아쉽게도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결국 고민 끝에 구승재에게 연락했다. 그가 자신을 도와줄지 말지는 미지수지만 지금 강하리가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만났던 사람 중에 유일하게 그녀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구승재와의 약속 시간이 거의 다가오자 강하리는 휴대폰을 한번 들여다보고는 안예서에게 업무를 지시한 뒤 빌딩을 내려갔다.공교롭게도 일 층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송유라와 마주쳤다. 저번에 만났을 때와는 다르
송유라는 눈을 부릅뜨고 강하리를 날카롭게 노려봤다. 그녀는 절대로 믿지 않았다. 강하리와 구승훈이 고작 거래 관계일 뿐이라는 것을.예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결코 그럴 수가 없다. 구승훈은 점점 강하리를 신경 쓰고 있었고 이제는 그 정도가 심지어 자신에게 신경 쓰는 정도를 뛰어넘은 것 같았다.그런 게 아니라면 구승훈은 인터넷에 자기가 솔로라고 공표하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녀가 커피를 뒤집어썼는데도 강하리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어떻게 고작 거래 관계란 말인가? 속을 만한 사람을 속여야지!게다가 강하리와 구승훈의 어릴 때 일만 해도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하리는 똑똑히 알고 있을 것이다.구승훈은 그저 강하리와 거래 관계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강하리는 분명 구승훈에게 다른 마음을 품고 있을 것이다!송유라는 화가 치밀어 아드득 이를 갈며 강하리를 째려봤다.“그딴 말 내가 믿을 것 같아? 강하리, 내가 충고하는데 헛된 꿈은 꾸지 않는 게 좋을 거야!”“송유라, 두 사람 곧 약혼할 거라며 굳이 나한테 이런 말 할 필요가 있어?”강하리는 픽 실소를 흘렸다.“축하해, 두 사람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행복하길 바랄게. 이제 만족해?”말을 마친 강하리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밖에 나온 그녀는 그제야 불안감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진짜 아무렇지도 않다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어쨌든 그녀가 3년이나 따라온 남자인데, 몇 년이나 마음속에 품고 있던 남자인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게 내려놓을 수 있단 말인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은 그저 남을 속이고 자신을 속이기 위한 방패막이일 뿐이다.그렇다고 구승훈이 약혼하고, 결혼한다고 해서 그녀가 대체 뭘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녀는 물어볼 수 있는 신분조차 아닌데 말이다.깊은숨을 들이마신 강하리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뒤로하고 돌아서서 옆에 있는 카페로 들어갔다. 그녀를 본 승재가 반갑게 손을 흔들더니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강 부장님,
“가고 싶지 않아요.”강하리는 고개를 아래로 떨구고 커피를 휘저었다. 그녀는 구승훈의 생일 축하연에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다.가서 뭐 하는데? 구승훈과 송유라의 알콩달콩한 모습을 지켜봐야 한단 말인가. 아니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두 사람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걸 축복해 줘야 한단 말인가.구승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카페에 걸려있는 TV에서 연예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구씨 가문 수장이 다시 한번 첫사랑과 함께 행사에 참석해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은 커플 옷을 입고 달콤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데요. 아마도 기쁜 소식이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닐까요?]눈을 치켜뜬 강하리는 마침 TV에서 나오는 사진이 시야에 들어왔다. 사진 속, 송유라는 검정 피시 테일 드레스를 입고 검정 슈트를 차려입은 구승훈의 곁에 나란히 서있었다.한 사람은 고개를 쳐들고 한 사람은 시선을 아래로, 확실히 뉴스에서 말하는 것처럼 꿀이 떨어질 듯한 눈빛으로 서로 마주 보고 있었다.강하리는 언뜻 보고는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그 모습에 승재는 눈살을 찌푸렸다.“강 부장님, 형은 아니...”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강하리는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상관없어요, 승재 씨. 저에게 해명하지 않아도 돼요. 전 지금 오직 아이 일만 생각하고 있어요.”입만 달싹이던 구승재는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 강하리는 커피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승재 씨, 그일 꼭 좀 부탁드려요. 전 아직 할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날게요.”승재가 작별 인사를 하기도 전에 강하리는 이미 자리를 떠났다. 강하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형이 도대체 무슨 생각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회사로 돌아온 강하리는 사무실에서 한 무리의 어린 여자들이 한창 토론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하리는 단번에 구승훈의 약혼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았다.쓴웃음을 삼킨 그녀는 그제야 모두가 그 사실을 다 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때 안예서가
노민우는 살짝 민망해졌다. 그가 강하리에게 물어보자마자 구승훈이 왔기 때문이다. 꼭 구승훈이 없는 빈틈을 파고들려다가 현장을 잡힌 기분이었다.하지만 노민우가 강하리에게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은 구승훈도 일찌감치 눈치챘을 것이다. 예전에는 계속 마음을 들춰내지 않았지만 이제 구승훈이 곧 약혼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노민우는 용기를 내서 고백했다.그러나 지금 구승훈의 태도를 보니 약혼한다고 하더라도 강하리를 놓아줄 것 같지 않았다.노민우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그저 허탈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구승훈과 대적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승훈아, 왔어? 그럼 난 먼저 갈게.”말을 마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구승훈의 시선이 그를 지나쳐서 강하리에게로 향했다.“노 대표가 가는데, 강 부장은 아무 말 안 해?”입을 꾹 다물고 있던 강하리는 잠시 후에야 고개를 돌려 노민우에게 인사했다.“안녕히 가세요, 노 대표님.”고개를 끄덕인 노민우는 구승훈을 보며 말했다.“다음에 봐, 승훈아.”구승훈이 아무 대답이 없자 노민우는 멋쩍은 듯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눈을 치켜뜬 강하리는 구승훈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노민우 씨와는 정말 우연히 만났을 뿐이에요.”구승훈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그래? 정말 이런 빌어먹을 우연이 다 있네!”미소를 지은 강하리는 눈을 치켜떴다. 눈동자에는 불필요한 감정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았다.“그러게요. 정말 기막힌 우연이죠. 저와 대표님도 이렇게 우연히 만났잖아요?”구승훈은 어두운 눈길로 눈앞에 여자를 바라보았다. 무척이나 어색해 보이는 강하리의 태도에 구승훈은 도저히 아무렇지 않게 지나칠 수가 없었다.사실 오늘뿐만 아니라 그때 두 사람이 유산한 일로 다툰 이후로 그녀는 쭉 이런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오늘은 더욱 선명했다.“강하리, 그딴 작은 일로 자꾸 불쾌하게 트집 잡지 마!”강하리는 씁쓸한 웃음을 토해냈다.작은 일이라고?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그의 눈에는 그저 사소하고 하찮은 일로만 보일 것이다.
강하리는 시선을 창밖으로 옮겼다. 명절이라 그런지 길이 다소 막혔다. 길가에는 손잡고 다니는 커플들이 즐비했다. 이때 갑자기 구승훈의 휴대폰이 울렸다. 역시나 송유라를 위해 특별히 설정한 벨소리였다. 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전화를 받았다.“오빠, 왜 아직도 안 와요? 다 오빠만 기다리고 있단 말이에요.”“안 갈 거야.”대답하자마자 구승훈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강하리는 입꼬리가 살짝 떨려왔다.“죄송해요, 제가 대표님 데이트를 방해했네요.”구승훈은 그녀를 보며 냉소를 흘렸다.“뭐 피차일반 아닌가. 나도 강 부장 데이트를 방해했잖아?”그를 슬쩍 쳐다본 강하리는 더는 말하지 않았다. 얼마 안 가서 차가 아파트 아래에 멈춰 섰다. 강하리가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리려 할 때 구승훈이 갑자기 잠금장치를 눌렀다. 그는 넥타이를 풀어 헤치며 말했다.“그렇게 서둘러 내릴 필요 없어.”그러더니 강하리를 안아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 두 사람은 그날 이후로 한 적이 없었다.이 이틀 동안 구승훈은 계속 기분이 아주 나빴다. 그날 밤 강하리의 눈물과 낯선 모습이 비수가 되어 그의 마음을 마구 헤집어 놓았다.그는 항상 자신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한 번, 두 번 끊임없이 이 여자로 인해 크나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지금은 아예 마음속에서 커다란 불길이 치솟는 것 같았다. 구승훈은 거칠게 그녀의 입술을 헤집으며 안으로 파고들었다. 곧이어 커다란 손이 그녀의 옷 아래를 비집고 들어왔다. 순간 강하리의 몸이 딱딱하게 경직됐다.“돌아가서 하면 안 돼요?”구승훈은 피식 웃었다.“안 돼.”컬리넌이 거의 한 시간 동안 흔들리더니 그제야 멈췄다. 지쳐버린 강하리는 팔을 들어 올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구승훈은 그녀를 안고 위층으로 올라갔다.가는 내내 그녀의 휴대폰이 계속 시끄럽게 울려대자, 구승훈은 조금 짜증이 나는 듯 휴대폰을 꺼내 보았다.손연지가 문자를 여러 개 보냈다. 그는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너의 친구는 정말 한가한가 봐.”강하리는 입
구승훈은 어두운 눈빛으로 강하리를 바라보았다. 깨끗하고 예쁜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예전에 구승훈은 강하리의 웃는 얼굴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녀의 미소가 너무 거슬렸다. 구승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날 떠나고 싶어?”강하리는 그를 쳐다만 볼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답은 이미 정해졌다.구승훈은 그녀의 턱을 그러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강하리, 내가 말했지. 내 동의 없이는 날 떠날 생각은 절대 하지 말라고. 이 말 영원히 기억하고 있기를 바라.”말을 마친 그는 강하리의 턱을 놓고 돌아서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강하리는 씁쓸한 미소를 짓더니 씻고 침대에 누웠다.다음 날.강하리가 기분이 안 좋을까 봐 걱정된 손연지는 일부러 휴가까지 내고 강하리를 찾아왔다.사실 강하리는 괜찮았지만, 굳이 손연지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아침 일찍 쇼핑하러 나갔다.말이 쇼핑이지, 손연지는 돌아다니는 내내 계속 강하리의 안색만 살폈다. 강하리는 손연지가 자신을 걱정한다는 것을 알고 살짝 어이없다는 듯 웃어 보였다.“나 괜찮아. 그러니까 계속 이렇게 쳐다보지 않아도 돼.”손연지는 그 말을 듣고 입을 삐죽 내밀었다.“구승훈 그 개... 바보 같은 자식 눈이 삔 게 틀림없어. 아니면 이렇게 착한 너를 옆에 두고 어떻게 송유라 그 여우 같은 년을 선택할 수 있지.”강하리는 피식 웃었다.“연지야, 우리 사이는... 처음부터 계약서에 똑똑히 적혀 있었어. 내가 원망할 것도 없어.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우리 관계만 잘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아. 그 사람과 송유라가... 약혼하든, 결혼하든 난 신경 쓰지 않아.”예전에 강하리가 이렇게 말했으면 손연지는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하리가 오랜 시간 동안 구승훈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 그녀는 강하리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을까? 아닌 척하고 있을 뿐이겠지.손연지는 마음이 찢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