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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네가 내 뺨을 때렸으니, 나도 네 뺨을 때려야 공평하지. 이제 서로 비긴 셈이야.”

그리고 다시 백수지의 앞에 다가가 웃으며 물었다.

“남의 공략 대상을 빼앗는 게 재밌어?”

수지의 눈에 순간적으로 당황함이 비쳤지만, 나는 수지가 도망칠 틈을 주지 않기 위해 수지의 뺨도 때렸다.

수지는 충격으로 울 틈도 없었다.

나는 돌아서서 그냥 떠나려 했으나, 갑자기 뒤에서 강한 힘이 느껴졌다. 누군가가 세게 미는 바람에, 중심을 잃은 나는 앞으로 쓰러지며 배가 책상 모서리에 부딪혔다.

이윽고 아랫배에서 격한 통증이 밀려왔다. 나는 배를 움켜쥐고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개를 돌리자, 수혁이 나를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혁의 눈빛에는 차가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나를 때리는 건 괜찮아. 하지만 수지를 때리다니,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네.”

나는 처절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고마워. 덕분에 낙태할 필요가 없어졌네. 축하해, 네 손으로 네 아이를 죽인걸.”

이 말에 수혁의 입술이 나만큼이나 창백해졌고, 수혁의 몸도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렇게 정신을 잃었고,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피였다.

끝없이 퍼져가는 피.

귀가에 수혁이 놀라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수민아, 수민아.”

수혁은 지금껏 나의 이름을 거의 부르지 않았다. 오직 가끔 감정이 격해질 때만 이렇게 불렀다.

수혁은 아이를 무척 좋아했다. 그 사람과 정말 비슷했다.

내가 이 세계에 들어오기 전부터 난 수혁에 대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수혁이 수지와 함께 지내며 나눈 모든 순간을 나는 보았다.

그리고 수혁이 수지를 안고 다정히 속삭이는 장면도 봤다.

“나중에 우리 아이도 많이 낳자. 아들은 나처럼 눈매가 또렷하고 성격은 성숙하고 차분하길 바래. 딸은 너처럼 예쁘고 활발하고 사랑스러웠으면 좋겠어. 적어도 셋이나 넷은 낳자.”

시스템은 한때 수지에게 물었다.

“공략에 성공하여 수혁이 너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으니, 너는 남거나 떠날 수 있어. 어느 쪽이든 보상은 이미 너의 계좌에 지급되었어.”

‘그런데 수지가 뭐라고 했더라?’

“내가 어떻게 소설 속 캐릭터를 사랑하겠어? 그런 바보 같은 짓은 안 해. 시간을 낭비하는 것뿐이지.”

수지가 원하는 건 단지 돈이었다.

수혁의 마음은 수지에게 있어서 단지 계산 가능한 조건일 뿐이었다.

이윽고 나는 깨어나 천장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내 안에서 생명이 사라져버린 느낌은 나를 공허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내 안에서 흘러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다행히 수혁은 없었다.

잠시 후, 나는 의사의 만류를 무시하고 병원을 떠났다.

휴대폰을 켜자 거액의 돈이 들어와 있었다.

아마 수혁이 보내온 이별 수당일 것이다.

나는 그 돈을 그대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바닷가로 향했다.

짭조름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나는 수혁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그것은 예전에 내가 수지와식당에서 대화할 때 남긴 녹음이었다.

나는 그것을 편집했고, 또 하나의 영상을 수혁에게 보냈다. 그것은 예전에 수지가 자신을 납치하게 했던 사람에게 자작극으로 남긴 영상이었다.

수지는 내가 이 소설 속에 갓 들어온 초보자일 것이라 생각했겠지만, 그건 수지가 순진한 것뿐이다.

나는 수지보다 더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수지보다 남자를 더 잘 이해했고, 기회를 포착하거나 만들어내는 법을 더 잘 알았다.

때때로 남자들은 소유욕과 사랑을 구분하지 못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있어 익숙한 것이 갑자기 사라진다는 공포감은 치명적일 수 있다.

오늘부터 나는 수혁의 인생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철저하게.

이런 생각에 나는 수혁의 모든 연락처를 차단하고 삭제했다.

예전에는 수지가 수혁의 첫사랑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어차피 손에 닿지 않는 것이 가장 귀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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