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화

K국의 수도 S시에서 ‘태자’라 불리는 이수혁에게는, 백수지라는 이름의 첫사랑이 있었다.

그러나 수지는 3년 전 한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 차는 바다로 추락했고, 시신은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수혁의 곁에 나타났다.

내가 수지와 닮았기 때문이었다.

수혁은 나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이다.

나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장면이 눈앞에서 어른거린다. 나는 수혁을 위해 많은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었다.

술을 전혀 못 마시던 내가 천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을 정도로 강해졌다.

비록 수혁의 방에서 몇 번이나 토했지만, 수혁은 단 한 번도 나를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미간을 찌푸린 채 나가서 토하라고 할 뿐이었다.

친구들의 비웃음 속에서 내가 수혁의 체면을 구겼다고 생각해서였을까.

그 후 수혁은 갑자기 극한 스포츠에 빠져들었다.

레이싱도 그 중 하나였기에, 나는 수혁이 죽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매번 내 심장이 조마조마해졌다.

수혁을 꽉 끌어안을 때, 귀 옆으로 바람이 휘몰아치듯 스칠 때마다 내 심장은 심하게 요동쳤다.

수혁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몰래 운전 연습을 했고, 드디어 수혁과 나란히 달릴 수 있게 되었다.

수혁의 차를 추월할 때 수혁은 조금 놀란 듯 보였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수혁은 차갑게 말했다.

“이런 건 하지 마. 수지는 이런 거 싫어했어.”

나는 조용히 차를 한쪽에 세웠다.

수혁은 내가 수지가 되기를 원했다.

그리고 나는 수혁의 모든 요구를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어느 날, 수혁이 술에 취해 나를 눌러 누르며 거칠게 물었다.

“수민아, 어느 누구도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른 여자의 대체품이 되고 싶어하지 않아. 너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나는 별처럼 반짝이는 수혁의 눈을 바라보았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수혁은 무심히 속삭였다.

“사랑해. 안 사랑할 수 있을까?”

수혁은 실망했는지 급하고 거칠게 내 어깨를 밀쳤다. 수혁은 지금껏 내 입술에 한 번도 키스하지 않았다. 무의식적으로 수지를 배신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침대를 공유했다.

또 한 번, 또 한 번.

그래서 이 모든 게 아무 의미가 없게 되었다.

더군다나 수혁은 스스로 속이는 데 아주 능숙했으니까.

수혁의 주변에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심지어 수혁 여동생 이수안조차도 나를 무시했다.

수안에게 나는 수지의 열등한 대체품일 뿐이었다.

정중히 부를 가치조차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수안은 나를 볼 때마다 야라고 대충 불렀다.

심지어 집안의 가사 도우미에게조차 장 아주머니라고 예의를 갖추던 수안은 나만큼은 예외였다.

만약 그날 수혁이 술에 취해 양아치들에게 둘러싸이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칼을 들고 수혁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수혁을 대신해 치명적인 칼을 막아냈다.

그렇게 내 배에는 5cm의 흉터가 생겼다.

만약 그 일이 없었다면, 나는 수혁의 집에 발조차 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병실에서 눈을 떴을 때, 수혁은 없었다.

대신 수혁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어머니가 결혼을 재촉하셔. 연말쯤 날 잡아서 결혼하자.]

그때, 수혁은 수지가 죽은 날이 떠올랐다.

그날은 결혼식을 준비하며 웨딩드레스를 고르러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러나 수지는 납치되었고, 수혁이 돈을 들고 갔을 때 차는 이미 바다로 들어가 있었다.

그렇게 수지는 사랑하는 수혁 때문에 목숨을 잃었다. 그것도 가장 사랑했던 그 해에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러니 수혁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도 당연했다.

약혼식은 매우 초라했다.

수혁의 몇몇 친구들, 그리고 수안 뿐이었다.

해외에 있는 수혁의 부모조차 돌아오지 않았다.

그들은 무대 아래에서 팔짱을 끼고 비스듬히 나를 내려다보며 나를 평가하는 듯했다.

그들 눈에 나는 단지 수지의 자리를 훔쳐간 도둑일 뿐이었다.

약혼식이 진행되는 도중, 수혁은 약혼 반지를 꺼내 들고도 내 손가락에 끼우지 않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