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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에게 따져 물을 때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태훈 씨는 어디에 있어요?”

말을 마치자마자 오태훈이 고양이를 안고 현관 쪽으로 왔다. 나를 발견하자마자 바로 표정을 굳혔다.

“임서영, 대체 뭐 하자는 거냐?”

그는 짜증 가득한 얼굴로 나를 보았다.

“내가 말했잖아. 마루가 아파서 밥 먹이고 있다고. 밥만 주고 가려고 했는데 대체 왜 이러는 거냐? 그 정도도 참을 수 없냐?”

나는 그와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얼른 팔을 잡고 말했다.

“나랑 가요. 어머님이 심장 발작을 일으켰어요.”

그러나 오태훈은 나의 손을 뿌리쳤다.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 어머니 건강은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알아. 어머니가 얼마나 건강하신데! 낮에도 내가 직접 건강검진까지 해드렸어. 멀쩡하시니까 자꾸 어머니를 이용해서 날 협박하지 마.”

어머님의 건강 상태를 확실히 그가 줄곧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내과 전문의인 그가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다.

나는 분노를 꾹 참으며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태훈 씨,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에요. 어머님이 지금 병원에서 태훈 씨만 기다리고 계셔요. 계속 안 가겠다고 하면 태훈 씨는 평생 후회하게 될 거라고요!”

나는 아주 진지하고도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 오태훈은 다소 망설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이때 신유나가 나를 보며 풀 죽은 얼굴로 말했다.

“서영 언니, 태훈이가 우리 집에 있어서 질투가 나는 건 이해하는 데 그렇다고 해서 아주머니가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저랑 태훈이 사이에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냥 우리 마루가 아파서 태훈이가 상태 봐주러 온 거예요. 그러니까 화내지 말아요, 네?”

신유나의 말을 들은 오태훈은 무의식적으로 내가 질투한다고 생각했다.

“유나 말이 맞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자꾸 헛소리하지 마. 나한테 남은 가족은 어머니뿐이니까. 죽고 싶은 거라면 혼자 죽어. 우리 어머니를 저주하지 말고!”

나는 화가 나 미칠 것 같았다.

‘지금 응급실에 누워 있는 사람이 네 어머니라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하지만 나는 그에게 화를 낼 시간도 없었다. 어머님은 그가 돌아와 수술하길 기다리고 있으니까.

“내 말을 믿지 못하겠으면 원혁 씨한테 연락해서 물어봐요. 원혁 씨가 사실대로 말해줄 테니까요.”

오태훈은 핸드폰을 꺼내 허원혁에게 연락하려고 했으나 신유나가 그에게 찰싹 붙으며 말했다.

“태훈아,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서영 언니랑 가. 마루는 나한테 주고.”

송유나는 말하면서 오태훈이 안고 있는 고양이를 품에 안으려고 했으나 오태훈은 그녀의 손길을 피하며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난 안 가. 여기 남아서 마루 상태를 볼 거야. 마루를 위한 특식도 완성 못 했다고.”

응급실에 누워 있는 어머님은 뒷전이고 고양이를 정성스럽게 보살피는 그의 모습을 보니 분노가 터져 결국 그에게 손가락질하고 말았다.

“오태훈, 그 고양이가 그렇게 중요해? 나랑 함께 어머님을 살리러 가기 싫을 만큼?”

오태훈이 입을 열기도 전에 신유나가 먼저 말했다.

“서영 언니, 언니가 나랑 태훈이 사이 오해하고 있어서 이렇게 화내고 있다는 거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주머니 건강 상태는 항상 좋으셨다고요. 그러니까 그런 저주는 그만 하세요. 그러다가 말이 씨가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 말을 듣자 오태훈은 불쾌한 듯 미간을 확 구겼다.

“임서영, 대체 왜 이렇게 변한 거냐? 우리 어머니가 너한테 얼마나 잘해 줬는데! 넌 그런 우리 어머니를 이용해서 나 집 돌아오라고 저주하는 거냐? 넌 양심이라는 게 있긴 하냐? 그래, 없으니까 너희 부모님도 널 버린 거겠지.”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피가 통하지 않아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나의 부모님은 딸인 나보다 아들을 더 아꼈다. 내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를 버렸고 결국 삼촌의 손에서 자랐다.

이 일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였다. 그런데 그는 지금 나의 아픈 상처에 소금을 뿌리고 있었다.

나는 입술을 꽉 틀어 물었다.

입안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절망의 맛이었다.

나는 다소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태훈 씨, 제발 이렇게 부탁할게. 나랑 가자. 어머님이 정말로 위독하시다고. 얼른 가서 치료해줘.”

신유나는 내 손을 잡으며 아주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보였다.

“서영 언니, 걱정하지 말아요. 태훈이는 우리 마루한테 밥만 먹이고 바로 갈 거예요. 그러니까 아주머니는 그만 저주해요.”

신유나만 아니었어도 오태훈은 나와 함께 병원으로 돌아가 어머님을 살렸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분노가 치밀어 있는 힘껏 신유나의 손을 뿌리쳤다.

“이건 우리 집안일이에요! 신유나 씨는 신경 꺼요!”

분명 손만 뿌리쳤을 뿐인데 신유나는 바로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오태훈은 바로 그녀를 부축했다.

“유나야, 어때.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신유나는 연약한 모습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난 괜찮아.”

오태훈은 잔뜩 화가 난 눈길로 나를 보았다.

“그만해! 임서영,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 준 줄 알아? 이런 억지는 그만 부리라고!”

말을 마친 그는 나를 밀치더니 문을 쾅 닫아버렸다.

뒤늦게 반응이 온 나는 울면서 문을 두드렸다.

“오태훈, 태훈 씨! 이 문 좀 열어봐요!”

“빨리 병원으로 가자고요! 어머님이 기다리고 계신다고요!”

하지만 내가 아무리 울면서 문을 두드려도 오태훈은 코빼기도 모습을 내비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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