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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 다시 관제탑으로 연락을 넣었다.

진태성의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KR2991이 특수한 상황이라 먼저 착륙해야 해. 우선 좀 기다려.”

나는 버럭 소리쳤다.

“우리가 지금 있는 지역이 마침 천둥번개 지역으로 의심돼...”

진태성은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정세현, 그만 좀 해. 본인이 안전하게 착륙하겠다고 이젠 거짓말까지 하네. 왜? 이젠 하영이 곧 죽는다는 소리는 못 하겠어?”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애써 감정을 억눌렀다.

“진태성, 이거 규칙에 어긋나. 이 비행기에 삼백 명도 넘게 타 있다고!”

“당신도 다른 비행기에 탄 몇백 명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었잖아!”

진태성은 버럭 소리쳤다.

“당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목숨만 중요하지? 어쩜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야?”

건너편에서 임정안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태성 오빠, 여기가 오빠가 일하는 관제탑이야? 나 이런 곳 처음 와 봐...”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만 같던 심장이 또다시 바닥으로 추락했고, 바늘로 쿡쿡 찌르는 듯 아팠다.

하영이도 아빠가 일하는 곳이 궁금하다며 수없이 참관하고 싶다고 부탁했었다.

심지어 하영의 6살 생일날, 내가 대신 하영의 소원이라고 부탁하기까지 했다.

그때 진태성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미간을 좁히며 거절했다. ‘하영이도 이젠 다 컸는데 왜 아직도 제멋대로야? 그곳은 일하는 곳이야, 관계자도 아닌 사람이 마구 들어갈 수 있는 줄 알아?’라면서.

그런데 지금 딸의 시체도 채 식기 전에 진태성은 임정안을 관제탑에 데려갔다.

순간 코웃음이 나왔다.

“진태성, 비행기 사고라도 나면, 당신 징계받을 거야! 지난번 징계 때도 내가 당신 계속 공항에서 일하게 하려고 돈을 얼마나 처박았는지 알기나 해?”

“웃기는 소리 하지 마!”

진태성은 냉소를 지으며 내 말을 끊더니 마이크에 대고 버럭 소리쳤다.

“정세현, 당신 정말 추하다. 내가 설마 모를 줄 알았어? 그때 정안이가 나 대신 징계 취소해 주지 않았으면 나 벌써 일자리 잃었어. 그런데 당신은 내 상황 뻔히 알면서 모른 체하고 정안의 공로까지 빼앗아 가려고 해? 어쩜 사람이 그렇게 악독해?”

순간 황당함이 밀려와 나는 믿기지 않는 듯 되물었다.

“임정안이 당신을 도왔다고? 그럴 리가, 그때 분명...”

신호는 또다시 끊겼다.

그와 동시에 진태성에게 설명할 기회도 사라졌다.

하지만 난 알고 있었다. 임정안이 있는 한,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진태성은 내 말을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진태성과 결혼할 때, 나는 그에게 아직 잊지 못한 첫사랑이 있다는 걸 몰랐다.

난 내 모든 진심과 마음을 숨김없이, 남김없이 내 남편에게 주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그렇게 백년해로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보기에 우리는 행복하고 평화로운 한 가족이었다.

하지만 딸이 5살 되던 해, 임정안이 귀국했다.

애초에 진태성은 어딘가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면서 점점 집에 늦게 들어왔다. 다만 그를 믿었기에, 나는 캐묻지 않았다.

그러다가 진태성은 끝내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가 관제를 할 때 넋을 잃는 바람에, 비행기 두 대가 하마터면 충돌할 뻔했던 거다.

그 실수로 진태성은 즉시 정직 처분을 받았고, 실직 위기까지 놓였다.

그런 남편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상관 비위 맞추느라 계속 술을 마셔대는 바람에 위출혈로 입원해 목숨을 잃을뻔한 적도 있다.

그때 일주일 동안 병가를 내면서 나는 남편에게 그 사실을 숨기고 휴가를 떠났다고 거짓말했다.

내 노력 덕에 남편은 실직의 위기에서 벗어나 작은 징계만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공로를 임정안이 가로챘을 줄이야?

어쩐지 그 일 이후로 진태성이 나에게 냉담하기 짝이 없더라니.

그에 반해 임정안에게는 무척이나 다정하게 굴었었지.

임정인의 손가락을 살짝만 다쳐도 정태성은 아픈 딸을 버리고 그 여자한테 달려갔고, 조금이라도 괴로워하면 생전 한번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던 인간이 그 여자를 위해 직접 요리까지 하며 달랬다.

지난 생에 임정안이 사고로 죽었을 때 한참 침묵하다가 아무 말도 안 하기에, 이젠 모두 잊고 우리 가족만 생각할 줄 알았는데. 그가 나와 딸을 집에 가둘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정태성이 모든 걸 내려놓은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복수할 때를 기다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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