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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침에 정환이 떠난 후, 현아는 아빠를 보고 싶다고 계속 조르기 시작했다.

“아빠, 오늘은 꼭 나랑 생일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잖아.”

“아빠 어디 갔어? 나한테 아직 화난 거야?”

현아는 작은 손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현아는 앞으로 착하게 잘 들을게. 더 이상 현우 오빠를 화나게 하지 않을게.”

김현우는 소정환의 첫사랑 허유연의 아들로, 태어날 때부터 선천성 심장병을 앓고 있었다.

유연은 이혼 후 아들 현우와 함께 남편이 일하는 병원으로 찾아왔고, 그때부터 정환은 집에서 현우 이야기를 자주 꺼내며, 현아가 철이 없고 버릇없다며 꾸짖었다.

현우가 현아의 인형을 찢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겨도, 언제나 현아의 탓이었다. 현아는 울면서 눈이 벌겋게 되어 김현우가 집에 오면 입을 꾹 다문 채 방으로 들어가 나오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남편은 차가운 얼굴로 딸을 방에서 끌어내어, 현우에게 사과하게 했다. 나 또한 겨우 설득하여 갈등을 가라앉힌 적도 여러 번이었다. 이 일을 떠올리니 마음 한구석이 아렸다.

나는 현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빠는 의사라 환자를 돌보는 일이 우선이야. 아빠가 현아를 신경 안 쓰는 게 아니라, 아빠가 지금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는 거야.”

현아는 반짝이는 눈빛으로 어린아이답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아빠는 세상에서 제일 멋진 사람이야. 현아의 히어로야!”

나는 웃으며 딸을 안고 침실로 데려다 눕히고, 동화책을 가지러 서재로 향했다. 딸을 재워야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고개를 돌린 순간, 딸아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집 안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언제 대문이 열렸는지 모를 정도로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어두운 밤,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급히 내려와 여기저기 찾아다녔지만 불길한 마음이 커져만 갔다.

그때, 문 앞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환 씨, 빨리 와서 현우 좀 봐줘요! 상태가 급해요!”

유연이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이해하지 못한 채, 늘 침착하던 정환이 얼굴이 창백해지며 병력 기록을 내려놓고 뛰쳐나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현우의 병실에서 정환은 찡그린 얼굴로 그의 상태를 자세히 검사하고 있었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았는데.”

유연은 눈물을 삼키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만약 현우가 죽는다면, 나도 살고 싶지 않아!”

정환은 창백한 얼굴로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마. 분명히 적합한 심장 이식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나이에 맞는 심장을 어디서 찾겠어? 현우는 아직 너무 어린걸.”

정환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말을 잇지 못했고, 내 마음속에서도 씁쓸함이 스쳤다.

유연이 정환의 첫사랑이라는 걸 알지만, 남편은 지금 자신과 유연은 그저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나에게 호언장담했었다. 어찌 됐든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으니까.

유연은 소정환을 붙들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정환아, 제발 현우를 살릴 방법을 찾아줘. 그 애는 제 생명이나 다름없어. 나는 이 아이 하나뿐이야. 너도 내가 아들을 잃는 걸 두고 보지 못할 거잖아?”

“우리 약속했잖아. 현우가 나으면 이혼하고 나랑 함께한다고 그러니 제발 도와줘! 앞으로 현우도 당신의 아들이 될 거잖아!”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어!’

정환은 분명히 말했었다. 과거는 지나간 일이라고. 유연을 돕는 건 단지 어릴 적 함께 자란 정 때문에 그런 거라고 했었다.

‘날 속일 리가 없잖아?’

그런데, 정환은 한마디도 반박하지 않았다. 말 한마디도. 정환은 갈등하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잠시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알겠어, 약속할게.”

내 마음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유연이 돌아온 후, 정환은 나에게 더욱 냉담해졌었다.

정환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저 이해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유연 때문이었을 줄이야.

나는 정환이 이미 나를 배신했을 거란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남편의 대답을 듣고 안도한 유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다행이야, 정환아. 현우도 널 정말 좋아해요. 식사할 때마다 네가 있어야 밥을 먹고, 없으면 나에게 전화하라고 졸라대.”

나는 이 순간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조차 몰랐다. 알고 보니, 병원에 급히 간 이유가 업무 때문이 아닌, 유연의 아들을 위한 것이었다니.

그리고, 내 소중한 딸이 병상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그는 다른 아이를 달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아니, 비웃고 싶었다. 행복했던 삶의 거품이 한순간에 터져버렸다.

이 모든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와 딸은 그저 우스운 존재였을 뿐이었다.

정환은 이마를 짚으며 피곤한 듯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당장 맞는 심장을 찾을 수가 없어. 내가 좀 모아둔 돈이 있으니까, 돈만 충분하다면 누군가가...”

“정환아, 대상이 있어!”

유연은 이미 준비해 둔 조직 적합성 검사를 내밀었다.

“이거 봐. 중환자실에 있는 그 어린 소녀, 보호자가 없잖아?”

내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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