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된 폐를 잘라내지 않으면 나에게 남은 시간은 몇 개월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절반의 폐로 나는 또 얼마나 살 수 있을까?나는 결과 보고서를 들고 부모님에게 말할지 말지 망설였다. 이때 그들이 먼저 집에 잠깐 돌아오라고 전화가 왔다.4년 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돌아오라는 말을 한 것이었다. 나는 마냥 기쁘기만 했다. 부모님의 마음속에 아직 내가 있다고 생각했다.내가 집으로 돌아간 순간 부모님이 이혼을 요구할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심지어 그들은 내가 차유라의 남편을 빼앗았다고 했다.분명히 한 가족이지만 한없이 낯설어 보였다. 나도 어릴 적에는 나름 사랑을 받았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나는 비웃음이 서린 차유라의 얼굴을 바라봤다. 내 처지가 변한 건 차유라가 태어난 다음부터였다. 그날부터 부모님의 눈에는 차유라 밖에 없었다.이 집안에서 나는 낯선 사람에 불과했다. 모든 일에서 차유라에게 양보해야 하는 건 물론 그녀가 가진 것을 감히 바라면 안 됐다.차유라가 다치면 혼나는 건 나였다. 차유라가 잘못해도 내가 혼났다. 차유라가 버린 물건은 내가 써야 했고, 내가 좋아하는 물건은 당연하게 빼앗겼다.그녀는 손쉽게 부모님의 편애를 받았다. 하지만 나는 죽을 만큼 노력해야 가벼운 칭찬 한마디 받을 수 있었다.내가 수도권 명문대학교에 붙었을 때 부모님은 그것밖에 못 하냐고 했다. 그러나 차유라가 수도권도 아닌 삼류 대학교에 붙었을 때는 수도 없는 칭찬과 선물을 받았다.어릴 적의 차유라는 아주 귀여웠다. 나는 그녀 몸에 생채기라도 날까 봐 걸음마를 뗄 때 인간 쿠션 역할을 했다.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내 몸이 아무리 아파도 상관없었다. 어찌 됐든 내 친동생이기 때문이다.하지만 그렇게 귀엽던 차유라는 악마로 커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행복은 내 고통 위에서 만들어졌다.그녀는 내가 부모의 사랑을 원하는 걸 알고 손쉽게 빼앗아 갔다. 그리고 나를 강씨 집안의 구렁텅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나는 20여 년이나 함께 산 가족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강준혁의 태도는 아주 덤덤했다. 마치 지난 2년 동안 나는 한낱 도구에 불과했다는 듯이 말이다. 쓸모가 없어지니 이제 버릴 때가 된 모양이다.나는 웃으면서 그가 건네는 물건을 받아서 들었다. 그리고 협의서에 내 이름을 사인하고 그가 보관해야 하는 것을 돌려줬다.내 가족은 이혼을 요구하면서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그래도 강준혁은 수고비 줄 생각이라도 했으니 나쁘지는 않았다.강준혁은 내가 이토록 쿨하게 허락할 줄 모른 듯했다. 그는 멍하니 협의서를 받아서 들었다. 나는 그의 반응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짐 정리를 시작했다.나는 오면서 짐을 별로 챙기지 않았다. 갈 때도 마찬가지다.결혼 하고 나서 강씨 집안의 돈으로 산 옷, 가방, 그리고 주얼리는 하나도 챙기지 않았다. 오직 내 개인 물품만 트렁크에 주워서 담았다.짐정리는 반 시간도 채 되지 않아서 끝났다. 내가 갈 때 강준혁은 생각에 잠긴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었다.나는 먼저 그와 인사하고 시부모님에게도 인사했다. 그리고 후련한 기분으로 저택을 떠났다. 시부모님은 진작 그의 결정을 알고 있은 듯 덤덤하게 머리만 끄덕였다.참 냉정한 한 가족이다. 그래도 2년 정도 같이 한 사이인데, 반려동물이라고 해도 정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인 나는 반려동물보다도 못한 듯했다.아니, 나 따위가 어찌 반려동물과 비교하겠는가. 그들에게 나는 단지 도구일 뿐이지, 가족이었던 적은 없다. 나는 이런 자신을 비웃는 듯 피식 웃으며 택시를 타고 2년간 지내던 곳을 떠났다.‘드디어 자유다! 그런데... 나 곧 죽겠네.’나는 아무 호텔에나 들어가 핸드폰을 끄고 잠들었다.2년 만이다. 2년 만에 처음으로 알람 없이 일어났다. 아침부터 강준혁을 돌보느라 바쁘게 돌아치지 않아도 되었다.나는 이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지만 말이다.저녁 동안 꺼둔 핸드폰을 다시 켰다. 전화도 문자도 아무것도 없었다. 나를 걱정하고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괜찮았다. 나에게는 나 자
주현우는 내 전남자친구다. 결혼 얘기까지 오갔으니 약혼자라고 해도 틀릴 건 없었다. 차유라 대신 강준혁과 결혼해야 하는 것만 아니었어도 나는 주현우와 결혼했을 것이다.나는 고개를 돌렸다. 차유라는 웃는 얼굴로 주현우와 손 잡으려고 했지만 주현우가 피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주현우를 바라봤다.기억을 되새겨 보니 진실은 금방 알 수 있었다. 차유라는 주현우를 좋아한다.내가 곧 졸업할 때 차유라는 굳이 나와 같은 학교에 와서 귀찮게 굴었다. 그때 나도 주현우도 인턴 자리를 찾느라 바빠서 그녀에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그래도 여동생이라 학교에서 잠깐 마주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차유라는 주현우를 알게 되었다.후에는 나와 주현우가 운동장에서 산책을 하든, 도서관에서 책을 보든, 식당에서 학식을 먹든, 자꾸만 그녀와 마주치게 되었다. 그녀는 형부라고 부르면서 주현우와 인사했다.그 동안 그녀는 나를 별로 귀찮게 굴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철든 것인 줄 알았다. 내 남자친구에게 눈독 들였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그녀는 강준혁과 썸을 타면서 주현우까지 놓치지 않았다. 역시 차유라 다웠다.‘현우도 차유라를 좋아하는 건가?’이런 생각에 나는 기분이 찝찝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달려가서 묻고 싶은 충동을 참고 비행기에 올랐다.비행기에 타고 나자 나는 부쩍 진정했다. 주현우가 누구를 좋아하든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차피 우리는 헤어진 사이다.나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3개월 동안, 비록 몸이 아프기는 하지만 나는 많은 나라에 다녀왔다. 처음 보는 풍경도 눈에 많이 담았다.여행하는 동안 좋은 친구들도 여럿 만났다. 암과의 전쟁에서는 처참히 패배했지만 그래도 남은 시간을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었다.여행을 끝낸 다음 나는 바로 입원했다. 내 몸은 여행을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서 묘지를 정해놓고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죽음까지 시간은 일주일 정도만 걸렸다.이대로 이번
“안 돼! 결혼식은 미룰 수 없어. 빨리 준혁이랑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야 우리 집안 입지가 탄탄해 지지. 유라야, 네가 밖에서 어떻게 놀든 난 상관없어. 근데 결혼은 무조건 준혁이랑 해야 해. 유진이 죽은 일은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우리만 알면 돼. 알겠지?”아버지의 말투는 아주 진지했다. 어머니도 차유라도 거역할 수 없었다.차유라는 화난 채로 방에 돌아갔고 나는 억지로 따라갔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은 나를 걱정하는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이제야 나는 그들의 마음속에 나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도 눈물 정도는 흘려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던 나만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만약 살아 있을 때 이 사실을 발견했다면 아주 속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귀신이다. 실망은 쌓일 대로 쌓였고 감각은 마비된 지 오래였다.나는 그저 왜 차유라의 곁에 묶여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다. 그것도 의식이 살아 있는 상태로 말이다.차유라는 기분이 나쁜 상태로 강준혁의 문자에 대충 답장하고 씻으러 갔다.이튿날, 그들은 아침 일찍 내 장례식을 대충 끝내고 떠났다. 차유라는 예쁜 옷으로 갈아입고 주현우와의 대화창을 열었다. 그녀는 한동안 고민하면서 문자를 쓰고 지우고 다시 쓰고 지우다가 드디어 보냈다.[오빠, 할 말 있어요. 유진 언니에 관한 거예요. 지금 만날 수 있을까요?]주현우 쪽에서는 짧은 답장만 했다.[시간 장소는 네가 정해.]차유라는 신이 나서 식당 주소를 보내고는 밖으로 나갔다. 주현우와의 만남을 아주 기대하는 듯했다.나는 억지로 차유라와 함께 레스토랑으로 갔다. 주현우는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그는 아주 진지해 보였다. 차유라가 오빠라고 부르며 애교를 떠는데도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유진이는 어때? 강준혁이 괴롭혀? 아니면 다른 일이 있었나?”차유라는 잠깐 멈칫하다가 실망한 표정으로 말했다.“이렇게 만났으면 저랑 인사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요? 왜 보자마자 언니 얘기만 해요?”주현우는 미간을 찌푸
“저는 오빠 여동생이 아니에요. 2년 동안 제가 그렇게 잘해줬는데도 어떻게 반응 하나 없을 수가 있어요? 그래도 유진 언니 얘기가 나오면 아무리 바빠도 나와줬네요. 저는 유진 언니 이름을 빌려야만 오빠랑 만날 수 있었어요. 저한테 어떻게 이토록 냉정할 수가 있어요?”주현우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내 마음속에는 오직 유진이뿐이야. 만약 널 착각하게 할 만한 행동을 했다면 사과할게. 미안해. 앞으로는 유진이 소식도 너한테 묻지 않을 거야. 난 이만 일어날게.”주현우의 말을 들은 내 마음속에는 씁쓸함이 가득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얼굴을 매만졌다.하지만 내 손은 그의 얼굴을 통과해 버리고 말았다. 이제야 나는 자신이 실체가 없는 외로운 영혼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나는 주현우의 앞으로 가서 그의 오목조목한 이목구비를 세세히 바라봤다. 이렇게라도 그를 몇 번 더 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차유라는 주현우의 말에 크게 자극을 받은 듯했다. 그녀는 팔을 벌려 주현우를 막아섰고 눈은 붉게 물든 채 마구잡이로 말을 쏟아냈다.“오빠! 차유진은 이미 죽었어! 죽었다고! 제발 유진 언니는 잊어줘!”주현우는 마치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 그녀의 어깨를 꽉 붙잡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차유라는 머리를 빳빳하게 쳐들며 단호히 반박했다.“거짓말 아니에요. 언니는 정말 죽었어요, 폐암으로. 오늘 오전에 장례식도 끝났어요.”주현우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표정으로 차유라를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그는 그녀를 차에 태워 내 묘지로 향했다.비석 위에 새겨진 내 사진을 보고서야 주현우는 비로소 차유라의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는 내 묘비 앞에 무릎을 꿇고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나는 가슴이 저릿했다. 내 가족들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는데, 헤어진 남자친구인 주현우가 이토록 슬프게 울고 있었다.주현우는 내 묘지 앞에서 오랫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차유라는 진작 묘지
상자를 배달한 부부도 꽤 이상했다. 그들은 바로 떠나는 것이 아닌 주현우가 정신 차리기를 하루 종일 기다렸다.주현우가 정신 차린 다음 그들이 한 말은 주현우뿐만 아닌 나도 깜짝 놀라게 했다. 말한 사람은 선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안녕하세요, 현우 씨. 저는 유진이 친아버지인 송민준이에요. 이쪽은 유진이 친어머니 이미정이에요. 저희가 너무 늦게 와서 유진이랑 만나 보지도 못했네요. 저희... 저희는...”내 친부모라는 사람들은 말하다 말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띄엄띄엄 사건의 자초지종을 설명했다.20여 년 전, 친어머니 이미정이 나를 낳고 고향으로 친척을 방문하러 가던 중 사고를 당했다. 그녀는 혼수상태에 빠졌고, 깨어났을 때 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나는 여러 차례 옮겨지며 결국 보육원으로 보내졌다.내가 부모로 알고 있던 사람들은 불임으로 인해 당시 보육원을 방문해 나를 입양했다. 몇 년 후, 뜻밖에도 차유라를 자연임신으로 얻게 되었다. 그들의 사회적 지위로 인해 나를 보육원으로 다시 보낼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계속 키우게 되었다.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들은 내 진짜 가족이 아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들에게 나는 줄곧 남이었다.그들의 무관심과 편애, 그리고 나를 향한 모든 차별과 멸시는 이제야 설명이 되었다. 생각해 보면 차유라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그토록 당당하게 나를 괴롭혀 왔던 것 같았다.그래서 그들이 마치 나를 키워주고 공부까지 시켜준 것이 큰 은혜라도 베푼 듯한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모든 것이 혈연이 없기 때문에 비롯된 일이었다.내 친부모는 어딘가에서 내가 강씨 가문에서 당한 일을 알게 되고 눈물을 흘렸다. 힘들게 나를 찾았는데, 그곳이 묘지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나는 그들을 위로하고 안아주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저 묵묵히 그들의 눈물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그날 이후 모든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듯 내 몸은 점점 투명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세상에 남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느
“그게 무슨 말이니, 유라야. 둘이 금방 결혼했잖아. 그 집안에서 얌전히 지내. 우리 금방 새 프로젝트를 시작했거든? 중요한 시점에 방해하지 마.”차유라는 무언가 더 말하려고 했지만 아버지가 이미 전화를 끊어 버렸다.그녀는 멍하니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작은 얼굴에는 당혹감이 가득했다. 생각에 잠겨 있는 그녀에게 도우미가 아래층에 내려가서 식사를 하라고 재촉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감정을 정리하고 아래층에 내려갔다.강씨 일가는 이미 식탁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부모님의 눈빛이 예전과 다르다는 걸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분명 강준혁이 그녀는 중고라는 사실을 말한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의 얼굴에는 뚜렷한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식사에 집중하며 존재감을 낮췄다. 식사가 끝나고 시어머니는 차유라를 옆으로 불러 앉히고 도우미에게서 마사지를 배우라고 했다.자신을 여전히 차씨 집안의 귀한 딸이라고 생각한 차유라는 당연히 반발했다.“저는 마사지사가 아니에요. 왜 제가 그런 걸 배워야 하죠?”시어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준혁의 시력이 완전히 회복된 게 아니니, 네가 아내로서 뇌를 자극할 수 있도록 자주 마사지해 줘야 하지 않겠니?”차유라는 억울한 마음에 말대꾸했다.“다른 사람이 하면 안 돼요? 왜 꼭 제가 해야 해요?”시어머니는 화를 냈다. 차유라가 강준혁을 위해 이 작은 일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걸 이해할 수 없었다.“준혁이는 다른 여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 잊었니? 그 좋은 집안들 놔두고 왜 너랑 결혼했는지 잊은 거야?”차유라는 입을 다물고 어쩔 수 없이 따라 배우기 시작했다.나는 마치 관찰자처럼 그녀가 내가 겪었던 생활을 그대로 겪는 모습을 지켜보았다.물론 강준혁은 그녀를 중요하게 생각했기에 엄격히 감시했다. 밤이면 더욱 가혹하게 그녀를 괴롭혔다.시력을 되찾은 강준혁은 특히 그녀가 괴로워하는 표정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애처로운 표정, 애원하는 눈빛, 그리고 절망에 휩싸인 모습..
차유라가 떠나는 모습을 본 주현우는 천천히 발걸음을 돌렸다. 나는 그가 나를 이끌고 내 묘지로 향하는 것을 느꼈다.주현우는 내 묘비에 난 잡초를 하나하나 뽑아주고 사진 위에 손을 얹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진아, 너한테 상처 준 사람들은 전부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이번은 차씨 집안이고, 다음은 강씨 집안이야.”나는 처음에 주현우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다.며칠 후 강준혁이 차유라를 심하게 다치게 했다. 뉴스에서는 JH그룹의 후계자가 조울증을 앓으며 아내를 학대한다고 폭로했고, 그 소식이 터지자마자 순식간에 화제가 되었다.곧이어 경찰이 강씨 집안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차씨 집안에 이어서 강씨 집안 또한 서서히 무너져갔다.몇 날 며칠 동안 주현우를 따라다니면서 알게 된 사실은, 내 친부모와 주현우가 그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뒤에서 손을 써왔다는 것이었다. 내가 강씨 집안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고 나서 그들은 조용히 일을 벌이기 시작했다.선을 넘은 사람에게는 결국 벌이 찾아오는 법. 그때가 바로 지금이었다.이기적이었던 차씨 집안사람들과 방자했던 강씨 집안사람들은 이제 모두 대가를 치르고 있었다.사실 나는 그들에게 전혀 원망이 없었다. 다만 조금 더 용기 내고 조금 더 나 자신을 지켰더라면 사랑하는 사람도 붙잡고 진짜 가족도 만날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었다.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내 친부모님은 십 년은 늙어 보였다. 오늘 그들은 주현우와 함께 내 묘 앞에 모여 이장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들은 나를 내 진짜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다.주현우는 직접 손으로 내 묘를 파고 조심스럽게 내 유골함을 품에 안았다.내 모습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는 이별의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참 다행이다. 이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것이...나는 나를 사랑해 준 세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세상 속으로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