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설아는 기절한 사도현을 끌고 거센 불바다를 뚫고 드디어 탈출에 성공했다.지금의 그녀는 기진맥진하여 사도현과 같이 바닥에 드러눕고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찬 바람은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차설아를 스쳐 지나갔다.그렇게 차설아는 처음으로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위잉! 위잉! 위잉!”소방차 울리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소방대원들은 불을 끄려고 구조장비를 챙기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몸은 좀 어때요?”흰색 가운을 입은 구조대원들이 들것을 들고 차설아와 사도현에게 다가오며 물었다.차설아는 재빨리 바닥에서 일어서고는 까매진 얼굴로 말했다.“저는 괜찮으니 이 사람 빨리 살려주세요. 다리가 부러져서 당장 처치가 필요해요!”“이 사람은 저를 구하기 위해 다친 거예요. 무슨 수를 쓰든, 어떤 대가를 치르든 꼭 이 사람을 살려야 해요. 제발요...”차설아가 구조대원들의 팔을 붙잡으면서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방금 사도현의 상태를 잠깐 살펴봤었다.사도현 오른쪽 종아리뼈가 선명하게 튀어나왔는데 부상이 매우 심각한 듯했다.만약 사도현이 이 일 때문에 다리를 못 쓰게 된다면 차설아는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꼭 최선을 다하겠습니다!”구조대원은 차설아를 위로하며 의식을 잃은 사도현을 구급차에 태웠다.차설아도 원래 차에 타려고 했는데, 뒤돌아보니 이미 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타버린 저택을 바라보고는 마음이 한없이 아팠다.그녀는 갑자기 뭔가 떠올렸는지 얼굴색이 확 어두워졌다.그러더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불바다로 뛰어들려고 했다.“이봐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너무 위험하니 당장 거기서 나와요!”소방대원이 그녀를 말렸다.하지만 차설아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제 물건, 저에게 엄청 중요한 물건이 아직 안에 있어요. 그거 가지러 가야 해요!”“불길이 너무 세요, 지금 들어가면 죽음을 자초하는 거라고요. 아무리 중요한 물건이라고 해도 생명보다 더 중요할 수 없으니 무모한 짓은 하지 말아요...
다행히도 오도자의 그림은 높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아직 불타지 않았다. 그는 소화기로 주변의 불을 끄고는 재빠르게 그림을 챙겼다.하지만 차설아가 말한 ‘지도’는 위층 침실에 있었기 때문에 찾으러 가기엔 상당히 위험했다...“돌아오라고, 성도윤. 미친 짓 그만하고 빨리 돌아와!”차설아는 목이 터질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참다못해 직접 불바다로 뛰어들 셈이었다.하지만 멀리서, 성도윤은 아빠가 가장 사랑했던 그림을 든 채 불길에서 걸어 나왔다.성도윤은 차설아와 똑같이 얼굴이 연기에 그을려 시커메졌다. 그는 손에 화상을 입었고, 옷과 바지는 너덜너덜해진 초라한 모습을 보였다.그는 자기를 애타게 기다린 차설아를 바라보면서 조심스럽게 품에 든 그림을 꺼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미안해, 나 최선을 다했어. 당신이 말한 지도는 도저히 못 찾겠어.”차설아는 남자의 초라하지만 진정성 있는 모습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바보 아니야? 불에 타서 죽으면 어떻게 해? 당신이 죽으면 나도 더는 살 수 없다고. 그걸 몰라서 그래?”그녀는 주위를 신경 쓸 겨를도 없어 곧바로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마치 잃어버린 보물을 되찾은 듯, 다시는 놓지 않으려 했다.“...”커다란 몸집의 성도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손에 그림을 쥔 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활활 타오르는 불 때문에 미친 듯이 더웠는데, 지금 이 순간, 마치 감전된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찌릿했다.‘내 기억이 틀리지 않았다면 이 여자가 처음 이렇게 마음을 다해 안겼던 것 같은데?’예전에 성도윤은 차설아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지긴 했지만 차설아는 항상 주눅이 들어 그와 거리를 두고 있었다.하지만 지금 그녀는 활활 타오르는 불처럼 뜨거운 사랑을 그에게 전하고 있었다.“자, 그만 울어. 나 성도윤이 그렇게 쉽게 죽을 리가 있나? 바다에 절대 빠지지도 않고, 불에도 절대 타죽지 않으니 걱정 안 해도 돼.”성도윤은 보기 드물게 눈물을 흘리는 차설아를 위로하며 말했다.차설아
차설아는 완전히 얼어붙은 채 의문의 얼굴로 남자를 바라보고는 꼼짝하지 않았다.그녀의 뽀얀 얼굴에는 불그스름한 홍조가 띠었다.‘이 녀석... 왜 갑자기 이러는 거야?’성도윤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앞쪽을 바라보고는 덤덤한 얼굴로 말했다.“미안, 잘못 잡았어.”말을 마친 그는 다시 손바닥을 기어에 올리고는 여유롭게 출발하기 시작했다.스포츠카는 ‘씽’ 소리를 내며 도로를 질주했다.차설아의 가슴은 지금 질주하는 스포츠카처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그녀는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방금... 나 플러팅을 당한 거야?’“도윤 씨, 방금 플러팅 한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운전에 집중한 남자를 바라봤다. 뾰로통한 얼굴은 다람쥐처럼 아담하고 귀여웠다.성도윤이 눈썹을 치켜들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차설아를 힐끔 보고는 되물었다.“당신 생각은 어떤데?”차설아는 턱을 만지며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나한테 플러팅 한 것 같아. 하지만 플러팅 기술이 너무나도 구려.”‘손을 잡으려면 멋있게 확 잡아야지, 뭘 또 잘못 잡았다고 그래? 차라리 눈이 멀었다고 하지.’남자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차설아는 계속 도발했다.“도현 씨한테 여심 공략 비법을 전수받았다며? 그런데 왜 아직도 그렇게 형편없는 거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나 보네.”얼굴색이 확 어두워진 성도윤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사도현, 이 배신자.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사도현에게서 여심 공략 비법을 배운 것마저 부끄러운 일인데, 이 녀석이 감히 차설아한테 말해? 내 체면은 전혀 생각하지 않은 거야?’하지만 사도현을 생각한 성도윤은 곧바로 얼굴이 굳어졌다.“그 녀석, 지금 몸 상태는 좀 어때? 구조대원들의 말에 의하면 꽤 많이 다쳤다고 하던데.”차설아도 우수에 찬 눈빛으로 걱정스럽게 말했다.“많이 다치긴 했어, 오른쪽 종아리뼈가 에어컨 실외기에 맞아 부러졌거든. 날 구하려고 하지 않았다면 다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야. 그 은혜를 어떻게 갚
성도윤은 당연히 차를 세우지 않았고, 오히려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차씨 저택은 이미 폐허로 되었어. 허울만 남았는데 큰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어디로 가려고?”“어디든 돼, 큰집만 아니면 돼!”차설아가 단호하게 말했다.“전셋집을 구해도 되고, 집을 하나 사도 돼. 이 넓은 세상에 나 차설아가 있을 곳이 없겠어?”“그럴 필요 없어!”성도윤도 단호하게 말했다.“큰집은 당신이랑 공동명의로 되어있잖아, 큰집도 당신의 집이라고. 이제 며칠 후에 당신 명의로 모두 넘겨줄 테니까 그때면 큰집은 완전히 당신 소유야.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고. 팔아도 좋아.”성도윤의 말에 차설아는 더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큰집은 시가가 2000억은 넘었기 때문이다.성도윤에게서 2000억의 선물을 받았는데 계속 눈치 없이 주절거리면 안 되었으니 말이다.하지만 차설아는 여전히 낮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날 쫓아낼 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서.”“뭐라고?”성도윤은 제대로 못 들은 듯 차가운 얼굴로 물었다.차설아는 얼른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니야, 큰집도 좋다고. 넓으니까 마음에 들어.”“좋은 건 알아가지고.”성도윤은 그제야 따지지 않고 집중해서 차를 큰집 쪽으로 몰았다.임채원이 떠난 후로 큰집은 마침내 이전의 평화를 되찾았다.차설아를 가장 놀라게 한 건, 바로 장미가 가득 심어졌던 정원은 다시 해바라기가 줄지어 있었다. 차씨 저택의 해바라기처럼 똑같이 화사하게 피어났기에 차설아는 기분이 좋았다.각박하게 굴었던 하인들은 차설아를 보더니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 심지어 감격의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었다.“너무 잘됐네요. 사모님께서 드디어 돌아오셨네요. 언젠간 사모님께서 돌아오실 줄 알았어요!”집사인 이 아주머니가 감격에 겨운 얼굴로 말했다.차설아가 입꼬리를 올리더니 말했다.“이 아주머니, 나를 내쫓던 것처럼 적극적으로 맞아주시네요.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이 아주머니의 얼굴은 빨개지더니 곧이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사 이 아주머니는 성도윤이 차설아의 편을 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한 채 짐을 챙기고는 나가버렸다.떠나기 전, 그녀는 성도윤이 없는 틈을 타 몰래 차설아를 협박했다.“흥, 이미 이혼한 마당에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오늘 날 내쫓았으니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기다려, 이제 행복한 나날들은 모두 끝나버렸으니!”차설아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이 아주머니가 쉽게 안 바뀌었을 줄 알고 있었어요. 처음부터 날 미워했잖아요. 여기를 떠나게 한 건 오히려 이 아주머니에게 잘된 일이 아닌가요? 더 따진다면 퇴직금도 못 받을 줄 알아요.”“차설아, 당신 정말 지독하네.”이 아주머니가 표독스러운 얼굴을 하고는 자리를 떴다.그녀는 별장을 나오자마자 곧바로 소영금에게 전화를 걸었다.“큰사모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차설아 그년이 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 도련님의 혼을 쏙 빼놓아 별장을 독차지하고는 저를 곧바로 내쫓았어요. 그리고 임채원 씨의 죽음도 차설아와 연관이 있다고 하던데...”이 아주머니는 무려 30분 동안 전화로 차설아에 대한 불만을 얘기했다. 물론 80%의 내용은 차설아를 모함하기 위해 일부러 지어낸 얘기였다.그 말을 들은 소영금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주먹을 불끈 쥐고 표독스러운 얼굴로 말했다.“채원이의 죽음이 그년과 연관 있을 줄 알았어. 태어나지도 못한 차설아에게 당한 내 손주, 참 불쌍해라. 차설아, 반드시 그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차설아가 큰집에 다시 살기로 한 후, 이 아주머니를 내쫓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하인들도 모두 집에서 내보냈다.그렇게 천 평에 달하는 독채의 큰 별장에는 오직 성도윤과 차설아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말을 하면 메아리가 울릴 정도로 텅 비었다.성도윤은 그녀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어 눈살을 찌푸렸다.“그 사람들 다 내쫓고선 이 큰 집을 어떻게 관리하려고 그래? 새로운 사람들을 구할 생각인 거야?”차설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난 팔다리가 있어.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물론 차설아도 그보다 나은 건 아니었다.사도현의 얘기에 차설아도 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좋아, 그럼 각자 정리 좀 하고 같이 병원에 가는 게 좋겠어.”두 사람은 서로 다른 욕실로 향하고는 재빨리 씻었다.하지만 어색한 상황이 발생했다.두 사람 모두 이곳에서 살지 않았기 때문에 갈아입을 옷이 없어 타올을 몸에 두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차설아가 욕실에서 나오고는 아무 옷 한 벌 걸치려고 했다. 성도윤도 같은 생각이었다.그렇게 두 사람은 어색한 상황에서 서로 마주치고 말았다.성도윤은 대놓고 차설아를 훑어보고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부터 뽀얀 피부의 발까지 말이다.차설아는... 더 강렬한 눈빛으로 성도윤을 훑어봤다. 심지어 손으로 한 번 그의 몸을 만져보고도 싶었다.“도윤 씨, 요즘 또 운동하러 갔어? 선명한 복근이 거의 트레이너급이란 말이야.”차설아는 전에 ‘사지가 마비되고 침대에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성도윤을 돌봤던 나날들을 떠올렸다. 그때는 제멋대로 성도윤의 몸을 만질 수 있었는데 말이다.성도윤은 눈썹을 치켜들더니 도도하게 말했다.“당신 몸매도 생각한 것보다는 훌륭하네. 다만 배가 좀 나왔어, 다이어트 좀 해.”차설아는 말문이 막혔다.‘이 녀석 입에서 칭찬을 바란 내가 잘못이지. 아이를 둘이나 임신하고 있는데 당연히 배가 클 수밖에 없지! 그리고 몸매가 생각한 것보다 훌륭해? 전에 내 몸매를 못 봤었던 것처럼 말하네!’두 사람은 옷을 찾아 입으려고 했는데, 이때 성도윤의 어머니인 소영금이 노발대발하며 닥쳐들었다.그녀는 이미 화가 나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성도윤과 차설아가 타올만 두르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자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뭐야, 두 사람? 다시 합친 거야?”소영금은 두 사람 사이에 가로서고는 차설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이런 재수탱이 같은 년, 정말 뻔뻔스럽구나. 내 아들은 이미 너를 집에서 내쫓았어, 그런데도 염치없이 이렇게 입고선 내 아들을 유혹해?”목청이 큰 소영금 때문에 차설아는 머리가 지끈
소영금은 도도하고 잘 웃지도 않은 아들이 그녀의 앞에서 차설아 이 재수탱이와 시시덕거리며 장난을 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건 지구에서 외계인을 본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이었다.“아들, 왜 그래? 전엔 저년을 똑바로 쳐다도 안 보더니, 지금은 관심이 생긴 거야? 설마 정말 차설아를 유혹하려는 건 아니지?”성도윤은 그저 어깨를 들썩이더니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았다.소영금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만약 차설아 이 재수탱이가 성도윤한테 잘 보이려는 거면 몰라도, 성도윤이 오히려 차설아를 유혹하고 있으니 소영금은 이 상황이 답답했고, 더는 기고만장할 명분도 없어졌다.“아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야? 아니면 마가 씐 거야?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누굴 유혹하면 안 좋아, 그런데 왜 하필 이 재수탱이인데?”소영금은 워낙 성질이 사나운 사람이기 때문에 화가 난 나머지 저도 모르게 성도윤에게 손을 쓰기 시작했다.그녀는 성도윤을 두들겨 때리면서 훈수를 뒀다.“정신 차려, 제발 정신 좀 차리라고. 여자가 없어서 이미 이혼당했던 차설아를 유혹해? 사람은 뒤돌아보는 거 아니야, 왜 나도 성씨 가문도 체면을 차리지 못하게 이러는 건데? 차설아는 소영금이 성도윤을 마구 때리자 재빨리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소영금의 말을 바로잡았다.“여사님, 말을 똑바로 하셔야죠. 저는 당신 아들에게 이혼을 당했던 여자가 아니라, 정확히 당신 아들과 이혼했던 여자입니다. 그리고 도윤 씨는 뒤돌아보지도 않았어요, 예전엔 저를 유혹한 적이 없었거든요.”물론 술에 취하고 두 사람은 뜨거운 하룻밤을 보낸 게 맞다. 하지만 차설아는 그날 밤은 두 사람이 서로 원해서 생긴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성도윤이 자기를 유혹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소영금은 더 체면이 깎이는 것 같아 성도윤을 더 세게 때리며 말했다.“들었어? 저 여자는 너한테 마음도 없었다잖아. 그런데도 저 여자한테 몸을 바치려고 해? 얼른 옷 찾아서 입어!”성도윤의 얼굴은 별다른 표정 없이 덤덤했
임채원을 향한 밑도 끝도 없는 보호는 그녀의 자존심을 짓밟은 거나 다름없었다.그런 남자한테 설렌 감정을 느꼈으니 차설아는 자신이 한심했다.“그럼 두 분 천천히 얘기를 나누세요. 저는 일이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차설아는 이곳에 더 이상 있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바로 사도현의 상황이었다.그녀는 두 걸음 나아가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 성도윤에게 말했다.“도윤 씨, 채원 씨를 숨기려면 잘 숨겨. 만약 나한테 들킨다면 내가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죽은 사람을 다시 사라지게 만드는 건 법에 어긋나지 않으니까.”물론 이건 차설아의 경고뿐이었다. 임채원이 다른 짓을 더 못하게 최선을 다하라는 성도윤을 향한 그녀의 경고였다.하지만 그녀의 이 한마디 경고는 결국 일파만파를 일으키게 되는데...차설아가 떠난 후, 소영금은 겨우 정신을 차렸다.“저 재수탱이 말을 들어보니, 채원이는 아직 안 죽은 거야?”“네.”성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의 얼굴색은 한껏 어두워졌다.그는 아직도 차설아가 한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왜 임채원을 향한 차설아의 원한이 그렇게 깊은지 이해할 수 없었다.“다행이야, 그럼 내 손주도 아직 살아있다는 거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성씨 가문의 아이를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소영금은 입꼬리가 귀에 걸릴 지경이었다. 두 손을 모으면서 하느님께 고마움을 전하고 있었다.성도윤은 그 모습을 보더니 어이가 없었다.“제가 죽지도 않았는데 앞으로 기회도 많을 거잖아요.”“흥, 네가 살아있으면 뭐 해, 여자에게 손도 대지 않으면서. 네가 스님이랑 다를 게 뭐야? 채원이가 재주 좋아서 네 아이를 임신해 그렇지, 네가 채원이한테 마음이라도 있어? 만약 아이를 지켜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아이가 생기긴 힘들 거야...”소영금은 성도윤을 잘 알고 있었다.어려서부터 워낙 차갑고 도도했기에 여자한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그러니 차설아와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했어도 그녀에게 손 한 번 대지 않았던 거고.임채원이 그의 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