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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쓰레기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40 챕터

제11화

‘장례식장?’배서준은 그 단어들을 듣자마자 아무 생각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렸다.‘요즘 사기 전화가 이렇게까지 뻔뻔해졌나? 장례식장 직원인 척까지 하다니, 진짜 끝도 없군! 나은이는 멀쩡한데 장례식장은 무슨 장례식장이야?’하지만 곧바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배나은 보호자님, 장례식장에서 연락 드립니다. 아이의 사망진단서와 화장 절차를 빨리 진행해 주시길 바랍니다.”상대방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배서준이 폭발하기 직전, 전화를 먼저 끊어버렸다.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마지막 인내심을 시험하는 듯했다. 이젠 정말 참을 수 없었다.‘남설아, 그 여자는 진짜 미쳤어!’‘유혹하고 싶어서 뭐든 할 수 있는 건가? 제 딸이 죽었다고까지 거짓말을 하다니, 대체 세상에 어떤 엄마가 그런 짓을 할 수 있지?’“서준아.”바로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보니 아니나 다를까 서유라가 서 있었다.막 분노로 눈이 붉어질 정도였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그 눈빛 속 불길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유라는 배서준의 화난 기색을 단번에 알아챘다. 한숨을 쉬며 다가와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혹시 또 설아 씨가 장난친 거야? 내가 대신 설명해줄까?”“그럴 필요 없어.”배서준은 냉소를 터트렸다.“방금 장례식장에서 전화가 왔어. 나은이가 죽었다고. 당장 와서 절차 밟으래.”그는 핸드폰을 대충 옆으로 던지며 눈빛에 조소를 가득 담았다.‘진짜 별의별 수를 다 쓰는군. 날 유혹하려고, 관심을 끌려고, 이제는 이런 터무니없는 거짓말까지 지어낸다? 심지어 집을 나간 것도 계획적인 연출이라니.’처음엔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보니 사람 취급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었다.“뭐라고?”서유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입을 틀어막았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충격이 가득했다.“설아 씨가 그런 장난을 쳤다고? 너무 심하잖아! 아이가 얼마나 어린데... 어떻게 그렇게 잔인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어?”“서준아, 설아 씨랑 제대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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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서준아, 그래도 설아 씨한테 가서 한 번 봐. 정말로 무슨 일이 난 거면 어쩌려고?”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배서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마치 참고 또 참는 듯한, 억울하지만 인내하는 표정이었다.배서준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게 바로 그녀가 억울해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 말을 듣자 마음속 분노가 더욱 치솟았다.“내가 거기 가는 순간,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거야. 한번 두고 볼 거야. 내가 없으면 그 연극을 어떻게 끝낼 건지.”차갑게 비웃은 뒤 그는 바로 서유라를 끌어안았다.“그 여자도 너처럼 착하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이 말을 들었지만 서유라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고 그저 겉으로만 얌전히 배서준의 가슴에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너무 화내지 마. 어쨌든 설아 씨도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자리를 너무 아끼니까 그래. 조금은 이해해줘야지.”어느새 촉촉해진 눈가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하지만 너희는 이미 이혼했잖아...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는 걸까?”이혼.그 단어가 배서준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얼굴빛이 순간적으로 변하더니 그는 팔을 거두고 한 손으로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서유라는 평소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알고 있었다.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던 남자였다.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이렇게 냉랭한 얼굴을 한 채 침묵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대체 왜 이렇게까지 감정이 흔들리는 거지? 심지어 나조차 모르게 이 감정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 있잖아.’“서준아... 괜찮아?”“별거 아니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순식간에 배서준은 다시 다정한 얼굴로 돌아왔다.속에서 꿈틀대던 모든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말이다.‘그 여자는 사라졌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 아닌가?’이제야 드디어 자유를 찾았는데 기분 좋게 한 끼 정도는 먹으면서 축하해야 마땅했다.‘근데 왜지?’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텅 빈 집을 바라보니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그리고 설명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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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아침에 눈을 떠보니 또다시 눈물로 젖어 있는 베개가 보였다.눈이 퉁퉁 부은 채로 남설아는 힘겹게 침대에서 일어나 핸드폰을 켰다.그동안 너무 힘들어서 바깥세상과 단절하고 싶어 전원을 꺼둔 상태였다. 핸드폰을 켜자마자 문자 알림음이 울렸다.장례식장에서 보내온 절차 진행 요청 문자였다.그제야 기억이 떠올랐다.배나은의 유골은 이미 안치했지만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절차와 서류가 남아 있다는 것을.“그래, 이걸 다 끝내면... 나도 여길 떠날 수 있겠지.”“나은아, 엄마는 네가 너무 보고 싶어.”남설아는 가슴에 걸려 있는 펜던트를 꼭 쥐었다.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그동안 노력했다. 너무 슬퍼하지 않으려 애썼다.마지막 순간까지도 배나은은 엄마가 슬퍼할까 봐 걱정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었다.아이를 생각하는 순간, 배나은을 떠올리는 순간, 참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작고 여린 아이가 그렇게 한 줌의 재가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남설아는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서류에 사인하고 도장을 찍는 모든 과정이 기계적으로 진행됐다.“부모라는 사람들이 너무 무책임하네. 아이의 마지막 가는 길인데 신경 좀 써줄 수도 없나?”“책임질 각오도 안 됐으면 애초에 아이를 낳지 말았어야지. 아빠야 그렇다 쳐도 엄마까지 이러면 어쩌라는 거야?”장례식장 직원이 옆에서 툭툭 내뱉었다.며칠 동안 보호자에게 연락을 시도했지만 전화를 안 받거나 아예 끊어버리기 일쑤였다.심지어 한 번은 한 남자가 전화를 받더니 미친 듯이 화를 내고 막말을 퍼붓기까지 했다.우리 같은 노동자들이 뭘 잘못했나?왜 부모라는 사람들이 아이 일조차 제대로 신경 쓰지 않는 거야?이런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과연 사랑받았을까?어쩌면 평소에도 방치됐던 게 아닐까?그래서 이렇게 어린 나이에 떠난 거 아닐까?여러 비난이 난무했지만 남설아는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대신 한 가지가 마음에 걸렸다.“아이 아빠한테도 연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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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 외의 것들은 더 이상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고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이제 와서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너무 많이 울어서일까 남설아의 눈이 쓰리고 아팠다.장례식장을 나서자 따스한 햇살이 그녀의 온몸을 비췄다.그 순간에서야 그녀는 자신이 여전히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걸 실감했다.하늘을 올려다보았다.햇살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한참을 그렇게 서 있었다.그런데도 결국 눈물이 다시금 흘러내렸다.“나은아, 엄마가 너무 보고 싶어.”“우리 나은이... 내 딸...”가슴에 걸린 펜던트를 두 손으로 꼭 감싸 쥔 채 남설아는 길가에 주저앉아 목 놓아 울었다.아무리 스스로 다짐해도, 아무리 아이가 바라던 대로 살아가야 한다고 다그쳐도, 버틸 수가 없었다.그녀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울다 지쳐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질 즈음에서야 겨우 일어나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그녀가 향한 곳은 오래된 본가였다.고작 20평도 안 되는 작은 집, 이것이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녀에게 남겨준 유일한 유산이었다.배씨 가문 저택의 화장실보다도 작은 공간이지만 여기가 그녀의 집이었다.유일한 ‘집’ 이었다.하지만 가까스로 도착한 집 앞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과 마주쳤다.그녀가 지금 가장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배서준은 이미 반나절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발밑에는 꺼진 담배꽁초들이 흩어져 있었다.그녀가 나타나자 그는 거칠게 걸어와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팔을 움켜잡았다.“너한테 돈을 얼마나 줬는데 내 딸을 이런 데서 살게 해?”“남설아, 대체 이게 엄마란 인간이 할 짓이냐? 너 같은 게 엄마 자격이나 있긴 해?”예전이라면 이런 질책은 두 사람 사이의 일상적인 대화였다.그를 사랑했기에, 남설아는 언제나 참고 또 참았다.하지만 이제는 다 끝났다.아이도 없고 사랑도 없고 남은 것도 없는데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그녀는 그의 손을 세차게 뿌리쳤다.그러고는 퉁퉁 부어오른 눈으로 차갑게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엄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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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남설아는 이제 눈앞의 이 남자를 한 번만 더 바라보는 것도 역겨웠다.더 이상 쳐다보는 것조차 배나은에 대한 모욕이었다.그녀는 배서준이 말없이 서 있는 틈을 타 곧바로 집으로 들어갔다.그리고 문을 있는 힘껏 닫아버렸다.쾅!닫힌 문이 덜컥거렸다.그 짧은 순간 남설아의 시선은 테이블 위로 향했다.거기에는 흑백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배나은의 얼굴이 놓여 있었다.그건 그녀가 5월 5일, 어린이날에 찍어준 사진이었다.그날 배나은은 유치원에서 공연을 했고 좋은 성적을 받아서 무척이나 기뻐했다.그래서 저렇게 활짝 웃었던 것이다.남설아는 일부러 그 사진을 골랐다.딸이 언제나 이렇게 환하게 웃으며 행복하길 바랐으니 말이다.“나은아.”남설아는 문을 등지고 주저앉았다.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울음은 참아지지 않았다.눈물은 계속해서 흘러내렸다.“남설아, 네가 무슨 속셈을 꾸미든 상관없지만 나은이는 내 딸이야! 함부로 욕되게 하지 마!”“그리고 양육권? 장난하지 마. 네가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지 두고 보자. 배건 그룹의 법무팀이 어떤 수준인지 너도 잘 알잖아?”문밖에서는 배서준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분명히 이를 악물고 말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이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빌었을 것이다.하지만 배나은도 이 세상에 없는 마당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양육권? 법정 공방?그 모든 게 허무할 뿐이었다.곧이어 수제 가죽 구두가 시멘트 바닥을 밟으며 멀어져 가는 발소리가 들려왔다.그 불협화음 같은 소리가 남설아의 신경을 긁었다.힘겹게 몸을 일으켰다.배나은이 떠난 후, 그녀는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온 머릿속에는 오직 딸아이의 모습뿐이었다.비틀거리며 소파로 다가가 사진을 조심스럽게 손에 들었다.그러고는 부드럽고도 애틋하게 입을 맞췄다.“나은아, 엄마... 이제 여기서 떠날 거야.”“걱정하지 마. 너랑 한 약속 꼭 지킬게. 엄마 열심히 살 거야. 너를 위해서라도 꼭 그렇게 할 거야.”눈물방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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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뭐라고?”배서준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는 며칠째 배나은을 보지 못했다. 지난번 남설아를 찾아갔을 때도 배나은은 보이지 않았다.그때 장례식장에서 걸려온 전화가 떠올랐다. 괜히 불안해졌다. 분명 남설아의 수작일 텐데도 가슴이 답답했다.“서준아, 너무 조급해하지 마. 설아 씨는 그저 너랑 잠시 감정싸움을 하는 거야. 설마 나은이를 해칠 리가 있겠어?”“근데 나은이를 어디에 데려갔을까? 설아 씨한테 다른 친척이라도 있어?”서유라가 한 걸음 다가와 배서준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부드럽게 위로했다.‘친척?’배서준의 머릿속에 남도일과 그가 버린 비행기 표가 떠올랐다.그 사람은 도박에 미친 사람이었다. 돈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할 인간 말이다.만약 수수가 그의 손에 들어갔다면 그건 정말 위험했다.“지금 당장 공항으로 간다.”배서준은 서유라를 밀쳐내고는 거침없이 밖으로 향했다.어찌 됐든 배나은은 배씨 성을 가진 아이, 배서준의 딸이다. 자기 핏줄이 남에게 짓밟히게 놔둘 수는 없었다.‘그래, 그거야.’공항으로 향하는 순간, 배서준은 이미 자기 자신에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주고 있었다.그 여자가 낳은 아이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자신의 혈통, 배씨 가문의 체면이었다.“서준아, 아파... 발을 삐었어.”서유라는 책상에 몸을 기댄 채 작게 신음 소리를 흘렸다.하지만 이번에 배서준은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그는 발걸음을 더욱 재촉하며 걸어 나갔다.처음이었다.배서준이 처음으로 다른 사람을 위해 서유라의 감정을 무시한 순간이 말이다.이전까지는 손가락 하나만 긁혀도 가슴 아파하며 안아 주고 한참을 달래 주던 사람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그 천한 여자가 낳은 천한 아이 때문에 날 밀쳐내고 단 한 번도 뒤돌아보지 않은 채 떠나간다고?’서유라의 가슴속에 전례 없는 위기감이 스며들었다.어금니를 꽉 물고 그녀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옆에서 지켜보던 비서는 싸늘한 소름이 돋았지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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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서준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서유라가 황급히 달려와 배서준 앞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그의 행동을 다소 비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아무리 그래도 설아 씨도 여자인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그녀는 몸을 돌려 바닥에 쓰러진 남설아를 부축하려고 허리를 숙였다.배나은이 죽기 전에 바란 건 그저 아빠와 며칠만이라도 함께 지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서유라는 끝까지 배서준을 독차지했다. 심지어 배나은이 병원에 입원해 있던 밤에도 배서준을 끌고 가 기념일을 보냈다.하여 남설아는 서유라를 볼 때마다 수수가 느꼈을 슬픔과 억울함이 떠올랐다.그리고 배나은이 떠나던 그날 밤, 단 한 사람을 위해 터졌던 1억 2000만 원어치의 불꽃놀이가 떠올랐다.“건드리지 마!”“더러우니까.”남설아는 서유라의 손을 거칠게 뿌리쳤다. 그러고는 온몸의 힘을 다해 일어서며 싸늘한 시선으로 그녀를 내려다봤다.그 눈빛은 마치 쓰레기를 바라보는 듯했다.예전엔 서유라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모든 책임은 오로지 배서준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설득할 수 없었다.만약 서유라가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었다면 어째서 수차례 배서준을 배나은의 곁에서 데려갔던 걸까?“아야.”서유라는 그녀가 뿌리친 힘을 따라 일부러 바닥으로 넘어지며 아픈 듯 신음 소리를 냈다.눈가는 단숨에 붉어졌고 애써 참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또 그 뻔한 연극이었던 것이다.남설아는 이를 몇 년을 지켜보며 질릴 대로 질렸다. 하지만 지겹지도 않은지 서유라는 여전히 같은 연기를 하고 있었다.그리고 배서준은 그 연기에 늘 속아 넘어갔다.그는 차가운 눈으로 남설아를 노려보다가 몸을 숙여 서유라를 부축했다. 그런데 서유라를 바라보는 눈빛이 달랐다.조금 전까지 얼음처럼 차가웠던 시선이 단숨에 사르르 녹아내린 것이다.“괜찮아?”이런 온기와 인내를 남설아와 배나은은 단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었다.그 순간 남설아는 깨달았다.자신이 몇 년을 사랑했던 것도, 배나은이 그토록 애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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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어떤 일이 있어도 절대 자신의 딸이 이런 여자와 계속 함께 살게 놔두지 않을 것이리라 배서준은 마음먹었다.“나은이 죽었어요!”“죽었다고요! 당신이 이 여자랑 알콩달콩하고 있을 때, 도시 전체에 불꽃놀이를 터뜨려줄 때, 우리의 나은이, 당신 친딸은... 수술비가 없어서 죽었다고요! 당신 딸이 죽었다고요!”남설아는 거칠게 몸부림쳤다.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한 마디 한 마디가 배서준을 향한 날카로운 비난이었다.절망이자 분노였다.그리고 한 어머니의 한없는 무력감이 담긴 소리였다.온 힘을 다해 배서준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는 바닥에 흩어진 사진을 줍기 위해 몸을 숙였다.그 순간 깨진 유리 조각이 손바닥을 깊숙이 파고들어 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그러나 남설아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대충 옷에 피를 닦아내고 꾸깃꾸깃한 사진을 조심스럽게 두 손으로 감싸 안았다.사진 위의 먼지를 닦고 또 닦았다.“너...”배서준의 가슴은 한순간 철렁 내려앉았다.뭔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설아 씨, 설아 씨가 서준이 오래 짝사랑해온 건 알아. 그리고 서준이가 설아 씨를 좋아해 주길 바랐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이건 아니지 않나? 설아 씨도 엄마라면서 어떻게 자기 아이를 저주할 수 있어? 나은이가 이걸 알면 얼마나 상처받겠어?”서유라가 다가와 부드럽게 설득하더니 한숨을 쉬며 조용히 남설아 앞에 무릎을 꿇었다.“서준이가 나를 좀 더 챙기는 건 맞지만 난 정말 설아 씨 가정을 망치고 싶은 생각 없어. 나도 나은이가 건강한 가정에서 자랐으면 좋겠어. 설아 씨가 날 오해하고 있는 거야.”남설아는 무릎을 꿇은 채 손에 꼭 쥔 사진을 가슴에 끌어안았다.죽은 후까지도 배나은에게서 아빠를 빼앗아 간 여자가 이렇게 뻔뻔하게 굴다니.그런데도 서유라는 계속 그녀를 자극했다.“그러니 제발 나은이 데려와. 내가 서준이 잘 설득할게. 설아 씨가 나은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줄게. 나도...”“닥쳐, 당장 닥치라고!”마침내 무너진 남설아는 두 손으로 서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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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이전에 몸부림친 탓에 이미 기력이 바닥난 상태였다.아무리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도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결국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조태훈에게 질질 끌려 남설아는 차 안으로 던져졌다.온몸이 축 늘어졌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구겨진 사진 한 장이 꼭 쥐어져 있었다.‘나은아, 우리 불쌍한 아가...’이 세상에 머물렀던 짧은 시간 동안 아이는 아빠인 배서준에게 단 한 번의 사랑도 받지 못했다.단 한 번 안겨 본 적조차 없었다.‘이제는 죽어서조차 저 사람들에게 조롱당해야 한다니... 대체 누가 부모가 될 자격이 없는 거지?’병원.“서준아, 난 정말 괜찮아. 그냥 살짝 긁힌 거야. 그러니까 얼른 집에 가. 설아 씨 상태가 좀 불안정한 것 같아서... 나은이가 걱정돼.”“어른이 잘못했다고 아이까지 벌 받아야 해? 나은이 네 아이잖아.”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숙인 뒤 어딘가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속으로는 배서준이 다른 여자와 아이까지 뒀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었다.‘남설아 따위가 대체 무슨 자격으로?’그러나 그런 감정을 겉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고 배서준 앞에서는 그저 속상한 척, 착한 척해야 했다.“아이를 되찾아 올 거야.”배서준은 무표정하게, 그러나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 속은 결코 담담하지 않았다.뭔가가 가슴 한쪽에서 둔탁하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특히 떠나기 직전 남설아의 충혈된 눈동자가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그 감정이 그를 더욱 짜증스럽게 만들었다.배서준이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여자가 바로 그런 여자들이었다.교활하고 약한 척하며 동정심을 유발하는 여자들 말이다.남설아가 다친 것도 스스로 자초한 일이라 생각했다.“서준아?”배서준이 생각에 잠긴 걸 알아챈 서유라는 일부러 목소리를 키웠다.‘예전엔 안 이랬는데... 대체 뭐가 달라진 거지?’“난 괜찮아. 아직도 아파?”배서준이 시선을 돌려 서유라를 바라봤다.“네 손은 늘 부드러웠잖아. 게다가 너는 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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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변해버린 남설아의 모습을 보며 배서준의 가슴은 답답하게 조여왔다.“설아 씨, 그렇게 말하지 마. 나랑 서준이는 설아 씨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서유라가 눈가를 붉히며 본능적으로 배서준의 등 뒤로 숨었다.“우린... 우린 더럽지 않아.”“나와 유라는 원래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어. 네가 억지로 아이를 낳아 나를 붙잡아 두려 한 거지. 그런데 지금은 뭐야? 배씨 가문 사모님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엄마로서의 역할도 망각했어.”“나은이가 어디 있는지 당장 말해. 내 화 돋우지 말고.”배서준은 차갑게 말했다.그의 몸이 서유라 앞을 완전히 가려주고 있었다.마치 그녀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온몸으로 보호하는 듯한 자세였는데 그건 절대 거짓으로 나올 수 없는 반응이었다.남설아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배서준이 정말로 서유라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그리고 자신은 단 한 번도 그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것도.그렇기 때문에 배나은도 아무 죄 없이 희생당한 것이었다.“그 애는 죽었어요.”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했다.한 번 더, 똑같은 현실을 다시 입 밖에 냈다.배나은은 죽었고 더 이상 돌아올 수 없었다.“서준 씨, 나은이는 죽었어요. 그리고 우리도 이혼했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뒤이어 그녀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섰다.무릎의 상처가 날카롭게 쑤셨다.하지만 그 고통조차 가슴속 쓰라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배나은은 떠났다.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했던 이 남자도 이제는 필요 없었다.이제 남설아가 바라는 건 단 하나, 배나은을 데리고 이 불행한 곳을 떠나 조용히 사는 것이었다.“너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야?”결국 폭발한 배서준은 단숨에 다가와 남설아의 턱을 거칠게 움켜쥐었다.금방이라도 으스러질 듯한 강한 힘이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남설아, 내 인내심을 시험하지 마. 나은이 내놔.”“죽었다고요.”남설아는 무표정한 얼굴로 반복했다. 심지어 눈빛엔 비웃음과 경멸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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