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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Author: 목련청
“서준아, 그래도 설아 씨한테 가서 한 번 봐. 정말로 무슨 일이 난 거면 어쩌려고?”

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배서준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마치 참고 또 참는 듯한, 억울하지만 인내하는 표정이었다.

배서준이 가장 견디지 못하는 게 바로 그녀가 억울해하는 모습이었다. 때문에 지금 이 말을 듣자 마음속 분노가 더욱 치솟았다.

“내가 거기 가는 순간,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거야. 한번 두고 볼 거야. 내가 없으면 그 연극을 어떻게 끝낼 건지.”

차갑게 비웃은 뒤 그는 바로 서유라를 끌어안았다.

“그 여자도 너처럼 착하기만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 말을 들었지만 서유라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고 그저 겉으로만 얌전히 배서준의 가슴에 기대고 있을 뿐이었다.

“너무 화내지 마. 어쨌든 설아 씨도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자리를 너무 아끼니까 그래. 조금은 이해해줘야지.”

어느새 촉촉해진 눈가로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하지만 너희는 이미 이혼했잖아... 대체 언제까지 이러려는 걸까?”

이혼.

그 단어가 배서준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얼굴빛이 순간적으로 변하더니 그는 팔을 거두고 한 손으로 셔츠 단추 두 개를 풀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서유라는 평소 그가 자신에게 얼마나 다정한지 알고 있었다. 원하는 건 뭐든 들어주던 남자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이렇게 냉랭한 얼굴을 한 채 침묵하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감정이 흔들리는 거지? 심지어 나조차 모르게 이 감정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 있잖아.’

“서준아... 괜찮아?”

“별거 아니야.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순식간에 배서준은 다시 다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속에서 꿈틀대던 모든 감정을 애써 억누른 채 말이다.

‘그 여자는 사라졌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 아닌가?’

이제야 드디어 자유를 찾았는데 기분 좋게 한 끼 정도는 먹으면서 축하해야 마땅했다.

‘근데 왜지?’

현관을 나서려는 순간, 텅 빈 집을 바라보니 마음 한구석에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설명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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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설아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바로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이 각도에서 보면 사실 강연찬의 얼굴은 배서준과 거의 똑같았다. 예전에 배서준을 처음 봤을 때, 첫눈에 바로 빠져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닮은 그 얼굴에 그 누가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그녀의 손길을 느낀 강연찬은 천천히 걷고 있던 발걸음을 더 조심스럽게 옮겼다.“아파?”“네, 아파요.”남설아는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그녀의 등은 불타오르는 것처럼 아팠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가슴 한가운데였다.그러더니 갑자기 강연찬의 품속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저 이 소중하고도 드물게 찾아온 평온을 잠시나마 느끼고 싶었다.한편, 천기준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자기가 어찌해야 할지 잠시 판단이 서지 않았다.조금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 앉아 배서준이 시킨 도시락을 하나하나 씹어먹었다. 그리고 다 먹은 뒤 천천히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오전 내내, 배서준은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다. 서유라와 점심을 먹는 중에도 음식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유라는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 그의 변화를 바로 눈치챘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서준아, 무슨 일이야? 혹시 프로젝트 때문에 그래?”“아니.”배서준은 시선을 옮기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의 차가운 반응에 서유라는 씁쓸했다.요즘 들어 배서준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투가 항상 이렇게 냉담하고 무심했다. 이런 변화는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서유라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작게 말했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괜히 입을 놀린 바람에 네가 설아 씨랑 싸우게 됐잖아. 설아 씨 지금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준아, 이번에는 네가 좀 심했어. 한 번쯤은 보러 가야 해.”배서준은

  • 굿바이 쓰레기   제204화

    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이 일로 화내는 거라면 그럴 가치 없어요. 이런 상황은 예전부터 익숙해졌어요.”바로 그런 익숙함이 강연찬을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많이 힘들었겠다.”“이미 지난 일이에요.”남설아는 그의 손을 살짝 피하며 웃어 보였다.예전의 남설아가 고통스러웠던 건 배서준을 좋아했던 것도 있고 사랑하는 나은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은이도 세상에 없고 배서준에 대한 감정도 이미 바닥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이제부터 고통받을 사람은 썩어빠진 그들뿐일 것이다.그렇게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남설아를 보며 강연찬은 마음이 아파하며 말했다.“그럼 푹 쉬어. 나 먼저 갈게.”“잠시만요. 이따가 나랑 같이 가요. 남도일 씨 보러 가고 싶어요.”남설아는 서둘러 밥을 마저 먹고 반짝이는 눈으로 강연찬을 바라보았다. 원래 가려고 했던 일이었지만 이것저것 겹쳐 미뤄졌던 참이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조용히 다녀오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것이다.강연찬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돼. 너 지금 몸 상태로는 함부로 나돌면 안 돼. 의사도 분명히 말했잖아. 침대에서 내려오면 안 된다고.”“좀 통증이 느껴지는 것뿐이에요.”남설아는 덤덤하게 웃었다.“피부에 난 상처일 뿐이잖아요. 죽을병 아니잖아요.”이젠 남설아도 더는 예전의 연약한 소녀가 아니었다. 죽지 않을 고통은 그냥 견디면 그만이었다.“남 팀장님은 나중에 가는 게 어때요?”천기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남설아의 태도는 단호했다.“내 성격 알잖아요. 지금 데리고 가든지, 아니면 나 혼자 몰래 가든지 둘 중 하나야.”천기준은 이렇게 고집 센 남설아는 처음이었다.그는 배서준 곁에서 오래 일하면서 남설아를 그저 감정 없는 완벽한 로봇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한 번도 그녀에게서 이렇게 뚜렷한 개성과 고집을 느낀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남설아는 완

  • 굿바이 쓰레기   제203화

    이런 감정은 남설아에게도 처음이었다. 이 순간 강연찬이 자신을 구원하러 온 천사 같았다.그런 남설아의 철없는 듯하면서도 현실적인 모습에 강연찬은 잠시 어이가 없었다.“겨우 밥 좀 먹는다고 이럴 일인가?”“지금 나한테는 이게 최고예요.”남설아는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들고 한입 가득 밥을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병원 식당의 밥과는 차원이 달랐다.강연찬이 준비해온 병원식은 빛깔도 맛도 훨씬 좋았다. 남설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오빠, 이거 어디서 포장한 거예요? 너무 맛있어요.”“어느 가게에서 음식을 이렇게 담백하겠어? 내가 직접 만든 거야.”강연찬은 웃으며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음식을 가득 넣어 볼록한 남설아의 볼을 바라보는 강연찬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너도 알다시피 난 유학을 하러 갔었잖아. 요리 실력 없었으면 유학 생활하기 힘들지.”그 말을 듣고 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밥을 먹었다. 사실 강연찬이 직접 만들어 준 요리를 먹는 건 처음이었다. 역시나 맛있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들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오빠 이 정도 요리 실력이면 유학하면서 인기 많았겠네요.”“내 요리 실력, 너도 만족해?”강연찬이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남설아는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완전 만족이요.”그때, 천기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안에서 즐겁게 웃으며 식사 중인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이 들고 온 도시락이 괜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문을 두드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와 남설아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이 음식 배달시키셨어요.”그러고는 들고 온 도시락을 책상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남설아의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지금 제가 여기 오는 게 좀 아닌 것 같다는 거 저도 알아요. 근데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그냥 월급을 받고 일하는 처지라서요.”요즘같이 험난한 취업 시장에서 천기준은 이 일자리 하나가 너무나 간절했다. 그렇게 눈치 보며 서 있는 천기준을 보자 남설아

  • 굿바이 쓰레기   제202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저도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남설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부부 관계라는 게 원래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잖아요. 하물며 우리 같은 관계는 더더욱 복잡하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절대 헛되게 고통받진 않을 거예요.”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분명히 반격 같은 건 하지도 못하고 묵묵히 참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남설아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절대 배서준에게 당하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이 말을 들은 한원준은 남설아가 강한 척을 한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쨌든 두 분 부부 사이의 일이니까 제가 뭐라고 더 말하기는 어렵네요. 그래도 팀장님이 자신은 꼭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 더는 다치지 않도록 말이에요.”한원준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처음엔 배서준처럼 번듯한 사람이 아내를 때리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막상 일이 벌어지고 보니 충격이 컸다.“원준 씨, 고마워요. 근데 정말 괜찮아요. 일주일 있으면 퇴원할 수 있대요.”남설아는 옆에 두었던 USB를 들어 한원준에게 건넸다.“돌아가면 팀원들 좀 혼내줘요. 계산이 이게 뭐예요? 여기 안에 있는 오류는 전부 표시해놨어요. 이걸 또 틀리면 진짜 제대로 혼낼 테니까 각오하라고 하세요.”남설아는 말을 하다 보니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이 정도 기본적인 계산도 제대로 못 한다니, 제대로 혼을 내야 정신을 차리려나 싶었다.그렇게 열정 넘치는 남설아의 모습을 보며 한원준은 비로소 안도했다. 그는 남설아가 정말 괜찮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웃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팀장님의 말씀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이래야 남설아다운 모습이었다.“자, 주말인데 좀 쉬어요. 그리고 원준 씨도 계산이 두 개 틀렸더라고요. 돌아가서 다시 해봐요.”남설아는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한원준을 쏘아봤다.역시 남설아는 일 얘기만 나오면 정말 무서웠다.그런 남설아를 뒤로하고 한원준은 몇 마디 더 안부를 건넨 후, 아쉬운 듯 여러

  • 굿바이 쓰레기   제201화

    강연찬은 그 눈빛을 마주하자 도무지 거절하는 말을 할 수 없어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 약속할게.”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곧이어 참기 힘든 고통 때문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남설아가 쓰러진 모습을 바라보며 강연찬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고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배서준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강연찬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조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리 계획을 서둘러야겠어요.”“너무 빨라요.”조성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연찬 씨, 우리는 기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전공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뭔 줄 잘 알 거 아니에요. 냉정함이 제일 중요해요.”강연찬은 벽에 기대어 선 채 유리창 너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남설아를 바라봤다.그는 평소엔 결코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설아와 관련된 일이면 자꾸만 감정이 앞섰다.다행히도 조성우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사람이었고 그의 그런 태도가 강연찬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강연찬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이를 악문 채 말했다.“배건 그룹, 반드시 하나도 남기지 않고 통째로 삼켜버릴 겁니다.”“그렇게 될 거예요. 다만 지금은 조금 더 인내가 필요해요.”조성우는 여전히 침착했다.“저도 연훈 그룹을 모조리 삼켜버릴 거예요. 같은 생각입니다.”둘이 손을 잡게 된 건 단지 예전에 함께 연수받았던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더 견고했다.“근데 성우 씨 너무 태평한 거 아니에요?”강연찬은 살짝 불만을 내비쳤다. 자신은 속이 다 타들어 가는데, 왜 조성우는 저렇게 여유로운 건가 싶었다.조성우는 손에 든 만년필을 굴리며 무심하게 말했다.“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일에 얽혀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급할 이유가 없잖아요.”“성우 씨!”강연찬은 분통이 터졌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됐어요. 그쪽이랑은 말이 안 통해요.”전화를 끊은 뒤, 강연찬은

  • 굿바이 쓰레기   제200화

    “꺼져!”남설아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비명을 질렀다.배서준이 자기 딸을 ‘불량품’이라고 말한 걸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가 배나은을, 자기 딸을 하나의 ‘제품’처럼 여기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미치게 했다.배서준은 뭔가 더 말하려다 남설아의 등에서 피가 번져 나오는 걸 보게 됐다.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졌는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머뭇거리며 손을 뻗어 남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이건 내 잘못이 아니란 걸.”그 말을 끝으로 그는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가버렸다.“이 개자식아!”남설아는 비명을 지르며 병실 안의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 던졌다.그 소리에 배서준의 발걸음이 문밖에서 잠시 멈췄고 얼굴엔 불쾌한 기색이 짙게 드리워졌다.그는 이내 찡그린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진짜, 말이 안 통하는 여자야.”배서준에게 있어 세상에서 중요한 건 오직 ‘자신’뿐이었다.다른 사람은 그저 배경일 뿐이었고 심지어 딸이라는 존재조차도 그러했다.게다가 배나은은 애초에 자신이 원해서 생긴 아이도 아니었다.잠시 후, 강연찬이 도시락을 들고 병실에 들어섰다.그러나 안에 펼쳐진 풍경에 눈이 휘둥그레졌다.병실은 난장판이었고 남설아는 방 한쪽 구석에 웅크린 채 몸을 잔뜩 말고 있었다.강연찬은 놀란 마음을 부여잡고 도시락을 내려두고는 서둘러 그녀에게 달려갔다.“설아야, 괜찮아?”그녀를 조심스럽게 일으키려던 순간 강연찬의 손에 뭔가 축축한 게 느껴졌다.내려다본 그는 그대로 얼어붙었다.피였다.“설아야, 너... 왜 그래?”강연찬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급히 방의 조명을 켜자 남설아의 등에 피가 번지고 있는 게 보였다.“괜찮아. 그냥 상처가 조금 벌어진 거야.”남설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눈빛엔 깊은 절망이 담겨 있었다.강연찬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멍하니 있는 사이, 남설아는 갑자기 그를 꼭 끌어안았다.그리고 흐느끼며 말했다.“그 사람... 나은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 죄책감조차 없어. 그 사람

  • 굿바이 쓰레기   제199화

    남설아는 눈앞에 서 있는 배서준을 멍하니 바라봤다.지금 왜 저렇게 어정쩡하게 굴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흉터 안 남게, 제일 좋은 의사 붙여줄게.”마침내 배서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하지만 그 말을 들은 순간 남설아는 비웃음만 나왔고 차갑게 말했다.“그 얘기하려고 미안하단 말 꺼낸 거면 정말 안 해도 돼요.”“너... 도대체 뭘 원하는 거야?”배서준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남설아를 바라봤다.예전의 뭐든 순순히 따르던 여자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알 수 없었다.왜 지금의 남설아는 온몸에 가시만 가득한 사람처럼 변해버린 걸까?남설아를 바라보던 배서준의 눈에 불현듯 옛날 모습이 떠올랐다.오로지 자신만을 바라보던 그 순한 눈동자도 지금은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그냥 할아버지가 준 유산 챙겨서 이혼하고 너랑 끝내고 싶을 뿐이에요. 멀리멀리 떠나고 싶은데 그 말 못 알아들어요?”남설아는 조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쏘아붙였다.사실 처음부터 그녀가 원하는 건 명확했다.문제는 배서준이 그걸 내놓기 싫어했던 것뿐이었다.그 말에 배서준은 차갑게 받아쳤다.“그건 절대 불가능하다는 거 너도 잘 알잖아. 돈은 줄게. 딸 잃은 거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해. 그 정도면 됐지?”“너...!”남설아는 그 말이 믿기지 않았다.이 남자가 이렇게까지 악랄할 줄은 몰랐다.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남설아는 배서준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그러고는 이를 악물고 쏘아붙였다.“지금 그게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이에요? 내 딸? 나은이는 그럼 당신한텐 딸도 아니에요? 당신 같은 인간은... 짐승보다도 못해요!”“내 딸을 죽인 게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 같은 인간이 무슨 아빠예요? 자격도 없어요! 아빠 자격도, 사람 자격도 없다고요!”남설아는 눈물과 콧물이 뒤섞인 얼굴로 소리쳤다.감정을 완전히 터뜨린 것이다.사실 이런 말을 그녀는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다.하지만 꾹꾹 눌러 참아왔고 꺼낼 기회조차 없었다.그런데 오늘 배서준의 말은 그 모든 인내를

  • 굿바이 쓰레기   제198화

    “설아 씨, 주원 그룹은 우리 경쟁사야. 그런 경쟁사 사람이랑 이렇게 가까이 지내는 건 아무래도 좀 곤란하지 않을까?”서유라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면서도 마치 다 남설아를 위해서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런 서유라의 모습에 남설아는 씁쓸하게 웃고는 강연찬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그럼 유라 씨는 내 남편이랑 그렇게 가까이 지내는 거 괜찮다고 생각해?”‘남편’이라는 단어에 강연찬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남설아를 바라봤다.눈빛엔 분명한 서운함이 스쳤다.남설아는 그 눈빛을 보며 장난스럽게 윙크를 한번 해 보였다.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강 대표님, 저런 여자 하나 붙잡고 노는 게 재밌어요?”배서준은 냉소를 띤 채 강연찬을 노려보다가 곧 남설아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날을 세운 말투로 쏘아붙였다.“설마 진짜로 강 대표님이 너한테 관심 있는 줄 아는 거야? 네가 나 배서준의 아내가 아니었으면 강 대표님이 너한테 눈길이나 줬을 것 같아?”“설아가 당신 아내 되기도 전에 난 매일 설아를 봤어요. 아무리 봐도 모자랄 만큼.”강연찬은 망설임 없이 즉시 받아쳤다.애초에 남설아를 먼저 알게 된 건 자기였고 그저 유학을 떠나면서 기회를 놓친 것뿐이다.귀한 사람 데려다 놓고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상처만 주는 배서준 같은 인간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지금부터 내 아내랑 이야기 좀 하려고요. 나가요.”배서준은 문을 열고 노골적으로 쫓아냈다.차가운 기운이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듯 무서울 정도였다.하지만 강연찬은 그런 분위기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오히려 배서준 앞에서 태연하게 남설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나 먼저 갈게. 맛있는 거 해 올게, 이따가 다시 올게.”“고마워, 선배.”남설아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듯한 목소리였다.그 둘 사이의 자연스럽고도 다정한 분위기를 보며 배서준은 속이 뒤틀릴 만큼 질투심이 솟구쳤다.강연찬은 마지막으로 배서준을 향해 손을 한 번 들어 인사했다.“배 대표님, 그럼 아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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