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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굿바이 쓰레기: Chapter 201 - Chapter 210

218 Chapters

제201화

강연찬은 그 눈빛을 마주하자 도무지 거절하는 말을 할 수 없어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 약속할게.”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곧이어 참기 힘든 고통 때문에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남설아가 쓰러진 모습을 바라보며 강연찬의 얼굴은 순식간에 굳었고 분노로 일그러졌다. 그는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악물었다. 배서준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강연찬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조성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리 계획을 서둘러야겠어요.”“너무 빨라요.”조성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연찬 씨, 우리는 기술을 전공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이 전공을 하면서 제일 중요한 덕목이 뭔 줄 잘 알 거 아니에요. 냉정함이 제일 중요해요.”강연찬은 벽에 기대어 선 채 유리창 너머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남설아를 바라봤다.그는 평소엔 결코 충동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남설아와 관련된 일이면 자꾸만 감정이 앞섰다.다행히도 조성우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침착한 사람이었고 그의 그런 태도가 강연찬에게도 영향을 주었다.강연찬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이를 악문 채 말했다.“배건 그룹, 반드시 하나도 남기지 않고 통째로 삼켜버릴 겁니다.”“그렇게 될 거예요. 다만 지금은 조금 더 인내가 필요해요.”조성우는 여전히 침착했다.“저도 연훈 그룹을 모조리 삼켜버릴 거예요. 같은 생각입니다.”둘이 손을 잡게 된 건 단지 예전에 함께 연수받았던 인연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기에 그들의 관계는 더 견고했다.“근데 성우 씨 너무 태평한 거 아니에요?”강연찬은 살짝 불만을 내비쳤다. 자신은 속이 다 타들어 가는데, 왜 조성우는 저렇게 여유로운 건가 싶었다.조성우는 손에 든 만년필을 굴리며 무심하게 말했다.“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이 일에 얽혀 있는 것도 아닌데 제가 급할 이유가 없잖아요.”“성우 씨!”강연찬은 분통이 터졌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됐어요. 그쪽이랑은 말이 안 통해요.”전화를 끊은 뒤, 강연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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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저도 생각하는 바가 있습니다.”남설아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부부 관계라는 게 원래 그렇게 단순한 게 아니잖아요. 하물며 우리 같은 관계는 더더욱 복잡하죠.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절대 헛되게 고통받진 않을 거예요.”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분명히 반격 같은 건 하지도 못하고 묵묵히 참기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젠 남설아도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절대 배서준에게 당하고만 있진 않을 것이다.이 말을 들은 한원준은 남설아가 강한 척을 한다고 생각하고 어쩔 수 없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어쨌든 두 분 부부 사이의 일이니까 제가 뭐라고 더 말하기는 어렵네요. 그래도 팀장님이 자신은 꼭 잘 지켰으면 좋겠어요. 더는 다치지 않도록 말이에요.”한원준은 걱정 가득한 눈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처음엔 배서준처럼 번듯한 사람이 아내를 때리리라곤 상상도 못 했는데 막상 일이 벌어지고 보니 충격이 컸다.“원준 씨, 고마워요. 근데 정말 괜찮아요. 일주일 있으면 퇴원할 수 있대요.”남설아는 옆에 두었던 USB를 들어 한원준에게 건넸다.“돌아가면 팀원들 좀 혼내줘요. 계산이 이게 뭐예요? 여기 안에 있는 오류는 전부 표시해놨어요. 이걸 또 틀리면 진짜 제대로 혼낼 테니까 각오하라고 하세요.”남설아는 말을 하다 보니 점점 더 화가 치밀었다.이 정도 기본적인 계산도 제대로 못 한다니, 제대로 혼을 내야 정신을 차리려나 싶었다.그렇게 열정 넘치는 남설아의 모습을 보며 한원준은 비로소 안도했다. 그는 남설아가 정말 괜찮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웃으며 말했다.“알겠습니다. 팀장님의 말씀 확실히 전달하겠습니다.”이래야 남설아다운 모습이었다.“자, 주말인데 좀 쉬어요. 그리고 원준 씨도 계산이 두 개 틀렸더라고요. 돌아가서 다시 해봐요.”남설아는 무섭게 눈을 부라리며 한원준을 쏘아봤다.역시 남설아는 일 얘기만 나오면 정말 무서웠다.그런 남설아를 뒤로하고 한원준은 몇 마디 더 안부를 건넨 후, 아쉬운 듯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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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이런 감정은 남설아에게도 처음이었다. 이 순간 강연찬이 자신을 구원하러 온 천사 같았다.그런 남설아의 철없는 듯하면서도 현실적인 모습에 강연찬은 잠시 어이가 없었다.“겨우 밥 좀 먹는다고 이럴 일인가?”“지금 나한테는 이게 최고예요.”남설아는 망설임 없이 젓가락을 들고 한입 가득 밥을 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병원 식당의 밥과는 차원이 달랐다.강연찬이 준비해온 병원식은 빛깔도 맛도 훨씬 좋았다. 남설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오빠, 이거 어디서 포장한 거예요? 너무 맛있어요.”“어느 가게에서 음식을 이렇게 담백하겠어? 내가 직접 만든 거야.”강연찬은 웃으며 그녀 맞은편에 앉았다. 음식을 가득 넣어 볼록한 남설아의 볼을 바라보는 강연찬의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너도 알다시피 난 유학을 하러 갔었잖아. 요리 실력 없었으면 유학 생활하기 힘들지.”그 말을 듣고 남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밥을 먹었다. 사실 강연찬이 직접 만들어 준 요리를 먹는 건 처음이었다. 역시나 맛있었다.남설아는 고개를 들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오빠 이 정도 요리 실력이면 유학하면서 인기 많았겠네요.”“내 요리 실력, 너도 만족해?”강연찬이 장난스럽게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남설아는 진지하게 생각하더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완전 만족이요.”그때, 천기준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안에서 즐겁게 웃으며 식사 중인 두 사람을 바라보며 자신이 들고 온 도시락이 괜히 부담스럽게 느껴졌다.잠시 망설이던 그는 결국 문을 두드리고 병실 안으로 들어와 남설아에게 머쓱하게 웃으며 말했다.“대표님이 음식 배달시키셨어요.”그러고는 들고 온 도시락을 책상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남설아의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지금 제가 여기 오는 게 좀 아닌 것 같다는 거 저도 알아요. 근데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그냥 월급을 받고 일하는 처지라서요.”요즘같이 험난한 취업 시장에서 천기준은 이 일자리 하나가 너무나 간절했다. 그렇게 눈치 보며 서 있는 천기준을 보자 남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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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이 일로 화내는 거라면 그럴 가치 없어요. 이런 상황은 예전부터 익숙해졌어요.”바로 그런 익숙함이 강연찬을 더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는 무심코 손을 내밀어 그녀의 뺨을 살며시 쓰다듬었다.“많이 힘들었겠다.”“이미 지난 일이에요.”남설아는 그의 손을 살짝 피하며 웃어 보였다.예전의 남설아가 고통스러웠던 건 배서준을 좋아했던 것도 있고 사랑하는 나은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은이도 세상에 없고 배서준에 대한 감정도 이미 바닥나 있었다. 그래서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이제부터 고통받을 사람은 썩어빠진 그들뿐일 것이다.그렇게 억지로 괜찮은 척하는 남설아를 보며 강연찬은 마음이 아파하며 말했다.“그럼 푹 쉬어. 나 먼저 갈게.”“잠시만요. 이따가 나랑 같이 가요. 남도일 씨 보러 가고 싶어요.”남설아는 서둘러 밥을 마저 먹고 반짝이는 눈으로 강연찬을 바라보았다. 원래 가려고 했던 일이었지만 이것저것 겹쳐 미뤄졌던 참이었다. 오히려 지금이야말로 조용히 다녀오기 좋은 타이밍이라고 판단한 것이다.강연찬은 그 말을 듣자마자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안 돼. 너 지금 몸 상태로는 함부로 나돌면 안 돼. 의사도 분명히 말했잖아. 침대에서 내려오면 안 된다고.”“좀 통증이 느껴지는 것뿐이에요.”남설아는 덤덤하게 웃었다.“피부에 난 상처일 뿐이잖아요. 죽을병 아니잖아요.”이젠 남설아도 더는 예전의 연약한 소녀가 아니었다. 죽지 않을 고통은 그냥 견디면 그만이었다.“남 팀장님은 나중에 가는 게 어때요?”천기준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 하지만 남설아의 태도는 단호했다.“내 성격 알잖아요. 지금 데리고 가든지, 아니면 나 혼자 몰래 가든지 둘 중 하나야.”천기준은 이렇게 고집 센 남설아는 처음이었다.그는 배서준 곁에서 오래 일하면서 남설아를 그저 감정 없는 완벽한 로봇처럼 생각하고 있었고 한 번도 그녀에게서 이렇게 뚜렷한 개성과 고집을 느낀 적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남설아는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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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남설아는 한참을 바라보다가 눈가가 살짝 붉어졌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바로 눈앞에 있는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만져보았다.이 각도에서 보면 사실 강연찬의 얼굴은 배서준과 거의 똑같았다. 예전에 배서준을 처음 봤을 때, 첫눈에 바로 빠져들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닮은 그 얼굴에 그 누가 빠져들지 않을 수 있을까?그녀의 손길을 느낀 강연찬은 천천히 걷고 있던 발걸음을 더 조심스럽게 옮겼다.“아파?”“네, 아파요.”남설아는 솔직하게 말했다. 지금 그녀의 등은 불타오르는 것처럼 아팠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가슴 한가운데였다.그러더니 갑자기 강연찬의 품속으로 얼굴을 파묻으며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 순간만큼은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그저 이 소중하고도 드물게 찾아온 평온을 잠시나마 느끼고 싶었다.한편, 천기준은 그 자리에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 상황에서 자기가 어찌해야 할지 잠시 판단이 서지 않았다.조금 고민하다가 결국 자리에 앉아 배서준이 시킨 도시락을 하나하나 씹어먹었다. 그리고 다 먹은 뒤 천천히 회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오전 내내, 배서준은 정신이 딴 데 팔려있었다. 서유라와 점심을 먹는 중에도 음식 맛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았다. 서유라는 예민한 성격이라 그런 그의 변화를 바로 눈치챘다. 그녀는 얼굴을 살짝 찡그리고 걱정스럽게 물었다.“서준아, 무슨 일이야? 혹시 프로젝트 때문에 그래?”“아니.”배서준은 시선을 옮기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의 차가운 반응에 서유라는 씁쓸했다.요즘 들어 배서준이 자신에게 건네는 말투가 항상 이렇게 냉담하고 무심했다. 이런 변화는 그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서유라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숙인 채 작게 말했다.“다 내 잘못이야. 내가 괜히 입을 놀린 바람에 네가 설아 씨랑 싸우게 됐잖아. 설아 씨 지금 어떤지 모르겠지만 서준아, 이번에는 네가 좀 심했어. 한 번쯤은 보러 가야 해.”배서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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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서유라는 말하다가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연스럽게 배서준의 품에 기대더니 그의 허리를 꼭 끌어안았다. 마치 물고기가 물에 의지하듯 절대 배서준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듯했다.원래 배서준은 그녀의 이런 행동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이처럼 애처로운 서유라의 모습을 보자 마음이 살짝 누그러들었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 난 너 안 떠나.”“서준아, 너... 이혼할 거야?”서유라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건 지금 배서준이 가장 생각하기 싫은 문제였다. 그런데 서유라가 그렇게 직접 묻자, 배서준은 괜히 짜증이 올라왔다.“그 여자가 배건 그룹 지분을 쥐고 있어. 내가 회사 재산 빼돌린 증거도 갖고 있고.지금 이혼하는 건 같이 망하자는 거잖아?”“난 그냥 물어본 건데. 왜... 왜 그렇게 화를 내?”서유라는 그의 반응에 놀랐는지 몸이 작게 떨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배서준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서유라가 우울증이 있다는 걸 떠올리며 급히 진정시키려 애썼다.“아니야, 내가 화낸 게 아니야. 그냥 답답해서 그래. 난 누가 날 옥죄는 거 싫어하잖아.”서유라는 뭔가 더 말하려는 듯했지만, 그때 천기준이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배서준의 품에서 물러나 조용히 자기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천기준은 배서준의 책상 앞까지 와서 깨끗이 씻은 도시락통을 내려놓았다.“대표님, 남 팀장님께서 일에는 지장 없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걱정하지 마시랍니다.”“그리고 또 뭐라고 했어?”배서준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도시락통을 내려다봤다.그가 궁금한 건 일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금은 단지 그녀가 자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알고 싶어질 뿐이었다. 배서준의 표정을 본 천기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저었다.“따로 하신 말씀은 없었습니다.”“나한테 전할 말도 없었어?”배서준은 점점 조급해졌다. 자기가 정성껏 도시락까지 챙겨줬는데 그녀가 아무 반응도 없는 게 말이 안 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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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아이처럼 굴고 있는 남설아를 보며 강연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는 웃으며 말했다.“누가 몰래 너를 욕하겠어?”“난 오빠라고 의심 중이거든요.”남설아는 고개를 갸웃하며 그를 바라봤다. “오빠가 마음속으로 나 욕하고 있었던 거 맞죠?”“너를 욕할 거면 난 몰래 안 해. 그냥 대놓고 하지. 그것도 아주 호되게 말이야.”강연찬은 큰 눈을 굴리며 퉁명스럽게 말한 뒤 차 속도를 높였다.남도일을 다시 마주했을 때 남설아의 마음은 복잡했다.하지만 남도일이 남설아를 다시 본 순간, 그의 눈에는 오직 증오만이 담겨 있었다.“이 망할 계집애, 네가 감히 여길 와? 내가 어떤 꼴이 됐는지 봐라!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 엄마가 알면 절대 널 용서하지 않을 거야.”남도일은 입을 열자마자 죽은 엄마 이야기를 들먹였다.사실 그는 항상 그랬다.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이든 그게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늘 엄마를 핑계로 삼았다.그 때문에 남설아는 늘 물러나야 했고 늘 그에게 져줘야 했다.그 결과 그는 점점 더 선을 넘었고 결국엔 그녀를 팔아넘기기까지 했다.정말 비열하고도 끔찍한 인간이었다.“남도일 씨, 우리 사이에 이제 혈연 따윈 없어요. 나는 당신 같은 외삼촌 안 둡니다. 우리 엄마가 지금 당신을 본다면 누굴 탓할까요? 당신을 혼내고 날 안쓰러워하지 않겠어요?”남설아는 처음으로 이렇게 단호하게 자신의 외삼촌에게 말했다.그녀의 눈빛은 차분했다. 이제 그를 바라보는 눈에는 마치 처음 보는 사람을 보는 듯한 낯선 느낌만이 담겨 있었다.그런 그녀를 보자 남도일은 한순간에 상황을 깨달았다. 눈앞에 있는 이 아이는 더 이상 자기 뜻대로 휘둘릴 수 있는 어린 소녀가 아니었다.그는 남설아를 바라보다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더니 불쌍한 척하며 말했다.“설아야, 착한 우리 조카.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다 미안해. 그래도 난 네 외삼촌이야. 이 세상에 네 피붙이는 나밖에 없잖아. 날 외면하면 안돼. 제발 이러지 마.”“당신이 내 유일한 가족이라는 걸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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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이 수년 동안, 남설아는 끊임없이 생각했다. 도대체 왜 자신이 배서준의 침대에서 깨어났는지 왜 그렇게 얼렁뚱땅 배서준과 나은이를 가지게 되었는지를 말이다.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동안 배서준은 늘 이 일을 이유로 남설아를 음흉한 여자라 여기며 경멸해왔고 그 감정은 자연스레 나은에게까지 이어졌다. 이 모든 건 결국 이 사람 때문이다. 바로 자기 외삼촌 때문이었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요?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한 거냐고요! 나는 당신 조카예요! 당신의 조카딸이라고요!”남설아는 눈을 부릅뜨고 유리창에 손을 떼지도 못한 채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억울했다.그녀가 수년간 받아온 모든 고통, 그리고 나은이 받아온 상처들, 이 모든 게 다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이게 다 너 잘되라고 그런 거야. 젊을 때 괜찮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야지, 아니면 뭐 할 건데! 설아야, 나는 네 외삼촌이야. 내가 널 해칠 리가 없잖니. 배서준이 뭐가 어때서. 너도 좀 잘 보이려고 애썼어야지.”지금의 남도일은 논리 따위는 아예 저 멀리 던져버린 모습이었다. 이미 구치소에 갇힌 몸이라 뭐든 다 떠벌리고 있었다. 할 말, 안 할 말 다 쏟아내는 중이었다.그가 전혀 반성의 기색 없이 지껄이는 모습을 보자 남설아는 이 사람에게 더는 어떤 기대도 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부터 당신과 나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 당신은 더 이상 내 외삼촌이 아니에요. 그럴 자격 없어요.”남설아는 눈물을 거칠게 훔치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돌아섰다. 그녀가 정말로 가버리려 하자 남도일은 얼굴을 붉어지며 소리쳤다.“네가 내가 있어서 미움받는 줄 알아? 배서준은 애초에 다 알고 있었어. 그 사람은 그냥 널 싫어하는 거야. 네가 보기 싫으니까 그런 거라고.”‘배서준이 알고 있었다고?’그렇다면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모든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모른 척했고 남설아도, 나은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끔찍했던 과거가 어떻게 일어난 일인지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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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그럼 복수하러 가자.”강연찬은 손수건을 꺼내 조심스럽게 남설아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난 언제나 네 편이야.”그의 부드러운 눈빛을 마주한 남설아는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복수하러 가요. 그 인간들, 절대 용서 못 해요.”“이게 바로 내가 알던 남설아지. 넌 원래 약한 아이가 아니야. 그 사람들은 널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 착각한 거야.”강연찬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위로하고 응원했다. 그의 조용하고 따뜻한 위로에 남설아는 서서히 진정되었다.그녀는 분명 감당하지 않아도 될 수많은 악의를 견뎌왔지만, 세상이 모두 악한 건 아니라는 걸 느꼈다. 아직 누군가는 자신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다시 일어서게 했다.“오빠, 우리 가요.”“그래.”하지만 몸을 움직인 대가가 컸다. 남설아의 등에 있던 상처가 더 악화하였고 병원에 돌아왔을 때 의사는 상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이렇게 계속 움직이면 등은 그냥 완전히 망가지는 거예요. 아니, 어린 아가씨가 왜 이렇게 자기 몸을 함부로 다뤄요?”“다시는 안 그럴게요, 정말이에요.”남설아는 머쓱하게 웃으며 사과했다. 이번엔 정말 그녀의 잘못이 맞았다.그녀의 진심이 느껴졌기에 의사는 더는 뭐라 하지 않았지만, 이번만큼은 경각심을 주려고 일부러 치료를 거칠게 했다.남설아는 비명을 지르며 강연찬의 팔을 꽉 잡았다. 통증 때문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선생님, 살살 좀 해 주세요. 너무 아파하네요.”강연찬은 너무 안쓰러워 함께 울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두 사람을 보더니 손놀림이 더 세졌다.결국 남설아는 눈물을 참으며 끝까지 버텨냈고 스스로 하나의 결심을 내렸다.앞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의사 말 잘 들을 것이다. 아니면 그 뒤에 이어질 고통은 절대 감당할 수 없는 것이다.배씨 가문, 본가.배서준의 어머니는 집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며 믿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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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어머님, 진정하세요.”서유라는 윤화진의 허리를 단단히 안으며 가까스로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넌 비켜!”윤화진은 서유라를 거칠게 밀쳐내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네가 우리 아들 유혹한 그 요망한 년이란 거 모를 줄 알아? 우리 집안 꼴이 지금 뭐가 됐는지 봐! 인제 와서 착한 척은 집어치워. 염치도 없구나!”“이게 웬 난리예요?”배서준이 성큼성큼 걸어와 모두 사이에 몸을 막아섰다. 모자를 쓴 중년 사내는 옷깃을 정리하며 배서준을 매섭게 바라봤다.“당신이 배건 그룹의 대표죠? 이름 있는 사람이라더니, 가족은 왜 이렇게 교양이 없습니까? 지금 여러분이 타인의 부동산을 불법 점유 중이라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일주일 안에 이 집에서 나가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하겠습니다.”‘뭐라고?’배서준은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여긴 배씨 가문의 본가였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이 집에서 자라왔다. 그런데 무단 점유라니.“경찰이 오해한 거 같은데요? 여긴 우리 집입니다.”배서준은 눈썹을 세게 찌푸리며 이게 누가 장난을 친 건지 의심했다. 하지만 경찰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증거를 꺼내 들었다.“부동산 등기부입니다. 이 집의 정식 소유주는 남설아 씨로 등록돼 있어요. 이 정도면 이해가 되셨겠죠?”그제야 배서준은 문득 생각났다.할아버지 유언장에서 이 집은 이미 남설아에게 넘긴 상태였다. 하지만 그동안 남설아는 한 번도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은 거야?’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그러니까 지금 남설아가 경찰에 신고했다는 겁니까?”“그렇습니다. 일주일 안에 반드시 퇴거하십시오.”경찰은 그 말만 남기고 돌아섰다.‘돈 많은 사람이라고 고상할 줄 알았는데, 다 거기서 거기네. 아주 막무가내야.’“서준아, 설아 씨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가 있어? 너무 심한 거 아니야?”“배서준! 이게 네가 그렇게 감싸던 아내야? 지금 이 상황 어떻게 할 건데?”서유라와 윤화진은 거의 동시에 외쳤다.서유라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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