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굿바이 쓰레기 / Chapter 131 - Chapter 140

All Chapters of 굿바이 쓰레기: Chapter 131 - Chapter 140

236 Chapters

제131화

‘전혀 화도 안 내고 난리도 안 친다고? 좋아, 좋아. 이제 정말 진화했네. 점점 속이 더 깊어지고 교활해졌어.’“흥.”배서준이 코웃음을 치고는 서유라의 손을 잡아채듯 휙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남설아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입을 열었다.“최근 5년간 마케팅팀 자료를 좀 보고 싶습니다. 배건 그룹의 기본 업무를 익히고 싶은데 혹시 누가 제공해주실 수 있을까요?”“자료실로 가보세요.”손미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남설아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9층에 있어요.”“고마워요.”남설아는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눌러주고는 큰 걸음으로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나가자마자 사무실 사람들은 곧장 단체 채팅방으로 몰려들었다.[와 대박! 우리 사모님 진짜 짱이다. 몇 마디 말로 바로 쫓아냈네.][대단하긴 뭐가... 쫓겨난 게 아니라 그냥 대표님 옆으로 간 거잖아.][서유라 딱 봐도 여우 같은 스타일이잖아. 뭐가 좋아서들 그래?][남자들 원래 저런 스타일 좋아하잖아.]사람들은 컴퓨터 앞에서 눈빛만 슬쩍 교환하다가 결국 하나둘 고개를 떨구고 한숨을 쉬었다.세상엔 원래부터 불공평한 일이 많다. 서유라도 뭐 능력이 없진 않았다. 대놓고 뒷문으로 들어왔으니 말이다.‘진짜 뻔뻔하기도 하지!’남설아는 본인의 신분을 이용해 금세 필요한 자료를 손에 넣었고 자리에 앉아 자료 분석을 시작했다.사무실.“대표님, 남설아 씨가 마케팅팀의 최근 5년 치 자료를 다 요청했습니다.”천기준이 불안한 눈빛으로 배서준을 바라봤다.이렇게 나오겠다는 건 제대로 한판 벌이겠다는 뜻이다. 지금 어떻게든 막지 않으면 나중에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걔야 그냥 온실 속의 화초 같은 존재야. 모든 걸 다 줘봤자 뭐 어쩌겠어?”“그 자료들 다 지루하기만 한 거라 시간이나 때우겠지. 오히려 잘 된 거야. 그냥 신경 끄고 직원들한텐 말 많지 말라고 해.”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눈빛 가득 비웃음을 담았다.천기준은 무언가 더 말하고 싶어 하다가도 결국 모든 말을 삼키고 돌아섰다.“서준아, 이제
Read more

제132화

“아직 애야. 앞길도 창창하단 말이야. 제발, 부탁이야.”서유라는 울먹이며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 애원했다.이런 모습은 배서준은 물론이고 심지어 남설아조차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하지만 안타깝게도 남설아는 피해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그날 강연찬이 갑자기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어떤 수모를 겪었을지, 그 결과가 어땠을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유라야, 이제 일어나.”배서준이 다가가 서유라를 일으키려 했지만 서유라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울먹였다.“안 돼, 안 돼. 난 설아 씨한테 빌어야 해. 도현이는 내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야. 그 애가 고통받는 걸 저는 도저히 볼 수가 없어.”“설아 씨, 제발. 내 동생만 용서해준다면, 합의서만 써준다면... 뭐든지 할게. 진짜 뭐든지.”서유라는 필사적으로 남설아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매달렸다.그 모습은 얼핏 보면 굴욕적이고 낮아 보이지만 실은 도덕적 우위에 서서 남설아를 압박하는 행동에 불과했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당장 마음이 흔들려 수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우습기만 했다.남설아는 아무 미련 없이 그녀의 손에서 치맛자락을 확 빼내고는 돌아서 소파에 앉아 두 팔을 끼고 무표정한 얼굴로 아직 바닥에 무릎 꿇은 서유라를 내려다봤다.“유라 씨 동생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우리 다 알고 있어. 그런데 와서 대뜸 합의서 써달라며 빌기만 하네? 날 사람으로 안 보나 봐?”“맞아. 다 도현이 잘못이야. 근데 그 애 아직 어리고 술에 취해서 충동적으로 그랬던 거야. 제발, 설아 씨. 도현이 나오면 꼭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게...”서유라는 무릎 꿇은 채 눈물을 흘리며 절절하게 애원했다.“남설아! 너무하는 거 아니야?”배서준이 벌떡 일어나 서유라 앞에 서며 그녀를 부축했고 남설아를 향해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부부라고 하기엔 살벌한 분위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원수인 줄 알 정도였다.하지만 그의 분노는 이제 더는 남설아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두
Read more

제133화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참을 이유도 없었다.남설아는 있는 힘껏 배서준의 뺨을 후려쳤다.그러고는 그의 넥타이를 세차게 끌어당기며 이를 악문 채 노려봤다.“지금부터 나은이 얘기하지 마요. 그 이름 입에 올리지도 마요. 당신 자격 없어요. 언급할 자격조차 없다고요!”그 싸대기 한 방에 남설아의 절규까지 더해지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얼어붙었다.특히 서유라는 남설아가 미쳤다고 생각했는지 믿기지 않는 얼굴로 얼떨떨해했다.아무리 화가 나도 감히 배서준을 때릴 줄이야, 이건 진짜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서유라는 울음도 멈추고 속으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이래서야 자기 동생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서유라, 나가.”배서준의 두 눈에는 분노가 불꽃처럼 일렁이고 있었다.그는 이를 악물고 명령을 내렸다.당황한 서유라는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서, 서준아...”“나가라고 했지!”배서준은 힘껏 팔을 뿌리쳤고 중심을 잃은 서유라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그녀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배서준을 애처롭게 바라보았다.예전 같았으면 그는 단 한 번도 서유라에게 큰소리도, 상처도 주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그녀에게 시선 한 번 주지 않은 채 오직 남설아만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서유라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힘겹게 일어나 울먹였다.“두 사람 부부잖아. 제발, 싸우지 마. 나는 뭐든 괜찮아. 진짜로, 그러니까... 제발 그만 싸워.”“설아 씨, 미안해. 정말 미안해.”서유라는 눈물을 훔치며 비틀비틀 밖으로 나갔다.그녀는 염치도 없고 순수한 사람은 아니지만 연기 하나는 확실히 최고였다.울고 빌고 보여줄 수 있는 건 전부 보여주는 스타일이었다.서유라가 나가자 방 안의 분위기는 더욱 무거워졌다.배서준은 남설아의 손을 양쪽에서 꽉 잡고 세차게 끌어올리더니 그대로 책상에 밀쳐 눌렀다.“남설아, 네가 그렇게 갖고 싶어 하던 게 나잖아? 그래, 줄게. 네 맘대로 가져.”그 말과 함께 숨이 닿을 듯 가까워진 거리에서 수
Read more

제134화

지금 이 순간 배서준이 무릎 꿇고 사과를 한다고 해도 남설아는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었다.배나은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후회하고 싶어도, 보상하고 싶어도, 그럴 기회조차 다시는 주어지지 않는다.배나은은 돌아오지 않는다.그 아이, 그녀의 배나은은 영원히 떠났다.그 비참하게 세상을 떠난 아이만 생각하면 남설아의 심장은 천 갈래로 찢기는 듯 고통스러웠다.남설아는 온 힘을 다해 배서준을 밀쳐내고 깊게 숨을 들이쉰 뒤 차갑게 입을 열었다.“서준 씨, 당신이랑 나는 이제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겉으로만 부부로 남고 싶다면 그렇게 해요. 그게 싫으면 이혼하고요. 두 가지 중 하나예요. 어떤 길을 택할지는 당신도 잘 알겠죠?”“당신 지금 나한테 이러는 거 결국 서유라 씨 그 동생 때문이잖아요. 쓸모없는 죄책감으로 날 묶지 말고 차라리 조건을 가지고 이야기해요. 어때요?”남설아는 천천히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그대로 그의 책상 위에 올라앉았다.그런 뒤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그를 내려다봤다.배서준은 꿈에도 몰랐다.이 여자가 어느 날 이렇게 당당하게 자신 앞에서 조건을 내걸고 협상을 벌이게 될 줄은 말이다.지금의 이 위치 변화가 그를 숨 막히게 했다.하지만 문제는 지금 상황에선 반박할 힘조차 없다는 것이었다.그녀가 쥐고 있는 지분 51%가 배서준의 허리를 꺾어버릴 만큼 강력했다.“조건 말해봐.”배서준은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최대한 체면을 지키려 애썼다.그 모습이 너무 우스워 보여서일까 남설아는 피식 웃음이 터졌고 기분 좋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요즘 회사가 신기술 프로젝트 밀어붙이고 있죠? 그거 내가 맡을게요.”“네가?”배서준은 비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쳐다봤다.“집에서 애나 보고 빨래나 하던 주부 주제에 신기술이 뭔지나 알고 하는 소리야?”하지만 남설아는 준비 없이 협상장에 들어올 사람이 아니었다.조용히 가방에서 USB 하나를 꺼내더니 그의 품에 툭 던졌다.“이건 내가 대학 졸업할 때 만든 프로그램이에요. 전
Read more

제135화

“짝!”남설아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대로 서유라의 뺨을 후려쳤다.이어 머리채를 꽉 움켜쥐고 세차게 뒤로 잡아당기더니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입술을 톡 건드리며 낮고 날카롭게 말했다.“다시는 내 딸 얘기 한 마디라도 꺼내면 네 입 여기다 꿰매버릴 거야. 알겠어?”“네가 감히?”서유라는 코웃음을 치며 도발적인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봤다.서유라의 머릿속엔 아직도 남설아가 그저 순하고 무능한 가정주부일 뿐이었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처지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 보고 남설아는 갑자기 서유라와 말다툼을 벌이는 것 자체가 스스로 품격을 낮추는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여 그녀는 힘껏 서유라를 옆으로 걷어차고는 싸늘하게 비웃었다.“기어들어가서 내 남편한테 고자질이라도 해봐. 과연 나랑 이혼하자고 할까?”예전의 남설아라면 ‘이혼’이라는 말만 들어도 두려워 벌벌 떨었을 것이다.배나은에게 상처 주기 싫어서였다.하지만 이제 배나은은 없으니 무서울 것도, 잃을 것도 없었다.정작 이혼을 두려워해야 할 사람은 바로 배서준이었다.“남설아! 두고 봐. 가만 안 둬!”서유라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 말은 남설아에게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이젠 그녀에게 서유라의 말은 그냥 소음일 뿐이었다.대표 사무실에서 나온 남설아는 곧장 강연찬에게 전화를 걸었다.“지금 시간 돼? 나 오빠 좀 보고 싶어. 응, 우리 회사 앞으로 와줄래?”전화를 끊은 강연찬은 회의 중인 기술팀을 둘러보더니 헛기침을 한 번 했다.“난 급한 일 있어서 먼저 나갈게요. 다들 계속 회의해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진영을 한번 보고 말했다.“잘 들으면서 메모해.”“어디 가는데요?”서진영은 의아한 얼굴로 강연찬을 바라봤다.‘지금 연훈 그룹이랑 기술 회의 중인데 이 중요한 와중에 나간다고? 대표님 도대체 언제쯤 좀 정상적으로 일을 할까?’강연찬은 대답도 없이 웃으며 성큼성큼 회의실을 빠져나갔다.얼마 지나지 않아 배건 그룹 건물 앞에 도착한 강
Read more

제136화

“서도현, 너도 이제 어른이잖아. 네가 한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해. 내가 오늘 온 건 널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걸 말하러 온 거야. 너처럼 행동한 사람은 최소한 안에서 5년은 있어야 해. 나중에 만두는 보내줄게.”남설아는 수화기를 들고 차분한 어조로 그에게 앞으로의 미래가 어떤지 설명해주기 시작했다.며칠 동안 안에서 어떤 고생을 했는지 서도현은 말을 안 해도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다.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이유도 없이 그를 때리고 걷어차기 일쑤였고 주변 사람들은 그걸 보고도 모른 척했다.그런데 지금 남설아를 보는 순간 서도현은 모든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너였지! 너지! 네가 시켜서 나 때리게 한 거잖아!”“남설아, 이 미친년. 그날 그냥 널 죽여버렸어야 했는데!”“내가 말해줄게. 우리 누나는 서준이 형한테 목숨보다 소중한 사람이야. 그 두 사람이 날 꼭 구해낼 거라고!”서도현은 차분하게 말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남설아는 오히려 더 침착해졌다. 감정의 흔들림이라고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네 누나가 정말 그렇게 대단했으면 네가 지금 여기 있겠어?”남설아의 한마디는 그야말로 직격이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쉼 없이 떠들어대던 서도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얼굴빛이 확 달라지더니 이내 조용해졌고 눈빛이 바뀌어 남설아를 그대로 노려봤다.그 눈빛만으로도 남설아는 확신했다.‘얜 절대 반성 같은 거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이 사람을 풀어준다고 해도 고마워하기는커녕 분명히 끝까지 날 물어뜯고 되갚으려 들 거야.’“서도현, 우리 아무 원한도 없었잖아. 네가 이렇게까지 한 데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서유라야! 그 미친년이 시켜서 너 혼내주라고 했어!”서도현은 남설아의 의도를 그제야 알아챘다.자신을 무너뜨리러 온 게 아니라 이 일의 진짜 시작점을 확인하러 온 거라는 걸.그는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유리창 너머로 주먹을 휘두르며 악에 받친 목소리로 외쳤
Read more

제137화

두 사람의 눈빛과 행동을 보는 서도현은 분노가 극에 달해 몸부림쳤다.“남설아, 이 더러운 년! 밖에 이미 남자가 있으면서도 끝까지 사모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해? 너같이 천한 년은 그냥 죽어야 돼! 죽어버려야 마땅해!”강연찬은 반사적으로 남설아의 귀를 막았다. 이런 더러운 말들이 그녀를 더럽히지 않게 하고 싶었다.“우리 가자.”“응.”남설아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제 손을 내려도 된다는 뜻이었다.배씨 가문에 있을 때는 훨씬 더 지독한 말도 들었기에 남설아는 이미 그런 것들에 대해 면역이 생긴 상태였다.지금 서도현이 내뱉는 욕설은 오히려 아무런 타격도 되지 않았고 그냥 시시하게 느껴질 뿐이었다.그녀의 그런 태도에 강연찬은 더 안쓰럽고 속상해졌다. 그는 남설아의 손을 꼭 잡고 빠른 걸음으로 바깥을 향해 걸어갔다.“설아야, 네가 배서준한테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고 했잖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야?”강연찬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남설아를 바라봤다.배씨 가문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한심한 인간들밖에 없고 배건 그룹은 겉으로 보기엔 화려하지만 속을 알 수 없는 깊은 물 같은 곳이었다.남설아처럼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려는 사람은 조금만 방심해도 뼈도 못 추릴 만큼 위험했다.이제야 가까스로 그녀 곁에 돌아온 강연찬으로선 더는 그녀가 상처받는 걸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남설아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겉으로 보면 배건 그룹은 화려하기만 해. 하지만 배서준은 지금 재산을 몰래 옮기고 있고 이사회에서도 반발이 심해. 내부는 이미 엉망이야. 원래 가족기업이라는 게 허점이 많잖아. 그래서 배서준도 그룹을 변화시키려고 신기술 쪽에 눈을 돌린 거야.”“내가 자료를 다 분석해봤는데 배건 그룹이 기술력은 없지만 하드웨어나 기반 설비는 꽤 괜찮더라고. 난 기술이 있고 그 설비들이 내 손에 들어오면? 서로 시너지를 낼 수밖에 없지.”“나는 유산에 기대서 이길 생각 없어. 내 힘으로, 내 이름으로 이기고 싶어.
Read more

제138화

대표가 샤브샤브 먹으러 나왔다가 직원한테 우연히 들킨 건 원래라면 별일도 아니었을 거다.그런데 문제는 이 직원이 평범한 직원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온몸에 분노가 가득한 그런 직원이었다.서진영의 표정을 본 남설아는 당황스러워서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마치 정말로 바람 피우다 걸린 사람처럼 괜히 움츠러들어 조심스럽게 서진영을 힐끔 보며 작게 말했다.“제가 강 대표님 모시고 샤브샤브 먹자고 한 거예요. 서 선배님도 시간 괜찮으시면... 같이 드시고 가세요.”‘같이 먹자고?’서진영은 본래 거래처 미팅 때문에 이 근처에 온 거였는데 상대가 일방적으로 펑크를 내는 바람에 시간이 남았던 참이었다.‘이 둘은 대체 뭐지? 회사 일 제쳐두고 유부녀랑 밥 먹으러 온 거냐? 그게 지금 대표가 할 일이야?’서진영은 팔짱을 끼고는 정색한 얼굴로 말했다.“강 대표님, 우리 지금 막 창립한 회사고 연훈 그룹이랑 계약도 이제 막 성사됐잖아요. 업계 전부가 우리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유부녀랑 이런 식으로 엮이는 건 기업 이미지에 타격이 클 수 있어요. 나중에 연훈 쪽에도 설명하기 곤란해질 겁니다.”“그만해, 서진영.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강연찬은 더는 참지 못하고 벌떡 일어났다. 눈빛은 단단히 굳어 있었다.“우린 그냥 정상적으로 밥 먹고 있는 거야. 아무 사이도 아니고 아무 문제도 없어. 지금 그게 무슨 말투야? 당장 사과해. 설아한테 사과해!”“사과 못 해요.”서진영은 단호하게 말했다.“전 도저히 납득이 안 되거든요. 근무 시간에 남녀가 구시가지에서 단둘이 샤브샤브 먹는 게, 어떻게 정상적인 교류입니까.”그는 남설아를 바라보며 분명한 경계심과 불쾌함을 드러냈다.지금 강연찬이 이끄는 주원 그룹은 배건 그룹과 정면으로 경쟁 중이다.‘이 여자 정체가 뭘까. 대체 무슨 의도로 다가온 걸까?’“서진영!”“그만해. 싸우지 마.”강연찬이 분노를 터뜨리기 직전, 남설아가 먼저 일어나 두 사람을 향해 웃었다.“맞는 말씀 하셨어. 우리 거리를 두는 게 좋겠네.
Read more

제139화

강연찬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남설아는 이미 멀리 가버려 따라잡을 수 없었고 지금은 눈앞의 문제부터 정리해야 했다.“그때 유학 간 건 전적으로 내 결정이었어. 말도 없이 훌쩍 떠난 건 나였고 우리 사이는 서로 마음이 있었을지는 몰라도 어떤 약속도 한 적 없잖아. 설아가 날 기다려야 할 이유도, 나만 바라봐야 할 의무도 없었어.”“내가 아팠든 속상했든 그건 내 감정일 뿐이지 설아 책임은 아니잖아.”서진영은 연애에 눈이 먼 사람을 본 적은 있었지만 이 정도는 처음이었다.잠든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는 말처럼, 연애에 빠진 사람은 그 누구도 못 말린다.결국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형 사생활은 나랑 상관없어요. 내가 설아 씨 싫어하는 것도 내 일이고요. 하지만 한 가지는 부탁하고 싶어요. 회사만큼은 진지하게 진짜로 책임감 있게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여기까지 오는 데 얼마나 힘들었는지 형도 알잖아요.”하지만 강연찬은 물러서지 않았다.“그건 그거고 난 네가 사과하길 바란다.”서진영은 한동안 그를 바라보더니 결국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알겠어요. 다음에 만나면 사과할게요.”하지만 그 ‘다음’이 올 일은 아마 없을 것이었다.점심시간이 끝나고 남설아는 정확한 시간에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이 팀에서 자신은 별 존재감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꼭 이런 사람 하나쯤은 있기 마련이었다. 남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사람 말이다.서유라가 능청스럽게 조그만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며 싱글벙글 웃었다.“아침에 서준이가 나한테 사줬는데 혼자 다 못 먹겠더라고. 설아 씨도 단 거 좋아한다길래, 하나 줄까?”“난 단 거 안 먹어.”남설아는 케이크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잘라냈다.그러고는 살짝 눈썹을 올려 서유라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그 시간에 서준 씨한테 잘 보이려고 노력하는 게 더 나을걸? 내가 제안한 조건 빨리 수락하게 만들어야, 유라 씨
Read more

제140화

서유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오늘 자신이 준비한 한 수가 이렇게까지 아무 효과도 없을 줄은.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 서유라를 보며 남설아는 헛웃음이 나왔다. 사실 함께 지내다 보면 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금세 파악된다.서유라의 수법이 대단한 게 아니라 배서준의 사랑이 대단했던 거다.사랑하기에 그 연극에 기꺼이 눈감아준 것이었다.하지만 오늘은 무대 선택을 잘못했다.이곳은 회사였다. 일하는 자리에서 사적인 감정이나 뒷말은 아무리 크다 해도 ‘밥줄’만큼은 못하다.다들 외면하는 가운데 서유라는 더할 나위 없이 민망해졌고 이를 악물고 억지로 자신이 퇴장할 명분을 만들어냈다.“설아 씨가 지금 바쁘다면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 제가 모두를 위해 커피를 좀 샀는데 금방 도착할 거예요. 다들 고생 많으십니다.”체면 있게 퇴장했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는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저 한바탕 소란을 일으킨 어설픈 광대였다는 걸.‘요즘 세상이 참 많이 변했네. 내연녀가 저렇게 당당하게 사무실 돌아다니는 시대라니... 도덕도 다 무너진 느낌이야.’직원들은 속으로 이렇게들 생각하고 있었다.회의실.“여러분은 이 소프트웨어 어떻게 보십니까?”배서준은 대형 화면에 떠 있는 수치들을 가리키며 특채로 데려온 기술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가장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남자는 검은 뿔테 안경에 전형적인 공대생 복장이었고 안경을 끌어 올리며 약간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조금 미숙하긴 한데 구조가 안정적입니다. 보기 드문 괜찮은 재목이에요. 실전에서 몇 번만 다듬으면 확실히 더 큰 성장이 있을 겁니다. 인상 깊네요. 다만 이 코드 구성 방식이 어디서 많이 본 듯한데요.”“혹시 이거 예전에 대학생 기술 경진대회에서 1등한 그 작품 아니에요? 여자 졸업생 작품으로 기억하는데...”다른 한 사람이 곧장 떠올리듯 말했다.“맞네, 기억났어요. 그때 그 학생 이름이... 남설아! 맞아, 남설아였어요!”그 이름이 나오는 순간 회의실은 금세 웃음과 고개 끄덕임으로 가득 찼다.“그
Read more
PREV
1
...
1213141516
...
24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