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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쓰레기의 모든 챕터: 챕터 121 - 챕터 130

236 챕터

제121화

남설아는 말 그대로 온몸의 힘을 전부 쏟아부었다.그러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잔뜩 거들먹거리던 배서준도 지금은 갑작스레 브레이크를 걸 수밖에 없었고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마치 삶은 새우처럼 구부정한 자세로 멈춰 섰다.분노와 당혹함에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는 남설아를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남설아는 비틀거리며 책상에서 내려와 구석으로 굴러 들어가듯 몸을 웅크리고는 온몸을 껴안은 채 덜덜 떨며 소리쳤다.“오, 오지 마! 다 꺼져!”“너...”배서준은 입을 열어 뭐라 하려다가 말이 목구멍에서 멈췄다. 그제야 문득 조금 전 서도현이 남설아를 강제로 덮칠 뻔했던 일이 떠올랐다.알 수 없는 짜증이 마음속 깊이 일었다. 그는 화가 난 듯 옆에 있던 의자를 세차게 걷어찼고 그 충격에 하필이면 방금 자극된 부위까지 건드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울컥 치미는 화를 누르며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외투를 집어 남설아 위로 툭 던졌다. 그리고 고통을 억지로 참아내며 자리에서 돌아서 성큼성큼 나가버렸다.문을 나서고 나서야 배서준은 약간의 후회를 느꼈다.오늘은 분명히 자신이 선을 넘은 것이었다.남설아 앞에서 배서준은 늘 냉정하고 절제된 태도를 유지해왔고 심지어 무정하다 싶을 정도로 선을 지켜왔다. 그런데 요즘 들어 뭔가 이상했다.무언가가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정확히 무엇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 남설아는 배서준의 체취가 밴 외투를 확 집어던지고 힘겹게 일어서서 비틀거리며 계단 쪽으로 발을 옮겼다.여긴 더 이상 머물 수 없었다. 너무 위험했다.서랍을 열자 안에는 수십 개의 부동산 등기부등본이 있었다.남설아는 침대에 앉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다가 결국 회사와 가장 가까운 고급 평형의 아파트를 골랐다.“혹시... 저랑 같이 가고 싶은 사람 있어요?”남설아는 앞에 서 있는 도우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사실 이 집엔 줄곧 도우미들이 있었다. 하지만 배서준은 남설아가 여유를 부리는 걸 못마땅해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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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2화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났다.그렇게 좋은 자원을 손에 쥐고도 써먹을 줄 몰랐고 오히려 저런 도우미들한테 무시당하고 있었다니, 차라리 과거로 돌아가서 그때의 자기 따귀를 몇 대 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역시 임신하면 바보 된다는 말이 틀린 게 아니었다.이제는 아무도 감히 반박하지 못했다. 뭐라 해도 어쨌든 한 집안 식구고 진짜로 남설아가 판을 뒤엎기라도 하면 결국 제일 손해 보는 건 저들 같은 하층 노동자들일 테니 말이다.속은 여전히 부글부글 끓었지만 다들 하나둘 짐 챙겨서 조용히 물러났다.겨우 집이 조용해졌으니 오늘 밤은 좀 쉴 수 있겠지 싶었는데 웬걸, 이번엔 또 불청객이 찾아왔다.‘이래서야 편히 살 수는 있는 거야?’남설아는 문득 깨달았다. 자신이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이렇게 고통스러운 날들이었다는 걸.‘그때의 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버티고 있었던 걸까?’과거의 자신이었지만, 공감할 수 없었다. 남설아는 그 낯선 감정을 처음으로 마주하고 있었다.“남설아! 이 못된 년! 당장 안 나와?”“시부모님 몸 안 좋은 거 몰라? 시아버진 누워계시는데 넌 어때? 코빼기도 안 비치잖아! 네가 며느리야? 에휴, 부모 없는 게 티가 나지. 그따위로 자랐으니 인성도 저 모양이지!”윤화진이 허리에 손을 얹고 거실 한가운데서 고래고래 악을 썼다.남설아는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고는 장숙자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걱정 말라는 눈짓을 보냈다.뒤이어 그녀는 혼자서 천천히 2층에서 내려와 일말의 예고도 없이, 다짜고짜 찬물 한 바가지를 들고 윤화진의 머리 위에 그대로 끼얹었다.“꺄악!”온몸이 흠뻑 젖은 채 윤화진은 비명을 질렀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죄다 명품이었건만 순식간에 다 망가졌고 꼴은 딱 물벼락 맞은 생쥐 꼴이었다.“남설아, 이 미친년이, 네가 감히!”윤화진은 망설임도 없이 손바닥을 들어 남설아를 때리려 들었다.하지만 남설아가 먼저 손목을 낚아채더니 힘껏 꺾어 바닥에 그대로 내던졌다. 그러고는 싸늘한 눈으로 내려다봤다.“여긴 내 집이에요.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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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3화

“나를 내쫓겠다고? 그건 안 될 일이지!”“말해두는데 우리 배씨 가문 물건 안 내놓으면 난 절대 안 나가!”윤화진은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소파에 털썩 앉았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고 남설아를 노려봤다.그 꼴을 보고 있자니 우습기만 했다. 남설아는 콧방귀를 뀌며 손을 휘저었다.“그럼 여기서 죽든가요.”이 말만 남긴 채 캐리어를 끌고 그대로 돌아서 나가버렸다. 애초에 떠날 생각이었고 이 집에서 나갈 예정이었으니 미련 따윈 없었다. 윤화진이 자처해서 문지기 노릇을 하겠다는데 굳이 말릴 이유도 없었다.그런데 진짜로 남설아가 말도 없이 나가버리자 윤화진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려 곧장 배서준에게 전화를 걸었다.“너 안 오면 내가 배건 그룹 정문 앞에서 목을 매달아 죽어버릴 거야!”사실 배서준은 어릴 때부터 윤화진한테서 정 같은 걸 느껴본 적이 없었다. 오히려 대부분은 짜증과 피로감이었다.하여 지금도 이 말에 얼굴이 더 어두워졌고 단 한 줌의 기분 좋은 감정도 없었지만 결국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윤화진을 보자 배서준은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무슨 일이에요?”“네가 뭘 안다고 그래? 너 아버지 중풍으로 쓰러졌잖아! 근데도 한 번 들여다보지도 않냐? 네가 사람이야? 너 아들 맞긴 해?”그러자 윤화진은 벌떡 일어나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그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했지만 배서준은 무표정했다.“집에 간병인 네 명 있잖아요. 부족해요?”“간병인이랑 네가 같아? 넌 우리 자식이야. 어떻게 그걸 똑같이 보냐! 같이 있지는 못해도 얼굴 한 번 보러 오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야? 대체 너 왜 이러는 거야? 점점 더 말도 안 듣고 못된 애가 되잖아!”윤화진은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흥분했고 목소리까지 떨리기 시작했다.“내가 기억하는 건 두 분이 날 여기저기 끌고 다니면서 놀러 다니던 기억밖에 없어요. 나한테 신경 쓴 적이나 있었어요? 애초에 관심도 없던 사람들이 이제 와서 어쩌고저쩌고 말할 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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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4화

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지금 이렇게 바뀐 게 아니라 원래부터 이랬어요. 다만 서준 씨가 있어서 그 사람 때문에 그렇게 살았던 거예요. 근데 이제는 그냥 나대로 살고 싶어요.”이 말을 끝으로 남설아는 캐리어를 끌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결혼할 때, 배서준은 카드 한 장을 줬다. 그리고 이후로 줄곧 그 카드로 그녀를 조종했다.말 잘 안 들으면 돈을 끊고 생활비조차 안 줬다. 그녀에게는 그 카드가 유일한 경제수단이었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할아버지가 남겨준 유언장이 있으니 직접 은행에 가서 본인의 지분을 출금할 수 있게 된 것이다.손에 든 새 카드, 그걸 바라보던 남설아는 눈가가 붉어지더니 입술을 앙다문 채 작게 중얼거렸다.“그날 밤... 나한테도 이 카드가 있었더라면 우리 나은이는 떠나지 않았을 텐데.”“사모님, 아가씨가 세상을 떠난 건... 마음 아프지만 병이 워낙 깊었잖아요. 하루를 더 살아도 하루가 더 고통이었을 테니... 그렇게 간 게 어쩌면 하늘의 뜻일지도 몰라요.”장숙자는 조용히 한숨을 쉬었다. 같은 여자로서, 남설아가 아이를 잃은 그 고통을 진심으로 공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를 수만은 없었다.그 말을 들은 남설아는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우리 나은이 정말 착했어요. 떠나기 전에 제 손 꼭 잡고 엄마 혼자일까 봐 걱정된다고, 꼭 잘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말하고 갔어요. 그래서 나 꼭 잘 살 거예요. 내 딸이 하늘에서 마음 놓을 수 있도록.”남설아의 말에 장숙자는 뭐라 말할 수가 없었고 결국 깊은 한숨만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배서준과 결혼한 이후로 남설아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쇼핑 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쇼핑몰에 들어서자마자 그야말로 폭풍처럼 카드를 긁기 시작했다.문제는 이 카드가 연결 계좌라는 점이었다.회의 중이던 배서준의 핸드폰이 끊임없이 진동을 울렸다.귀찮은 듯 핸드폰을 든 그는 알림창에 뜬 문자들을 확인하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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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5화

배서준의 얼굴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지만 끝내 이를 악물고 말했다.“세상이 연훈 테크놀로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다음 달에 위화 그룹 쪽에서도 들어올 거다. 두 회사는 앙숙이니까 우리한테도 기회는 있어.”“이번 한 달, 진짜 보여줄 만한 결과 안 나오면 프로젝트팀 전부 다 나가떨어질 줄 알아!”이 말을 내뱉고는 그대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회의실을 나가버렸다.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남겨진 팀원들 전부 하나같이 허탈함에 빠졌다.팀이 만든 결과물은 원래부터 수준급이었다. 정작 판단을 잘못한 건 배서준이었고 그 때문에 제대로 경쟁조차 못 해본 건데 마치 실력이 모자라서 진 것처럼 몰아붙이니 억울할 수밖에 없었다.사무실로 돌아오자 천기준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대표님, 위화 그룹도 물론 괜찮긴 한데 그래도 연훈 테크놀로지랑은 비교가 안 되잖아요. 제 생각엔... 우리 쪽에서도 한 번 더 시도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듣자 하니까 연훈 테크놀로지가 강연찬이랑 협력하긴 했지만 기술적인 부분에서 아직 난관이 있어서 꼭 협상이 끝난 건 아닌 것 같던데요?”조심스럽게 떠보는 말이었다.‘강연찬과 협력?’배서준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단칼에 잘랐다.“나는 강연찬이랑 손잡을 생각 없어.”“네. 그럼 저는 먼저 나가보겠습니다.”천기준은 이제야 확실히 알았다. 배서준은 이미 강연찬에 대해 감정이 깊게 상해 있다는 것을.하지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배서준이 왜 그렇게 강연찬을 신경 쓰는 건지.그전까지는 철저하게 이익을 기준으로 움직였고 사람이 누가 됐든, 무슨 일이 있었든 항상 계산부터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명백히 손해가 되는 상황인데도 감정 하나로 일을 놓아버렸으니 말이다.핸드폰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지만 배서준은 볼 생각조차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강연찬과 남설아가 함께 있는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손은 무의식중에 꽉 움켜쥐어 주먹이 되었고 관자놀이까지 벌떡거렸다.결국 노트북을 열어 남설아의 위치를 확인한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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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6화

“사실을 왜곡하고 고마운 일에도 보답할 줄 모르고... 당신은 머리만 나쁜 게 아니라 인격에도 문제가 있어요.”남설아는 말을 끝내자마자 배서준의 발을 있는 힘껏 밟았다.진심을 다해 짓밟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억눌린 감정을 쏟아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예상대로 배서준은 고통에 휘청하며 남설아를 놓아버렸다. 그러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미쳤어?!”“그래요, 이제야 눈치챈 거예요? 당장 꺼져요. 나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남설아는 더 이상 말할 가치도 없다는 듯 돌아서서 계단을 올라갔다. 그 남자를 한 번이라도 더 쳐다보는 것조차 역겨웠다.“남설아, 너 잊지 마! 여긴 내 별장이야!”“좋아요. 그럼 당신 부모부터 내보내요. 난 본가로 돌아갈게요.”계단 위에서 돌아선 남설아는 냉소를 머금은 눈빛으로 배서준을 내려다봤다.지금 이 순간, 한 사람은 위에서 내려다보고 한 사람은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남설아의 눈엔 조롱과 냉소가 가득했고 말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잊지 마. 본가는 애초에 할아버지가 내게 물려준 재산이에요. 내가 지금까지 조용히 있었던 건 당신 체면이라도 봐준 거예요. 그러니까 그 체면 좀 소중히 여겨요. 괜히 건드리지 말고.”배서준이 뭐라고 더 말하려던 찰나 다음 순간 들려온 건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뿐이었다.“진짜 누가 체면 안 지키는 건데? 남설아, 너 그렇게 계속 연기해봤자야. 나는 너 같은 여자 눈곱만큼도 관심 없어! 교활하고 악독한 년!”배서준은 아래에서 마치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러댔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마음이 아픈 대신 그저 역겹기만 했다. 저 사람, 정신 상태가 좀 위험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배서준은 잠시 반응을 기다렸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자 화만 잔뜩 난 채 돌아서 나가버렸다.고개를 돌리자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벽에라도 붙어 숨고 싶은 듯한 표정으로 안쓰럽게 배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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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7화

“정말이야? 서준아, 나 진짜 너희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거야? 근데 내가 듣기로는 설아 씨도 너희 회사에 있다던데 화내진 않겠지?”서유라는 말하다가 눈빛이 어두워졌다.배서준이 가장 못 참는 건 서유라가 속상해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바로 말했다.“그 사람 그냥 평범한 직원일 뿐이야. 너한테는 부팀장 자리 줄게. 절대 너한텐 부족함 없게 할 거야.”“서준아, 넌 나한테 정말 잘해줘. 만약 서준이 너 없이 살아야 한다면 그다음부터의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상상이 안 돼.”말을 마친 서유라는 곧장 배서준에게 몸을 기대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리고 곧 두 사람은 서로를 탐하듯 격렬하게 얽혔다. 온갖 고민과 피로는 그 뜨거운 순간 속에서 모두 사라져버렸다.배서준은 역시 서유라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편하고 가장 자유롭다고 느꼈다.다른 여자들은 그저 피곤하게 만들 뿐이었다.서유라는 예전부터 배건 그룹에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번번이 기회를 잡지 못했다.이번에도 그저 기대 없이 시도해본 것이었는데 설마 배서준이 남설아에게 화가 나서 진짜로 받아줄 줄은 몰랐다.원하던 걸 이루었다면 기뻐해야 할 일인데 정작 서유라는 웃음이 잘 나오지 않았다.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온 배서준이 어떤 사람인지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어떤 일이 있어도 늘 냉정하게 중심을 잡고 사적인 감정으로 일을 흐리는 법이 없던 사람, 그런 그가 남설아 때문에 원칙을 무너뜨렸다는 건 분명 좋지 않은 신호였다.서유라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저 배서준의 손을 절대 놓지 않고 꽉 붙잡는 것뿐이었다.곁에서 잠든 배서준을 바라보며 서유라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손을 뻗어 그의 뺨을 살며시 쓸며 중얼거렸다.“서준아, 내 탓 하지 마. 난 이제 너 하나뿐이야.”한편 남설아는 침대에 눕자마자 곧장 잠에 빠졌다.감옥 같은 공간에서 벗어났을 뿐인데 이렇게 편안하게 잘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다음 날 아침, 남설아는 일찍 일어나 깔끔하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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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8화

“벌써 끝낸 거야?”강연찬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남설아를 바라봤다.원래부터 대단한 사람인 건 알았지만 이렇게 까지 능숙할 줄은 정말 몰랐다.‘이건 진짜 너무 사기잖아?’“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가져가서 제대로 확인해봐. 문제없으면 돈 줘.”“4000만 원이야. 한 푼이라도 적으면 나 안 받아.”남설아는 무리한 금액을 요구한 것도 아니었다.이 정도 보안 문제를 외주로, 전문 업체에 맡겨도 4000만 원은 최소 금액이다.“너 진짜 돈 달라고 하는 거야?”강연찬은 어이없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설마 정말로 이렇게 당당하게 돈을 요구할 줄은 몰랐다.남설아는 그의 놀란 표정을 보더니 콧방귀를 뀌고 퉁명스럽게 말했다.“내가 왜 돈을 못 받아? 원래 줘야 하는 거잖아?”“알았어, 알았어, 줄게.”“문제없으면 4000만 원, 됐지?”강연찬은 가볍게 웃었다.솔직히 말해서 4000만 원은커녕 뒤에 0이 하나 더 붙어도 아깝지 않았다.게다가 지금처럼 남설아가 이렇게 멀쩡하게 웃고 있는 모습만 봐도 마음이 놓였다.“근데 나 오늘 여기 온 이유 하나 더 있어. 서도현 말인데, 배서준이 지금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빼내려고 하거든.”“이미 알아봤는데 네가 합의서 안 써주면 절대 못 나가. 이 일 너는 어떻게 생각해?”강연찬은 다소 난감하고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남설아를 바라봤다.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혹시나 아직도 배서준에게 미련이 있는 건 아닌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예전 같았으면 남설아는 배서준이 다른 여자를 위해 이렇게까지 나서는 걸 보면 가슴이 찢어졌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웃기기만 했다.‘서유라, 너 진짜 배서준의 심장 맞구나.’“나한테 부탁하러 오면 당연히 들어줄 거야. 다만, 쉽게는 안 들어줄 거라는 거지.”“오빠 사람들한테도 전해. 안에서 놀고만 있지 말고 그 개 같은 자식 제대로 조져놓으라고!”남설아는 툭 내뱉었다.애초에 서도현은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었다.계속 훼방만 놓고 배나은을 괴롭히기까지 했으니 이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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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9화

배서준이 편할 날이 없어야 남설아도 편했다.지금 남설아가 살아가는 이유는 단 하나, 그를 평생 불편하게 만드는 것뿐이다.시간을 확인한 남설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이제 출근해야 해서 더 얘기 못 해. 계좌이체 잊지 마!”깔끔하게 돌아서는 남설아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강연찬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눈빛엔 감탄이 가득했다.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장숙자는 바로 알 수 있었다.이 남자는 진심으로 남설아를 좋아하고 있구나하고 말이다.배서준은 그 어떤 순간에도 이런 눈빛으로 남설아를 바라본 적이 없었으니까.가능하다면 장숙자 역시 바랐다.남설아가 자신을 좋아해 주는 사람,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기를.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왜냐하면 남설아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한편 남설아는 예전엔 상상도 못 했던 상황에 처해 있었다.‘내가 배건 그룹에 직원으로 출근하게 될 날이 오다니!’눈앞에 우뚝 솟은 배건 그룹 빌딩을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예전엔 이곳에 도시락을 들고 배서준을 찾아오곤 했었다.하지만 매번 경비에게 막혔고 그녀가 정성 들여 싸온 도시락은 늘 천기준에게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그렇게 정성껏 만든 음식을 배서준은 눈길조차 한 번 주지 않았다.그 시절을 떠올리면 아직도 가슴 한편이 먹먹하게 아팠다.그러나 이번엔 달랐다.높은 굽의 힐을 신은 남설아는 당당하게 건물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이번엔 그 누구도 그녀를 막지 못했다.심지어 천기준이 직접 입구에 서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사모님, 오셨군요. 마케팅팀으로 모시겠습니다.”천기준은 그녀를 보자마자 다급히 다가왔다.그런 천기준의 모습에 남설아는 조금 의아해하며 물었다.“서준 씨가 시켜서 마중 나온 거예요?”“그, 그런 건 아니고요. 대표님께서 사모님 잘 챙기라고 하셔서...”천기준은 민망한 듯 어색하게 웃었다.남설아는 알 수 있었다.그 말은 그저 포장일 뿐 실제로는 감시하라는 말이라는 걸.꼼꼼하고 치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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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0화

곧 직원 단체 채팅방은 난리가 났다.[아니 진짜야? 내연녀랑 정실부인이 같이 출근했다고? 그것도 한 명은 부팀장이고 한 명은 그냥 사원이래!][부자들이 논다는 게 원래 화려하단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진짜 명분 가지고 서열 따질 생각이면 큰코다친다. 대표님이 누굴 아끼는지가 곧 서열이야. 줄 잘 서라.]남설아는 배서준의 목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고 둘을 바라봤다.그 두 사람의 손이 꼭 맞잡혀 있는 걸 보고 터질 듯한 비웃음을 참지 못했다.“이런 인사 이동, 이사회에 보고는 했어요? 서준 씨, 사적 감정으로 직책 주는 게 그렇게 당당한 일이야?”남설아는 팔짱을 낀 채로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노려봤다.‘자기 애인을 배건 그룹에 꽂아 넣겠다고? 웃기고 있네.’“남설아, 넌 지금 배건 그룹의 평사원일 뿐이야. 나한테 감히 대들 자격은 없어. 나는 대표야. 내가 누굴 부팀장으로 임명하든 내 권한이지.”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그 눈빛에는 조소와 보복을 성공한 것에 대한 쾌감이 섞여 있었다.남설아가 아직도 자신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고 최근 그녀가 벌인 모든 일도 결국 관심을 끌기 위한 수작이라 생각하고 있었다.‘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유라를 불러올 걸 그랬네.’“당신이 대표? 나는 최대 주주예요.”“이 사람 입사, 난 반대예요. 이대로 밀어붙이면 내 지분 전부 매각할 거예요.”남설아는 단도직입적으로 거절 의사를 밝혔다.서유라는 이런 식으로 정면으로 거절당할 줄 몰랐기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바로 배서준의 소매를 잡고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해, 서준아. 설아 씨랑 싸우지 마.”“설아 씨, 내가 미움받고 있다는 거 알아. 하지만 넌 정말 그냥 성실히 일하고 싶었어, 난...”말을 하던 서유라는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남설아는 참을 수 없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진짜 일하고 싶었다면 사원부터 시작했겠지. 처음부터 부팀장? 자기 얼굴이나 한 번 보시지. 자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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