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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1화

예전이었으면 남설아는 그녀가 정말로 자신을 걱정해서 도와주려고 하는 거로 생각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서유라의 비꼬는 말투가 무슨 뜻인지는 남설아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그녀는 서유라를 신경 쓰지도 않고 곧장 배서준을 바라보며 물었다.“서준 씨도 그렇게 생각해요?”“회사에 출근하는 이상 직원으로서 회사 규정을 따라야 해. 특별 대우는 있을 수 없어.”배서준은 차가운 얼굴을 하고 단호한 태도로 말했다.배서준의 그런 모습을 본 남설아는 코웃음을 치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좋아요. 그렇다면 대표님께서도 솔선수범해 주세요. 내가 알기로는 내가 오기 전부터 이미 기술팀에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약속된 상태였어요. 그런데 오늘 결재 서류를 올렸을 때 서준 씨가 거부했죠. 그건 무슨 뜻이죠? 내가 기술팀을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현재 업무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그러니 명확한 설명을 해주세요. 이 보너스가 도대체 뭐가 규정에 어긋난다는 거죠?”남설아는 한 마디 한 마디 논리를 펼쳐가며 말했다. 공사 구분해서 업무를 본다고 하니, 그야말로 반가운 소리다. “그런 게 아니야. 서준이는 너무 바빴을 뿐이야. 일부러 지급을 안 한 게 아니라고. 아무리 직원들 마음을 사서 좋은 평판을 얻고 싶다고 해도 이렇게 월권행위를 해서는 안 되지.”서유라는 한숨을 쉬며 근심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정말 배건 그룹을 위해 걱정하는 줄로 오해할 것이다. “나는 내 돈으로 보너스를 지급했어. 이게 회사 규정을 어긴 건가? 나를 문제 삼으려고 온 거라면 먼저 사실부터 정확히 조사하는 게 맞지 않아? 재무팀에 가서 내 지출 증빙과 결재 서류를 확인해 봤어? 아니면 회사 장부에서 돈이 사라지기라도 했나?”남설아는 코웃음을 치며 말하고는 자신의 계좌 이체 명세를 꺼내 보였다. 이들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그녀를 몰아세웠지만, 그녀는 확실한 증거를 갖고 있었다.‘본인 돈이라고?’서유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설아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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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2화

“서준 씨, 지금 여기서 비서랑 이렇게 쓸데없이 얽매일 시간은 있으면서 정작 보너스 서류는 결재할 시간이 없어요? 이게 대표이사가 할 짓이에요?”남설아는 서유라에게 쏘아붙인 후 다시 배서준에게 시선을 돌렸다.“지금 당장 결재해요. 보너스는 한 푼도 빠짐없이 지급해야 합니다.”“남설아, 그렇게 날 몰아붙일 필요는 없어. 보너스야 별거 아니지만, 계약을 못 따내게 되면 네가 계속 이렇게 날뛸 수 있을지 두고 보겠어.”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남설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서유라의 손을 잡아끌고는 자리를 떠났다.서유라는 새침하게 그의 곁에 바짝 붙어 잔뜩 위축된 모습으로 가는 내내 훌쩍였다.“서준아, 미안해. 다 내 잘못이야. 너까지 난처하게 만들었어. 하지만 정말 고의가 아니었어. 그저 네가 걱정돼서 그런 거야. 설아 씨가 아직도 우리한테 앙심을 품고 있어. 게다가 저렇게 많은 걸 쥐고 있으니, 너한테 해코지할까 봐 너무 걱정돼.”서유라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눈물을 흘렸고 얼굴엔 깊은 자책과 억울함이 서려 있었다.“남설아가 가진 것들로는 나를 건드리지 못해.”배서준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에게는 그것들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결국 배씨 가문의 재산은 배씨 가문 사람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남설아 같은 외부인은 단 한 푼도 손에 넣을 수 없을 것이다.그 말을 들은 서유라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 하지만 남설아가 할아버지에게서 금고 두 개를 상속받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질투심 때문에 미칠 것 같았다.회사 지분은 당장 현금으로 쓸 수 없지만, 금고 안에는 진짜 돈이 있을 것이다.그 생각이 들자, 서유라는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의 금고는 원래 네 것이어야 해. 설아 씨가 뻔뻔하게 그걸 차지한 거야. 서준아, 다 내 잘못이야. 나만 없었더라면 설아 씨가 널 이렇게 괴롭히지는 않았을 텐데.”“바보야, 남설아가 뭔데 어떻게 나를 괴롭힌다는 거야?”배서준은 미소를 지으며 다정하게 서유라의 눈물을 닦아주었다.“됐어. 걱정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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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3화

휴대폰으로 전송된 사진을 확인한 남설아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이제는 쓰레기만도 못한 저 두 남녀가 어떤 애정 행각을 벌인다 한들, 더 이상 어떠한 감정의 동요도 없었다.한심한 남자와 저급한 여자, 아주 천생연분이다.비록 이 사진이 지금 당장은 별다른 힘을 가지진 않겠지만 필요한 순간에 적절히 풀어준다면 꽤 괜찮은 동정표를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남설아는 사진을 바로 저장해 두고 다시 업무에 집중했다. 조금 전의 소란 때문에 기술팀 내부 분위기가 어딘가 묘하게 변해 있었다.회사 사람들은 남설아와 배서준이 부부 관계라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비록 대부분이 이과 출신이라 사내 소문에 둔감하긴 했지만, 이 정도의 큰 이슈는 귀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그런데 오늘, 배서준이 다른 여자를 데리고 와서는 남설아를 몰아세우고 오히려 그 여자 편을 들며 감싸는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이다.자기 남편이 이러는 모습을 본다면 누가 됐더라도 속이 상할 것이다.하여 모두 남설아를 위로해줄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남설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더 집중해서 업무를 보고 있었고 이전보다 더 몰입하는 듯 보였다.이 모습을 지켜보던 한원준은 뭔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어 한참을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팀장님, 괜찮으세요?”“제가 왜요? 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요? 혹시 보너스 때문에 하는 말이면 걱정하지 말아요. 그건 저의 작은 성의일 뿐만 아니라 팀원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몫이에요.”남설아는 미소를 지으며 방금 일어난 일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어차피 망신당한 쪽은 그녀가 아니라 그 두 사람이었다.배서준은 이제 서유라를 위해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회사 규정을 무시하고 회사에 들여놓은 것도 모자라 아예 그녀가 제멋대로 하도록 내버려 두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회사 전체가 엉망이 될 것이다.그런 생각이 들자, 남설아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지금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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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그녀는 전혀 거만한 태도가 없었고 전체적으로 매우 소탈했다. 심지어 식사하러 온 가난한 대학생들과도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어? 이런 우연이! 설아도 여기 있었어?”강연찬은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밖에서 걸어 들어왔고 손에는 남설아가 가장 좋아하는 히아신스꽃을 들고 있었다.“남 팀장님, 혹시 밥 좀 얻어먹어도 될까요?”장난스럽고도 다정한 그의 모습에 남설아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밥은 얻어먹어도 되지만 식기는 혼자서 가지고 와요.”그러면서 히아신스를 자연스럽게 받아서 자신의 옆에 두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생각은 없었다. 어쨌든 지금 그들은 라이벌 관계에 있는 회사 소속이었고 같은 분야에서 경쟁하고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다들 젊은 기술자들이라 금세 어울려 분위기가 활기를 띠었다.남설아는 술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자, 사양하지 말고 마셔요. 마음껏 먹고 마시자고요. 오늘은 제가 쏩니다.”그때 배서준이 서유라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 들어오자마자 이 장면을 본 그는 순간 넋이 나갔다.눈앞의 남설아는 생기 넘치고 활기찼다. 그런 모습은 배서준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였다. 분명 자신이 그녀를 가장 잘 안다고 생각했었다. 둘 사이에는 한때 아이도 있었고 오랜 시간 부부로 지내왔으니 말이다. 그런데 지금 배서준은 그녀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어쩌면 그가 잘 안다고 생각했던 남설아는 그저 착각에 불과했던 것일지도 모른다.“설아 씨도 여기 있었어? 나... 몰랐어.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누나, 사과는 무슨 사과야. 누나랑 무슨 상관인데? 여기에 남설아만 있는 것도 아니고 강연찬도 있잖아?”서도현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배건 그룹이 사업 전환을 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 주원 그룹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남설아가 기술팀 전체를 데리고 강연찬과 함께 식사하고 있다니, 대체 무슨 의도란 말인가.배서준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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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이는 명백한 도발이었다. 하지만 강연찬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시계를 한 번 흘깃 보더니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남은 회의가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다음에 다시 봐요.”그리고는 남설아를 보며 말했다.“설아야, 먼저 갈게. 잘 먹고 좋은 시간 보내.”강연찬은 부드럽게 웃으며 손을 뻗어 배서준을 지나쳐 남설아의 머리를 가볍게 헝클어뜨렸다. 다정하고 익숙한 태도였다.둘 사이에 특별한 신체 접촉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자연스러운 친밀함은 배서준의 주먹을 조용히 움켜쥐게 했다.옆에 서 있던 서유라는 더욱 난감했다. 배서준이 이렇게까지 유치하게 강연찬과 신경전을 벌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예전에 나은이 죽었을 때도 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체 언제부터 저 여자를 이렇게까지 신경 쓰게 된 건가 말이다.남설아 이 여자는 정말 재앙과도 같은 존재였다. 반드시 사라져버려야 하는 사람이다.그때 서도현이 불만스럽게 입을 열었다.“매형, 지금 뭐 하는 거예요?”“네 누나도 이제 우리 회사 직원이고 너도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며? 미리 동료들하고 친해지는 게 좋잖아. 앉아서 같이 먹자.”배서준은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며 서유라에게 자리를 권했다.서도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흥분해서 말했다.“매형, 그거 진짜예요? 정말 내가 회사에서 일할 수 있는 거예요?”“홍보팀에 자리가 남아 있으니까, 바로 출근하면 돼.”배서준은 무심한 듯 대답했지만, 은근슬쩍 남설아의 반응을 살폈다. 혹시라도 그녀의 표정에서 미묘한 변화가 있을까 싶어서였다.하지만 남설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홍보팀이든, 마케팅팀이든, 배건 그룹 내부 일이야 그녀와 무관했다.그녀가 신경 쓰는 것은 오직 기술팀이었다. 그 핵심 인재들만 꽉 붙잡고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 생각에 남설아는 피식 웃음을 웃으며 말했다.“유라 씨, 정말 축하해. 이제 회사 청소부 자리까지 어머님께 가게 된다면 진짜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겠네.”“설아 씨, 내 동생도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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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화

“내 말은 우리 부서 직원들이랑만 노래방에 가겠다는 뜻이에요. 서준 씨는 비서랑 예비 처남이나 잘 챙기세요.”남설아는 단칼에 거절했다. 그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배서준은 원래 이런 분위기를 싫어했었는데 왜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따라오려고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남설아의 말이 끝나자마자 배서준의 얼굴이 굳어졌다.“무슨 뜻이야?”“내 말 그대로예요. 나는 당신이랑 놀고 싶지 않다고요. 노래방에 가고 싶으면 당신들끼리 가요. 우리는 같이 안 갈 거예요.”남설아는 단호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이건 비단 그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여기 앉아 있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다만, 아무도 감히 입 밖에 내지 못할 뿐이었다.남설아는 주주였고 대표의 부인이었지만 이들은 그저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다.“설아 씨, 아무리 서준이를 싫어한다고 해도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서유라는 난처한 듯 한숨을 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남자는 바깥에서 체면이 중요한 법이에요. 당신이...”“남자의 체면이 중요하다는 걸 알면서 당신은 왜 그렇게 뻔뻔하게 굴어? 내 남편을 빼앗고 내 아이의 아버지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내 앞에서 훈계질까지 하겠다는 거야? 정말 염치도 없구나. 뻔뻔해서 못 봐주겠어.”남설아는 비웃으며 날카롭게 서유라를 몰아붙였다.“남설아!”배서준이 책상을 내리치며 소리쳤다.하지만 남설아는 이제 그런 그의 분노쯤은 대수롭지 않게 넘길 줄 알았다.그녀는 테이블을 둘러보며 직원들에게 말했다.“끝까지 재밌게 회식을 진행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해요. 다들 조심히 들어가고 내일 제시간에 출근해서 봐요.”이런 불청객들이 끼어든 마당에 계속 자리를 함께해봤자 어차피 분위기만 더 망칠 뿐이었다.괜히 시간 낭비하느니 차라리 일찍 들어가서 쉬는 게 나았다.한원준이 가장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오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 그리고 대표님도 감사합니다. 팀장님, 내일 뵙겠습니다.”그를 시작으로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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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화

서유라는 조용히 배서준의 뒤를 따라 걸으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집에 도착하자 그녀는 차에서 내리기 전 조심스럽게 배서준을 올려다보았다.“서준아, 나랑 도현이 정말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거야?”“내가 너한테 약속한 건 반드시 지켜.”배서준은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푹 쉬어.”그는 그렇게 말한 뒤, 차에 올라 그대로 떠났다. 서유라를 바라보던 서도현은 답답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언성을 높였다.“누나, 대체 왜 그래? 배서준이 남설아한테 대하는 태도가 전이랑 완전히 달라진 거 모르겠어? 누나는 불안하지 않아?”“너도 보아낸 걸 내가 모를 것 같아? 마음이 떠난 남자를 누가 무슨 수로 붙잡아. 내가 신이라도 되는 줄 알아?”그녀는 서도현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네가 계속 내 발목을 잡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까지 될 일은 없었어. 안 그래?”그 말에 서도현은 억울함에 목소리를 높였다.“누나가 무능한 건 누나 탓이지, 왜 나한테 뒤집어씌워? 양심도 없냐?”“닥쳐. 지금 우리한테 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너도 알잖아. 이렇게 가다간 우린 끝장이라고.”서유라는 차갑게 말을 내뱉다가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배서준이 인제 와서 후회해도 소용없어. 두 사람 사이에는 한 생명이 가로막고 있거든.”서도현은 그녀의 앞에 바짝 다가서며 말했다.“그러네. 그럼 내가 사람을 시켜서 남설아를 죽여버릴게. 그럼 불안 요소가 없게 되잖아?”“멍청한 소리 그만해.”서유라는 단호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지금까지 애써 만든 걸 절대 물거품으로 만들진 않을 거니까.”그녀는 그렇게 말한 후, 서도현을 끌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한편, 남설아는 가게를 나온 후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주변의 야시장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대학교 다닐 때는 주머니 사정이 넉넉하지 않아서 늘 이곳을 맴돌곤 했다. 그녀가 입던 옷도, 생활용품도 전부 여기서 샀었다.지금은 그때보다 돈이 훨씬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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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8화

배서준과 함께일 때, 남설아는 늘 그에게 어울리는 아내가 되려고 애썼다.그러다 보니 자신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마음껏 먹었던 게 언제였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역시 맛있는 음식은 크게 한입 베어 먹어야 제맛이다.강연찬은 따뜻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금의 그녀는 마치 풀밭에서 신나게 뛰노는 토끼 같았다. 그는 자연스럽게 휴지를 집어 들고 그녀 입가의 묻은 양념을 닦아주며 말했다.“아무리 맛있어도 천천히 먹어. 누가 빼앗아 가는 것도 아닌데.”그의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웠지만, 남설아는 자기 심장이 터질 듯이 뛰는 걸 무시할 수 없었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씹는 속도를 늦추고 강연찬을 올려다보았다.“연찬 오빠, 이렇게 잘해주면 내가 감당이 안 돼요.”“내가 너한테 잘해주고 싶어.”강연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말했다.“네가 감당할 수 있는지는 네 문제고, 내가 잘해줄지는 내 문제야.”‘이 사람이 언제 이렇게 뻔뻔해진 거지?’남설아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계속 음식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식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서둘러 돌아가지 않고 야시장을 천천히 거닐었다.이곳에는 없는 게 없었다. 둘은 시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둘러보며 이것저것 사다 보니 어느새 손이 가득 찼다.“너 몇 살인데 아직도 이런 자잘한 것들을 좋아해?”강연찬이 그녀의 손에 들린 물건들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냥 좋아요.”남설아는 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그리고는 강연찬이 든 물건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말했다.“아무래도 고급스러운 생활이 내 체질에 안 맞는 거 같다. 그런 딱딱한 생활보다 이렇게 사람 냄새나는 생활이 더 좋아.”그때, 어디선가 힘없는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남설아는 본능적으로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주먹만 한 작은 치즈 고양이가 몸을 움츠리고 있었다. 다른 건강한 새끼 고양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작고 연약해 보였다.그 순간, 남설아는 불현듯 자기 딸, 나은이가 떠올랐다. 나은이가 태어났을 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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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화

그는 남설아가 그렇게 바쁘면서도 왜 작은 고양이를 키우면서까지 위안을 얻으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코코, 내가 엄마야.”남설아는 조심스럽게 작은 고양이를 안아 들었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그녀는 고양이를 강연찬에게 내밀며 말했다.“오빠, 봐요. 예쁘지 않아요?”이 작은 덩어리는 온통 먼지투성이였고 딱히 예쁘다고 할 만한 구석이 없었지만, 강연찬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집에 데려다줄게.”가게 주인은 그들이 정말로 이 고양이를 좋아하는 것으로 보였는지 고양이에게 아직 사료를 먹이면 안 된다며 염소젖 분유 한 봉지를 건네주었다.집으로 가는 내내 남설아는 고양이를 품에 안고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코코를 보고 있으면 나은이가 떠올랐다. 가슴 한구석이 뭉클해지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차올랐다.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나은이가 돌아온 거예요. 내 나은이가 돌아왔어요.”강연찬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시렸다. 그녀가 딸에 대한 그리움을 한 마리 고양이에게 투영할 줄은 몰랐다.그는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남설아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가슴 한편에서 느껴지는 거부감을 억누른 채 그녀와 고양이를 함께 집까지 데려다주었다.집 앞에 도착하자 강연찬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남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고양이를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야. 조심해야 해. 내일 병원에 데려가서 건강 상태를 확인하자, 응?”“네.”남설아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짐을 챙겨 안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불쾌해졌다.배서준이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우아하게 다리를 꼬고 있었지만, 온몸에서 날카로운 분노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그녀가 들어서는 순간, 배서준의 표정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는 탁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리며 낮고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돌아오길 네 시간이나 기다렸어. 어디 갔다 왔지?”남설아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조심스럽게 고양이를 담요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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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화

남설아는 자신이 배서준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 사람과 어떤 친밀한 접촉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끝없는 혐오감만이 밀려올 뿐이었다.눈물이 그녀의 눈가를 따라 흘러내렸다. 남설아는 배서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난 너를 증오해.”그녀의 눈물과 가감 없는 드러낸 증오심에 배서준은 그 자리에서 얼어붙고 말았다.배서준은 멍하니 그녀 위에 엎드린 채 그녀의 눈물을 마주했다. 생전 처음으로 그는 극도의 혼란을 느꼈다.“너... 이걸 원한 게 아니었어?”배서준은 갈라진 목소리로 힘겹게 말했다.“꺼져!”남설아가 날카롭게 외쳤다. 그녀의 눈에는 오직 혐오와 분노만이 가득 차 있었다.그 모습을 본 순간, 배서준의 가슴이 묘하게 찌르르 아팠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차가운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그러나 손끝이 그녀의 뺨에 닿는 순간, 그는 그대로 뒷걸음질 쳤다도망치듯 방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이 사라지자마자 남설아는 침대에 엎드려 참아왔던 울음을 터뜨렸다.문이 닫히자마자 장숙자가 허겁지겁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그녀는 엉망이 된 침대와 손이 묶여 있던 남설아를 보고는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급히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묶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주었다.“설아 씨, 괜찮아요?”“괜찮아요.”남설아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저으며 장숙자에게 나가서 쉬라고 말했다.장숙자는 그녀의 상태를 살피다가 다행히 무슨 일이 벌어진 건 아니라고 판단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용히 방을 나섰다.남설아는 흐르는 눈물을 거칠게 닦아내고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그러자 거실 한쪽, 카펫 위에서 웅크리고 떨고 있는 코코가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빠르게 다가가 코코를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 코코. 무서워하지 마. 엄마가 널 지켜줄게. 꼭 지켜줄 거야.”코코는 그녀의 체온을 느꼈는지 마치 그녀의 말을 이해한다는 듯 그녀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그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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