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Chapter 281 - Chapter 290

304 Chapters

제281화

소우희는 혜주에게 말했다.“내 몸에 약 좀 발라주렴.”유 의원이 준 약은 효과가 그리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주었다.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이 이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혜주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게 혜주는 소우희의 몸에 정성껏 약을 바르기 시작했다.혜주는 한때 매끄럽고 깨끗했던 소우희의 피부가 온통 긁힌 자국으로 뒤덮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 긁힌 부위에 가느다란 핏줄들이 마치 피부를 뚫고 나오려는 듯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혜주가 깜짝 놀라 몸을 떨자 소우희도 덩달아 자신의 몸을 내려다봤다. 그녀의 팔다리에는 검은 점들이 수도 없이 생겨 있었다.소우희가 급히 문지르자, 검은 핏줄들이 정말로 피부를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다행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것도 잠시, 손목의 검게 물든 핏줄이 특히나 섬뜩하게 다가왔다.이 독을 빨리 치료하지 못한다면 내일은 또 어떤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그리고 이지윤은 지난번 그녀와 함께한 후로 한 번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하인의 말에 따르면 세자는 멀리 길을 떠났다고 한다. 신의를 직접 초빙하러 떠난 길이자 앞으로의 큰일을 준비하는 일이라고 했다.이지윤이야말로 그녀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조금의 원망 섞인 마음이 있었지만 지금은 참고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아얏! 좀 살살해. 너무 아프잖아.”소우희는 짜증스럽게 투덜거리며 말했다.“내가 반드시 소우연 그년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반드시 그렇게 하고 말겠어!”혜주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정성스레 약을 발라주었다. 피부의 상처가 워낙 심해서 약을 바를 때마다 피가 섞여 옅은 분홍색이 되어 흘렀다.약을 다 바르고 옷까지 제대로 입혀준 혜주는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우희를 향해 절을 했다. 커다란 눈망울로 소우희를 올려다보며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소우희가 조용히 물었다.“앞으로 계속 내 곁에서 날 보살펴 주고 싶은 거지?”혜주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혜
Read more

제282화

”장군부로 돌아갈 것이다.”“태자 전하께서는 허락하셨어요?”임진숙은 소우희를 쳐다보며 말했다.“그래, 허락하셨다. 그런데 얼굴은 왜 그러느냐?”얼굴을 온통 긁어 붉은 자국투성이였다.소우희는 억울해 울먹이며 말했다.“소우연 그 애가 저한테 독을 썼어요! 너무 가려워 미칠 지경이에요!”“정말…”임진숙은 발을 구르며 안타깝게 소리쳤다.“이 못난 것, 정말 못난 것 같으니라고!”이 일은 예전에도 소우희가 말한 적이 있어, 다 해결된 줄만 알았다.그런데 지금 보니 그녀의 얼굴은 어둡고 칙칙했으며 긁힌 자국이 너무 심해 마치 마마 자국이라도 난 것 같았다.소한준의 다리도 아직 낫지 않았건만, 이제는 소우희의 얼굴까지 이 꼴이 되었으니 임진숙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어서 태의를 불러 진맥을 받아 보아라.”어쨌든 본인은 평춘왕비인데, 태의 정도는 얼마든지 부를 수 있지 않은가?그때 소한준이 싸늘한 말투로 비웃으며 말했다.“남을 해치려다가 자기가 당한 거니 자업자득이지요.”“오라버니…”갑자기 들려온 독설에 소우희는 정신이 멍해졌다. 방금 자신을 향해 차갑게 비웃던 사람이 소한준이 맞나?어렸을 때부터 누구보다 자기를 아껴주었던 셋째 오라버니가?“더 이상 날 셋째 오라버니라고 부르지 마라. 지난번에 이미 말했지만, 난 이제 너 같은 동생 없다.”소한준의 눈에는 증오와 분노가 가득했다.그가 소우희를 증오하는 이유는 그녀가 온 가족을 속여 자신이 의술을 할 줄 안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그녀는 거짓말이 들통난 뒤에도 자신을 끝까지 속였다.소한준은 소우희가 그저 소우연과의 갈등을 해결하려는 거라 믿고 도왔지만, 그녀는 오히려 소우연을 해치려 하고 심지어 그녀의 얼굴까지 망가뜨리려 했다.도저히 구제할 수 없는 악독함이었다.소한준은 장군이었다!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워도 두려운 것이 없었다.그러나 이제 두 다리가 망가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전부 다 소우희 때문이었다. 그녀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이육진이
Read more

제283화

말을 마친 임진숙은 호위병들에게 소한준을 데려가도록 명한 뒤, 그대로 큰 무리를 이끌고 떠났다.“양심이 없다고요? 어머니, 지금 뭐라 하셨어요!”“난 아니에요! 난 아니라고요!”“가장 악독한 사람은 소우연이에요! 재수 없는 그 계집애라고요!”소우희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울부짖으며 항변했다.평춘왕부의 하인들은 멀찍이 서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은 모두 안타까운 듯 작게 고개를 흔들었다.세자 저하가 현명하시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 이 여인은 어떻게 봐도 복이 없어 보였다.오직 질투와 증오뿐, 조금의 넓은 마음씨도 없었다.“뭘 봐? 보지 마! 전부 다 고개 돌려!”소우희는 미친 듯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그녀가 하늘을 올려다보자, 방금 전까지 푸르고 맑던 하늘이 갑자기 어둡게 물들더니 먹구름이 무겁게 몰려오기 시작했다.거센 바람은 마당의 나무들을 사납게 흔들었고, 가지는 금방이라도 꺾일 듯 위태롭게 흔들렸다.“모두 나를 괴롭히는구나! 하늘마저 나를 괴롭히려 드느냐? 내가 태어났을 때 하늘에서 상서로운 구름이 내려왔단 말이다. 난 분명 봉황의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란 말이야!”“그런데 왜! 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지?”“아니야! 난 지지 않아! 난 절대 지지 않을 거야!”먹구름 사이를 번개가 가르더니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소리가 곧장 이어졌다.한 하인이 용기를 내어 외쳤다.“마마, 비가 옵니다. 어서 들어가세요!”세자는 소우희가 이 시련을 이겨낸다면 다시 한번 기회를 줄 의향이 있다고 했다.바로 그때, 소우희는 눈앞에 수많은 날벌레가 날아다니는 듯했다. 심지어 벌레들이 그녀를 비웃으며 속삭이는 소리까지 들렸다.“넌 이제 더 이상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 아니야.”“지금 넌 그저 불쌍한 벌레일 뿐이지. 네 자존심도, 가족도 전부 널 버렸어. 마치 예전의 소우연처럼. 넌 이제 아무 쓸모도 없어.”“닥쳐! 전부 닥치란 말이야!”소우희는 날벌레들을 쫓아내려고 팔을 휘두르며 비틀비틀 마구 걸어 다녔다.본채 뒤뜰에서, 흰
Read more

제284화

“그렇다고 할 수 있다니?”무슨 뜻이지?소우희는 아령의 청아한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아니, 지금은 화장을 한 것 같았다. 소우연처럼도, 평서왕세자빈처럼도 아닌 모습이었다.왠지 모르게 소우희는 이 아령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지금 다른 걸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하인의 말이 떠올라 그녀는 급히 물었다.“하인이 네가 의술에 능하다고 하던데 사실이냐?”아령이 고개를 끄덕였다.“예.”“그럼 내 몸 좀 살펴봐라. 소우연 그년이 도대체 어떤 독을 썼는지.”소우희는 아령에게 손목을 내밀었다.손목 위로 검푸른 핏줄이 뚜렷이 드러나 있었고, 그 흑색의 기운이 팔꿈치까지 번져 있었다.아령은 별말 없이 그녀의 맥을 짚었다.“어떠냐?”아령의 미간이 자꾸 찌푸려지자 소우희는 초조해져 다급히 물었다.“왕비 마마, 맥상으로는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습니다만… 분명 독에 중독된 것이 맞습니다.”소우희의 얼굴과 온몸에 긁힌 자국을 보면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그럼 치료할 수 있느냐?” 소우희가 간절히 물었다.치료할 수 있느냐고?치료할 수 있다 해도 소씨 가문의 사람을 도와줄 이유는 없었다.아령은 마음속으로 경멸하면서도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고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소녀의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습니다.”그 말에 소우희는 화가 나 테이블 위의 차와 찻잔을 모두 바닥에 내던졌다. 쨍그랑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혜주가 황급히 바닥을 치우러 달려왔다.소우희는 의심의 눈초리로 아령을 쏘아보았다.“치료할 수도 없으면서, 오늘 여긴 왜 온 것이냐?”아령은 담담히 대답했다.“소장군의 상태를 보고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려 왔지만, 안타깝게도 소녀가 능력이 부족했습니다.”소우희는 아무래도 아령이 자신을 놀리러 온 게 아닌가 싶었다.하지만 아령은 이지윤의 사람이었고, 그동안 백화루에서 편히 지내왔으니 자신이나 소씨 가문과 원한을 맺을 일은 없을 터였다.밖의 천둥 소리가 점점 잦아들었지만 빗줄기는 여전히 거셌다.소우희의
Read more

제285화

“어떻게 이 사실을 알았을까?”혜주는 난감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마음이 복잡해졌다.한때 자신이 모셨던 주인이 이렇게 몰락하고 처참한 모습이 되니 웃어야 할지, 동정해야 할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동정하자니, 사실 진정 불쌍한 건 자신이었다. 평생을 얌전히 소우희 곁에서 충성을 다했건만 결국 혀까지 잘려 말을 잃었으니 말이다.그런데도 소우희를 전혀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었다.소우희는 말을 하지 못하는 혜주를 붙잡고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도 몸이 계속 가려워 혜주에게 등을 긁어 달라 부탁했다.왠지 모르게 자신에게 불운이 끊임없이 찾아오는 기분이었다.“으악!”갑작스러운 비명소리에 그녀의 동공은 심하게 떨리고 있었고, 두려움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소우희는 갑자기 등 쪽에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그녀는 혜주의 손에 들린 피부 조각을 보고 말았다.순간 머리끝부터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소우희는 숨조차 쉬지 못한 채, 혜주의 손톱에 걸린 자신의 살점을 바라보다 한참 뒤에야 비명을 터뜨렸다.……비는 꼬박 사흘 동안 내렸다.사흘 뒤, 드디어 날이 개었다.소우연은 만안당에서 무료 진료를 보고 있었다.임진숙이 나인을 데리고 찾아왔고, 정연은 급히 소우연에게 말했다.“마마, 그분이 또 여기까지 따라왔습니다.”비가 오던 지난 이틀 동안 임진숙은 태자부의 별채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오늘 날씨가 맑아 만안당으로 진료를 보러 나왔더니 여기까지 쫓아온 것이다.“진우야.”병풍 밖에서 기다리던 진우가 서둘러 들어와 주먹을 모아 예를 올렸다.“예, 마마.”“신경 써서 조용히 처리해라. 눈에 띄지 않게 보내거라.”어렵게 자신과 이육진을 위해 조금이나마 좋은 평판을 쌓아 올렸는데, 임진숙이 계속 이렇게 집요하게 따라오면 남들이 그녀를 불효녀라고 할 것이 뻔했다.지금 그녀는 태자빈이었다.이육진과 운명을 함께하는 처지인 만큼, 절대로 소씨 가문 사람들에게 휘둘려서는 안 되었다.진우는 명령을 받고 밖으로 나가
Read more

제286화

“연아.”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뒤를 돌아보니, 흰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었다. 품에는 얼룩 고양이 한 마리를 안고 있었다.이민수가 곧장 다가오더니 물었다.“잘 지내고 있었느냐?”“세자 저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내가 여기 오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느냐?”소우연은 조용히 말했다.“방금도 들으셨겠지만, 평서왕께서 방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조문을 가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조문은 나중에 해도 되지.”“나중에라…”소우연은 그를 지나쳐 하늘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날이 좋았다.하얀 구름이 유유히 흘러가고, 비 갠 뒤의 하늘은 맑고 투명하게 펼쳐져 있었다.“소우희는 지금쯤 미쳐 있을 겁니다.”“그 아이가 왜?”이민수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봤다.매일 똑같이 보던 하늘, 특별할 것도 없는 파란 하늘과 구름이었다.그가 아는 소우희라면, 평서왕 같은 까다로운 인물이 죽었다는 소식에 오히려 기뻐했을 것이다.소우연은 더는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담담하게 말했다.“곧 연락이 불겠군요. 전 이만 돌아가겠습니다.”“연아…”“세자 저하, 제 이름을 그렇게 부르는 건 예의가 아닙니다.”“그래… 알았다.”“태자빈 마마. 태자 전하의 다리를 치료한 사람이,,, 마마가 맞으십니까?”소우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말했다.“맞습니다. 제가 했습니다.”“그럼... 마마께선 절 속인 거군요.”“저하가 절 속인 것처럼, 저도 속였을 뿐이에요. 굳이 따질 이유가 있을까요?”이민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처음 소우희가 마마가 변했다고 했을 때, 전 믿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 보니... 마마께선 정말 많이 변하셨군요.”“그래요. 전 변했어요. 안 변했으면, 진작 당신들 손에 뼈까지 발린 채 죽었겠죠.”이민수는 비웃는 듯 웃으며, 품 안의 고양이 배꽃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제 마음은 하늘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소우연도 웃었다. 조롱 가득한 웃음이었다.하늘이 안다니, 우습기 짝이 없었다.전생의 기억이
Read more

제287화

얼마 지나지 않아, 간석이 찾아와 웃으며 말했다.“태자빈 마마, 태자 전하께서 마마를 서재로 모시랍니다.”“지금?”“예.”갑자기 지금이라니.서재엔 분명 용강한과 심소균이 있을 텐데, 자신이 끼어들어도 괜찮은 걸까?이육진이 무슨 생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소우연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어차피 피해갈 수 없다면, 부딪히는 수밖에.다만… 용강한.그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그는 대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소우연은 먼저 부엌으로 향해 다과를 준비하고, 차를 정성껏 우리어 정연과 함께 서재로 향했다.문을 두들기려던 순간, 문이 먼저 열렸다.놀란 마음에 움찔한 그녀를 보며, 이육진은 이마에 손을 얹어왔다.“왜 그러느냐? 얼굴빛이 좋지 않구나.”“작은 다과를 준비했어요. 전하께서 허기지실까 싶어서요.”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우연의 손을 잡아 서재 안으로 이끌었다.정연과 명심은 차와 다과를 조심스레 놓고는 손님들에게 예를 갖춰 찻잔을 올렸다.용강한과 심소균은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췄다.“태자빈 마마, 평안하셨습니까.”“편히 하십시오.”소우연이 가볍게 답례하자, 이육진은 정연과 명심을 물렸다.이 자리에 함께 있는 게 과연 맞는 일인지… 그녀는 점점 심장이 조여드는 기분을 느꼈다.“태자빈 마마께서 꽤나 긴장하신 듯합니다.”걸상 위에 자연스럽게 앉아 청석 염주를 돌리던 용강한이 입을 열었다.마치 이곳이 제 집인 양 태연한 모습이었다.심소균은 그 아래에 둥근 의자를 가져다 앉아 있었고, 이육진은 그녀를 곁에 앉히고선 조용히 손을 꼭 잡았다.그 순간, 용강한의 말이 이어졌다.“마마, 제가 드린 말씀이 불편하셨다면 사과드리죠.”소우연은 목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다.“용 대인의 농이 조금 지나치셨습니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요즘 소우희의 명운이 급격히 기울고 있습니다. 흐름은 모두 좋은 쪽으로 향하고 있지요.”왜 갑자기 소우희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소우연은 본능적으로 이육진을 바라봤고
Read more

제288화

서재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아무도 소우연이 이렇게까지 격하게 반응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이육진은 조용히 웃으며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 위를 토닥였다.그의 손끝엔 다정함과 진심이 깃들어 있었다.“용 대인이 말한 건, 이민수의 운세가 강하다는 거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야.”“맞습니다, 마마. 너무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용강한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며, 속으로 잔잔한 파문을 느꼈다.자신이 목숨을 걸고 되돌려준 이 생이, 정말 그녀에게 옳은 것이었을까.소우연도 그제야 자신이 다소 격해졌음을 자각하고, 목소리를 낮췄다.“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태자 전하께서는 이 나라의 정통 황태손입니다. 감히, 이민수 따위가 넘볼 자리가 아니지요.”그녀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다시 말했다.“아니요, 비교조차 할 수 없어요. 그 자는 애초에 겨룰 자격조차 없습니다.”심소균이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하하, 옳은 말씀입니다! 태자 전하께선 건강하시고 학식도 뛰어나시며, 전장에서 무공까지 세우신 분이십니다. 이런 분이야말로 진짜 황제가 되실 분이지요.”사실, 처음 용강한이 태자빈을 정치적 논의 자리에 부르자 했을 때 심소균은 회의적이었다.‘여인이 정사에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하지만 지금은 달랐다.생각지 못한 강력한 우군을 얻은 느낌이었다.이육진이 예전처럼 무기력하게 지내고 있었다면, 평서왕부는 분명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아니다.그깟 이민수가 무슨 자격으로 황태손을 넘본단 말인가?심소균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이육진과 용강한은 왜 그토록 이민수를 경계하는 것일까.그 순간, 용강한이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태자 전하, 이제 드려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이육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는 용강한을 믿었다.어릴 적부터의 우정도 있지만, 그보다도 그는 단 한 사람 황제의 뜻만 따르는 진짜 실세였다.사실 이육진이 소우연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도, 그녀가 진짜 신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예를 갖춘 것도
Read more

제289화

“그러면… 어마마마께선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 아무 말씀도 안 하신다는 거네요?”이육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방 안의 모두가 일제히 미간을 좁혔다.소우연은 애써 머릿속을 더듬었다. 원작의 내용을 떠올리려 했지만, 환생 이후부터였을까. 책 속의 많은 장면들이 이제는 희미하게만 남아 있었다.용강한의 말을 실마리 삼아 곰곰이 생각을 이어갔다. 대체 왜 평서왕부가 문제의 근원이라는 걸까.“폐하께선 겉으로 보기엔 덕빈마마를 총애하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후궁으로 봉하지 않으셨을뿐더러 태자 전하께서 황위에 오르셔도 어마마마를 태후로 올리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지요. 총애가 아니라… 그건 분명 증오일 거예요.”소우연은 담담히 입을 열었다. 고개를 들어 이육진을 바라보며 조용히 덧붙였다.“감정 섞인 말이 아닙니다. 지금으로선, 이 설명 외엔 납득할 길이 없어요.”이육진 역시 예전부터 마음속으로 그 의문을 품고 있었다.하지만 덕빈은 언제나 말했다. 자신이 원하는 건 폐하의 마음이지, 자리나 명예 같은 건 의미 없다고.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지만, 황제가 그에게 어머니를 태후로 삼지 말라는 맹세까지 요구했을 때 그는 비로소 깨달았다.아버지의 총애란 그저 꿈결 속 한순간의 착각이었음을 말이다.용강한이 말을 이었다.“평서왕부는 구조부터가 특별합니다. 세자인 이민수만이 정실 왕비 소생이고, 나머지 자식들은 모두 첩의 소생인데다 전부 딸들뿐이지요. 그리고 폐하께도 태자 전하 외엔 다른 아들이 없습니다.”이 모든 게 과연 우연일까?아니다. 용강한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 핵심은 분명 평서왕부 안에 있을 터였다. 진실을 알아내려면 반드시 실마리를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찢어내야만, 전모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황제가 덕빈을 증오하고 있다면, 그녀의 입에서는 결코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평서왕부를 직접 건드릴 수밖에 없었다.“그동안 평서왕부를 지켜봤지만, 단 한 번도 의심할 만한 흔적은 없었다.”이육진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소우연은 누구보다
Read more

제290화

본채로 돌아온 뒤 잠시 지나지 않아 저녁상이 차려졌다.소우연은 이육진과 나란히 식사를 마친 뒤 바둑 한 판을 두었고 이후 함께 탕에 몸을 담갔다.그 시간이 흐르자 이육진의 눈빛은 뜨겁게 달아올랐다.“연아, 준비는 되었느냐.”그가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소우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뻔히 알았지만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그러자 이육진은 고개를 갸웃했다.“아니, 명심이 네게 책을 하나 주지 않았더냐.”또 그 ‘품화보감’ 이야기였다.소우연은 고개를 들고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던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태자 저하께선 나라의 황태손이십니다. 그런 책은… 덜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이육진은 순간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그녀가 점잖게 타이르는 모습은 마치 황후가 후궁의 법도를 이야기하는 듯했다.“그 말도 일리는 있지. 허나 황태손인 만큼 자손을 남기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겠느냐.”“그동안은 네가 아플까 염려되어 물러섰지만 이대로는 우리가 어찌 주공의 예를 이루고 자손을 이어가겠느냐.”소우연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반면 이육진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장난기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제는 과거처럼 차갑고 위협적인 얼굴이 아니었다.아니, 그가 싸늘한 얼굴로 병영에서 돌아왔을 때는 눈빛 하나에도 살기가 서려 있었으니 지금처럼 온화한 모습은 오히려 낯설 정도였다.“응?”그녀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있자 이육진은 혹시 노한 건 아닌가 싶어 물었다.소우연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맞는 말씀이십니다.”그 말에 이육진은 흐뭇하게 웃더니 베개 아래를 더듬었다.그녀가 말리기도 전에 그는 ‘품화보감’을 꺼내 들었다.“그게 거기에 있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분명 정연이 몰래 숨긴 건데 어떻게…“그냥… 감으로.”정말 기가 막히게도 잘 맞췄다.소우연은 한숨을 삼키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는 천천히 옷을 벗어 옆의 행거에 걸고 침상 위에 올라 누웠다.“연아, 이리 오너라.”그는 손을
Read more
PREV
1
...
262728293031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