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 Chapter 41 - Chapter 50

73 Chapters

제41화

온모에게는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였기에, 대문을 향해 냉소를 짓고는 가소롭다는 듯이 말했다.“내가 온 걸 알면서도 대체 왜 만나주지 않는 거야? 언니도 가족에게 미안해서 차마 얼굴 보고 얘기할 용기가 없는 거야?”대문 안쪽에서 온사는 손에 물통을 들고 서 있었다. 그냥 지나가던 길이었는데 온모의 목소리가 들려서 걸음을 멈추었던 것이다.출가한 후로 그녀는 재빠르게 수월관 생활에 적응했다.아침저녁으로 경을 잃고 기도를 올리는 것 외에도 청소 같은 잡일들도 그녀는 도맡아서 했다.수월관에서는 그녀를 위해 단독으로 정원이 달린 독채를 내주었는데, 비록 소박하지만 조용하고 채소를 심을 공간마저 있어서 온사는 무척 마음에 들어했다. 전생에 거리를 방랑하던 경험이 있었기에 새로 생긴 거처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정원을 청소하다가 물을 길으러 나온 거였는데, 돌아가는 길에 온모의 목소리를 들을 줄은 몰랐다. 게다가 걱정해서 왔다니, 당치도 않은 소리였다.“미안? 저는 이미 불교에 발을 들인 사람이라 가족이 없습니다. 그러니 가족에게 미안함 같은 건 당연히 느낄 수 없지요.”그녀는 다시 물통을 들고는 싸늘한 목소리를 남기고 뒤돌아섰다.이때 밖에서 온모의 경멸에 찬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렇게 홀가분하다는 사람이 왜 오라버니들 몰래 어머니의 위패는 훔쳐갔을까?”“언니는 참 이기적이다. 란 부인의 위패를 가져갈 때 오라버니들 생각은 안 했어? 란 부인은 언니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잖아. 하물며 이 일을 아버지께서 아시면 절대 가만있지 않으실 거야. 그러니까 순순히 나랑 돌아가자. 어쩌면 내가 아버지 좀 달래드리면 조용히 넘어갈 수도 있잖아? 언니도 알겠지만 아버지는 나를 가장….”온모가 자랑을 늘어놓는 와중에 수월관 대문이 벌컥 열렸다.그렇게 앞 사람이 누군지 알아보기도 전에 차가운 물이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악!”졸지에 물에 빠진 생쥐가 되어 버린 온모가 비명을 질렀다.게다가 더 기가 막힌 건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
Read more

제42화

온모는 하는 수없이 또 수월관을 찾아갔다.그렇게 매일 마차를 타고 경성에서 남산까지, 그리고 남산에서 경성까지 며칠을 반복했지만, 온사를 다시 만나기는커녕 수월관 대문 안으로도 들어갈 수 없었다.원래는 참배하는 사람들 틈에 끼어서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했으나 수월관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수월관 대문이 닫혀 있는 사이, 향을 피우러 온 손님은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었다.있다고 하더라도 수월관 대문이 닫힌 것을 보고는 말없이 돌아갈 뿐이었다.마치 수월관이 이렇게 폐관하는 게 흔히 있는 일인 것처럼 아무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그렇게 며칠을 반복하자, 온모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산아래에 사는 촌부 한명을 매수하고 그 촌부를 시켜 수월관이 대체 언제까지 폐관하는지 알아보라고 명했다.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매우 절망적이었다.성녀께서 입관하여 나라를 위해 기도를 올리니 한 달을 폐관한다고 했기 때문이다.“한 달이나…?”온모는 참을 수 없는 분노에 이를 갈았다.‘온사 이년이 늙은 여승들이랑 짜고 날 골탕먹이려는 거네!’사람을 매수해서 정보를 캐내지 않았더라면 매일 헛수고를 할 뻔했다.온모는 눈에 힘을 주어 수월관 대문을 노려보고는 뒤돌아섰다.그 시각, 수월관 내부.온사는 기도 경문을 베낀 후, 평온한 마음으로 붓대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흡족한 표정으로 오늘 베낀 경문을 보고는, 아직 먹물이 채 마르지 않은 종이장을 책상 위에 펼쳐놓았다.“이제 물을 길으러 다녀와야겠네.”그렇게 수월관 생활은 조용하고 소박하며 알차게 지나갔다. 전생을 통틀어 온사에게는 지금이 가장 평온한 순간이었다.그녀는 이런 느낌이 너무 좋았다. 하지만 그 중 단 하나 불편한 것은 물이었는데, 매일 뒷산 산기슭까지 물을 길으러 다녀와야 했다.비록 공간 안의 시냇물을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 냇물의 기이한 효과를 경험한 후로는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막수 사태가 수시로 와서 그녀의 등 뒤 상처를 살피고는 하는데 수상하게
Read more

제43화

온사의 차분한 목소리에 북진연은 몰려왔던 짜증이 눈 녹듯 사그라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런데 얼마 안 가 그녀의 목소리가 멈추었다.눈을 떠보니 온사는 물을 긷고 있어, 그녀는 잠시 암기를 멈추고 나무통을 내려놓고는 냇가의 바위를 딛고 나무통 하나를 든 채 허리를 숙였다.이번 생의 그녀는 체력 노동을 거의 한 적이 없어서 힘이 매우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서 한 번에 물 반통을 담고도 겨우 들어올렸다.그러다가 부주의로 물이 쏟아지며 그녀의 발을 살짝 적셨다.온사는 누가 지켜보고 있는 것도 모르고 물통을 내려놓고는 다른 물통을 다시 냇물에 집어넣었다. 그녀가 물통을 들어올리려는데 갑자기 발이 확 미끄러져 넘어져 버렸다.“악!”첨벙 하는 소리와 함께 온사는 그대로 물에 빠져버렸다.북진연은 흠칫하며, 그녀를 구해주기 위해 다리에서 내려갔다.그런데 물로 내려간 후에야 냇물이 무릎 정도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온사도 다급히 일어섰다가 다리 근처에서 은발을 휘날리며 서 있는 북진연을 발견했다.“섭정왕 전하? 이 무슨….”온사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등 뒤에서 소리가 나서 고개를 돌린 것 뿐인데, 그곳에서 북진연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북진연은 어색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담담히 말했다.“이곳과 멀지 않은 곳에 사찰이 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여기서 쉬고 있었습니다.”온사는 그의 말을 듣고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런 거였군요. 그럼 계속 쉬십시오. 소인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그녀는 사내의 표정이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조심스레 뒤돌아서 냇가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가서 보니 물통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고개를 돌리자 물에 떨어졌던 나무통은 냇물을 따라 북진연의 앞으로 흘러가고 있었다.북진연은 묵묵히 손을 뻗어 물통을 잡고는 온사의 앞으로 가져왔다.“감사합니다, 섭정왕 전하.”그러자 온사가 다시 한번 감사인사를 올렸다.그러고 보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에게 가장 많이 한
Read more

제44화

북진연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래도 경계할 줄은 아네.’“걱정 마세요. 그대를 팔아먹지는 않을 테니.”그는 드디어 잡고 있던 나무통을 놓아주었다.온사는 나무통을 받고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었다.북진연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의학 서적은 다 알아보고 수집한 것입니다. 내일 가져다드리지요.”“그럼 감사….”온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주 선 북진연이 눈썹을 꿈틀거렸다.“섭정왕 전하께서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소인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물론 그녀는 지금 상황에서 존귀하신 섭정왕을 도와줄 수 있는 게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그래도 그녀의 확답을 듣고 상대의 표정이 조금은 나아진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오늘은 딱히 부탁할 게 없으니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예.”온사의 대답을 들은 북진연은 다소 상쾌해진 기분으로 사찰로 돌아갔다.밖에서 한참 땀을 뻘뻘 흘리며 그를 찾아 헤매던 부하들은 느긋하게 돌아온 북진연을 보고 놀라서 달려왔다.“왕야!”부장 고요는 자지러진 비명을 지르며 그의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드디어 돌아오셨군요. 대체 어디로 가셨던 겁니까? 저희들 하마터면 흑기군을 불러다가 남산을 포위할 뻔했습니다!”최근 들어 섭정왕의 두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매번 발작할 때면 그는 이성을 잃고 폭주하다가 자해 시도까지 한 적도 있었다.누군가는 섭정왕이 살육을 너무 많이 한 업보가 쌓여서 이런 저주가 걸렸다고 말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은발을 불길한 징조라고 말하며 섭정왕은 태생이 살성으로 태어났다고 말했다.심지어는 하늘의 미움을 사서 이런 요상한 병을 앓는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물론 고요를 비롯한 그의 부하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말이다.그들은 섭정왕과 함께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한 전우였다. 모시는 분이 살성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의 섭정왕이 그들을 이끌고 외적을 쓰러뜨리고 적국을 소멸하여 대명조를 위해 이렇게 넓은 영토와 태평성세를 가져왔다는
Read more

제45화

방금 멀쩡히 돌아온 섭정왕을 보고 아직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북진연의 두 눈은 핏발이 서 있고 안색도 약간 창백했다.북진연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비록 마음의 평온은 찾았지만 매번 발작을 일으킨 후에 나타나는 일련의 증세를 고요에게 다 숨길 수는 없었다.고요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비명을 질렀다.“이렇게 빨리요? 사라진지 얼마나 됐다고요? 이번 발작은 유난히 짧네요?”고요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그들이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라 전에 북진연이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을 차리기까지 최소 세 시진이나 소요됐다. 가장 길었던 때는 꼬박 하루를 고통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한 시진도 안 되는 사이에 지나갔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고요는 싱글벙글 웃으며 북진연에게 물었다.“임 의원이 지어준 약이 드디어 효과가 있었던 겁니까?”“그건 아닌 듯하다.”북진연은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그 약이 효과가 있는지는 그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임 영감이 준 약을 적어도 반 년을 먹었는데 약효가 발현될 거라면 진작에 발현됐어야 했다.오늘처럼 갑자기 이성이 돌아온 적은 처음이었다.북진연의 머릿속에는 자기도 모르게 청아한 소녀의 경 읽는 소리가 떠올랐다.그게 작용을 했다고 하면 그 어린 소녀가 읽은 경문이 남달라서일까?북진연은 귀경한 후로 금남사에 몇번 들른 적 있었다.매번 발작을 일으키기 전에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금남사의 주지사를 불러 경을 읊게 했으며, 물론 적지 않은 돈까지 챙겨주었다.이번에도 그럴 목적으로 들렀는데 주지사의 경이 끝나기도 전에 참을 수 없는 두통이 찾아와서 뛰쳐나갔던 것이었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이미 뒷산의 냇가에 당도해 있었고 그 뒤에 온사가 나타났다.그는 온사를 떠올리며 무심한듯 물었다.“임소우에게 부탁했던 의술 서적은 가져왔느냐?”고요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리둥절한 얼굴로 답했다.“예. 경성에 있습니다. 어제 오후에 가져왔더라고요.”
Read more

제46화

“그렇소.”수월관의 대문이 그제야 열렸다.북진연은 명을 받고 온사를 호송해 온 사람들이니 수월관 대사부를 비롯해 어린 사태들까지 모두 사실을 알고 있었다.문을 열어준 사태는 당연히 그의 말을 의심치 않았다.물론 북진연의 말이 아예 거짓말인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어제 그는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폐하께 청을 올려 자신이 이번 기도 의식을 주관하겠다고 했다.어린 황제는 비록 의아했지만 갑작스러운 삼촌의 요구를 들어주었다.그러니 북진연이 명을 받고 왔다고 한 것도 사실이었다.“무우 사매는 지금 대전에서 막수 사부와 아침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잠시만 밖에서 기다려 주시지요.”그렇게 반 시진이 훌쩍 지나갔다.북진연이 이렇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거의 처음 있는 일이었다.온사가 막수 사태와 함께 밖으로 나왔을 때, 사내는 기둥에 기댄 채 졸고 있었다.‘왜 이리 빨리 오셨지?’막수 사태는 북진연을 발견하고 약간 이상을 찌푸렸다.그러자 온사가 재빨리 해명했다.“섭정왕 전하께서는 제가 부탁한 의술 서적을 가져오셨나 봅니다. 전에 제가 부탁을 했거든요.”막수 사태가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의술을 배우려고?”온사가 그럴듯하게 답했다.“산에서 아침 공부와 기도를 마치고도 매일 시간이 남는데 어차피 한가하기도 하고 해서 책을 좀 읽고 싶어서요.”“전에 배운 적은 있고?”막수 사태의 질문에 온사는 쑥스럽게 고개를 숙였다.“아니요. 배운 적은 없어요.”그 말을 들은 막수 사태는 잠깐의 호기심일 거라 판단하고 약간 실망한 기색을 보였으나, 이내 표정을 바꾸었다.“그래. 원하면 그렇게 하려무나. 다만….”막수 사태는 북진연을 힐끗 보고는 말을 이었다.“저 분과 너무 가깝게 지내지는 말고.”온사가 순순히 답했다.“예, 저도 압니다. 저는 이미 출가한 몸이니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온사는 출가한 후 막수의 제자이자 수월관의 막내 사매가 되었다.막수는 뭔가 설명을 덧붙이려다가 결국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네가 어련히 알
Read more

제47화

북진연이 여인과 접촉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줄 몰랐다면 온사는 그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녀는 그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아침 공부는 끝났고 저녁에 기도할 시간까지는 별로 할 일이 없습니다만.”“그럼 잘됐네요. 가시지요.”말을 마친 북진연은 앞장서서 걸었다.온사는 다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전하, 먼저 가계시면 안 될까요? 이 서적들이랑 아침 공부를 한 경문을 처소에 두고 오고 싶은데요.”“예. 그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마세요.”말을 마친 북진연은 곧장 뒷산으로 향했다.온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처소로 달려갔다.그렇게 잠시 후, 그녀는 간 김에 물도 길어올 생각으로 물통 두 개를 챙겨서 길을 나섰다.그런데 약속 장소에 도착해 보니 무엇인가 이상하게 느껴졌다.‘언제 사람이 이리 많이 모였지?’냇가에는 북진연을 제외하고도 그의 흑기군 네 명이 더 있었고 바닥에는 한 소녀가 쓰러져 있었다.소녀는 그녀를 등지고 있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온사는 한눈에 그 소녀가 누군지 알아보았다.그 소녀는 다름 아닌 온모였다.두 명의 흑기군은 북진연의 옆을 지키고 서 있고 남은 두 명은 온모를 바닥에 제압하고 있었다.온사가 물통을 들고 도착하자, 온모가 낮은 소리로 흐느끼고 있었다.“섭정왕 전하, 살려주세요. 소녀는 수월관에 참배를 하러 왔다가 부주의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옵니다. 일부러 섭정왕 전하의 휴식을 방해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봐주세요.”“참배?”북진연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했다.“수월관은 기도 의식 때문에 한 달 동안 폐관한다고 하는데 참배를 하러 왔다고? 누가 널 들여보냈지? 아니면 몰래 들어온 건가?”“아닙니다!”온모가 다급히 말했다.“언니를 만나러 왔습니다! 제 언니가 며칠 전 출가한 성녀 온사거든요. 저는 진국공의 막내딸 온모라고 합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아름다운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서운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날 언니
Read more

제48화

북진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그는 온모의 말에 대꾸도 하지 않고, 표정이 싸늘하다 못해 한기를 내뿜는 온사만 쳐다보았다.착각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눈빛을 보면 자신을 잔뜩 경계하는 것 같았다.‘내가 자기 여동생을 잡아서 저러나? 아니야. 자매 사이가 그 정도로 좋은 거 같지 않았어. 아마 아닐 거야.’하지만 온사는 분명 그와 온모라는 여인을 동시에 보고서야 경계심을 드러냈었다.‘설마 내가 온모의 말을 믿고 자신과 맞설 거라 생각해서 경계하는 건가?’이런 생각에 북진연은 왠지 웃음이 나왔다.그에게 병이 있어도 한 여인의 말만 듣고 편을 들어서 다른 여인을 상대할 정도로 어리석지 않았다.그저 추측에 불과했지만 온사의 생각을 잘 간파했다.예전에 공명정대하고 이성적인 온사의 아버지 온권승이 바로 온모의 몇 마디 말 때문에 편신한 적이 있었다.나중에 그런 믿음 때문에 온사와 최소택을 포함한 몇몇 오라버니들이 피의 대가를 치렀었다.그 사건을 계기로 잊을 수 없는 교훈을 얻게 되었다.그래서 지금은 온모가 어떤 사내와 함께 서 있는 것만 봐도 무의식적으로 경계했다.온모가 북진연에게 잡혀 무릎을 꿇고 있는 상황이라도 말이다.왜냐면 그는 온모의 입을 틀어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예로부터 온모가 가장 잘하는 것은 저 가식적인 입으로 모든 사람들 속이고 들었다 놨다 했었다.“섭정왕 전하께서도 명을 받아 행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소녀의 다섯째 언니는 일전에 파혼을 당한 충격을 못 이겨 비구니가 되어 가문과 연을 끊겠다고 했습니다.”온모는 북진연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계속 가련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아버지는 다섯째 언니가 걱정되어 소녀더러 찾아가라고 하셨어요. 한데 언니는 아버지 충고를 듣지 않고 어제 저한테 물까지 끼얹었어요. 소녀 정말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그때 온사가 경계하듯 북진연을 힐끗 쳐다보았다.이 사내가 온모의 말을 듣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고 싶었다.떳떳한 섭정왕도 온모에게 휘둘리지 않을까 확
Read more

제49화

온사가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성녀님이 어제 읽었던 경전은 무엇입니까?”북진연은 그녀를 자기 옆에 앉으라고 손짓했다.그런데 온사는 여전히 경계하며 그가 앉은 바위에 같이 앉지 않고 옆에 있는 작은 바위에 앉았다.혼자 앉기에 딱 좋은 크기였다.“어제 읽었던 경전이요? 혹시나 제가 물을 길어올 때 외웠던 금광명경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습니다.”그녀가 멀리 떨어져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북진연이 못마땅해하며 대답했다.왠지 아직도 그를 경계하는 것 같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경전에 대해 물었다.“성녀님은 능력이 되는 한 본왕의 요구를 다 들어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북진연이 빙그레 웃으면서 쳐다보자, 온사는 잠시 머뭇거리며 대답하지 않았다.그러자, 북진연이 예리한 눈빛으로 뭔가 알아채고 심드렁하게 말했다.“설마 말을 번복하는 겁니까? 본왕이 얼마나 많이 도와줬는데 이런 작은 보답도 하기 싫습니까?”“그게 아니라…”온사가 바로 고개를 가로저었다.방금 온모 때문에 망설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북진연의 말처럼 그동안 여러 번이나 그의 도움을 받았다.상대방의 신세를 졌으니 갚는 것은 당연지사가 아닌가.그녀는 심호흡을 하면서 입을 열었다.“섭정왕 전하께서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말씀하십시오.”이런 은혜는 빨리 갚아야 정신을 가다듬고 온가를 상대할 계획을 세우는 데 집중할 수 있었다.“진작에 그랬어야죠.”북진연은 그제야 만족이 되었는지 눈썹을 살짝 치켜 올렸다.“큰일도 아닙니다. 어제 읽었던 경전이 꽤 마음에 들더군요. 보답으로 내 앞에서 금광명경을 읽어보십시오.”그 말에 온사가 조금 놀랐다.“그… 그것만 하면 됩니까?”“그럼요.”북진연이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너무 쉽다고 생각된다면 몇 번 반복해서 읽어주면 됩니다. 그 정도로 마음에 들거든요.”“알겠습니다.”온사는 흔쾌히 대답했다.북진연이 정말 금광명경을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손해보는 것은 아니었다.복습할 기회라고
Read more

제50화

온사는 무려 여덟 번이나 읽어 목이 마르고 목소리가 갈라지기 시작해서야 멈추었다.그런데 누구는 자는 척을 하는지 그녀가 멈출 때마다 귀신처럼 알아차리고 깨어나서는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째서 또 멈춥니까?”참다못한 온사가 힐끗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계속 읽다간 제 목소리가 나갈 것 같습니다.”그제야 북진연은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진 것을 알아채고 머뭇거리며 물었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습니까?”“한 시진이 지났습니다.”북진연은 의아했다.“그리 오래 지났습니까?”그는 고작 이 각 정도 지났다고 생각했었다.‘그래서 목소리가 나갈 것 같다고 했구먼.’북진연이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섰다.온몸이 개운하고 특히 가장 골치 아팠던 부분이 오늘따라 홀가분하기 그지없었다.금광명경이라는 것이 그의 병에 상당히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만약 돌아가서 다른 사람에게 읽으라고 한다면 다시는 수월관에 찾아와 계집애에게 귀찮게 부탁할 필요가 없게 된다. 북진연은 이렇게 하기로 결정을 내리며 말했다.“오늘 수고했습니다. 여기까지 하지요.”그는 자발적으로 그녀가 들고 온 나무통 두 개를 들고 냇가에 가서 문을 잔뜩 채웠다.그 모습을 본 온사가 재빨리 말렸다.“너무 많이 채웠어요.”그녀의 힘으로는 가득 찬 물통을 짊어질 수 없어 보였지만, 북진연은 개의치 않으며 말했다.“괜찮습니다. 본왕이 바래다주겠습니다.”그는 온사가 갖고 온 멜대도 사용하지 않고 아주 가볍게 물통을 들고 산꼭대기에 있는 수월관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온사는 말릴 겨를도 없이 멜대를 들고 서둘러 뒤를 쫓아갔다.한편, 진국공 저택.북진연의 부하들에게 끌려 남산 기슭에 버려진 온모는 결국 비참하게 혼자서 산중턱까지 올라갔다.거기서 온가의 마차를 발견하고 씩씩거리며 저택으로 빨리 돌아가라고 언성을 높였다.온가에 도착한 그녀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서책에 있는 온권승과 온장온에게 달려갔다.“아버지, 큰오라버니!”그러나 안타깝게도 근처에서 한바퀴 돌았지만 누구도 없었다.결
Read more
PREV
1
...
345678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