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승이 된 나에게 무릎꿇고 돌아오라고 비는 오빠들의 모든 챕터: 챕터 51 - 챕터 60

73 챕터

제51화

"뭐? 걔가 너한테 물을 뿌린 거라고? 설마 어제도 뿌린 거야?!" 온자신은 단단히 화가 났다. 그러자 온모는 그저 씁쓸하게 웃으며 애써 화제를 돌리는 척했다. "괜찮아, 오빠.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야. 그냥 물 좀 뿌린 것뿐인데 뭐, 난 괜찮아. 지금 그것보다 중요한 건, 다섯째 언니가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는다는 거야." "이게 어디 심각한 일이 아니야!" 온자신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온사 걔, 정말 기가 막힌 애네! 아무리 성격이 못되다고 사람들이 말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더니… 자기 여동생까지 이렇게 괴롭히는 사람이 못된 게 아니라면 또 누가 못되다고 할 수가 있겠어?" "오빠! 그런 말 하지 마. 다섯째 언니가 뭘 했든, 지금으로서 오빠는 날 도와줄 방법만 생각하면 돼. 그리고 무엇보다도 빠른 시일 내에 다섯째 언니를 돌아오게 만들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큰일 날 거라고!" 온모는 최대한 서러운 감정은 숨기고, 절박한 목소리로 발을 동동 구르기만 했다. 그녀의 입에서 큰일이라는 단어가 나오자, 온자신은 의아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온사가 수월관에서 다른 짓까지 저질렀어?" "사실 언니가..."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온모는 이를 악물으며, 마치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숨겨두고 있는 듯 당황하고 두려운 기색을 보였다. "사실 나, 언니가 수월관의 뒷산에서 한 남자랑 단둘이 있는 모습을 본 적 있어.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누더라고. 게다가..." "게다가 뭐? 얼른 말해!" 온자신은 이미 온모의 말에 크게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내심 심상치 않은 상황임을 깨닫고는 급히 추궁했다. "그 남자와 담소를 나누더니 갑자기 껴안더라고!" 온모는 결국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숨겨온 비밀을 모두 털어놓고 나서야 그녀는 기분이 상쾌해졌다. “온사, 이 모든 건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감히 나한테 더러운 물을 끼얹다니… 설령 네가 온씨 집안에 있지 않아도 나는 너를 처단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어! ”
더 보기

제52화

너무 시끄러운 나머지, 마침 안에 있던 시태가 나와 문을 사이에 두고는 온자신과 대치하였다.“폐관하든 말든 내가 알 바는 아니고 당장 온사 불러내!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 낡은 문을 걷어차고 너희들의 수월관을 뒤집어 엎어버릴거야!"온자신은 하찮은 태도로 시태의 말을 제멋대로 끊고는 위협했다.그의 건방진 태도에 시태는 언짢아져, 더더욱 문을 열어줄 마음이 없어졌다.그렇게 뒤이어 세번이나 요구를 했지만, 결국 문을 열어주지 않자, 온자신은 화를 참지 못하고 발을 들어 문을 걷어차기 시작했다."쾅! 쾅! 쾅!"본래 매우 아담한 수월관은, 그 대문도 그다지 두껍지 않은 두 개의 나무문으로 만들어졌다.온자신이 겹겹이 몇 발 발길질은 하자, 시태가 막을 겨를도 없이 문이 펑하고는 걷어차이게 됐다.이내 온자신은 성큼성큼 들어서 시태를 차갑게 흘깃 보고는 곧장 안으로 뛰어들었다."시주님 멈추세요! 지금 대체 뭘 하려는겁니까! 수월관 내는 그 어떤 남자도 함부로 들어설 수 없습니다!""이 늙은 여승 봐라, 감히 또 나를 막으려 한다면 아예 너까지 걷어차버릴거야!"온자신은 그의 앞을 막으려는 사태를 밀어내고는 대문을 뚫고 대전으로 향했다.들어서는 길에 사람만 보이기만 하면, 온사가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심상치 않은 동정을 들은 온사가 급히 달려왔을 때는, 이미 여러 명의 어린 여승이 온자신 때문에 크게 놀라 울음을 보이고 있었다.그 모습에 온사는 단단히 화가 났다."그만해요! 지금 대체 뭐 하시는 겁니까?"그 소리에 온자신은 곧바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노려보았다. "온사, 너 이제야 모습 드러내는거야?"잔뜩 흥분한 그의 모습에, 온사는 온모가 그에게 고자질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가 모르는 사실은, 온모는 온자신이 보는 앞에서 그녀에게 엄청난 더러운 물을 뿌렸다는 것이다."우리가 친남매인 사이를 봐서라도, 우리 오빠들이 너한테 다시 한번 마지막 기회를 줄게. 그러니 당장 물건 정리하고 온씨 집안으로 돌아가!"온자신은
더 보기

제53화

온자신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며 저도 모르게 손을 번쩍 들어 온사의 머리를 쳤다.“온사, 너 미쳤어? 당장 안 놔?”하지만 온사가 그의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미친 사람은 그녀가 아니라 바로 온자신이었으니까!힘들게 가문을 탈출했는데 여기까지 쫓아와 그녀의 평온을 방해하는 사람 역시 온자신 뿐이었다. 누구든 그녀를 그 지옥으로 끌고 가려는 사람이라면 원수가 되었다.온사는 온자신의 팔뚝을 더 힘주어 깨물었다.그렇게 온자신의 폭력이 행해질수록 그녀는 어금니에 힘을 꽉 주었다.이빨에 피부가 찢겨져 피가 흘러 내렸지만 그녀는 힘을 풀지 않았다.결국 온자신은 고통에 신음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이 미친년! 넌 완전히 미쳤어!”“너 오늘 내 손에 죽어봐라!”온자신은 주먹을 꽉 쥐고 온사에게 마구 휘둘렀다.가녀린 소녀의 몸으로 어찌 사내의 거센 공격을 감당할 수 있을까.온사는 극심한 고통을 느꼈다.눈물이 줄줄 흘렀고, 목구멍에서는 피비린내까지 올라왔다. 대체 자신의 피인지 온자신의 피인지도 구분도 가지 않았다.이 광경에 주변에 있던 사태와 어린 여승들이 모두 화들짝 놀라며 달려와서 두 사람을 떼어내려 했지만, 계속 서로를 놓아주지 않았다.심지어 온사는 온자신에게 맞아 이마가 찢어져 피투성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물고 있는 팔뚝을 놓아주지 않았다.그러자 온자신도 점점 한계가 찾아와, 결국 그는 참지 못하고 발을 들어 온사의 배를 걷어차 바닥에 쓰러뜨렸다.그 순간 온사도 그의 살점을 물어뜯었다.“악!”온자신은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살점이 뜯겨져 피가 줄줄 흐르는 자신의 팔을 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그냥 집에 데려가려고 찾아온 것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반항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온사야, 넌 우릴 가족으로 생각한 적은 있어?”분노에 이성을 잃은 온자신이 소리를 질렀다.그러자 바닥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킨 온사는 사태들의 부축을 받으며 원한에 사무친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 없다고 말하고
더 보기

제54화

하지만 그건 그의 착각이 아니었다. 온사는 진심으로 그를 죽이고 싶어했다. 온자신이 강제로 자신을 끌고 가려고 했을 때, 그녀는 옥패 공간에서 어제 배합해낸 독약을 몰래 꺼낸 후, 온자신의 팔뚝을 물어뜯기 전에 독약을 입안에 머금었다.그렇게 온자신은 중독되었고, 그건 온사 역시 마찬가지었다.게다가 그녀는 아직 해독약을 배합해내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지금은 죽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하하… 하하하….”온사는 바닥에 주저앉아 허탈한 얼굴로 웃었다.그녀의 입가에서 온자신의 팔뚝에서 흐르는 피와 똑같이 검은 색상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한참을 웃다가 그녀는 갑자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이대로 끝나는 것일까?조금은 아쉬웠다.천신만고 끝에 힘겹게 다시 살 기회를 얻었는데 온자신 한 놈만 죽이고 허무하게 가야 한다니, 무척이나 억울하기도 했다.하지만 온자신이 계속해서 자신을 몰아세우니 어쩔 수 없었다.그렇게 온사의 눈이 천천히 감기고 있을 때, 갑자기 옆에서 사태와 사저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막수 사저께서 돌아오셨어요!”“사부님, 어서 와서 무우 사매 좀 봐주세요!”“애가 심하게 맞았어요!”“중독 증세까지 보이고 있다고요!”누군가가 다가와 온사의 어깨를 껴안더니 차가운 알약을 입안에 집어 넣었다.하지만 그녀가 약을 삼키지 못하고 있자, 막수 사태가 소리쳤다.“어리석은 것! 이대로 죽으면 네 어머니한테 미안하지도 않니? 그 애는 너를 세상에 내놓으려고 자신까지 희생하며 널 낳았어. 그런데 고작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저세상으로 어미를 만나러 가면, 네 어미가 얼마나 가슴이 쓰릴까?”막수 사태의 목소리에서는 분노와 고통이 담겨 있었다. 온사를 한바탕 혼내더니, 이내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착하지. 해독약을 삼키렴. 네가 속에 증오를 품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너 복수를 원했잖니? 사부가 도와줄게.”‘사부께서 날 도와주신다고? 안 돼. 사부께서는 진정한 출가인인데….’그녀는 스승의 손에
더 보기

제55화

“어떻게 된 거지?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어?”부상을 입고 쓰러진 온사를 발견한 북진연은 자기도 모르게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성큼 성큼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주변 상황을 관찰했다. 그러다가 바닥에 쓰러진 온자신을 발견했다.수월관 사람들 반응을 보니 북진연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자식이 수월관에 쳐들어와서 성녀를 때린 겁니까?!”온사가 더 이상 자신을 온가의 아가씨라고 부르지 말아달라고 한 후로 그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줄곧 성녀라고 칭했다. 막수 사태가 싸늘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수월관 제자들 모두가 그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온가의 자식이 수월관에 강제로 침입하여 성녀를 끌고 가려고 하다가 주먹까지 휘둘렀나 봅니다.”막수 사태는 분노가 사무쳤지만 냉정하게 사실 설명을 마치고 온사를 안고 일어났다.돌아가기 전, 막수는 실망한 눈빛으로 온자신을 바라보며 싸늘하게 말했다.“이 일은 저희 수월관과 관내 제자들에게 막심한 피해와 혼란을 주었고 성녀에게 막중한 상해를 입혔습니다.”“성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 일로 기도 의식을 망친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진단 말입니까?”“그러니 섭정왕 전하께서는 이 사건을 엄밀히 조사하시고 범인에게 막중한 징게를 내리셔야 할 것입니다. 그러지 않으면 소인 이 일을 조용히 넘기지 않을 겁니다.”막수 사태가 비록 출가하긴 했지만, 부처께서는 출가인이라고 양보만 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관내의 제자들마저 지키지 못한다면 주지 사태의 자리를 지키고 있을 자격이 없다.그러자 북진연 역시 싸늘한 눈으로 온자신을 노려보며 말했다.“알겠습니다. 사태께서는 성녀를 잘 보살펴 주십시오. 나머지는 제가 처리하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는 막수 사태의 품에 안긴 온사를 잠시 바라보았다.그러고는 혼수상태가 된 온자신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그를 수월관 밖으로 끌어낸 북진연은 흑기군을 호출했다.그러고는 온자신을 부하에게 넘기며
더 보기

제56화

북진연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망연자실한 그녀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여긴 성녀의 방이 아닙니다.”“그럼 여긴 어딘가요?”“황궁입니다.”온사는 자신이 어쩌다가 황궁까지 왔는지 당혹스러웠다.그런 그녀의 생각이라도 읽은 건지, 북진연이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부상이 심각해, 차후에 있을 기도 의식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서 막수 사태와 상의 후에 폐하의 허락을 받고 성녀를 황궁으로 모신 것입니다. 이쪽이 요양하기에도 더 편하고요.”“그런 거였군요.”온사는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스레 물었다.“그럼 소인의 눈은….”지금 그녀에게 급한 것은 실명 여부 뿐이었다.다행히도 북진연의 대답은 희망적이었다.“실명은 아니니 걱정 마세요. 막수 사부께서 이미 해독을 해드렸기에 며칠 쉬시면 괜찮아질 겁니다.”온사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나 멀쩡히 살아 있구나!’그야말로 다행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보다 더 좋은 소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7일 전, 온자신은 불가의 청정구역을 침범하고 성녀에게 폭력을 가한 죄로 폐하께서 곤장 80대를 치고 옥에 가두었습니다.”역시나 그 말을 들은 온자신의 얼굴에는 기쁨의 미소가 서렸다.“그게 정말입니까?!”항상 제멋대로던 온자신이 드디어 처벌을 받았다니!“당연하지요.”북진연의 눈빛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소사부께선 폐하께서 직접 책봉하신 복명 성녀이므로, 공주와 동등한 지위를 가지셨습니다. 진국공의 체면을 고려하지 않았더라면 성녀에게 폭력을 가한 죄는 사형까지 행해야 하지요.”말은 그렇게 해도 온자신을 사형에 처하게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온사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적어도 온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하였으니 그것만으로도 만족했다.게다가 잠시 동안은 아무리 온자신이라고 해도 더 이상 찾아와 그녀를 방해하지 않을 것이니 더 바랄 게 없었다.“그럼 지금 옥에 갇혀 있겠군요.”“예.”북진연은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폐하께서 말씀하
더 보기

제57화

그러자 온사가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궁금해요!”북연진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는 조정의 대신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재현했다.“그들이 말하기를, 이 나라의 진국공이라는 사람이 이리도 막무가내이고 법도를 무시하며 시건방진 만행을 일삼으니 엄격히 벌하지 않으면 앞으로 더 큰 피해가 나올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물론 그 대신들이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북진연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그들이 온자신이 앞으로 나라에 큰 피해를 끼칠 것처럼 상황을 몰아갔기에, 온권승은 미처 방어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리고 탄핵도 탄핵이지만 그의 체면도 무관들의 반발 때문에 완전히 구겨져 버리고 말았다.그렇게 반절이 넘는 대신들이 탄핵의 목소리를 내자 어린 황제도 ‘하는 수 없이’ 섭정왕의 의견을 받아들여 엄벌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결국 온씨 가문 사람들이 온사의 용서를 받아야 온자신의 석방을 그나마 고려해 볼 수 있게 된 상황이 되어, 온권승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어쨌거나 온자신이 먼저 잘못을 한 건 사실이었으니 말이다.온사에게 폭력만 가하지 않았어도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보았겠지만 하필이면 불가의 청정구역에서 무력까지 행사했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게다가 수월관 사태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온자신이 먼저 무력을 행사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출가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법인데, 이런 사람들까지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그것이 곧 진실이었다.그러니 온자신이 아무리 억울하다고 울부짖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었을 것이다.온사가 기쁨에 겨워 말했다.“이럴 줄 알았으면 며칠 더 잠자고 있었을 걸 그랬습니다.”일찍 깨어난 것이 못내 아쉬울 정도였다.하지만 아마 소식을 들은 온씨 가문 인간들이 또 찾아올 게 분명했다.그녀는 그 역겨운 면상들을 다시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특히나 그 상대가 온모라면 더욱. 온자신이 갑자기 수월관에 침입한데는 분명 온모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다.그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온자신이 했던
더 보기

제58화

잠깐 쓰러졌다가 일어나 보니 벌써 일주일이 그냥 지나가 버린 것이었다.온사는 고통스럽게 신음했다.수많은 기도 경문을 암기해야 하는데 9일은 너무 부족했다.“안 되겠습니다. 어서 수월관으로 돌아가야겠어요.”산처럼 쌓인 경문을 생각하니 온씨 가문 사람들을 신경 쓸 여유가 없어졌다.“섭정왕 전하, 혹시 마차를 준비해 주실 수 있을까요? 지금 수문관으로 돌아가야 합니다.”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온사는 조심스레 다시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더듬거리다가 부주의로 북진연의 탄탄한 어깨에 손이 닿고 말았다.옷감을 통해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에 온사는 순간 당황했다.이 방 안에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으니 상대가 북진연이라는 것을 감지한 순간 불에 데인 것처럼 손끝이 달아올랐다.그때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움직이면 안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이어서 북진연의 엄중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필요한 게 있으면 나에게 말씀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수월관으로 돌아가시려는 거라면 지금은 안 됩니다.”그는 단박에 그녀의 부탁을 거절했다.온사가 다급히 말했다.“하지만 소인은 기도 의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늦는단 말입니다!”“그 눈을 해가지고, 돌아간다고 해서 대체 무슨 준비를 할 수 있겠습니까?”정곡을 찌르는 북진연의 몰에 온사는 말문이 막혔다.그랬다. 너무 급해서 지금 실명 상태라는 것마저 잊고 있었다.경문을 암기하더라도 앞이 보여야지 가능한 법이었다. 온사는 순간 침묵에 잠겼다.북진연은 갑자기 말이 없어진 그녀를 보고 자신이 너무 심하게 말을 했나 순간 후회가 들었다.그가 못 말린다는 듯이 한숨을 쉬며 위로의 말을 건네려 할 때, 갑자기 고개를 든 온사가 분노한 얼굴로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게 다 온자신 때문입니다!”오래 참았던 서러움이 순식간에 폭발해 버린 것이다.“그 인간은 무력만 쓸 줄 아는 시정잡배예요! 무슨 자격으로 수월관까지 찾아와서 나를 훈계하는 걸까요? 그 인간이 수월관에 침입해서 이상한 헛소
더 보기

제59화

아쉽게도 그가 뭔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막수 사태가 안으로 들어왔다.손에 경문을 들고 안으로 들어서다가, 온사의 울음소리를 듣고 다급히 달려왔다.“어떻게 된 거니? 어디 아파?!”막수 사태는 경문을 내려놓고 북진연을 밀친 후에 침대에서 울고 있는 온사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투박한 손으로 온사의 온 얼굴을 적신 눈물을 닦아주며 부드럽게 위로했다. “괜찮다, 괜찮아. 내가 봤는데 이마의 상처는 흉이 질 것 같지 않구나. 부상 정도도 그리 심하지 않고 눈도 며칠 후면 다시 볼 수 있을 게야. 아무 걱정하지 말거라.”온사는 조심스럽게 자신을 보듬는 손길에 몸을 맡겼다.문득 아주 어렸을 적 그녀의 어머니가 매번 울 때면 자신을 이렇게 품에 안고 달래주던 것이 떠올랐다.북진연은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참 침묵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막수 사태, 무우 사태께서는 잠시 경문을 암기할 수 없어서 차후에 있을 기도 의식이 지체될까 봐 우려하고 계십니다.”갑자기 분위기를 깨는 말에 막수 사태는 굳은 표정으로 그를 힐끗 바라보고는 다시 온화한 목소리로 온사에게 말했다.“걱정 말거라. 그래서 기도 의식에 쓰일 경문을 가져왔으니 암기하고 싶거든 내가 읽어주겠다.”그러자 흐릿했던 온사의 눈동자에 다시 빛이 돌아왔다.‘그래! 그런 방법도 있었지!’다만 사부에게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하지만 막수 사태는 온사의 머리를 넘겨주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민폐라고 생각하지 말거라. 넌 내 제자 중에 가장 막내이며, 후에 중임을 맡고 나라를 위해 기도를 올릴 성녀이니 사부로서 너를 돕는 건 당연한 일이다.”온사는 큰 감동을 느껴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감사합니다, 사부.”막수 사태의 도움이 있으니 온사의 부담도 많이 줄어들었다.막수 사태는 곧이어 북진연을 방에서 쫓아냈고,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같이 경을 읽기 시작했다.막수 사태가 한 구절 읊으면 온사가 따라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밖으로 쫓겨나버린 북진연은 밖에서 안의
더 보기

제60화

복명 성녀가 깨어났다는 소식이었다.하필이면 이 시기에 깨어나다니 온권승 부자는 정말 농락당한 기분이 들었다.온장온이 피곤한 기색으로 불평을 토로했다.“온사 걔는 정말 사람을 귀찮게 하네요.”그의 입장에서는 하필 이 시점에 깨어난 온사가 얄밉기 그지없었다.만약에 그가 온자신에게 맞아서 중상을 입은 온사를 직접 보지 못했더라면 아마 진작에 깨어났으면서 자신들을 농락하는 건 아닌지 의심했을 것이다.아들의 생각을 읽은 온권승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감히 아비인 나에게 반기를 들다니! 배후에 부추기는 자가 있는 게 분명하다.”그러자 온장온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누구 말씀이신가요?”“북연진 그 인간 말고 또 누가 있겠어?”온권승은 싸늘하게 식은 눈동자에 독기를 품으며 말을 이었다.“원래부터 폐하를 등에 업고서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날뛰는 인간이었어.”특히나 진국공부를 상대할 때는 더욱 그러했다.“이번에 우리 가문이 놈의 손에 놀아난 것도 온사 그 계집애 때문이지. 그 애가 없었으면 네 동생이 옥에 갇히는 일도 없었을 게다.”온권승은 온자신이 수월관에 침입한 것 하나만으로도 곤장을 칠 죄에 해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옥에 갇힐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서 그는 모든 탓을 온사에게 돌렸다.“둘째는 너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제가 이미 셋째를 시켜서 옥의 간수들에게 쌈짓돈을 좀 보냈으니, 아마 그 안에서 너무 고생하지는 않을 겁니다.”“가혹한 일을 당했어도 그건 그 녀석이 자초한 거야. 어쩔 수 없다.”온권승은 둘째 아들에게도 가차없었다. 비록 온사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온자신에게 잘못이 없다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온권승은 짜증스럽게 말을 이었다.“둘째 돌아오면 너는 큰형으로서 제대로 훈계해야 할 것이다. 이런 일이 또 있으면 너도 둘째랑 같이 사당으로 가서 무릎 꿇고 있을 줄 알아.”결국 온장온도 아버지의 훈계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아버지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온장온이
더 보기
이전
1
...
345678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