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첫사랑을 잘못 보고 사랑한 죄: Chapter 111 - Chapter 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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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1화 원칙을 어긴 서원

서원의 걱정은 거짓이 아니었다. 다른 경호원들처럼 민여진을 모른 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고마워요.”민여진은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녀는 망설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서원 씨,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곤란한 일이 아니라면 기꺼이 돕겠습니다.”그가 흔쾌히 답하자, 민여진은 재빨리 손사래를 쳤다.“곤란한 일은 아니에요. 그냥 시간이 날 때... 현수 씨가 지금 어디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만 알아봐 주시면 돼요. 잘 지내는지만 확인해 주세요.”민여진은 박진성이 그렇게 쉽게 끝낼 리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 모임에서 그녀를 더 이상 망신 주지 않은 것도 이상할 정도였다.민여진은 혹시라도 그 분노가 방현수에게 향하게 될까봐 불안했다.그러나 서원이 대답하기도 전에, ‘쾅!’하고 문 쪽에서 옷걸이가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순간, 민여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곧 박진성의 낮지만 섬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끝까지 그 새끼 생각뿐이네.”살을 에는 듯한 냉기가 방 안으로 밀려들었다. 건드려선 안 될 박진성의 분노를 자극한 듯, 공기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민여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아니라고?”박진성이 다가오더니 거칠게 그녀의 턱을 움켜쥐었다.“아니면 뭐? 네가 그 새끼를 찾는 이유가 뭔데? 언제 죽을지 궁금해서는 아닐 거잖아?”그의 눈빛이 매섭게 번뜩이자, 민여진의 몸이 격렬하게 떨렸다.그러나 박진성의 분노는 멈출 기미가 없었다. 마치 그녀를 부숴버릴 듯 손에 힘이 들어갔다.밤새 한숨도 못 자고 밖에서 돌아왔지만, 민여진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오직 ‘방현수’뿐이었고,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며 밤을 지새웠는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그 사실이 박진성을 더욱 미치게 했다.“대표님...”그때, 서원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민여진이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보며, 그는 애써 침착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대표님, 오해입니다. 민여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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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2화 방현수에게로 향한 화살

차 안에는 묵직한 침묵만이 감돌았다.박진성은 아무 말 없이 시동을 걸었고 민여진 역시 창밖만 바라보며 아무 말 하지 않았다.얼마 후, 차가 멈춰 섰고 민여진은 박진성을 따라 차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섰다.입구에서 레스토랑 매니저가 반갑게 맞이했다.“박 대표님! 오셨군요. 자리 준비해 뒀습니다. 2층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음식도 곧 나올 예정입니다.”‘음식? 정말 단순한 식사 자리일까?’민여진은 순간 멍해졌지만, 본능적으로 이 상황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는 걸 깨달았다.하지만 테이블에 앉은 순간까지도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음식이 하나둘 나오자, 박진성이 무심하게 입을 열었다.“대충 시켰는데, 음식이 네 입에 맞을진 모르겠네?”그녀는 두 손을 꼭 쥐었다. 알 수 없는 불안감이 가슴을 옥죄었다.“...뭐든 괜찮아.”박진성은 가볍게 비웃으며 중얼거렸다.“이번엔 네 입으로 직접 뭐든 괜찮다고 했어. 나중에 음식이 입맛에 안 맞는다고 또 괜히 채연이를 탓하지 말고!”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술을 꼭 깨물었다. 혀끝에 씁쓸함이 맴돌았다.“...대체 왜 여기로 온 거야?”그는 지루하다는 듯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레스토랑에 왜 왔겠어? 당연히 밥 먹으러 온 거겠지.”‘설마, 이쯤에서 모든 걸 덮어주겠다는 뜻일까? 아니면 이 모든 오해가 풀린 건가?’그 작은 기대를 안고 조심스럽게 그를 바라보았지만, 긴장한 채 흐르는 시간을 견디고 있을 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그리고 바로 그 순간, 박진성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렸다.“이리 와봐... 와서 키스해.”‘...뭐?’믿기지 않는 말에 민여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박진성을 바라보았다.그러나 박진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비꼬듯 덧붙였다.“왜? 싫어?”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아니면 기대했던 곳이 아니라서 실망했어? 어제 그 도련님들이랑 신나게 떠들고 춤추던 게 더 좋았나 보지?”그 순간 그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몸이 덜덜 떨렸다.민여진은 숨을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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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주먹을 휘두른 대가

레스토랑 매니저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서비스 직원이 감히 박진성을 때리는 모습을 처음 본 그는, 만약 박진성이 화라도 내면 방현수는커녕 자신조차 이곳에서 쫓겨날 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는 서둘러 외쳤다.“어서 박 대표님께 사과드려요!”그러나 예상과 달리 박진성은 입가의 피를 닦으며 희미하게 웃었다.“그럴 필요 없어.”“방씨 가문의... 얼마 전까지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생아?’, 작은 도련님께서 나한테 사과를 한다? 내가 어떻게 감히 그런 사과를 받을 수 있겠어?”“뭐라고요?”레스토랑 매니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그는 방현수를 다시 보며 경악했다.“설마... 방현수 씨가 방씨 가문의 그 사생아였어요?”그는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됐다.“제기랄! 미리 말을 하지 그랬어요? 내가 알았으면 방현수 씨 같은 사람이 여기서 일할 수 있게 뒀겠어요? 월급이고 뭐고 필요 없다 해도 쫓아냈을 거예요!”그는 황급히 박진성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대표님,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방현수 씨가 처음 왔을 때 월급 백만 원이면 된다며 숙식만 제공해 달라고 해서 그냥 가난한 청년인 줄 알았습니다. 설마 방씨 가문의 사생아일 줄은... 대표님의 뜻을 거역할 생각은 꿈에도 없었습니다!”‘백만 원? 한 달에 단지 백만 원이면 충분하다고 했다고?’민여진의 가슴이 얼어붙었다.양성에서 박진성이 내린 명령 때문에 방현수는 어디에서도 일할 수 없었다.방현수는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한 달에 고작 백만 원짜리 일자리라도 붙잡고 버티고 있었다.그녀의 눈가가 뜨겁게 젖었다.‘나 때문이야. 다 나 때문이야...’그녀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그 모습을 본 박진성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이내 냉소를 흘리며 비꼬듯 말했다.“설마 일부러 이 녀석을 들였겠어?”그는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하지만 이대로 끝낼 순 없겠지? 함부로 주먹을 휘두른 대가는 치러야 하지 않겠어?”레스토랑 매니저는 잽싸게 돌아서서 소리쳤다.“방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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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4화 전과자로 만들 수는 없어

민여진의 온몸이 떨렸다.‘이곳이 지옥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가 지옥이란 말인가...’끝없는 추위 속에 갇힌 듯한 절망이 그녀를 집어삼켰다.“안 돼...”붉어진 눈으로 숨을 가다듬으며 그녀는 차분히 박진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간절하게 애원했다.“진성 씨, 제발... 경찰은 부르지 마. 어떤 조건이든 들어줄게.”“여진아! 제발 그러지 마!”방현수가 다급히 그녀를 말리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 손길에 박진성이 싸늘한 시선을 던졌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감방에 간다고 해도 몇 날 며칠 갇혀 있게 될 뿐이야. 별일 아니야!”방현수는 단호하게 말하고 곧장 박진성을 노려보며 덧붙였다.“여긴 법치국가라고! 설마 죽을 때까지 감방에 있겠어?”박진성의 시선이 천천히 민여진을 감싼 그의 손으로 옮겨갔다.보는 것만으로도 주먹이 쥐어졌지만 그는 억지로 분노를 삼키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그의 미소는 더욱 비열하게 일그러졌다.“방현수,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됐나 보네.”그는 담배 연기를 길게 뱉으며 말했다.“전과 기록이 남으면 어디를 가든 다시 의사가 되는 건 불가능할 거야.”그 말에 방현수의 눈이 흔들렸다. 그러나 곧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그래서 뭐? 의사를 못 하면 못 하는 거지. 그게 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해?”“방현수...”그는 태연한 척 웃어 보였지만, 민여진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그에게 있어서 의사는 ‘직업’이 아니라, ‘삶’ 그 자체였다. 그가 그걸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안 돼요!”민여진은 눈물을 억지로 삼키며 격렬히 고개를 저었다.“절대 그렇게 될 순 없어요! 현수 씨, 전과 기록이 남으면 안 돼요. 절대로!”그녀의 눈가가 뜨겁게 달아올랐다.그러나 박진성은 무심하게 그녀를 내려다보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한 반응이었다.이때 박진성을 대신해 정우영이 가볍게 개입했다.“이미 주먹을 날린 이상, 뭔가 해결책이 있어야겠죠? 그냥 넘어가면 밖에서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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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5화 민여진의 인정

깨진 유리 조각이 방현수의 손바닥 깊숙이 박혔다. 방현수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었다.“어이쿠, 미안하네요. 방금 실수로 그만...”정우영이 가볍게 웃으며 발을 거둬들였다.“많이 다친 건 아니겠죠?”유리가 손바닥에 그대로 박힌 걸 본 레스토랑 매니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하지만 방금까지 밥그릇이 위태로웠던 걸 떠올리자, 감히 입을 열지도 못한 채 입술을 깨물었다.“무슨 일이에요? 뭐냐고요!”민여진은 앞을 볼 수 없었기에 절박하게 외쳤다.“...별일 아니에요.”정우영이 방현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방현수 씨가 정리하다가 실수로 다친 것뿐이에요.”‘현수 씨가 다쳤다고?’민여진은 머릿속이 새하얘졌다.의사인 방현수가 손을 다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현수 씨, 괜찮아요? 제가 할게요.”그녀가 다급히 다가가려 하자, 옆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방현수, 무리하지 마.”박진성이 담배를 문 채 웃음을 흘리더니, 손가락 끝으로 담뱃재를 툭툭 털며 비꼬듯 말했다.“유리가 손에 박혔는데, 아무렇지도 않겠어? 차라리 못 견디겠으면 민여진한테 대신 해달라고 해.”‘뭐라고? 유리가 손에 박혔다고?’민여진은 순식간에 얼굴에 핏기를 잃었고 현기증이 몰려왔다.그녀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나 박진성이 그녀를 테이블과 소파 사이에 가둬버리고 거칠게 그녀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방현수는 아직 너한테 대신하라고 한 적 없어. 얌전히 있어.”‘대신하라고? 현수 씨가 그럴 리 없잖아!’박진성이 원하는 건 간단했다. 방현수가 끝까지 버틴다면 그녀는 무력감 속에서 절망해야 했고 그가 받아들인다면 그녀는 배신감 속에서 지옥을 맛보게 될 터였다.어떤 선택이든, 박진성에게는 그저 흥미로운 구경거리일 뿐이었다.예상대로 방현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답변을 듣자마자, 박진성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조롱하듯 웃었다.“감동적이네. 민여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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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6화 현수 씨를 놔줄 거야?

방현수가 단 한 번의 벌을 받았을 뿐인데, 민여진은 완전히 무너졌다. 그토록 끝까지 부정하던 일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었다.박진성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불길이 치솟았다. 분명 그녀가 자백하길 원했던 그였지만, 정작 그 순간이 오자 도리어 화가 났다.박진성은 이 감정이 무엇인지조차 스스로 알 수 없었다.그는 뼈가 으스러질 듯한 고통이 느껴질 만큼 힘을 주어 그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드디어 인정하는 거냐?”“그래...”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결백 따위, 방현수의 손과 비교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박진성은 애초부터 그녀의 결백 따윈 믿은 적이 없었다.“그럴 줄 알았다. 넌 원래부터 더러운 년이야. 목적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는 천박한 여자!”그는 분노를 참지 못한 채 손에 더 힘을 주었다.순식간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내가 왜 널 믿고, 왜 널 불쌍하게 여겼을까?”그의 목소리는 점점 낮아졌지만, 그 안에는 깊은 경멸이 서려 있었다.“수면제를 삼켜야 했던 건 문채연이 아니라, 바로 너였어. 죽어야 했던 사람도 너였다고!”목이 졸려와 숨이 막혔지만, 그녀는 눈물을 삼키며 힘겹게 한 글자씩 내뱉었다.“그래. 네 말이 맞아.”민여진은 고통을 참으며 애써 담담한 목소리로 이어갔다.“그러니까 내가 직접 문채연에게 사과할게. 문채연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는 이런 일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할 거야. 그러니까 현수 씨는 놔줘.”민여진은 자기 손을 다치는 건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방현수의 손이 망가지는 것은 두고볼 수 없었다.손이 망가지는 그는 더 이상 수술을 할 수 없었다. 그건 의사로서의 생명을 잃는 것이었다.민여진은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순간, 박진성의 손이 거칠게 그녀를 내던졌다. 소파에 부딪히며 튕겨 나간 그녀는 머리가 울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방현수의 얼굴에서 피가 사라졌다. 창백한 입술을 굳게 깨문 채, 손에 남은 유리 조각을 치우려던 그는 벌떡 일어섰다.“박진성, 너 미쳤어? 대체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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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7화 그 여자의 존재감

박진성은 이를 악물었다.‘이제 와서 사과 따위를 떠올린다고?’“지금 후회할 거였으면, 애초에 그러질 말았어야지!”민여진은 비웃듯 웃었지만, 머릿속이 어지러웠다.‘그러게... 애초에 왜 그랬을까...’박진성은 차를 몰아 그녀를 다시 별장으로 데려가 던지듯 내팽개치고는 차창을 내리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채연이가 아직 퇴원하지 않았지만, 곧 별장으로 데려올 거다. 그때는 입 꾹 다물지 말고 알아서 말 잘해. 벙어리처럼 굴었다가는 어떻게 될지 네가 더 잘 알 거야!”민여진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그대로 차를 몰고 사라졌다.병원에 도착했을 때, 병실 안에는 이미 박진성의 어머니, 이정화가 와 있었다.그는 문 앞에서 머뭇거리다 들어가려 했으나, 이정화는 그를 보자마자 냉랭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진성이 왔구나. 잘 됐다. 나랑 잠깐 이야기 좀 하자.”그녀는 문을 닫고, 복도 한쪽으로 그를 데리고 나가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진성아, 제정신이야? 넌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민여진 때문에 채연이가 두 번이나 병원에 실려 왔어! 한 번은 다리를 거의 못 쓰게 될 뻔했고, 이번엔 목숨까지 위태로웠어! 그런데도 넌 그 여자를 쫓아내지 않겠다고?”“어머니...”박진성은 깊게 인상을 찌푸렸다. 그의 완벽한 이목구비 위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건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이정화는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난 이게 아주 명확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그 여자가 우리 앞에 나타난 이후로 모든 게 엉망이 됐어. 채연이가 이 지경이 된 것도, 다 그 여자 때문이라고!”“맞아요. 하지만 저도 책임이 있습니다.”박진성이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이정화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정화의 손이 떨렸다.“또 그 소리야? 너는 왜 매번 그 여자를 감싸는 거냐! 네가 채연이에게 뭐라고 했는지 기억 안 나? 평생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했잖아! 그런데도 그 여자 하나를 떼어내지 못해서 이러고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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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8화 싸그리 뽑아버리다

문채연은 별장으로 돌아오면서 민여진을 꺾는 건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다.날카롭게 빛나던 그녀의 눈동자가 이내 부드럽게 가라앉았다. 곧 눈썹을 살짝 내리며 입을 열었다.“여진 씨가 나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난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그렇게 또다시 사흘이 흘렀다.박진성은 한 번도 별장에 오지 않았다.넓은 거실 한가운데, 민여진은 2년 전처럼 홀로 앉아 있었다.하지만 하나 달라진 게 있었다.그때의 그녀는 희망을 기다리는 재스민이었다면, 지금의 그녀는 썩어가는 장미였다.꽃잎은 이미 말라버렸고, 뿌리는 썩어가는 중이라, 모든 것이 악취로 변해갔다.“여진 씨...”문 앞을 지키던 서원이 그녀를 바라봤다.해 뜰 무렵부터 해 질 때까지, 같은 자세로 앉아 있는 모습이 어쩐지 안쓰러웠다.그는 조심스레 다가가 가볍게 말을 걸었다.“뜰에 꽃이 활짝 피었어요. 향기도 꽤 괜찮은데... 한 번 나가서 보실래요?”오랜 시간 미동도 없던 그녀는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꽃 피었어요?”“네. 아주 많이요. 멀리서 보면 꽃 무더기가 한가득 이에요. 향도 너무 강하지 않아서 좋더라고요.”“그래요?”민여진은 살짝 고개를 숙였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그도 그럴 것이 그 꽃은 그녀가 직접 심은 것들이었다.“나가볼래요.”서원은 순간 멍해졌다. 그녀의 얼굴에서 오랜만에 본 웃음 때문이었다.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민여진의 손을 조심스레 받쳐주며 뜰로 향했다.정말이었다. 꽃은 활짝 피어 있었고,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이 공기 속을 맴돌았다.민여진이 손을 뻗어 꽃잎을 조심스레 만졌다. 기억 속의 감촉과 다르지 않았다.그녀가 조용히 말했다.“서원 씨, 삽 하나 가져다줄래요?”“네?”서원은 당황했지만, 어쩐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사흘 동안 말 한마디 없던 사람이 드디어 입을 연 것이었으니, 그는 서둘러 창고에서 삽을 꺼내왔다.“여기요.”그녀에게 삽을 건네며 조심스레 물었다.“그런데 이걸 어디에 쓰시려고?”말을 다 끝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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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9화 가만두지 않을 거야

서원의 얼굴에 미묘한 실망이 스쳤다.“민여진 씨, 강아지 안 좋아하세요?”“그런 게 아니에요.”그녀는 조심스럽게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작은 생명체는 그녀의 온기를 느낀 듯, 코끝을 들이밀며 손가락을 살짝 핥았다.“하지만 난 볼 수도 없고... 강아지를 돌보기도 힘들어요. 게다가...”그녀의 손길이 잠시 멈췄다.“난 여기서 주인 행세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박진성 씨 허락도 없이 내가 어떻게 이 아이를 키울 수 있겠어요?”“아, 그게 걱정이었어요?”서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걱정할 필요 없어요. 강아지 돌보는 건 제가 도울 테니까요. 그리고 박 대표님도 강아지 한 마리 갖고 신경 쓰진 않을걸요?”“아니요... 그게 아니라...”서원이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이 강아지, 이제 돌려보낼 수도 없어요. 어미가 죽었거든요. 이웃분도 너무 마음 아파서 새끼들을 다 키울 수 없어 절반은 다른 곳에 보냈어요. 그런데 저는 집에 있는 시간이 별로 없어서... 여진 씨까지 거절하면 정말 갈 곳이 없어요.”민여진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작고 연약한 생명체는 마치 어미를 잃고 길을 잃은 새끼처럼 그녀의 손을 찾듯 몸을 비볐다.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서원 씨, 가족 없어요?”그러면서도 그녀는 강아지를 조심스레 품에 안았다.너무 작고 가벼웠지만 작은 체구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품에 들어오자마자 따뜻한 숨결을 내뿜으며 편안하게 웅크렸다.‘꼭 나를 닮았네?’분명 가족이 있는데도, 단 한 번도 품에 안겨본 적 없는 자신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래요...”그녀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처음으로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제가 키울게요.”서원은 그녀의 얼굴을 보며 순간 말을 잃은 듯,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너무 잘됐어요! 그럼 염소젖 분유라도 사 올게요. 아직 어려서 우유보다는 그게 좋을 거예요.”“네.”서원이 급히 뛰어나간 후, 민여진은 강아지를 위해 담요를 상자에 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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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0화 텅 빈 꽃밭

박진성의 눈이 가늘어지며 날카로운 기운이 번졌다.‘내가 별장을 떠난 지 며칠 됐다고 벌써 비밀이 생긴 거야?’“민여진!”그의 목소리가 낮고 단단하게 가라앉았다.“셋을 셀 테니까 내 인내심을 더 이상 시험하지 마.”그녀는 입술을 꼭 깨물었다.“셋, 둘...”“망고!”“뭐?”민여진은 그제야 자신이 반사적으로 강아지의 이름을 불렀다는 걸 깨닫고 황급히 박스를 열었다.안에서 작은 강아지가 낑낑거리며 머리를 내밀더니, 냄새를 맡고 그녀에게 바짝 달라붙었다.“이 아이야.”박진성의 표정이 한순간 일그러졌다.그는 뒷걸음질 쳤다.“너... 이딴 걸 왜 데리고 온 거야?”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차갑게 쏘아붙였다.“당장 내 눈앞에서 치워.”민여진은 아무 말 없이 박스를 품에 안았다.그러자 박진성이 냉소했다.“이제 여길 네 집이라도 되는 줄 아나 보지? 네 주제에 감히 애완동물까지 키울 생각을 해?”그 말은 뼈를 깎는 듯 아팠지만 그녀는 애써 눈물을 삼키며 조용히 말했다.“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죽었대. 아직 너무 어려서 혼자 두면 살아남지 못할 거야. 조금만 크면 보내줄게... 그러면 안 될까?”박진성은 단호하게 거절하려 했지만, 엄마가 죽었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미세한 동요를 보였다.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을 흔들었다.강아지는 작은 몸을 민여진의 손에 비비며 의지했다. 그 모습이 묘하게 그녀를 떠올리게 했다.‘똑같군. 불쌍하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처지. 그래도 저 강아지는 눈치라도 보는데, 민여진은...’박진성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때마침 서원이 다가와 정원에 세워진 그의 차를 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대표님...”박진성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며 무심하게 위층으로 올라갔다.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강아지가 별장에서 지내는 것을 묵인했다는 뜻이었다.민여진은 믿기지 않는 듯 눈을 깜빡였다가, 이내 감격에 벅차 코끝을 훌쩍였다.서원과 함께 강아지에게 우유를 먹이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녀석이 만족스럽게 잠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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