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차가운 대표님과의 치명적인 밤들: Chapter 361 - Chapter 370

422 Chapters

제361화

방 안으로 들어온 건 바로 안현주였다.기세등등한 얼굴로 문 앞에 서 있던 그녀는 차가운 눈빛으로 윤하경을 훑어보며 비아냥댔다.“또 그 낯짝 두꺼운 친구 대신 고자질하러 온 거예요?”거칠고 모욕적인 말에 윤하경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말조심하세요.”“조심해야 할 건 그 여자죠. 당신 그 잘난 친구가 내 약혼자한테 기웃거리고 있는데, 내가 조용히 있어야 한다고요? 존중받고 싶으면 먼저 당신네 쪽부터 조심시키세요.”윤하경은 이를 악물며 침착하게 대꾸했다.“안현주 씨. 당신이 지금까지 한 일들, 전부 불법이라는 거 알고 있죠?”하지만 안현주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그래서요? 그게 뭐 어떻다는 건데요?”그 뻔뻔한 태도에 분노가 치밀어오르는 걸 억누르며 윤하경이 낮게 말했다.“좋아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나오는지 지켜보시죠.”그녀는 등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도 않아 안현주의 목소리가 다시 그녀를 붙들었다.“잠깐.”윤하경이 멈춰서서 돌아보는 순간, 안현주는 차가운 술을 윤하경의 얼굴에 그대로 끼얹었다.“강현우를 등에 업었다고 해서 뭐든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 착각하지 마요. 그 사람, 그냥 잠깐의 호기심으로 당신한테 관심 보인 거예요.”안현주의 눈빛엔 조롱과 경멸이 가득했다.“강현우 씨 맞선녀가 벌써 경성에 도착했단 얘기 못 들었나 보죠? 얼마 안 가서, 당신도 버려지겠네요. 쓰레기처럼.”윤하경의 온몸은 술로 흠뻑 젖었다. 머리부터 가슴까지 흐르는 액체가 그녀의 자존심까지도 타고 흘러내렸다.모욕감에 치를 떨며 반격하려는 찰나, 그녀의 뒤로부터 따뜻한 온기가 다가왔다.안현주의 얼굴이 순간 굳어지고 목소리가 엉겼다.“강...”그 순간,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강현우가 등장했다.“말은 잘하더니, 지금은 왜 이렇게 더듬어요?”윤하경이 놀란 듯 뒤돌자, 그의 날카로운 턱선이 시야에 들어왔다.안현주는 입술을 달싹이며 식은땀을 흘렸다.‘혹시... 내가 한 말 전부 들은 건가?'그녀는 다급히 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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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갑작스러운 전개에 안현주가 뭐라고 따지기도 전에 두 명의 경호원이 한 명은 팔을, 한 명은 다리를 들어 그녀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안현주가 발버둥 치며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내가 아니라고, 저 여자를 내쫓아야지!”우지원은 순간 안현주가 조금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는 한 걸음 다가가 말했다.“여기에서 쓰레기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 하나뿐이에요.”“앞으로 다시는 여기 오지 마세요. 우리 헤븐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요.”그는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어떻게 그렇게 멍청할 수 있지? 강현우가 윤하경을 내쫓을 거라고 생각하다니.’어떤 상황이 와도 강현우는 윤하경을 함부로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건 그 자신에게도 침 뱉는 일이나 다름없었다.그때, 안현주가 마지막 악을 쓰며 외쳤다.“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우지원은 짜증이 난 듯 서랍을 열어 실크 수건을 꺼내더니, 그녀의 입에 조용히 구겨 넣었다.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챈 윤하경은 마음이 싱숭생숭해져 강현우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래서 지금 나를 도와주고 있는 건가요?”그녀의 질문에 강현우는 찬찬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엔 무언가 날카롭고 복잡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한심하기로서.”“앞으로 또 이런 식으로 당하고 살 거면, 어디 가서 내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그 말만 남기고 그는 고개를 돌려 밖으로 나갔다.윤하경은 말문이 막혔다.비록 그가 나서지 않았어도 안현주를 가만두지 않았을 그녀였다.하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지켜줬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꽤 괜찮았다.“안 가? 여기서 유호천이랑 있을 거야?”윤하경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급히 그를 따라갔다.밖으로 나가면서 뒤돌아보니, 이 난리통에 유호천은 여전히 쿨쿨 자고 있었다.윤하경은 어이가 없어 그를 노려보다가 이내 문을 닫고 나섰다.그러나 밖으로 나서자 강현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여기서 길이라도 잃으면 어떡하지...’불안에 휩싸인 그녀는 기억을 더듬어 엘리베이터 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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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하얀 셔츠 아래로 윤하경의 긴 다리가 드러났다.고개를 숙여 자신을 내려다본 그녀는 작게 중얼거렸다.“이만하면 괜찮겠지.”단정하게 셔츠 매무새를 고치고 방 밖으로 나오자 강현우는 이미 양복 재킷을 벗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긴 오른팔은 느슨하게 소파 등받이에 기댄 채, 손가락으로 소파 가죽을 톡톡 두드리고 있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그 순간 윤하경의 몸이 저도 모르게 굳어졌다.강현우의 표정은 좋지 않아 보였고 윤하경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그... 괜찮으면, 이만 가볼게요.”그녀는 강현우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유호천을 찾아간 일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지 감이 잡히지 않았고 괜히 화가 더 나기 전에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하지만 강현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의 다리를 스쳐보더니 입가에 의미 모를 미소를 띠었다.“잠깐.”문을 열고 나가려던 윤하경은 그대로 멈춰 섰다.그녀는 뒤돌아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더 하실 말 있으세요?”그녀는 침착하려 애썼지만 강현우의 눈빛은 점점 냉랭해졌고 손끝으로 오라는 듯한 제스처를 보였다.윤하경은 꼼짝하지 않고 눈빛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냥 여기서 이야기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내가 갈까, 그럼?”그 말에 그녀는 마지못해 그에게 다가갔다. 그 모습은 마치 교무실에 불려 간 학생 같았다.가까이 다가오자 강현우의 시선이 그녀의 하얀 셔츠 너머로 스쳤다.백열등 아래, 셔츠 안 실루엣이 은근히 비쳐 보였다.그는 시선을 피하지 않고 장난기 어린 말투로 말했다.“남자 유혹하는 법, 꽤 잘 아나 본데.”그러고는 손을 뻗어 그녀를 자신의 무릎 위로 끌어당겼다.윤하경은 얼굴이 이유 없이 화끈 달아올랐다.강현우의 셔츠 위로 느껴지는 단단한 근육에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움찔했다.오늘 이 옷을 고른 건 단지 집에 돌아갈 때 입을 옷이 필요해서였을 뿐인데, 그의 농담 한마디에 그녀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그녀는 황급히 일어서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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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그래?”강현우의 낮은 목소리에 윤하경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세요.”그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고 손길은 이전보다 더 강하게 그녀의 허리를 감쌌다.윤하경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작게 신음을 내며 그의 어깨에 몸을 기댔다.“진짜예요!”강현우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다른 남자 얘기를 하니 기분이 좀 나쁘네.”그는 몸을 일으켜 세운 뒤, 윤하경을 가볍게 안아 침대 위로 던지듯 내려놓았다.순간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이제서야 강현우의 진짜 의도를 눈치챘다.‘결국 이게 목적이었구나... 이 남자의 욕망은 도대체 줄어들 줄을 모르는 건가.’강현우가 천천히 몸을 숙이며 다가오자 윤하경은 반사적으로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아직 몸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잖아요...”강현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지금... 날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내 체력이 의심스러워서?”30분 후, 윤하경은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아... 그냥 입 다물걸.’그녀는 지친 숨을 몰아쉬며 강현우에게 간신히 외쳤다.“제발... 그만...”하지만 돌아온 건 더욱 깊고 거친 움직임뿐이었다.지친 몸은 강현우의 집요함에 무너졌고 그녀는 결국 녹초가 되어 침대에 축 늘어졌다.반면 강현우는 한순간도 쉬지 않고 일어나 욕실로 향했다.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윤하경은 저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강현우와 함께한 밤은 그녀에게 있어 전쟁과도 같았다.어쩌면... 전쟁보다 더 치열했을지도 몰랐다.샤워를 마치고 나온 강현우는 조용히 침대에 누운 윤하경을 바라보았다.그 순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시선을 거두고 문을 열었다.문 앞에는 우지원이 서 있었다.“대표님. 옷, 가져왔습니다.”강현우는 말없이 옷을 받아들었다.우지원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이따 백화점에 사람을 보내서, 윤하경 씨 사이즈에 맞는 옷도 추가로 구매하겠습니다.”그는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듯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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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윤하경의 물음에 우지원은 잠시 망설였다.그는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결국 결심한 듯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대표님께서 저더러 문 앞까지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윤하경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고마워요.”‘헤븐’을 나와 자신의 차에 오르자, 윤하경은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었다.긴장이 풀린 듯 핸드폰을 꺼내보니 수많은 미확인 메시지가 쌓여 있었다.여러 사람에게서 온 메시지 중, 가장 많은 건 다름 아닌 유 집사였다.[아가씨, 아직 밖이에요?][집에 난리가 났어요.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니까요.]윤하경은 눈썹을 찌푸리며 시동을 걸었다.집에 도착한 건 거의 정오 무렵이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유 집사가 허겁지겁 달려 나왔다.“아가씨! 어젯밤 대체 어디 계셨던 거예요?”그러다 문득 그녀의 목을 바라본 유 집사의 얼굴에 의문이 스쳤다.“어머, 어디서 주무셨길래 모기한테 그렇게 물리셨어요?”순간 윤하경은 본능적으로 손을 들어 목을 가렸다.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분명 모기 물린 자국이 아니라, 전날 밤의 흔적이었다.‘샤워할 때 미리 봤더라면 파운데이션이라도 발랐을 텐데.’그녀는 얼버무리듯 말했다.“그보다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던 게 무슨 뜻이에요? 설마 임수연이 죽은 건 아니겠죠?”‘안돼. 이제 복수를 시작했는데, 이렇게 쉽게 끝나버리면 재미없지.’유 집사는 2층을 슬쩍 쳐다보더니 그녀를 조용히 구석으로 이끌었다.“어젯밤에 회장님께서 지하실로 내려가셨어요. 아가씨께서 저더러 그 여자의 상태를 계속 살피라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뒤따라갔는데... 문밖에서도 여자의 비명이 들릴 정도였어요.”그녀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떨려 있었다.“어떻게 고문한 건지... 그 소리, 아직도 귀에 맴돌아요.”유 집사는 평생 윤씨 집안에 충직하게 일해온 사람이었다.그녀가 겪어본 가장 큰 일이라 해봤자 임수연의 날 선 말투 정도였기에 어젯밤의 광경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윤하경은 예상치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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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음에도, 눈앞의 광경에 윤하경은 순간적으로 숨을 헉 들이켰다.과거의 임수연은 비록 절세미인은 아니었지만 윤씨 가문의 재력을 등에 업고 기품 있는 척할 줄은 알았다.하지만 지금의 임수연은 그저 땅바닥에 널브러진 채 한 마리 죽어가는 개에 불과했다.손과 발은 굵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고 옷은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 원래 색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그 모습을 본 윤하경은 묘한 기분에 휩싸였다.그건 희열과 만족감, 그리고 설명할 수 없는 혐오감이었다.윤하경이 뒤에 서 있던 두 명의 경호원을 바라봤다.“나가 있어.”싸늘한 목소리가 울리자 눈을 감고 가쁜 숨을 내쉬고 있던 임수연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며 벌떡 일어났다.그녀의 두 눈은 마치 원귀처럼 이글거렸고 윤하경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이 개년아! 감히 여길 와?”임수연은 필사적으로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디를 크게 다친 건지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다.그런 그녀를 향한 윤하경의 시선은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그 눈엔 동정도 연민도 없었다.과거의 윤하경은 길고양이 한 마리만 봐도 마음 아파하던 따뜻한 사람이었다.하지만 자신의 어머니를 죽게 만든 인간을 동정할 이유는 없었다.임수연이 이를 갈며 발버둥 쳤지만 윤하경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그 눈빛에 오히려 임수연이 움찔했다.“너, 날 비웃으려고 온 거야?”윤하경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맞아요.”“널 죽여버릴 거야!”임수연은 맹수처럼 으르렁거리며 기어오르려 했고 그 모습은 마치 다리가 부러진 짐승 같았다.“당신도 이런 날이 올 줄 몰랐겠죠?”임수연은 대답 대신 이를 갈며 윤하경을 노려보았다.“다 너 때문이야... 다 네년 때문이라고!”그 악다구니에 윤하경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당신 스스로 자초한 일이에요.”그녀는 차분하게 대꾸하며 손에 든 약병을 흔들었다.“살고 싶으면, 나한테 빌어요.”임수연의 눈이 잠시 흔들렸다가 이내 독기 어린 눈빛이 번뜩이며 침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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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어젯밤, 윤수철의 고문에 이미 만신창이가 된 임수연은 윤하경의 무자비한 발길질에 비명을 질렀다.“윤하경, 넌 제명에 못 죽을 거야!”윤하경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내가 제명에 못 죽을 거라고? 글쎄... 우리 둘 중 누가 먼저 죽을지는 두고 봐야죠.”그녀는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 작은 얼굴에 비치는 건 오로지 혐오감뿐이었다.“당신은 평생을 계산하고 꾸며가며 살아왔죠. 근데 결국은 이런 습하고 어두운 지하실에서 이렇게 죽어가는 꼴이라니. 비참하네요.”임수연은 몸을 떨며 윤하경을 노려봤다. 독기 어린 눈빛, 그러나 그 속엔 어딘가 흔들림이 있었다.“너... 뭐 알아낸 거야? 어서 말해, 뭘 알아낸 거냐고!”미친 듯이 소리치는 임수연에게 윤하경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요한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이윽고 윤하경은 손에 든 약을 경호원들에게 건네며 차갑게 말했다.“숨은 붙어 있게만 해.”“네, 아가씨.”경호원들이 움직이자 윤하경은 미련도 없이 지하실을 나섰다. 그리고 뒤로는 다시, 임수연의 비명이 메아리쳤다.“아가씨! 괜찮으세요?”유 집사가 달려왔다. 윤하경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아무렇지도 않게 미소 지었다.“네. 괜찮아요.”“그런 여자한테 괜히 신경 쓰지 마세요. 아가씨가 걱정돼서...”윤하경은 대충 대답하고 곧장 2층으로 올라갔다.그리고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의자에 털썩 몸을 기대어 담뱃갑을 꺼냈다. 몇 번이나 라이터를 튕긴 끝에야 겨우 불이 붙었다.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천장을 올려다본 그녀의 눈에는 깊은 고요가 드리워졌다.윤하경은 방금까지 임수연을 그 자리에서 끝내버리고 싶었다.“그러면 나도 그 여자랑 다를 게 없어.”그녀는 낮게 속삭였다.“엄마, 나 너무 못된 걸까?”그 어떤 대답도 돌아오지 않았고 방 안엔 그녀의 숨소리만이 조용히 울려 퍼졌다.그날 하루, 윤하경은 한 발짝도 방 밖을 나서지 않았다.한밤중.창밖에서 들려오는 인기척에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욕실 창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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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윤수철이 그런 식으로 말을 내뱉은 건, 결국 자기 얼굴을 보기 싫어서라는 걸 윤하경은 뻔히 알고 있었다.‘하긴, 외도 현장까지 아버지를 끌고 간 게 나였으니까. 그 앞에서 여자한테 배신당한 꼴을 딸에게 들켜버렸으니, 남성우월주의로 똘똘 뭉친 아버지로선 도저히 견딜 수 없었겠지.’‘그러니 눈앞에서 없애고 싶었을 거야. 안 보이면 마음도 편하겠지.’하지만 윤하경은 절대 이 집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자신을 볼 때마다 윤수철이 얼굴을 찌푸리면 오히려 좋았다.그동안 자신이 견뎌온, 토할 것 같은 기억들에 비하면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윤수철의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윤하경은 신경 쓰지 않았다.“아줌마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그 말에 윤수철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그리고 윤하연은요? 회사에서 바로 자르실 건가요, 아님 또 대충 눈감아줄 건가요?”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생겼다.“그딴 건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네 일이나 잘해.”윤하경은 어깨를 으쓱였다.“그런데요, 제가 신경 안 써도 되는 일이었어요?”“제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아줌마한테 홀려서 뭣이 진짜인지 몰랐겠죠.”그녀는 윤수철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윤수철은 결국 들고 있던 수저를 식탁에 내던지듯 놓고 쿵쿵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2층으로 올라갔다.윤하경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웃었다.“국 좀 주세요.”곁에 서 있던 유 집사가 한숨을 쉬며 다가왔다.“아가씨, 지금이야말로 기회예요. 이럴 때 조금씩 아버님과 관계를 회복하셔야지, 왜 계속 부딪히시기만 해요.”윤하경은 애교 섞인 목소리로 유 집사의 말을 끊었다.“빨리요. 저 지금 배고파요.”물론 그녀도 유 집사가 진심으로 자신을 걱정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내가 그렇게 순하게 말 잘 듣는 성격이었으면 아버지랑 이렇게까지 틀어지지도 않았겠지.’식사를 마치자마자 윤하경은 회사로 향했다.요즘 윤수철은 회사 일에는 눈길도 주지 못하고 있었기에 지금이야말로, 사람들을 자기편으로 만들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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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그때 그 사건이 그렇게도 추하게 끝나버렸으니 지금 윤하경과 주미나 사이에 남아 있는 건 어색함 뿐이었다.그런 그녀가 느닷없이 연락을 해오자 윤하경은 직감적으로 느꼈다.‘좋은 일일 리 없겠네.’윤하경이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주미나는 그런 말에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결국 그녀는 직접 회사를 찾아왔다.퇴근길, 회사 정문을 나서던 윤하경은 검은색 차량 옆에 서 있는 낯익은 실루엣을 발견했다.주미나였다.예전엔 단정하고 세련됐던 그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피곤함에 절은 얼굴, 짙게 내려앉은 다크서클, 불과 몇 달 사이에 그녀는 확연히 늙어 있었다.윤하경은 잠시 멈칫했지만 이미 그녀의 눈에 들고 말았다.“하경아.”주미나가 서둘러 다가왔고 윤하경은 돌아보며 담담하게 인사했다.“안녕하세요.”과거엔 ‘어머님’이라 부르던 아이가 이제는 이름 석 자조차 입 밖에 내지 않자 주미나의 눈가가 붉어졌다.“그동안 잘 지냈니...?”윤하경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네. 잘 지냈어요.”더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아 윤하경이 직설적으로 물었다.“무슨 일로 절 찾아오신 거예요?”주미나는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그냥... 네 얼굴 한번 보고 싶어서. 오랜만이잖니.”손목시계를 흘끗 확인한 그녀는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한 시간만. 너랑 얘기하고 싶어.”윤하경은 주저 없이 고개를 저었다.“저희 사이에, 더 이상 나눌 이야긴 없을 것 같은데요.”냉정한 말투에 주미나의 얼굴엔 실망의 그림자가 드리웠다.“하경아... 난 언제나 네가 지호랑 어떻게 되든, 내 딸처럼 생각했어...”진심 어린 말투.그녀가 어떤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는지 윤하경도 알고 있었다.사실, 그녀는 생전에 엄마가 가장 아끼던 친구였고 그리고 지난 시간 동안, 딱히 나쁘게 대한 적도 없었다.잠시 침묵이 흘렀고 결국 윤하경은 고개를 들었다.“좋아요. 어디서 이야기하실 건데요?”주미나는 안도한 듯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레스토랑 하나 예약해 놓았어. 우리 차 타고 가자.”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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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아쉽잖니.”주미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그 미소는 따뜻하지 않았다.입꼬리만 올라가 있을 뿐, 그 안엔 냉기와 뒤틀린 집착이 섞여 있었다.윤하경은 눈살을 찌푸린 채 움직이지도 않았다.“여기 어디예요? 왜 절 이런 데로 데리고 온 거죠?”“누구 좀 보여주려고.”그녀의 말투는 여전히 부드러웠지만,윤하경은 본능적으로 느꼈다.‘이건, 단순한 만남이 아니다.’불길한 예감이 등골을 타고 기어올랐다.윤하경은 조용히 가방 속 휴대폰을 주머니에 찔러 넣으며 눈을 떼지 않고 주미나를 응시했다.“말로 하세요.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 없잖아요.”“우리 사이, 약혼 문제 외엔 특별한 감정도 없었잖아요. 제가 아줌마한테 뭘 잘못했다고 이러세요?”입으론 말을 이어가면서도, 윤하경의 시선은 차창 밖을 바쁘게 훑었다.‘진작에 이상하다는 걸 알아채야 했는데... 내가 멍청했지.’그 순간, 주미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네 말대로야. 넌 나한텐 잘못한 게 없어.”하지만 그녀의 미소는 점점 서늘하게 식어갔다.“그런데 말이지... 내 아들이 지금 반쯤 죽어가고 있어. 침대에 누워서 눈도 못 뜨고 있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가만히 있어야겠니?”윤하경의 얼굴이 굳어졌다.“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 있죠?”“아직도 그런 소리가 나와?!”주미나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솟구쳤다. 붉어진 눈시울이 더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지금이야.’윤하경은 순간적으로 문을 열고 밖으로 튀어나와 문 옆에 서 있던 주미나를 힘껏 밀쳐버렸다.“꺄악!”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뒹구는 주미나를 넘어, 윤하경은 맨발로 달리기 시작했다.굽 높은 힐은 도망치는 데 걸림돌이 될 뿐이었다.이곳은 주미나가 일부러 고른 장소였다.외진 들판, 사람 하나 지나가지 않는 황량한 도심 외곽에, 게다가 해까지 뉘엿뉘엿 저물고 있어 주위는 이미 어둠이 깔려 있었다.뒤에서 주미나가 이를 갈며 고함쳤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쫓아가!”대기 중이던 사내들이 비로소 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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