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Chapter 571 - Chapter 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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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1화

방 안의 공기는 차분했지만 그 속에는 설명할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있었다.소하는 말없이 주변을 둘러보았다.허름한 지붕, 바래진 문짝, 낡은 가구들.이곳에서의 삶은 몹시 궁핍해 보였다.그러나 이곳은 완전히 버려진 폐가는 아니었다.그리고 이 집의 주인은 남자일 가능성이 높았다.그때 김단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백 도령은 사냥을 하러 가셨어요.”소하는 천천히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그녀가 자신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을 구해준 사람이 사냥꾼이오?”김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뿐 더 이상의 설명을 덧붙이지 않았다.소하는 다시금 시선을 돌려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백 씨? 흔치 않은 성이군.”그 말에 김단의 미간이 미묘하게 좁혀졌다.그가 백우, 즉 최지습에 대해 불필요한 호기심을 가지는 걸 원치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오라버니, 저를 찾느라 오래 걸리셨나요?”소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리고 천천히 시선을 내리깔며 쓴웃음을 지었다.“낭자가 장양강에 떨어진 그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었소.”그의 시선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었다.김단은 그가 고개를 숙이기 직전 그의 눈빛에 스친 깊은 외로움과 상실감을 똑똑히 보았다.그녀가 장양강에 빠진 지도 벌써 한 달 보름이 넘었다.그녀가 의식을 잃고 누워있을 때도,그녀가 이곳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도,그는 그녀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그가 얼마나 많은 실망을 거듭했고 얼마나 많은 허망한 단서를 좇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김단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삼백여 리의 거리.그는 어떻게 그녀를 찾아낸 걸까?그녀는 이미 죽었다고 생각했을 텐데.“오라버니를 걱정하게 해드렸네요.”김단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소하는 그녀가 예전에 알던 김단과는 사뭇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녀의 말투 속에 어떤 평온함이 자리 잡고 있는 듯했다.그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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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2화

소하와 김단, 그들이 처한 상황은 너무나도 달랐다.김단은 모두에게 버려진 존재였지만, 소하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존재였다.그가 다섯 해 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몸이었을지라도 구태부는 그를 다시 마주했을 때 눈물을 글썽이며 감격했고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체면을 내려놓기까지 했다.전하는 그의 회복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그를 궐로 불러들여 각별한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었다.소가의 장자로 태어난 그는, 소씨 대감의 극진한 사랑과 소씨 부인의 아낌없는 애정을 받았다.소정원조차도 그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다.소한 역시 마찬가지였다.그가 아무리 계략을 꾸미고 모든 걸 장악하려 했어도 소하에게 치명적인 해를 입히지 못했다.그는 사랑받는 존재였다.‘사랑’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그것은 때로 가장 단단한 갑옷이 되기도 하고때로는 가장 아픈 상처가 되기도 한다.김단은 시선을 내리며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자신의 두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오라버니와 함께 한양으로 돌아가라고요?”그녀의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소하는 다급히 입을 열었다.“가지 않아도 되오! 낭자가 원하는 곳으로 갈 생각이오. 낭자가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소!”그의 말에는 단단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그는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다시 한번 조용히 물었다.“그럼… 이번 생이 다할 때까지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을 건가요?”그 말에 소하는 순간 멍해졌다.‘이번 생이 다할 때까지.’생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기약 없는 시간 속에서, 영원히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을 자신이 있냐는 뜻이었다.그러나 그는 망설이지 않았다.“나는 언제까지나 낭자 곁에 남을 것이오.”그녀가 영원히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그도 영원히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그것이 그의 선택이었다.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김단은 고요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럼, 대감님과 대감마님은요? 금군 총령의 자리는요? 그리고 전하께는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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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3화

행복?소하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는 김단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낭자가 말하는 그 행복이… 그 사냥꾼이오?”그의 목소리는 무심한 듯했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그러나 그녀의 반응은 소하의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당연히 아닙니다! 백도령은 그저 저를 구해주신 은인이에요.”그녀는 경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것은 누가 봐도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이었다.그녀의 단호한 부정 속에서 소하는 순간적으로 헛짚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소하는 미묘하게 눈썹을 찌푸리며 낮게 읊조렸다.“나는… 그런 줄 알았소.”그녀의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그도 확신할 수 없었다.김단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전 단지, 한양에서의 삶보다 이런 평범한 백성의 삶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해요.”그녀의 시선이 천천히 창밖으로 향했다.그곳에는 춘 숙모가 서 있었다. 그녀는 그늘이 있는 곳을 마다하고 굳이 마당에서 채소를 다듬고 있는 걸 보니 혹시라도 김단이 소하에게 무슨 봉변을 당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모양이었다.그녀는 수시로 집 안을 힐끗힐끗 바라보며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 모습에 김단의 눈가에는 저절로 따스한 미소가 번졌다.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마당을 향해 밝게 웃었다.“이곳 사람들은 단순해요. 물론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선하고 정직합니다. 그들은 태양이 떠오르면 일어나 일하고 해가 지면 집으로 돌아오지요. 물질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부와 명예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지요.”소하는 김단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보았다.그의 눈에 춘 숙모의 모습이 들어왔다.햇볕에 그을려 검게 빛나는 얼굴. 그 속에는 조금의 가식도, 간사함도 없는 정직한 표정이 담겨있었다.그는 김단이 왜 이곳을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한양은 너무 크고 복잡했다.억울함은 쉽게 씻어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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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4화

그날 밤 김단은 창가에 앉아 조용히 밤하늘을 바라보았다.창밖에는 고요한 달빛이 땅을 비추고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디에도 머물 곳을 찾지 못해 불안하기만 했다.그녀는 얼마 만에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강변 마을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비록 대부분의 시간을 방 안에서 보냈고 가끔은 무료함에 멍하니 시간을 흘려보내기도 했지만 적어도 그곳에서는 마음이 평온했다.소하는 그녀를 데리고 당장 떠날 수는 없었다.“지금 바로 낭자를 데리고 떠난다면 한이의 의심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그래서 그는 우선 그녀를 이 작은 집에 머물게 하고 거짓 정보를 흘려 소한을 엉뚱한 곳으로 유인한 뒤 그녀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철저한 계산에서 비롯된 계획이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요동치고 있었다.이상했다.소한이 속아 넘어가고 그의 눈을 피해 도망칠 수 있는 완벽한 기회인데 전혀 후련하지가 않았다.그렇게 밤이 깊어가고 김단은 긴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녀가 침대로 가려던 순간‘똑.’어딘가에서 미세한 소리가 들려왔다.낮고 가벼운 소리였으나 적막감만 맴도는 고요한 밤이라 그런지 그 소리는 선명하게 들렸다.순간 김단의 심장이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누구지?”소하는 이곳에 그 어떤 병사도 남기지 않았다.단서라도 남겼다가는 소한이 자신의 움직임을 눈치챌까 염려되었기 때문이다.대신 그는 주변에 사람들을 배치하여 순찰을 하게 했다.만약 소한이 그녀를 찾으러 온다면 다른 몇 개의 빈 집을 탐색하게 만들어 시간을 벌 작정이었다.김단이 머물고 있는 방은 겉보기에 완전히 방치된 공간이다.그런데 왜 마당에서 소리가 나는 걸까?김단은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문가로 다가갔다.그리고 대문에 귀를 대고 숨죽여 소리를 들어보았다.아까 들렸던 소리는 착각이었을까?아니면 정말로 누군가가 숨어 있는 걸까?“단아.”저릿할 정도로 낮고 깊은 목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김단은 숨이 멎을 뻔했다.반사적으로 몸이 움츠러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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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5화

다섯째 도령은 등 뒤에서 들려오는 칭찬을 듣고 속으로 몰래 기뻐했지만 모르는 척하며 태연하게 말했다.“이게 뭐라고 그러시오. 우린 남매이지 않소!”아무렇지 않은 듯한 말투였지만 그 속에 묻어나는 미묘한 뿌듯함은 감출 수 없었다.그는 자연스럽게 문을 열고 김단을 안으로 들여보냈다.“오늘 밤은 여기서 주무시오. 내일 아침 일찍 마차를 마련해 주겠소.”마을에 계엄령이 내려진 것은 아니지만 밤중에 마차를 움직인다면 반드시 누군가의 눈에 띌 것이다.소한의 눈을 피하려면 조금이라도 안전한 길을 택해야 했다. 김단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을 뿐 목적지에 대해서는 따로 묻지 않았다.그때 옆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최지습이 한마디 덧붙였다.“나는 바로 옆방에서 자겠소.”그제야 김단은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고마워요, 큰 도령님. 그리고 다섯째 도령님도요.”“너무 형식 차릴 거 없소. 시간 늦었으니 얼른 주무시오.”“네, 도령님들도 일찍 쉬세요.”김단은 마지막 인사를 건넨 뒤 문을 닫았다.주변을 둘러보니 이곳은 작고 아담한 방이었다.방 안에 가구라고 할 만한 것은 침대 하나, 탁자 하나, 그리고 작은 옷장이 전부였다.침대 위 이불조차도 거친 천으로 만들어져 있었고 창문에는 허름한 나무틀이 달려 있었다.소하가 그녀를 위해 마련해 준 저택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그곳은 방도 넓고 커튼조차 비단으로 되어 있었으니까.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작은방에 들어서자마자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이전까지 가슴 한구석을 짓누르던 불안감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그날 밤 그녀는 오랜만에 깊이 잠들었다.너무 푹 자버린 나머지, 다음 날 아침 다섯째 도령이 두 번이나 불러서야 겨우 눈을 떴다.문을 열자 다섯째 도령이 그녀 앞에 옷 한 벌을 내밀었다.“이것으로 갈아입으시오. 물건을 나르는 사람처럼 변장해서 원군님과 함께 성을 나가야 할 것이오. 궐에서 다섯 리쯤 떨어진 곳으로 가면 셋째 도령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거기서 다시 변장하면 되오.”그러면서 작은 은덩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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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6화

최지습은 태연한 얼굴로 손을 들었다.“앞쪽 세 번째 길목에서 우회전한 뒤 왼쪽 두 번째 골목으로 가세요. 그곳이 바로 흥유항입니다.”“고맙습니다.”소한은 차가운 목소리로 짧게 감사를 표한 뒤 즉시 사람들을 이끌고 흥유항을 향해 말을 몰았다.그는 방금 전에야 소하가 단이를 데리고 떠났다는 소식을 접했다.어제 하만촌에서 그가 본 여인은 소하가 교묘하게 준비한 가짜였을 뿐.정말이지 교활하기 짝이 없는 수작이었다.소한의 얼굴은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었다.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광기 어린 희열이 피어오르고 있었다.그는 확신했다.이제 곧 그녀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얼마 지나지 않아 소한은 사람들을 이끌고 흥유항에 도착했다.그는 작은 저택의 문을 단숨에 밀어젖히고 거침없이 안으로 들어섰다.가슴속에서는 강렬한 충동이 꿈틀댔다.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고 싶었다.당장이라도 그녀를 품에 안고 싶었으나 그녀가 놀랄 가봐 격한 감정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그의 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대청을 지나고 정원을 지나자 작은 뜰이 보였다.그곳을 넘어 그가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그녀가 반드시 있어야 할 방.예상대로라면 그녀는 지금쯤 그 방에 숨어있을 것이다.문을 힘껏 열었다.그러나 그곳에 있는 사람은 김단이 아니었다.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싸늘한 한기를 두르고 서 있는 한 사람.소하였다.그는 손을 뒤로 단단히 깍지 낀 채 차디찬 눈빛을 내리깔고 있었다.“단이는 떠났어.”그의 말투는 담담했지만 피가 날 듯 꽉 쥔 주먹이 그의 착잡한 심정을 절실히 보여주었다.그는 알지 못했다.그녀가 언제 떠났는지, 누구와 함께 떠났는지조차도.단지 그가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그녀는 이미 이곳에 없었다.소한은 순간 멍해졌다.심장이 차가운 얼음 물에 내던져진 듯했다.금방이라도 터질 듯했던 그 격한 감정이 단칼에 식어버렸다.믿을 수 없다는 듯 그는 빠른 걸음으로 뜰 안을 헤집기 시작했다.한 칸, 또 한 칸.그는 집 안의 모든 방을 샅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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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7화

이번에 최지습은 더욱 속도를 높였다.흥유항은 바로 어제 김단이 머물렀던 곳이다.소한이 그곳에 도착하면 그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설령 방금 전에 아무런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하더라도 소한이라면 반드시 마을 전체를 샅샅이 수색할 것이다.그러니 지체할 시간이 없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차는 성 밖으로 빠져나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를 전혀 늦추지 않았다.셋째 도령과 합류하고 다시 변장하기만 한다면 소한을 완벽하게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성을 나간지 얼마 되지 않아 뒤에서 날카로운 외침이 들려왔다.“멈춰라!”최지습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그 순간.쉭—!등 뒤에서 날카롭게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를 향한 공격이었다.최지습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단순한 직감만으로 고개를 살짝 틀었다.슝!긴 화살이 그의 귀를 스치듯 날아갔다.김단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그리고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질풍처럼 달려오는 소한이었다.그의 손에는 활이 들려있었고 다시 한번 화살이 그들을 향해 날아왔다.이번에도 화살 끝이 겨눈 것은 최지습이었다.김단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녀는 고민할 새도 없이 즉시 몸을 일으켜 두 팔을 활짝 벌렸다.그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을 자신의 몸으로 막으려 했다.소한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그 순간 그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안 돼!”그가 본능적으로 외쳤다.그 화살은 그녀의 심장을 뚫고 지나갈 것이다.바로 그때 최지습이 순식간에 몸을 날렸다.그는 마차에서 뛰어내리며 김단의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슥—!화살은 아슬아슬하게 그녀의 옷깃을 스쳐 지나갔다.허공에 남겨진 것은 깊게 찢어진 옷자락뿐.김단은 순간적으로 천지가 뒤흔들리는 듯한 감각에 휩싸였다.간신히 균형을 잡고 일어서자 그녀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그녀와 최지습을 완전히 포위한 소한과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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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8화

김단은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그리고 바로 소한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주위는 온통 그의 사람들뿐이었다.그는 암묵적으로 그녀에게 얘기하고 있었다.오늘 그에게서 도망칠 수 없다고.그녀가 끝까지 버틴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그저 그녀 자신과 다른 이들을 더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을 뿐이었다.최지습은 분명하게 느껴졌다.방금 전까지 그의 등 뒤에서 힘겹게 옷깃을 잡아당기던 가벼운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그의 눈빛이 서서히 가라앉았다.그 순간 김단의 목소리가 그의 등 뒤에서 조용히 울려 퍼졌다.“백도령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제가 떠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니 그를 난처하게 만들지 말아 주세요.”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떨림이었으나 최지습은 단번에 알아차렸다.그녀의 두려움과 체념.그녀가 미처 감추지 못한 억울함까지.그는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소한 역시 그 모든 것을 놓치지 않았다.눈앞의 남자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 이 사내 역시 김단을 포기할 수 없겠지.그런데 그게 다 무슨 의미가 있을까?김단은 이미 그의 것인데그 순간 소한의 입가에 희미한 냉소가 스쳤다.그는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이리 와.”짧디짧은 세 글자.그녀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그는 승리자의 시선으로 줄곧 최지습을 바라보았다.김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한 걸음씩 앞으로 나섰다.그녀의 움직임이 느껴지는 순간 최지습의 주먹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그의 시야가 한순간 흐려졌다.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소한은 굳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러나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그녀가 한 걸음씩 다가올 때마다 그는 희열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소한의 앞에 선 그녀가 그의 손을 바라보았다.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꿈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죽을 고비를 넘긴 뒤 결국 다시 이 지옥으로 돌아온 느낌.지난 한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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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79화

최지습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으나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넓은 방 안은 다시금 정적에 휩싸였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함만이 방안을 가득 채웠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둘째 도령이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혹시 다들 한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 있소?”그는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수없이 많은 밤, 지독한 그리움 속에서 한양을 떠올려 보곤 했다.특히 산적들의 수배령을 보았을 때 더더욱 그랬다.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다. 호랑이군은 그들의 피로 쌓아 올린 명성이었다.그 이름이 몇몇 흉악한 산적들의 손에 더럽혀질 수는 없었다.하지만 그는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한양의 생활과 비교해 보면 이곳은 너무나 평온했다.한양으로 돌아간다면 과거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과 마주쳐야 할 것이다.어쩌면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게 될 수도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형제들과 함께했던 그 시절을 떠올렸다.“생각해 본 적 있소.”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열 번째 도령이었다.그는 최지습을 바라보며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처음 원군님을 따른 건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었소.”이름도 없는 작은 마을에서 평범한 사냥꾼으로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나도 생각해 봤소.”“나 역시 마찬가지요.”순식간에 몇몇 도령들의 목소리가 연달아 터져 나왔다.그들은 과거 전장에서 용맹하게 싸우며 최지습을 따라 잔장에 섰다.그들이 원하는 것은 공을 세우고 이름을 떨치는 것이지 소박한 삶이 아니었다.그들의 가슴속에는 뜨거운 피가 끓고 있었다.그들은 이 작은 마을에서 서서히 잊힐 자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지습은 여전히 침묵을 지켰다.그의 시선은 아직 입을 열지 않은 몇몇 도령들에게 닿았다.그들은 살짝 고개를 숙이며 그의 시선을 피했다.더 이상 그와 얽히고 싶지 않다는 눈치었다.최지습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이제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그들에게는 지켜야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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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80화

소하는 말 위에 앉아 있다가 무의식적으로 마차를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금 곁에 있는 소한에게 시선을 옮겼다. “단이를 어디로 데려갈 생각이지?”소한은 소하를 흘끗 바라보았으나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는 묵묵히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그러나 소하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소한은 단이를 다시 그 어둡고 외딴 저택에 가두려 할 것이다.그는 시선을 앞으로 둔 채 차가운 어조로 다시 물었다.“혹시 단이가 다시 장양강에 몸을 던지면 어쩌려고 그래?”그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김단은 결코 쉽게 굴복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이번에는 운 좋게 살아남았지만 다음번에도 이런 행운이 따를 것이라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그들은 김단이 장양강에 떨어져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그 고통을 이미 한차례 겪어보지 않았던가.소한의 얼굴은 한층 더 어둡게 가라앉았다.소하의 말은 옳았다.그 또한 그것이 현실로 될까 두려웠다.김단과 멀어진다면 그녀를 영영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를 짓눌렀다.그가 정말로 그녀를 감금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그저 그녀와의 인연을 이어가기 위한 기회를 만들고 싶었을 뿐이었다.소하는 곁눈질로 소한의 굳어진 얼굴을 바라보았다.그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동생을 잘 알고 있었다.지금 소한은 흔들리고 있었다.“네가 그럴수록 단이는 더욱 반항할 거다. 나도 아는 사실을 네가 모를 리가 없잖아. 너희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사이였으니까.”그제야 소한은 고개를 돌려 소하를 바라보았다.그러더니 낮고 깊은 목소리로 되물었다.“무엇을 그리 신경 쓰십니까? 온전히 저를 위해 하시는 말씀은 아닌 것 같은데요.”소하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말했다.“당연히 아니지. 내가 네 약혼녀를 가로챘고 넌 나를 곤경에 빠뜨리려 했잖아. 그러니 오늘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빚진 건 없어.”소하는 이제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겠다는 뜻이었다.그러나 소하의 담담한 태도와는 달리 소한의 눈빛은 더욱 깊어졌다.소한이 말없이 굳어 있자 소하는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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