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연아, 이렇게 부탁하는 게 너한테 참으로 미안한 일이란 건 알아. 하지만 말이다. 나도 나이가 많고 몸도 예전 같지가 않아. 언제 잠들어서 다시는 못 깨어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강준형은 말하며 눈가가 붉어졌다. 심미연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손에 든 상자를 무의식적으로 더 꼭 쥐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할아버지께서는 꼭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장수하실 거예요!” 강준형은 잔잔히 웃었다. “이 나이 먹도록 살아보니 이제는 생사에 연연하지 않게 됐단다. 내가 떠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네 인생을 잘 살아.” 그는 심미연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그 빚을 갚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남은 시간 동안 그녀가 아끼고 사랑받으며 살길 바랐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바람이었다. 심미연은 강준형의 미소 띤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안함이 스쳐 지나갔다. 어쩐지 그의 모습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떼려는 순간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하던 말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미연아,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까?” 박유진의 목소리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포근하게 들려왔다. “나 차 갖고 나왔어. 데리러 안 와도 돼. 고마워.” 말하는 내내 심미연의 미간은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형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강지한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하지만 이건 다른 사람 탓할 것도 없고 전부 강지한이 자초한 일이다. “나한테 굳이 예의 차릴 거 없어.” 박유진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말했다. “그래. 그럼 일 봐. 내일 다시 연락할게!” 사실 그는 하루 24시간을 다 써서라도 심미연을 보고 싶었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전에는 심미연이 이혼하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심미연이 이혼했으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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