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후 그녀는 메시지를 열었다. 그 안에는 온지유의 셀카 한 장이 담겨 있었다. 셀카 뒤로 보이는 뒤편 벽에는 예전에 그녀가 사람을 시켜서 합성한 강지한과의 결혼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결혼사진을 걸었을 당시 강지한은 비웃으며 조롱했었다. 그녀는 그저 그와 평생을 함께하고 싶었고 그의 조롱 따위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의 고집으로 그 사진은 3년 동안 그대로 벽에 걸려 있었다. 이사를 할 때 서두르다 보니 사진을 내려서 없애는 걸 깜빡했다. 이혼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온지유가 벌써 그 집에 들어갈 줄은 전혀 예상 못 했다. ‘정말 성급하기도 하네.’그런데 아까 본가에서 밥 먹을 때 강지한은 그녀에게 무례한 장난을 쳤었다. ‘재밌네.’그녀는 이제 강지한에 대한 감정은 모두 놓아버렸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사진을 봤을 때 아마 속이 뒤집혔을 것이다. 사진을 지우려던 찰나 온지유의 전화가 걸려 왔다. 심미연은 온지유가 단지 자신에게 자랑하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지한에게 더 이상 마음이 없는 그녀는 그와 온지유의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온지유 같은 아무런 자존심도 없이 끝까지 낮아지는 사람은 정말로 그녀의 세계관을 새롭게 만들었다. 전화를 끊자마자 온지유의 메시지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섹시한 속옷 차림의 사진이었다. 심미연은 전에 한 번 그런 걸 샀던 기억이 났지만 그걸 어디다 버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떠오르자 심미연은 강지한에게 선물했던 그 넥타이를 떠올렸다. 아마 아직도 옷장에 있을 거다. 온지유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녀는 한 장 한 장 점점 더 노골적인 셀카를 계속 보내왔다. 심미연은 속으로 잠깐 욕을 뱉고 그 사진들을 바로 강지한의 이메일로 보내버렸다. ‘둘이 진짜 끼리끼리네.’ ‘앞으로 둘이 평생가라! 서로 다른 사람 건드리지 말고!’사진을 보내고 난 후 심미연의 기분이 한층 나아졌다. 심미연은 잠도
신하린은 심미연이 걱정되어 이진영이 소개팅 간 일은 잠시 잊어버렸다. 심미연은 전화를 끊자마자 급히 일어나 아래층으로 내려가 신하린을 기다렸다. 신하린은 전화를 끊고 서둘러 옷을 갈아입은 뒤 급하게 집을 나섰다.문을 열자마자 그녀는 익숙한 남자의 얼굴을 마주했다.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 가려고?” 남자는 얼굴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물었다. 신하린은 고개를 푹 숙이며 그를 보지 않았다. “지금은 당신 보고 싶지 않아요. 돌아가요.” 어떤 일들은 시간을 두고 혼자 차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신하린, 지금 나한테 성질부리는 거야?” 이진영의 말투는 썩 좋지 않았다. “네가 날 떠나라고 말해준 게 아니야!” 신하린은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럼 당신 말은 그 여자랑 함께한 후에도 날 놔주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이진영은 그녀에게 내연녀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게 하고 부끄럽지 않냐고 비난받게 만들고 싶어 했다. ‘이 남자한테는 내가 정말 이렇게까지 비천하고 하찮은 존재였던 걸까?’“네 존재는 나와 그 여자 사이의 관계를 깨뜨리지 않았어. 우린 예전처럼 살 거야.” 이진영의 말은 정말 역겨울 정도였다. 신하린은 그의 눈을 오랫동안 바라보며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난 당신들의 관계를 망치는 게 아니라 그 사이에 끼어드는 거라는 말이죠?”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얼굴에는 비웃음이 섞인 냉소가 떠올랐다. “내가 그렇게 하찮고 비열하게 보여요?” 신하린은 이진영을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 자신을 무시하고 천하게 생각하는 말을 들으니 가슴 깊이 상처를 받았다.“나랑 그 여자는 단지 상업적인 결혼일 뿐이고 감정 같은 건 없어. 왜 그렇게 질투를 해?” 이진영은 도대체 왜 신하린이 그들 사이의 관계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이렇게 몇 년 동안 잘 지내지 않았나? 신하린은 더 이상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아서 단호하게 말했다.“지금 미연이 찾으
이진영은 순간적으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마주하자 알 수 없는 답답함이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내가 당신의 통제를 벗어나고 그런 벌을 받아야 한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그 순간부터 난 경성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녀를 만신창이로 만든 이 도시. 여기 남아 있는 건 슬픔만 더할 뿐이었다. 차라리 떠나서 다시 보지 않는 편이 나았다. 그녀의 말에 이진영은 당황한 듯 손에서 힘을 풀고 그녀를 놓아주었다.신하린은 손목을 문지르며 그를 향해 담담하게 미소를 지었다. “다만 손을 쓰기 전에 미리 말은 해주세요. 그래야 내가 준비할 수 있잖아요.” 그녀는 평온하게 마지막 한마디를 던지고 차 문을 열어 내렸다. 차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울렸고 이진영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다. 서둘러 창문을 내리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리며 들어왔고 그제야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불을 붙이고는 시선은 내내 그녀의 뒷모습을 쫓고 있었다. 지금 그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신하린은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그녀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줄기 시선이 자신의 등을 끝없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그 순간 이유 없이 코끝이 시큰해졌다. 울고 싶었다.“하린아.”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신하린은 현실로 돌아왔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고개를 들어 심미연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미연아, 너 왜 내려왔어? 배 아프다며.” “네가 걱정돼서 내려와 기다렸지.” 심미연은 그녀의 손을 잡으며 살짝 붉어진 그녀의 눈가를 스쳤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집 갈래? 아니면 술집 갈래?”심미연은 신하린이 취해서 푹 자고 내일 아침엔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길 바랐다. “좋아. 강남바로 가자!” 신하린은 술에 취하면 더 이상 그 남자의 냉정한 모습이 떠오르지 않
“저는 물 한 잔 마시러 갈게요. 운전 조심하세요!” 한유나는 조금 당황하며 급히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이진영이 자신을 미래의 이 부인이라고 말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혹시 결혼을 서두를 만큼 정말 나를 좋아하게 된 건가?’ 그녀는 오늘 밤 부모님과 결혼에 대해 상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씨 가문은 명문가라 결혼 준비가 복잡하고 예절도 많아서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이진영과 결혼한다는 생각에 한유나의 가슴은 점점 더 빠르게 뛰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다는 건 많은 여자들이 꿈꾸는 일이었다!문 앞과 차 안에서 이진영은 핸드폰을 옆에 두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어슴푸레한 연기 속에서 신하린의 붉어진 눈이 떠올랐다. 그가 한유나와 결혼한다고 해도 그와 신하린 사이의 관계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도대체 왜 이걸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심미연과 신하린은 방에 들어갔고 신하린은 거침없이 두 사람 세트 메뉴를 주문했다. 곧 방문이 열리고 두 명의 잘생기고 매력적인 남자가 장미꽃을 하나씩 들고 들어왔다. 그들의 모습은 귀엽고 매혹적이었다. 심미연은 급히 손을 내밀어 신하린의 팔을 잡았다. “난 남자는 필요 없어.” 그녀는 이미 임신 중이라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주면 안 되니까.신하린은 기분이 좋지 않아서 그저 즐기고 싶은 마음이었고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너 필요 없으면 내가 다 가질 거야.” 신하린은 소파에 기대어 두 남자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둘 다 내 옆에 앉아요.”이진영과 그 여자는 곧 결혼하게 된다. 두 사람은 분명 한 침대에서 함께 자고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 교감을 나누게 될 것이다. 그녀는 싱글인 여자로서 인생을 즐길 때 제대로 즐겨야 한다. 두 남자는 그녀의 옆에 순순히 앉았다. 장미꽃을 입에 물고 얼굴을 가까이 대며 큰 손으로 그녀의 목덜미를 감쌌다.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 얽혔다.신하린은 심장이 급격히 요동치며 남자를 밀어내려고 손을
신하린은 조금 짜증이 나서 손을 뻗어 그를 잡았다. “먼저 나 좀 놔줘요!” 이진영은 얼굴을 돌릴 틈도 없이 그녀의 손톱에 얼굴을 긁혀 잘생긴 얼굴에 긴 상처가 남았다.하지만 신하린 앞에서만큼은 그의 성격도 조금은 누그러졌다. 지금 그와 신하린의 관계는 얼어붙었고 신하린은 더 이상 제어할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참을 성질이 남아있지 않았다. 심미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진영은 어떻게 강지한보다 더 밉상일 수 있지.’ 신하린은 조금 당황한 채 입술을 꽉 물었다. “이진영 씨, 만약 나한테 그렇게 한다면 난 평생 당신을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이진영은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손끝에 끈적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기분은 당연히 좋지 않았다. “어차피 넌 평생 내 곁에 있어야 해. 용서하나 안 하나 그게 무슨 상관이야?”그동안 그녀를 얼마나 아껴줬는데 결국 그녀는 여기서 다른 남자와 즐기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면 이제 그 역시 그녀의 감정 따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그는 그녀를 자기 곁에 묶어두고 이제는 오직 자신과만 자게 만들 것이다.신하린은 가슴이 저릿하게 아팠다. “난 당신 장난감이 아니에요. 왜 평생 당신 곁에 있어야 하는데?” 심미연은 신하린의 붉어진 눈을 보며 마음이 아팠다. 잠시 망설이다가 두 사람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녀가 발걸음을 멈추고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이진영의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심미연은 그저 그 자리에 서서 신하린을 바라보며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말하지 말라고 눈짓으로 전했다. 이진영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한유나의 번호를 확인한 뒤 바로 전화를 받았다.“진영 씨, 도착했어요? 문 앞에서 기다릴게요.”여자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의 귀에 스며들자 이진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신하린이 이런 말투로 나한테 말한다면 아마 너무 기뻐서 뛰어오를 거야.’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밖은 춥고
방금 전의 답답한 기분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진영은 이 모든 걸 이해한 뒤 시선은 더 확고해졌다. “와! 유나 총괄 엔지니어의 남자 친구 진짜 잘생겼다!” 누군가가 놀라며 외쳤다. 한유나는 그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자부심을 느꼈다. ‘누구 남자 친구인데 당연히 잘생겼지!’ “취했어요? 걸을 수 있겠어요?” 이진영이 부드럽게 물었다. 한유나는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걸을 수 있어요.” “내가 안고 나갈게요.”이진영은 말을 끝내자마자 몸을 구부려 그녀를 안았다. “세상에. 진짜 로맨틱해!” “남자는 잘생기고 여자는 예쁘고 너무 잘 어울려. 천생연분이야.”한유나는 이진영이 자기를 안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잠깐 멍하니 서 있던 그녀는 이내 손을 들어 그의 목을 감쌌다. “진영 씨, 이러면 안 돼요.”입에서는 투정 섞인 말이 나왔지만 마음속은 달콤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건 이 부인으로서 누려야 할 특권이죠.”이진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읽히지 않았고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한유나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얼굴에 난 상처를 보고 의아해하며 물었다. “얼굴에 상처는 어떻게 난 거예요?” 가장 중요한 건 그 상처가 왠지 모르게 애매하고도 은근히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마치 여자가 화나서 긁은 듯한 자국처럼 보였다. ‘혹시 진영 씨에게 다른 여자가 있는 걸까?’ 이진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집에서 기르는 고양이가 긁었을 뿐이에요. 별일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요.” 그는 아주 담담하게 말했지만 한유나는 순간 그가 진짜로 말하는 것인지 아닌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다른 방에서는 신하린이 술병을 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까 이진영이 그녀 앞에서 전화를 받은 일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을 취하게 만들고 싶었다.“하린아, 적당히 마셔. 너무 취하면 내가 너를
박유진은 발걸음을 멈추고 담담하게 인사를 건넸다. “진영 도련님.” 경성에서는 이씨 가문의 사람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다. 이진영의 아버지는 정치에 몸담고 있고 어머니의 집안은 부유한 대가문이다.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모두 이씨 가문과는 충돌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때 박유진 품에 안겨 있던 여자가 몸을 움직이며 두 손으로 박유진의 목을 감싸고는 입에서 거침없이 욕을 내뱉었다. “이진영 이 자식! 죽어버려.” 이진영은 얼굴이 어두워졌고 여자의 두 손을 처절하게 응시했다. 만약 눈빛만으로 그 손을 잘라낼 수 있었다면 아마 벌써 뼈조차 남지 않았을 것이다.며칠 전 이 여자는 술에 취해 그를 때리고 욕하며 밤새도록 괴롭혔다. 그런데 오늘 밤 또 술에 취하다니! ‘이 여자는 자기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하지만 이진영이 가장 많이 화가 나는 점은 이 여자가 술에 취해 결국 박유진에게 안겨 나왔다는 것이다! 박유진이 누구냐? 박씨 가문의 도련님이다. 신하린이 마음속 깊이 간직한 그 남자. 처음으로 심미연을 돕기 위해 그를 찾아갔을 때 침대에서 거칠게 당했던 그녀는 결국 울며 박유진의 이름을 불렀다. 그 순간의 감정을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다. 속이 터지고 억울하고 미칠 것만 같았다. 그녀를 벌주기 위해 그는 집안의 구석구석에서 그녀를 가졌다. 그렇게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 싶었던 이유는 단 하나. 그녀가 그를 기억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함께한 5년 동안 그는 도무지 그녀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그녀의 마음속에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박유진뿐이었다. 그 생각이 들자 이진영은 눈앞에서 다른 남자에게 안겨 있는 여자를 그냥 당장 죽여버리고 싶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심미연은 이진영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채고 급히 서둘러 설명했다. “방금 이진영 씨가 떠난 후 하린이가 마음이 괴로웠던 거 같아요. 계속 술을 마시는데 내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
“언제 검사하러 가? 내가 같이 갈게.”박유진은 화제를 바꾸어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뎠다.“가자!”심미연이 거절하려고 할 때 박유진이 입을 열었다.“내가 줄 서는 거나 비용을 내는 것 정도는 도와줄 수 있어. 너 임산부인데 이리저리 뛰어다니려면 너무 피곤할 거야.”심미연은 자기도 모르게 침묵했다.예전에 이진영과 신하린이 사귈 때 이런 우대를 받아도 괜찮으나 이제 이진영은 결혼 상대도 있고 신하린과의 관계도 유지할 수 없으니 그녀는 더는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이 주는 우대를 받을 수 없다.하지만 검사를 받으려면 줄을 서야 하고 또 위층과 아래층을 오르내려서 심미연 혼자서는 확실히 매우 피곤하긴 했다.박유진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그녀가 다시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억지를 부리는 것 같았다.“그럼 다음번 검사 때 부를게.”박유진은 그녀의 대답에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전에 넥타이에 넣었다고 했던 카드를 가져왔어?”심미연은 갑자기 그 일이 떠올랐다.“차에 있어. 가자, 내가 데려다줄게. 네 차는 내가 비서에게 가져가라고 할게.”박유진의 목소리는 어둠 속에서 유난히 부드럽게 들려 마치 여자를 달래는 것 같았다.심미연이 시간을 보니 이미 새벽 1시가 되였다. 이렇게 늦게 혼자 차를 몰고 집에 돌아가는 것은 확실히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되어 유진을 따라 차에 올랐다.“넌 임산부야. 앞으로 이렇게 늦게 다니지 마.”박유진은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며 말했다.“너 먼저 좀 자. 도착하면 내가 깨울게.”그는 잔소리하고 있었지만 심미연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강지한과 결혼한 3년 동안 할아버지는 가끔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 했다.지금 그녀가 이혼했으니 그녀가 할아버지를 만나는 횟수가 줄어들어 잔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이미 졸음이 밀려온 심미연은 차가 시동을 건 지 얼마 가지 않아 잠이 들었다.여자의 얕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박유진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일부러 차의 속
[차 돌려! 내가 직접 가서 찾을 거야!] 강지한의 목소리는 마치 얼음처럼 차갑고 단호하게 들렸다. 각 단어에서 의심의 여지 없이 확고한 결단이 묻어났다. 심미연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는 곧장 입가에 냉소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 속에는 경멸과 비웃음이 어우러져 있었다. ‘온지유가 일이 생기니까 직접 가서 찾겠다고?’ ‘내가 일이 생기면 온지유와 함께 있어 줬을 텐데.’ ‘사람이 다르니까 이렇게 되는 거구나.’ 강지한이 전화를 끊고 심미연의 조롱 섞인 웃음에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뭘 말하고 싶은 거야?” ‘내가 또 이 여자에게 뭘 잘못했을까?’ 심미연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만 풀어줘. 네 여자나 찾으러 가. 무슨 일이 생기면 또 내 탓으로 돌리려고 할 거잖아.” 예전에 그녀는 그런 걸 아주 잘 떠안았다. 온지유는 무슨 일이든 그녀에게 책임을 덮어씌우기 일쑤였다. 강지한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짜증스러운 기색이 번졌다. “이미 말했잖아. 온지유와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고.” 심미연은 한층 더 비웃으며 말했다. “맞아. 너희 사이엔 아무 일도 없지! 이제 우리는 이혼했으니까 더 이상 나한테 설명할 필요 없어. 강지한 씨, 이제 그만하고 나 좀 보내줘.” 그녀가 여기 있으면 방원호가 분명 걱정하고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문밖에서 급박하고 강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울리며 방원호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들려왔다. “미연아, 괜찮아? 미연아, 내가 곧 문을 부술 거야. 문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강지한은 그 말을 들으며 가슴 속에 쌓인 분노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 강지한은 깊은숨을 들이쉰 뒤 터져 나올 듯한 분노를 억누르며 다시 심미연을 바라봤다. 그는 그녀의 턱을 거세게 움켜잡아 강제로 자신의 시선과 맞대게 했다. 그의 눈에는 반항할 수 없는 강한 빛이 어려 있었다. “강 부인께서 날 떠나고 아주 잘 지내나 봐. 주변 남자들 하나둘씩 바꿔 가면
그가 묻는 방식은 거침없었고 심미연은 그 질문에 별다른 불쾌감은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속에서 이 사실을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아직은 너무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말하지 않으면 그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바로 사모님이었다. 그 생각에 심미연은 순간적으로 망설였다. 그때 갑자기 손목이 잡혔고 뒤를 돌아보니 차가운 살기가 가득한 강지한의 눈과 마주쳤다. 심미연은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불안함이 엄습했다. ‘강지한은 도대체 왜 찾아온 거야!’ 강지한이 갑자기 그녀를 잡아당기자 심미연은 비틀거리며 몇 발짝 뒤로 밀려갔다. 그 순간 남자는 그녀를 아무도 없는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방원호는 정신을 차리고 급히 문을 향해 달려갔다. 문이 쾅 하고 닫히며 모든 소리와 외부의 시선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방원호는 손을 뻗어 문을 세게 두드리며 소리쳤다. “강지한 씨! 그 사람 내보내세요.” 심미연은 문 바로 뒤에서 몸을 문에 붙인 채 두 손은 강지한에게 위로 들어 올려져 문에 눌려 있었다. 남자의 힘은 너무 강해 마치 옷을 뚫고 그녀의 떨리는 심장까지 닿을 것처럼 느껴졌다. 방원호의 소리가 들리자 심미연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강지한 씨, 뭐 하자는 거야? 빨리 놔줘.” 그녀는 방원호에게 자신과 강지한의 관계가 밝혀지는 걸 원치 않았다. 모든 것이 끝났고 이제는 다시 과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강지한이 눈살을 찌푸리며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심미연, 대답해. 임신했어?” 그의 목소리는 낮고 거칠게 떨렸으며 하나하나의 단어가 마치 이를 악물고 내뱉는 듯했다. 그 속에 묻어 있는 절박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이 일을 확실히 알고 싶었다. 심미연의 동공이 잠시 커졌고 그녀는 몰래 깊은숨을 들이쉬며 이 압박감을 떨쳐내려고 애썼다. “아니. 강지한, 너 온지유한테 속은 거야!” 그녀가 인정하지 않으면 강지한은 그녀를 더 이상 어쩔 수
심미연은 차가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왜 가야 하지? 내가 왜 너한테 그걸 증명해야 해? 온지유, 너 진짜 웃기네.” 예전엔 강지한과 부부였으니까 임신 사실이 들통나면 강지한이 그녀를 낙태시키려 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이혼한 사이고 더 이상 강지한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온지유 같은 사람과 얽히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너 검사 받으러 못 가는 거지? 이렇게 빨리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소문나면 별로 좋게 들리지도 않잖아.”온지유는 일부러 ‘다른 남자 아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강지한을 자극하려 했다. 그녀는 강지한이 화가 나면 심미연을 끌고 병원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거기에 더 부채질하면 강지한이 심미연 뱃속에 있는 망할 아이를 없애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심미연 뱃속에 그 아이만 없어지면 더 이상 그녀에게 위협이 될 게 없었다. 심미연은 온지유를 냉정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다 말했어? 다 말했으면 이제 녹음 끌게.” 온지유가 이런 식으로 뒤끝을 보이면 심미연은 바로 고소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차피 이제 그녀는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었다. 온지유는 이를 악물며 손에 쥔 주먹을 꽉 쥐었다. 눈앞의 심미연을 그 자리에서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화가 났다. ‘이 년이 또 녹음했네.’‘그럼 아까 내가 한 말도 다 녹음한 거 아니야?’이어 강지한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진 채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지한 씨, 저걸 봐! 얘기하는데 녹음까지 했어. 진짜 너무 교활하지 않아?” “다 말했어?” 강지한은 무표정한 얼굴로 온지유를 쳐다보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한 점의 온기도 느껴지지 않았다. 온지유는 고개를 들어 강지한을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눈물 글썽인 채 간절하게 말했다. “지한 씨, 내가 말한 거 다 진짜야! 심미연 씨 정말 임신했어. 왜 날 믿지 않는 거야?” 그 모습은 마치 세상 모든 불행이 그녀에게 집중된 것처럼 온몸으로 억울함을 표현하려는
심미연은 온지유를 비웃으며 말했다.“내가 온지유 너라면 벌써 겁먹고 숨어 있었을 거야. 이렇게 나올 용기도 없었어. 그러다 썩은 달걀에 너덜너덜한 채소라도 맞으면 어쩌려고?”‘강지한은 온지유한테 정말 지극정성이네. 경찰까지 물러서게 하고.’하지만 그게 오히려 그녀에게 도움이 된 셈이었다.온지유는 그 말을 듣고 얼굴에 있던 웃음기가 싹 사라지며 심미연을 노려보았다. “이 일 네가 꾸민 거지? 두고 봐. 너 절대로 가만 안 둘 거야!” 심미연은 가볍게 웃으며 받아쳤다. “그래? 그럼 어디 한 번 해봐. 나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내가 이렇게 비참한 꼴로 사는데 심미연은 왜 그렇게 잘사는 거야?’‘대체 뭐가 잘나서!’‘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절대로!’바로 그때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온지유는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받으며 한껏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한 씨.”심미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 ‘겨우 얼마 떨어져 있었다고 벌써 전화해?’‘잃어버릴까 봐 걱정되는 거야?’‘강지한이 언제부터 그렇게 세심한 사람이었지?’ 온지유는 전화를 끊고 핸드폰을 넣으며 심미연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걸 보았다. “지한 씨가 기다리고 있거든. 난 먼저 갈게.” 명백히 심미연을 자극하려는 태도였다. 하지만 심미연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무심하게 말했다. “그래. 배웅은 사양할게.”온지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일부러 발걸음을 더디게 옮겼다. 화장실 문턱을 막 넘어설 때 그녀의 시선이 무심한 듯 심미연의 살짝 불룩한 배를 스쳐 지나갔다. 그 눈빛에는 뚜렷한 조롱이 담겨 있었지만 그 속엔 설명하기 힘든 복잡한 감정도 어렴풋이 드러났다. 잠시 후 온지유는 단호한 걸음으로 자리를 떠났고 화장실엔 심미연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심미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가슴 속에 치솟은 불안감을 억누르며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운명은 늘 그렇듯 사람을 농락하기 일쑤였다. 문 앞에 다가갔을 때 예상치 못한 누군가
심미연은 갑자기 가슴 속에서 무언가가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사모님의 말은 무슨 뜻일까?’‘혹시 사모님이 뭔가 알게 된 걸까?’“사모님, 스승님과 벌써 20년을 서로 함께하셨잖아요. 스승님이 사모님을 진심으로 사랑하시고 있다는 걸 믿으셔야 해요!” 방원호가 급히 말했다. 여인은 살짝 미소 지으며 답했다. “그 사랑이 그저 보여주기 위한 사랑일지 누가 알겠어.”이제 그 일을 꺼낼 때 그녀는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 남자가 배신했는지 아닌지 이제는 그저 그것조차 평온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아니요. 사모님은 자신의 눈을 믿으셔야 해요. 그리고 스승님의 인품도 믿으셔야죠.”방원호는 스승님의 인품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스승님이 아내와 가정을 배신할 사람이 될 리 없다는 확신이 있었다. “자, 이 얘기는 잠시 미뤄두고 너희 얘기나 하자.”여인은 심미연을 향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 몇 년 동안 이룬 성과는 내가 다 알고 있어. 네 스승님이 너를 좋아하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가네.” 심미연은 언제나 남들보다 뛰어난 존재였다. 그래서 그때 그녀의 남편이 심미연을 특별히 가르치고 배영했었다. “사모님...” 심미연은 다시 눈물이 나려 했고 말도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인제 그만 울어. 스승님은 이미 떠나셨고 더 이상 이런 얘기 하는 것도 다 의미 없어. 너희는 지금 열심히 일하는 게 스승님한테 가장 큰 보답이야.” 여인은 웃으며 말을 마쳤다.“그럼 그만 얘기하고 먼저 식사해요.”방원호가 말을 마치자 마침 그때 음식이 담긴 카트가 들어왔고 음식을 차례차례 올리기 시작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세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정적에 휩싸였고 창밖을 스치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마저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 심미연은 조심스럽게 생선 한 점을 집어 들었다. 부드러운 살결 위로 황금빛 소스가 고루 얹혀 있고 그 향은 너무나도 유혹적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생선 한 점을 입에 넣었다. 그런데 그 순간 이유 모를 구역질
강지한은 화가 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심미연이 이렇게 날카로운 입을 가진 여자였다는 걸 왜 그때는 미처 몰랐을까.’방원호는 강지한을 흘낏 보고는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 “당신 여자나 잘 챙기세요. 머리 위에 뿔이 난 것도 모르고 있는 거 같은데. 미연이 일은 당신이 신경 쓸 필요 없습니다.”심미연은 원래 답답했던 마음이 그의 한 마디에 순식간에 풀리며 입술 끝에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눈꼬리가 살짝 올라가며 유독 예뻐 보였다.강지한은 방원호의 비꼬는 말에 화가 나 손을 뻗어 심미연의 옷깃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목이 너무 조여서 심미연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겨우 정신을 차린 그녀는 급히 다리를 들어 뒤로 차버렸다.강지한은 한차례 차임에 아파 급히 손을 풀었다. 심미연은 간신히 숨을 돌린 뒤 몸을 돌려 강지한의 얼굴을 향해 손을 들어 내리쳤다. 그 순간 방원호도 강지한에게 거침없이 손을 뻗었다. 심미연의 작은 손이 강지한의 얼굴에 내리치며 맑고 또렷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지한은 냉큼 숨을 들이켰고 반응할 틈도 없이 가슴에 또 한 번 강한 주먹이 날아왔다. 방원호는 일부러 강지한의 가슴을 가격했다. 얼굴을 때리는 건 너무 뻔히 보였기에 나중에 강지한이 그를 찾아와 골치 아프게 할 것이 분명했다. 강지한은 두 대를 맞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화를 터뜨리려던 찰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심미연은 방원호의 손을 잡고 재빠르게 뛰어나갔다. 강지한은 두 사람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을 보며 눈빛에서 분노가 불꽃처럼 일렁였다. ‘심미연, 이 여자가 진짜! 내 돈으로 다른 남자를 키우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감히 나까지 때려? 드라마에서도 이런 황당한 전개는 절대 안 나올 거야.’ 심미연은 방원호를 이끌고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황급히 그의 손을 놓았다. “선배, 아까 좀 실례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방원호는 그녀가 놓아버린 손을 내려다보며 여전히 남아 있는 그녀의 체온을 느끼더니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내
강지한이 막 걸음을 떼려는 순간 한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려와 심미연 쪽으로 손을 뻗는 게 보였다. 그 남자는 편안한 캐주얼 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심미연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연인처럼 보일 정도로 잘 어울렸다. 너무나도 잘 어울려서 더 신경이 쓰일 정도였다. 강지한의 주먹이 저도 모르게 단단히 쥐어졌다. ‘뭐야, 심미연. 벌써 새 남자를 찾은 거야?’성무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지한의 시선을 따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한 남자에게 손을 잡힌 채 있는 심미연을 발견했다. 그는 당황한 얼굴로 잠시 멈춰 섰다. ‘뭐지?’‘심미연 씨 남자 친구가 생긴 건가?’‘그럼 대표님 엄청나게 화내실 텐데?’ 그때 강지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지유 데려와.” 말이 끝나자마자 그는 화가 난 듯 성큼성큼 걸어갔다. 성무진은 눈을 깜빡였다. ‘온지유 씨를 데려오라고?’ ‘심미연 씨를 약 올리시려는 건가?’‘그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으신데...’ 그가 잠시 망설이고 있을 때 심미연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걸 느꼈다. 심미연은 그의 앞에 서더니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뭐예요? 강 대표님이 이제 저를 스토킹할 정도로 할 일이 없으신 건가요?”‘아니면 이렇게 우연히 마주칠 리가 없잖아.’성무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심미연이 완전히 오해하고 있음을 깨닫고 급히 손을 내저으며 해명했다. “아니에요! 대표님이 스토킹하신 게 아니라 오늘 저녁에 우연히 여기서 식사 약속이 있었던 거예요.” 정말 이건 너무 우연이라 그였어도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인 것도 맞다. “그렇다면 넘어가죠.” 심미연은 고개를 돌려 남자를 향해 말했다. “선배, 우리 가요.”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성무진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남자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썼다. ‘어딘가 낯이 익은데... 혹시 유명한 사설탐정 방원호 아니야?’ ‘심미연 씨랑 그 사람이 친한 사이였나?’두 사람이 문을
“이대로 놔둬, 아무것도 하지 마!”강지한이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이 일에 관하여 누가 뒤에서 심미연을 돕는지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박유진은 감히 이렇게 대놓고 그와 싸울 수 없다. 그럼 혹시 심미연에게 다른 남자가 있다는 걸까?강지한은 지금 마음이 여느 때보다도 더 초조했다. 결혼한 지 3년이 되었지만 그는 심미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심지어 그녀의 주변에 어떤 친구가 있는지도 몰랐다.“심미연 씨를 찾아 얘기해보시겠어요?”성무진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인터넷의 일이 심미연이 저질렀든 아니든 간에 이 일에 관해 심미연과 소통하는 것은 분명히 쓸모가 있을 것이다.“필요 없어!”강지한은 차가운 얼굴로 대답했다. 무슨 낯짝으로 심미연을 찾아가 얘기한단 말인가?그리고 심미연이 그에 대한 태도로 보아 그가 찾아간다고 해도 그녀는 그와 얘기하지 않을 것이다.예전에 그는 심미연의 성격이 그렇게 까칠한지 몰랐다.성무진은 더는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몸을 돌려 사무실을 떠났다.강 대표님이 있으면 회사는 아무 일도 없기 때문이다.성무진이 떠나자마자 강지한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할아버지가 걸려온 전화인 것을 보고 그는 더욱 초조해졌다.‘심미연은 정말 대단하네. 피해자인 척 연기해서 모든 사람이 동정하게 만들잖아. 할아버지는 심지어 재산도 넘겨줬어.’벨 소리가 끊어지기 전에 그는 전화를 받았다.“할아버지.”“듣자 하니 너한테 방금 완공된 주택 건물이 있다며? 정원 설계 프로젝트를 나에게 줘. 내가 사람을 찾아서 시킬게!”강준형은 우렁찬 목소리로 빙빙 돌리지 않고 요구를 말했다.“누구에게 주려고요?”강지한은 이상해서 물었다.강준형은 이미 오랫동안 회사의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내가 누구에게 주든 상관하지 마. 어쨌든 이 프로젝트를 나에게 주면 돼!”강준형의 횡포스러운 말투였다. 한마디로 프로젝트만 달라는 것이다.강지한은 더더욱 궁금해졌다.“설마 속은 거 아니죠?”최근에 인터넷 사기가 많이 벌어지고 일부 사기꾼은 일부러 집까지
강지한은 숨을 깊이 들이마신 후 침울한 목소리로 물었다.“무슨 일이야?”“경찰이 미르 파크에 와서 나를 데려가겠다고 해. 지한 씨, 날 구해줘!”울먹이며 말하는 온지유의 목소리는 가엾었다.“당황해하지 마. 내가 일단 전화해볼게.”그는 말을 다 한 후 전화를 끊었다.강지한은 휴대폰을 잡은 채 아까 보았던 메일을 떠올렸다. 만약 온지유가 정말 이런 짓을 했다면 경찰에 잡히는 건 억울한 것도 아니다.강지한은 처음으로 온지유의 말에 의심을 했다. 이때 휴대폰 건너편의 온지유는 휴대폰을 꽉 잡고 있었는데 손톱이 살갗에 들어가도 아픈 줄 몰랐다.그 사람은 이미 그녀를 버렸다. 만약 강지한마저 내친다면... 그 결과가 얼마나 심각한지 짐작할 수 있었다.‘안돼, 난 이렇게 무작정 당할 수만 없어! 나 자신을 보호할 방법을 생각해야 해.’마음을 다잡은 후 그녀는 문소영에게 전화했지만 전화가 끊겨버렸고 다시 걸어보니 이미 차단당했다.어쩌면 자신이 유산한 그 날부터 문소영은 그녀는 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손자를 잃었으니 더는 쳐다보지도 않을 게 분명했다.온지유는 휴대폰을 꽉 잡은 채 심호흡했다.몇 년 동안 노력해서 곧 얻을 것만 같은 물건들이 결국 연기처럼 사라졌는데 그녀가 어떻게 내킬 수 있을까?냉정해지려고 애써 노력하며 온지유는 머릿속으로 누가 자신을 구할 수 있을지 아는 사람을 하나씩 생각했다.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생각났어. 강씨 가문의 늙다리가 날 지켜줄 수 있어. 비밀을 가지고 교환해야지.’온지유가 전화번호를 입력하려고 할 때 강지한의 전화가 걸려왔다.“지한 씨...”애처롭게 그의 이름만 부르고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온지유는 마음이 아플 정도로 철이 든 것 같았다.“어디도 가지 말고 미르 파크 안에 있어. 이미 경찰 쪽에 사람을 보내 처리하게 했어.”강지한의 목소리는 매우 담담해서 그의 감정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알았어.”온지유의 불안했던 마음은 순식간에 나아졌고 기뻐서 어찌할 줄 몰랐지만 말할 때 목소리는 여전히 울먹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