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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작가: 무안안
“미연아, 이렇게 부탁하는 게 너한테 참으로 미안한 일이란 건 알아. 하지만 말이다. 나도 나이가 많고 몸도 예전 같지가 않아. 언제 잠들어서 다시는 못 깨어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강준형은 말하며 눈가가 붉어졌다.

심미연은 가슴이 먹먹해졌다. 손에 든 상자를 무의식적으로 더 꼭 쥐며 말했다.

“할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할아버지께서는 꼭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장수하실 거예요!”

강준형은 잔잔히 웃었다.

“이 나이 먹도록 살아보니 이제는 생사에 연연하지 않게 됐단다. 내가 떠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고 네 인생을 잘 살아.”

그는 심미연에게 너무 많은 빚을 졌다. 그 빚을 갚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남은 시간 동안 그녀가 아끼고 사랑받으며 살길 바랐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바람이었다.

심미연은 강준형의 미소 띤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안함이 스쳐 지나갔다. 어쩐지 그의 모습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할아버지...”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떼려는 순간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심미연은 하던 말을 멈추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미연아, 어디야? 내가 데리러 갈까?”

박유진의 목소리가 봄바람처럼 따뜻하고 포근하게 들려왔다.

“나 차 갖고 나왔어. 데리러 안 와도 돼. 고마워.”

말하는 내내 심미연의 미간은 부드럽게 풀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준형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강지한에게는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이건 다른 사람 탓할 것도 없고 전부 강지한이 자초한 일이다.

“나한테 굳이 예의 차릴 거 없어.”

박유진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말했다.

“그래. 그럼 일 봐. 내일 다시 연락할게!”

사실 그는 하루 24시간을 다 써서라도 심미연을 보고 싶었고 그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전에는 심미연이 이혼하지 않았기에 마음속으로만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심미연이 이혼했으니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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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도 모르게 쥔 주먹 때문에 심미연의 손톱은 이미 살을 파고들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아픔이 느껴지지 않는 사람처럼 차분히 눈을 감고 가정폭력을 당하는 아내의 입장이 되어 그 장면을 그려보았다.부서진 가구들과 온몸을 뒤덮은 상처, 그리고 두려움에 떨면서도 도망가지 못해서 절망만 가득한 그 눈동자.가정폭력만 한 게 아니라 바람까지 피우면서 남자는 여자의 정신을 처참히 짓밟고 있었다.그 배신이 피해자의 마지막 남은 선까지 무너뜨려서 결국 그들을 이혼에 이르게 한 것이다.여자는 해방되고 싶어서 제안한 이혼이 자신의 명을 단축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폭행을 일삼고 바람까지 피우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했던 남자는 오히려 의심병이 도져 갑자기 이혼을 제안하는 여자가 바람을 피웠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다.그리고는 배 속의 아이도 자신의 아이가 아닐 것이라 생각하여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여기까지 본 심미연은 숨이 가빠와서 호흡이 거칠어졌다.인간으로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지른 남자에 대한 분노로 쌓인 한기가 서서히 심미연의 영혼을 뒤덮고 있었다.어쩜 사람이 이처럼 잔인하고 매정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자신의 배우자에게 이딴 짓을 할 수 있는지 심미연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이게 어떻게 인간이야!”차오르는 분노와 비통함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지자 심미연은 낮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그때 갑자기 전화벨 소리가 울리자 그게 경찰 출동을 알리는 경보음인가 싶어 심미연은 순간 숨을 죽였다.물론 이내 자신의 상상일 뿐이었다는 걸 깨닫긴 했지만 심미연은 그 짧은 순간에 전화벨 소리가 마치 생명을 구원해줄 동아줄처럼 느껴졌다.“여보세요?”전화를 받은 심미연이 조금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자 수화기 너머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보스, 아이 사건은 보셨어요?”여자의 말에 그제야 잊고 있던 심장병 걸린 세 살 아이의 사건을 떠올린 심미연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마음을 추스르고는 대답했다.“바로 볼게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28화

    3년 동안 심태하를 자신의 친아들로 여기며 온 정성을 다 쏟은 박유진은 심태하가 신나게 떠드는 모습만 봐도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아빠, 얼른 와요!”그때 들리는 아이의 앳된 목소리에 생각을 멈춘 박유진은 저를 향해 손을 흔드는 심태하를 보며 미소를 지은 채 발걸음을 옮겼다.환한 아이의 미소 덕분인지 박유진은 발걸음도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다.아이에게로 다가간 박유진이 허리를 숙여 눈을 맞추자 심태하는 곧바로 웃으며 말했다.“그러게 내가 엄마 따라가지 말라고 했잖아요! 엄마는 일만 하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니까요. 아들인 나도 설득 못 한 엄마라고요.”말을 하며 옆자리를 손으로 콕콕 찌르는 아이의 의도가 너무나 명확해서 박유진은 웃음을 흘리며 자리에 앉았다.“엄마는 항상 그래요. 일만 하면 밥 먹는 것도 까먹어요.”심태하는 어린아이답지 않게 걱정 가득한 얼굴로 엄마가 가슴 아픈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내가 말려봐도 일은 엄마의 사명이라면서 말을 안 듣는다니까요. 그래도 엄마가 다 우리 가족을 위해서 그러는 걸 아니까 나도 떼는 안 썼어요. 그냥 공부 열심히 해서 빨리 많은 걸 배우려고요. 그러면 엄마가 조금은 편해질 거잖아요.”심태하는 마치 박유진을 향해, 그리고 자기 자신을 향해 맹세하는 사람처럼 확신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했다.엄마를 생각하는 그 갸륵한 마음에 임현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임현은 저 말들이 세 살 난 아이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그 나이답지 않은 성숙함과 영민함이 가득한 얼굴을 보면 자꾸 아까 태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그 말들은 여름날 오후에 갑자기 찾아온 우레처럼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임현의 마음을 울렸다.임현은 그제야 왜 심미연이 아들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자랑스러운 표정을 지었는지 이해가 갔다.이런 아들이라면 백번이라도 자랑하고 싶을 것 같았다.하지만 다정한 눈으로 심태하를 바라보던 박유진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3년 전, 눈을 뜨자마자 심미연부터 찾은 박유진은 3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27화

    “죄송합니다!”“당신...”심미연의 사과에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던 남자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죽은 심미연 씨랑 똑같게 생겼어요.”그 말에 가슴이 내려앉은 심미연은 바로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그는 바로 전설적인 존재인 박시훈이었다.그가 유명해진 건 그의 정보망 때문이었다.그래서 박시훈이 찾기 싫은 건 있어도 못 찾는 건 없다는 말도 떠돌게 된 것이다.심미연과 일면식도 없는 그가 그녀를 알아봤다는 건 박시훈이 심미연에 대해 뒷조사를 했다는 뜻이었다.적인지 아군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의 뒷조사를 한 사람과 지금은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빠르게 그를 스쳐 지나갔다.“잠깐만요!”“이게 뭐 하는 짓이야?”그때 나타난 박유진이 심미연에게로 뻗어진 박시훈의 팔을 가로막았다.박유진의 목소리를 들은 심미연은 그제야 안도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그가 있는 한 적어도 자신의 신분이 노출될 우려는 없기 때문이었다.“박유진?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 놔?”한편 이미 멀어진 심미연에 박시훈의 표정은 한껏 어두워져 있었다.그는 매번 나타나서 자신의 일을 망치는 박유진을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저 사람은 내 아내 될 사람이야. 네 형수고. 앞으로 보면 예의부터 갖춰.”그 순간, 박유진은 진심으로 심미연을 숨겨두고 혼자만 보고 싶었다.박시훈을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그냥 혼자만 보며 심미연의 마음속에도 본인뿐이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다.“나를 가족으로 인정해준 적도 없는 박씨 집안 사람들이야. 자꾸 친한 척하지마. 너랑 나는 남이니까.”박씨 집안에 돌아갈 생각도 없고 그 집안사람과 엮이기도 싫었던 박시훈은 손을 쳐내며 코웃음을 치고는 돌아섰다.하지만 심미연이 아직 멀리 못 갔을 걸 생각해 박유진은 또다시 박시훈의 팔을 붙잡았다.“너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박유진, 너 진짜 미친 거야? 왜 자꾸 날 잡아!”또다시 잡힌 팔에 박시훈은 표정을 구기며 박유진을 노려보았다.이 순간만큼은 정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26화

    흉부외과 전문의들을 다 찾아봐도 소용이 없어서 자신에게 연락을 한 걸 알기에 심미연은 마음이 착잡해졌다.“진작에 이메일로 보내놨죠. 시간 날 때 보세요. 그럼 전 먼저 끊을게요.”태하와 동갑인 여자아이가 심장병으로 앓고 있다는 게 너무 불쌍해서 심미연은 전화를 끊었음에도 쉽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었다.“엄마, 괜찮아요?”그때 심태하가 심미연의 손을 잡으며 걱정스레 묻자 심미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응, 엄마 괜찮아.”세 살 난 아이가 이렇게 빨리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된 건 안타까웠지만 심미연은 태하 앞에서는 티 내지 않으려 했다.“알겠어요 그럼!”엄마가 괜찮다고 하자 심태하는 역시나 아이는 아이인지 곧바로 다시 디저트에 열중하기 시작했다.유명한 식당답게 맛이 출중해서 태하는 아주 만족스럽게 식사를 마쳤지만 마음이 불편했던 심미연은 몇 숟가락 뜨지도 못하고 있었다.임현도 전화를 받은 뒤로 저기압인 심미연이 걱정됐지만 함부로 물을 수도 없어서 그저 밥만 먹고 있었는데 그때 심미연이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나 바람 좀 쐬고 올게요.”“네.”자신의 기분이 왜 갑자기 나빠졌는지는 심미연도 제대로 알지 못했었다.다행히 아무것도 묻지 않는 임현에 빠르게 복도 끝으로 걸어간 심미연은 창밖으로 다니는 차들을 바라보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다.“미연아, 뭘 그렇게 보고 있어?”그때 등 뒤에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생각을 멈춘 심미연이 고개를 돌리며 웃어 보였다.“언제 왔어?”“좀 전에. 태하 데리러 가자.”자신에게로 내밀어진 박유진의 손을 잠시 보던 심미연은 그의 손을 맞잡으며 물었다.“밥은 먹었어?”박유진은 별것도 아닌 그 말에 환히 웃으며 답했다.“좀 전까지 바빴어서 못 먹었지.”“그럼 뭐라도 좀 먹을래?”“그래.”고개를 끄덕이는 박유진과 함께 심미연은 아까의 룸으로 돌아갔다.갑자기 나타난 박유진에 심태하는 다급히 포크를 내려놓으며 그에게로 달려갔다.“아빠! 여긴 왜 온 거예요?”아빠가 이곳에 온 게 자신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25화

    심동현은 그때 고작 다섯 살이던 아이가 저런 악행을 저질렀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너무 미안해하지는 마. 당신의 마지막이 심미연보다는 더 처참할 테니까.”심서연의 말 몇 마디에 심동현은 그대로 기절해버렸고 심서연은 그런 그를 가소롭다는 듯 바라보았다.“나, 나는 네 아빠가 불러서 온 것뿐이야. 난 아무것도 모른다고!”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덜덜 떨며 말하자 심서연은 여자의 발을 즈려밟으며 말했다.“넌 너무 더럽잖아.”물론 심서연도 남자와 노는 걸 즐기긴 했지만 그녀는 이렇게 돈을 목적으로 남자를 탐하는 여자들을 경멸했다.그때 초인종이 울리자 다급히 발을 뗀 심서연은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인터폰을 눌러보았다.역시나 성무진의 얼굴이 보이자 그녀는 칼을 들어 자신의 다리를 긋고는 절뚝이며 문을 열어주었다.“성 비서님... 저 좀 살려주세요...”눈을 감으며 죽는 척을 하는 심서연을 본 성무진은 바로 뒤따라온 사람을 향해 말했다.“이분은 차에 태워.”심서연이 그 사람에게 들려 나가자 곧바로 구급차가 도착했고 심동현과 여자도 병원으로 이송되었다.모든 일이 끝나고서야 성무진은 강지한에 연락을 했다.*그때 심미연은 임현과 함께 밥을 먹고 있었는데 함께 앉아있던 심태하는 자신의 앞에 가득 놓인 디저트들을 보며 숟가락을 든 채 놀라고 있었다.“엄마, 이거 다 내 거에요?”평소에는 달달한 걸 많이 못 먹게 하던 엄마가 갑자기 이러니 심태하는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응, 다 네 거야. 얼른 먹어. 대신 한 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아프니까 적당히 먹어야 해.”“네! 조금만 먹을게요 그럼!”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심태하는 한입 한입 디저트들을 베어 물기 시작했다.심미연은 미소를 짓다가도 이렇게 일찍 철이 든 아들을 보니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파왔다.엄마가 힘든 게 싫어서 세 살밖에 안된 어린 나이에도 이렇게 성숙한 행동들을 하는 걸 심미연이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임현은 그저 부럽다는 듯 말했다.“태하는 진짜 너무 착한 것 같아요!”세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24화

    심서연이 사리를 분별하기 시작할 때부터 심동현은 늘 그녀를 다른 사람에게 보내고 싶어 했다.그리고는 아들을 낳으라고 조은하를 달달 볶았는데 조은하가 동의하지 않으면 그녀에게 화까지 내곤 했다.그때부터 심씨 집안의 딸은 하나여야만 한다는 걸 깨우친 심서연은 일부러 유괴범을 찾아 심미연을 팔아버리려고 했었다.이미 말까지 다 맞추고 심미연을 데려간 건데 심서연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사라져버린 심미연 때문에 심서연이 유괴범들에게 대신 끌려가게 된 것이다.그때부터 심서연의 악몽 같은 나날이 시작되었고 심미연을 향한 그녀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심서연은 심미연도 유괴범에게 자신을 넘기려고 계획을 짠 게 분명하다는 착각까지 해가며 그녀를 증오해왔었다.시골에 끌려간 뒤로 매일 맞고 욕을 먹으며 자라던 심서연은 양어머니가 아들을 낳게 된 뒤, 모든 신경이 그 아들에게 가 있는 틈을 타 빠르게 도망쳐 나왔고 그길로 기억에 남아있던 심씨 집안을 찾아갔다.그렇게 집에 돌아온 심서연은 예쁘고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심미연을 보며 질투심에 불타 그녀가 가진 걸 모조리 빼앗겠다고 다짐했다.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심서연에게 회사를 맡긴다는 건 회사를 말아먹겠다는 거랑 다름이 없었기에 부모님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를 믿지는 못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심미연은 여전히 화려한 집에서 세계적인 부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었다.그렇게 심서연이 점점 질투심에 눈이 멀어가고 있을 때 하늘이 고맙게도 심미연을 죽여준 것이다.굶어 죽어가던 심서연이 그 틈을 타 강지한에게 연락을 했고 그 덕에 아무 상관도 없는 강지한의 보살핌으로 강씨 집안 둘째 사모님 대우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물론 그녀가 이 모든 걸 누릴 수 있게 된 건 다 문소영과 한 번도 보지 못한 그 사람 덕분이었다.힘들고 가난한 시절을 겪어봤기에 더욱더 자신의 것을 잃고 싶지 않았던 심서연은 어떻게 해서든 강씨 집안에 들어가야만 했다.그리고 그동안 마음껏 누려온 심동현은 이제 그만 고생할 때도 된 것 같았다.“심서연! 걔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23화

    심서연은 자신의 말이 끝났음에도 들려오는 대답이 없자 강지한이 혹시나 자신을 외면할까 봐 불안에 떨며 물었다.“지한 씨...”심서연은 사실 이번 기회에 강지한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다.기회를 봐서 잠자리를 가지고 거기에서 애까지 생긴다면 그야말로 천운이겠지만 일단은 강지한을 끌어들이는 게 우선이었다.“성 비서 보낼게요.”“지한 씨가 직접 와주면 안 돼요?”자신이 대답을 했음에도 그칠 줄 모르는 심서연의 요구에 강지한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상미 열나서 지금 병원에 있어요. 귀국한 다음에 열 난 건 아닌 것 같은데, 전에 왜 애 아프다는 말 안 했어요?”순식간에 차가워진 목소리에 심서연은 당황하며 물었다.“뭐라고요? 상미가 열이 나요? 전 진짜 몰랐어요!”해외에서는 남자들을 만나느라 바빠서 상미는 시터에게 맡겨뒀었기에 심서연이 아이의 몸 상태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하지만 강지한의 말투가 심상치 않아 그녀는 다급히 한마디 더 보탰다.“이틀 전에 열이 나서 병원 데려가긴 했는데 그때는 큰 문제 아니라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신경을 좀 덜 썼는데, 많이 아픈 거예요?”심서연의 말이 변명임을 아는 강지한은 더 말하기도 입 아파 그저 전화를 끊어버렸다.심서연은 통화가 끊어진 핸드폰을 붙잡고 빠르게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혹시라도 강지한이 자신이 해외에서 남자를 만나고 다닌 걸 알고 자신을 내치기라도 할까 봐 무서웠지만 그렇다 한들 심서연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강지한이 결정한 일을 막을 수 있는 이는 애초에 없었으니까.한편 조은하는 어두워져 가는 딸의 얼굴을 보며 걱정스레 물었다.“왜 그래 서연아?”조은하의 부름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심서연이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아무 일도 아니니까 걱정 말고 누워 계세요. 먹을 것 좀 챙겨올게요.”“얼른 구급차 불러서 아빠부터 병원에 데리고 가.”심동현이 아픈 것도 보기 싫었고 또 심동현이 죽으면 하나뿐인 딸도 죽을 것 같아 조은하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안 죽는다

  • 다시, 너를 붙잡다   제422화

    조은하는 침대에 누워지내면서 자신도 모르게 심미연 생각을 하고 있었다.어린아이가 자신들이 가하는 모진 매를 견뎌냈을 걸 생각하면 조은하는 자꾸만 가슴이 아파 왔다.그래서 지금 자신의 처지가 이렇게 된 것도 다 하늘이 내린 벌 같았다.“엄마, 말할 수 있겠어요?”“응.”심서연이 눈시울이 빨개진 채로 묻자 조은하가 힘겹게 목소리를 짜내어 대답했다.“아빠한테 또 맞은 거예요?”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게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서연은 한 번 더 물었다.“그냥 때리라지 뭐. 어차피 나 잘못한 거 많잖아.”조은하는 심동현에게 맞을 때마다 심미연에게 빚을 갚는 거라고 생각했다.물론 심미연은 이미 죽어서 자신이 이토록 참회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겠지만.“나 잠깐 아빠랑 얘기 좀 하고 올게요.”역시나 예상했던 답이 나오자 심서연이 어두운 표정으로 일어나려 하는데 조은하가 다급히 그녀를 말렸다.“됐어! 나 괜찮아.”“엄마가 이 꼴로 누워있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 그러고도 내가 사람이에요?”심서연은 마음 아파서 흐르는 눈물도 빠르게 닦아내며 방문을 열고 나가려 했다.그에 다급해진 조은하가 심서연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에 잡히는 건 공기뿐이었다.“서연아! 엄마한테 이제 딸이라곤 너 하나뿐인데 너까지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해! 얼른 돌아와.”자식을 앞세우는 건 한 번으로도 충분했다.만약 심서연까지 잘못된다면 조은하는 정말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었기에 목이 타게 그녀를 불렀지만 심서연은 이미 문을 열고 나간 뒤였다.조은하는 조급한 마음에 침대에서 내려오려 했는데 몸도 편치 않아서 그만 바닥으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조은하가 고통에 미간을 찌푸릴 때 심서연은 이미 소파에서 입에 담지도 못할 행동을 하고있는 심동현과 여자를 노려보고 있었다.집에 있는 딸과 아내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이런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심동현에 이성이 끊겨버린 심서연은 주방에서 칼을 들고나와 심동현의 다리 위에서 몸을 배배 꼬고 있는 여자를 향해 휘둘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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