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의 모든 챕터: 챕터 381 - 챕터 390

459 챕터

제381화

...창문을 뚫고 들어온 아침 햇살이 너무 눈 부셨던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으로 가리다가 불현듯 스쳐 가는 어젯밤의 기억에 눈을 번쩍 떴다.어제 술에 취한 나를 반경우가 화장실로 데려가고 있었는데 도중에 다른 사람의 손에 맡겨진 것 같았다.그게 누구였을까 싶어 기억을 더듬어보던 나는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를 떠올렸다.꼭 오래 알고 지낸 사람처럼 익숙한 목소리였는데.나는 마침내 그 남자가 석지훈이었다는 걸 기억해냈다.하지만 통째로 사라져버린 어젯밤의 기억에 나는 혹시라도 그에게 해선 안 될 말이라도 했을까 봐 조마조마해지기 시작했다.불안한 마음으로 욕실로 달려간 나는 일단 정신부터 차리기 위해 세수를 했다.세수를 마치고 문을 여니 거실에 앉아있는 석지훈이 보여 나는 1초 만에 다시 문을 닫아버리고는 또 금세 겁을 집어먹은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 보여 깊은숨을 내쉬며 석지훈 앞으로 다가갔다.다행히도 석지훈은 아직 자고 있었다.한쪽 팔로 자신의 머리를 지탱한 채 자고 있는 석지훈의 자세는 한눈에 봐도 아주 불편해 보였다.그 모습이 안쓰러웠던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방에서 담요를 가져와 그에게 덮어주려 했는데 내가 담요를 놓기도 전에 석지훈이 먼저 내 팔을 잡아 왔다.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노려보던 석지훈은 상대가 나라는 걸 확인하고서야 손에 주었던 힘을 풀었다.그 모습에 나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암살시도를 겪었기에 이 정도로 경계심이 강해졌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석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일어났어?”앞에 서 있는 나를 보면서 저런 쓸데없는 질문을 하는 석지훈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앞에 털썩 앉았다.“어제 술 많이 마셔서 속 울렁거리지 않아? 해장국 끓여줄게.”우리가 연인일 때나 하던 말을 내뱉는 석지훈에 나는 어젯밤 내가 실수한 건가 싶어 다시 불안해졌다.혹시 내가 이상한 말들을 해서 우리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줄로 오해하는 걸까 봐 나는 망설임 끝에 입을 열었다.“어제 내가 혹시 무슨 짓 했어요?”“묻고 싶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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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2화

하지만 곧이어 떠오르는 또 다른 기억에 나는 그나마 안심할 수 있었다.나는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채 그의 품에 안겨버렸고 석지훈은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는 나를 가만히 받아주고 있었다.석지훈이 자세를 유지한 채 오피스텔로 나를 데려온 것까지 다 기억 난 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어쩔 줄 몰라 했다.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재회가 이런 방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건데.정말 술은 도움이라곤 하나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원래도 그를 보면 요동쳤던 멘탈이 이젠 와르르 무너진 것 같아 나는 절망적인 얼굴로 천천히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창문을 마주 향한 채 서서 통화를 하는 석지훈에 나는 조용히 집을 나가려고 했는데 인기척을 어떻게 느낀 건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돌아선 그가 살짝 언짢은 듯한 말투로 나를 보며 물었다.“어디가?”차가운 그 표정에 나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의 두려움이 몰려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현아 만나러요.”“담현아 씨 운성으로 돌아갔어 이미.”“그럼 운성 가서 만나면 돼요.”내 말이 끝나자 석지훈은 한숨과 함께 나에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며 말했다.“언제까지 나 피할 거야?”내가 고개를 떨군 채 침묵을 유지하자 석지훈은 한숨을 쉬며 한발 물러났다.“운성에 비오니까 옷부터 갈아입고 가.”그제야 나는 여지껏 입고 있었던 검은색 나시를 떠올렸다.성향이 꽤 보수적인 편이라 내가 노출 있는 옷을 입는 걸 싫어하는 석지훈이었지만 그가 싫어하는 것만 골라 하고 싶었던 나는 그대로 집을 나서려 했다.하지만 이내 석지훈에게 팔이 잡혀서는 다시 그와 마주하게 되었다.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 차가운 손으로 내 배를 쓰다듬는 석지훈에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그러자 석지훈이 낮지만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왔다.“우리 윤아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을 안 들었지? 응?”마지막으로 내뱉은 ‘응’자에 심장이 떨려온 나는 빨개진 얼굴로 손을 빼내려 애쓰며 소리쳤다.“이거 놔요!”석지훈은 당연히 나를 놓아주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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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3화

내가 이렇게 억울해하는 모습을 보고도 석지훈은 나를 탓하지 않았다.석지훈은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 내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낮은 목소리로 나를 위로했다.“이미 지나간 일이라면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 없어. 그 두 아이... 우리가 부모가 될 인연이 없었던 것뿐이야. 게다가 넌 아직 젊잖아. 요즘 기술이 얼마나 발달했는데. 나중에 네가 아이를 원하면 시험관이라도 하면 되지. 아니면 네가 원치 않으면 안 가져도 돼.”나는 원래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석지훈의 말에 억눌러왔던 울음이 한순간에 터져 나왔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석지훈의 품에 파묻혀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최근 느꼈던 억울함과 우울함 그리고 답답함이 이 순간 모두 눈물과 함께 사라지는 것 같았다.나는 진심으로 석지훈에게 감사했다.석지훈이 나를 아무런 원망도 없이 받아주는 것에 감사했고 다시 내 곁에 다가와 준 것에 고마웠다.“윤아야, 내게는 네가 가장 소중해. 나머지는 모두 사소한 거야. 난 과거를 따지거나 옳고 그름을 따질 마음도 그럴 시간도 없어. 내가 예전에 한 말을 잊은 거야?”석지훈은 예전에 오해는 그가 나를 밀어낼 이유가 될 수 없다고 했었다. 이 말을 나는 항상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었지만 핀란드에 세 번이나 갔는데도 석지훈을 만나지 못해 상처를 받았다.나는 울면서 물었다.“그럼 날 왜 만나주지 않은 거예요?”석지훈의 앞에서 나는 너무나도 나약해졌고 기꺼이 단단한 껍질을 내려놓은 채 석지훈에게 의지하고 싶었다.이런 감정은 과거 고현성과 함께 있을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평생을 의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석지훈은 왜 나를 만나주지 않았는지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는 평소처럼 침묵을 지키며 방금 했던 말을 끝으로 다시 예전에 차가운 모습으로 돌아갔다.나는 약간 화가 나 고개를 들어 석지훈의 이름을 불렀다.“석지훈.”석지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미소를 지었다.“쪼그마한 게, 버릇없이.”예전에 내가 석지훈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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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4화

“됐어요,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요.”현정우는 명령을 들은 뒤 나와 함께 우성으로 향했다.차가 고속도로에 막 진입했을 때 보슬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도심으로 갈수록 비가 점점 더 거세졌다.운성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축축하고 추웠지만 이 도시에는 나의 많은 추억이 담겨 있었다.나는 이 도시에서 자랐고 돌아가신 아버지도 이 도시를 깊이 사랑하셨다.왜냐하면 나의 친어머니로 알려진 그분과 아버지가 바로 이곳에서 만나셨기 때문이다.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아마 친어머니를 매우 사랑하셨던 것 같다.하지만 왜 두 분이 함께하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다.문득 운산이 생각났다.석만호는 운산이 내 아버지의 삶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했었다.아마도 그것이 나의 친어머니와 관련된 것 아닐까 싶었다.나는 조수석에 앉아 현정우에게 말했다.“운성에서 떠나기 전에 운산에 꼭 가야 하니까 내가 까먹으면 알려줘요.”“알겠습니다, 가주님.”우성에 도착했을 땐 이미 점심시간이었다. 연씨 가문 저택에 도착하니 마침 엄마가 요리하고 계셨다. 부모님은 내가 돌아온 것을 보고 너무 놀라셨다. 엄마는 얼른 내 손을 잡고 앉게 하더니 다정하게 말씀하셨다.“많이 힘들었지?”엄마의 말 속 의미를 알기에 나는 이 슬픈 이야기를 꺼내고 싶지 않아 화제를 돌렸다.“엄마, 무슨 요리하는 거예요? 냄새가 너무 좋은데요?”“왠지 모르게 오늘따라 네가 집에 올 것 같은 예감이 들더라. 그래서 네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치킨 커리하고 가리비 그리고 호주산 랍스타를 만들었는데 내 예감이 맞았네.”나는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미 만들어진 치킨 커리를 보고 나는 기뻐하며 말했다.“역시 우리 엄마가 나를 제일 잘 알아.”“가서 네 아빠랑 얘기 좀 나누고 와. 음식이 다 되면 부를게. 맞다. 수아야, 오렌지 주스 마실래 아니면 망고 주스 마실래?”“달콤하게 오렌지 주스요.”엄마는 웃으며 말했다.“너 참 안 변했구나.”맞다. 나는 전혀 변하지 않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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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5화

내가 말하길 꺼리는 듯 하자 엄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너와 석지훈이 가능성이 없다면 엄마도 굳이 너에게 현성이을 찾으러 가라고 하지 않을 거야. 엄마가 친구 아들의 연락처를 한번 알아봐 줄게.”“엄마, 저보고 맞선을 보라는 거예요?”내가 운성에 오기 전에 무심코 던진 말이 딱 들어맞았다.엄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차분히 말씀하셨다.“너 혼자 그렇게 큰 짐을 짊어지고 있는 걸 보면 엄마는 너무 마음이 아파. 얼마 전에 네 아빠랑 얘기해 봤는데 네 곁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 사람이 너랑 집안 배경이 똑같을 필요는 없어. 사실 세상에 석씨 가문에 걸맞은 가문은 거의 없을 테니까.”“엄마는 그저 그 사람이 널 아끼고 사랑해 주면 돼. 네게 따듯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 엄마는 더 이상 네가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두 아이가 떠났을 때 수아, 네가 얼마나 힘들었겠니. 엄마 마음도 너무 아팠지만 널 도울 수도 없었고 곁에서 지켜줄 수도 없었어.”엄마는 말하다 눈시울이 붉어졌다.나는 얼른 손을 뻗어 엄마의 어깨를 토닥이며 위로했다.“괜찮아요. 저 지훈 오빠하고 잘 지내고 있어요. 어쩌면 곧 결혼 얘기도 나올지 몰라요.”사실 지금 나와 석지훈은 결혼 얘기를 꺼낼 단계가 아니었지만 그저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한 것뿐이었다.엄마는 나의 말에 금세 기운을 차리시며 물었다.“정말이지? 엄마한테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정말이에요. 조만간 지훈 오빠와 상의해 볼게요.”옆에 있던 아빠가 거들며 말했다.“수아야, 언제 한번 데려와 봐. 그 사람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지만 그래도 내 딸의 남편을 고르는 데 아빠한테도 기준이 있단다.”나는 웃으며 말했다.“두 분은 왜 이렇게 성급하세요?”나는 서둘러 부엌을 나와 거실 소파에 앉았다.옆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현정우를 보고 나는 물었다.“뭐 하는 거예요?”현정우는 황급히 핸드폰을 치우며 말했다.“아무것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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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6화

오후 두 시쯤 되니 운성에 내리던 비는 조금 잦아들었다. 나는 부모님이 또다시 석지훈의 얘기나 결혼 얘기를 꺼낼까 봐 점심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말했다.“저 옷 몇 벌 사러 다녀올게요. 저 기다리지 마시고 저녁 드세요.”아빠가 물었다.“이번에는 운성에 며칠 머무를 거야?”“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녁에는 집에 돌아올 거예요.”아빠는 뭔가 더 말하려다 말았다. 혹시 또 석지훈을 언제 한 번 집에 데려와 보라는 말을 꺼낼까 봐 나는 서둘러 현정우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현정우는 우산을 나에게 씌워주었고 나는 차에 오른 뒤 담현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지금 어디야?]담현아는 바로 답장을 보내왔다.[나 지금 운성이에요.]나는 다시 답장을 보냈다.[나도 운성에 있어.]내가 메시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담현아는 위치 하나를 공유해줬다.그곳은 운성에서 가장 큰 콘서트홀이었다.예전에 최희연이 이 근처에서 고양이 카페를 열었었는데 어느새 1년이 지나버렸고 최희연을 볼 기회도 거의 없었다.나는 문득 최희연이 생각나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희연아, 어디야?”“나 운성에 있어.”“나도 운성에 왔어.”“그럼 내가 수업 끝나고 너 보러 갈게.”나는 호기심에 물었다.“무슨 수업 듣고 있어?”“미술 수업. 요즘 너무 할 일이 없어서 대학에 들어가 교수님께 그림을 배우고 있어.”“그래. 끝나면 연락해.”전화를 끊고 우리는 담현아가 있는 콘서트홀에 도착했다.나는 경호원들에게 밖에서 기다리라고 한 뒤 안으로 들어가 담현아를 찾았다.담현아는 맨 뒷줄에 앉아 있었다.나는 담현아의 옆으로 가 물었다.“왜 앞에 안 앉고 뒤에 있어?”담현아는 나를 끌어당겨 옆자리에 앉히며 무덤덤하게 설명했다.“고정재에게 내가 귀국했다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요.”“그런데 왜 굳이 운성까지 왔어?”나는 일부러 고정재에 대한 담현아의 속마음을 떠보기 위해 물었지만 그녀는 태연하게 말했다.“고정재의 음악이 좋아서요.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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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7화

고정재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살짝 눈썹을 추켜세웠다. 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뒤쪽에서 앞으로 걸어가더니 무대 위로 올라갔다.고정재는 피아노 앞에 앉아 우아하게 연주를 시작했고 나는 다시 바람이 머무는 거리라는 곡을 들을 수 있었다.정말 오랜만이었다.고정재는 왜 또 이 곡을 연주하는 걸까?담현아는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내게 말했다.“유치한 아저씨예요.”나는 놀라며 물었다.“왜?”담현아는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기분이 좋아 보였다.한참 후에야 나는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고정재가 바람이 머무는 거리를 연주한 건 담현아를 일부러 자극하기 위해서였다.고정재는 이 어린 소녀가 질투하길 바란 것이다.이전에 나와 고정재가 함께 찍힌 영상이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적이 있었기에 대부분의 사람은 고정재가 이 곡을 연주한 이유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담현아는 단번에 고정재의 의도를 간파했다.담현안는 고정재가 이 곡을 자신에게 들려주려고 일부러 연주한 것임을 알고 있었다.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고개를 저으며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지능이 높은 사람과 함께하는 건 정말 피곤한 일이었다.심지어 작은 속마음까지 전부 들켜버리니 말이다.예를 들어 담현아가 방금 말했던 유치한 아저씨라는 말처럼 말이다.최희연이 도착했을 때 고정재의 솔로 연주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최희연은 내 옆에 앉아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수아야, 네가 갑자기 고정재의 연주회를 보러 오다니. 웬일이야?”나는 낮은 목소리로 최희연에게 설명했다.“내 옆에 있는 소녀가 보고 싶어 해서. 현아는 고정재의 음악을 좋아해. 나름 충성한 팬이야.”최희연은 아무렇게나 추측하며 말했다.“저 소녀가 고정재를 좋아하나 보네?”담현아가 들을까 봐 나는 최희연에게 조용히 속삭였다.“아니야, 아니야. 오히려 그 반대야.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어?”최희연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믿지 못하겠다는 듯 말했다.“너, 나한테 장난치는 거지?”나는 웃으며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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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8화

“어머나. 이건 완전 뜨거운 감자잖아. 윗선에선 우리한테 사람만 잡으라고 했지 누구를 잡는지는 말도 없었잖아. 윗선에서 이 두 여자만 데려가면 운성에는 우리만 남게 될 텐데. 이러다간 우리가 희생양이 되는 거 아니야?”귀 옆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빨리 사람들을 넘기자. 가는 길에 신호를 남기면 그 사람들이 따라올 거야. 안 그럼 두 남자가 사람을 못 찾으면 우리에게 칼을 들이밀 거야. 윗선이 우리를 이용해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면 우리가 먼저 그들을 이용해야지.”“두 남자? 왜 갑자기 두 남자야?”한 남자가 대답했다.“석지훈과 진유겸.”나와 최희연은 순식간에 차로 옮겨졌다. 연주회는 한참 동안 끝나지 않을 테니 경호원들은 우리가 납치된 걸 금방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다행히 이 사람들이 가는 길에 신호를 남긴다고 했으니 희망은 있었다.게다가 내가 늘 사용하는 건 석씨 가문의 핸드폰이었다. 경호원들이 우리가 없다는 걸 알아차리면 금방 위치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몇 분 뒤 나는 헬기 소리를 들었다. 나와 최희연은 헬기로 옮겨졌고 잠시 후 누군가 내 몸을 더듬기 시작하더니 내 핸드폰을 가져가는 것이 느껴졌다.“하, 위치 추적이 켜져 있네.”옆에 있던 누군가가 말했다.“우리는 이미 들켰어.”“일단 국경으로 가자.”헬기는 그렇게 이륙했고 나는 차가운 손이 내 복부를 만지는 것이 느껴졌다.그 순간 싸늘한 혐오감이 들었다.나는 눈을 번쩍 뜨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 남자는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옆 사람에게 말했다.“봐, 내가 이 여자가 기절한 척하는 거라고 말했지? 넌 안 믿더라?”내 앞에 있는 남자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잘생겼다. 느낌상 한민수보다 더 매력적이었다.그는 긴 눈꼬리가 특징인 한 쌍의 또렷한 눈매를 가졌는데 마치 영혼을 사로잡는 요정 같았다.나는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침착하게 물었다.“당신들은 누구죠?”지난 1년 반 동안 많은 일을 겪으며 나는 이미 어떤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강철 같은 심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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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9화

최현욱의 표정은 마치 나와 역할이 바뀐 것 같았고 오히려 내가 그를 납치한 사람처럼 느껴졌다.나는 깊게 숨을 내쉬며 스스로에게 침착하라고 경고했다.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서 여전히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는 최희연을 바라보았다. 최희연의 관자놀이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걱정스레 물었다.“내 친구 괜찮겠지?”“걱정하지 마. 조금 있으면 깨어날 거야.”더 말을 이어가려 했지만 최현욱은 갑자기 일어나 앞으로 가더니 아까 그 사람과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두세 시간이 지나 우리는 러국 국경에 도착했다. 헬기에서 내린 나는 추위에 온몸이 떨렸다.기온이 비정상적으로 낮았다. 이때 최현욱이 이를 눈치채고서는 자기가 입고 있던 안감이 부드러운 가죽 코트를 벗어 내 어깨에 덮어주었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눈썹을 추켜세우며 말했다.“내가 너한테 가장 잘해주는 건 인정하지?”“최현욱, 또 아무 데서나 끼 부리지 마.”최현욱은 미소를 지으며 동료들 곁으로 돌아갔다.우리는 약 5분 정도 걸었고 눈앞에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그곳에는 20명에서 30명 정도의 무장한 외국인들이 서 있었다.최현욱은 눈을 가늘게 뜨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람을 데려왔습니다.”반대편에 있던 보스 격의 인물은 최현욱을 보더니 참지 못하고 농담을 건넸다.“그 유명한 최현욱이 이렇게 젊을 줄이야.”그는 외국인이었지만 완벽한 한국어를 사용했다.최현욱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칭찬할 거면 잘생겼다고 해줘.”“좋아, 여기 황금 두 상자다.”최현욱은 황금을 받은 뒤 떠나려 했다. 그는 내 옆을 지나가다 낮은 목소리로 내 귀에 속삭였다.“난 이제 떠나야 해. 우리 집 어르신 생일 파티에 가야 하거든. 걱정하지 마. 내가 석지훈에게 연락해서 너희를 구하러 오게 할 테니까.”최현욱은 정말 채찍질하고 나서 사탕을 주는 사람 같았다.서늘한 바람이 부는 가운데 최현욱은 단호하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나는 마음속으로 전혀 두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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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0화

“꼬마 아가씨, 내가 구하러 왔지.”그는 해맑고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만약 내가 날 이곳으로 데려온 장본임이 그인 것을 몰랐다면 그의 말을 믿을 뻔했다.나는 냉소적으로 말했다.“난 널 못 믿겠어.”창밖은 끝없이 펼쳐진 얼음과 눈의 세계가 펼쳐졌고 햇빛이 반사되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정원에는 몇 마리 고양이가 느긋하게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 옆에 미소를 띤 채 나를 올려다보는 최현욱이 서 있었다.최현욱은 내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고 있는 걸 보더니 분석하듯 설명했다.“나는 이런 일을 업으로 삼고 있어. 그들이 널 원했으니 어쩔 수 없이 잡아 왔지만 지금 이렇게 그 사람들이 없을 때 몰래 구해줄 수도 있잖아.”“그 사람들이 없다고?”최현욱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뒷마당에는 없지.”최현욱은 아까 나에게 코트를 벗어줬기에 지금은 얇은 옷만 입고 있었다. 이제서야 나는 최현욱이 계속 이어폰을 끼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마치 콘서트 가수들이 이용하는 것처럼 핑크빛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화려한 이어폰이었는데 최현욱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나는 걱정스레 물었다.“내 친구는 어딨어?”“네 친구는 약간의 뇌진탕 증상이 있는 것 같아. 아까 또다시 기절했어. 그 사람들이 네 친구를 병원으로 따로 데려가려는 모양이야.”최현욱의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오히려 의심이 드러 나는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그쪽은 어떻게 아는 거야?”최현욱은 솔직하게 말했다.“방금 엿들었지.”나는 말문이 막혔다.창밖에는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나는 잠시 고민한 뒤 최현욱의 얇은 가죽 코트를 집어 창문 밖으로 던졌다. 최현욱은 민첩하게 몇 발짝 움직여 코트를 받았다.최현욱은 코트를 입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나랑 같이 떠날래? 병원에서 네 친구를 찾는 게 탈출하기 훨씬 쉬울 거야.”최현욱은 아무 두려움 없는 표정으로 위험한 상황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나는 의심스레 물었다.“왜 날 돕는 거야?”“너도 나처럼 예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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