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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 후 쓰는 왕관의 모든 챕터: 챕터 71 - 챕터 80

100 챕터

제71화

그러나 차분하면서도 또렷한 목소리가 회의실에 먼저 울려 퍼졌다. 여자의 목소리는 마치 아나운서처럼 정확하고 듣기 좋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처음엔 여유롭게 미소 짓고 있던 지민의 표정이 시간이 지날수록 경악으로 바뀌었다. C국말이 생소한 언어라 이를 아는 사람이 드물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서율의 서류를 몰래 바꿔치기한 것이었다. 서율이 계획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중간에 실수를 한다면, ‘능력 부족’으로 낙인찍혀 명성이 크게 실추될 거라 생각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서율은 완벽하게 C국말로 내용을 설명하고 있었다.서율은 발표를 마친 후 주위를 둘러보더니 차분하게 물었다. “이 계획안에 대해 의견 있으신 분 계신가요?”참석자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잠깐 논의했지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서율은 돌아서서 다른 말을 하려다가 도혁의 깊고도 강렬한 눈빛과 마주쳤다. 도혁은 마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풀 듯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율은 곧 무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이 자리에서 자신이 받은 자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말한들 얻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능한 사람은 항상 예상치 못한 상황도 완벽히 대처해야지, 남에게 문제를 떠넘기며 스스로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지민이 이걸 노리고 일을 꾸민 것이리라.지민은 충격에 빠진 눈빛으로 서율을 쳐다보고 있었다. 비서팀에서도 C국말 번역을 위해 일주일이나 걸렸을 만큼 복잡한 문서였다. 일부 전문 용어는 사전을 찾아가며 겨우 번역할 수 있었다.지민은 서율이가 망신당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는데 서율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 상황을 넘겼다.지민은 이를 부서질 듯이 악물고 있었다.아무도 이 사실을 모른 채 회의는 예정대로 끝나고 사람들은 차례로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그때 서율이 서류를 손에 든 채 담담하게 말했다. “서 비서님, 제 사무실로 잠깐 오시죠.”이 말을 들은 도혁이 바로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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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서율은 지민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서류를 챙겨 사무실을 나섰다....십여 분 후.서율의 사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가냘픈 체구의 여자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서율 씨, 방금 절 부르셨죠?”서율은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툭 던지며 말했다. “서 비서님, 이 서류가 왜 C국말로 작성된 건지 설명해 주시겠어요?”지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서율 씨님, 제가 드린 건 분명 한글로 된 기획서였는데... 혹시 착각하신 건 아니신가요?”서율은 등을 기대며 차갑게 말했다. “회의실과 사무실 입구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데 지민 씨가 직접 확인해보시겠어요?”지민은 책상 앞에 다가와 서류를 들고 한두 장 넘기는 척하더니, 이내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죄송해요.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서율의 시선은 차가웠다. “지민 씨의 한 마디 실수로 모든 일이 해결되는 건가요?”“회의실에 C국에서 오신 협력사들이 계셨기에, 혹시나 서류가 손상되거나 분실될까 봐 미리 여러 부를 준비해 두었어요. 아마 그 과정에서 잘못 전달된 것 같아요...”서율은 아무 말 없이 지민을 쏘아보았다. 지민은 머리를 숙이며 작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서율 씨. 이건 제 실수입니다. 어떤 처벌이든 받겠습니다. 다만...” 지민은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갑자기 무릎을 꿇고, 눈물 어린 목소리로 애원했다. “하지만 이 일로 SH그룹과의 협력을 취소하진 말아주세요. 제 잘못으로 인해 회사에 손해가 가는 건 원치 않아요. 제발 저의 실수를 용서해 주세요.”서율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때 사무실 문이 급작스레 열렸다. 깔끔한 정장을 입은 도혁이 들어섰다. 그는 무릎 꿇은 채 서율에게 애원하는 지민을 보고 잠시 눈살을 찌푸렸다.도혁은 곧바로 다가가 지민을 일으켜 세웠다. “지민아, 이게 무슨 일이야?”그제야 서율은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았음을 알았다. 또다시 같은 수법을 쓰다니. 서율은 무심히 웃음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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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눈물이 지민의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가 울먹이는 모습은 몹시 안쓰러워 보였다.“LJ그룹에 오기 전, 비서팀에서 이미 한국어와 C국말로 된 계획서를 분류해 두었어... C국말 파일은 겨우 네 개뿐이었고, 나머지는 전부 한국어였어.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C국말 파일이 서율 씨 손에 들어갔어...”서율은 속으로 비웃음을 참았다. 지민이 책임을 피하며 동료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서율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서라면 회의 전 자료의 정확성과 완전성을 검토하는 것이 기본 아닌가요?”지민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건 제 부주의였어요...”서율은 냉정한 눈빛으로 물었다. “지민 씨, 그 부주의가 저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게 될 건지 생각해 보셨나요?” 서율의 말투는 날카로웠고 눈빛은 매서웠다. “오늘은 제가 모든 협력사와 처음 공식적으로 만나는 자리였습니다. 만약 자료에 문제가 생겼다면, 전 더 이상 이 자리를 지키지 못했을 겁니다.”마지막에 서율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고, 그녀의 눈에는 분노가 떠올랐다. 서율은 진심으로 화가 나 있었다. 지민이 도혁 앞에서 눈물로 동정을 끌어내고 작전을 펼치는 건 참아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일을 방해하고 평판과 미래를 위협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할 수 없었다.지민은 조심스레 도혁을 쳐다보았다. 그의 어두운 눈빛이 자신을 응시하는 순간, 지민은 움찔했다. “저, 정말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에요...” 지민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숙이며 바닥에 이마를 찧기 시작했다. “서율 씨, 제가 잘못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제 실수는 사실이니 사죄드릴게요. 원하신다면 처벌도 감수하겠습니다. 그치만...”지민은 서율이 반응하기도 전에 절박하게 애원하듯 말했다. “이 일로 SH그룹과의 협력이 취소되는 건 막아주세요. 부디 제 실수를 용서해 주세요.”지민이 하도 세게 머리를 박은 탓에 이마에 이내 피가 맺혔고, 도혁은 그녀의 모습에 놀라며 그녀를 막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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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도혁은 서율의 날카로운 눈빛을 보며 말했다.“이미 이번 위기를 성공적으로 넘겼는데, 그렇게까지 몰아붙여야만 적성이 풀리는 거야?”서율은 도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내가 지민 씨를 일부러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도혁은 어두운 눈빛으로 서율을 바라보며 대답하지 않았다. 서율은 더 이상 물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넌 내가 C국말에 능통한 덕분에 이번 위기를 해결했다고 생각했겠지. 일이 쉽게 풀렸는데 내가 일부러 지민 씨를 괴롭히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도혁의 눈빛이 깊어졌다. “당연한 거 아니야?”서율은 평온하고도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확실히 말해두지. 난 C국말을 전혀 모르거든.” “C국말을 모른다고?” 도혁은 그 말을 믿기 어렵다는 듯 되물었다. “그래.” 서율의 입가에는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난 C국말을 모르지만, SH 그룹에서 미리 보내준 계획서를 여러 번 꼼꼼히 읽어보았어. 그 덕분에 내용을 기억해 두어 겨우 위기를 넘길 수 있었지.” 서율은 도혁의 단정하고 차가운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아직도 내가 일을 쉽게 해결했다고 생각해?”짧은 정적이 흘렀다.사실 서율은 도혁의 대답을 바라는 건 아니었다. 지민만 얽히면, 어떤 일이든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걸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서율은 더 이상 도혁에게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도혁이 지민과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문이 닫히자 서율은 손에 쥐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더는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지민은 결국 자신의 이마가 터질 때까지 머리를 찧어댔다. 서율은 속으로 쓴웃음을 지었다. 정말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는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도혁의 태도는 여전히 서율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서율은 의자에 기대 잠시 더 앉아 있었지만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다. 결국 사무실을 나서 바깥 공기를 쐬러 가기로 했다.사무실을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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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선홍빛 피가 지민의 몸에서 흘러나와 깨끗한 대리석 바닥을 물들였다. 그 모습은 섬뜩할 만큼 충격적이었다.서율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어두운 색 정장을 입은 도혁이 마침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도혁은 계단 아래에 쓰러져 있는 지민을 보고 순간적으로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지민아!” 도혁은 서둘러 다가가 지민을 안아 올리며 명령했다. “구급차 불러!”...병원 응급실, 붉은 비상등이 번쩍이는 가운데 도혁의 얼굴에는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그의 표정은 무겁고 차가웠다.“문서율, 틀림없이 네년 짓이야! 네가 지민을 밀었겠지, 이 악독한 여자야!”지민의 소식을 듣고 병원에 달려온 효연은 서율의 코앞에서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 “지민을 죽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질 않나 봐! 세상에 너만큼 역겨운 사람도 없겠지! 진짜 양심이란 게 있긴 하니?”서율은 차갑게 효연을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원수라도 되는 듯한 얼굴이었다. “양심이 없는 건 효연 씨가 1등일 거예요. 그러니 효연 씨와 비하면 난 아직 멀었네요. 그리고 악독한 걸 따진다면 전 효연 씨의 1/1000도 따라가지 못할 거예요.”서율의 눈빛에는 비웃음이 서려 있었다. “정작 본인이 가장 악독하면서도 다른 사람을 그토록 대놓고 비난하시다니, 효연 씨는 정말 부끄러운 줄 모르시나 봐요.”서율의 조롱 어린 말은 욕설 한마디 없이도 날카로운 비수처럼 효연의 심장에 꽂혔다. 효연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며 이성을 잃은 채 서율을 노려보았다. “오늘 내가 지민을 대신해 널 혼쭐 내줄 거야!” 효연은 손을 치켜들고 서율을 향해 다가갔다.서율은 태연하게 말했다. “나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면 솔직히 말해요. 자꾸 다른 사람을 핑계 삼는 건 참 격 떨어지거든요.”“문서율!” 효연은 거의 이성을 잃은 듯한 목소리로 서율의 이름을 부르며 고함쳤다. 병원 전체에 그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그만해.” 효연의 손목이 갑자기 누군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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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효연은 서율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최근의 서율은 예전처럼 당하고만 있지 않고 모든 말에 똑 부러지게 대응해 왔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효연의 기세를 꺾어버렸다.도혁은 서율을 쳐다보며 무표정한 얼굴로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서율은 담담하게 그와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난 밀지 않았어. 지민 씨가 발을 헛디딘 거야.”“그럼 왜 하필 계단에서 굴러떨어진 거야?”“나랑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난 그 여자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거든.” 서율은 차분하게 설명했다. “날 다급히 막으려다 발을 헛디뎌 굴러떨어진 거야.”도혁은 말없이 서율을 쳐다보았했다. 그의 검은 눈동자는 감정을 읽기 어려웠고, 주위의 온도마저 서늘해지는 듯했다. 도혁의 표정에서 의심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서 믿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계단에서 넘어지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숨이 막히는 분위기 속에서 효연도 잠시 불안한 표정을 보였지만, 서율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도혁과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눈빛은 맑고 당당해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마침내 도혁은 시선을 돌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일은 내가 직접 확인할 거야. 문서율, 네 말이 사실이길 바랄게.”잠시 후, 수술실의 불이 꺼졌다. 지민은 다행히도 경미한 뇌진탕을 입었을 뿐, 며칠 병원에 머문 후 집에서 요양하면 된다는 진단을 받았다....지민이 깨어났을 때, 병실은 조용했다. 호화롭고 아늑한 병실 내부를 둘러보던 그녀는 옆에서 졸고 있는 효연을 발견했다. 지민의 눈길이 병실을 한 번 훑고 지나갔지만 그녀가 보고 싶어 했던 사람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효연은 그녀가 깨어난 기척을 느끼고 눈을 떴다. “지민아, 드디어 깼구나.” 효연은 서둘러 다가가 물 한 잔을 따라 그녀에게 건넸다. “어때, 아직도 머리가 아파?”지민은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물었다. “괜찮아. 그런데 도혁은 어디에 있어?”효연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고, 그녀의 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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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효연의 말은 과장도 모자라 아예 사실을 뒤바꿔버렸다. 도혁이 자리를 비운 이유가 서율에게 붙잡혔기 때문이라는 말도 전혀 사실이 아니었다. 도혁은 그저 사건의 경위를 확인하러 갔을 뿐이었다. 물론, 효연이 사실을 말할 리는 없었다. 그녀는 서율을 몹시도 증오하고 있었고, 하루빨리 서율이 도혁과 이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도혁은 과거에 늘 지민 덕분에 효연의 편을 들어줬지만, 지금의 도혁은 서율의 말을 믿었기에 효연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 서율에게 여러 차례 당한 경험 때문에 서율에 대한 증오는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다.효연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던 지민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낸 덕에 효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아는 지민이었다. 그녀는 효연의 말이 사실과 다름을 이미 알고 있었다.“효연아, 나 좀 혼자 있고 싶어. 잠시 나가줄래?” 지민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효연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지민아!”“나가줘.” 지민은 다시 한번 조용히 말했다. 효연은 못마땅했지만 자리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다음 날, 도혁이 지민의 병실을 찾았다. 그와 함께 서율도 동행했다. 마침 병실에서 사과를 깎고 있던 효연은 도혁을 보자마자 반갑게 웃으려다, 뒤따라 들어온 서율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문서율, 네가 여길 왜 온 거야?” 효연이 날카롭게 외치자 서율은 약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효연 씨, 제 귀는 멀쩡해요. 소리 좀 낮춰주시죠. 이렇게 시끄럽게 소리치는 모습은 정말 보기 좋지 않네요.”“문서율, 너...” 효연이 불같이 반응하려던 순간, 지민의 차분한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렸다. “효연아.”지민의 눈치를 본 효연은 마지못해 입을 다물었다.서율은 가져온 과일 바구니와 꽃을 병실 한쪽에 내려놓으며 조용히 물었다. “지민 씨, 몸은 좀 어떠세요?”지민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별일 없어요. 와줘서 고마워요.”지민의 평온한 표정과 말투에 효연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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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별일 아니야. 내일이면 퇴원할 수 있어.”“그래,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해.”“알겠어.”두 사람은 짧게 대화를 나눴지만, 서율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자 효연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도혁을 쳐다보며 말했다. “도혁 오빠, 문서율이 지민을 밀어서 계단에서 떨어뜨렸다고요...”그러나 도혁은 그녀의 말을 끊고 지민을 깊은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서율이 정말 밀었어?”서율은 가져온 꽃을 가만히 손질하며 상황을 지켜보았다. 도혁이 이미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굳이 지민에게 다시 묻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지민이 밀었다고 말한다면, 그는 그 말을 그대로 믿고 서율에게 책임을 묻기라도 할까?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서율은 알고 있었다. 도혁에게 지민은 절대 가벼운 존재가 아니었다. 지민은 도혁의 생명의 은인이었고, 서율 대신 선택하지 못했던 과거의 상처가 담긴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지민을 향한 감정은 단순하지 않았다. 어쩌면 서율의 억울함을 통해 지민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건 아닐까?지민은 도혁의 차가운 얼굴을 쳐다보며 조용히 물었다. “도혁아, 설마 내가 일부러 떨어졌다고 생각하는 거야?”도혁은 변함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난 그런 말을 한 적 없어.”“하지만, 그게 네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인 거잖아.” 지민은 슬픔이 뒤섞인 표정으로 속삭였다. “도혁아, 설마 내가 서율 씨를 모함하려 했다고 생각한 거야?”“아니. 당시 너희가 가까이 있었고 몸이 부딪쳤으니 오해한 걸 수도 있다고 생각한 거지.”“오해라고?” 지민은 믿기지 않는 듯 도혁을 쳐다보았다. “도혁아, 설마 내가 아니라 서율 씨를 믿고 있는 거야?”도혁의 목소리는 낮고 냉정했다. “난 사실만 믿어.”지민은 그 말을 듣고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차가운 감정이 마음을 얼어붙게 하고, 마치 얼굴을 세게 얻어맞은 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한동안 도혁을 바라보던 지민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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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서율의 입가에 미묘한 미소가 번졌다. “지민 씨는 왜 그쪽에 CCTV가 없다고 생각한 거죠?”지민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며 당황한 빛을 띄었다. 이내 무언가 잘못됐음을 깨닫고는 어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저, 저도 서율 씨를 오해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깨어나자마자 효연에게 확인해 달라고 했는데... 그쪽에는 CCTV가 없다고 하더라고요.”본능적으로 핑계를 댔지만, 서율의 평온한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지민 씨는 제가 당신을 밀었다고 확신한 건가요?”지민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곳에 정말로 CCTV가 있는 건지 아니면 서율이 속임수를 쓰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자신이 확인했을 때 분명 그 위치에는 CCTV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밀려왔다.지민은 깊은숨을 들이쉬고 최대한 침착하게 말했다. “서율 씨, 사실 저도 당신이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지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효연이 비웃으며 소리쳤다. “지민이가 누구 때문에 업무에서 몇 번이나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번에 또 이런 일이 벌어진 게 우연이라니, 그 말을 누가 믿어?”서율은 여전히 평온한 표정으로 답했다. “효연 씨, 제가 지민 씨를 일부러 곤란하게 한 게 아니라, 지민 씨가 업무 중에 실수한 일이 있을 뿐입니다.”효연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일을 조금 실수했다고 무릎을 꿇게 만들다니, 그게 당연한 거야? 자기가 여왕이라도 되는 줄 아나 봐?”서율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니요, 제가 말하기도 전에 스스로 무릎 꿇은 건지도 모르잖아요?”“문서율, 너...” 효연의 얼굴이 새빨개지며 서율을 향해 다가서려 했으나, 도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두 사람을 막아섰다.“그만해.” 도혁은 서율을 향해 경고의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문서율, 제발 일을 크게 만들지 마.”서율은 지친 듯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먼저 문제를 일으킨 건 아니잖아.”지민은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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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정말 날 그렇게 믿었다면, 서율의 서류를 일부러 바꿔치기했냐고 묻지 않았을 거야. 지금도 그래... 내가 일부러 계단에서 넘어져 서율을 모함했다고 생각하는 거지?” 도혁의 목소리는 이성적이고 차가웠다. “지민아, 묻는다고 해서 의심하는 건 아니야.”지민은 그의 얼굴을 쳐다보며 조용히 물었다. “도혁아, 설마 이혼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야?”도혁은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혼할 수 없어.”지민은 그의 깊고 어두운 눈빛을 쳐다보며 물었다. “주식 문제 때문이야? 이제 남은 시간은 3개월뿐이야. 3개월이 지나면 서율과 이혼할 거야?”도혁의 눈이 잠시 흔들렸지만,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지민은 그가 망설이고 있음을 직감했다. 그 망설임은 곧 완전히 이혼을 결심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의 태도가 지민을 실망시켰다.지금 이 순간에도 머뭇거리고 있는데, 3개월 후에는 어떨까? 어쩌면 도혁은 정말로 이혼을 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녀를 사로잡았다.지민은 차가운 표정으며 물었다. “도혁아, 설마 서율 씨를 사랑하게 된 거야?”도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아니.”지민은 이를 악물고 결심한 듯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도혁아, 난 널 구하려고 평생을 바쳐온 춤을 포기했어. 그때 너는 내게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고, 나는 너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했지. 너는 그때 나에게 결혼을 약속했지만 결국 약속을 지키지 않았어.”지민은 도혁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다는 건 나도 알아. 그래서 원망하지는 않아. 하지만 이제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모든 장애물들이 사라졌잖아. 난 네가 그때 했던 약속을 다시 지켜줬으면 해... 내 부탁, 들어줄 수 있어?”병실 안은 깊은 침묵에 빠져들었다. 지민은 언제나 강하고 현명한 여자기에 누구에게도 은혜를 빌미로 뭔가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도혁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직감하고 이렇게 나선 것이다. 지민은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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