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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 쓰는 왕관: Chapter 81 - Chapter 90

100 Chapters

제81화

서율도 문미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아직 도혁과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당시 자신의 고집으로 결혼을 한 것이기에 지금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 것도 모두 자신의 선택 탓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문미정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잠시 침묵하던 서율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엄마, 저 지금 회사에 있어요. 금방 갈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그래, 그래. 급하지 않으니 걱정 말고 천천히 와.]이미 S시에 도착한 문미정을 돌려보낼 수 없었기에, 서율은 곧바로 집으로 향했다.집에 도착하자, 문미정은 이미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문미정을 보자 서율은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며 눈가가 촉촉해졌다. 그녀는 걸음을 서둘러 달려가 문미정을 꼭 안았다. “엄마, 미안해요.”이 사과는 3년이나 늦은 것이었다. 문미정 역시 오랜만에 딸을 보자 감정이 북받쳐 서율을 꽉 껴안으며 말했다. “율아, 엄마가 미안해. 그때 네가 좋은 집안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길 원하는 마음에 너의 행복을 우선시하지 못해서 미안하구나.”서율과 문미정은 서로를 안은 채 웃고 울며 오랜 시간 감정을 나눴다. 그렇게 한참을 지나, 두 사람은 차츰 마음이 가라앉았다. 문미정은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서율을 살피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율아, 너 예전보다 훨씬 말랐구나. 그동안 힘들었던 거니?”문미정의 걱정스러운 시선에 서율은 서둘러 말했다. “아니에요, 엄마. 제가 조금 살이 쪄서 요즘 다이어트 중이에요. 그래서 더 말라 보이는 거예요.”문미정은 한숨을 내쉬며 투덜거리셨다. “요즘 젊은 애들은 몸 관리 신경 많이 써, 하나같이 마른 것들이 무슨 살을 뺀다고 그래... 아무리 봐도 전혀 안 쪘구먼.”문미정의 잔소리가 새삼스럽게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문미정은 주위를 둘러보며 궁금한 듯 물었다. “율아, 도혁은 어디 있니? 왜 안 보이는 거야?”서율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일이 좀 바빠서요. 그래서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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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도혁은 미소를 지으며 별다른 반응 없이 두 사람 앞으로 다가왔다. “서율이가 저에 대해 오해하는 게 있어 아직 화가 난 모양이에요. 제 잘못이니 서율을 탓하지 마세요. 제가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거든요.”문미정은 도혁이 핑계나 장황한 설명 없이 바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자, 그에 대한 호감이 한층 더 깊어졌다. 문미정은 미소를 지으며 도혁에게 말했다. “나는 서율의 엄마야. 오랫동안 해외에서 지냈고, 이번에 S시에 온 건 서율이 잘 지내고 있는지 확인하려고 왔단다. 그래야 아빠에게도 안심하고 전해줄 수 있으니까.”서율의 아버지는 큰 회사를 관리해야 해서 이번에 함께 오지 못했다.도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예의를 갖춰 답했다. “장모님, 안으로 들어가시죠.”문미정은 도혁이 젊은 나이에 흔히 보이는 거만함이나 무례한 태도 없이 자연스럽고 진중한 모습에 점점 더 만족스러워졌다. 특히 결혼식에 그녀의 가족이 참석하지 못했던 이유를 묻지 않는 그의 배려가 마음에 들었다.문미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그렇게 어렵게 부를 필요 없단다. 서율처럼 편하게 나도 엄마라고 불러.”“알겠습니다, 어머니.” 도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공손하게 문미정을 집안으로 안내했다.서율은 한 발 늦게 들어서며 도혁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지?”도혁은 차분히 대답했다. “병실을 나가던 중에 마침 네가 나가는 걸 봤어.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따라와 본 거야.”도혁은 사실 서율과 나눌 이야기가 있어 병실을 나왔으나, 서율이 어딘가 급히 가는 듯한 모습을 보고 따라온 것이었다.서율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우리 엄마는 건강이 좋지 않으니, 제발 아무 말이나 하지 마. 안 그러면...”원래는 문미정을 집으로 들이는 대신 자신의 아파트로 데려갈 생각이었지만, 도혁이 갑자기 나타나서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버렸다.도혁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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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과거 서율이가 도혁을 좋아하게 되어 도혁 아니면 결혼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문미정은 도혁의 집안인 HS그룹이 작은 기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가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다고 판단한 그녀는 서율이 그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했다. 문미정과 육경석은 오랫동안 고지성을 좋은 사윗감으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서율은 고지성을 그저 오빠로만 여겼다. 문미정은 다소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기에, 결혼은 반드시 집안 실력이 비슷해야 행복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 시기에 서율은 도혁과의 결혼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문미정과 육경석은 서율과 지성을 이어주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이 말을 들은 서율은 혹시나 뭔가 계획이 있을까 두려워 집에서 나왔다. 지금 이 순간, 도혁을 만난 문미정은 그가 정말로 준수하고 훌륭한 인물임을 깨달았다. 서율이 집에 돌아오지 않은 동안 그녀는 해외에서 HS그룹의 상황을 자주 살폈고, 가끔 육경석의 입을 통해 도혁에 대한 칭찬을 듣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문미정과 육경석은 서율을 막았던 그때의 결정을 후회하게 되었다. 부모로서 딸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된 것이다. 두 사람은 대화를 이어가다 도혁이 말했다. “어머니, 멀리서 오셨으니 여기서 편하게 지내세요.” 문미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민폐를 끼치겠구나.” 도혁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서율의 어머니시니 제 어머니와도 다름없죠.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이 말에 문미정은 마음이 더 따뜻해졌다. 도혁을 바라보는 눈길이 점점 더 애정이 담기게 되었다. 도혁은 눈치 있게 말했다. “어머니와 서율이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가 많으실 테죠. 저는 먼저 HS그룹에 가보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래, 고맙다.” 문미정은 도혁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아쉬운 눈길로 쳐다보았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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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문미정은 전화를 확인하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희 아빠한테 전화왔네.” 문미정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핸드폰 너머에서 육경석이 서율을 만났는지, 서율은 어떻게 지내는지, 그리고 도혁은 어떤지 물어보는 것이 들려왔다. 문미정은 하나하나 답하며 도혁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애정 어린 말투를 숨기지 않았다. 서율은 옆에서 그 대화를 듣고 있었고, 몇 번이나 끼어들어 뭔가를 말하고 싶었지만, 문미정이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말해서, 서율은 문미정이 이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오랜만에 본 것 같았다. 약 10분 정도 대화가 이어진 후, 문미정은 전화를 끊었다. “서율아, 아까 뭘 말하려고 했니?” “별거 아니에요.” 서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결국 진실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냥... 우리 집 상황은 당분간 도혁이에게 말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제가 직접 얘기할게요.” 문미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도혁이 같은 사람이면 그 사실을 알아도 별로 문제가 될 것 같진 않구나. 하지만 어쨌든 우리가 먼저 숨긴 거니, 나중에 잘 설명해서 부부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해.” 서율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문미정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문미정은 최대 한 달 정도만 머무를 예정이었다. 어차피 도혁이 한 달에 몇 번이나 집에 올까 말까 한 상황이니, 서율은 도혁이 출장 간다는 핑계를 대면 대충 넘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서율이 직접 밥상을 차린 순간, 도혁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온 도혁을 보고 문미정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도혁아, 무슨 일이니? 율이는 네가 오늘 야근한다고 했는데.” 도혁은 순간적으로 서율의 속셈을 알아차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서율을 한 번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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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서율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네가 신경 쓰실 일이 아니지.” 도혁은 그녀의 의도를 눈치챘는지 담담하게 대답했다. “문서율, 네가 내가 야근하거나 출장 가는 걸 핑계 삼아 상황을 모면하려는 건 알겠어. 그런데 정말 어머니가 그렇게 쉽게 속아 넘어갈 것 같아?” 서율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엄마지, 네 엄마는 아니잖아.” 도혁은 그녀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내가 네 엄마를 아주머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야? 물어보면 네 말대로 대답해도 된다는 거야?” 서율은 도혁의 말에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었다. 몇 초 후, 서율은 차갑게 물었다. “변도혁, 대체 뭘 원하는 거야?” “난 널 돕고 있는 거야. 모르겠어?” “도와준다고? 네가 그렇게 착한 사람일 리가 없잖아.” 서율은 도혁의 얼굴을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도혁의 눈빛이 잠시 어두워졌다. “네 눈엔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인 거야?” 서율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알고는 있었네.” 도혁은 서율의 비꼬는 말에도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는 건강이 좋지 않으시잖아. 지금 네가 걱정되어 먼 길을 오셨는데, 정말 우리 문제로 어머니를 걱정하게 만들고 싶어? 문서율, 내 도움이 있으면 네가 혼자 연기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을 거야.” 서율은 입을 꾹 다물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도혁의 협조가 있으면, 문미정은 그녀가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고 믿을 것이 분명했다. 사실 서율은 육경남이 S시에 LJ그룹의 지사를 세우고 자신에게 그 관리를 맡기려는 계획을 알고 있었다. 덕분에 그녀는 꽤 오랜 시간 동안 Z국에 머물며 일을 할 예정이었다. 서율은 천천히 부모님께 이혼 사실을 밝힐 계획이었지만, 예상치 못하게 문미정이 자신이 아직 이혼도 하기 전에 찾아온 것이다. 지금 서율과 도혁의 관계는 매우 어색하고, 결혼 생활이 위태롭기 그지없지만, 아직 이혼을 하진 않았다. 그런데 이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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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서지민이 나를 건드리지 않는 한, 나도 문제를 일으키진 않을게. 하지만 서지민이 날 괴롭힌다면...”서율은 도혁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때는 참지 않을 거야. 그러니 너도 서지민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나를 이용하려는 생각은 하지 마.” “변도혁, 넌 서지민에게 끝없이 관대해질 수 있지만 그건 네 일이잖아. 난 서지민에게 아무런 빚도 지지 않았어. 나에게도 똑같은 관용을 요구하지 마.” 도혁은 낮고 쉰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겠어.” 서율은 두 사람 사이에 일종의 협의가 이루어졌음을 느꼈다. 그녀는 자리에 일어나며 말했다. “난 먼저 올라갈게. 회사 일 있으면 마저 하러 가.” 그리고 도혁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곧장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 서율은 문득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이 상황에서 연극을 하려면 도혁과 방을 따로 쓸 수는 없었다. 결국, 둘은 같은 방에서 자야 한다는 뜻이었다. 더 큰 문제는 방에 침대가 하나뿐이라는 것. 이 사실을 깨닫자 서율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그녀와 도혁은 이미 부부로서 모든 것을 겪었고, 같은 침대에서 자는 것 자체가 새삼스러울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를 잃은 후, 서율은 도혁에게 설명할 수 없는 반감이 생겼다. 그가 자신에게 손을 대는 것조차 견딜 수 없게 됐다. 서율은 잠시 고민하다가 새 이불을 꺼내 소파에 누웠다. 요즘은 일로 바쁘고, 지민의 끊임없는 방해를 처리하느라 몸이 피곤했다. 소파에 잠시 눕기만 했는데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몸이 허공에 떠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서율은 눈을 천천히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그림처럼 잘생긴 얼굴과 차가운 듯 선이 뚜렷한 도혁의 얼굴이었다. 서율은 그제야 자신이 도혁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변도혁,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녀는 온몸이 긴장한 채로 도혁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도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침대에서 자.” 서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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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서율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도혁은 산처럼 단단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서율은 그가 얼마나 위험한 사람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지난번 겨우 위기를 모면했지만, 이번엔 그와 단둘이 있는 상황이었다. 마치 양이 호랑이 굴에 들어온 것과 같았다. 도혁의 키스는 강압적이고 거부할 수 없는 힘을 지녔다. 서율은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무서운 힘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부림은 점차 약해졌다. 도혁이 더 나아가려던 순간, 차가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그의 동작이 멈췄다. 천천히 눈을 뜨자, 서율이 눈물이 가득 흘린 채 누워 있었다. 서율은 지금껏 아무리 힘든 상황에 처해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마치 차가운 물이 도혁의 머리 위로 쏟아진 듯, 도혁의 뜨거운 욕망이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그는 조용히 서율을 내려다보며 쉰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싫은 거야?” 서율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 “우린 3개월 후에 이혼할 거야. 그러니 나를 건드릴 수 없어.” 도혁의 검은 눈동자가 어둡게 빛났다. “우리가 이혼하기 전까지는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해.” 서율은 침대 시트를 단단히 움켜쥐고 눈물을 흘린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지만, 넌 한 번도 남편으로서의 책임을 다한 적이 없어. 그런데 어떻게 나한테 아내로서의 의무를 다하길 요구할 수 있지?” 도혁은 평소에 서율을 무시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으며, 늘 다른 여자에게 불려 나가고, 서율이 괴롭힘을 당할 때도 방관했다. 서율의 마음은 상처 입을 때마다 조금씩 식어갔다. 도혁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에 서율의 모습이 비쳤다. 마치 끝없는 블랙홀 같아서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영혼까지 빨려 들어갈 듯했다. 도혁은 천천히 손을 뻗었고, 서율은 깜짝 놀라 몸을 피하려 했다. 그러나 도혁은 그녀를 다치게 하지 않았다. 그저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조심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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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예전의 서율은 쉽게 위로받고, 도혁의 작은 호의에도 자신을 다 내주려 했었다. 도혁이 잠깐만 다정한 태도를 보여주면, 그녀는 마치 몸과 마음을 도혁에게 바치려고 했다.도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 “나와 지민은 네가 생각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야.” 서율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 나와 이혼하고 나면 서지민과 결혼할 생각 당연히 했을 거 아니야?” 도혁의 얇은 입술이 약간 움직였지만,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서율은 모든 것을 이해한 듯했다. 서율은 도혁을 가볍게 밀어내며 말했다. “변도혁, 불편하니 일단 내 몸에서 내려가 줄래?” 도혁은 잠시 그녀를 쳐다보다가 마침내 그녀를 풀어줬다. 서율은 재빨리 일어나 흐트러진 옷을 정리한 후 방을 나가려 했다. 그러나 도혁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물었다. “어디 가려고?” “지금 이런 상태로 같이 자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서율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난 객실에서 잘게.” 도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따로 자면 어머니가 눈치챌 거야.” 서율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눈치채면 눈치채는 거지. 어차피 엄마도 언젠가는 알게 될 거야. 다만, 요즘 엄마가 몸이 안 좋아서 괜히 걱정 끼치고 싶지 않을 뿐이야.” 도혁은 그녀의 손목을 더욱 세게 잡으며 말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건드리지 않을게.” 서율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변도혁, 난 네 말은 절대 믿지 않아.” 서율은 도혁을 믿지 않았다. 도혁의 입술은 얇게 일직선으로 굳어졌고, 표정에는 약간의 불쾌함이 스쳤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게 약속한 것은 절대 어기지 않아.” 서율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도혁은 자신에게 약속한 것은 지키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에게 약속한 것이 거의 없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잠시의 침묵 끝에, 서율은 마침내 타협했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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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도혁이가 술에 취했을 때면 서율은 그를 부축해 방으로 데려가고, 해장국을 끓여주곤 했다. 도혁이 집에서 밤을 보낼 때면, 서율은 항상 일찍 일어나 그를 위해 정성스럽게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그러나 도혁이 집에서 밤을 보낸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지민이 돌아온 이후로, 그는 거의 집에 머물지 않았다. 도혁은 서율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 식사를 고작 한두 번 먹었을 뿐, 그 외에는 바쁘다는 이유로 서둘러 집을 떠나며 아침을 준비한 그녀를 본체만체했다. 도혁은 서율의 기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 기억들이 이제 와서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오르며, 답답하고 알 수 없는 불쾌감이 도혁을 휘감았다. 도혁은 무의식적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지만, 숨이 트이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답답함이 더해졌다. ... 도혁은 샤워를 마치고 쉬려 했다. 서율은 침대에 누워 도혁이 침구를 깔고 있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그의 동작은 아주 깔끔하고 세심했다. 도혁은 꼼꼼하게 이불을 깔았고, 작은 주름 하나 없이 완벽하게 정돈했다. 그가 얼마나 결벽증이 있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소파가 매우 컸지만 도혁의 체격이 그만큼 컸기에 소파는 왠지 좁아 보였다. 서율은 자신이 누워 있는 넓은 침대와 도혁이 다소 비좁아 보이는 소파를 번갈아 쳐다보았다가, 이내 눈을 감았다. 남편을 배려하는 마음이 불행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잠이나 자자.’침대 옆 스탠드의 불을 끄자 방 안은 어둠에 휩싸였다. 서율은 눈을 감고 있었지만 좀처럼 잠에 들지 못했다. 결혼한 지 3년, 그들이 따로 살기 시작한 지는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도혁과 한 방에 있는 것이 낯설게 느껴질 줄은 몰랐다. 예전엔 도혁이 집에 돌아왔을 때, 서율은 그가 전화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지민에게서 전화가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최근에 너무 많은 일을 벌인 탓인지, 그날 밤 지민에게서는 전화가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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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서율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신이 도혁을 그렇게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었다니! 그와 이미 많은 것을 함께 겪었고, 그의 알몸을 본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밤에 있었던 일이었다. 지금은 대낮이고, 이런 상황에서 도혁의 알몸을 보게 되니 충격이 작지 않았다. 묘하게도 설명할 수 없는 당혹감마저 느껴졌다. 서율은 최대한 차분한 척하며 말했다. “미안해, 네가 이미 출근한 줄 알았어. 문을 안 두드리고 들어온 건 실수였어. 바로 나갈게...” 도혁은 이미 평정심을 되찾고, 조용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깊고 검은 눈동자에 당황한 서율의 모습이 비쳤다. 최근 서율의 반항적인 태도와 거침없는 말투가 떠오르자, 지금 이렇게 쩔쩔매는 모습을 보니 도혁은 이상하게도 그녀가 귀엽게 느껴졌다. 어젯밤의 불쾌감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도혁은 머리카락을 닦고 있던 수건을 옆으로 던지고, 서율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그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서율은 긴장한 듯 숨이 가빠졌다. 눈빛에는 살짝 당혹감이 스쳤다. 서율은 무의식적으로 몇 발자국 물러섰고,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고서야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도혁은 그녀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방금 샤워를 마친 탓인지, 도혁의 본래 하얀 피부는 더욱 맑아 보였다. 도혁의 표정은 여전히 감정을 읽을 수 없는 차가운 모습이었지만, 검은 눈동자는 엄청 어두웠다. 서율은 어색한 침묵을 깨려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뭐 필요한 거라도 있어?” 도혁은 그녀를 쳐다본 채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 “그 말은 내가 물어야 하는 게 아닌가?” 도혁이 너무 가까이 다가왔기에 두 사람의 숨결이 느껴질 정도였다. 서율은 그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긴 속눈썹까지 셀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율의 얼굴은 점점 더 뜨거워졌다. 방 안에는 샤워 후의 은은한 향기가 가득했고, 서율의 머릿속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그녀는 생각할 수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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