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251 - Chapter 260

303 Chapters

제251화

성유리의 머릿속에는 오직 한 생각뿐이었다. 이런 조건은 정상적인 사로를 가진 사람이라면 다 동의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박한빈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한테 떠받들리며 성장했고 커서도 세상을 지배할 수도 있는 능력을 갖춘 박한빈이지 않은가? 너무 놀란 탓에 성유리는 갑자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몰랐다. 한참 뒤, 성유리는 정신을 다잡고 박한빈에게 물었다. “박한빈 씨, 지금 본인이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 아세요?” “알아.” “술 취하셨어요.” 성유리는 재빨리 반응하고는 박한빈을 한쪽으로 밀어냈다. “안 취했어.” 박한빈의 대답에 성유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몸에서 술 냄새가 너무 나는데요?” “안 취했다니까! 나 지금 정신도 말짱해.” 박한빈은 대답하는 동시에 성유리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며 중얼거렸다. “지금 나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그럼 제가 왜 이러는지, 목적이 뭔지는 아세요?” 성유리가 박한빈에게 묻자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박한빈 씨를 제 곁에서 밀어내려고 이러는 거죠. 이렇게 만나서 대화를 나눈다고 해도 저는 절대로 다시 박한빈 씨를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심지어는 당신의 이런 감정을 이용해 쓸 만한 가치를 다 뽑아낸 다음 차버릴 거고. 이런데도 동의하시는가요?” 성유리가 냉정한 말투로 말을 해나가자 박한빈은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난 좋아.” 깔끔하고 짧은 박한빈의 대답은 마치 한 뭉치의 솜이 되어 성유리의 가슴을 틀어막는 것 같았다. ‘이건 내가 예상한 대답이 아닌데?’ 방금 전, 성유리와 연정우가 말한 것처럼 성유리는 꿈에서도 박한빈이 동의를 할 줄을 몰랐다. 심지어 성유리 본인마저 자기가 하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박한빈은 주저하지도 않고 바로 동의했다. “술은 얼마나 마신 거예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진정을 한 성유리가 박한빈에게
Read more

제252화

박한빈은 오늘 확실히 술을 평소보다 더 많이 마셨었다. 성유리 쪽에서 나온 다음 바로 다른 술집으로 향한 박한빈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조차 못 했다. 하지만 배지수가 박한빈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누구보다 더 정신이 말짱했다. 박한빈은 서훈에게 전화를 걸어 박한빈과 배지수의 일을 잘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지화그룹의 일은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 배지수라는 “방패”는 필요하지 않아졌다. 그리고 또 하나, 배지수의 두 눈과 마주쳤을 때 박한빈은 점점 머릿속에 정확한 답안이 떠올랐다. 배지수는 성유리가 절대로 될 수도 없고 그녀를 대체할 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답안이다. 그래서 박한빈은 다시 돌아오기를 선택했다.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미쳤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그 또한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성유리가 제시한 조건들을 망설임도 없이 동의하겠는가? 성유리가 자신을 망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박한빈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성유리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것은 아닌지, 왜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는지 말이다. 아마 성유리가 아직 자신에게 감정이 남아있어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한빈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웃겼다.  하지만 박한빈은 정신을 다잡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의 몸 안에서 또 다른 박한빈이 나타나 그러면 안 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외침에 박한빈의 또 다른 목소리는 알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박한빈은 서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방안에 에어컨은 낮은 온도로 틀어져 있어 박한빈은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이내 박한빈은 왜 이렇게 춥다고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침대에 나 혼자 누워있네?’ 박한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걸어
Read more

제253화

그렇지만 않았어도 성유리는 자신을 바꾸려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바뀐 성유리지만 생각했던 만큼 기쁘지도 않았다. 성유리는 기쁘지 않은 원인이 아직 자신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아마 어느 날, 더 이상 올라갈 데가 없을 정도의 위치에 올라간다면 행복할 수 있겠다는 착각도 했다. 성유리는 스스로 확신하지 못했고 주위 어떤 누구도 그녀에게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성유리는 끝이 없이 앞으로 걸어 나가야만 했다. “담배 끊으라고.” 박한빈은 성유리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똑같은 말만 반복했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으며 물었다. “그러는 박한빈 씨는 왜 담배를 안 끊는 건데요?” “좋아. 그럼 나도 너랑 같이 끊을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는 박한빈을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박한빈은 내뱉은 말을 빠르게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인지라 성유리의 담배 한 갑과 라이터를 바로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리고 어제 벗어놓은 자신의 옷가지 쪽으로 향하더니 주머니 속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깔끔하게 버렸다. 하지만 손에 들린 라이터는 버리지 않았고 박한빈은 성유리를 바라보며 그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이 라이터는 안 버릴래. 네가 선물로 준거니까.” 성유리는 당연히 아직 그 라이터를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라이터를 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고 정신병자를 보는듯한 눈빛으로 박한빈을 쳐다보고는 방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한빈은 성유리의 뒤를 조용히 따라갔고 그녀가 화장실로 향할 때도 여전히 뒤에 서 있었다. 성유리는 그런 박한빈을 더는 참아주지 못하겠는지 결국 먼저 말했다. “진짜 머리에 총 맞았어요? 왜 이래요? 저 지금 화장실 갈 거라고요.” “괜찮아. 네 몸 어느 한 부분도 내가 키스하지 않은 데가 없잖아.” 그의 말에 성유리는 옆에 놓인 수건을 들어 박한빈에게 뿌렸다. 박한빈은 재빨리 성유리가 던진 수건을 낚아챘고 그 기회를 틈타 성유
Read more

제254화

박한빈의 무슨 대답을 했는지 성유리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에 결국 박한빈이 자신의 욕망을 참지 못해 두 사람은 위치를 바꾸었고 아침에 있던 회의는 정말로 참석하지 못했다. 성유리가 회사에 도착했을 때, 정민재가 다가와 회의가 늦춰졌다고 알려줬다. 그녀는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당황하지 않았고 정민재는 이내 다른 업무의 일정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민재의 두 눈은 끝없이 성유리를 아래위로 훑어보고 있었고 그녀는 그의 시선에 불쾌해져 미간을 찌푸렸다. 성유리가 화를 내려는 순간, 정민재는 성유리의 귀에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컨실러 하나 준비해 드릴까요?” 정민재의 말에 성유리는 깜짝 놀랐고 빠르게 자신의 모습을 훑어보았다. 그리고 이내 옷깃에 남은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손으로 가린 후, 핸드폰을 꺼내 문자를 보내려고 하였다. [정말 개가 되시려고 이러시는 거예요?] 성유리는 입력한 문자를 보내려고 했지만 망설이다 결국 지워버렸고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는 옷깃을 정리했다. 정민재는 어디론가 빠르게 향하더니 컨실러 하나를 사와 성유리에게 건네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여자 친구한테 물어봤더니 이게 제일 효과가 좋다고 하더라고요.” 성유리는 신경 쓰지 않는척 하며 정민재가 건네는 컨실러를 건네받았다. “저 방금 되게 흥미로운 소식 하나 접해 들었습니다.” 정민재가 반짝이는 눈으로 성유리를 쳐다보며 다시 말했다. “뭔데요?” “배지수 씨가 박 대표님이랑 헤어졌다고 선언했더라고요? 지금 인터넷에 난리가 났습니다.” “그래요?” 성유리는 전혀 놀라지 않았기에 평온한 표정으로 대답했지만 정민재는 순간 입을 꾹 닫아버렸다. 한참을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정민재를 발견한 성유리는 손에 있던 문서를 그에게 휙 던지며 말했다. “하실 말씀 있으시면 말하세요. 그렇게 자꾸 쳐다만 보고 있으면 잘라 버릴 거예요.” “쯧쯧. 이제 좀 급해 나시는 모양입니다?” 정민재는 씩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Read more

제255화

“할 일이 없으신가요? 아니면 너무 적나?” 성유리가 굳은 표정으로 정민재에게 물었다. 그러자 정민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건을 챙기고는 밖으로 나갔다. 성유리는 그런 정민재에게 시선 한번 주지도 않은 채 컴퓨터 앞에 마주 앉았지만 업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성유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고 사무실 입구까지 걸어갔다. 걸어가는 도중 점차 복잡했던 머릿속이 정리되었고 침착해져 성유리는 다시 의자로 돌아가 업무를 계속 보기 시작했다. 해가 어둑어둑한 저녁,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함께 밥을 먹겠냐고 묻는 문자를 보내왔다. 성유리가 답장이 없자 박한빈은 두 통의 문자를 더 보내다가 마지막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저는 아직 일이 있어서요.” 성유리가 대답했다. “무슨 일? 야근이야? 그래도 밥은 먹...” “저는 정우랑 밥 약속이 있어요.”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먼저 입을 뗐다. 수화기 너머 박한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고 성유리는 하루 종일 답답하던 가슴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다른 말은 하지도 않고 바로 통화를 끝냈다. 사실 성유리는 오늘 정말 연정우와의 약속이 있었던 터라 일부로 박한빈을 골탕 먹이려는 속셈은 아니었다. 어젯밤 통화를 한 두 사람이지만 나중에 발생한 일들은 연정우는 아직 모르는 것 같았다. 그래도 같이 “일”을 하는 사이기에 성유리는 자신의 지금 상황을 연정우에게 말해줬다. “그래서?” 연정우는 피식 웃으며 계속 물었다. “이제 우리 둘의 관계를 끝내겠다는 말이야?” “끝내고 싶어?” 성유리가 되물었다. 연정우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물음에 잠시 당황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난 아직 그 사람이랑 공식적인 사이가 아니야. 공식적으로 공개할 생각도 없고. 그래서 우리 사이에 있는 계약은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을 거야.” 성유리의 말을 들은 연정우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 연정우가 화가 났다고 확신한 성유리는 자신이 규칙을 위반했기에 마땅
Read more

제256화

성유리가 드림 타운에 도착했을 때에도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그녀는 당연하게도 박한빈이 이미 떠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스위치를 켜려는 순간, 박한빈의 목소리가 들렸다. “왔어?” 깜짝 놀란 성유리가 펄쩍 뛰며 스위치를 눌렀다. 그러자 거실은 빠르게 환해졌고 성유리는 소파에 앉아 자신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있는 박한빈을 발견했다. “오늘 밤엔 어디 갔었어? 재밌었나?”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에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되물었다. “왜 아직도 안 가셨어요?” “난 내 짐까지 다 갖고 왔는데 나더러 어디로 가라는 말이지?” 박한빈의 대답에 성유리는 그제야 그의 앞에 놓인 커다란 두 개의 캐리어를 발견했다. “누... 누가 당신한테 오라고 했는데요?” 성유리의 물음에 박한빈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성유리는 짧은 순간이지만 박한빈이 조금 안쓰러워 보였다.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잠시, 성유리는 정신을 다잡았다. ‘진짜 미쳤나 봐. 왜 박한빈 씨가 불쌍해 보이지?’ 성유리는 박한빈과 더 상대하기 싫어 손님이 묵는 방을 손으로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짐은 다 저 안에 놓으세요.” 말을 마친 그녀는 자기 방으로 향하려고 발걸음을 옮겼고 박한빈은 조용히 성유리의 뒤를 따랐다. “뭐 하시려고요?” 성유리는 발걸음을 멈추며 뒤돌아 박한빈을 잔뜩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위 아플 때 먹는 약 있어?” 박한빈이 자신의 위를 손으로 어루만지며 계속 말했다. “저녁을 안 먹었더니 지금 위가 좀 아프네.” 성유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대답했다. “배달시키세요, 요즘은 약도 배달해 주니까.” “난 할 줄 모르는데.” “그럼 비서님한테 사다 달라고 하시던가요.” 단호한 말투로 말을 하던 성유리는 방으로 들어가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박한빈은 앞에 있는 성유리의 방문을 묵묵히 쳐다보다 갑자기 빠르게 변해버린 사람들의 생활방식이 싫어졌다. 예를 들어 지금 같은 상황에 박한빈은 급하지 않았으니 사실 약을 배달로 시킬 필요
Read more

제257화

욕실 밖으로 쫓겨난 박한빈의 손에는 여전히 성유리가 던진 수건이 들려 있었다. 수건에서 나는 은은한 향기와 성유리의 화난 모습이 떠오른 박한빈은 웃음이 새어 나왔고 밖으로 발길을 돌렸다. 박한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성유리는 더 씻을 마음도 없어져 대충 물로 헹구고 난 뒤. 욕실 가운을 입고 나왔다. 성유리는 박한빈이 아직도 방에 있는 것을 발견했고 그의 발 옆에 놓인 두 개의 캐리어에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안색은 어두워지기 시작했고 뭐라 화를 내기도 전, 박한빈이 먼저 말을 꺼냈다.“저 방에 다른 물건들이 많아서 짐을 놓을 데가 없어.” 성유리는 순간 연정우가 이 집에서 짐을 뺄 때, 놓고 간 물건들이 떠올라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 방으로 향해 연정우의 짐을 가지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박한빈은 성유리의 앞을 가로막아 서며 다시 말했다. “그 물건들 다 어디 갖다 놓으려고?” “당연히 제 방이죠. 쓸데없이 이런 건 왜 묻죠?” “안 돼.” 박한빈은 망설이지도 않고 안 된다며 딱 잘라 대답했다. “아니면 내 짐이랑 네 짐을 같이 놓을까?” 박한빈의 물음에 성유리는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지금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잊지 마세요. 지금 연정우 씨야말로 제 남자 친구고 제 애인이에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입을 꾹 닫았다. 그녀는 박한빈이 자신의 말에 전처럼 노발대발 화를 내며 날뛰겠다고 예상했다. 필경 지금까지 박한빈은 성유리에게 미친개 같은 모습도 보여줬었기 때문이다. 성유리의 기억 속, 박한빈은 늘 잔인하고 악랄하고 정신 나간 사람이었다. 그러나 성유리의 예상과는 달리 박한빈은 조용히 성유리를 쳐다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하긴.”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캐리어를 들고 손님방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성유리는 덤덤한 박한빈의 모습에 당황했다. 이내 앞으로 걸어가던 박한빈이 발걸음을 멈추더니 고개를 돌려 성유리에게 물었다. “여기 주소는 어떻게 써야 돼? 약 사야
Read more

제258화

커다란 냄비에 담긴 면들은 양이 많을 뿐만 아니라 맛도 너무 없었다. 성유리는 지금까지 살면서 이 정도로 맛없는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 무척이나 당황했다. 결국 성유리는 몸을 일으켜 직접 박한빈에게 다시 면을 끓여주기를 선택했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다시 요리를 하는 와중에도 계속 그녀의 곁에 서 있었다. 성유리가 입을 열어 박한빈에게 나가서 기다리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박한빈은 마치 성유리의 생각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듯 먼저 말을 꺼냈다. “옆에서 좀 봐두려고. 어떻게 만드는지는 알아야지.” “박 대표님, 이런 일은 대표님 신분에 어울리지 않아요.” 성유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께서 원하신다면 이런 음식을 해줄 여자는 널리고 널렸잖아요.” “나도 알아.” 박한빈은 성유리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대답했다. 성유리는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끓인 면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는 뒤돌아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오늘 밤에 연정우 씨랑 말은 했어?” 박한빈이 뒤돌아있는 성유리에게 물었다. “우리 둘 사이 말이야.” “네.” “된대?” “네.” 성유리의 박한빈이 귀찮은 듯 대충 대답을 해줬고 그는 더 이상 뭐라고 말을 걸지 몰랐다. 그녀는 이내 자기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고 박한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지만 몸을 돌려 식탁 위에 있는 면을 본 순간, 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아직 자기에게 앙금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필경 전에 박한빈이 늘 성유리에게 상처를 주고 아프게 만들었으니까. 성유리가 박한빈에게 서운해하고 화를 내는 이유 또한 그녀가 박한빈을 신경 쓰고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박한빈은 성유리가 자신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보다 그녀가 화를 내며 자신을 원망하는 것이 더 나았다. 지금 두 사람이 놓인 처지는 그냥 잠시일 뿐이라고 생각한 박한빈은 사냥감을 손에 넣으려면 천천히 다가가야 한다고 자신을 세뇌했다. 이 넓은 “초원”에서 “사냥감”에게 함부로 다가갔다가는 큰
Read more

제259화

“성 대표님?”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 있는 성유리를 보던 정민재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그의 목소리에 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 듯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당연히 되죠. 박 대표님께서 수고하셨겠어요.” “다 같이 일하는 처지인데 이 정도야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박한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성유리에게 악수를 청했다. 회의실 안에 있던 사람들의 눈에 박한빈은 여전히 만인의 부러움과 질투를 사는 능력자로 보였으니 성유리는 그와 악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박한빈과 손을 맞잡은 순간, 성유리는 아무도 몰래 그의 손을 꽉 쥐었고 손톱으로 손바닥을 할퀴기까지 했다. 성유리는 분명히 박한빈이 고통을 느껴 표정이 일그러지는 것을 봤지만 짧은 인사를 마치고는 뒤돌아 나가버렸다. 박한빈이 말한 조영준은 연성 은행계의 큰 인물이었고 성유리로 놓고 말하면 직접 은행으로 향해 업무를 본다고 해도 조영준을 마주칠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박한빈은 달랐다. 성유리는 박한빈이 조영준과 이번에 처음으로 손을 맞잡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사이는 꽤 좋다고 예상했다. 그래서 이번에 박한빈이 특별히 자신을 불러 조항정에게 소개를 시켜주고 도와주려고 한다는 사실을 성유리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저녁 시간이 다가올 때쯤 박한빈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박한빈은 성유리를 식당까지 데려다주겠다는 말과 상대에게 특별히 성유리 혼자만을 만나라고 부탁했다는 말을 해줬다. 성유리는 예상했던 일이기에 식당으로 가겠다고 했지만 기어코 혼자 운전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박한빈은 그런 성유리를 존중해주며 식당 위치를 찾기 힘들 테니 자신의 차 뒤를 바짝 따라오라고 말했다. 성유리는 아직 전에 박한빈이 술자리에 연성의 길에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다고 말을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역시나 박한빈은 오늘 성유리가 뒤에 따라오고 있지만 이리저리 길을 헤매며 도통 식당으로 도착하지 못했고 성유리마저 이곳이 어딘지 몰
Read more

제260화

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만약 진짜로 그가 성유리를 많이 챙겨주는 말을 꺼냈다 해도 성유리의 짧은 한마디는 박한빈을 밤새 뒤척이게 할 수 있었다. 박한빈의 이런 모습을 상상만 하기만 해도 성유리는 기뻐할 것이 뻔했다. 성유리는 비록 자신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와도 같기에 박한빈의 가슴에 꽂힌다면 그가 아파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성유리 또한 전에 이미 많은 상처를 받았기에 가슴에서 “피”가 멈추지를 않았었다. 그래서 성유리는 지금 자신보다 박한빈이 더 아파하기를 바랐고 고통에 몸부림치기를 원했다. 돌담길은 생각보다 더 걷기가 어려웠고 성유리는 자신의 발뒤꿈치에서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성유리는 하이힐을 신은 채로 뚜벅뚜벅 앞으로 나아갔고 박한빈은 그녀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비록 시골집이지만 안에 인테리어는 도시 부럽지 않은 고풍스러웠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성유리는 벽에 걸려있는 그림 두 폭을 발견했다. 그림에 박혀있는 익숙한 도장을 본 성유리는 그 그림들이 안 작가의 작품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직원은 두 사람을 조용한 방으로 안내해 주며 이 식당을 간단하게 소개해 줬다. 식당에서 들여오는 모든 식재는 다 뒷산에 있는 양식장에서 생산한 것이고 해산물이든 육류든 불문하고 현장에서 직접 잡아 신선한 상태를 유지한다고 말했다. 직원은 또 만약 손님이 원한다면 뒷산으로 직접 가서 먹을 식재료를 선택해도 된다고 말을 덧붙였다. “저기 있는 오리나 닭들 다 인삼을 먹으면서 큰 애들입니다. 정말 맛이 뛰어나죠.” 성유리는 인삼을 먹고 자란 닭들은 어느 정도로 맛이 좋은지는 몰랐지만 직원의 소개를 들으면 들을수록 식당 이름이 어딘가 이상했다. ‘닭들이 인삼을 먹고 자란다고? 그럼 이게 어떻게 시골집이야?’ 직원의 소개를 들으며 걷다 보니 어느새 방 입구까지 도착한 두 사람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조영준을 발견했다. 조영준은 혼자가 아니었는데 그의 옆에
Read more
PREV
1
...
2425262728
...
31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