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한빈은 오늘 확실히 술을 평소보다 더 많이 마셨었다. 성유리 쪽에서 나온 다음 바로 다른 술집으로 향한 박한빈은 구체적으로 자신이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조차 못 했다. 하지만 배지수가 박한빈의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는 누구보다 더 정신이 말짱했다. 박한빈은 서훈에게 전화를 걸어 박한빈과 배지수의 일을 잘 처리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지화그룹의 일은 이제 거의 끝을 향해 달리고 있으니 배지수라는 “방패”는 필요하지 않아졌다. 그리고 또 하나, 배지수의 두 눈과 마주쳤을 때 박한빈은 점점 머릿속에 정확한 답안이 떠올랐다. 배지수는 성유리가 절대로 될 수도 없고 그녀를 대체할 수도 없다는 것이 바로 그 답안이다. 그래서 박한빈은 다시 돌아오기를 선택했다.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미쳤다고 말을 했지만 사실 그 또한 자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미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성유리가 제시한 조건들을 망설임도 없이 동의하겠는가? 성유리가 자신을 망치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박한빈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성유리가 이런 방식으로 자신을 밀어내려 하는 것은 아닌지, 왜 이렇게 매정하게 대하는지 말이다. 아마 성유리가 아직 자신에게 감정이 남아있어 더는 흔들리지 않기 위해 냉정한 태도를 유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한빈은 그런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때마다 이런 자신이 너무 초라해 보이고 웃겼다. 하지만 박한빈은 정신을 다잡아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의 몸 안에서 또 다른 박한빈이 나타나 그러면 안 된다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외침에 박한빈의 또 다른 목소리는 알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박한빈은 서서히 감았던 눈을 떴다. 방안에 에어컨은 낮은 온도로 틀어져 있어 박한빈은 추워서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이내 박한빈은 왜 이렇게 춥다고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침대에 나 혼자 누워있네?’ 박한빈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맨발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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