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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장군 황후의 모든 챕터: 챕터 401 - 챕터 410

711 챕터

제401화

한참 후.목욕을 마친 소욱이 돌아왔다.그는 침상으로 다가가서 근엄한 얼굴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봉구안은 고개를 들고 잠옷만 입은 채 머리를 풀어헤치고 매혹적이면서도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황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언제 화를 낼지 모르는 성미라 봉구안은 경계심을 바짝 세울 수밖에 없었다.곧이어 소욱이 침상에 앉았다.그는 싸늘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하고 있었다.그가 입을 열지 않으니 봉구안도 혹시 그의 심기를 거스를까, 침묵을 유지했다.침전 안은 마치 폭풍우가 몰아치기 전처럼 긴장감 충만한 분위기가 넘쳐흘렀다.사내가 빤히 쳐다보고 있으니 봉구안이 아무리 침착함을 유지하려고 해도 시선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그녀는 직설적인 대화방식을 선호했다.궁금한 게 있다면 그냥 물어보면 될 일이었다.갑자기, 소욱이 자세를 낮춰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그녀는 숨을 멈추고 그를 빤히 응시했다. 사내는 신발 안쪽에서 날카로운 비수를 꺼내더니 그녀의 손을 묶고 있던 속박을 풀어주었다.곧이어 그의 싸늘한 목소리가 이어졌다.“짐은 너에 대해 참을만큼 참았다고 생각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솔직히 자백할 기회를 주지.”봉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갑자기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턱을 치켜올리고 위압감 넘치는 목소리로 말했다.“이번이 마지막이다. 다시 짐에게 거짓말을 고할 시에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봉구안은 이번에는 쉽게 넘어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하물며 그녀가 숨기고 싶다고 하더라도 이미 드러난 진실 앞에 둘러댈 말이 없었다.그녀는 소욱에게 교먹의 만행을 고발했으나 그가 진짜 맹 소장군이 아니란 사실은 고하지 않았다.그런데 오늘 밤 그녀는 맹성주의 신분으로 모습을 드러내면서 교먹이 가짜라는 사실이 드러났으니 전에 모르고 있었다고 해도 앞뒤가 맞지 않았다.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털어놓고 황제의 용서를 구하는 것뿐이었다.그리하여 봉구안은 재삼 고민 끝에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폐하, 저는…”그녀가 입을 열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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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2화

소욱의 마음은 착잡하기 그지없었다.맹교먹이 진짜 맹 소장군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자신이 속았다는 사실에 분노했다.맹교먹이 그를 속였고 그의 황후도 그를 속였다.봉구안은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고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모두 저의 잘못입니다.”탁!소욱은 진술서를 거칠게 책상에 던지고 차갑게 호통쳤다.“당연히 네 잘못이지! 사람을 잘못 보고 우유부단해서 맹교먹에게 기회를 주었어.”“처음에 넌 어떻게든 되돌리려 했겠지. 하지만 사실 상 일은 점점 더 커지는 줄도 모르고! 왜 진작에 짐에게 사실을 고하지 않은 거지?”“네가 진작에 짐에게 말했더라면 짐도 그 여자를 제일 여장군 칭호도 내리지 않았을 것이고 황성 수비사 장군으로 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 와서 맹교먹을 어떻게 처리한단 말이냐!”진실도 중요하지만 황제로서 소욱은 황실의 체면과 조정의 안정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만약 만천하에 맹교먹이 맹성주를 사칭하였다고 공지한다면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게다가 그렇게 되면 그녀를 제일 여장군으로 봉한 소욱도 웃음거리가 되는 것이다.그녀가 하루빨리 진실을 말했더라면 이 모든 참사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봉구안은 침묵을 유지했다.소욱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자리에서 일어선 그가 말했다.“짐이 네 말을 안 믿어줄까 봐, 그래서 봉씨 가문과 맹씨 가문을 벌할까 봐 입을 꾹 닫고 있었던 것 아니냐?”“그래서 만반의 준비를 한 거겠지. 맹건을 위해 면죄부 금패를 손에 넣고 연상마저 궁에서 내보냈으니…”잠시 숨을 고른 그는 더욱 더 싸늘해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네가 짐을 조금이라도 믿었더라면 진작에 끝났을 사건이었다! 넌 그리도 짐을 믿지 못하였단 말이냐!”그녀의 말 한마디면 철저한 수사를 진행했을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굳이 몰래 계획을 세우고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골치덩이를 그에게 던져주었다.봉구안은 그의 질책에 반박의 말을 할 수 없었다.그녀가 그를 믿지 못한 것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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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3화

소욱은 솟구치는 분노를 억제하며 가까스로 무표정을 유지했다.그는 얼음장 같은 눈으로 그녀를 빤히 응시하다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네가 내력을 소실할 위험을 무릅쓰고 짐의 천수독을 해제하고 추석연에서 목숨을 걸고 짐을 위해 화살을 막아준 것도 모두… 맹 소장군이 짐의 충성스러운 신하라서 그랬다는 말이냐?”봉구안은 고개를 숙이고 담담히 답했다.“예.”어차피 그에게 흔들린 적도 없으니 거짓말을 할 이유도 없었다.황궁에 입궁할 때부터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사부는 그녀에게 목표가 정해졌으면 최선을 다해 그것을 향해 달려나가야 하며, 절대 마음을 다른 곳에 분산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특히나 그것이 남녀의 애정이나 우정 같은 거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도 했다.그녀는 그 가르침을 줄곧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그녀의 마음속에 그는 충성을 맹세한 군주였기에 목숨을 걸고 그를 보호하는 것은 그녀의 책임이었다.소욱은 주먹을 꽉 부르쥔 채로 눈앞의 여인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할 수만 있다면 찢어버리고 싶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에게 진실을 강요한 것은 그 자신이었다.이제 와서 진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그녀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었다.그렇다고 이대로 그녀를 놓아주기엔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소욱은 솟구치는 독점욕을 간신히 억제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말했다.“소장군은 역시 짐의 충직한 신하로군. 넌 몇 번이나 짐을 위험에서 구해주었으니 어떤 포상을 내려야 할까?”봉구안은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그녀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황제를 바라보며 말했다.“폐하, 소인은 다른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변방이 안정을 유지하고 평생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바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솔직히 그녀는 자유의 몸을 되찾고 군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소욱이 담담히 말했다.“당연히 그리할 것이야. 하지만 잘한 건 포상을 내릴 것이고 잘못한 건 벌을 받아야 할 것이다.”그는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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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4화

갑자기 봉구안의 앞으로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고개를 들자 소욱의 냉랭한 눈동자가 먼저 보였다.그는 입가에 서늘한 미소를 지은 채, 차갑게 말했다.“이 일을 마무리할 시간을 1년을 주겠다. 1년 동안은 궁에 남아 짐의 황후로 있거라. 지나간 1년 동엔 네가 황후로서 소임을 다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좋겠구나. 그리고 맹교먹이 이렇게 큰 사고를 저지르고 다녔는데 너는 진실을 숨겼지. 그러니 이 사건에는 전적으로 너의 책임이 크다. 시국이 안정될 때까진 황후로서 소임을 다하거라.”“짐의 결정에 이의 있느냐?”봉구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아직도 1년을 더 궁에 있어야 한다니!그녀가 본능적으로 보인 거부감이 소욱은 기분이 나빴다.그는 싸늘하게 식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그리고 봉가와 맹가에서 군주를 기만한 죄는 사하여 줄 것이다. 맹 소장군, 네가 신분을 숨기고 봉장미 대신 입궁한 일을 아는 사람이 맹건 한 사람이 절대 아닐 것이다.”“그러니 면죄부 금패 하나론 부족하지.”그는 아주 여유롭게 그녀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봉구안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그 모습을 지켜보는 소욱의 짜증도 커져만 갔다.그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재촉했다.“빨리 결정을 내리는 게 좋을 거다. 짐은 매 순간 지금처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야.”“알겠습니다.”봉구안이 단호히 답했다.그녀는 고개를 들고 진지하고 결연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폐하께서도 약조하신 1년 기일을 지켜줬으면 합니다.”소욱은 긴장했던 마음이 잠깐 풀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겉으로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그녀의 성격에 무조건 승낙할 것을 알고 있었다.사람들이 말하는 맹 소장군은 시작한 일을 중도에 그만두는 일이 없는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다.그리고 주변 사람들을 아끼고 정이 많기로 소문이 났다.좋은 품성이긴 하지만 그랬기에 누군가의 이용을 당하기도 쉬웠다.군주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우는 일이 언제 어디서나 사람의 마음을 예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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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5화

봉구안은 그제야 그 계약서에 큰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하지만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여주고 싶지는 않았다.“폐하, 계약서에 그런 내용은….”“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소욱은 단호히 그녀의 말을 잘랐다.중대사안이라 봉구안은 모른 척하고 넘길 수 없었다.그녀는 정색하고 뒤로 한걸음 물러서서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폐하, 저에게 폐하는 항상 제가 모셔야 하는 군주였습니다. 제가 궁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를 명확히 말해 주셨고 계약서까지 써주셨으니 제가 폐하를 부군으로 대하지 못하는 것을 양해해 주십시오.”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다가올 여지를 남겨주고 싶지 않았다.소욱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다가 천천히 한숨을 내쉬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왔다.“짐도 너를 처로 대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맹 소장군. 단지 사람들 앞에서 허점을 보이고 싶지 않을 뿐이다. 적어도 궁에 있는 기간 동안은 그래야 하지 않겠느냐?”봉구안은 한참 침묵을 유지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예, 알겠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제 본분을 다하겠습니다.”그녀의 숨은 뜻은 지금은 둘만 있는 공간이고 그를 부군으로 섬기지 않겠다는 뜻이 숨어 있었다.소욱은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그는 솟구치는 욕구를 억누른 채, 침전으로 들어가며 말했다.“한 시진 후에 영화궁으로 돌아가거라.”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예.”사람들에게 황후가 승은을 입었다는 착각을 심어주기 위함일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소용없는 짓이었다.한 시진 후, 봉구안은 영화궁으로 돌아가 내전에 있는 궁인들을 물렸다.촛불 아래에서 그녀는 계약서를 펴놓고 자세히 읽기 시작했다.황후로 1년 이상 지내는 동안 그녀는 소임을 다하지 못했기에 1년의 약속기간을 정하며, 1년 기한이 끝난 후 봉가와 맹가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내용이었다.봉구안의 눈빛이 갑자기 차가워졌다.쾅!그녀는 저도 모르게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쳤다.그녀는 감정 조절에 뛰어난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화를 전혀 내지 않는 사람인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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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6화

소욱은 안으로 들어온 후, 장공주를 보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는 장공주 역시 황후의 신분을 의심해서 추궁하러 왔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폐하, 벌써 조회가 끝난 것입니까?”장공주가 속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누님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그는 어젯밤 맹교먹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자신을 협박하던 누이의 모습을 잊을 수 없었다.참으로 아둔한 행위였다.장공주는 소욱이 보는 앞에서 대놓고 봉구안을 바라보았다.“황후와 단둘이 할 얘기가 있었는데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폐하께서 납셨지 뭡니까.”소욱은 싸늘하게 식은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그럼 짐이 자리를 비켜줘야 한단 말입니까?”그의 말투에서는 은근한 적의가 풍겼다.장공주는 왜 황제가 자신을 이토록 경계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하지만 모든 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고 맹 소장군의 진실도 천천히 시간을 두고 조사할 것이다.장공주는 봉구안에게 예를 행한 뒤에 조금 전보다는 한결 부드러워진 어투로 말했다.“황후마마,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봉구안은 담담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일 뿐, 만류하려고 하지 않았다.장공주가 나간 후, 소욱은 정색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누님은 집요한 사람이니 쉽게 넘기려 하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또 와서 말로 떠볼 수도 있으니 힘들면 짐에게 보내도록 하거라.”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예.”자리에 앉은 소욱이 무심한듯 말했다.“맹교먹이 죽었다는 소식은 이미 퍼져나갔고 짐이 충직한 장수를 죽였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아침 조회에서 대신들이 아주 난리도 아니더군. 특히나 무장들 말이다.”“아마 얼마 안 있어 소식을 접한 북대영에서도 난리가 날 테지.”봉구안은 그의 옆에 앉아 침착하게 답했다.“북대영은 맹건 장군이 계시니 소동을 일으키지 않을 겁니다. 하물며, 장기양이 최근에 수차례 공을 세우고 있고 맹 소장군의 명성을 대체한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장령들 사이에서 여인인 맹 소장군에게 불만이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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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7화

그날 오후, 자녕궁.장공주는 다시 영화궁으로 가려다가 황제가 황후와 함께 출궁했다는 전갈을 받았다.“황후께서 돌아오시면 꼭 나한테 알리거라.”장공주는 싸늘한 목소리로 궁인들에게 지시했다.궁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맹 소장군의 죽음이 황후와 관련이 있는 것일까?그게 아니라면 맹 소장군의 죽음에 애도해야 할 장공주가 급하게 황후를 찾을 이유가 없었다.물론 궁녀는 장공주가 맹교먹의 죽음이 너무 늦어서 자신이 진실을 늦게 알아차렸다고 통탄하고 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었다.“잠깐.”장공주는 뭔가 떠오른 듯 말했다.“창고로 가서 그 팔찌를 가져오너라.”“혹시 맹 소장군을 위해 직접 제작하셨다가 도중에 부러진 그 팔찌 말씀입니까?”장공주는 아련한 표정으로 답했다.“그래, 바로 그것이다.”황궁 밖.황제가 온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능연이는 마치 혼례식을 준비하는 신부처럼 정성들여 자신을 단장했다.하지만 발목 관절이 이미 손상되고 빛도 안 드는 곳에서 오래 생활해서 그런지 왕년의 고혹스러운 눈동자는 혼탁하게 변해 있었다.얼굴도 망가져서 아무리 깨끗이 씻어도 예전의 미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그 잔인한 현실을 늦게 인지한 그녀는 황제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갑자기 두려움이 몰려왔다.그녀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의 얼굴과 메마른 몸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안 돼, 이런 모습으로 폐하를 뵐 수는 없어.“소욱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진한길은 밀실 문앞에 서서 공손히 아뢰었다.“폐하, 능연이는 안에 있습니다.”“들어오지 마세요! 폐하! 제 모습이 너무 추합니다…”능연이의 갈린 목소리가 안에서 들려왔다.과거의 은방울 굴러가는 것 같던 청아한 목소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소욱은 걸음을 멈추고 싸늘한 시선으로 안쪽을 바라보았다.능연이가 현재 어떤 꼴이 되었는지 이미 진한길을 통해 보고받은 바가 있었다.태생이 인정미가 없어서인지, 아니면 능연이가 죽을 죄를 자초해서 그런 건지, 그는 딱히 그녀가 가엾다는 마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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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8화

봉구안은 줄곧 방 밖에서 능연이의 고함을 듣고 있었다.더 이상 듣고 있을 수 없어진 그녀는 스스로 나서기로 했다.능연이는 죽어서도 절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을 인간이었다.처음에는 고생 좀 시키고 그만둘 생각이었는데 지금 보니 능연이를 살려두는 것은 더 큰 화근을 남겨두는 일 같았다.봉구안은 한 사람의 원한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황후의 목소리를 알아들은 능연이가 거칠게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저리 비켜! 폐하랑만 얘기할 거야!”“천한 것, 폐하께 간청드려 널 죽여버릴 거야! 폐하가 싫다고 하시면 내 친히 네 목을 비틀어… 악!”순간 능연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고 가슴에 박힌 단도를 바라보았다.움직임이 너무도 빨라서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칼을 맞아버린 것이다.능연이가 아니라 옆에 있던 소욱과 진한길마저도 봉구안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그녀는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진한길의 앞을 바람처럼 지나쳐 능연이의 가슴에 칼을 꽂아넣었다.진한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황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소욱은 인상을 찌푸리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능연이는 본능에 이끌려 손으로 단도를 잡고 겁에 질린 눈으로 눈앞의 인영을 바라봤다.황후와 흡사한 목소리와 체형을 가진 사람이 눈앞에 있지만 그녀는 지금도 황후가 이렇게 강한 검법을 할 줄 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죽음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그녀는 그제야 정신이 맑아졌다.“너… 누구야!”봉구안의 서늘한 눈에서 살기가 용솟음치고 있었다.그녀는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싸늘한 목소리로 능연이에게 말했다.“기억하거라. 너를 괴롭히고 죽인 건 봉장미의 쌍둥이 언니 봉구안이다. 네가 악귀로 변해 나를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으마.”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녀는 손바닥에 내력을 불어넣어 강하게 밀었고 날카로운 단도는 능연이의 몸을 관통했다.능연이는 충격에 눈을 부릅뜨고 외마디 비명만 질렀다.“봉… 구…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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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9화

소욱은 그녀를 빤히 응시하다가 정색해서 말했다.“왜 짐에게 능연이를 품은 적 있는지 묻지 않았느냐?”다른 건 모를 수 있어도 석녀가 사내와 합방을 할 수 없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봉구안은 솔직히 답했다.“폐하, 그건 저와는 무관한 일입니다.”그의 싸늘한 표정을 보고 그녀는 한마디 덧붙였다.“석녀와 합방을 불가능해도 총애는 줄 수 있지요. 저는 그것에 대해 의심해 본 적 없습니다.”순식간에 소욱의 살기등등한 눈빛이 그녀를 향했다.“남자 행세를 오래 하더니만 남녀 사이의 일에 아주 능통한 모양이군.”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숙였다.“과찬이십니다, 폐하.”소욱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진심으로 칭찬한다고 생각해서 하는 말일까?수상한 침묵이 잠깐 유지되던 와중에 소욱이 말했다.“능연이는 한 번도 시침을 하지 않았다. 귀비로서 대접을 해준 것은 4년 사이 그 여자가 심방혈로 짐의 천수독을 억제해 주었기 때문이다.”봉구안이 놀라는 기색이 없자 소욱은 그제야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다.“너는 진작에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봉구안은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예. 저는 진작부터 능연이의 작용을 알고 있었습니다.”소욱은 그녀가 온갖 심혈을 기울여 그의 독을 해독해 준 이후로 능연이가 유배형에 처해진 경과를 떠올리자 순간 미간이 찌푸려졌다.그는 불쾌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너는 처음에 천수독을 해독하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단번에 짐을 위해 해독을 해주었지. 짐이 완전히 능연이를 버리기를 바라고 한 일이더냐?”봉구안은 그의 예리한 시선을 마주하고 혹시 모를 만일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해 침착하게 답했다.“예. 맞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독을 해제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능연이를 완전히 무너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그게 아니라면 그녀가 내력을 잃을 위험까지 무릅쓰며 해독을 진행할 이유가 없었다.진실을 알게 된 소욱은 벌레를 목에 삼킨 것처럼 기분이 더러웠다.그는 줄곧 그녀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해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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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0화

진한길은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았다.황후가 황제의 허벅지에 앉아 황제의 두 손을 꽉 잡고 황제의 목덜미를 물어뜯고 있었다.‘이 무슨…’진한길이 본능적으로 든 생각은 황제를 호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하지만 고개를 돌린 황후의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기에 그는 소름이 돋았다.그 짧은 순간에 그는 본능적으로 가림막을 다시 내렸다. 살기 위한 생존 본능이었다.그리고 폐하도 즐기고 있었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안했다.‘그래, 그런 걸 거야!’소욱 본인마저도 자신이 한 여인의 손에 이런 자세로 제압을 당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싸늘한 눈으로 눈앞의 여인을 노려보았다.그녀의 머리는 산발이 되어 있었고 입술도 부어 있었다.목에는 그가 남긴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물론 그는 자신의 상대가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고귀한 용포는 잔뜩 구겨져서 흐트러져 있었고 목에도 날카로운 이빨자국이 남았다.그것은 애무의 결과물이 아닌, 맹수 사이에 싸우다 남긴 흔적과 흡사했다.봉구안은 바짝 화가 난 사자처럼 압도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말했다.“아무리 폐하라도 싫다는 사람을 이렇게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전에는 그의 앞에서 신분도 숨겨야 하고 고려할 게 많아서 참을만큼 참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그녀는 전력으로 그에게 반항할 수 있었다.자세만 정확하다면 그를 제압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지금도 그녀가 두 손을 꽉 잡고 있으니 그는 힘을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소욱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지금 내가 너를 강요한다 하였느냐? 하지만 짐이 하고 싶은 것이 어디 고작 이뿐일까!”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바깥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개 같은 황제를 죽이자!”“인정머리도 없는 황제! 맹 소장군을 죽인 복수를 하러 왔다!”“맹 소장군은 북부를 수호한 영웅인데 감히 그런 사람을 죽이다니!”조금 전까지 팽팽하게 대치하던 두 사람은 즉시 입을 다물고 마차 바깥으로 시선을 돌렸다.통나무가 앞길을 막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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