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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201 - Chapter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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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1화

아마 한바탕 울고 나서인지, 가장 힘든 순간은 이미 지나간 듯했다. 실시간 검색어를 보며 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어떻게 터진 거지?’ 유건은 원래부터 조용한 성격이라 그동안 언론에 노출된 횟수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더군다나 이성과 엮인 스캔들은 전무했다. G시에서 고유건 대표는 청렴한 이미지로, 재벌가 남성들의 모범이라 불릴 정도였으니까. 그런데도 이런 기사가 터졌다면, 가능성은 단 하나뿐이었다.즉, 이미 유건의 허락을 받은 상태였다는 것.아니면 누가 감히 고유건의 이름을 함부로 기사화할 수 있겠는가? 이건 유건이 직접 허락하지 않고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즉, 유건은 G시에 대놓고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소미는 ‘고유건의 여자’라고. “하...” 시연은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꽤 낭만적이네.” 진아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시연아, 너 괜찮아?” “응? 뭐가?” 시연은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핸드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망설임 없이 유건을 차단했다. 하지만 진아는 오히려 더욱더 친구를 걱정했다.‘시연이 정말 괜찮은 거 맞을까?’ ...한편, 주지한은 병실로 들어섰다. “형님.” 그는 핸드폰을 유건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걸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젯밤에도 잠을 설친 탓에 유건의 안색은 좋지 않았다. 유건은 인상을 찌푸리며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화면을 확인한 순간, 표정이 단단하게 굳어졌다. 자신과 장소미가 함께 찍힌 사진이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와 있었으니 말이다. 그 사진은 소미가 입덧으로 힘들어하던 날, 유건이 촬영장에 방문했던 그날 찍힌 것이었다. 지한이 입을 열었다. “누군가 일부러 언론을 매수해 이슈를 키운 것 같습니다.” ‘누가 감히 이런 짓을?’ 유건은 얇은 입술을 떼며 단숨에 답을 내렸다. “장소미.” 유건을 아는 사람이라면 함부로 이런 기사를 내지 못했을 터. 이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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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그 여자가 시연이보다 예쁘기라도 해? 아니면 더 다정하고 속이 깊어?” 유건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음은 복잡하기도 하고 무겁기도 했다. “아이고!” 고상훈은 답답한 마음에 지팡이로 바닥을 쿵쿵 내리쳤다. “멍하니 있을 때가 아니야! 당장 실시간 검색어를 내리고, 해명문부터 올려! 너랑 그 딴따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그러다 문득 떠올랐는지 덧붙였다. “잠깐, 시연이는 알고 있냐? 그 아이는 인터넷 서핑을 안 해서 아마 이걸 모를 거야. 만약 알게 됐다면, 네가 잘 달래야 할 거야.” 그러곤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너, 제대로 할 수 있겠냐? 필요하면 내가 직접 나설까?” 유건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하지만 표정은 점점 더 굳어갔다. 손자의 반응 없는 태도에, 고상훈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 “시연이는? 왜 안 보이냐?” “너 아프다고 계속 곁에 있던 애 아니었냐? 같이 있어야 정상인데.” “할아버지.” 유건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그리고 고상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시연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뭐?” “그 애 이미 다 알았나 봐. 화가 많이 났겠구나.” 고상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이마를 짚었고,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 “그 아이, 지금 어디 있냐? 같이 가자. 할아버지가 너 대신 나서서 데리고 오마.” 그러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아버지!” 유건이 손을 뻗어 그를 막았다. “안 가셔도 됩니다.” “뭐라고?” 고상훈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손자를 바라봤다. “네가 당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구나. 이건 네 잘못이야. 잘못했으면 무조건 가서 빌어야지!” 그러나 유건은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짧게 뱉었다. “저랑 시연이는 끝났어요.” 찰나의 정적. 고상훈은 얼어붙은 듯 유건을 바라보았고,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 듯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리고 마치 천둥 같은 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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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병원은 24시간 환하게 빛났지만, 유건의 세상은 어둠뿐이었다. ‘시연이가... 나를 차단했어.’ 순간, 그는 시연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두 사람은 친구도 될 수 없을 거라고. 그리고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설령 마주쳐도, 우린 그냥 남남이라고. 유건의 가슴 한쪽이 휑하게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허공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허전함. 시연은 진짜 자신이 말한 대로 했다. 완벽하게, 단 한 치의 여지도 없이. 유건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지한아.” “네, 형님.” “시연이한테 전화해서 할아버지가 위독하시다고 전해.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신다고.” “알겠습니다.” 지한은 형님이 직접 전화를 걸지 않는 것이 이상했지만, 아무 말 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뚜르르르- 몇 초 후,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지한 씨?]그 순간, 유건의 숨이 턱 막혔다. ‘시연이가... 전화를 받았네.’ 지한은 형님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형수님, 어르신께서 쓰러지셨습니다. 지금 병원에 계십니다. 형수님을 보고 싶어 하시고요.” [할아버지께서요?]순간, 시연이 들고 있던 펜이 툭 떨어졌고, 시연은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왜요? 갑자기요? 많이 안 좋으세요?] “화를 너무 많이 내시는 바람에... 지금 수술실로 들어가셨습니다. 저도 아직 정확한 상태는 잘 모릅니다.” [그렇군요.]“형수님.” 지한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형님의 지시를 떠올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어르신을 뵈러 오실 거죠?” 그쪽에서 짧은 침묵이 흘렀다. “형수님?” 시연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쉬었다. [미안해요, 지한 씨. 갈 시간이 없을 것 같아요.] “네?” [유건 씨가 할아버지를 잘 돌봐 드릴 거라고 믿어요. 그러니까... 저는 갈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형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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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제가 너무 경솔했어요... 할아버지를 위험에 빠뜨렸어요.” 소미는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다. “이제 어떻게 하죠? 제가... 발표라도 해서 해명할까요?” “그럴 필요 없어.” 유건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야. 그대로 두자.” “그대로 두자고요?” 소미는 순간 얼떨떨했다. 확신이 서지 않는 듯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유건은 그녀를 힐끗 보더니 덤덤하게 답했다. “시연이는 이미 우리 집안을 떠났어. 난 소미 씨와 아이에게 책임질 거고.” 소미는 온몸이 떨렸다. 입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놀람과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드디어!’ “진짜예요?” “응.” 유건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상훈의 상태가 좋지 않아서 그는 더 길게 말할 여유도 없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당장 받아들이지 못하실 거야.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천천히 설득해야 해.” “네!” 소미는 눈물을 머금은 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다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 유건은 몸을 돌려 정민환을 불렀다. “네, 형님.” “소미 씨를 데려다줘.” 그렇게 지시한 뒤, 유건은 다시 소미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안해, 난 할아버지를 지켜야 해서 같이 가지 못해.” “괜찮아요.” 소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할아버지를 잘 돌봐 드리세요. 유건 씨 몸도 신경 쓰고요.” “그럼 갈게요. 집에 도착하면 연락할게요.” “그래.” 뒤돌아선 순간, 소미는 벅찬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드디어, 고유건이 내 곁으로 돌아왔어!’ ‘내 것은 결국 내 것이야. 지시연이 아무리 뺏으려고 했어도... 아쉽지만, 능력이 부족했던 거라고!’ ...다음 날. 임진아가 돌아오자마자, 시연은 그녀를 붙잡고 물었다. “어때? 내과 건물에 있는 친구한테 물어봤어?” “응, 걱정하지 마.” 진아가 손가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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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밤 8시가 다 되어갈 무렵, 정민환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시연은 살짝 놀랐다. “여보세요?” [형수님.] 전화기 너머, 민환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지금 SKY 전원주택단지로 가는 중입니다. 집에 계신가요?]시연은 의아했다. “거긴 왜요?” [형님이 시키신 겁니다. 본가에 있던 형수님 짐을 다 정리해서 보내라고 해서요.]‘아, 그렇구나...’시연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어떡하지? 나는 지금 SKY 전원주택단지에 없는데...’“잠깐만요, 지금 집에 없어요.” [괜찮습니다.] 민환은 담담하게 말했다. [기다릴 수 있으니 천천히 오세요. 얼마나 늦든 기다리겠습니다.]‘이렇게 나오면 안 갈 수도 없는데.’시연은 이마를 짚으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요. 지금 갈게요. 그럼 먼저 도착한 사람이 기다리는 걸로 하죠.” [네, 알겠습니다.]전화를 끊은 후, 시연은 급히 가방을 챙겨 SKY 전원주택단지로 향했다.하지만 택시를 부르진 않았는데, 주말이라 도로가 많이 막힐 것 같아서 지하철을 타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그녀가 먼저 도착했다. SKY 전원주택단지는 원래 시연이와 유건의 신혼집이었다. 하지만, 오늘이 처음 오는 날이었다. 출입 카드, 비밀번호, 키, 모두 시연에게 있었다. 시연이 무사히 대문을 열고 들어서자, 민환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집은 꽤 컸다. 2층 반짜리 단독주택, 깔끔하게 정돈된 내부. ‘괜히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건 실례겠지?’그녀는 조심스레 거실 소파에 앉아 민환을 기다렸다. 그 사이, 시연은 핸드폰을 꺼내 임진아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따가 나 좀 데리러 와줘.]짐이 많을 것 같아 혼자 옮기기는 어려울지도 몰랐다. 시연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무심코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한곳에 멈췄다. ‘어? 저게 뭐지?’시연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계단 난간 쪽으로 다가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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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민환은 미소를 지으며 거절했다.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형님 곁을 오래 비울 수 없어서요.” “그래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민환을 배웅한 후, 시연은 문을 닫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휴, 다행이다. 안에서 물 마시겠다고 안 해서...’‘만약 들어왔다면, 내가 이 집에 살지 않는다는 걸 들킬 뻔했어.’ 그녀는 하나씩 캐리어를 열었다. 예상대로였다. 유건이 그녀에게 사줬던 옷, 가방이 모두 들어 있었다. 시연은 별다른 표정 없이 원래 자신의 것만 골라 따로 챙겼다. ‘이게 유난 떠는 건 아니겠지...’ ‘그 사람이 사준 것들은 죄다 비싼 브랜드야.’ ‘하지만 우리는 이미 끝났고, 더 이상 이런 옷을 입고 갈 자리도 없어...’‘이제 다시 예전처럼 검소한 생활로 돌아가야 할 때야.’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진아야.” 시연은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다 왔어?” [야, 빨리 문 열어!] 문을 열자, 임진아뿐만 아니라, 진성빈까지 따라왔다. 시연은 성빈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뭘 그렇게 봐?” 성빈은 못마땅한 듯 퉁명스럽게 말했다. “네 그 조그만 비밀, 대체 언제까지 나한테 숨길 생각이었냐?” 그러면서 시연의 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거 맞지?” “응...” 시연은 살짝 머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건과의 일을 성빈에게 바로 알리지 않은 건, 성빈과 노은범의 관계를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흥.” 성빈은 시연을 쏘아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너 그걸 숨긴다고 숨겨질 줄 알았냐? 은범이 그 자식, 널 얼마나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아?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고.” 그러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됐어, 너희 일은 신경 안 써. 아니, 신경 써봤자 어차피 내가 어찌할 수도 없으니까.” 그 말과 동시에, 그는 묵묵히 짐을 나르기 시작했다. 진아와 시연은 눈이 마주치더니 동시에 웃었다. “성빈 오빠 최고야!” “오늘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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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시연의 등이 순간 굳었다. ‘지동성?!’ ‘왜 여기 있는 거지?’ ‘이제 와서, 우주를 귀찮게 하려는 건가?’ 아무 반응도 없는 우주를 보며, 지동성은 초조해했다. 그는 가져온 간식 봉지에서 막대사탕 하나를 꺼내 흔들었다. “우주야, 이거 봐봐. 네가 좋아하는 사탕이야.” 하지만, 우주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우주야...”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시연은 두 걸음 가까이 다가서며, 비웃듯 말했다. “우주는 낯선 사람이 주는 걸 절대 먹지 않아요.” “내가 어떻게 낯선 사람입니까? 난 우주의...” 말하던 지동성이 멈칫했고, 얼굴이 새하얘졌다. “흥.” 시연은 차갑게 웃으며, 단호하게 못 박았다. “우주가 여기서 몇 년을 살았는지 아세요? 그동안 당신은 몇 번이나 찾아왔는데요? 우주한테 당신은 그냥 낯선 사람이에요.” 지동성의 얼굴빛이 창백해졌다. 그리고 입술을 달싹이며, 애써 변명했다. “그래... 다 아빠가 잘못했다.” ‘뭐?’시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지동성이 사과를? 뭔가 수상해.’ 그녀는 돌려 말할 생각 없이, 바로 물었다. “대체 무슨 꿍꿍이예요?” “뭐...?” 지동성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하.” 시연은 헛웃음을 내뱉었다. “요즘 당신, 너무 이상하잖아요. 나한테 신경 쓰고, 돈도 주고, 이제 와서 우주까지 찾아오고... 목적이 뭡니까?” 두 사람의 시선이 얽혔다. 아버지와 딸이 팽팽히 대치했다.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그러다, 지동성이 힘없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정말 아무 의도 없이 이러는 거라면... 믿을 거니?” “안 믿어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시연은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하지 않을 거면, 나도 더 이상 물어보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다시는 나나 우주 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우리,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그녀는 손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 “나가세요.” “시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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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은범이가 나한테 거짓말했어. 일부러 비용 이야기를 숨긴 거라고.’ ‘아마도, 나 모르게 대신 내주려고 했겠지.’‘그렇다면, 전에 ‘웰스’에서 우주의 심사와 검사를 진행했을 때도 비용이 들었을 거야.’“참나...” 시연은 이마를 짚고 한숨을 내쉬었다. ‘대체 나한테 얼마나 더 많은 빚을 지게 할 생각인 거지?’ ‘어떻게든 정확한 금액을 알아내야 해.’ ‘그 돈은 반드시 은범이에게 갚아 줘야 하니까.’하지만, 그녀는 직접 은범에게 묻기가 망설여져, 우회적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그래서 바로 진성빈에게 전화했다.“성빈아, 나 부탁 하나만 할게.” 그녀는 은범이 대신 돈을 냈다는 사실을 설명했다. “얼마를 쓴 건지 좀 알아봐 줄래?” [하아... 너희 둘 진짜 답 없다.] 성빈은 한숨을 쉬면서도, 결국 받아들였다. [알았어. 내가 물어볼게.]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당연히 성빈일 거라고 생각하며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화면에 뜬 이름은 ‘노은범’이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은범아.” 그 시각, 은범은 회사에서 아직 퇴근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전화를 받으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담배는 그저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시연아, ‘웰스’에서 온 편지 받았구나?] 남자의 목소리가 낮고 차분했다. [근데, 왜 나한테 말 안 하고 직접 연락한 거야?]그렇지 않았다면, 시연이 비용 문제를 알 리가 없었다. [이건 전화로 할 얘기가 아니야. 만나서 얘기하자.]시연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만나자고?’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단순한 만남이 아닐 수도 있어.’ “은범아.” 그녀는 애써 차분하게 말했다. “우리, 만나지 않기로 했잖아.”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었지.] 은범도 부정하지 않았다. [근데, 그땐 내가 피해야 할 이유가 있었지만, 지금도 그럴 필요가 있을까?]남자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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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유건의 얼굴을 몰래 살피던 주지한, 정민환과 정기환은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혀가고 있었다. 그 순간, 유건이 갑자기 팔을 뻗었다. “윽.” 남자의 손이 문에 끼이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흘렸다. “형님!” 지한과 민환이 놀라서 그를 붙잡았다. “뭐든 저희한테 시키세요!” 유건은 끼였던 팔을 가볍게 흔들며, 싸늘한 기운을 내뿜었다. “괜찮아.” 조금 전, 그건 단순한 충동이었다. 그저 시연이 여기 온 이유를 알고 싶었다. ‘밥을 먹으러 온 거겠지? 근데 누구랑?’유건의 가슴 한구석이, 속을 긁어대는 듯한 답답함으로 가득 찼다. ...‘가을’ 프라이빗 룸에서 시연은 은범과 마주 앉았다. 은범은 시연에게 물을 따라주었다. “꿀 레몬차로 바꿔줄까? 아니면 우유?” “아니, 이거면 돼.” 시연은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고, 천천히 마셨다. “음식은 미리 시켜놨는데, 메뉴라도 볼래?” 은범은 그녀보다 먼저 도착해, 시연이 좋아하는 것들로 주문을 마친 상태였다. “뭐든 잘 먹으니까, 괜찮아.” 잔을 내려놓으며, 시연은 본론을 꺼내려 했다. 하지만, 은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웰스’에서 온 편지 가져왔어? 줘 봐.” 그 편지에는 입소 관련 서류가 담겨 있었다. 시연은 입술을 살짝 적시며, 편지를 내밀지 않았다. “은범아, 나는 심사 비용 때문에 널 만나러 온 거야. 도대체 얼마나 나왔어?” 그는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손을 거둬들였다. “그걸 안 주겠다는 건, 우주를 ‘웰스’에 보내지 않겠다는 건가?” 잠시 후, 그녀가 고개를 들어 은범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맑고 단단한 여자의 눈빛. “나는 네 돈으로 우주를 보내고 싶지 않아.” ‘그럴 줄 알았어.’ 노은범은 피식 웃었다. “언제 내가 무상으로 도와주겠다고 했어?” 그녀는 말문이 막혔다. “시연아.” 그가 몸을 살짝 기울이며 부드럽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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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주지한이 차 문을 열었다. 유건이 몸을 숙여 차에 올랐고, 차는 이내 출발했다.전체 과정은 고작 몇 분 남짓.은범은 그 장면을 똑똑히 보았다. ‘분명 고유건이었는데, 왜 그렇게 가버린 거지?’놀란 그는 시연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너희...” ‘이혼할 예정이라고 해도 최소한 인사 정도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은범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그러나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굳이 물을 필요가 없었다.‘이렇게 지내는 게 나한테는 오히려 좋은 일이니까.’“차 왔다.”은범은 미소를 지으며 계단 아래를 가리켰다. “타, 집에 데려다줄게.”...벤틀리 안.유건은 주재호의 전화를 받았다.[고 대표님, 이혼합의서 초안을 준비했습니다. 부속서류인 위자료 합의서도 포함한 것이죠. 지시하신 대로 작성했으니, 전자문서로 보내드릴게요. 확인하시고 수정할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오랜 알고 지낸 사이였기에 유건은 재호를 믿었다. 그래서 굳이 확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안 봐도 돼. 네가 하는 일이면 믿을 수 있으니까.”G시 최고의 변호사를 이혼 서류 작업에 쓰는 것도 어찌 보면 사치였다.[그럼 이대로 진행하겠습니다.]재호도 군말 없이 응했다.[그럼 지시연 씨께 연락해서 서명 일정을 잡겠습니다.]이번엔 유건이 한참을 침묵했다.단정하면서도 냉정한 얼굴 속에, 미세한 갈등이 숨어 있었다.[고 대표님?]“응.”유건은 정신을 가다듬고 무심하게 말했다.“알아서 해.”전화를 끊고 그는 시트를 뒤로 젖혔다.하지만 눈을 감자마자, 유건의 머릿속엔 시연과 은범이 함께 웃으며 이야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둘이... 그렇게 친밀한가?’‘사귀기라도 하는 거야?’‘내가 본 게 저 정도라면, 안 보이는 곳에서는 더한 일도 있었을 건데...’‘혹시... 키스했을까? 같이 잤을까?’사실, 성인 남녀가 키스하든, 함께 밤을 보내든 이상할 것 없는 일이었다.더군다나 은범은 시연의 첫사랑이었으니 말이다.‘생각해 보니, 노은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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