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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의 모든 챕터: 챕터 221 - 챕터 230

242 챕터

제221화

“뭐?” 유건은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바로 얇은 카드 한 장이었다. 그는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듯했다. “당신 카드예요.” 시연이 웃으며 남자의 손에 카드를 쥐여줬다. “진작 돌려주려고 했는데, 요즘엔 다 핸드폰으로 해결하잖아요. 계속 가지고 다니질 않아서... 아까도 또 깜빡할 뻔했네요. 당신이 멀리 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시연은 그 말을 남기고 한 발짝 물러서며 남자의 품에서 벗어났다. 순간, 유건의 표정이 굳었고, 목젖이 크게 움직였다. “급히 뛰어나온 이유가 고작 이거 때문이야?” “네.” 시연은 숨을 가다듬으며 다소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카드를 돌려주는 것뿐이잖아요. 미안하지만, 그 안의 돈을 좀 썼는데, 아직은 갚을 능력이 없어요. 나중에 꼭 갚을게요.” ‘이게 무슨 뜻이지?’ 유건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쓰이는 건 따로 있었다. 시연이 더 이상 자신의 카드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 ‘이 여자, 조금씩 내 세계에서 멀어지고 있어.’ “그럼, 난 수업 준비하러 가볼게요.” 시연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 가요.” 그녀는 뒤돌아서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유건은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고, 손에 쥔 카드를 점점 더 단단하게 쥐었다. 딱!작은 소리와 함께, 얇은 카드가 두 동강 났다. 남자의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필요 없다면, 남겨둘 이유도 없지.’ 그리고 갑자기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듯했다.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주재호였다. “무슨 일이야?” 재호는 순간 말을 멈췄다. ‘아니, 왜 매번 전화 받을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 거야?’ [고 대표님,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전부인 분에 관련된 일이에요.]재호의 목소리에는 의구심과 의심이 뒤섞여 있었다. [자산 이전 서류요. 이제 지시연 씨 서명만 남았는데, 전화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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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그럼, 저쪽 작은 숲으로 갈까?” “그래.” 한낮의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작은 숲에는 사람의 기척이 거의 없었다. 유건은 본론부터 꺼냈다. 남자의 차가운 눈빛이 얼음처럼 서늘하게 빛났다. “왜 SKY 전원주택에 살지 않은 거야? 왜 위자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 거지?” 연이어 쏟아지는 질문들. 그 안에는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시연은 잠시 멈칫하다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 알게 됐군요.” 손목을 살짝 주무르며,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날 병실에서 말했잖아요, 나는 필요 없다고요. 유건 씨가 끝까지 반대했으니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는 더 힘주어 말했다. “난 진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시연아...” “내 말 좀 끝까지 들어줘요.” 시연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유건 씨의 돈, 정말 받을 수 없어요.” “첫째, 우리 사이에는 감정이 없었잖아요. 유건 씨가 날 저버렸다는 것도 말이 안 돼요.” “둘째, 내 아이는 유건 씨의 아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유건 씨한테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어요.”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유건 씨는 내게 빚진 게 없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나를 위하지 않아도 돼요.” 여자의 눈빛은 투명하면서도 차가웠다. 마치 미소를 짓는 듯했지만, 그 안에는 한 줌의 온기도 없었다. 그 순간, 유건은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그는 그 아픔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도 너한테 주고 싶단 말이야.” 시연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나는 유건 씨를 만족시켜 줄 수 없어요.” 유건의 숨이 턱 막혔다. ‘이 여자, 정말... 너무하잖아.’ ‘나의 이 자그마한 마음조차 거절했어.’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오후. 이미 여름의 끝자락,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하고도 상쾌했다.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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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3화

시연이 시선을 돌리자, 장소미가 보였다. “어서 오세요.” 직원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소미는 가방에서 리스트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여기 있는 대로 주세요.” “네, 잠시만요.” 직원은 종이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망설이며 말했다. “다른 건 준비할 수 있는데, 무설탕 찹쌀떡이 다 떨어졌어요. 내일쯤 다시 들어올 것 같습니다.” “떨어졌다고요?” 소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녀는 바로 유리 진열장 안을 확인하더니, 얼마 남지 않은 무설탕 찹쌀떡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 남아 있는 건 뭔데요?” “아...” 직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연을 힐끔 보고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이 손님께서 이미 전부 구매하셨습니다.” “어?” 소미는 그제야 시연을 바라보았고, 이제야 그녀가 있는 걸 알게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였어?” 그녀는 간단히 인사하듯 말하고는, 다시 손을 흔들며 직원에게 명령했다. “무설탕 찹쌀떡은 내 거예요. 들었죠?” 그 말투에는 단 하나의 양보도 없었다.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 순간, 맑은 종소리와 함께 유건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남자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시연이었다. ‘진짜... 이게 무슨 인연이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것도, 두 명이나.’시연이 속으로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유건 씨.” 소미는 반가운 듯 다가가 그의 팔을 살짝 감쌌다. “벌써 왔네요?” “응.” 유건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곧바로 물었다. “살 건 다 샀어?” “아직이요.” 소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른 건 다 샀는데, 무설탕 찹쌀떡이 문제예요. 마지막 남은 걸, 어떤 사람이 원해서 협의 중이거든요.” ‘어떤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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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4화

그 직원은 순간 멍해졌다. ‘고유건...? 고 대표님...?’ ‘고 대표님이 이렇게 큰 손이었다니. 가게 하나를 단번에 사버린다고?’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 대표님!” ...무설탕 찹쌀떡을 사지 못한 시연은 임진아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뒷골목을 지나며 그녀는 길거리 간식 가게에서 대충 이것저것 샀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 하나를 뜯어먹어 보니, 맛이 형편없었다. 그 순간, 시연의 입맛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진아가 챙겨둔 점심이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시연은 한 입도 넘어가지 않았다. 호르몬 때문인지, 단순한 감정 탓인지... 시연은 갑자기 울적해졌다. 이불 위에 털썩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엉엉... 흑...” 진아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다. “시연아, 무슨 일이야?” “진아야...” 시연은 아이처럼 울먹였다. “나, 아무것도 못 먹었어... 어떡하지?” 두 손으로 배를 감싸며 이어서 말했다.“엄마가 이렇게 먹지 못하면, 혹시... 애도 같이 굶어버리는 거 아닐까?” “하...?” 순간, 진아는 걱정하다가도 웃음이 터졌다. “하하! 시연아, 너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그때,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고, 진아는 자연스럽게 대신 받았다. “노은범, 나 진아야.” 찰나의 정적. 그리고 바로 돌아온 질문. [시연이는?] 진아는 스피커폰을 눌렀고, 전화기 너머로 시연의 흐느끼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은범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무슨 일이야? 시연이 왜 울어?] “입덧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었어. 뭐든 먹으면 토해냈거든.” 이제 와서 시연의 상황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 사이에서는 비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진아는 은범의 태도를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너, 시연이를 좋아한다며? 그럼 어떻게든 해결책 좀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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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5화

유건은 시연의 단정한 이목구비를 바라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왜? 먹고 싶어 했잖아.” 비록 함께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그는 시연을 잘 알고 있었다. 시연은 원래 음식에 크게 집착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일부러 과자 가게까지 찾아갔다면, 정말 먹고 싶었던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거절한 이유는 분명했다. 화가 나서 그런 것. 유건도 이해했다. 그녀가 충분히 억울해할 만한 상황이었다. 유건은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게 아려왔다.그래서,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도 화났어? 내가 그때 반반 나누자고 했잖아. 그런데 왜 안 받는 거야?” 시연은 순간 당황하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더니, 갑자기 유건을 노려보았다. “지금 그 말, 일부러 하는 거예요?” 분노가 가득한 여자의 눈빛. “무설탕 찹쌀떡은 내가 먼저 사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당신들이 와서 절반을 가져가려 했잖아요. 그런데도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감격해야 한다는 거예요?” “뭐...?” 유건은 순간 숨이 멎었고, 얼굴이 굳었다.그리고 혀가 살짝 꼬이며 변명하듯 말했다. “나... 난 몰랐어. 네가 먼저 산 건 줄...” 그는 시연과 장소미가 동시에 원한 건 줄 알았다. ‘내가 잘못했네. 그때, 조금만 더 물어봤더라면...’ “그럼, 그때 왜 아무 말도 안 했어?” “네?” 시연이 비웃듯 한쪽 눈썹을 올렸다. “고 대표님이 여자 친구만 감싸면서 사실을 무시하는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니니까요.” 여자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당신이야 재벌이라서 아무렇지도 않겠지만, 나는 그럴 수 없어요. 피하는 게 상책이죠, 안 그래요?” 그 말을 듣고, 유건은 한순간 숨이 막혔지만 반박할 수 없었다. ‘난... 정말 그랬어.’ 손에 든 쇼핑백을 꼭 움켜쥐고, 조심스럽게 시연의 손을 잡으려 했다. “내가 잘못했어. 이거... 갓 만든 거야. 많이 샀으니까 며칠은 먹을 수 있을 거야. 다 먹으면, 또 보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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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6화

“음...” 시연은 코를 살짝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엄청 신 냄새가 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입안 가득 침이 고였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은범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먹고 싶어?” “응.” “자, 아...” 입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짜릿한 신맛이 퍼졌다. 시연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은범이 걱정스레 물었다. “너무 시큼한 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시연은 고개를 연신 저으며 환하게 웃었고,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맛있어! 딱 좋은데? 이거 뭐야?” “매실이야. 술에 살짝 담근 거.” 은범은 이마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잘 먹는다니 다행이네. 여기 과일로 담근 거 더 있어.” 그는 작은 그릇 하나를 꺼냈다. “이제, 죽도 좀 먹어봐.” 윤기 흐르는 찹쌀죽. 은범은 시연이 손쓸 필요 없이, 직접 숟가락을 떠서 입에 가져갔다. “천천히, 꼭꼭 씹고 삼켜. 무리하지 말고.” “알았어.” 다행히도 이번에는 토하지 않았다. 은범은 초조하게 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먹을 만해?” 시연은 잠시 몸 상태를 살폈다. “응, 이상하네... 이번엔 괜찮은 것 같아.” “오...!” 은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그제야 시연은 은범의 이마와 콧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보았다. ‘이 사람, 나를 정말 걱정했구나.’ 세월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온 마음을 다해 시연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었다. 시연은 그렇게 멍하니 자신도 모르게 은범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한참 동안... 은범은 여자의 시선을 느끼고,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내 얼굴을 왜 그렇게 빤히 봐? 너, 나한테 반한 거 아니야?” 순간, 시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당황한 듯 얼른 시선을 돌렸다. “괜히 쑥스러워할 거 없어.” 은범은 다시 죽을 떠서 시연의 입에 가져갔다. 목소리는 한결 부드럽고 나긋나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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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7화

금요일 저녁, 유건은 장소미의 집을 찾았다. 오늘은 그가 소미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식사할 때, 장미리가 남편을 한 번 흘긋 보더니, 자연스럽게 화제를 꺼냈다. “여보, 곧 생일이지 않아요? 정식 생일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칠 순 없잖아요.” “집에서 조용히 보낼지, 아니면 밖에서 할지, 생각해 본 거 있어요?” 분명 유건 앞에서 일부러 꺼낸 말이었다. ‘눈치 있는 사람이면, 이 정도는 알아서 챙기겠지.’ 만약 유건이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이 일은 당연히 그가 맡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지동성 일가는 체면도 세우고, 돈도 절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기대대로, 유건은 장미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 사장님 생신인데, 대충 넘어갈 순 없죠.” 그러고는 덧붙였다. “저를 믿고 맡겨 주시면, 제가 제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그럼 너무 미안하죠.” 장미리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꼬리는 벌써 귀에 걸려 있었다. “맞아요, 괜찮아요.” 지동성도 형식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냥 조용히 지나가도 되는데, 너무 거창하게 할 필요 없어요.” “유건 씨.” 소미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모님께 부담 주는 것 같으니까, 그냥 안 하는 게 어때요?” 그러나, 유건은 미묘하게 눈썹을 올렸다.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지 사장님의 생신 챙기는 정도로, 거창하다고 하긴 어렵죠.” 그 한마디에, 장미리는 더 이상 사양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남편을 쳐다봤다. “그럼... 고 대표님 뜻대로 하는 게 어때요?” “그래도 되는 걸까?” 지동성이 고민하는 척하며 소미를 바라봤다. “그렇게 눈치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새우를 까서, 소미의 그릇에 올려줬다. “큰일도 아닌데,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믿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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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8화

시연이 먹을 수만 있다면, 하늘이든 바다든 은범이 못 갈 곳이 없을 것이었다. 오늘, 시연은 유독 체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은범은 두 시간 동안 차를 몰아, 인근 도시의 체리 농장까지 직접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두 시간을 달려 돌아와, 갓 딴 체리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임진아의 집으로 향했다. “우와!” 진아가 감탄하며 눈을 반짝였다. “완전 신선해!” 알알이 탐스럽고, 붉게 빛나는 체리. 심지어 방울방울 맺힌 이슬까지. 그 광경을 본 시연도 입술을 살짝 벌리고, 꿀꺽 침을 삼켰다. “아하하, 진짜 먹고 싶었구나?” 진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금방 씻어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응.” 시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이 씻은 체리를 가져오자마자, 시연은 한 접시를 금세 비웠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은범은 안심했다.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은 시연은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신경 쓰게 했네.” 은범은 가볍게 웃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든 환영이야. 오히려 더 자주 부탁해 줘.” ‘이 사람, 진짜 못 말려.’ 시연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남자의 시선을 피하자, 볼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진아의 집에서 나온 은범도 기분이 최고조였다. ‘조금 전에... 시연이가 내 앞에서 얼굴을 붉혔어.’ 두 사람의 재회 이후, 시연이 처음으로 은범의 앞에서 수줍음을 보인 순간이었다. ‘드디어, 시연이가 조금씩 마음을 여는 걸까?’ ...병원까지 가는 길. 차가 막히지 않아, 은범은 30분도 안 되어 병원에 도착했다. 오늘은 은범의 어머니 강수희의 병리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수희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버지 노수철은 곁에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지? 이 분위기...?’ 순간, 은범은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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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9화

‘왜 이렇게 말랐지?’ 시연을 안는 순간, 유건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원래도 살이 없는 편이었는데, 며칠 사이에 훨씬 더 수척해졌어.’ ‘하지만, 지금은 이유를 물을 때가 아닌 것 같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부터...’ ‘지금 시연이는 분명히 저혈당인 온 걸 거야.’ 유건은 시연이를 안은 채, 다급하게 물었다. “사탕 있어? 먹었어?” “네...” 시연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살짝 벌려, 혀를 내밀어 보였다. 여자의 혀에는 이미 사탕이 하나 놓여 있었다. ‘사탕을 먹고도 이렇게 힘들다고?’어두워진 얼굴의 유건은 망설임 없이 시연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만둬요...” 시연은 본능적으로 저항했다. “내려놔요.”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힘이 없었다. 여자의 가느다란 저항에, 유건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또 그 얘기를 하려는 거지?” “낯선 사람한테 신세 지고 싶지 않다고?” 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지시연.” 남자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너한테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야? 설령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이렇게 보고만 있진 않을 거라고.” 유건은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너는 사람을 살리면서, 나는 사람을 도울 수도 없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시연은 움찔했다. 그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결국, 그녀도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건은 시연을 차에 태웠다. 행선지는 이전부터 유건이 시연을 위해 예약해 두었던 개인 산부인과 병원이었다. ...시연이 진료를 받고 나서야, 유건은 그녀가 심한 입덧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야윈 거였구나...’ 의사는 간단한 영양제를 처방하며 말했다. “입덧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분처럼 심한 경우에는 영양 수액을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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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0화

“그럼,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 “간호사님, 수액 놔주세요.” 유건은 한발 물러서며, 핸드폰을 꺼내 은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은범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네 번까지. 그는 결국 포기했고, 다시 수액실로 돌아왔다. 그 사이, 간호사는 이미 시연에게 주사를 놓고 있었다. 시연은 조용히 눈을 감고, 수액을 맞고 있었다. 유건이 들어서자, 시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 가려는 거예요?” 유건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못 가.” 그는 핸드폰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너희 ‘은이’가 전화를 안 받더라고.” 시연은 순간 멍해져서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바쁘겠죠.” “응.” 유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액실은 냉방이 켜져 있었고, 침상에는 이불이 없었다. 유건은 입고 있던 정장 외투를 벗어, 시연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좀 불편해도 참아. 네 남자 친구한테 안전하게 넘기기 전까진, 절대 못 가.” 남자의 태도는 변함없이 고집스러웠다. ‘이 남자는 정말로 쉽게 물러나지 않는구나.’ 결국 시연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냥 유건이 없는 것처럼 무시하기로 했다. 그 사이, 유건의 핸드폰이 몇 번 울렸다. 그는 멀리 가지 않고, 시연의 곁에서 전화를 받았다. 실은 유건에게 온 전화는 대부분 주지한이 걸어온 업무 관련 전화였다.“난 못 가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그래, 그렇게 해.” 시연은 눈을 감은 채,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일이 있다면서, 왜 끝까지 여기에 남아 있는 거야?’ ‘나를 쉽게 놓을 수 없다는 건가?’ 시연은 손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첫 번째 수액이 끝날 무렵, 이번엔 은범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유건이 전화를 받자마자, 목소리에서 불쾌감이 묻어났다. “노 사장님, 바쁘셨나 보네요.” 전화기 너머의 은범이 정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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