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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2화

작가: 임공
“그럼, 저쪽 작은 숲으로 갈까?”

“그래.”

한낮의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

작은 숲에는 사람의 기척이 거의 없었다.

유건은 본론부터 꺼냈다.

남자의 차가운 눈빛이 얼음처럼 서늘하게 빛났다.

“왜 SKY 전원주택에 살지 않은 거야? 왜 위자료를 받지 않겠다고 한 거지?”

연이어 쏟아지는 질문들.

그 안에는 깊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시연은 잠시 멈칫하다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다 알게 됐군요.”

손목을 살짝 주무르며, 그녀는 나지막이 말했다.

“그날 병실에서 말했잖아요, 나는 필요 없다고요. 유건 씨가 끝까지 반대했으니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녀는 더 힘주어 말했다.

“난 진짜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요.”

“시연아...”

“내 말 좀 끝까지 들어줘요.”

시연의 속눈썹이 살짝 떨렸다.

“유건 씨의 돈, 정말 받을 수 없어요.”

“첫째, 우리 사이에는 감정이 없었잖아요. 유건 씨가 날 저버렸다는 것도 말이 안 돼요.”

“둘째, 내 아이는 유건 씨의 아이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유건 씨한테 어떤 책임도 의무도 없어요.”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유건 씨는 내게 빚진 게 없어요. 그러니까, 더 이상 나를 위하지 않아도 돼요.”

여자의 눈빛은 투명하면서도 차가웠다. 마치 미소를 짓는 듯했지만, 그 안에는 한 줌의 온기도 없었다.

그 순간, 유건은 심장이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팠다.

“하지만...”

그는 그 아픔을 억누르며 말했다.

“그래도 너한테 주고 싶단 말이야.”

시연이 순간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나는 유건 씨를 만족시켜 줄 수 없어요.”

유건의 숨이 턱 막혔다.

‘이 여자, 정말... 너무하잖아.’

‘나의 이 자그마한 마음조차 거절했어.’

햇살이 눈부시게 비치는 오후.

이미 여름의 끝자락, 불어오는 바람은 선선하고도 상쾌했다.

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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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연이 시선을 돌리자, 장소미가 보였다. “어서 오세요.” 직원이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갔다. “필요한 거 있으세요?” 소미는 가방에서 리스트를 꺼내 직원에게 건넸다. “여기 있는 대로 주세요.” “네, 잠시만요.” 직원은 종이를 확인하다가, 갑자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망설이며 말했다. “다른 건 준비할 수 있는데, 무설탕 찹쌀떡이 다 떨어졌어요. 내일쯤 다시 들어올 것 같습니다.” “떨어졌다고요?” 소미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녀는 바로 유리 진열장 안을 확인하더니, 얼마 남지 않은 무설탕 찹쌀떡을 발견했다. 그리고 가볍게 미간을 찌푸렸다. “저기 남아 있는 건 뭔데요?” “아...” 직원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시연을 힐끔 보고는, 난감한 미소를 지었다. “이 손님께서 이미 전부 구매하셨습니다.” “어?” 소미는 그제야 시연을 바라보았고, 이제야 그녀가 있는 걸 알게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너였어?” 그녀는 간단히 인사하듯 말하고는, 다시 손을 흔들며 직원에게 명령했다. “무설탕 찹쌀떡은 내 거예요. 들었죠?” 그 말투에는 단 하나의 양보도 없었다. 직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 순간, 맑은 종소리와 함께 유건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 남자의 눈에 들어온 건 바로 시연이었다. ‘진짜... 이게 무슨 인연이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것도, 두 명이나.’시연이 속으로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유건 씨.” 소미는 반가운 듯 다가가 그의 팔을 살짝 감쌌다. “벌써 왔네요?” “응.” 유건은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곧바로 물었다. “살 건 다 샀어?” “아직이요.” 소미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다른 건 다 샀는데, 무설탕 찹쌀떡이 문제예요. 마지막 남은 걸, 어떤 사람이 원해서 협의 중이거든요.” ‘어떤 사람?’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24화

    그 직원은 순간 멍해졌다. ‘고유건...? 고 대표님...?’ ‘고 대표님이 이렇게 큰 손이었다니. 가게 하나를 단번에 사버린다고?’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고 대표님!” ...무설탕 찹쌀떡을 사지 못한 시연은 임진아의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뒷골목을 지나며 그녀는 길거리 간식 가게에서 대충 이것저것 샀다. 그러나 집에 도착해 하나를 뜯어먹어 보니, 맛이 형편없었다. 그 순간, 시연의 입맛이 싹 사라졌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진아가 챙겨둔 점심이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시연은 한 입도 넘어가지 않았다. 호르몬 때문인지, 단순한 감정 탓인지... 시연은 갑자기 울적해졌다. 이불 위에 털썩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엉엉... 흑...” 진아가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다. “시연아, 무슨 일이야?” “진아야...” 시연은 아이처럼 울먹였다. “나, 아무것도 못 먹었어... 어떡하지?” 두 손으로 배를 감싸며 이어서 말했다.“엄마가 이렇게 먹지 못하면, 혹시... 애도 같이 굶어버리는 거 아닐까?” “하...?” 순간, 진아는 걱정하다가도 웃음이 터졌다. “하하! 시연아, 너 진짜 너무 귀여운 거 아니야?” 그때, 시연의 핸드폰이 울렸고, 진아는 자연스럽게 대신 받았다. “노은범, 나 진아야.” 찰나의 정적. 그리고 바로 돌아온 질문. [시연이는?] 진아는 스피커폰을 눌렀고, 전화기 너머로 시연의 흐느끼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은범의 목소리가 급해졌다. [무슨 일이야? 시연이 왜 울어?] “입덧 때문에 아무것도 못 먹었어. 뭐든 먹으면 토해냈거든.” 이제 와서 시연의 상황을 숨길 이유는 없었다. 어차피 두 사람 사이에서는 비밀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진아는 은범의 태도를 시험해 보고 싶기도 했다. “너, 시연이를 좋아한다며? 그럼 어떻게든 해결책 좀 찾아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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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26화

    “음...” 시연은 코를 살짝 훌쩍이며 중얼거렸다. “엄청 신 냄새가 나.” 그런데 신기하게도, 입안 가득 침이 고였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은범은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먹고 싶어?” “응.” “자, 아...” 입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짜릿한 신맛이 퍼졌다. 시연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가늘게 떴다. 은범이 걱정스레 물었다. “너무 시큼한 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시연은 고개를 연신 저으며 환하게 웃었고, 눈매가 초승달처럼 휘었다. “맛있어! 딱 좋은데? 이거 뭐야?” “매실이야. 술에 살짝 담근 거.” 은범은 이마를 쓸어 넘기며 말했다. “잘 먹는다니 다행이네. 여기 과일로 담근 거 더 있어.” 그는 작은 그릇 하나를 꺼냈다. “이제, 죽도 좀 먹어봐.” 윤기 흐르는 찹쌀죽. 은범은 시연이 손쓸 필요 없이, 직접 숟가락을 떠서 입에 가져갔다. “천천히, 꼭꼭 씹고 삼켜. 무리하지 말고.” “알았어.” 다행히도 이번에는 토하지 않았다. 은범은 초조하게 시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아? 먹을 만해?” 시연은 잠시 몸 상태를 살폈다. “응, 이상하네... 이번엔 괜찮은 것 같아.” “오...!” 은범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다행이다.” 그제야 시연은 은범의 이마와 콧등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보았다. ‘이 사람, 나를 정말 걱정했구나.’ 세월이 지나도, 그는 여전히 온 마음을 다해 시연을 걱정해 주는 사람이었다. 시연은 그렇게 멍하니 자신도 모르게 은범을 바라보았다. 심지어 한참 동안... 은범은 여자의 시선을 느끼고,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내 얼굴을 왜 그렇게 빤히 봐? 너, 나한테 반한 거 아니야?” 순간, 시연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당황한 듯 얼른 시선을 돌렸다. “괜히 쑥스러워할 거 없어.” 은범은 다시 죽을 떠서 시연의 입에 가져갔다. 목소리는 한결 부드럽고 나긋나긋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27화

    금요일 저녁, 유건은 장소미의 집을 찾았다. 오늘은 그가 소미 가족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날이었다. 식사할 때, 장미리가 남편을 한 번 흘긋 보더니, 자연스럽게 화제를 꺼냈다. “여보, 곧 생일이지 않아요? 정식 생일은 아니지만, 그냥 지나칠 순 없잖아요.” “집에서 조용히 보낼지, 아니면 밖에서 할지, 생각해 본 거 있어요?” 분명 유건 앞에서 일부러 꺼낸 말이었다. ‘눈치 있는 사람이면, 이 정도는 알아서 챙기겠지.’ 만약 유건이 조금이라도 배려한다면? 이 일은 당연히 그가 맡아야 했다. 그렇게 되면, 지동성 일가는 체면도 세우고, 돈도 절약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기대대로, 유건은 장미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는 잠시 침묵하더니, 낮고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지 사장님 생신인데, 대충 넘어갈 순 없죠.” 그러고는 덧붙였다. “저를 믿고 맡겨 주시면, 제가 제대로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그럼 너무 미안하죠.” 장미리는 입으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입꼬리는 벌써 귀에 걸려 있었다. “맞아요, 괜찮아요.” 지동성도 형식적으로 손사래를 쳤다. “그냥 조용히 지나가도 되는데, 너무 거창하게 할 필요 없어요.” “유건 씨.” 소미가 살짝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부모님께 부담 주는 것 같으니까, 그냥 안 하는 게 어때요?” 그러나, 유건은 미묘하게 눈썹을 올렸다. “부담 가질 필요 없어요.” 그리고 덧붙였다. “지 사장님의 생신 챙기는 정도로, 거창하다고 하긴 어렵죠.” 그 한마디에, 장미리는 더 이상 사양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남편을 쳐다봤다. “그럼... 고 대표님 뜻대로 하는 게 어때요?” “그래도 되는 걸까?” 지동성이 고민하는 척하며 소미를 바라봤다. “그렇게 눈치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유건은 아무렇지도 않게 새우를 까서, 소미의 그릇에 올려줬다. “큰일도 아닌데, 제가 알아서 준비하겠습니다. 믿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28화

    시연이 먹을 수만 있다면, 하늘이든 바다든 은범이 못 갈 곳이 없을 것이었다. 오늘, 시연은 유독 체리를 먹고 싶다고 했다. 은범은 두 시간 동안 차를 몰아, 인근 도시의 체리 농장까지 직접 다녀왔다. 그리고 다시 두 시간을 달려 돌아와, 갓 딴 체리를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임진아의 집으로 향했다. “우와!” 진아가 감탄하며 눈을 반짝였다. “완전 신선해!” 알알이 탐스럽고, 붉게 빛나는 체리. 심지어 방울방울 맺힌 이슬까지. 그 광경을 본 시연도 입술을 살짝 벌리고, 꿀꺽 침을 삼켰다. “아하하, 진짜 먹고 싶었구나?” 진아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금방 씻어 올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 “응.” 시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깨끗이 씻은 체리를 가져오자마자, 시연은 한 접시를 금세 비웠다. 그 모습을 보고서야, 은범은 안심했다. 어느 정도 기운을 되찾은 시연은 조금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신경 쓰게 했네.” 은범은 가볍게 웃으며,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언제든 환영이야. 오히려 더 자주 부탁해 줘.” ‘이 사람, 진짜 못 말려.’ 시연은 살짝 고개를 돌렸다.남자의 시선을 피하자, 볼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진아의 집에서 나온 은범도 기분이 최고조였다. ‘조금 전에... 시연이가 내 앞에서 얼굴을 붉혔어.’ 두 사람의 재회 이후, 시연이 처음으로 은범의 앞에서 수줍음을 보인 순간이었다. ‘드디어, 시연이가 조금씩 마음을 여는 걸까?’ ...병원까지 가는 길. 차가 막히지 않아, 은범은 30분도 안 되어 병원에 도착했다. 오늘은 은범의 어머니 강수희의 병리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강수희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아버지 노수철은 곁에서 묵묵히 앉아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뭐지? 이 분위기...?’ 순간, 은범은 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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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이렇게 말랐지?’ 시연을 안는 순간, 유건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원래도 살이 없는 편이었는데, 며칠 사이에 훨씬 더 수척해졌어.’ ‘하지만, 지금은 이유를 물을 때가 아닌 것 같아.’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부터...’ ‘지금 시연이는 분명히 저혈당인 온 걸 거야.’ 유건은 시연이를 안은 채, 다급하게 물었다. “사탕 있어? 먹었어?” “네...” 시연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입을 살짝 벌려, 혀를 내밀어 보였다. 여자의 혀에는 이미 사탕이 하나 놓여 있었다. ‘사탕을 먹고도 이렇게 힘들다고?’어두워진 얼굴의 유건은 망설임 없이 시연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만둬요...” 시연은 본능적으로 저항했다. “내려놔요.” 하지만, 그녀는 너무나도 힘이 없었다. 여자의 가느다란 저항에, 유건은 차가운 웃음을 흘렸다. “또 그 얘기를 하려는 거지?” “낯선 사람한테 신세 지고 싶지 않다고?” 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곧 대답이었다. “지시연.” 남자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너한테 나는, 대체 어떤 사람이야? 설령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어도, 이렇게 보고만 있진 않을 거라고.” 유건은 그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너는 사람을 살리면서, 나는 사람을 도울 수도 없다는 거야?” 그 말을 듣고, 시연은 움찔했다. 그리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결국, 그녀도 더 이상 반항하지 않았다. 그렇게 유건은 시연을 차에 태웠다. 행선지는 이전부터 유건이 시연을 위해 예약해 두었던 개인 산부인과 병원이었다. ...시연이 진료를 받고 나서야, 유건은 그녀가 심한 입덧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렇게 야윈 거였구나...’ 의사는 간단한 영양제를 처방하며 말했다. “입덧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분처럼 심한 경우에는 영양 수액을 맞아야 하는 경우도 있죠.”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0화

    “그럼,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 “간호사님, 수액 놔주세요.” 유건은 한발 물러서며, 핸드폰을 꺼내 은범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은범의 전화가 연결되지 않았다. 한 번, 두 번, 네 번까지. 그는 결국 포기했고, 다시 수액실로 돌아왔다. 그 사이, 간호사는 이미 시연에게 주사를 놓고 있었다. 시연은 조용히 눈을 감고, 수액을 맞고 있었다. 유건이 들어서자, 시연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제 가려는 거예요?” 유건은 짧게 헛웃음을 흘렸다. “미안하지만, 아직은 못 가.” 그는 핸드폰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너희 ‘은이’가 전화를 안 받더라고.” 시연은 순간 멍해져서 입술을 달싹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바쁘겠죠.” “응.” 유건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액실은 냉방이 켜져 있었고, 침상에는 이불이 없었다. 유건은 입고 있던 정장 외투를 벗어, 시연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 “좀 불편해도 참아. 네 남자 친구한테 안전하게 넘기기 전까진, 절대 못 가.” 남자의 태도는 변함없이 고집스러웠다. ‘이 남자는 정말로 쉽게 물러나지 않는구나.’ 결국 시연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았다. 그냥 유건이 없는 것처럼 무시하기로 했다. 그 사이, 유건의 핸드폰이 몇 번 울렸다. 그는 멀리 가지 않고, 시연의 곁에서 전화를 받았다. 실은 유건에게 온 전화는 대부분 주지한이 걸어온 업무 관련 전화였다.“난 못 가니까 네가 알아서 처리해.” “그래, 그렇게 해.” 시연은 눈을 감은 채, 복잡한 마음을 억누르고 있었다. ‘일이 있다면서, 왜 끝까지 여기에 남아 있는 거야?’ ‘나를 쉽게 놓을 수 없다는 건가?’ 시연은 손바닥이 따끔거릴 정도로 손을 꽉 쥐었다.첫 번째 수액이 끝날 무렵, 이번엔 은범의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유건이 전화를 받자마자, 목소리에서 불쾌감이 묻어났다. “노 사장님, 바쁘셨나 보네요.” 전화기 너머의 은범이 정중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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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2화

    문 밖.유건, 은범, 그리고 진주는 침묵 속에 서 있었다.가장 먼저 진주의 핸드폰이 울렸다.“엄마. 네, 이제 끝났어요. 곧 갈게요.”전화를 끊고 나서, 진주는 은범을 바라보았다.“은범아, 우리 엄마가 집에 빨리 들어오래.”하지만 은범은 꿈쩍도 하지 않았고, 말 한마디 없이 굳어 있었다.그는 무조건 시연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작정이었다.진주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그럼 나 먼저 갈게.”“응...”은범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이 순간, 그는 절대 시연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그러나 그때, 은범의 핸드폰이 울렸다.강수희였다.“어머니.”[은범아, 이렇게 늦은 시간까지 진주를 안 데려다준 거니? 서로 친해지는 건 좋지만, 너무 늦으면 진주 부모님이 걱정하실 거야.]은범은 진주를 한 번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강수희의 목소리는 여전히 이어졌다.[이제 늦었으니, 무조건 진주 데려다줘야 해. 알겠지?]이를 악물며, 은범은 짧게 대답했다.“알았어요.”전화를 끊고, 그는 진주를 향해 말했다.“가자, 집까지 데려다줄게.”“어?”진주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놀라며 회의실 문을 가리켰다.“그래도 돼?”“너랑 같이 왔잖아.”은범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연히 너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게 맞지.”시연에게는 나중에 충분히 설명하면 될 일이었다. 그녀는 이성적인 사람이니까.“가자.”“응.”그 모습을 보고 있던 유건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눈빛 가득한 냉소를 띄웠다.‘역시 믿을 수 없는 놈이었어.’그는 긴 다리를 내디뎌 은범의 앞을 가로막았다. 날카롭게 올라간 눈꼬리, 비꼬는 듯한 미소.“어디 가려고?”“고 대표님...”은범이 답하려 했지만, 유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내가 있는 한, 넌 한 발짝도 못 움직여.”은범은 얼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고 대표님, 전 친구를 집에 데려다줘야 합니다.”“헛소리 좀 그만하지 그래?”유건의 분노가 폭발했다. 자신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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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걸음 떨어진 곳.노은범과 하진주가 나란히 서 있었다.그리고 시연과 마주쳤다.“시, 시연아.”은범은 당황해 더듬거렸다.진주는 은범을 한 번 바라보더니 옅게 미소 지었다.“친구야?”“응, 아니... 아니야. 내가 좋아한다던 그 사람이야.”은범은 고개를 끄덕였다가 이내 부정했고, 더 이상 진주를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서둘러 시연에게 다가갔다.그리고 시연을 바라보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이렇게 늦은 시간에, 여긴 웬일이야?” 뜻밖의 조우에 시연은 잠시 놀랐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았다.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교수님이 여기서 회의 중이셔. 놓고 가신 자료를 가져다주러 왔어.”그녀가 유건에게 한 말과 똑같았다.“그렇구나.”은범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시연의 가방을 받으려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이번엔 허공을 잡았다.시연은 재빨리 한 걸음 물러난 것이었다.은범은 순간 멍해졌고,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시연아?”시연은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속엔 명확한 거리감이 담겨 있었다.“교수님이 기다리고 계셔서 먼저 가볼게. 그리고 널 방해하면 안 되잖아.”시연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그들을 지나쳐 걸어가려 했다.은범은 당황했다.시연이 오해했다고 확신했다.“시연아...”“잠시만요.”진주가 갑자기 시연의 앞을 가로막았다.여자의 직감은 빠르다. 이 짧은 순간에도 진주는 분위기를 감지했다.시연과 눈을 마주치며 조용히 말했다.“죄송하지만, 잠깐 제 이야기 좀 들어주시겠어요?”“...”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죄송해요. 시간 없어서요. 비켜주세요.”거절이었다.진주는 순간 당황했지만, 이내 강단 있게 나섰다.그녀는 시연의 팔을 잡았다.“잠깐이면 돼요! 금방 끝날 말이에요.”그녀는 은범을 흘끗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당신이 은범이가 좋아하는 사람이죠? 그런데 오해하신 것 같아요. 저희는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그냥 친구일 뿐이거든요.”“하고 싶으신 말, 다 하신 거예요?”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40화

    유건은 결국 함정에 빠졌다. 재빨리 걸음을 멈추고 시연을 놓아주었다.“배가 어떻게 아파? 심한...”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시연은 몸을 돌려 달아나려 했다.“지시연!”유건은 당황하며 몇 걸음에 따라잡아 그녀를 끌어안았다.시연은 눈을 크게 뜨고 온몸이 얼어붙었다. 뭔가 반응할 새도 없이, 유건의 넓고 따뜻한 손이 여자의 눈을 가렸다.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보지 마.”“뭐를요...?”시연은 놀라며 남자의 손을 잡고 떼어내려 했다.“왜 이러는 건데요? 안 가려도 돼요...”‘안 가리면 어떡하라고?!’유건은 앞쪽을 매섭게 노려보았다.노은범이 하진주에게 자기 재킷을 벗어 걸쳐주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걸 시연이가 본다면 얼마나 상처받을까?’“유건 씨!”시연이 저항하자, 유건은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너, 으음...”시연이 놀라서 입을 열려는 순간, 유건이 그녀를 덮치듯 입을 맞췄다.‘뭐야?!’시연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놔... 윽...”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유건은 더욱 거칠게 여자의 입술을 탐했다.남자의 키스는 점점 깊어졌고, 점점 더 강렬해졌다.시연은 필사적으로 유건의 가슴을 두드렸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라 손을 번쩍 들었다.찰싹!깨끗한 타격음이 울리며 유건의 뺨이 돌아갔다.유건은 순간 멍해졌다. 손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충격받은 표정으로 시연을 바라보았다.“미안해, 나는...”그는 단지 시연이 은범을 보지 못하게 하려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를 키스하고 나서 이성을 잃어버렸다.그녀를 원했고, 가까이하고 싶었으며, 심지어 그녀를 독차지하고 싶었다.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마치 혐오스러운 존재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남자를 노려보며 너무나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우리... 그래도 예전에는 부부였고, 이 사람의 포옹과 키스를 받아들일 이유라도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이제 우리는 이혼을 앞둔 상태잖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9화

    연회장으로 돌아온 유건은 금세 흥미를 잃었다.그는 소미를 한 번 바라보고 나직이 말했다.“가자, 별로 재미없어.”소미는 아무런 이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지만, 유건의 표정이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무슨 일 있어요?”“아니.”유건의 시선이 그녀의 배로 향했다.“너무 늦게 자면 두 사람한테 안 좋잖아.”“네.”소미는 미소를 띠었지만 속으로 불안했다.‘어떡하지? 이 사람, 아이를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지금 뭔가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나중에 크게 곤란해질지도 몰라.’“왜 그래?”유건은 소미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눈치채고 눈을 가늘게 떴다.“몸이 안 좋아?”“아니에요.”소미는 웃으며 얼버무렸다.“그냥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같이 가자.”“괜찮아요...”“아니.”유건은 단호했다. 그녀가 지금 상태에서 혼자 다니는 건 마음이 놓이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는 결국 화장실 입구까지 소미를 데려다주었다.“천천히 다녀와.”“네.”소미는 두려우면서도, 동시에 이 남자가 점점 더 마음에 들었다.‘이렇게 다정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어?’유건은 조금 떨어진 흡연 구역으로 이동했다.담배를 꺼내 들었지만, 불을 붙이기도 전에 시연이 책가방을 메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걸 보았다.‘시연이? 여기 온 이유는 뭘까?시연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결국 유건은 참지 못하고 다가가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뭐 찾는 거야?”“네?”시연이 놀라 돌아보았다.유건을 보자, 그녀는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여기 B동 6층 맞나요?”유건은 여자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했다.“6층은 맞는데, 여긴 B동이 아니라 C동이야.”“아.”시연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두드렸다.“아, 진짜! 또 길을 잘못 들었네요.”“또?”유건은 그녀의 찡그린 얼굴을 보며 무심코 물었다.“길을 자주 잃어버려?”시연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사실, 자주 그런 건 아니었다. 그녀는 원래 방향 감각이 떨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8화

    [알겠습니다, 형님.]전화를 끊자, 소미가 방으로 들어왔다.“유건 씨.”유건은 담배를 비벼 끄고 손을 저었다.“먼저 들어가 있어. 여기 담배 냄새 나.”담배는 임신한 여자에게 좋지 않으니까.“아, 네.”연기가 가라앉은 후, 유건은 문을 열고 들어가 소미가 건넨 물을 받았다.“좀 괜찮아요?”소미가 다정하게 물었다.“네.”유건은 물을 마시고 소파에 기대었다.“너무 많이 마셨나 봐.” 그는 관자놀이를 가볍게 눌렀다.“머리가 좀 아프네. 그래도 잠깐 앉아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제가 마사지해 드릴까요?”소미가 자리에서 일어나 유건의 곁에 앉으며 소매를 걷었다.남자가 거부할 틈도 없이, 그녀는 말했다.“눈 감아요. 우리 아빠가 술 마셨을 때 자주 해드렸어요.”여자의 손끝이 관자놀이를 누르자, 유건은 거부하지 않았다.“고마워.”소미가 잔잔히 웃었다.“저한테 뭘 그렇게 고마워하세요? 제가 유건 씨를 도로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우린, 앞으로 평생 함께할 사이잖아요.”‘그래, 앞으로도 함께할 사람이지.’유건은 속으로 그렇게 되뇌었다. 익숙해져야 했다.소미의 손길이 생각보다 편안해서 그는 점점 나른해졌다.“유건 씨?”그녀가 속삭이듯 부르자, 유건은 반쯤 감긴 눈으로 대답했다.“응...”소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가슴이 뛰었다.‘이건 기회야!’‘내 임신은 거짓말이잖아... 시간을 더 끌면 고유건은 의심할 거고, 배를 감출 수도 없을 거야.’‘그 전에 내가 확실히 해야 해. 이 사람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그녀는 숨을 죽이고 목에서 어깨로 손을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유건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남자의 입술과 단 한 뼘도 남지 않은 거리.하지만, 소미는 남자의 입술이 닿기 직전, 유건의 눈이 번쩍 뜨였다.여자가 너무 가까이 있는 걸 깨닫고, 순간 멈칫했다.“소미 씨?”“유건 씨.”소미는 포기하지 않고 눈을 감았다.“키스해 줘요.”유건은 말이 막혔고, 본능적으로 미간이 좁혀졌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7화

    유건은 회의를 마치고 대표실로 돌아왔다.비서가 다가와 보고했다.“대표님, 장소미 씨가 도착하신 지 좀 되었습니다.”오늘 밤, 유건은 한 연회에 참석해야 했고, 이번엔 소미가 파트너였다.“유건 씨.”소미가 환하게 웃으며 소파에서 일어났다.“그냥 앉아 있어.”유건은 손을 살짝 흔들며 무심하게 말했다.“조애린 씨한테 들었는데, 일을 계속할 생각이야?”“네, 그래요.”소미는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설명했다.“양 감독님의 작품은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게다가, 이미 절반 정도 촬영했거든요. 광고를 비롯한 일정이 과하게 많은 것도 아니고요. 저는 가만히 있는 게 더 싫어요.”잠시 생각하던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소미의 배를 힐끗 바라보았다.“몸에 이상 없으면 소미 씨 뜻대로 해. 다만, 배가...”언젠가는 드러날 것이었다.“아, 아직 문제없어요. 사극이라 의상 때문에 티도 안 나고요.”소미는 오늘 넉넉한 원피스를 입고 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평평한 신발까지 신은 것을 떠올렸다.유건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양 감독님께 소미 씨 촬영 분량을 최대한 빨리 마무리해달라고 이야기해.”“네, 유건 씨 말대로 할게요.”시간이 늦어서 유건은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소미와 함께 대표실을 나섰다....연회는 해성 호텔에서 열렸다.주차장에서, 노은범이 먼저 내려 조수석 문을 열었다.“고마워.”진주가 미소 지으며 차에서 내렸다.은범은 담담히 말했다.“별일 아니야.”그가 어색해하는 모습을 본 하진주는 웃으며 말했다.“너무 긴장하지 마. 우리 약속했잖아? 친구처럼 지내기로.”“알아.”은범은 살짝 찡그렸다.“하지만, 네가 나 때문에 불편해질 수도 있잖아.”“괜찮아.”진주는 고개를 저었다.“이건 너만의 문제가 아니야. 우리 엄마도 연관되어 있으니까.”그녀는 남자의 팔을 자연스럽게 잡았다.“그냥 편하게 가자. 시간이 지나면 부모님들도 우리가 진짜 안 될 거라고 깨달으시겠지.”은범은 한결 편안해졌다.‘나보다도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6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하진주를 힐끗 바라보았다.“내가 보기엔 진주가 참 괜찮은 것 같은데, 정말 아쉬워. 우리 은범이 복이 없는 탓이지, 뭐.”진주는 급히 손사래를 쳤다.“이모, 그런 말씀 마세요. 과찬이세요.”“진주야.”강수희는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진주의 손을 잡으며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지난번에 은범이랑 같이 연극 봤다면서? 그 후로는 어떻게 된 거야? 솔직히 말해 봐. 은범이의 뭐가 마음에 안들었니?”“그게...”진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뭐라고 해야 할까?’지난번에 은범과 미리 조율한 대로, 진주는 연극을 본 후 자기 부모님께 자신이 은범을 향한 마음이 없다고 전했다. 이는 진주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한 거였고, 은범도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예상치 못하게 강수희가 다시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진주는 은범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모, 은범이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다만, 저희는 서로를 잘 모르잖아요...”이 말이 강수희에게 희망을 주고 말았다.“그럼, 좀 더 만나보고 알아가면 되잖아? 제발, 은범이에게 기회를 줘 봐, 응?”“어머니!”은범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다가왔다.그는 먼저 방혜령에게 인사를 건넸다.“이모, 오랜만이네요.”그리고 곧바로 어머니를 향해 얼굴을 찌푸렸다.“어머니, 이모는 어머니를 뵈러 오신 거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내가 이러는 건...”“괜찮아.”방혜령이 손을 흔들며 부드럽게 웃으면서 시선을 은범에게 두었다.“이제 많이 컸네? 그런데 너희 엄마 말도 틀린 건 아닌 것 같아.”그녀는 딸을 한번 흘긋 보며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너희, 한 번 본 걸로 판단하기엔 너무 성급하지 않아? 좀 더 만나면서 알아가는 게 맞지 않나?”강수희가 기뻐하며 맞장구쳤다.“내 말이! 네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구나.”“어머니!”“엄마!”은범과 진주가 동시에 소리쳤다.그 모습을 보고, 방혜령과 강수희는 눈을 마주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5화

    과장실 문 앞에서, 시연은 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형수님.]“지한 씨.”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유건 씨와 잠깐 통화할 수 있을까요?”[당연하죠. 형님도 여기 계세요.]잠시 후, 수화기 너머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야.]유건의 무심한 어조.“심폐 프로젝트팀에 내가 들어가게 된 거, 당신이 한 일이에요?”질문은 직설적이었다. 하지만 만약 그가 개입했다면, 바로 이해할 터였다.잠시 침묵이 흐른 후, 남자의 답이 돌아왔다.[그래.]전혀 놀랍지 않았다. 시연은 눈을 감았지만, 당장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여자의 침묵에, 유건은 비웃듯 말했다.[설마 거절하려는 건 아니겠지? 내가 벌인 일이라는 이유만으로?]시연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다.[멍청하긴...]유건이 낮게 욕했다.[심폐 프로젝트팀에 들어간다는 게 너한테 어떤 의미인지, 내가 설명해야 하냐?]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팀에 들어가면 분명 시연의 수입도 늘어날 테니 말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경험과 기술을 쌓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돈 때문이라면 이렇게 고민할 이유도 없었다.[지시연.]유건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나와 관계를 끊는 게 중요해? 아니면 네 미래가 더 중요해?]책망과 걱정이 섞인 목소리.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시연도 알고 있었다.한참을 망설이다가,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결정을 내렸다.“고마워요, 유건 씨.”유건은 핸드폰을 쥔 채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동시에, 안도감이 밀려왔다.‘다행이네. 이 여자, 결국 받아들였어!’하지만 시연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유건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그리고 그녀는 덧붙였다.“예전엔 내가 잘못했어요. 항상 미안하게 생각해요. 앞으로는 당신이 하는 모든 일이 잘되길 바랄게요.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유건은 한참 동안 핸드폰을 내려다봤다. 그러다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제234화

    ‘원래라면, 저 여자, 부와 명예를 누려야 마땅해. 하지만 지금은...’...차에 돌아온 지한은 유건이 영혼이 빠져나간 듯한 얼굴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즉, 유건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묵직한 어둠과 슬픔을 느낀 것.‘설마, 또 형수님한테 혼난 건가? 그게 아니면, 이번엔 진짜로 맞기라도 한 건가?’“형님...”“지한아.”유건의 시선이 멍하니 허공을 가로질렀다.“방법을 좀 찾아봐. 시연이가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내가 돈을 건네면, 시연이는 절대 받지 않을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연이가 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지 못하는 건 아닐 거야.’ ‘나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시연이가 돈과 명예를 탐하는 여자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거지? 정말 한심해!’...시연은 임진아 집으로 돌아온 뒤, 저녁에 양석현 교수의 전화를 받았다.“교수님.”[시연아, 내일 오전에 내 사무실로 와. 할 말이 있어.]“네, 교수님.”양석현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다음 날 아침, 시연은 교대 근무도 마치지 못한 채 서둘러 외과로 향했다.양석현은 회진을 마친 후에야 시간을 냈고, 시연을 과장실로 데려갔다.“일찍 왔구나. 앉아.”시연은 긴장한 채 자리에 앉았다.“교수님, 무슨 일이신가요?”‘혹시 내가 1학년 실험 수업을 하는 데에 문제가 생긴 걸까?’“뭘 그렇게 긴장해?”양석현은 일부러 뜸을 들이다가도, 결국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은 소식이야.”그는 서랍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내 시연에게 건넸다.“이걸 작성하면, 너는 공식적으로 심폐 프로젝트팀에 들어가게 될 거거든.”시연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믿을 수가 없었다.“교수님, 이게... 정말 규정에 맞는 건가요?”“규정대로라면, 맞지 않지.”양석현이 웃었다.“원래는 네가 대학원에 합격하면 팀에 넣을 생각이었어. 그 자체도 예외적인 거지만 말이야.” 그런데 아직 대학원도 들어가지 않았는데, 어떻게 가능하게 된 걸까?양석현은 더 이상 숨기지 않고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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