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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171 - Chapter 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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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1화

시연이 문을 열고 한 발을 내디뎠다. “지시연.” 뒤에서 유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서늘한 음색, 그 아래 은밀하게 깔린 분노의 기운이 날카롭게 퍼져나갔다.“거기 서.” 시연의 어깨가 순간 움찔했지만 뒤돌아보지 않았고, 자연스럽게 문이 닫혔다. “젠장...” 유건의 날카로운 옆선이 차갑게 굳어졌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 속이 풀리려나?’ ‘끝까지 날 들었다 놨다 해야 직성이 풀리려나?’ ‘미친...’ “유건 씨...” 옆에서 장소미가 얼굴이 창백해진 채 입술을 깨물었고,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미안해요, 다 제 잘못이에요. 제가 괜히 와서... 진 선생님이 오해한 거겠죠? 제가 가서 얘기해 볼까요?” “그럴 필요 없어.” 유건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설명이라니, 그건 지시연이 질투할 때나 필요한 건데, 지시연은 애초에 관심조차 없다고.’‘처음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아니, 어쩌면 내가 장소미랑 엮이길 바라고 있을지도 모르지.’ “그럼...” 소미는 속으로 안도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제가 간병인을 불러서 방을 치우게 하고, 닭곰탕도 다시 떠 올까요?” “그래, 고마워.” 유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여자가 신경 쓰지 않는데, 나도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간병인이 방을 정리했고, 소미가 닭곰탕을 다시 떠 왔다. 유건은 연거푸 두 그릇을 비웠다. 그런데도... 시연은 돌아오지 않았다. ...한편, 시연은 병실을 나와 1층 로비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실험 보고서를 챙겨올걸.’ ‘보고서를 수정하는 게 그냥 멍하니 있는 것보단 나았을 텐데.’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결혼은 했지만, 남편의 여자를 위해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신세라니.’ ‘이혼할 수도 없고, 남편을 비난할 수도 없는 상황...’ 시연의 가슴이 답답했고, 가슴이 점점 더 조여오는 느낌이었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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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2화

그건 고유건의 뼛속까지 새겨진 품성이었다. “시연아...” 진아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속이 미어지는 기분이었다. “미안해, 내가 정말 아무 도움도 못 돼서.” “됐어, 울지 마.” 시연은 웃으며 휴지를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이제 네가 다 알았으니까, 이 일에 대해 성빈이랑 잘 이야기해 봐. 괜히 충동적으로 또 무슨 일을 저지르지 않게.” “걱정하지 마, 잘 말릴게.” 진아는 지난번 진성빈의 일만 떠올려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잘 지켜볼 테니까, 걱정하지 마.” 진아는 시연을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너도 약속해. 앞으로 무슨 일 있으면 혼자 끙끙 앓지 않겠다고.” “응, 약속할게.” 겨우 진아를 달래 눈물을 그치게 한 후, 시연이 말했다. “점심 같이 먹을래?” “응?” 진아는 놀란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시간 있어? 고유건을 안 챙겨도 돼?” “안 챙겨도 돼.” 시연은 장소미를 떠올렸다. ‘아무래도 오늘은 좀 늦게 돌아가는 게 좋겠어.’시연이 진아의 팔을 잡고 가볍게 흔들며 말했다. “가자, 학식 말고 뒷골목에서 먹자.” “좋지!” 진아는 밝게 웃었다. 둘은 뒷골목에서 밥을 먹고, 잠시 쇼핑하다가 오후 세 시가 다 되어 병원으로 돌아갔다. 병동 입구에 들어서면서 시연은 문득 생각했다. ‘장소미는 이제 갔겠지?’ 하지만 예상과 달리, 병실 앞에는 주지한이 초조한 얼굴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형수님, 왜 이제야 오셨어요?!” 시연은 멈칫하며 물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지한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일단 직접 들어가 봐요. 형님이... 아직까지 밥을 안 드셨어요.” “밥을 안 먹었다고요?” 시연은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직접 들어가서 여쭤보세요.” “알겠어요.” 시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병실 문을 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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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3화

이 정도로 티 나는 투정을 시연이 못 알아들을 리 없었다. 단지 그녀는 유건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길이 없었고, 굳이 신경 써서 맞춰 줄 마음도 없었지만, 이 남자를 달래는 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자신도 온종일 불만 가득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시연은 유건을 바라보며 잔잔하게 웃었다. “밥 안 먹으면 안 돼요. 몸 상해요.”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주방 쪽으로 향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 말했다. “죽도 있고, 닭곰탕도 있고, 반찬도 좀 있어요. 데워줄까요?” 유건은 침대에 반쯤 기대앉아 있었지만, 여전히 기분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못마땅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질려서 안 먹고 싶어.” ‘고작 두 끼 먹었을 뿐인데? 역시 까다로운 재벌 도련님...’ 시연은 어쩔 수 없이 물었다. “그럼 뭐 먹고 싶어요?” “나보고 생각하라고?” 유건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반문했다. 그 말투에 시연은 살짝 머쓱해졌다. ‘아, 또 내 잘못이야?’ 유건이 아직 소화하기 힘든 음식은 먹을 수 없는 상태라는 걸 떠올린 시연은 다시 물었다. “그럼... 국수는 어때요? 아니면 만둣국은요?” 유건은 대답하는 대신, 되려 묻는 쪽을 택했다. “너, 밖에서 그렇게 오래 있다 왔는데, 점심은 뭐 먹었어? 누구랑 먹었냐고.” “나요?” 시연은 순간 멍해졌다가 솔직히 답했다. “진아랑 같이 뒷골목에서 국수 한 그릇 먹었어요.” 그제야 유건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다행히 남자랑 있었던 건 아니네.’ 그러고는 콧방귀를 뀌듯 말했다. “나도 국수 먹을래.” 남자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시연은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지한 씨한테 말해서...” “잠깐.” 시연이가 돌아서려던 순간, 유건이는 그녀의 손목이 덥석 잡혔다. 시연은 갸웃하며 물었다. “왜요?” 유건은 마치 멍청이를 보는 것처럼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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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유건은 느릿느릿 젓가락을 집어 들며 참지 못하고 말했다. “간장 좀 넣어봐, 색깔 좀 내게. 그리고 그냥 면만 삶은 거야? 채소는? 계란도 안 넣었어?” “있어요, 다 있어요!” 시연은 눈을 반짝이며 면 그릇을 가리켰다. “다 밑에 있어요. 계란후라이도 있어요.” “오?” 유건은 피식 웃으며 젓가락을 아래로 넣어 건져 올렸다. 채소가 나왔다. 그리고... 그 밑에 있던 계란도. ‘음... 새까맣잖아?’ 유건이 순간 멈칫했다. ‘이건... 탄 거 아닌가?’ “잘 안됐어요.” 시연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조금 탔는데, 한쪽 면은 멀쩡해. 뒤집어서 먹으면 되잖아요...” “하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건은 결국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뭐가 그렇게 웃겨요?” 시연의 볼이 붉어졌다. “그만 웃어요! 뭐가 그렇게 웃기다고 그래요?” “푸흣...!” 남자의 웃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럼 먹지 마요!” 화가 난 시연이 면 그릇을 치우려고 했다. “맛없게 만든 게 내 잘못이에요? 당신이 해달라고 했잖아요!” “이거 놔요.” 유건은 여자의 손목을 가볍게 잡으며 웃음을 거뒀지만, 눈빛에는 여전히 웃음기가 가득했다. “안 먹는다고 한 적 없어. 배고파서 먹을 거야.” 그리고 손가락을 툭, 탁자에 두드렸다. “먹여줘.” 시연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유건을 바라봤다. “진짜 먹을 거예요?” “응.” 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와이프가 해준 건데, 안 먹을 수 있나?’ “그래요...” 시연은 입술을 꾹 다물고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그의 입가에 가져갔다. 유건은 망설임 없이 입을 벌려 한입에 먹었다. “맛있어요?” 시연은 조심스레 물었다가, 살짝 말을 바꿨다. “아니, 먹을 만해요?” “응.” 입에 가득 찬 채로, 그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눈짓으로 계속 먹여달라고 했다. 한 젓가락, 또 한 젓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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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오후 3시. 시연은 병실로 돌아왔다. 4시에 웨딩드레스 치수를 재기로 했으니, 이동 시간을 고려하면 지금이 딱 적당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병실 안은 조용했다. “유건 씨?” 사방을 둘러봤지만, 병실 안에는 유건이 없었다. ‘어디 간 거지? 곧 나가야 하는데...’ 시연은 핸드폰을 집어 들고 유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유건은 장소미의 병실에 있었다. 유건에 비하면 소미의 부상은 훨씬 가벼웠다. 단순한 타박상 정도였고, 오늘 퇴원이 예정되어 있었으니 말이다.다만, 퇴원 전 마지막으로 종합검진을 받았고, 그 결과를 본 후 소미는 유건을 불러들였다.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소미는 말을 마친 뒤, 조금 전까지 울었던 흔적이 남은 붉은 눈가로 남자를 바라보았다. 유건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어 있었다. 한참 동안 침묵하던 유건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왜 이제야 안 거야?” 남자의 목소리는 낮고도 묵직했다. “그게...” 소미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이런 건 처음이라... 그리고 원래 생리가 불규칙했어요. 게다가 요즘 바빴기도 해서... 전혀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아랫배 위에 손을 올렸다. “3개월 됐대요. 그날 밤...” 그 말에 유건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늘이 날 이렇게까지 조롱하는 건가...?’ 그는 이미 결심했었다. 시연과 결혼해서 정식 부부가 되기로. 시연이 가진 아이가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받아들이기로. 그런데 이제 와서...‘장소미가 임신했다고?’ ‘그것도... 3개월...’ ‘로얄호텔에서의 단 한 번으로...’ ‘한쪽은 내 아내. 한쪽은 내 친자식...’ ‘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유건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이마 위로 툭 튀어나온 혈관이 도드라졌다. 태양혈이 욱신거리며 터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다. 그 순간, 핸드폰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에 ‘시연’ 두 글자가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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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6화

“딸.” 장미리는 딸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이렇게 해도 괜찮겠어? 너 정말 임신한 것도 아닌데, 나중에 들통나면 어쩌려고?” “흥.” 소미는 코웃음을 쳤다.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면서도, 그 안에는 단단한 집착이 서려 있었다.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돼요. 적어도 지금, 그 사람은 날 버릴 수 없으니까요. 내 말이 틀렸나요?”“맞아.” 장미리는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다 지시연 때문이야!” 딸의 손을 꼭 잡으며 속상한 듯 말했다. “엄마가 도와줄게. 그 여자가 네 자리를 빼앗으려 한다니, 정말 웃기지도 않아! 이 엄만 절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엄마...” 소미는 창백한 얼굴로 어머니 품에 기댔다. “정말... 이제는 방법이 없어. 나, 정말 고유건을 좋아해.” ‘단순히 남자의 돈과 권력이 아니고, 그 사람 자체를 좋아한다고.’ ‘난 이미 마음속 깊이 고유건이라는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 이젠 그 남자를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아!’‘이생에서, 내가 원하는 남자는 오직 한 사람, 고유건뿐이야!’ ...병실을 나서자마자, 유건은 핸드폰을 꺼내 시연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신호음이 울리더니 이내 통화 중으로 바뀌었다. ‘받지 않는 게 아니라... 통화 중?’ 그는 이를 악물고 전화를 끊었고, 바로 병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병실 문을 열자마자, 시연의 전화 통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유건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집에 간 것도, 일부러 내 전화를 피한 것도 아니었어.’ “응,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 시연은 통화를 마친 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자, 문 앞에 서 있는 유건과 눈이 마주쳤다. “돌아왔네요.” 그녀는 별일 아니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응.” 유건은 곧장 다가가, 여자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 낮고도 깊은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부터 와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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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7화

실험 수업은 45분 만에 끝이 났고, 시연은 수업 시간에 아주 충실한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 끝나고 나니, 머리가 텅 빈 느낌이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장소미가 보내준 사진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눈을 반쯤 감았다. ‘이 사진이 없었으면, 나는 장소미의 말을 믿지 않았을 거야.’ ‘어젯밤까지만 해도 나한테 잘살아 보자고 했었는데...’ ‘잘살아 보자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시연이는 핸드폰을 꼭 쥔 채 계속 서 있었다. “형수님?” 익숙한 목소리에 여자의 정신을 차렸다. 정기환이었다. 유건의 지시로 시연을 데리러 온 기환은, 시연이 한참을 나오지 않자 걱정이 됐는지 직접 강의실 앞으로 찾아왔다. “수업은 끝났어요? 이제 돌아가도 되나요?” “네.” 시연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만 가요.” ... 병실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시연이가 말했던 한 시간을 훌쩍 넘긴 상태였다. 유건은 눈살을 살짝 찌푸린 채 그녀를 바라봤다. 시연이 가방을 내려놓고, 옷장에 다녀오는 것을 보고서야 유건이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수업이 늦게 끝난 건가?” “네.” 시연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교수님께서 이제 부드러운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하셨어요. 성애 이모님께 전화해서 준비해 달라고 할게요. 저녁은 같이 먹어요.” 겉으로 보기엔 아무렇지 않은 여자의 모습.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건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뭘 잘못했나?’ ‘아니면, 단순히 기분 탓일까?’ 그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대로 할게.”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시연은 유건의 몸을 조심스레 닦아주고 옷을 갈아입혔다. 그리고 두 사람은 함께 누워 영화를 보다 잠이 들었다. 어느새, 시연의 귓가에 들려오던 남자의 숨소리가 점점 고르게 변하자, 시연은 조용히 눈을 떴다. 허리에 느껴지는 무게... 남자의 팔이 감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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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8화

하지만 시연은 그러지 않았다. 시연은 유건의 품에 기대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좋아요.” 그 후, 두 사람은 함께 씻고 아침을 먹었다. 교수님들이 회진을 돌고 간호사가 치료를 마친 뒤, 별다른 문제 없이 오후 3시가 되었다. 출발하기 전, 시연은 유건의 상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괜찮아 보이는데요...” 혹시라도 모를 일을 대비해 그녀는 다시 한번 유건에게 붕대를 감아줬다. 이후, 운전기사가 차를 몰아 둘을 웨딩숍으로 데려갔다. 이곳은 G시에서 오래된 맞춤 웨딩숍이었다. 장인이 프랑스와 G시를 오가며 운영하는 곳으로, 한 달 중 보름만 여기에 머물렀다. 오늘은 치수만 재고 스타일을 선택하는 날이라, 장인은 없었다. 대신, 점장이 직접 나와 두 사람을 맞이했다. “고 대표님, 사모님, 안으로 들어오시죠. 아, 신랑 신부님은 따로 치수를 재셔야 합니다.” 점장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안내했다. “조금만 기다리시면 됩니다. 치수 재고 나면 디자인을 함께 고르실 수 있어요.” 유건은 시연의 손을 가볍게 쥐었다. “갔다 와. 여기서 기다릴게.” “네.” 신부의 치수는 더 정밀하게 측정해야 했기에 시간이 오래 걸렸다. 시연이 나오자, 유건은 이미 끝나 있었다. 하지만 창가에 서서 전화를 받는 모습이었고, 멀리서도 봐도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전화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 대표님, 안 오실 건가요? 소미가 오후 내내 세 번인가 네 번이나 토했어요! 지금 거의 못 서 있을 정도라니까요!]조애린이었다. “알겠어.” 유건의 미간이 깊이 좁혀지던 그 순간, 시연과 눈이 마주쳤다. 유건은 잠시 멈칫하더니, 전화를 짧게 끊어버렸다. 그리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시연에게 다가와 손을 잡았다. 남자의 표정은 깊고 조용했다. “치수는 다 쟀어? 점장이 디자인 샘플을 가져오는 중일 거야. 원하는 걸 고르되, 굳이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어. 부분별로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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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9화

“사모님?” 디자인 샘플을 품에 안고 온 점장이 시연을 보고 멈칫했다. 왜냐하면 시연이는 당장이라도 나가려는 모습이어서 점장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디자인 샘플 가져왔습니다. 앉으시면 하나씩 설명해드릴게요.” “괜찮아요.” 시연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 “네?” 점장이 당황했다. ‘이게 말이 되나?’ ‘이 사모님은 우리 매장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인데, 디자인도 안 보고 그냥 간다고?’ ‘이걸 우리 사장님이 알면, 내 자리도 위험해질 수 있어!’ 이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저희가 실수한 부분이 있나요? 만약 그랬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바로 조치하겠습니다.” 점장은 오해한 듯했다. “아니에요.” 시연은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고, 그렇다고 이곳에 남아 있는 것도 쉽지 않았다. 유건도 어차피 떠났고, 시연에게 웨딩드레스가 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래도 점장의 입장이 난처해질 것 같아 잠시 고민하더니, 그녀는 간단히 말했다. “그럼... 제가 못 보더라도, 점장님이 직접 골라주시면 어때요?” “네?!” 점장이 깜짝 놀라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우리 샵의 웨딩드레스는 기본이 수십억 이상인데, 어떻게 내가 신랑과 신부를 대신해서 골라주는 거야?’ “그건 좀... 사모님, 저희가 전문가긴 하지만, 취향은 다 다르니까요.” “괜찮아요.” 시연은 무심하게 말했다. “점장님이 전문가시잖아요. 믿어요. 어떤 걸 골라도 저는 만족할 거예요.” “그래도...” 점장은 여전히 난처한 기색이었다. 이건 전문성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적인 선택의 영역이었다. “그냥 그렇게 해주세요.” 더는 신경 쓰기 귀찮아진 시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대로 걸음을 돌렸다. “급해서 이만 가볼게요.” “사모님...!” 점장의 부르는 소리를 뒤로한 채, 시연은 매장을 빠져나왔다. 마치 도망치듯. ...촬영장, 휴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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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0화

[확실해? 정말 안 말릴 거야?] 소미는 고개를 숙인 채, 입꼬리를 아주 살짝 말아 올렸다. 여자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안 말려. 기억해 둬, 이번 일은 우릴 통해서 나온 게 아니야.] 조애린의 답장은 금방 도착했다. [걱정하지 마, 알아서 할게.] 핸드폰을 닫은 소미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자, 온몸이 묘하게 가벼워졌다. ‘속이 다 시원해!’ ...지씨 저택 앞에 도착하자, 유건은 여전히 소미를 품에 안은 채 차에서 내렸다. 두 사람은 대문을 지나 2층까지 올라갔고, 장미리가 바로 뒤를 따랐다. “고 대표님, 제가 도울게요.” “괜찮습니다.” 유건은 고개를 저으며 소미를 조심스레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이불을 당겨 그녀의 몸을 감쌌다. “여사님, 만두 좀 부탁드릴게요. 소미 씨가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아이고, 알겠어요!” 장미리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지만, 쉽게 나가지 않은 채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저기, 고 대표님... 소미한테 시간을 좀 달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더 필요한 건가요?” “엄마!” 소미가 당황하며 소리쳤고,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만해요!” “아니, 엄마는...” 장미리는 포기하지 않았다. “고 대표님, 우리 소미 배가 점점 불러오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냐고 묻고 싶어요!” “엄마!” 소미가 짜증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이제 그만해요! 유건 씨도 다 생각이 있을 거예요. 너무 몰아붙이지 마세요.” “알았다, 알았어.” 딸에게 면박당하자, 장미리는 마지못해 물러났지만, 떠나기 전에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다 자기를 위한 건 줄도 모르고...” 방 안이 조용해졌다. 소미는 미안한 듯 유건을 바라봤다. “걱정돼서 저러시는 거예요. 너무 신경 쓰지 마요.” “나도 알아.” 유건은 짧게 대답하며 미간이 살짝 찌푸렸다. “요즘 몸이 안 좋으면, 촬영장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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