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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1화

“좋아.”배진호는 더 이상 권다솔이 무슨 말을 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다 맞다고 생각했고 그대로 따르면 그만이라는 마음뿐이었다.권다솔은 그를 바라보다가 문득 두 사람이 한창 사랑에 빠져 있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때는 막 관계를 확정 지었을 무렵이라, 배진호는 매일 그녀를 보며 멍하니 웃곤 했다.그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그때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야... 분명 우린 그때 참 행복했는데.’ 예전에 권다솔은 그에게 물었다.“진호 씨, 도대체 왜 그렇게 웃는 거예요?”그때 배진호가 답한 건 단 한 마디였다.“다솔 씨가 옆에 있기만 하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 정말 행복해요.”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다시는 만날 수 없을지도 몰랐다. 그녀 뱃속의 아이는 엄마의 사랑과 권용민, 김영은의 사랑을 받겠지만, 아빠의 사랑만은 없을 것 같았다.“다솔 씨, 제가 몰래 따라다녀서 제가 밉지는 않나요?”배진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솔 씨가 절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거 알아요. 그래도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두려웠고, 저 사람이 정말 괜찮지 않은 사람일까 봐... 그래서 그냥 따라왔어요.”“아니에요.”권다솔이 고개를 저었다.“아니라는 게... 절 미워하지 않는다는 건지, 아니면...”“진호 씨를 보고 싶지 않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 없어요.”권다솔이 그의 말을 끊었다.“우린 한때 서로 깊이 사랑했어요. 우리가 갈라선 건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오해랑 양쪽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었죠.”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녀가 배진호 자체를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배진호의 심장은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바로 그때 경찰이 다가와 두 사람 사이의 흐름을 끊어 버렸다.“누가 신고했나요? 그리고 저기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누구예요?”“제가 했어요. 방금 저 사람이 절 해치려 들어서 호신용 스프레이를 뿌렸거든요. 얼굴에 난 상처들은 제 남편이 절 보호하려고 몸싸움을 하다가 생긴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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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2화

권다솔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계속 달래며 말했다.“저 진짜 괜찮아요. 진호 씨가 제때 나타나 구해줬고 제 가방에 호신용 스프레이가 있었는데 효과가 좋아서 한 번 뿌리면 바로 제압하더라고요.”그런데도 남태건은 아직 깨어나지 못했다.“진호는 지금 어때? 내가 들어가서 한 번 볼게.” 권용민은 먼저 병실로 가 보자고 했다.권다솔은 부모님을 데리고 병실로 들어갔다. 배진호는 상처를 치료받고 있었고 그들이 오자 급히 일어나 인사를 했다.“앉아서 상처부터 잘 처리해.”권용민은 그를 보며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이전에 사위였던 배진호에게 권용민은 늘 불만이 많았다. 특히 두 사람이 이혼 문제로 시끄러울 때는 배진호가 영영 눈앞에 안 보였으면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오늘 배진호가 권다솔을 구해냈다. 그 일 덕분에 권용민은 그를 조금 달리 보게 되었다.김영은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그녀는 배진호에게 다가가 상처 부위를 살펴본 뒤 의사에게 당부했다.“가급적이면 좋은 약 써서 흉터 안 남게 해주세요.” 의사는 알겠다고 대답했다. 사실 김영은도 배진호와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딱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그사이 어색해질 듯하자 권다솔이 먼저 입을 열었다.“두 사람은 먼저 돌아가세요. 전 여기서 배진호 씨 상처도 마저 보고 다 처리한 뒤에 경찰서에 한 번 더 들러야 할 것 같아요.”“그래, 너는 여기 남아서 진호 좀 도와줘.” 권용민은 그렇게 말하고는 병실을 나섰다.권다솔은 당연히 부모님을 배웅하러 나갔다.“만약 네가 진호와 함께하겠다고 마음먹는다면 우린 반대하지 않겠다.” 권용민은 떠나기 전 딸에게 말했다.“그건 좀 더 생각해 볼게요. 아직 결정을 못 했어요. 그런데 아빠, 오늘 많이 달라 보이시네요? 예전엔 제가 그 사람이랑 꼭 이혼해야 한다고 난리셨잖아요.” 권다솔은 아버지가 좀 의아해 보였다. 남태건 때문에 충격을 크게 받은 건가 싶었다.권용민은 한숨을 쉬었다. “그 사람, 그러니까 진호가 외모도 괜찮고, 태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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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3화

경찰서에서 권다솔은 남태건과 또다시 마주쳤다.그는 권다솔과 배진호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눈이 벌게져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달려들려 했지만 경찰이 바로 제지했다.그래도 그는 입을 멈추지 않고 외쳤다.“권다솔, 네가 어떻게 날 배신할 수 있어? 너희 둘 이미 이혼했잖아. 설마 다시 재결합하려고? 왜 날 이렇게까지 괴롭히는데!”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정말로 남태건이 깊은 사랑을 품은 피해자 같고, 권다솔이 그를 저버린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었다.“정확히 알아둬요. 저희는 친구 사이였을 뿐이고 연인조차 아니었어요. 태건 씨는 지금 선을 넘었어요. 그리고 저랑 진호 씨는 아직 이혼 절차가 끝나지 않았어요. 정식 이혼이 아니라는 말이죠. 설령 진짜로 이혼했다 해도 저희가 재결합하는 건 제 자유예요. 그게 태건 씨하고 무슨 상관이죠?”남태건이 그녀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호응해 줘야 한다는 말인가 싶었다. 그럼 나중에 그가 지겨워져 버리면 순순히 버림받아야 한단 뜻이기도 했다.그녀는 그런 식으로 갇혀서 살고 싶지 않았다.“권다솔, 난 너희 둘이 같이 있는 걸 절대 허락 못 해. 그러면 안 돼. 걔는 너한테 어울리지 않아. 설마 그 아이를 잊었어? 그 아이는 네 친자식이었잖아!”남태건은 일부러 아이 이야기를 꺼내 권다솔을 자극했다.그녀가 상처받든 말든 상관없었고 오히려 더 괴로워했으면 싶었다.그래야 그녀가 배진호에게서 멀어질 테니까.“솔직히 말할게요. 저 또 임신했어요. 아이는 진호 씨 아이고, 전에 잃었던 아이가 돌아온 셈이에요.”배진호는 눈앞이 흔들릴 정도로 놀랐다.아이가 다시 생길 줄은 그도 몰랐다. 그것도 두 사람의 사랑의 결실이었다.남태건은 더더욱 믿기 힘들었다. 권다솔의 배를 뚫어지게 노려보고 싶을 정도였다.그날 밤만 아니었으면... 배진호가 빈틈을 노리지 않았더라면... 권다솔이 임신한 아이는 그의 것이었을 테다.이럴 줄 알았다면 좀 전에 권다솔의 배를 세게 쳐서 배은망덕한 것을 없애버려야 했다고까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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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4화

그가 유일하게 신경 쓰는 건 남씨 가문의 명예였다. 아들이라고 해 봐야 해외에 내던져 알아서 살게 두면 그만이라는 태도였다. 남태건이 몰래 돌아올 틈이 없도록 철저히 감시만 하면 될 일이라고 여겼다.“좋아요.” 권용민은 그의 말에 동의했다. “당신뿐 아니라 나도 그 애를 주시할 겁니다. 만약 다시 돌아온다면 오늘 우리가 맺은 협의는 바로 파기해 버릴 거예요. 증거는 이미 보관해 뒀습니다.”굳이 권용민이 덧붙이지 않아도 남태건의 아버지는 충분히 사정을 알고 있었다. 남씨 가문과 권씨 가문은 서로 대등할 정도로 힘이 비슷했고, 권씨 가문은 또 여이현과도 친분이 있었다. 그가 미치지 않고서야 더는 서로 등을 돌려 싸울 수 없는 노릇이었다.남태건 문제를 해결한 뒤, 권다솔은 계속 평소처럼 출퇴근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자꾸만 배진호와 마주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배진호는 말을 걸지도 귀찮게 굴지도 않고 그저 조용히 곁에 모습을 드러냈다.권다솔은 사흘을 참고 지내다 못해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어느 날 문을 열고 그의 차에 올라탔다.“가요.”“어디로요?”“당연히 법원이죠. 저 오늘 일부러 두 시간 일찍 퇴근했어요. 아직 가정법원 문 닫기 전이니까 얼른 가서 이혼 절차 끝내요.”배진호는 발을 엑셀 위에 올렸다가 다시 거두더니 차 키를 뽑았다. 차가 그대로 시동이 꺼졌다.권다솔이 그를 보며 물었다.“문 앞에서 저 기다렸잖아요. 이제 제가 차에 탔는데 왜 출발 안 해요?”“차가 고장 났어요. 제 잘못이 아니에요.”권다솔은 속으로 다 알면서도 그냥 넘어갔다.“고장 났으면 어쩔 수 없죠. 저 사실 진호 씨가 집까지 데려다줄까 했는데, 이제 보니 택시 불러야겠네요.”말이 끝나기 무섭게 배진호는 다시 시동을 걸었고 이번엔 차가 권씨 가문의 저택 쪽을 향해 달렸다.“아까 고장 났다면서요?”“그랬는데 이제 또 저절로 나아졌네요.”“제가 보기엔 진호 씨가 저랑 이혼하기 싫어서인 것 같은데요.” 권다솔은 슬며시 마음이 누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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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5화

“두 분 행복하세요.” 직원은 순식간에 이혼 수속을 취소해 주었다.밖으로 나오는 길에 배진호는 가방에서 혼인 증서를 꺼냈다. 증서를 바라보는 입꼬리는 하늘로 치솟았다“다솔 씨, 우리 신혼여행 가요.” 배진호는 그녀의 허리를 감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몰디브에 가 볼까요?”“그럼 결혼식은요?” 권다솔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눈이 마주치자 두 사람 마음엔 꿀을 머금은 듯한 달콤함이 가득했다. 지난번 결혼식 때는 양가 부모가 모두 반대하는 바람에 형식적으로만 치렀기에, 두 사람 마음속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지금도 배진호의 아버지 배상준과 어머니 정미진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지만 적어도 권다솔 부모는 동의했고 권다솔 뱃속에는 다시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맞다, 진호 씨. 어젯밤 꿈에 어떤 남자아이가 나타나서 절 엄마라고 부르더라고요.”권다솔은 이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귀여운 아이를 꿈에서라도 보니 느낌이 좋았다.“그 애가 또 말했어요. 여동생이랑 같이 절 찾으러 오겠다고.”“설마 이번에 쌍둥이인 걸까요?” 배진호는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렸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아이가 다시 찾아와 준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이미 그는 추가 임신을 막기 위해 수술까지 받은 터였다.“아직은 모르죠. 좀 더 시간이 지나서 검사를 하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아이 얘기를 꺼내자 권다솔의 눈빛은 한층 부드러워졌다. 이 아이는 정말 소중하게 찾아온 생명이니 남아도 여아도 상관없었다. 권용민과 김영은 역시 이번 아이에 대해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아, 맞다. 진호 씨.” 권다솔은 뭔가 떠오른 듯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저희 이혼 신청을 취소하고 다시 잘살아 보기로 했잖아요. 이 사실을 어머님이랑 아버님한테 알려야 할까요?”만약 말을 한다면 정미진이 또다시 어떤 술수를 쓸 수도 있다. 그렇다고 숨긴 채 지낼 수도 없었다. 어쨌든 친부모인데 평생 연락을 끊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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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6화

배성연은 속으로 자신을 원망했다.당초 정미진이 건네준 작은 이익에 눈이 멀어 같이 말썽을 부린 게 화근이었다. 결국 일이 이렇게 커져 버렸고 이제 와서 수습조차 힘들게 되었다.“알았어, 최대한 빨리 갈게.”배진호가 전화를 끊은 뒤 권다솔에게 물었다.“저랑 같이 갈래요? 아니면 먼저 택시 타고 갈래요?”“저희 같이 가요. 지금 상황에선 쓸데없는 말 할 필요 없고 일단 운전에 집중해 줘요.” 권다솔은 서둘러 안전벨트를 맸다.아무리 그들이 밉다 해도, 지금은 한 사람이 크게 위독한 상황이라 더는 따질 마음이 없었다.병원에 도착하자마자 두 사람은 곧장 수술실 앞으로 달려갔다.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던 배성연은 그들을 보자 한껏 안도하며 외쳤다.“오빠, 드디어 왔네. 아까 정말 너무 무서웠어. 혹시 오빠가 안 오면 어쩌나 했거든.”“이 말은 나한테가 아니라 다솔 씨한테 해야지. 네가 미안해야 할 상대는 다솔 씨야.”배진호가 그렇게 일러 주었다.“다솔 씨가 너희를 용서해 준 거나 다름없으니까.”배성연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거듭 사과했다.“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 저를 때리셔도 좋아요. 그래야 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아서요.”“됐어요. 앞으로 다시는 그런 짓 하지 마세요. 아직 학생이니까 공부부터 열심히 하면 좋겠네요.”권다솔은 배성연을 굳이 탓하고 싶지 않았다.첫째로, 배성연은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어린 학생일 뿐이었다. 그리고 아직 열여덟 살 생일도 지나지 않은 미성년자였다.둘째로, 애초에 권다솔에게 악감정을 품었던 건 정미진이었다. 이 모든 사단의 원흉도 정미진이다. 배성연은 단지 부추김에 휘말린 조력자였을 뿐이었다.“네... 아주머니가 회복되시면 전 학교로 돌아갈래요. 그리고 절대 다른 사람 연애 문제에 간섭 안 할 거예요.”배성연은 이번 일을 통해 아주 큰 교훈을 얻은 듯했다.사과를 마친 뒤 세 사람은 수술실 밖 복도에 나란히 앉아 기다렸다.그 사이 배상준도 연락을 받고 영상통화를 걸어왔다. 화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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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7화

배진호는 아버지 배상준의 얼굴이 시뻘게진 것을 보고 한마디 거들었다.“아버지, 괜히 화내지 마세요. 나이 드신 분들은 화를 잘못 내다 병 얻기 쉬워요. 어머니도 그렇잖아요.”정미진이 쓸데없는 데까지 간섭하지만 않았더라면 오늘 수술실까지 들어가는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배상준은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아버지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 나 더는 너랑 얘기 안 해. 다솔이 좀 바꿔 봐.”“다솔 씨 바쁩니다. 하실 말씀이 있으면 저한테 하세요. 딱히 할 말 없으시면 전화 끊겠습니다.”배진호는 철벽을 단단히 세웠다. 배상준이 권다솔을 들볶으려는 게 뻔히 보여서 그가 나서서 막아 줄 생각이었다.“이건 제가 혼자 한 결정입니다. 다른 사람 탓할 거 없어요.”“그래, 이제 네가 완전히 독립했나 보구나. 아무도 널 말릴 수 없다는 거지?” 배상준은 버럭 화를 낼 듯하더니 결국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더 이어 가다간 욕부터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저 멍청한 녀석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는구나.” 배상준은 전화기 건너에서 이를 갈았다.통화가 끝나자 권다솔은 배진호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진호 씨, 아버님 건강 괜찮으실까요? 아까 보니까 엄청 화가 나신 것 같았는데...”“괜찮아요. 그래도 제 아버지인데 스무 해 넘게 같이 살면서 못 말리는 성격이라는 건 뻔히 알죠.” 배진호는 고개를 저었다.권다솔도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았다. 그들은 복도에서 한참을 기다렸고 마침내 수술실 문이 열렸다. 배진호는 재빨리 의사에게 다가갔다.“저희 어머니 상태가 어떤가요?”“절반 정도 성공했습니다. 일단 목숨은 건졌어요. 그런데 하반신이 마비됐습니다. 언제 나아질지 저도 확답 못 드립니다. 환자 본인 체질이나 운에도 달렸으니까요.” 의사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오랜 진료 경험상 이렇게 병을 끌다가 막판에야 뛰어드는 케이스가 드물긴 해도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미리 치료받았으면 충분히 개선할 여지가 있었을 텐데 스스로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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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8화

배진호에게는 강경책도 온정도 통하지 않았다.권다솔이 병실에 들어섰을 때, 정미진은 혹시 또 찾아와서 따지려는 건 아닌가 긴장했다.“아주머니, 병원비는 다 계산해 뒀어요. 여기서 편히 요양하세요. 원하시면 퇴원 후에 좋은 요양원을 알아봐 드릴 수도 있고요.” 권다솔의 목소리는 무척 쌀쌀해 보였다.그녀로선 이미 많은 일을 겪었기에 더는 어머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앞으로는 그냥 아주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정미진은 얼떨떨했다. 권다솔이 굳이 자신을 보러 와 줬다니 말이다.배진호는 얼마 전 아버지에게 그랬던 것처럼 간단히 정미진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곧장 권다솔과 함께 병실을 나갔다.정미진만 혼자 병상에 누워 오랫동안 멍하니 있었다.“아주머니.” 배성연이 갑자기 입을 뗐다. “사실 전부터 드리고 싶었던 말이 있었어요. 아주머니께서 정말 심하셨어요. 물론 아주머니는 제 친척이고, 저한테도 많은 걸 챙겨 주셨지만... 이제 제 양심을 속이면서까지 편들긴 어려워요.”배성연은 혹시라도 잘못 거들었다간 이 집안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조력자가 될까 봐 두려웠다. 그녀는 스스로 해를 부르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았다.정미진은 중얼거렸다.“권다솔은 어떻게 또 임신을 한 걸까... 결국 제자리로 돌아온 거네.”그 말을 들은 배성연은 귀를 막고 싶었다.“임신이 뭐가 어때서요? 오빠가 수술까지 했는데, 복원해 봐야 성공할지도 모르잖아요. 이렇게 된 게 차라리 잘된 거예요. 아주머니, 죄송하지만 이젠 제발 그만 좀 하세요. 오빠는 애초에 다솔 씨 없이 못 산다고요.”“그래, 나 안 할래. 이제 그냥 치료나 잘 받으면서 더 살아 보는 수밖에 없지.” 정미진은 진심으로 체념한 듯했다. 그런데 문제는 석규리였다. 그녀는 배진호가 마음을 돌이켜 자신에게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렸는데 되레 정미진이 완전히 손을 뗀다는 소식을 들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석규리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와 정미진이 누워 있는 병상 앞에서 따졌다.“아주머니, 그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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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9화

정미진은 화가 나서 석규리를 향해 말을 퍼부었다.“내가 그동안 정말 눈이 삐었지. 너 같은 애를 우리 집 며느리로 들이려고 했다니. 다행히 우리 아들이 널 안 좋아해서 망정이야. 혹시라도 네가 우리 집안 문턱을 밟았으면 집안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놨겠구나!”석규리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그건 아주머니가 먼저 절 꼬드긴 거잖아요. 처음엔 절 내연녀로 들여놓으려고 하면서 약 섞인 차까지 마시게 했고요. 그게 제 몸에 어떤 영향을 줬을지 누가 알아요?”석규리가 정미진을 몰아붙이며 날을 세웠다.이미 관계가 완전히 틀어졌으니, 석규리는 들을 때 가장 불쾌할 법한 말들만 골라서 내뱉었다.“두 가지 선택을 줄게요. 진호 씨랑 결혼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방법은 아주머니가 알아서 하면 되죠. 진호 씨한테 약을 한 번 넣었으면 두 번도 못 넣겠어요? 그게 안 되면 저한테 50억 원을 보상금으로 주면 됩니다.”석규리는 노골적으로 거액을 요구해 왔다. 정미진은 그 액수에 놀라 숨이 턱 막혔다.“50억? 꿈도 야무지구나!”그토록 큰돈이면 한 세대가 아니라 세 세대가 먹고살아도 모자라지 않을 터였다.배진호의 자금에 그만큼 여유가 있는지도 의문이었고, 설령 있다고 해도 그건 배진호가 땀 흘려 번 돈이었다. 석규리에게 내줄 이유가 없었다.“돈을 못 주겠어요? 그럼 어쩔 수 없네요.”석규리는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를 정미진 쪽으로 돌렸다.정미진은 곧바로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뭘 하려는 거야?”“아주머니의 선행을 네티즌에게 알릴 건데요. 진호 씨가 적어도 기업의 대표쯤은 되죠? 그리고 그 아내분도 권씨 가문 장녀 아니던가요. 이 스캔들이 온라인에 터지면 아주머니는 비난받고 끝나겠죠.”석규리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마치 자신은 두려울 게 없다는 듯이 말이다.어차피 잃을 게 없으니 50억은 어떻게든 뜯어내겠다는 태도였다.“석규리, 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정미진은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몸을 가누고 싶어도 하반신 마비인 상태에서 이 자세를 고치기조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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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10화

석규리는 한 발 뒤로 물러서 휴대폰을 머리 위로 높이 들어 올렸다. 그러곤 입 모양으로 돈을 내놓으라는 뜻을 보였다.다음 순간, 정미진이 침대 머리맡에 놓인 뜨거운 물 주전자를 실수로 치고 말았다. 주전자가 바닥에 떨어지며 커다란 소리를 냈고 뜨거운 물이 사방으로 튀었다.정미진도 석규리도 뜨거운 물을 뒤집어썼다.“아! 아주머니,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니에요?”석규리는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병실엔 다른 사람이 없었고, 석규리는 화풀이를 할 기회라도 찾으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병실 문이 벌컥 열렸다.권다솔이 의사를 데리고 들어섰다. 그녀는 석규리를 보고 잠시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 침대에 누워 있는 정미진을 살폈다. 속이 복잡했지만 정미진이 어떤 사람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다솔아, 어서 저년 휴대폰을 뺏어! 지금 라이브 켜서 우리 집안 망치려고 해!”정미진이 다급하게 권다솔에게 도움을 청했다.다정하게 불린 이름을 들은 석규리의 표정은 한층 더 일그러졌다.어째서일까. 예전에 그녀를 다정하게 부른 사람도 정미진이었고, 이제 와서 구박하며 내쫓으려는 것도 정미진이었다.물론 석규리가 돈에 눈이 멀어 부잣집에 시집가고 싶어 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정미진이 그렇게 적극적으로 부추기지만 않았어도 굳이 배진호에게 마음을 품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정신을 차린 권다솔은 순식간에 석규리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보니 실시간 시청자 수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권다솔은 단숨에 라이브 방송을 끄고 휴대폰을 한쪽에 던져두었다.“석규리 씨,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는데 잘 찾아왔어요. 이제 예전 일도 새 일도 같이 정리해요.”권다솔은 차가운 시선으로 그녀를 쏘아보았다.다른 길을 찾을 기회도 많았을 텐데 석규리는 제 발로 가장 천대받을 길을 골라 들어선 셈이었다.“대체 뭘 정리하겠다는 거예요? 뭐가 됐든 다 아주머니가 한 짓이에요. 아주머니가 당신 해치려다 유산까지 시켰잖아요!”석규리는 권다솔 앞에서 여전히 기가 죽었다. 그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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