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습니다. 전혀 번거롭지 않아요.”석규리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배진호와 오래 함께 있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다. 더 함께 있고 싶은 마당에 어찌 번거롭다는 생각이 들겠는가?배성연은 난처한 듯 미소 지었다.“오빠, 우리 둘은 비슷한 점이 많아. 규리 씨는 내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어.”배진호는 말없이 조용히 돌아서 나갔다. 어차피 다 정해진 상황이었다.그가 거절하기만 하면 불효자 취급을 당할 것이고, 그러면 정미진은 약도 주사도 거부할 게 뻔했다. 불효 소리를 듣는 건 상관없지만 정미진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않으면 정말 문제가 생긴다.‘정말로 이 길밖에 없는 건가.’석규리는 들뜬 표정으로 그를 뒤따랐다.쇼핑몰로 향하는 길 내내 그녀는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갔지만, 배진호는 전혀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형식적으로 나온 것일 뿐이었다. 대체 이 자리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쇼핑몰 1층에는 다양한 화장품 매장이 있었다. 석규리는 무심코 립스틱 두 개를 골라 배진호에게 물었다.“진호 씨, 어떤 색이 더 괜찮아요?”배진호는 힐끗 보며 무심하게 답했다.“똑같지 않아요?”“아니에요. 이건 토마토 레드고, 이건 자몽 레드라서 달라요.”“결국 다 빨간색 아니냐는 겁니다.”배진호는 전혀 인내심을 보이지 않았다.석규리는 어쩔 수 없이 립스틱을 내려놓고 다른 제품을 골랐다.파운데이션을 고르던 중 그녀는 우연히 고개를 들었고, 멀리서 권다솔과 낯선 남자가 함께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다.그 순간 석규리의 눈에 강렬한 기쁨이 피어올랐다. 권다솔이 이렇게 빨리 다른 남자를 찾다니 말이다. 안 그래도 배진호 앞에서 권다솔을 깎아내릴 궁리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가 직접 확인하게 된 셈이다.‘좋아, 이걸로 변명도 못 하겠지.’석규리는 허둥지둥 돌아서서 배진호의 소매를 잡았다.“여긴 제가 원하는 게 없네요. 우리 다른 가게 한번 볼까요?”“정말 번거롭네요.”배진호의 목소리에는 인내심이 바닥난 기색이 역력했다.그는 석규리의 손을 뿌
Last Updated : 2025-01-0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