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때 백건은 서재에서 외국어 문장을 수백 번 배우면서 머리가 윙윙거렸는데 주위에는 선생님 빼고 시험지와 숙제밖에 없었다.그 해,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그가 가장 고통스럽고 무력할 때 서재 베란다 밖에서 남서연이 연줄을 잡아당기며 그의 유리문을 두드렸다.그가 문을 여는 순간 남서연은 연실을 건네주며 말했다.“우리 오빠가 삼촌 맨날 공부만 한다고 너무 불쌍하다고 그랬어요. 그만 공부하고 하늘을 보면서 연이나 날려요.”그가 처음으로 연줄은 잡은 건 중학교 때였다.처음으로 진정으로 고개를 들어 하늘의 색을 보고, 연이 나는 것을 보며 자신이 연 한 개만도 못하다고 느꼈다.그 후로 남서연은 자주 베란다 뒤로 몰래 달려가 그에게 재밌는 것을 건네주곤 했다.게임기, 오목, 만화, 다트판, 심지어 물총까지.그녀는 항상 잘 웃었다. 마치 그녀의 인생에는 근심과 고뇌, 어려움과 슬픔이 없는 것처럼 매일 낙관적이고 밝은 모습으로 즐거워했다.그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전부 아름다웠다.그와 정반대로 말이다.그의 어린 시절은 우울하고 고통스러웠고 하늘도 온통 회색이었다.그녀를 볼 때만 이 세상에도 색깔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다.더 슬픈 것은 남서연이 그와 친척 관계라는 것이다.이는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평생 불가능하다는 뜻이었다.백건은 생각하다가 하늘을 쳐다보며 쓴웃음을 지었다.그는 유승아와 결혼하는 조건으로 M국으로 돌아가 남서연의 상사가 될 수 있었다.이런 기회는 이번 생에 딱 한 번뿐이었다.그의 시간은 이제 한 달 밖에 안 남았다.한 달 후, 그는 어머니와의 약속대로 유승아와 약혼해야 한다.백건은 결연하게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30분 후 그가 방을 나섰을 때, 남서연은 여전히 리클라이너에 기대어 자고 있었다.그는 걸어가서 남서연을 살며시 안아 올렸다.잠에 취한 남서연이 천천히 눈을 뜨자 흐릿한 시선 속에 남자의 잘생긴 턱선이 보였다.그녀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제
Last Updated : 2024-12-27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