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연은 멀뚱멀뚱 백건을 바라보았다.왜 그녀는 백건의 말투에 질투가 섞인 것 같을까?그녀의 오해일까?남자는 기분이 무겁게 가라앉아 몇 초 동안 그녀를 불쾌하게 쳐다보더니 화가 나서 차 문을 열고 내려가서 차갑게 한마디 던졌다.“하 비서. 데려다줘.”곧 문을 닫고 성큼성큼 걸어갔다.남서연은 완전히 멍해졌다.하현우는 시동을 걸고 차를 돌려 떠났다.차량이 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하현우가 물었다.“아가씨, 주소를 주시면 제가 모셔다드릴게요.”‘어딜 간다는 거지? 나 호텔로 데려다주는 거 아니었어?’그녀가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핸드폰이 울려서 발신자 표시를 보니 진우석의 번호였다.그녀가 전화를 연결하자, 진우석은 그녀에게 퇴근했는지, 밥을 먹었는지, 잠깐 만날 수 있는지 물었다.그녀는 진우석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 하현우에게 말했다.“스카이 레스토랑으로 가주세요. 고마워요.”하현우는 공손하게 응수하고 스카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그가 눈을 들어 백미러를 보니 남서연은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진우석과 통화하고 있었다. 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가볍게 탄식했다.스카이 레스토랑에 도착하자 남서연이 차에서 내려 하현우에게 말했다.“먼저 돌아가세요. 이따가 저 혼자 호텔로 돌아가면 돼요.”“아가씨 혼자는 위험해요.”“우석 오빠가 있잖아요?”하현우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남서연이 레스토랑에 들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진우석이 벌떡 일어섰다.“서연아, 여기!”남서연은 활짝 웃으며 가벼운 걸음으로 다가가 진우석의 맞은편에 앉았다. 밝고 잘생긴 남자를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그의 웃음에 물들었다.“오랜만이에요. 우석 오빠.”진우석도 싱글벙글 웃으며 감격해서 말했다.“네가 이곳에 출장 올 줄은 생각도 못 했어.”“나도 못 했어요.”진우석은 그녀에게 메뉴판을 건넸다.“네가 먹고 싶은 것 시켜.”남서연은 메뉴판을 뒤적거리다가 무작위로 세트메뉴를 주문했다.음식 맛은 별로였지만 레스토랑의 분위기는 상당히 아름답고 낭만적이었다. 음악이 은은하
길가에 주차가 안 되니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돌아온 하현우는 검은색 우산을 들고 고인 물을 밟으며 백건 옆으로 달려가 그의 머리 위의 비를 막았다.지금의 하현우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그가 남서연을 이곳으로 데려다주고 파티장으로 돌아갔을 때 백건은 이미 안에서 나와 여기로 곧장 달려왔다.하현우는 여러 해 동안 백건의 곁에 있으며 그의 일을 거의 다 알고 있었다.하현우가 본 백건은 즐거움이 없는 남자였다.그는 부모님의 모든 기대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의 사업, 미래, 아내와 인생은 전부 부모가 계획한 길을 따라야 했다.그는 태어날 때부터 자아가 없었고 그저 백씨 가문의 재산을 상속하는 데 사용하는 꼭두각시일 뿐이었다.그런 백건은 어렸을 때부터 걱정 없고 천진난만한 남서연을 좋아했다. 그가 아무리 동경하고 추구해도 평생 도달할 수 없는 꿈같은 존재였다.북풍이 휙휙 불고 빗물이 섞여 하현우는 오싹할 정도로 추워 났다.그는 팔 한쪽만 젖었을 뿐인데 백건은 온몸이 흠뻑 젖었으니 아마 더 추울 것이다.더구나 레스토랑 안의 저 달콤한 장면이 백건에게 얼마나 고통스럽고 가슴 아픈 일일까?하현우가 안쓰러워 입을 열었다.“대표님. 온몸이 흠뻑 젖었어요. 이러시다 감기 걸려요. 먼저 돌아가시죠.”백건은 조용히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간은 1분 1초 흘러갔다.하현우는 이가 덜덜 떨리고 손이 얼어붙고 몸도 으스스 떨릴 정도로 추웠다.레스토랑의 문이 열리자 진우석은 비가 내리는 하늘을 보고 큰 우산을 쓰고 남서연에게 씌워주었다. 남자는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한 시간 동안 서 있던 백건이 드디어 움직였다.그는 제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돌려 그들에게 등을 돌렸다.하현우도 뒤돌아서서 우산을 아래로 눌러 상대방의 시선을 가렸다.남서연은 고개를 숙여 발밑에 고인 물을 보고 진우석의 품에 기댄 채 나무랐다.“이 비는 두 시간이나 내렸는데 아직도 안 그쳤네요.”“요즘 비가 자주 오니까 우산 꼭 챙기고 다녀.”“알
남서연은 마음이 괴로워졌다.백건의 기분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지만 자꾸 그를 생각하고, 추측하고 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었다.그러자 남서연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뭐야? 우리 걱정 없는 서연 공주님이 한숨도 쉴 줄 알아?”남서연도 반응하고 저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그러게요. 언제부턴가 나에게도 고민이란 게 생겼네요.”“우리 서연이 다 컸네.”“사람은 크면 고민이 생기네요. 난 정말 조금도 크고 싶지 않아요.”“네 고민이 뭔지 이 오빠에게 말해볼래? 회사 일이야?”진우석이 운전하며 묻자 남서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그러자 진우석의 눈빛이 어두워지더니 말투가 조금 엄숙해졌다.“그럼 감정 문제?”남서연은 고개를 숙이고 수건을 비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우석의 안색이 어두워졌고 속으로 걱정스러워하면서도 덤덤한 척 물었다.“설마 나한테 고백했다가 거절당할까 봐 고민이야?”남서연은 눈살을 찌푸리며 나지막이 투덜댔다.“오빠는 참, 그런 농담은 하지 말아요. 웃기지도 않아요.”진우석은 헛웃음을 두어 번 지어 자신의 어색함을 감추었다.그는 남서연을 호텔까지 바래다주고 인사를 하고는 떠났다.남서연이 스위트룸으로 돌아왔을 때, 백건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그녀는 방으로 돌아가 따뜻한 물로 목욕을 했다.아직 시간이 이른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디자인 원고를 그렸다.시간은 1분 1초 지나갔다.남서연은 두 개의 디자인 초안을 다 그린 후,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들어 시간을 보았다.시간은 정확히 새벽 12시였다.평소 같으면 이 시간에 진작 꿈나라로 갔겠지만 지금은 잠이 오지 않았다.음악을 듣고 스케치를 하기 위해서보다는 무의식적으로 백건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남서연은 헤드셋을 벗고 스케치를 내려놓고 이불을 젖히고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거실의 조명이 밝았다.방금 그녀가 방에 들어오기 전에 불을 껐는데 보아하니 백건이 이미 돌아온 것
“남서연.”백건은 낮은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조용히 불렀다.“네?”“남서연.”“나 여기 있어요. 왜 그래요?”남서연이 인내심 있게 답했다.“남서연, 남서연...”그의 목소리는 더욱 무거워지고 쓸쓸해졌으며 눈시울은 붉어졌고 시선은 흐릿해졌다.남서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그녀는 계속 여기에 있는데 이 남자는 왜 그녀의 이름만 부르며 다른 말은 하지 않을까?‘많이 취했나?’백건은 씁쓸하게 입꼬리를 꼬더니 느릿느릿 중얼거렸다. “남... 서... 연.”남서연은 걱정스럽게 다가가 그를 마주 보았다.“나 여기 있어요.”백건은 그녀를 보며 덤덤하게 웃더니 다시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힘없이 중얼거렸다.“네가 또 내 꿈속에 왔네.”“뭐라고요?”남서연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어 얼굴을 갖다 대며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요?”“남서연.”“왜 자꾸 내 이름을 불러요? 할 말이 있으면 바로 해요!”“남... 서... 연.”“정말 취했나 보네요.”남서연은 부랴부랴 침실로 들어가 휴대전화를 들고 하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은 하현우는 잠에서 깨어난 듯 몽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남서연은 순간 미안한 마음이 들어 조심스럽게 말했다.“정말 죄송해요. 대표님이 술에 취해 거실에 앉아 있어요. 옷은 흠뻑 젖었고요. 저러다 감기 걸릴까 봐 걱정돼서요.”하현우는 경악했다.“대표님이 취했다고요?”분명 그를 호텔로 데려다줄 때는 멀쩡했는데 왜 술에 취해 젖은 옷을 아직 갈아입지 않았을까?남서연이 긴장해서 말했다.“네. 자꾸 제 이름만 부르고 있어요.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을 못 하더라고요. 아마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뇌가 말을 안 듣나 봐요. 저 상태로는 젖은 옷도 안 갈아입을 것 같은데 좀 와서 도와주시겠어요?”“네. 바로 갈게요.”하현우는 급히 침대에서 일어나 잠옷 바람으로 달려왔다.벨이 울리자 남서연이 나가서 문을 열었다.방으로 들어온 하현우는 백건이 아직도 그 젖은 옷을 입고 곤
그녀는 백건을 오랫동안 짝사랑하며 그와 사귀는 날을 꿈꿔 왔지만 이성적으로 두 사람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도덕적으로 볼 때, 그녀의 짝사랑은 평생 빛을 보지 못할 운명이었다.그래서 그녀는 백건에게 가까이 가는 건 감히 바라지 않았고 헛된 꿈을 꾸지 않았고 비현실적인 일을 원하지도 않았다.이 어두운 짝사랑을 평생 마음속 깊이 간직해야 했다.남서연은 오랜 고민 끝에 결국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고 침대에 누워 계속 잠을 잤다.이날 밤, 남서연은 잠을 설쳤다.다음 날 아침, 숙취가 남은 백건은 깨어나지 못했고 남서연은 이미 일어나 육나리와 다른 디자이너 준과 함께 행사장으로 향했다.행사장에는 이미 런웨이가 설치되었다.이번 시즌 패션쇼 행사가 곧 시작되어 모두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백스테이지 라운지.“거기 너.”한 남자가 남서연을 가리키며 오만하게 말했다.“너. 그래 너.”남서연은 경악하며 자신을 가리켰다.“저 부르셨어요?”“그래. 바로 너. 너 어느 부서 직원이야?”남자가 묻자 남서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예의 바르게 답했다.“디자인 팀 직원이에요.”“처음 보는 얼굴인데?”“본사 신입직원입니다.”“그렇군. 가서 커피 몇 잔 사와.”남서연은 흠칫 놀라더니 물었다.“제가 커피를 사 와요?”남자는 미간을 찌푸리고 다른 사람을 가리켰다.“모두 바쁜데 너만 한가하잖아? 네가 안 가면 누가 가?”남서연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커피 심부름을 할 뿐이니 별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네. 몇 잔을 사 올까요?”남자는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가리켰다.“여기 지금 몇 명인지 세어보고 사와.”남서연이 사방을 둘러보니 스태프와 모델, 최소 수십 명이 모였는데 그녀 혼자서는 그렇게 많은 커피를 손에 들 수 없었다.“얼른 가지 않고 왜 멍을 때려?”남서연은 늘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렇게 많은 커피를 종이 상자에 넣어와도 되고가져올 방법은 생각해 내면 될 일이었다.“네. 알겠어요. 비용은 회사에 청구하면 되
충격을 받은 남서연은 숨을 들이쉬고 두 손으로 급히 입을 가린 채 한참 동안 반응하지 못했다.백건의 차가운 카리스마가 너무 강력하고 무서워서 남자는 오들오들 떨며 허리를 숙인 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백건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처 마시고 싶으면 네가 직접 나가서 사 먹어. 내 사람 심부름 시키지 말고.”‘내 사람’이란 세 글자는 마치 폭탄처럼 남서연의 심장을 폭격했고 그녀는 가슴이 쿵쾅쿵쾅 뛰며 알 수 없는 설렘을 느꼈다.비록 그가 말한 ‘내 사람’은 그가 본사에서 데리고 온 부하직원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남서연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 제가 잘못했습니다.”백건은 차가운 얼굴로 돌아서서 떠나며 처음부터 끝가지 남서연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이에 남서연은 어리둥절했다.백건은 그녀를 도와 이 부하직원에게 화를 낸 것 같은데 왜 백건의 태도는 여전히 냉담할까? 이 남자의 온도 차이가 너무 큰 것 같았다.백건이 떠난 후 남서연은 몸을 웅크리고 앉아 남자를 도와 돈을 주웠다.그러자 남자는 놀라서 쩔쩔매며 당황해했다.“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내가 주우면 돼요.”남자는 불안해했고 남서연을 조금 두려워했다.남서연은 일어나 백건을 돌아보았다.‘어젯밤에 술을 그렇게 많이 마시고 오늘 괜찮나? 몸이 불편하지는 않나?’남서연은 그가 일을 순시하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일하는 백건은 아주 진지하고 엄숙했으며 온몸에서 강한 냉기가 뿜어져 나와 사람들을 두렵게 했다.백건은 뒤에서 뜨거운 눈빛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그가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를 바라보는 사람은 보지 못했고 시선을 한 바퀴 돌리더니 결국 남서연에게로 떨어졌다.“대표님 전화오셨습니다.”하현우가 휴대전화를 들고 오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백건에게 건넸다.백건이 보니 어머니 서윤아에게서 걸려온 영상통화였다.그는 몇 초 동안 머뭇거리다가 휴대전화를 받아 블루투스 이어폰을 낀 뒤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무슨
서윤아가 엄숙하게 경고했다.“이 세상에 유일하게 불가능한 여자가 바로 남서연이야.”서윤아가 남서연을 싫어하는 게 아니었다. 반면 그녀는 남서연을 매우 좋아하고 친 외손녀처럼 아꼈다.그녀는 남서연의 감정이 상할까 봐, 가문의 평판이 손상될까 봐, 두 집안의 관계가 깨질까 봐 걱정했다.유독 백건의 행복은 걱정하지 않았다.서윤아는 항상 강력히 반대하고 과격한 수단을 썼다.반평생을 타협한 백건은 더 이상 타협하고 싶지 않았다.그는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었다.만약 남서연이 그를 받아들이고 그와 함께 세상에 맞설 의향이 있다면 그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내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백건이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승아는 어떡해? 너와 그렇게 오랫동안 만났는데 지금 서연이 때문에 승아를 버리려는 거야?”이 이야기를 꺼내자 백건은 더욱 화가 치밀었다.“나와 승아는 한 번도 사귄 적이 없어요. 그때 엄마가 날 협박하지 않았다면 난 승아를 내 첫사랑 여자친구로 가장하지도 않았어요.”서윤아는 경악했다.“뭐? 너희들 연인 사이인 척 연기한 거야?”백건은 씁쓸하게 냉소를 지었다.당시 그가 남서연을 짝사랑하는 것이 발각되어 가족들로부터 온갖 협박과 핍박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부득이하게 그런 수단을 쓸 수밖에 없었다.“백건! 넌 나를 너무 실망시켰어.”서윤아는 제대로 화가 치밀어 올랐다.반면 백건은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나 바쁘니까 별일 없으면 전화하지 마세요.”말을 마친 그는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그는 머리를 숙이고 생각에 잠겼다.이 세상에서 그가 남서연과 함께 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남서연 본인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다 신경 쓰지 않았다....그 후 며칠 동안 행사가 진행되면서 남서연도 점점 바빠졌다.패션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행사로, 각 언론사가 전 과정을 생중계했다.남서연은 행사에서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을 많이 만났는데 이는 신인 디자이너인 그녀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안전한 M국에 익숙해진 남서연은 나쁜 사람들이 겁도 없이 호텔에 들어가 사람을 납치할 줄은 정말 몰랐다.그녀는 차에 던져져 두 손 두 발이 묶이고 눈이 가려지고 입이 막혔다.그녀는 찻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는데 두려움이 마음속 깊이 퍼졌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다.차 안의 남자 몇 명이 깔깔 웃으며 외국어로 더러운 말을 하고 있었다.“이 여자 정말 아름다워.”“돈도 받고 예쁜 여자도 놀 수 있다니. 이거 정말 좋은 장사야.”“이 몸매에 이 얼굴은 최상급이지 않아?”“이따가 짜릿하게 즐기자고.”차마 들을 수 없는 대화를 들으면서 남서연은 너무 놀라서 어쩔 줄을 몰랐다.이 사람들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누군가 그들을 고용해 남서연을 더럽히려고 온 것이다.그녀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무서워서 위가 경련하며 토하고 싶었다.30분 후.누군가 남서연을 차에서 끌어내고 어깨에 메고는 방으로 들어갔다.그들은 그녀를 푹신한 침대에 휙 내던졌다.“음음!”그녀는 오열하며 무슨 말을 하고 싶었지만 두 손 두 발이 묶여 필사적으로 도망치려 발버둥 치는 그녀의 모습은 남자들의 음탕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녀가 발버둥 칠수록 그들은 더욱 활짝 웃었다.갑자기 그녀의 양손과 발의 끈이 풀렸고 누군가가 그녀를 잡아당겨 대자 모양으로 침대 네 구석에 다시 묶었다.그녀는 온 힘을 다해 발버둥 쳤다. 밧줄에 조여 손목 발목에서 피가 날 것 같았고 이따금 찌릿찌릿 따끔거렸다.남자는 흥분해서 웃고 있었고 그녀는 눈물이 비 오듯 흘렀다.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지옥이었다.그녀가 절망하고 있을 때, 펑 하는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남서연은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바로 총소리였다.곧이어 문이 발에 차여 열리더니 계속 총성이 터져 나왔다.적어도 열 몇 발은 울렸다.남서연은 놀라서 온몸이 뻣뻣해지고 마음속에 한 줄기 희망이 떠올랐다.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경찰에 신고했을까? 경찰이 그녀를 구하러 왔을까?“아가씨. 이제 괜찮아요.”하현우의 목소리였다.
이다은이 심장을 부여잡고 있자 남우영은 긴장이 가득 찬 눈빛으로 바라보며 물었다.“어디 아파? 의사는 보인 거야? 나랑 함께 검사받으러 가자.”이다은은 안절부절못하는 남우영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남우영, 나 아파서 그러는 거 아니야. 그냥 마음의 준비가 안 돼 있어서 그래. 아이랑 가족이랑 그리고 일까지 어떻게 평형을 잡고 케어해야 할지 모르겠어.”남우영은 이다은이 다른 사람들과 달리 일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도 알고 있고 계속하여 일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싶어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으며 더욱이 그녀는 전업주부가 되는 것을 싫어하고 그렇게 할머니로 늙어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이다은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품에 안고 속삭였다.“이다은, 넌 이 남편의 재산 능력을 잊은 거야?”이다은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우영은 약속하는 듯한 말투로 달래며 말했다.“네가 원한다면 출퇴근은 항상 차로 데려다줄 거고, 곁에는 번거로운 일들을 분담해 줄 매니저를 붙여 줄 거고, 심지어 가방 들어 줄 사람도 따로 안배할 거고, 집에 돌아오면 가사도우미랑 내가 널 돌볼 것이야. 그리고 아이를 낳고 나면 산후조리원, 가사도우미, 영양사, 헬스 관리사 등 아이를 케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전부 다 따로 안배해 줄 거야. 아이의 양육 문제는 전문적인 산후조리사와 육아 도우미, 그리고 부모님들도 계시잖아. 만약 손자를 돌보고 싶어 하시면 우리 집에서 같이 살 수도 있고 몇 년 후 내가 퇴직하면 그땐 나도 같이 부담할 수 있잖아. 이렇게 많은 후원자가 뒤에서 보호하고 있을 텐데 뭘 더 걱정해.”남우영의 말을 들은 이다은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제야 마음의 안정을 찾고 감격에 목이 멘 채 말했다.“고마워, 우영아.”남우영은 행복한 얼굴로 이다은의 이마에 키스했다.이렇게 모든 일들은 다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10개월 뒤, 남씨 가문에서는 큰 경사를 맞이하게 되었다.남우영과 이다은의 딸은 전 달에 이미 출산 되였
지구 반 바퀴를 여행하고 돌아온 이다은은 여행 내내 헛구역질을 하고 졸리고 피곤한 증상으로 몸에 이상한 변화를 느껴 바로 병원으로 향했다.검사 결과는 예상한 대로 임신으로 나왔고 이다은의 마음은 한편으로 격동되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여자는 임신하면 매일 집에서 남편을 돕고 애만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온 이다은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너무 사랑하고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기 위해 천천히 노력하고 있기에 일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병원에서 진료를 마친 이다은이 집에 도착하자 함께 여행했던 부모님들도 선물을 들고 돌아와 집에 계셨다.“아빠, 엄마.”이적과 김연아는 아직 여행의 행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고 이다은의 인사도 듣지 못한 채 남우영과 여행 중의 풍경들을 얘기하고 있었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소리를 듣고 바로 일어나 옆에 다가서며 그녀의 손을 잡고 물었다.“이다은, 이른 아침에 어딜 다녀온 거야? 눈떠보니 없던데.”이다은은 가벼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아침 산책 갔다 왔어.”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부모님들이 우리 선물까지 사서 챙겨 오셨어.”김연아는 만면에 웃음꽃을 띤 채 말했다.“다은아, 엄마는 태어나서 처음 외국 여행 가봤고 너무 재밌었어. 사돈한테 정말 고마워.”이번 여행을 통해 김연아와 이적은 마음속의 모든 불안과 열등감을 떨쳐내고 대가족에 합류하게 되었다.그들은 그제야 딸이 아주 훌륭한 남편에게 시집을 갔고 시댁도 교양 있고 너무 좋은 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이다은은 어머니가 주는 선물을 받으며 말했다.“고마워요, 엄마.”이번 여행으로 인해 이적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차분하게 말하며 얼굴엔 참을 수 없는 웃음을 하고 있었고 김연아도 그냥 말을 받아치며 사돈들이 어떻게 잘해주었는지 얘기하고 있다가 점심까지 먹고서야 본인의 집으로 돌아갔다.남우영이 이적 부부에게 그들이 여태 만져본 적이 없는 큰 액수로 평생 쓰기에 충분한 예단값과 별장 한 채를 주었기에 두 사람
괜찮은 계획이라 생각한 남우영도 바로 동의하며 말했다.“그럼 우리 여행 코스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다음 주에 출발하는 건 어때?”이다은은 두 손으로 남우영의 가슴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우리 일단 일어나서 지도도 찾아보고 시간도 짜고 우리들만의 여행결혼식을 준비하자.”남우영은 일어나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베개 위로 올려 누르며 말했다.“계획은 내일 짜면 돼. 나 지금 아주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있단 말이야.”이다은이 이어 말하려 하자 남우영은 머리 숙여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며 입막음해 버렸고 그렇게 둘은 또다시 한 몸이 되었다.일주일 뒤, 이다은은 또다시 공아영의 변호사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고 공아영이 사과의 말과 함께 용서해 주기를 바라며 남하준에게 사정하여 그녀를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달해달라는 내용이었다.이다은은 법률은 공평하고 공정하다는 것만 믿고 이 일을 더 이상 상관하지 않았다.예전에 이다은의 학위를 도용했던 여민지도 이미 남우영에 의해 감방에 보내졌는데 사람을 찾아 이다은의 아버지를 때리고 어머니를 해치고 부모님의 집마저 허물게 한 공아영의 죄는 더욱더 큰 처벌을 받아야 했다.공항 대기실에서 이다은은 남우영이 준 설계도를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그녀는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설계도를 보다가 갑자기 속이 울렁거림을 느끼면서 입을 막고 헛구역질만 하고는 또 눌린 듯하여 심호흡을 한번 하고 계속해서 보았다.이때 화장실에서 나온 남우영은 이다은에게 다가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다은아, 우리 이제 탑승해야 해.”이다은은 가방을 메고 자리에서 일어나 남우영과 함께 대기실에서 나왔다.남우영과 이다은은 얘기를 주고받으며 즐겁게 걸어가고 있다가 갑자기 앞에 4명의 익숙한 얼굴들이 만면에 환한 웃음을 띠고 나타나자 너무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아빠, 엄마.”이다은과 남우영은 이구동성으로 말했다.“어떻게 되어 여기까지 오셨어요?”중요한 건 그들은 모두 트렁크를 챙겨 들고 손에는 탑승권과
이다은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남우영을 천천히 안아주며 수줍은 말투로 단호하게 말했다.“남우영, 내 맘에 너밖에 없어.”남우영은 몸이 살짝 굳어지더니 정신이 번쩍 들면서 격동되고 갈망하는 눈빛으로 이다은을 마주 보며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다시 말해줘, 다시... ”이다은은 부드러운 말투로 이어 말했다.“남우영, 나 너 좋아해.”남우영은 감동되어 눈시울을 붉히며 바로 이다은을 품에 꼭 껴안으며 말했다.“다은아... 이다은... ”그는 격동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이다은의 귀에 대고 이름만 불러댔다.“넌 날 좋아해?”이다은이 부끄러워하며 묻자 남우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널 사랑하는 건 너도 이미 알고 있잖아.”“그래도 또 듣고 싶어.”남우영은 모든 진심을 담아 뜨거운 눈길로 이다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랑해 이다은, 엄청 많이 사랑해.”너무 껴안은 탓에 숨 막힌 이다은은 남우영을 밀어내며 말했다.“나도 사랑해. 하지만 우리 이제 일어나 출근해야 해.”“우리 오늘 출근 안 해.”남우영은 일어나려 하는 이다은을 다시 안아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으며 품에 꼭 껴안았다.이다은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그럼 화장실엔 가도 되는 거지?”“그럼, 당연하지.”남우영은 말이 끝나기 바쁘게 이다은을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품에 안긴 이다은은 부끄러워 발버둥질하며 말했다.“내려줘, 나 혼자 갈 수 있단 말이야.”남우영은 이다은의 이마에 뽀뽀하고는 말했다.“내가 안아다 주고 다시 안아올 거야. 오늘은 너 어디도 못가, 내 옆에만 있어야 해.”이다은은 낮은 소리로 달래며 말했다.“남 대표님, 진짜 출근 안 해도 되는 거예요?”“난 오늘 너랑만 있을 거야.”남우영은 사랑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화장실로 들어갔다.화장실에서는 히히 닥닥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일주일 뒤, 이적은 퇴원했고 남우영은 그들을 새로운 집으로 모시고 가사도우미 두 명까지 안배해 줬다.평생 남 밑에서 일만 해온 이적과 김연아는 난생처음 이런
그러자 정안이가 옆에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공짜라는데 받으셔야죠.”이적은 바로 수표를 받아 쥐고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공혁재는 돈까지 내밀었으니 이 일은 이렇게 끝나는 줄만 알고 말했다.“그럼 저는 손녀를 데리고 이만 물러나겠습니다.”말이 끝나기 바쁘게 공혁재는 공아영의 손을 잡고 병실에서 나갔다.공아영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뒤돌아 이다은을 쏘아보면서 공혁재에게 끌려 나갔다.병실 안은 그제야 조용해졌고 어색한 분위기가 되자 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한 채 또다시 서로를 쳐다만 보았다.이때 정안이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하준 오빠, 저 사람들 이대로 내버려두면 안돼.”남하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정안이의 손을 잡고 어루만지며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걱정하지 마, 내가 반드시 사돈 부부를 위해 정의를 되찾아 드릴 테니까.”정안이는 그제야 안심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이적과 김연아는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감동되어 고마움을 금치 못했다.이번 사돈 보기는 이적이 병상에 누워 있은 탓에 짧은 시간에 끝나 버렸고 이다은과 남우영은 양가 부모님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향했다.돌아가는 길에 남우영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고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갑자기 뒤에서 이다은을 꼭 껴안아 줬다.깜짝 놀란 이다은은 그 자리에 경직되어 긴장하면서 물었다.“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남우영은 눈을 감고 이다은의 뒷목에 얼굴을 갖다 대면서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미안해 다은아, 나 때문에 이런 일까지 당하게 해서.”“왜 나한테 사과하는 거야?”“공아영의 일로 널 힘들게 해서 미안해.”이다은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껴안고 있는 남우영의 손을 만지면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네가 잘못한 거 아니야, 나한테 사과 안 해도 돼.”“널 힘들게 했으니 내 잘못이야.”그의 말에 이다은은 그대로 멍하니 서 있으면서 마음속으로는 더없이 감동했다.“비록 네가 날 위해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공아영 문제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
교만하고 무지막지한 공아영은 여태 할아버지는 빽이 많아 돈과 권력으로 모든 일을 해결해 낼 수 있었으니 그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하여 공아영도 눈에 뵈는 것이 없이 커왔고 나라 장군 앞에서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공혁재는 당황해하며 작은 소리로 타일렀다.“얼른 도련님 부인한테 사과해.”공아영은 이다은을 가리키며 화를 내며 말했다.“저 여자가? 도련님 부인이라고요? 웃기시네, 사과해도 저 여자가 저한테 사과해야죠.”공혁재는 당황하여 진땀을 뻘뻘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고 남우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겨우 참고 있었으며 그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공아영은 이미 그를 원망하며 말하기 시작했다.“남우영, 넌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모르면서 내 연락처를 차단하고 계약까지 해지해? 너 너무 하는 거 아니야?”옆에서 듣고 있던 정안이는 이 일을 아들이 제대로 처리 못 하면 부부 관계에 영향을 줄 수 있기에 조마조마해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받아치며 말했다.“공아영 씨, 부탁인데 본인의 위치를 잘 알고 말씀하세요. 제 아들은... ”정안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공아영은 뒤돌아보며 한마디 쏘아붙였다.“사모님, 전 남우영한테 물어본 거고 사모님한테 물어본 거 아니니까 그렇게 앞질러 대답할 필요 없어요.”정안이는 윗사람한테 버릇없이 쏘아붙이는 공아영의 오만무례함에 충격을 받고 하던 말을 멈추었다.세상에나! 이 여자의 시건 방지함이 이렇게 지나치다니.남하준은 새파랗게 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더니 곧 폭발할 것만 같았지만 정안이가 옆에서 그의 주먹을 내리며 좀만 더 참으라고 손짓했다.공아영은 다시 남우영을 보며 분노하며 말했다.“남우영,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지금 너한테 묻고 있잖아.”남우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뻗쳐 더는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공아영, 잘 들어. 난 너의 그 어떤 해석도 필요하지 않아. 다만 너 때문에 내 아내가 기분 나빴다는 것만으로 널
그 뒤로 김연아는 현실만 믿고 더 이상 드라마에 나오는 텃세 부리는 부잣집 여자 역을 믿지 않았다.남우영은 이다은의 손을 잡고 소파에 가서 앉았고 두 사람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필경 양가 부모님이 처음 뵙는 자리인 데다 것도 병원이라니, 자칫하여 부모님들 사이가 나빠지면 그 둘의 미래도 그다지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이다은은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했고 옆에서 눈치챈 남우영은 휴지를 꺼내 손바닥을 닦아 주며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긴장 안 해도 돼. 너도 보다시피 우리 엄마 아빠 다 좋은 분들이셔.”이다은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너 나보다 더 긴장한 거지?”남우영은 가볍게 웃으며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필경 장인 장모 앞이라 그도 긴장된 건 사실이었다.남하준은 사람들 앞에서 항상 말이 없는 편이라 이 순간도 화제를 찾을 수가 없었다.이적과 김연아는 긴장하고 두려워서 지금까지도 많이 어색해하며 혹시 말 한마디 잘못하여 딸을 더 번거롭게 만들까 봐 걱정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정안이는 얼른 화제를 꺼내 말했다.“연아 언니, 듣자 하니 회사에서도 잘리셨다면서요?”“네, 맞아요.”“그럼 그 회사에서 보상은 해줬어요?”정안이의 물음에 김연아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런 작은 가사도우미 회사들은 평소에 잡일들만 많고 합동서도 안 쓰는데 무슨 보상이 있겠어요.”정안이는 뒤돌아 남하준을 보며 말했다.“하준 오빠, 들었지?”남하준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들었어. 사람 시켜 어찌 된 일인지 잘 알아보고 배상할 건 배상하고 처벌할 건 처벌하고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잘 처리하도록 할게.”김연아와 이적은 너무 놀라 막연하게 두 눈만 깜빡거렸다.이때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모두의 시선은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도련님, 사람들 도착했습니다.”밖에서는 위엄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또다시 긴장한 김연아는 낮은 목소리로 옆에 있는 정안이에게 물었다.“또
손에 꽃바구니를 들고 있던 정안이는 웃으며 말했다.“제대로 찾아온 거 맞아요 사돈, 저희는 사돈 뵈러 왔어요.”사돈이라는 두 글자에 침대 위에 누워있던 이적마저 놀라 서둘러 다친 몸을 가누며 억지로 일어났다.김연아도 너무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남하준의 손에 쥐여있는 선물부터 받아 내려놓았다.남우영이랑 이다은은 두 번째 엘리베이터를 탄 탓에 아직 병실에 도착하지 못했다.김연아에게 선물을 넘긴 남하준은 얼른 이적한테로 다가가서 어깨를 눌러 눕히며 말했다.“이적 씨는 다치셨으니 일어나실 필요 없어요. 얼른 누워계셔요.”“남 장군님, 저...”이적은 당황한 나머지 말도 못 했다.김연아는 손까지 떨면서 겁에 질린 눈빛으로 정안이를 바라보며 혹시 아까 두 사람이 싸운 내용을 들었을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남하준은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장군이라고 부르시는 게 이렇게 서먹서먹한데 당신 부부 둘 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시니 이적 형이라 부르고 다은이 어머님은 연아 누나라고 부를 테니 저한테 그냥 하준이라 불러요.”정안이도 다가와 남하준에게 기대며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이적 오빠, 연아 언니, 저한테는 완자라 불러주시면 돼요.”이 말을 들은 김연아는 얼굴이 빨개졌다.부끄러워서가 아니라 송구스러워서였다.앞에 있는 이 부부는 젊고 멋있고 이쁠 뿐만 아니라 권력도 막강한데 텃세 하나 없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이 순간 김연아는 자신이 추측했던 것들이 부질없는 짓이라 생각하게 되었다.이적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해 서 있는 아내를 급히 불렀다.“여보, 얼른 사돈에게 의자를 가져다드리지 않고 뭐해.”김연아는 그제야 반응하여 얼른 대답했다.“으...응.”정안이는 그들이 이렇게 어색하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급히 가서 김연아의 팔을 붙잡으며 말했다.“그러지 않아도 돼요. 저희 절로 할게요.”정안이가 가까이 오자 김연아는 다시 몸이 굳어졌고 숨도 크게 쉬지 못했으며 자신의 구린 옷이 이렇게 고귀하고 예쁜 사돈의 옷
한편, 병실에서 한시간 넘게 잔 이적은 호사가 약 바꾸러 왔을 때야 잠에서 깼다.약을 바꾸고 나서 김연아는 이적에게 귤을 까주고 둘은 한 조각씩 나눠 먹으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딸이 고른 사위가 사람 참 괜찮네. 사 온 귤까지 너무 달콤해.”김연아는 감개무량해하며 말했다.이적은 귤 모양을 힐끗 보고는 말했다.“이거 아마 엄청 비쌀걸.”“그럼, 큰 슈퍼마켓에 가면 이런 귤은 개별로 팔아. 소고기 양고기보다도 더 비싼 거야.”김연아는 달콤한 귤을 한 조각 입에 물고 말했다.이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호기심에 물었다.“우리 집이 저렇게 되었는데 사위한테 말하면 우릴 도와 해결해 주지 않을까?”김연아는 그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우리 이런 일로 딸한테 폐 끼치면 안 돼. 그런 말은 꺼내지도 마.”“내가 뭔 폐를 끼쳤다고 그래. 사위가 돈이 그렇게 많은데 이 정도쯤이야 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니잖아.”“입 닥쳐.”김연아는 분노하며 말했다.“그 사람이 돈이 있는 건 그 사람 일이야. 어쨌든 당신은 뻔뻔스럽게 손 내밀며 도와달라고 하면 안 돼. 우리가 아무리 가난해도 남의 것 탐내면 안 되는 거야.”“이 여편네는 항상 체면만 차리고 고집이 너무 세서 문제야.”김연아는 콧방귀를 뀌며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사위 집안은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집안이라 우리 딸이 워낙 어울리지도 않는데 우리까지 사사건건 찾으면 사돈집에서 얼마나 귀찮겠어.”이어 이적은 시큰둥하게 물었다.“딸이 부잣집에 시집가면 그럼 부모도 모실 수 없다는 건가?”“당연히 모시겠지. 그것도 딸이 혼자 해야 하는 거지. 우린 최대한 사위 집안에 민폐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잖아. 그래야 딸의 결혼생활도 오래 갈 거잖아.”이적은 시큰둥하게 듣더니 몸의 상처도 생각 못 한 채 버럭 화를 내며 말했다.“사위는 왜 우릴 모시면 안 되는 건데?”“그럴 의무가 없잖아.”“근데 돈이 많고 그냥 조금만 줘도 너랑 나 남은 생은 아무 걱정 안 해도 되잖아.”이적은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