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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못 놔줘의 모든 챕터: 챕터 181 - 챕터 190

1182 챕터

제181화

임수호는 아직 이지원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그 희망도 얼마 가지 않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임수호는 검은색 승용차 안에 앉아 풀숲에 잠복해 있는 경찰들을 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봤어? 그 여자는 애초에 당신을 구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이제까지 당신을 이용하기만 했지.”임수호를 감시하던 경호원이 말했다. 그러자 임수호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그럴 리가 없어. 경찰들이 지원이 휴대폰을 도청한 게 분명해!”아직도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를 보며 경호원은 혀를 끌끌 찼다. 그가 받은 임무는 임수호가 이지원의 실체를 확실히 깨닫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태를 보아하니 꽤 시간이 걸릴 듯하다.임수호를 체포하러 왔던 경찰들은 당연하게도 허탕을 치고 말았다. 그리고 임수호가 금방 잡힐 줄 알았던 이지원은 상황이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게 되자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두원 별장.퇴원 후 집에 도착한 박민정은 바로 조하랑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통화버튼을 누르니 박예찬의 걱정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잘 지내고 있어?”박민정의 부탁으로 연지석은 조하랑과 아이들에게 교통사고에 관해서는 전하지 않았다. 하여 박예찬은 그녀의 사고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다.“엄마는 잘 지내고 있지.”박민정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예찬이는 유치원 잘 다니고 있었어? 하랑이 이모 힘들게 하지는 않았고?”“엄마, 나 이제 어린애 아니야.”박예찬은 고개를 돌려 잔뜩 어질러진 방 한가운데서 법률 서적을 외우고 있는 조하랑을 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엄마는 아마 모를 것이다. 조하랑이 자신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조하랑을 돌보고 있다는 것을.심지어 박예찬은 조하랑이 조금 바보 같다는 생각까지도 했다.그때 그 시선을 느꼈던 건지 조하랑이 법률 서적을 끌어안고 아이를 향해 배시시 웃었다.“역시...”바보 같다.박민정은 박예찬과 조금 더 대화한 다음 조하랑을 바꿔 달라고 했다.박예찬은 조하랑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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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2화

왜 이런 지시를 내렸는지 유남준조차도 그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교통사고를 당한 박민정이 기분 좋게 몸을 회복했으면 해서일까? 어쩌면 과거의 죄책감과 며칠 전 고소를 취하하라고 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이런 식으로 달래려는 것일 수도 있다.이한석은 갑작스러운 지시에 의문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오늘 당장 말씀이십니까? 어떤 꽃으로 하면 될까요? 손님맞이용이신가요?”유남준은 창문 가까이에 다가가 밖에 있는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알아서 해. 많으면 많을수록 좋아.”“네, 알겠습니다.”두원 별장의 정원 설계를 알고 있는 이한석은 곧장 어디론가 전화를 걸어 꽃을 구하기 시작했다.늦은 저녁, 여러 대의 트럭이 두원 별장 안으로 줄지어 들어왔고 작업복을 입은 정원사들은 차에서 내려 꽃을 심기 시작했다. 유남준이 어떤 꽃인지를 얘기해주지 않은 바람에 현재 진주시에 있는 꽃들은 전부 다 공수해왔다.늦은 시각이었던지라 박민정은 그들이 작업하고 있을 때 꿈나라에 있었다.다음 날 아침.잠에서 깬 박민정은 베란다로 향했다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하룻밤 사이에 정원에 꽃밭이 펼쳐져 있었으니까.볼을 꼬집지 않았더라면 아직 꿈속인 줄 착각했을 것이다.서둘러 계단을 내려와 보니 유남준은 벌써 출근하고 없었다.거실을 지나쳐 정원으로 가보자 거기에는 어제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이 펼쳐졌고 그녀는 놀라움에 더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몰라 고개를 갸우뚱했다.어젯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한편, 유남준은 회사로 가는 차 안에서 끊임없이 재채기했다.꽃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오늘 아침 창문을 열었을 때부터 그는 줄곧 이 상태였다. 가벼운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그에게 정원을 가득 채운 꽃들은 그야말로 고역이나 다름없었다.“대표님, 괜찮으세요? 병원으로 모실까요?”운전기사가 룸 미러로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오늘 아침 유남준을 데리러 갔을 때 운전기사조차 별장의 풍경에 깜짝 놀랐다. 이건 단순히 정원을 꾸민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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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3화

박민정은 조하랑과 얘기를 조금 더 나눈 후 휴대폰을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더는 꽃에 눈길을 돌리지 않고 작업실로 가 연주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쉬이 진정되지 않는 마음 때문에 다시 작업실을 나와 밖으로 향했다.정원 쪽으로 가보니 거기에는 백발에 턱시도를 입은 이한석이 있었다. 실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이한석은 정원사들에게 직접 지시를 내리다 어느샌가 정원으로 다가온 박민정을 보고는 꽤 놀란 얼굴을 했다.하지만 곧바로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돌아와 정원사들에게 일을 마저 분부한 다음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저희가 혹시 방해된 건가요?”어쩌다 예의 있게 얘기하나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의 입에서 나온 다음 말은 차갑기 그지없었다.“박민정 씨는 청력이 좋지 않아 이 정도 공사로 시끄러워할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헌데 박민정 씨는 이 시간에 대체 왜 아직도 집에 계신지요? 상류층 가문 아가씨들과 사모님들은 오전 10시가 다 되어가는 이 시간에 태평하게 집에서 늘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혹시 할 일이 없으셔서 이러시는 거라면 저희 일에 방해가 되지 않게 근처 산책이라도 하는 게 어떠신지요?”이한석은 예전에 항상 그녀에게 유씨 가문 안주인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에 대해 엄격하게 교육해 왔다. 그리고 박민정은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위한다고 생각해 순순히 그의 말을 듣곤 했었다.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그가 그의 딸 이혜림과 나눴던 대화를 들어버리고는 그를 향한 호감도 싹 사라져버렸다.“촌구석에서 자란 계집이라 그런지 내가 뭐라고 하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더라고.”박민정은 그제야 이한석은 그저 자신을 교육하고 가르치는 데 우월감을 느꼈던 것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유남준의 법적 부인이자 유씨 가문의 명실상부 며느리를 일개 하인이 교육한다는 게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이 집사님이 하시는 말에 동의할 수 없네요. 저는 집사님이 방금 얘기한 상류층 가문 아가씨도 아니고 사모님도 아니에요. 그러니 이 집사님이 정해놓은 수준에 달할 필요도 없겠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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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4화

지금은 한창 아이들이 하원 할 시간이라 김인우는 유치원 앞에서 대기하기로 했다.유치원 앞에 도착한 후 그의 시선은 단 한 번도 입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찾아 헤맨 아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유치원 앞에는 아이를 데리러 온 학부모들도 많았다. 하여 그는 험악하게 생긴 경호원보다는 자신이 직접 아이를 잡으러 가기로 했다.“너희들은 혹시라도 애가 도망가지 않게 주변을 막고 있어.”아이가 똑똑하다는 걸 알고 있는 그는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경호원들까지 주위에 배치했다.그 시각 박예찬은 자신을 데리러 올 차량을 기다리다 뭔가 이상한 느낌에 주위를 둘러보더니 이내 김인우의 무서운 얼굴을 발견해버렸다.“...”대체 어떻게 이곳까지 찾아온 거지?박예찬은 황급히 아이들 틈에 숨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유지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너 뭐해?”박예찬은 김인우를 향해 손짓하며 유지훈에게 얘기했다.“너 데리러 오는 사람 바뀐 것 같은데 빨리 가봐.”유지훈은 박예찬의 손짓을 따라 김인우를 발견하고는 조금 놀란 듯 말했다.“어, 삼촌 친구네? 나 데리러 왔나 보다. 그럼 난 가볼게, 안녕.”김인우는 박예찬이 아이들 틈에 섞여 숨으려는 것을 보고 얼른 달려가려고 했는데 그때 누군가에 의해 다리가 묶여버렸다.“인우 삼촌.”김인우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다리를 붙잡고 있는 아이를 바라봤다.유지훈은 유씨 가문의 장손으로 극진한 대우를 받고 있는 아이이다.“지훈이네. 그래, 무슨 일이야?”유지훈이 애써 다정한 얼굴로 물었다.“어? 삼촌 나 데리러 온 거 아니에요?”그러자 김인우가 황당하다는 얼굴을 했다.유씨 집안의 장손이라고는 하지만 김씨 가문까지 받들어 모셔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게다가 김인우는 아이를 싫어했다.“지훈이가 오해했네. 삼촌은 누구 찾으러 온 거야.”김인우가 자신을 밀어내며 오해라고 하자 유지훈은 조금 실망한 얼굴을 했다.아까 분명 자신을 데리러 온 거라고 박예찬이 말했으니까.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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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5화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더 몰려들기 시작하자 김인우는 황급히 자리를 피해 다시 차에 다시 올라탔다.한편 박예찬은 유치원 안쪽 구석에 숨어 김인우의 상황을 전부 지켜보고 있었다.그가 차에 올라탄 것까지는 좋았지만 여전히 자리를 떠나려는 생각은 없어 보이자 박예찬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유치원까지 찾으러 오다니 참으로 유치한 어른이 아닐 수 없다. 박예찬은 아직 김인우가 자신을 아들로 착각해서 찾아온 것은 모르고 있다.그렇게 한참을 구석에 숨어 어떻게 이 상황을 타파해야 할지 생각을 하던 차에 마침 워치폰이 울렸다. 조하랑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이모!”“너 이 녀석 지금 어디야? 어디 있길래 코빼기도 안 보여?”조하랑은 유치원 입구 앞에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박예찬은 아까까지 주변을 서성이던 경호원들이 전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는 잽싸게 달려갔다.“이모, 나 여기 있어.”조하랑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왜 거기 있었어? 이모가 한참 찾았잖아.”“그게 실은... 저번에 봤던 아저씨가 찾아왔어...”박예찬은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멀지 않은 곳에 정차된 차량을 가리켰다.차 안에 있던 김인우는 미간을 치켜세우더니 곧바로 기사에게 말했다.“출발해.”하지만 이곳은 아직 하원하는 아이들로 북적였기에 함부로 시동을 걸 수가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체되자 청순한 얼굴의 여자가 하이힐을 신은 채 씩씩거리며 다가왔다.그녀는 손을 창문에 갖다 대고는 분개한 목소리로 말했다.“김인우 씨 이게 지금 뭐 하시는 거죠?”김인우는 화부터 내는 그녀를 향해 순간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입만 뻐끔거렸다.“다 큰 어른이 꼭 어린애를 이겨 먹어야 속이 시원하겠어요? 경고하는데 다음번에 또다시 이런 식으로 찾아오면 그때는 제 아들을 괴롭히고 스토킹한 죄로 경찰에 신고해 버릴 줄 아세요!”조하랑은 할 말을 다 끝냈다는 듯 김인우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다시 박예찬에게로 걸어갔다.박예찬은 조하랑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차로 향하다가 김인우 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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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6화

고영란은 떠나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그때 옆에 있던 비서에게 얼마 전 조사를 의뢰했던 유남준의 최근 행동에 관한 보고 문자가 왔다.“유남준 대표님께서 현재 진주시에서 아이 한 명을 키우고 계신답니다. 키운 지는 벌써 보름 정도 됐다고 하고요.”...박예찬은 집으로 돌아간 후 요즘은 특별히 더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박윤우가 들켜버린 마당에 자신마저 들켜버리면 안 되니까.아이는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를 이리저리 두드렸다. 그러다 얼마 안 가 곧바로 박윤우와 연결이 됐다.어젯밤 정림원의 시스템을 몰래 뚫어놓아 박윤우와 연락할 수 있게 된 것이다.유남준은 그때 박윤우의 워치폰만 뺏어갔을 뿐 아이가 가지고 있던 다른 미니 통신 기기는 눈치채지 못했다.박윤우는 병상에 누워있다가 작은 기기에 불이 들어오는 걸 보고 다급하게 귀 쪽으로 가져다 댔다.“형.”“윤우야, 괜찮아?”박예찬이 물었다.“응, 괜찮아. 나 돌봐주는 사람도 많고 내가 원하는 건 다 해줘.”박윤우는 검은 하늘을 쳐다봤다.만약 자신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도 않았을 것이고 전처럼 가족끼리 평온하게 살았을 것이다.“그럼 됐어.”박예찬은 혹시라도 박윤우가 슬퍼하거나 울고 있었더라면 어떻게 해서든 데리러 갈 생각이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에 그칠 수밖에 없다. 아이는 아직 어리고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았으니까.“형, 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뭔데?”“우리 아빠 정말 나쁜 사람이야?”박윤우에게 이런 생각이 든 건 유남준을 골탕 먹이러 한 게 발각됐을 때 그가 손찌검을 안 하고 심지어는 진심으로 화를 내는 걸 본 이후부터였다.“그런 건 왜 물어? 아내를 버린 사람인 것만으로도 충분히 나쁜 사람이지.”박예찬은 동생이 정이 많아 그저 금세 다른 사람에게 정이 들어버린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박윤우는 그게 아니었다.“형, 나는 아빠가 우리 엄마를 좋아하는 것 같아.”그 말에 박예찬이 멈칫했다.“엄마 생일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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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화

두원 별장.집으로 돌아온 유남준은 정원이 예쁘게 꾸며진 걸 볼 수 있었다. 재채기도 적게 나는 것이 이한석이 일을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박민정은 오늘 유남준이 이지원을 데려와 정원을 구경시켜줄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그는 혼자였다.“밥은 먹었어?”유남준은 홀로 거실 소파에 앉아 뭔가 끄적거리는 박민정을 보며 물었다.“네, 먹었어요.”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남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주방 쪽은 요리한 흔적 하나 없이 매우 깔끔했다.“오늘 안 들어오실 줄 알고 남준 씨 밥은 주문 안 했어요.”전에는 유남준이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항상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유남준은 거의 젓가락조차 들지 않았다.박민정은 해외에서 박예찬과 박윤우를 임신한 후 일에 매진해야 했기에 식사는 전부 은정숙에게 맡겼었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지고지순한 아내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다.유남준은 그녀의 표정에 스친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다.“나도 먹고 왔어.”거짓말이었다.그는 오늘 박민정이 준비해 둔 저녁밥을 먹으려고 이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빨리 들어온 것이었다.“다행이네요. 참, 하랑이가 감기에 걸려서 이따 병원에 같이 가주기로 했어요.”물론 이건 거짓말이고 병원은 조하랑의 신분으로 지금 임신할 수 있는 몸인지를 체크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유남준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이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보니 조하랑은 진작에 도착해있었다.“접수는 내가 했으니까 바로 들어가면 돼.”“응, 알겠어.”박민정은 조하랑과 함께 병원으로 들어가 검사를 받았다.한 시간 후 결과를 받아보니 요 며칠은 임신 최적기라고 한다.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조하랑은 가방에서 약 같은 것을 그녀에게 건넸다.“자, 이거 받아.”박민정이 궁금해서 보니 그건 남자들의 정력에 좋은 약품이었다.“필요 없어.”박민정이 기겁하며 거절했다.“뭐가 필요 없어. 술에 취하면 제대로 못 하는 남자들도 많아. 혹시 모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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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고영란은 아이의 엄마가 변변치 않은 여자라 자기 아들이 여태껏 숨기고 있는 줄 알았다.유남준은 그 말에 머리가 지끈해졌다.만약 그게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해도 핏줄로 인정할 수 있을까?“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머니는 신경 쓰지 마세요.”그 말을 끝으로 유남준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고는 괜히 마음이 심란해져 휴대폰 앨범 폴더에 숨겨뒀던 사진 석 장을 꺼내 봤다.첫 번째 사진은 박민정이 임신했을 당시의 신체검사 보고서 사진이었고 두 번째 사진은 박윤우의 사진,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청순가련한 한 여성의 뒷모습이었다.이리저리 번갈아 보다 그의 시선은 결국 박윤우의 사진에 머물렀다.이 아이가 정말 연지석의 아들인 걸까?의심은 되지만 유전자 검사까지 할 용기는 없었다.만약 검사 결과 아이가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보고가 나오면 모든 희망이 다 무너져내릴 테니까.그럴 바에는 차라리 유전자 검사는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한편 고영란은 갑자기 끊긴 전화에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어.”그녀는 비서에게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 올 것을 명령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꼭 찾아내야 했다.그녀가 손주에 집착하는 건 유남준에게 드디어 후계자가 생겨서일 뿐만이 아니라 유씨 가문 어르신들에게 그녀의 유전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몇십 년 전, 고영란은 쌍둥이를 임신했지만 낳고 보니 둘 중 작은 아이는 유전적 결함이 있었고 그 일 때문에 당시 시어머니에게 오랫동안 시달렸었다.그러다 유남준이 유씨 가문을 이어받으면서 드디어 당당하게 설 자리가 생긴 것이다.하지만 유남준과 박민정에게서는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이에 유씨 가문 사람들은 유남준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쉬쉬했다...유남준에게 문제가 있으면 결국 돌고 돌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게 될 텐데 어떻게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을까.유남준은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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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9화

박민정은 그에게 안긴 채로 가만히 굳어버렸다가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이건 진심이다.유남준은 박민정의 대답에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그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박민정이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느껴졌다.박민정은 지금이 바로 분위기를 끌어올릴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고개를 들어 유남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발끝을 들어 그의 목에 입을 맞춘 다음 서서히 그의 입술을 포갰다.유남준이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는 박민정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 쥐더니 서서히 키스 주도권을 빼앗아갔다.지금 박민정이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건지는 몰라도 오늘 밤 유남준은 그녀를 갖기로 했다.박민정은 세차게 몰아치는 키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간신히 입을 떼고 말했다.“나 조금 무서워서 그러는데 우리 술 좀 마실래요?”“그래.”촉촉하게 변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유남준은 자신의 욕망을 꾹 눌러 담았다.박민정은 가장 독한 술을 가져왔고 유남준의 술잔에 조하랑이 줬던 약을 풀었다. 그러고는 미리 술을 컵에 따라 그에게 건넸고 의심을 피하고자 자신도 술을 한잔 마셨다.“건배.”유남준은 그녀가 건넨 술을 남김없이 전부 마셔버렸다.박민정은 한 모금 하더니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앞으로 술은 와인으로 가져와. 이건 네가 마시기 힘들 테니까.”유남준은 아까 술 병을 힐끔 본 것만으로 그녀가 가지고 온 게 알코올 도수가 제일 센 술이라는 것을 알았다.와인은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세지 않아 여성들이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다.“그럴게요.”박민정은 그 뒤로 그에게 술을 건네지 않았다. 괜히 더 권했다가 그의 의심이라도 사면 안 되니까. 게다가 방금 탄 약을 보면 아마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예상대로 유남준은 그 뒤로 혼자 두어 번 자작하더니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는 잠옷 단추를 거칠게 풀며 심호흡을 내쉬더니 눈 깜짝할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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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화

격렬한 밤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유남준은 박민정을 뒤에서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박민정은 머리맡에 둔 작은 유리병을 보고는 드디어 떠날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그 유리병 안에는 드디어 그녀가 얻고 싶었던 것이 들어있다.박민정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유남준이 더욱 세게 안아왔다.어쩔 수 없이 그녀는 일단 그 물건을 침대 아래 숨겨두고 내일 유남준이 출근하면 다시 꺼내기로 했다.그러고는 몸을 돌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유남준을 바라봤다. 괜히 죄책감이 밀려왔던 그녀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아까 미안하다고 했던 건 진심이었어요. 그 이유가 죽은 척하고 당신을 떠난 것에 대한 건 아니었지만...’지금 그녀의 행동은 유남준을 속이는 것이 된다.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야만 아이를 곁에 둘 수 있으니까.다음날, 날이 밝아오고 유남준은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품에는 아직 박민정이 있었고 이에 안도감이 들어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그러다 문득 그녀의 매끄러운 등에 오래된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태로 봐서는 자상인 듯했다.그때 박민정도 잠에서 깼고 유남준은 그녀에게 물었다.“등에 이 상처는 뭐야?”박민정이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원망과 슬픔이 가득 들어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기억 안 나요?”이 상처는 그때 칼을 맞을 뻔한 그를 구해주려다가 생긴 것이었다.그런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유남준과 김인우는 정말 친구가 맞나 보다. 두 사람 다 똑같이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이었다.유남준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듯 다시 물었다.“언제 생긴 건데?”박민정은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열일곱 살 때요.”즉 유남준이 유씨 가문에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할 때였다.당시 그 범인이 유씨 가문에서 보낸 것인지 아니면 라이벌 회사에서 보낸 것인지는 몰랐지만 유남준은 하마터면 칼에 맞을 뻔했고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유씨 가문 사람들조차 알고 있는 일을 당사자인 그는 까맣게 잊어버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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