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원 별장.집으로 돌아온 유남준은 정원이 예쁘게 꾸며진 걸 볼 수 있었다. 재채기도 적게 나는 것이 이한석이 일을 제대로 한 모양이었다.박민정은 오늘 유남준이 이지원을 데려와 정원을 구경시켜줄 줄 알았지만, 예상외로 그는 혼자였다.“밥은 먹었어?”유남준은 홀로 거실 소파에 앉아 뭔가 끄적거리는 박민정을 보며 물었다.“네, 먹었어요.”박민정이 고개를 끄덕였다.유남준이 고개를 돌려 보니 주방 쪽은 요리한 흔적 하나 없이 매우 깔끔했다.“오늘 안 들어오실 줄 알고 남준 씨 밥은 주문 안 했어요.”전에는 유남준이 들어오든 안 들어오든 항상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고 기다렸다. 하지만 유남준은 거의 젓가락조차 들지 않았다.박민정은 해외에서 박예찬과 박윤우를 임신한 후 일에 매진해야 했기에 식사는 전부 은정숙에게 맡겼었다.그리고 지금 그녀는 더 이상 예전의 지고지순한 아내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다.유남준은 그녀의 표정에 스친 감정을 읽어내지 못했다.“나도 먹고 왔어.”거짓말이었다.그는 오늘 박민정이 준비해 둔 저녁밥을 먹으려고 이제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빨리 들어온 것이었다.“다행이네요. 참, 하랑이가 감기에 걸려서 이따 병원에 같이 가주기로 했어요.”물론 이건 거짓말이고 병원은 조하랑의 신분으로 지금 임신할 수 있는 몸인지를 체크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유남준은 이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이 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보니 조하랑은 진작에 도착해있었다.“접수는 내가 했으니까 바로 들어가면 돼.”“응, 알겠어.”박민정은 조하랑과 함께 병원으로 들어가 검사를 받았다.한 시간 후 결과를 받아보니 요 며칠은 임신 최적기라고 한다.병원에서 나와 집으로 가는 길, 조하랑은 가방에서 약 같은 것을 그녀에게 건넸다.“자, 이거 받아.”박민정이 궁금해서 보니 그건 남자들의 정력에 좋은 약품이었다.“필요 없어.”박민정이 기겁하며 거절했다.“뭐가 필요 없어. 술에 취하면 제대로 못 하는 남자들도 많아. 혹시 모를
고영란은 아이의 엄마가 변변치 않은 여자라 자기 아들이 여태껏 숨기고 있는 줄 알았다.유남준은 그 말에 머리가 지끈해졌다.만약 그게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해도 핏줄로 인정할 수 있을까?“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어머니는 신경 쓰지 마세요.”그 말을 끝으로 유남준은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고는 괜히 마음이 심란해져 휴대폰 앨범 폴더에 숨겨뒀던 사진 석 장을 꺼내 봤다.첫 번째 사진은 박민정이 임신했을 당시의 신체검사 보고서 사진이었고 두 번째 사진은 박윤우의 사진, 그리고 마지막 사진은 청순가련한 한 여성의 뒷모습이었다.이리저리 번갈아 보다 그의 시선은 결국 박윤우의 사진에 머물렀다.이 아이가 정말 연지석의 아들인 걸까?의심은 되지만 유전자 검사까지 할 용기는 없었다.만약 검사 결과 아이가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보고가 나오면 모든 희망이 다 무너져내릴 테니까.그럴 바에는 차라리 유전자 검사는 하지 않는 게 나을 것이다.한편 고영란은 갑자기 끊긴 전화에도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아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야겠어.”그녀는 비서에게 아이가 어디 있는지 알아 올 것을 명령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아이를 꼭 찾아내야 했다.그녀가 손주에 집착하는 건 유남준에게 드디어 후계자가 생겨서일 뿐만이 아니라 유씨 가문 어르신들에게 그녀의 유전자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몇십 년 전, 고영란은 쌍둥이를 임신했지만 낳고 보니 둘 중 작은 아이는 유전적 결함이 있었고 그 일 때문에 당시 시어머니에게 오랫동안 시달렸었다.그러다 유남준이 유씨 가문을 이어받으면서 드디어 당당하게 설 자리가 생긴 것이다.하지만 유남준과 박민정에게서는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았고 이에 유씨 가문 사람들은 유남준에게 문제가 있을 것이라며 쉬쉬했다...유남준에게 문제가 있으면 결국 돌고 돌아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게 될 텐데 어떻게 그 꼴을 가만히 지켜볼 수 있을까.유남준은 그녀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것이다.
박민정은 그에게 안긴 채로 가만히 굳어버렸다가 서서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요.”이건 진심이다.유남준은 박민정의 대답에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큰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쓸어내렸다.그는 지금, 이 순간만큼은 박민정이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느껴졌다.박민정은 지금이 바로 분위기를 끌어올릴 타이밍이라고 생각해 고개를 들어 유남준을 바라봤다. 그리고 발끝을 들어 그의 목에 입을 맞춘 다음 서서히 그의 입술을 포갰다.유남준이 자제력이 강한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지금, 이 유혹은 거부하기 힘들었다. 그는 박민정의 머리를 한 손으로 감싸 쥐더니 서서히 키스 주도권을 빼앗아갔다.지금 박민정이 무슨 목적으로 이러는 건지는 몰라도 오늘 밤 유남준은 그녀를 갖기로 했다.박민정은 세차게 몰아치는 키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간신히 입을 떼고 말했다.“나 조금 무서워서 그러는데 우리 술 좀 마실래요?”“그래.”촉촉하게 변한 그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유남준은 자신의 욕망을 꾹 눌러 담았다.박민정은 가장 독한 술을 가져왔고 유남준의 술잔에 조하랑이 줬던 약을 풀었다. 그러고는 미리 술을 컵에 따라 그에게 건넸고 의심을 피하고자 자신도 술을 한잔 마셨다.“건배.”유남준은 그녀가 건넨 술을 남김없이 전부 마셔버렸다.박민정은 한 모금 하더니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에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앞으로 술은 와인으로 가져와. 이건 네가 마시기 힘들 테니까.”유남준은 아까 술 병을 힐끔 본 것만으로 그녀가 가지고 온 게 알코올 도수가 제일 센 술이라는 것을 알았다.와인은 상대적으로 알코올 도수가 세지 않아 여성들이 마시기에도 부담이 없다.“그럴게요.”박민정은 그 뒤로 그에게 술을 건네지 않았다. 괜히 더 권했다가 그의 의심이라도 사면 안 되니까. 게다가 방금 탄 약을 보면 아마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예상대로 유남준은 그 뒤로 혼자 두어 번 자작하더니 얼굴이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그는 잠옷 단추를 거칠게 풀며 심호흡을 내쉬더니 눈 깜짝할 새
격렬한 밤은 새벽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유남준은 박민정을 뒤에서 꼭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박민정은 머리맡에 둔 작은 유리병을 보고는 드디어 떠날 때가 됐음을 직감했다. 그 유리병 안에는 드디어 그녀가 얻고 싶었던 것이 들어있다.박민정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하자 유남준이 더욱 세게 안아왔다.어쩔 수 없이 그녀는 일단 그 물건을 침대 아래 숨겨두고 내일 유남준이 출근하면 다시 꺼내기로 했다.그러고는 몸을 돌려 깊은 잠에 빠져있는 유남준을 바라봤다. 괜히 죄책감이 밀려왔던 그녀는 속으로 그에게 말했다.‘아까 미안하다고 했던 건 진심이었어요. 그 이유가 죽은 척하고 당신을 떠난 것에 대한 건 아니었지만...’지금 그녀의 행동은 유남준을 속이는 것이 된다.하지만 그녀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 이렇게 해야만 아이를 곁에 둘 수 있으니까.다음날, 날이 밝아오고 유남준은 두통과 함께 잠에서 깼다. 눈을 떠보니 품에는 아직 박민정이 있었고 이에 안도감이 들어 그녀를 더 꽉 끌어안았다.그러다 문득 그녀의 매끄러운 등에 오래된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태로 봐서는 자상인 듯했다.그때 박민정도 잠에서 깼고 유남준은 그녀에게 물었다.“등에 이 상처는 뭐야?”박민정이 몸을 흠칫 떨더니 이내 원망과 슬픔이 가득 들어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기억 안 나요?”이 상처는 그때 칼을 맞을 뻔한 그를 구해주려다가 생긴 것이었다.그런데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유남준과 김인우는 정말 친구가 맞나 보다. 두 사람 다 똑같이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이었다.유남준은 여전히 기억나지 않는 듯 다시 물었다.“언제 생긴 건데?”박민정은 입안이 쓰게 느껴졌다.“열일곱 살 때요.”즉 유남준이 유씨 가문에서의 입지를 굳히기 시작할 때였다.당시 그 범인이 유씨 가문에서 보낸 것인지 아니면 라이벌 회사에서 보낸 것인지는 몰랐지만 유남준은 하마터면 칼에 맞을 뻔했고 그런 그를 구해준 것이 바로 그녀였다.유씨 가문 사람들조차 알고 있는 일을 당사자인 그는 까맣게 잊어버렸
박민정은 나쁜 짓을 하고 들킨 아이 얼굴을 한 채 그와 눈이 마주쳤다.하지만 유남준은 화를 내지 않았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이제 알려 줘. 네가 원하는 게 뭔지.”박민정은 그와 금방이라도 코가 닿을 거리에서 유남준의 시선을 마주하며 거짓말했다.“그냥 단순히 당신과 하룻밤 보내고 싶었을 뿐이에요.”그녀는 또 거짓말을 하고 있다.유남준은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은 언뜻 슬퍼 보이기도 했다.“그럼 그 다음은? 이제 날 떠나려고?”박민정은 그에게 꽉 잡힌 어깨가 부서질 듯 아파 났다.“나는...”하지만 그녀가 말을 채 잇기도 전에 유남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너는 내 허락 없이 진주시에서 절대로 못 나가. 벌써 잊었어?”박민정의 몸이 살짝 떨렸다.“잊은 적 없어요. 당신 돈 다 갚고 떠나겠다고 했잖아요. 그리고 윤우가 여기 있는데 내가 몰래 떠날 리가 없잖아요.”“그 많은 돈은 어떻게 마련하게?”유남준이 물었다.박민정이 해외에서 꽤 유명세를 떨치는 작곡가인 건 맞지만 그가 준 돈을 다 갚으려면 아직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돈은 내가 어떻게든 마련할 수 있어요.”박민정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고개를 들어 말했다.“당신 돈 갚기 전에는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하지만 유남준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힘을 더 꽉 주었다.“아파요.”박민정이 미간을 찌푸리고 나서야 그는 손에 힘을 풀었다.박민정은 이불로 몸을 가리며 천천히 뒤로 갔다.“그럼 난 먼저 씻을게요.”원래 그녀는 옷을 입으려고 했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의 옷을 보니 전부 찢어져 있고 유남준의 옷과 함께 뒤엉켜 있는 바람에 이불이라도 쓸 수밖에 없었다.그렇게 이불을 돌돌 말은 채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유남준이 다시 한번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뭐가 그렇게 급해?”그의 목소리는 살짝 젖어있었다.“네가 전에 그랬지? 나와 부부처럼 지내고 싶다고. 손도 잡고 포옹도 하고 키스도 하고...”
이혼을 결심한 이후로 박민정은 유남준과 진정한 부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유남준은 그녀의 잔머리를 정리해주며 말했다.“내 이름 불러줘.”박민정의 빨간 입술이 서서히 움직였다.“남준 씨.”유남준은 다시 한번 그녀에게 입 맞출 생각이었지만 갑자기 들려오는 노크 소리 때문에 아쉽게도 분위기가 깨져버렸다.도우미가 두 사람의 식사를 올려왔다.그리고 한 시간 뒤, 식사를 마친 후 박민정이 물었다.“오늘 정말 출근 안 해도 되겠어요?”유남준은 그녀가 자신을 회사로 보내려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응, 직원들이 알아서 해 줄 거야.”사실 처음부터 이래야 했다. 한 회사의 대표가 많은 것을 끌어안기보다는 적당히 부하 직원에게 업무를 나눠줄 줄도 알아야 한다.박민정은 조금 곤란해졌다. 그가 집에서 나가지 않으면 정자가 들어있는 그 유리병을 찾기 힘들 테니까.유남준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왜? 내가 회사로 갔으면 좋겠어?”“아뇨. 그냥 궁금해서 물어본 거예요.”박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이번 달은 일에서 손을 뗄 생각이야. 너한테 더 신경 쓸 거니까.”일에서 손을 뗀다고...박민정은 조금 믿기 힘든 얼굴을 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참, 너 전에 신림현으로 가고 싶다고 했었지?”그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를 건네자 컵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두 사람이 막 결혼했을 당시 박민정은 자주 그에게 자신이 크고 자란 곳을 언급했다.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걸 공유하고 싶었으니까.“그랬죠.”“그럼 이따 거기로 갈 거니까 준비해.”한 달간 진짜 부부가 되기로 약속은 했지만, 정확히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하여 그는 문득 누군가가 허니문 얘기를 했던 것이 생각나 이런 제안을 꺼낸 것이다.박민정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알겠어요. 지금 준비할게요.”자기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휴대폰을 집어 들다가 조하랑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걸려온 것을 봤다
신림현으로 가는 길에 장대비가 내렸다.박민정은 조수석에 앉아 우연히 운전석에 있는 유남준의 옆얼굴을 보고는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그러다 이내 시선을 거두고 차창 밖을 바라봤다.솔직히 유남준을 얻기 전에는 그의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힘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그가 있었다.유남준은 아주 잠깐 자신에게 머물었던 박민정의 시선을 알아채고는 휴게소에 거의 다다를 때 그녀의 손을 잡았다.“네가 조용하니까 적응이 안 돼.”그에 박민정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전에는 나한테 하고 싶었던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그 말에 박민정은 쓰게 웃었다.“그런 내게 말 많은 거 싫다고 한 건 당신이었죠.”그녀의 말에 차 안의 분위기가 바로 차갑게 가라앉았다.박민정은 괜한 얘기를 했다는 생각에 얼른 화제를 돌렸다.“여기 휴게소에서 조금만 더 가면 단풍나무 숲이 보일 거예요. 되게 예뻐요.”벌써 가을이 훌쩍 다가온 시점이라 해가 빨리 지기 시작했고 비 때문인지 날씨도 점점 추워졌다.단풍나무 숲을 지나갈 때 저녁이기도 하고 비도 와 날이 어둡기는 했지만, 다행히 예쁜 단풍나무는 볼 수 있었다.그리고 이때 유남준은 실로 오랜만에 활짝 웃는 박민정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마치 순진무구한 그녀와 처음 만났을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단풍나무 숲 풍경은 금세 사라졌고 박민정은 심심함을 달래려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배터리가 없는 바람에 다시 휴대폰을 집어넣었다.그때 유남준이 자신의 휴대폰을 건넸다.“이거 써. 비번은 없어.”박민정은 조금 고민하더니 결국에는 휴대폰을 건네받았다.그의 핸드폰에는 업무에 필요한 앱들과 연락할 때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흔한 노래를 듣는 앱도 없었다.그녀는 어쩔 수 없이 최근 뉴스를 확인하러 포털에 들어갔다.그러자 인기 검색어에 이지원의 [공개 사과문]이라는 다섯 글자가 보였다.처음에는 자신이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유남준이 그녀에게
은은한 불빛 아래 박민정은 너무나도 익숙한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입술만 달싹였다.유남준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했고 박민정은 이불을 꽉 쥐었다.“오늘은 힘들어서 싫어요.”유남준은 잠깐 멈칫하더니 그녀를 살포시 끌어안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박민정은 유남준의 품에서 규칙적으로 뛰는 그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남준 씨...”“응.”“우리가 처음 포옹한 게 언제인지 기억해요?”갑작스러운 그녀의 말에 유남준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그를 꽉 끌어안은 건 두 사람의 첫날밤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그녀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그때 유남준은 그녀의 기분을 헤아리려 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매몰차게 떼어놨었다.박민정이 그때 일로 자신을 원망하려는 건 줄 안 유남준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때와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야.”그에게 이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사과나 다름없었다.한편 박민정은 고개를 들어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했다.두 사람이 처음 포옹한 건 아직 학생이었을 당시 그가 비가 내림에도 불구하고 괴롭힘당하던 그녀를 구해줬을 때였다.그런데 그때와 같은 일은 다시는 없을 거라니?하지만 박민정은 이내 아무래도 좋다는 듯 얘기했다.“내가 당신을 좋아하게 된 건 아마 그때부터였을 거예요.”유남준은 그녀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그의 기억으로 박민정은 결혼식을 올리기 전부터 자신을 좋아했다. 그런데 갑자기 결혼한 첫날밤에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니?그의 의문이 채 가시기도 전에 박민정이 다시 말을 이었다.“그때는 남준 씨가 정말 멋져 보였어요. 그리고 나는 그런 당신과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죠. 결혼 같은 건 꿈도 꿔본 적이 없어요.”유남준도 그 어린 여자아이와 결혼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박민정을 처음 만났던 건 그녀가 10살이었을 때였다. 그때의 그녀는 여리고 가녀렸지만, 얼굴에 띤 미소만큼은 그 누구보다 빛이 났다.“우리는 다